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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60화 (59/556)

난 할 수 있어 60화

소방관들이 사방팔방에서 물을 쏘아 댔다.

최재한의 아버지도 일원으로 수고하고 있을 터.

모 대학의 교수가 전문가라고 뉴스 스튜디오에 나와 주저리주저리 말을 얹었다.

-일단 지붕을 해체하고, 그 안에서 타오르는 불씨를 제거할 계획입니다.

건조하게 읊어 대는 말대로 상황이 종식되길 바랐다.

그의 말처럼 소방관들이 사다리차를 타고 화염을 뿜는 지붕 가까이 가서 지붕 해체 작업을 시도했다.

대찬의 표정은 어두웠다.

‘용케 잘되면 좋겠지만…….’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어어, 지금 지붕이 무너지는데요! 교수님, 계획대로 해체되는 거 맞습니까?

-어, 원래 저렇게 급하게 되면 안 되는데, 어, 어어?

지붕이 와르르 무너졌다.

불에 활활 타오르는 서까래가 사다리차를 덮쳤다.

사다리차 리프트에 탑승한 소방관들 위로 무너졌다.

-어… 아…….

-아…….

쉴 새 없이 떠들던 뉴스 스튜디오의 앵커와 교수는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화재 현장을 생중계하던 화면은 스튜디오를 비췄다.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앵커의 표정이 퍽 곤란해 보였다.

대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소방관 3명의 합동 빈소가 중부소방서에 마련되었다.

대찬은 유독 무거운 마음으로 조문했다.

헌화를 하고 분향을 한 뒤 절을 올렸다.

일어나서 물끄러미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제가 더 적극적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요?’

대찬은 눈물을 훔치고 상주 완장을 찬 최재한의 손을 잡았다.

최재한의 정신은 완전히 피폐해져 있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대찬아… 내가 네 말 듣고 아빠 뜯어말렸으면 아빠 안 죽었겠지? 그치?”

“네 잘못 아니야. 잘못한 거 하나 없어, 재한아. 운이… 운이 안 좋으셨던 거야. 운…….”

대찬은 최재한에게 귀띔해 준 걸 가슴에 사무치게 후회했다.

자신 때문에 최재한은 평생 덜어 낼 수 없는 마음의 짐을 짊어졌다.

‘미래를 더듬더듬 안다는 걸 이렇게 후회한 적은 없어.’

대찬은 슬픔에 잠긴 친구를 끌어안았다.

최재한은 대찬의 품에서 아이처럼 울었다.

대찬도 그를 꽉 껴안은 채로 서럽게 울었다.

첫 번째 삶, 국보 1호는 완전히 불에 탔지만 사람은 죽지 않았다.

두 번째 삶, 국보 1호와 함께 3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대찬의 인생에 순풍이었던 두 번째 삶은, 오늘만큼은 최악의 저주가 되었다.

조문을 한 대찬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발인까지 자리를 지켰다.

최재한의 아버지가 잠든 관, 한 귀퉁이만큼의 무게를 감당했다.

팔에 실리는 하중은 감당할 수 있지만,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은 하중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장지로 향하려는데, 한 무리의 기자들이 빈소를 찾아왔다.

그들은 죽은 소방관들의 상사였던 소방서장을 붙들고 질문했다.

“이번 숭례문 화재에서 소방 당국의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 저…….”

“특히 순직한 소방관들이 쏜 물의 수압으로 불길이 더 커졌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아, 그게, 순직한 동료가 발인하는 날에…….”

“비극이지만 소방서장으로서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지 않습니까. 당국의 책임자로서 국민들께 전할 말씀이 있으십니까?”

“아, 하하, 이것 참…….”

“지금 웃으셨습니까? 순직한 부하들의 발인 날에 웃으시는 겁니까?”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사방팔방에서 날아오는 질문에 소방서장은 맥을 못 추렸다.

그도 그럴 것이 말 한마디 까딱 실수했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는 수가 있었다.

보다 못한 대찬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따지려고 했다.

그때 최재한이 대찬의 손목을 붙들었다.

“…재한아.”

“가만히 있어.”

그렇게 말하는 최재한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래도 저 자식들이 최소한의 양심도 없이……!”

