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10화
지금은 마강국과 같은 반이었다.
대찬은 그에게서 마강국에 대한, 서류에는 드러나지 않은 정보를 얻어냈다.
성공의 근간은 정보다.
대찬은 친구의 입술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교통사고로 부모님 잃고, 어머니가 생전에 몰래 사채를 써서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돼 버렸대. 그래서 공부에만 전념하지는 못하게 됐다더라.”
“사연이 있네.”
“그렇지.”
“그거 말고 더 알려 줄 건 없어?”
잠깐 고민하던 친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름 의리파이기도 해, 걔.”
대찬은 그 말만큼은 신뢰하지 않았다.
보통 주먹 자랑 좋아하는 녀석들 치고 의리 타령 안 하는 녀석이 없다.
하지만 정작 까 보면 속물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대찬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래? 의리파라고?”
“응. 걔 부모님 장례식에 갔던 친구들한테 이 은혜는 꼭 갚는다고 당부했었대.”
“근데?”
“실제로 나중에 곤란해진 몇몇을 도왔나 봐. 그런데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는 거야.”
대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도 갖고 의리파라고 하는 건 좀…….”
“모르는 소리 마. 독한 불량배한테 휘말린 친구 위해서 주먹도 대신 맞아 줬대. 걔 손목에 담뱃불 지진 자국까지 있어.”
“음.”
그 정도야 암흑 세계에서 말하는 의리 수준이었다.
대찬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그리고 할머니랑 둘이 사는 친구가 방학 때 일하러 저기 지방 내려갔을 때, 매일 그 친구 집에 가서 할머님 말벗도 해 드렸다는 거야.”
“그 정도야 뭐.”
역시 시큰둥했다.
친구는 어떻게든 대찬을 납득시키겠다는 듯 마강국에 대한 미담을 쏟아 냈다.
“다리 부러진 친구 집에 매일 가서 가방도 들어 주고 부축도 해 줬대. 두 달씩이나.”
이 말에는 대찬도 조금 놀랐다.
사실이라면 놀라웠다.
그 고릴라한테 이런 인간적인 구석이 있을 줄이야.
고등학생의 도량으로는 생각은 해도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웠다.
“사실이라면 대단하지만, 믿기 좀 힘든데.”
“믿어도 돼. 왜냐하면 그 친구가 나거든.”
“어…….”
대찬은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가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리파 마강국, 마침내 납득했다.
“그러니까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마. 그냥 멋모르고 주먹 휘두르는 정도는 아니니까.”
“멋모르고 휘두르던데.”
대찬은 자신의 멱살을 꽉 쥐던 마강국의 악력을 생각하고 싱겁게 웃었다.
이날, 대찬은 야간 자율 학습에서 빠졌다.
정규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는 마강국의 뒤를 밟았다.
마강국은 언제나 그랬던 듯 자율 학습을 빼먹고 어딘가로 향했다.
대찬은 그 뒤를 몰래 따라붙었다.
마강국은 정류장으로 가 버스에 올라탔다.
들킬 염려가 있어 대찬은 같은 버스에 타지는 못하고, 대신 택시를 잡았다.
“제가 따로 말씀드릴 때까지 쭉 저 버스 따라가 주시면 돼요.”
마강국이 내린 곳은 시 외곽의 한 공장이었다.
대찬은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그를 미행했다.
“황림정밀?”
마강국이 저 공장에 갈 만한 이유는 많지 않을 거다.
초행이라면 두리번두리번거리며 헤맸을 것이다.
그런데 마강국의 걸음은 익숙한 행선지를 향하는 폼이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들른 게 아니라 그 공장은 생활 공간의 일부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다.
“저기서 일하는 거네.”
대찬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는 오후 출근자와 교대하고 퇴근하는 근로자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저, 마강국이라는 학생이 여기서 일하나요? 저 강국이 친구인데요.”
“어. 지금 막 출근했다.”
근로자들은 대찬을 수상하게 보긴 했지만, 마강국과 같은 교복을 보고 선선히 대답해 주었다.
대찬의 추측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마강국이 황림정밀에서 일한다는 걸 확인한 대찬은 우선 집으로 돌아갔다.
황림정밀(대표이사 : 임대호)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맘껏 헤엄칠 수 있게 됐다고, 바야흐로 정보화 시대라고 호들갑을 떨던 시절이었다.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2000년의 인터넷은 30대의 대찬이 누렸던 것만큼 넓고 깊은 바다는 아니었다.
