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1화
“그래? 그게 뭔가?”
“우리가 주민에게 다가가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우리에게 오도록 하는 겁니다.”
“자세히 얘기해 봐.”
“그러니까…….”
대찬의 말이 이어질수록 사단장의 끄덕거림은 빈도가 높아졌다.
“아이들을 상대로 해야 효과가 좋을 겁니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경계도, 의심도 하지 않으니까요.”
“태권도 시범이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율동을 보여 주면서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형성하자는 거지?”
“그렇습니다.”
대찬은 그렇게 대답하고 조심스레 사단장의 표정을 살폈다.
잠시 심각하게 고민하던 사단장의 얼굴에 일순 긴장이 풀렸다.
픽, 그는 싱겁게 웃고는 대찬을 바라봤다.
“이봐.”
“병장 조대찬!”
대찬은 힘 있게 관등성명을 댔다.
“세상이 만만해 보이나?”
“…잘못 들었습니다?”
“일개 병사 하나가 생각할 수 있는 걸 국방부 두뇌들이 떠올리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아뿔싸.
대찬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 건 다 이미 세워진 전략이야. 다만, 아직은 인근의 동향을 세밀하게 살필 시점이라 그러지 못했을 뿐이지.”
“…….”
대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태권도 시범, 율동, 그런 건 애저녁에 다 결정된 일이란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대찬이 부러 더 군기 든 목소리로 말하자, 사단장은 남은 웃음을 마저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아닐세. 다만, 작전을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용기 있게 말해 준 점은 높이 평가하네.”
사단장의 표정은 온후했다.
대찬은 그 말이 그저 부하의 면을 세워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 진심이라고 판단했다.
다행이었다.
사단장은 다시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다 대찬에게 말했다.
“자네, 춤 좀 추나?”
“추, 춤 말씀이십니까?”
“그래, 춤.”
대찬은 그의 질문에 즉각 부정하려고 했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중대장의 시선에 합, 입을 다물었다.
‘일을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발을 뺄 수작은 아니겠지?’
중대장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찬은 침을 꼴깍 삼키고 대답했다.
“조, 조금 춥니다!”
그 말에 주위의 병사들이 쿡쿡, 참지 못하는 웃음을 억눌렀다.
“그래?”
사단장은 빙긋 웃었다.
그는 시원시원하게 즉석에서 명령했다.
“좋아. 한번 해 봐.”
최고 결정권을 쥔 자만이 내릴 수 있는 일사천리의 결정이었다.
“어, 어떤 걸 말입니까?”
“율동을 춰서 주민들에게 호감을 사자며? 그런 걸 스스로 생각하고 제안할 정도라면 열정이 넘치겠지. 춤도 못 추지 않는다고 하니 자네가 적임이야.”
사단장은 중대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중대장, 아무래도 이런 건 젊은 병사들이 더 잘하지 않겠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조대찬 병장 중심으로 해서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율동반을 편성하도록 해.”
대찬이 하지 않으면 중대장 본인이 나서서 율동을 춰야 할 판.
중대장은 사단장이 말하는 즉시 넙죽 명을 받들었다.
“알겠습니다!”
‘아…….’
대찬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철모와 총기가 도사리는 기지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 퍼졌다.
“뒷다리가 쑥, 앞다리가 쑥,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기지의 한구석, 짧은 머리를 하고 누런 사막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이 율동을 하고 있었다.
그 건장한 청년들의 선두에는 대찬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작열하는 햇볕 때문이기도 했지만 수치심의 영향이 더 컸다.
부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그 몰골을 보고 저도 모르게 킥킥거리며 지나갔다.
대찬과 함께 동요에 맞춰 율동을 추는 이들은 대찬 덕분에 맥주를 마시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보람을 찾자면, 주민들에게 효과가 확실했다는 것이다.
이라크 아르빌의 주민들은 삭막한 세태에 어울리지 않는 발랄한 멜로디에 귀를 쫑긋 세웠다.
기지와 민가의 경계에서 혼신의 율동을 추는 대찬 일행을 보고 처음에는 눈을 크게 뜨며 영문을 몰라 했다.