“너 여기서 목소리 높이면 순식간에 저놈들 먹잇감 되는 거야. 알아?”

“…….”

“내가 그래도 언론사 밥 빌어먹고 살겠다고 한창 준비했잖아. 저 사람들 생리는 대충 알아.”

“…….”

“아무리 정당한 말이라 해도 모자이크 씌우고 음성 변조해서 험한 말만 내보내면 당해 낼 재간이 없어.”

“하…….”

“‘소방관 유족, 취재진에 난동’ 같은 제목 달고 나오겠지.”

“…….”

“소방 당국의 대처 때문에 불길이 더 커진 거 맞다며. 네가 목소리 높이면 국보 1호 태워 먹고 뭘 잘했다고 난동이냐고, 죽은 게 벼슬이냐고 떠들어 대는 사람 분명히 있을 거야.”

“…답답하다.”

“나야말로 저놈들한테 쌍욕 퍼부어 주고 싶어. 그래도 가만히 있자. 가만히 우리 아빠 보내 주자. 먹칠하지 말고.”

“미안해.”

최재한은 대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찬아.”

“응.”

“난 저런 기자 안 될 거다. 사람 같지도 않은 기자 안 될 거다.”

“…….”

“사람 되고 기자 될 거다. 그럴 거다…….”

열흘 후, 고원대학교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생들은 주변의 축하를 받으며 학사모를 썼다.

서원웅도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졸업식에 참석했다.

학사모를 쓰고 가운을 두른 대찬, 최재한, 서원웅은 나란히 섰다.

대찬과 서원웅은 웃지 못했다. 도저히 입가가 벌어지지 않았다.

그걸 보고 최재한이 웃으면서 대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웃어.”

“재한아.”

“아빠 보여 줄 거야. 웃어, 조대찬. 웃어, 서원웅.”

대찬과 서원웅은 입가를 경련하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최재한은 지금까지 웃었던 것보다 더 활짝 웃음을 지었다.

대찬의 어깨에 걸린 최재한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찰칵.

학사모를 쓴 셋의 사진이 액자에 담겨 순직한 소방관의 무덤 앞에 놓였다.

최재한은 그해 뉴스 전문 채널의 상반기 기자 공채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대찬과 서원웅은 정해진 길을 걸었다.

필래그룹 상반기 공채에 이력서를 냈다.

-이력서

성명 – 조대찬 Cho, Daechan 趙大燦

주민등록번호 – 830509-10*****

병역 필

육군 병장 만기 제대

이라크 아르빌 파견

학력

고원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2002.3~2008.2

미네소타 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 경영학과 교환학생 2006~2007

동하고등학교 졸업 1999.3~2002.2

학점 3.56/4.5

실무 경력

필래그룹 산하 웜샤인 출범 준비위원, 협력 진행 담당

창업 동아리 에피니키온 회장, 신사업국장

수영실업 도급 사원 근무

Mike Hatch DFL 미네소타주지사 캠프 선거 자원봉사

동하고등학교 총학생회 기획총무부장

수상 경력

Mike Hatch 미네소타 주지사 감사패

고원대학교 자랑스러운 재학생상

에피니키온 굿 팔로워상

고원경영학우회 본상

육군 이라크재건사단장 표창

자격증

TOEIC 975점

컴퓨터활용능력 1급

운전면허

자기소개서

…….

대찬은 필래그룹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첫 번째 삶의 이력서와 내용이 사뭇, 많이 달랐다.

심정이 미묘했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찬의 이력서는 형식도 좋았고 내용도 알찼다.

공자 왈, 형식과 내용이 모두 빼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문질빈빈(文質彬彬)이다.

대찬의 이력서는 문질이 빈빈했다.

필래그룹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었다. 따라서 많은 대졸자들이 몰렸다.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의 이력서 가운데서도 대찬의 것은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실적이 가장 큰 강점이었다.

에피니키온에서의 실적이 다른 지원자들을 압도했다.

약간 낮은 학점은 허물 축에도 들지 못했다.

서류를 무사히 통과하고, 면접에 들어갔다.

면접 당일, 대찬의 어머니는 그의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어깨를 두드렸다.

“떨지 말고, 하던 대로. 응?”

“엄마가 더 떠시는 거 같은데요.”