하지만 원하는 정보를 얻기에는 충분했다.
황림정밀의 대표이사는 임대호였다.
임유준과 관련된 서류를 보니 부친은 임대호라고 쓰여 있고, 모친은 황서임이었다.
그러니까 황림정밀은 임대호와 황서임의 성을 따서 지은 이름일 터였다.
아이스크림 파는 배스킨과 라빈스, 로션 파는 존슨과 존슨처럼.
“마강국이 임유준의 부친이 소유한 회사에서 일한다.”
대찬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마강국은 임유준의 눈엣가시인 나를 짓누르려고 했다.”
퍼즐은 완성되었다.
임유준은 마강국의 돈줄을 간접적으로 쥐고 그를 수족 부리듯 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마강국은 대찬의 일상에 타격을 입힐 것이다.
“손을 써야겠네.”
다음 날, 대찬은 등교하자마자 최재한에게 말했다.
“체육부장 아직 못 정했지?”
“응. 그래도 명색이 체육부장이니 볼이라도 좀 차는 애를 앉히려고 했는데, 다들 영 귀찮아하던데.”
“그럼 내가 한 명 추천해도 돼?”
“누구?”
대찬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 나왔다.
“마강국.”
“뭐?”
“추천 명단에 마강국 써.”
“…하려고 할까?”
“하게 만들어야지.”
최재한은 대찬의 말대로 마강국을 체육부장으로 추천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전하러 혈혈단신으로 마강국을 찾아갔다.
“저… 체육부장 해 주지 않을래?”
당연히 마강국은 즉각 반발했다.
최재한은 마강국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들었다.
저 험악한 인상과 거대한 덩치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됐다.
마강국은 당장이라도 최재한의 사지를 찢어 놓을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지금 장난하냐?”
“…해주면 안 될까?”
“안 해, 그딴 거. 주먹 한번 꽂았다고 내가 꼬붕처럼 보이냐? 어디서 개수작이야.”
“그, 그래도…….”
“꺼져. 조대찬 그 새끼한테 똑똑히 전해. 한 번만 더 물렁하게 보면 진짜 죽여 버린다고.”
매몰찬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아이 석상 같은 마강국 패거리들이 슬금슬금 최재한에게로 다가와 압박했다.
최재한은 쓴 침을 삼키며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꺼지랜다.”
최재한은 점심시간에 밥알을 깨작거리면서 말했다.
대찬은 대수롭지 않게 국을 떠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야? 뭐가 응이야?”
“꺼지라고 할 줄 알았어. 걔가 호구도 아니고 넙죽 받을 리가 없지.”
그 말에 최재한이 입을 삐쭉거렸다.
“그럼 왜 굳이 날 보내서 망신당하게 하는데?”
“곧 효과가 보일 거야.”
대찬은 그렇게만 말했다.
마강국이 격렬히 거부했지만, 대찬은 일방적으로 마강국을 체육부장에 올렸다.
당연히 마강국은 학생회에 나오지 않았다.
대찬은 그의 빈자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학생회에는 간부들을 위한 장학금이 마련돼 있었다. 각종 명목으로 적지 않은 장학금이 지급되었다.
간부들은 어차피 학생회장이 독식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대찬이 나서서 그 예상을 깼다.
“이 장학금, 체육부장 마강국에게 몰아주는 게 어떨까 싶은데.”
“…마강국?”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그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니.
간부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임유준이 특히 그랬다.
한판 제대로 벌인 사이다.
그런데 직접 나서서 마강국의 역성을 드는 대찬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강국의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여동생도 아르바이트로 돈 버느라 공부도 못한다더라.”
“…….”
“우리는 적어도 부모님 밑에서 먹고 자는 덴 지장 없잖아. 그런데 마강국은 지장이 많아.”
이런 식으로 말하면 듣는 입장에선 할 말이 궁했다.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내가 장학금을 받아야겠다고 아우성을 칠 수가 없었다.
대찬이 감정에 호소하기도 했지만, 괜히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가 마강국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것이 두려웠다.
게다가 어차피 자신의 몫이 대단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던 차였다.
간부들은 마강국에게 장학금을 몰아주자는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마강국에게 거액의 장학금이 돌아갔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돈을 얻게 된 마강국은 기쁘기보다는 당황했다.