그러다가 그것이 하루, 이틀, 사흘째 이어지자 슬슬 마음의 경계심을 허물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차츰차츰, 더딘 걸음이지만 진전은 분명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들 왔네.”
대찬은 웃으면서 분필로 바닥에 선을 그었다.
첫날, 아르빌 주민들은 부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섰다.
이목구비 분간이 안 되고, 그저 사람들이 거기 서 있다는 것만 인지될 정도로 먼 거리였다.
둘째 날, 어른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지만 아이들은 슬금슬금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조곤조곤 저들끼리 나누는 말소리가 어렴풋이 동요 가락 사이로 흘러들어 왔다.
셋째 날, 갓난아기를 안은 여자가 더 가까이 다가와 음악 소리에 우는 아이를 달랬다.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넷째 날, 대찬은 부대에서 두 걸음만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몸을 숙여 그곳에 분필을 그었다.
대찬은 씩 웃으면서 분필을 칠하고 살짝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분필로 그린 4개의 선이 보였다.
첫째 날의 선과 지금 그은 넷째 날의 선은 족히 10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만큼 주민들과 가까워졌다.
벽에 딱 등을 기대고 선 아이의 머리 위에 선을 긋는 부모.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의 키를 보며 웃는 부모처럼, 대찬은 가까워지는 주민들을 떠올리며 흡족하게 웃었다.
율동이 물꼬를 트고 태권도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대찬보다도 무술에 능한 특전사들이 조를 짜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가까이로 다가와 태권, 태권도, 어눌한 발음으로 구령을 흉내 내며 정권을 질렀다.
그 풍경 또한 흐뭇했다.
그렇게 한국군과 아르빌 주민 사이의 장벽이 부드럽게 허물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사단장이 대찬을 단독으로 불렀다.
사단장이 일개 병사를 따로 부르는 일은 매우 드물다.
담이 좋은 편인 대찬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똑똑똑, 노크도 절도 있게 한 대찬은 우렁차게 문 밖에서 소리쳤다.
“들어가도 좋습니까!”
“귀 안 먹었어.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 대찬은 안으로 들어가 척, 경례를 붙였다.
사단장은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둘이 있는 자리니까 딱딱하게 하지 말게. 부를 때마다 관등성명 대고 빽빽 소리 지르는 거 안쓰럽거든.”
“알겠습니다.”
“조 병장, 이번에 국방부에서 우수 장병 추천해서 올리라더군. 표창한다고.”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아 대찬은 사단장과 시선만 맞췄다.
“국방부장관 표창이 가장 높다는데, 거기에 자넬 추천할까 해.”
“…잘못 들었습니다?”
“잘못 듣지 않았어, 자네.”
혼란스러웠다.
‘어째서?’라는 의문이 마음속에서 바로 튀어나왔다.
사단장은 그 표정을 바로 읽어 냈다.
“자네가 씩씩하게 제안해 주지 않았나. 그리고 땡볕에서 올챙이 댄스 추느라 고생도 많았고.”
대찬은 그의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리고 병사가 표창을 받으면 제법 신선하잖나.”
“하지만 저보다 훨씬 수고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율동, 태권도 따위는 이미 기존에 있던 계획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왜…….
다소 성가시게 느낄 소지가 있어 대찬은 말 대신 침묵으로 물었다.
사단장은 피식 웃었다.
“상을 준다면 그저 넙죽 받으면 그만이지, 뭘 그렇게 토를 다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상은 제게 과분합니다. 과분한 정도가 아니라 저는 아예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지, 자격이 없지.”
사단장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찬을 바라봤다.
“그런데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내가 자네에게 상을 안기려는 이유를 알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사단장은 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담배 태우나?”
“아, 원래는 피우지만… 괜찮습니다.”
사단장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담뱃갑을 내밀었다.
“지지부진 입씨름하기 싫어. 한 가치 뽑아가.”
이에 대찬은 얼른 사단장의 명을 따르고, 라이터를 꺼내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사단장은 진한 연기를 뿜었다.
대찬은 졸지에 사단장과 맞담배를, 그것도 실내에서 피우게 되었다.
대찬은 담배 연기를 힘껏 빨아들이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사단장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도저히 맥이 잡히지 않았다.