“아들 몫까지 떨고 있으니까 너는 불안해하지 마.”

“당연하죠. 불안감 제로, 긴장감 제로.”

“그래. 든든하다, 우리 아들.”

일말의 긴장도 없는 대찬은 도리어 웃으면서 어머니를 위로했다.

“붙을 거니까 또 절에 올라가서 108배 올리지 마시고요. 무릎도 안 좋은데.”

“알았어요, 알았어.”

“다녀올게요, 그럼.”

대찬이 현관으로 나가 구두를 신는데, 어머니는 부리나케 부엌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청심환이야. 면접 들어가기 전에 먹어.”

“알았어요.”

굳이 청심환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대찬은 어머니가 건네주는 청심환을 꼭 쥐며 웃었다.

대찬은 부러 출근 시간을 피해 아침 일찍 면접장으로 향했다.

필래그룹의 바벨탑처럼 높다란 사옥은 언제 봐도 위압적이었다.

대찬은 넥타이를 고쳐 매고 사옥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시간에도 긴장한 경쟁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경쟁자라고 하긴 뭣하지만, 서원웅 역시 면접을 보기 위해 와 있었다.

긴장한 얼굴이었다.

대찬은 웃으면서 서원웅의 가슴을 툭 건드렸다.

“뭐야, 왜 이렇게 긴장했어? 그럴 필요 하나 없으신 분이. 면접장에서 바지 내리고 지리지만 않으면 돼.”

“그래도 떨리잖아. 너는 안 떨려?”

“네 심각한 표정이 하도 웃겨서 있던 긴장도 다 날아갔어.”

서원웅은 어정쩡하게 웃었다.

사옥 로비에는 그들 말고도 다른 경쟁자들이 많이 와 있었다.

양복이 영 어울리지 않고, 어딘가 어수룩하게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대찬은 그들이 의아했다.

“다들 왜 저렇게 미아들처럼 헤매고 있어?”

“나도 와서 보니까 안내가 좀 불친절하게 돼 있더라고. 면접장을 잘 못 찾고 있나 봐.”

“하긴 사옥이 하도 크니까.”

대찬은 이미 여러 차례 필래그룹 사옥을 방문한 전력이 있었다. 그들과는 다르게 익숙한 걸음으로 면접장을 찾아갈 수 있었다.

“자, 가자.”

“응.”

자신 있게 걷는 대찬과 서원웅을 보고 그의 경쟁자들은 우물쭈물 뒤에 따라붙었다.

대찬은 뒤를 흘끗 돌아보고는 흐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졸지에 새끼 오리들을 이끄는 엄마 오리가 된 느낌이었다.

곧 대찬과 서원웅은 면접장에 무사히 도착해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서원웅은 긴장을 풀기 위해 심호흡했다.

그걸 본 대찬은 안주머니에 넣었던 청심환을 꺼냈다.

“자, 이건 너한테 필요하겠다.”

“고마워.”

서원웅은 사양하지 않고 냉큼 청심환을 먹었다.

‘오죽 긴장됐으면.’

대찬은 미소를 지었다.

청심환으로도 그의 긴장은 다스려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꾸 화장실 가고 싶어지네. 갔다 올게.”

“어어. 금방 다녀와야 돼. 그러다 차례 돌아온다.”

“알았어.”

대찬은 서원웅을 보내고 팔짱을 낀 채 잠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대찬에게 말을 걸었다.

“막힘이 없으시네요.”

“네?”

대찬은 눈을 떠 바라봤다.

가슴에 수험표를 단 남자가 대찬을 향해 웃고 있었다.

“안내가 제대로 안 돼 있는데 한 번에 면접장으로 오시더라고요. 필래에서 인턴 하셨어요?”

대찬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우연찮게 한 번 들를 기회가 있었거든요. 인턴은 한 번도 안 해 본걸요.”

“에? 인턴을 한 번도 안 해 보셨다고요?”

대찬의 말에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범죄자라도 본 듯한 표정에 대찬은 웃음을 터트렸다.

“네.”

“요즘 세상에 인턴 한 번 안 하고 바로 취직이 되나요?”

“글쎄요……. 사람 사는 방식은 여러 가지니까.”

“좋네요, 긍정적인 마인드.”

어째 칭찬으로 들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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