최재한에게 쳐들어간 마강국은 다짜고짜 멱살부터 잡았다.
“너, 뭐 하는 수작이야.”
“뭐, 뭐가?”
마강국은 최재한이 학생회장이니 그가 장학금을 몰아준 장본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대찬이 얼른 나서서 마강국의 팔을 붙잡았다.
“번지수 잘못 찾았어. 내가 그러자고 한 거니까.”
그 말에 마강국은 최재한의 멱살을 놓더니 대찬을 향해 눈을 희번덕거렸다.
“이러면 내가 고맙습니다, 절이라도 할 줄 알았냐?”
“아니.”
대찬의 태연한 반응에 마강국은 도리어 약이 올랐다.
그는 이번엔 대찬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근데 왜 이따위 수작을 부리냐고.”
대찬은 마강국의 멱살 쥔 손을 뿌리쳤다.
“네가 임유준한테 돈줄 잡혀서 이러는 게 불쌍해서 그랬다, 왜.”
“이런 씨……! 지금 값싼 동정 하는 거냐?”
“값싼 동정 맞아. 내 돈 들어간 것도 아니니까 공짜 동정이지. 나는 내 맘대로 했으니까 너도 네 맘대로 해.”
“뭐?”
“그 돈 받기 싫으면 최재한 계좌로 고스란히 돌려놔. 그러면 되잖아?”
“…….”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그러겠다는 말이 차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네 동생 안 해도 될 고생 시키지 마.”
“이 새끼가……!”
마강국은 여전히 으르렁거렸지만 일전과 같은 맹렬함은 없었다.
기세가 사그라졌다.
대찬은 마강국에게 눈짓만 한 번 하고는 그대로 자리를 떴다.
마강국은 어쩐지 부끄러웠다.
자신이 성질을 내는 만큼 대찬도 받아쳤으면 이러진 않았을 거다.
임유준에게 사주를 받아 일면식도 없는 대찬을 두들겨 패려고 했다.
그런데 두들겨 패기는커녕 당해 버렸다.
그럼에도 대찬은 그 사실을 바깥에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다.
악연으로 시작했음에도 대찬은 마강국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장학금을 떠먹여 주었다.
그러고도 생색내지 않았다.
마강국 그게 또 분해서 꽤액 발광했다.
그럼에도 대찬은 덤덤했다.
마강국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는 대찬을 등지고 뚜벅뚜벅 멀어져 갔다.
대찬은 교복 넥타이를 살짝 풀며 한숨을 쉬었다.
“저 덩치는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네.”
대찬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마강국을 여동생 마강설이 맞았다.
“오빠 왔어?”
“어……. 그런데 너 알바 갈 시간 아니야?”
“나 알바 그만뒀어!”
마강국의 눈이 커졌다.
“왜?”
“오늘 보니까 꽤 큰돈 들어왔던걸.”
“그래도 장학금만으로 계속 버티기엔…….”
“응? 오빠가 재단에 후원 신청 한 거 아니었어?”
“뭐?”
“오늘 어떤 아저씨가 와서 무슨 재단에서 나왔다고, 앞으로 재단에서 꾸준히 생활비 지원 이뤄질 거라고 하던데?”
“…….”
마강국은 둔기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대찬의 소행임을 직감했다.
“아무튼 진짜 잘됐어! 나도 오빠도 더 고생 안 하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잖아. 이제 오빠도 돈 걱정 좀 덜었으니까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해야 된다?”
마강국은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마강국은 학생회 정기 회의에 출석했다.
학생회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동기생의 등장에 간부들은 모두 긴장했다.
마강국은 사찰의 사천왕상처럼 눈만 희번득 뜨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찬은 자리를 채워 준 것만으로도 피식 웃었다.
정기 회의 때마다 대찬과 임유준은 사사건건 대립했다.
“과학실험부에 예산 모자라대. 30만 원만 더 써.”
임유준이 명령하듯 말하자 대찬은 바로 퇴짜를 놨다.
“예산 안 모자란 곳 없어. 이미 과학실험부 기자재 구입 명목으로 다른 동아리보다 20만 원 더 가져갔어. 안 돼.”
원혜미와 친한 여자애가 과학실험부 회장이란 사실을 대찬은 알고 있었다.
‘이것들이 어디서 벌써 정실주의적 개수작을 부리고 있어.’
대찬은 헛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