그의 궁금증은 사단장의 입을 통해 이내 해소되었다.
“자네, 필래그룹 서청수 회장 알지?”
예상치 못한 이름이 등장했다.
대찬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고 있습니다.”
“자네 선배이기도 하지. 작년에 종횡무진 잘도 활약해 주었더군. 서 회장님이 자넬 많이 생각하더란 말이야.”
“전혀 몰랐습니다.”
특히 서청수 회장이 사단장에게까지 그런 언질을 할 정도일 줄은 더더욱 몰랐다.
“자네가 이라크로 파병된다는 소식을 보고받으시고 나한테 따로 연락을 하셨어. 각별히 대우해 달라고 당부를 하시더군.”
“…….”
대찬은 기쁘기보다는 불안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서청수의, 저의라고 부르는 게 맞을 의도가 궁금했다.
아무리 후배이고 자신에게 도움을 줬다지만, 재벌 총수가 군복무 중인 일개 대학생 나부랭이를 챙기는 건 이상했다.
사람은 계산적이고, 그중에서도 재벌 총수라는 사람의 계산적인 면모는 평균을 훨씬 웃돌 것이다.
단순히 보은 차원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앞으로의 이득을 생각했을 것이다.
서청수가 원하는 그 이득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대찬은 감을 잡지 못했다.
“내가 서 회장님하고 동향이라 이래저래 면식이 있는데, 직접 전화를 걸어서 챙기시니까 거절할 수는 없었네.”
대찬의 속이 뒤틀렸다.
고작 전화 한 통화로 다른 사람들의 공로가 물거품으로 꺼지는 상황이 역겨웠다.
“어떻게 챙겨 주나 고민하던 차에 자네가 모처럼 건수를 만들어 줬어. 병사가 작전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까지 했으니까 말이야.”
“…….”
대찬은 입을 닫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번 건은 아주 자네 공이 없다고 보긴 힘드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 알았나?”
“죄송합니다, 사단장님. 그럴 순 없습니다.”
큰 영광이었다.
당연히 사단장은 대찬이 앞뒤 재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영광도 영광이거니와 서청수 회장과 사단장 본인이 힘써 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거절하기 힘들 터였다.
그런데 대찬은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그럴 순 없다니? 회장님과 내 호의를 그렇게 내팽개칠 수 있나?”
“호의는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지만 이건 옳지 않은 일입니다. 따를 수 없습니다.”
사단장은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끄며 의자를 뒤로 젖혔다.
“전화위복. 화가 복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 전복위화. 복이 화가 될 수도 있어. 항상 모든 일에는 반대급부를 생각해야 해.”
호의에 먹칠을 했으니 따르는 불이익을 감수하란 뜻이었다.
그럼에도 대찬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이미 생각했습니다, 반대급부.”
“좋아. 나가 봐.”
사단장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대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붙이고 망설임 없이 방을 나갔다.
말한 그대로였다.
옳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단지 정의감 때문에 거절한 건 아니었다.
서청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대찬에게 상을 주기 위해 서청수가 지불한 대가는 전화 한 통화였다.
그걸 대찬에게 내밀면서 서청수가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찬은 알지 못했다.
가난한 나그네에게 씨암탉을 잡아 주는 집주인은 흔치 않다.
사위가 와야 씨암탉을 잡는다.
무슨 탈이 날지 모르는 음식을 덥석 받아먹을 순 없었다.
대찬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사단장은 대찬이 일어난 자리를 묵묵히 바라봤다.
“싸가지하고는.”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비서실장님, 나 구동식입니다. 더운 날에 고생이라고요? 허허, 군인이 이 정도 더위도 못 견뎌서 쓰겠습니까.”
사단장은 다시 담배를 물었다.
“거 조대찬 병장 있잖습니까. 사람 민망하게 고민도 안 하고 뺀찌를 놓던 걸요. 예, 회장님께 그렇게 전달해 주십쇼.”
그렇게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청수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어, 구 소장, 잘 지내지?”
“옙, 회장님.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서청수의 전화를 받는 사단장의 목소리는 일전과는 달리 바짝 군기가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