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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1화 (1/556)

난 할 수 있어 1화

“우웨엑! 크헉!”

대찬은 전봇대를 붙들고 토했다.

반쯤 소화된 음식물이 입 밖으로 뿜어졌다.

뇌가 알코올에 잠긴 듯 어지러웠다.

대찬의 몸이 비틀거렸다.

돌아서서 가려다 다시 전봇대를 붙들고 우웨엑.

남에게도 역겹고, 나에게도 역겨운 짓거리를 계속했다.

“헉, 헉…….”

대찬은 역한 냄새가 나는 날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그러다 넋이 나간 채로 멍하니 서서 허공을 바라봤다.

꼴이 가관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대찬에게 언짢은 시선을 던지며 지나갔다.

언제부터 이렇게 우스운 꼴이 되었는지.

비식비식 마른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거처, 회사 근처의 구식 원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술 때문에 고생한 건 신입 사원 때부터였다.

술 좋아한다고 떠벌리면 점수 좀 딸까 싶어 허세를 부렸다.

그랬더니 온갖 술자리에는 다 불려 갔다.

실제로도 주량이 나쁘지 않았지만, 야근과 야근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회식 때마다 과음을 하자 몸이 견디지 못했다.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났다.

건강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대찬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대로 퀴퀴한 원룸으로 들어가려니 다시 욕지기가 올라왔다.

옥상으로 올라가 찬바람을 맞기로 했다.

건너편의 10층가량 되는 상가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악연으로 점철된 건물이다.

건물은 죄가 없다.

죄는 사람에게 있다.

저 건물에서 대찬에게 지독하게 굴었던 상사가 그 장본인이었다.

“유백기.”

대찬은 그 사람의 이름을 증오를 담아 발음했다.

그의 무기력한 시선이 건너편의 건물을 응시했다.

1층에는 유백기가 좋아하는 청국장집이 있었다.

신입 때부터 숱하게 끌려갔는데, 심할 때는 한 달 내내 청국장만 먹기도 했다.

과음으로 한참 게워 내고, 다음 날 점심에 먹는 청국장은 어쩐지 토사물의 느낌이 나 유독 역겨웠다.

2층에는 유백기가 좋아하는 당구장이 있었다.

당구에 취미가 없던 대찬은 수도 없이 유백기에게 깨졌는데, 그때마다 모욕에 가까운 조롱이 따랐다.

장난으로 휘두른 큐대에 앞니가 깨진 적도 있었다.

그에 대한 보상은 언제나 미안해, 세 글자가 전부였다.

3층에는 유백기가 좋아하는 술집이 있었다.

신입 사원은 무조건 술이 세야 한다며, 훈련시켜 주겠다는 미명하에 대찬에게 소주 3병을 한 번에 들이켜게 했다.

그날 대찬은 내장까지 토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구토를 했고, 다음 날은 칼날로 창자를 에는 듯한 숙취에 시달렸다.

지하에는 유백기가 좋아하는 단란주점이 있었다.

대찬은 자꾸 달라붙는 도우미가 싫다는 명분으로 완곡하게 사양했다가, 너 혼자 잘난 선비냐며 술 취한 유백기에게 정강이를 얻어맞았다.

그럼에도 거푸 사양하니 재떨이가 날아오기도 했다.

9층에는 대찬이 신입 사원 시절 살던 고시텔이 있었다.

유백기가 야근하는 날이면 십중팔구 이곳으로 찾아와 침대를 차지했다.

대찬은 찬 바닥에 요를 깔고 자거나, 아저씨 드르렁 코 골고 아줌마 깔깔거리는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잤다.

그 빌어먹을 고시텔을 떠나 지금의 원룸으로 옮긴 게 2년 전이었다.

“하…….”

대찬은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물었다.

욕지기가 다시 올라와 장초를 그대로 비벼 껐다.

아침은 어김없이 밝았고, 예외 없이 출근해야 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필래유통 본사 사옥 15층.

그곳이 대찬의 일터였다.

필래유통 로고가 새겨진 끈에 사원증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거기에는 대외협력팀 대리 조대찬이라고 적혀 있었다.

10년 전에 촬영한 사원증의 대찬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했다.

하지만 지금의 눈은 좀비처럼 퀭했다.

“죽겠다.”

머리가 핑 돌았다.

퓨즈 나간 전구처럼 대찬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앞의 모니터 화면이 3개로 보였다.

빌어먹을 보고서가 그의 정신을 좀먹었다.

벌써 세 번째 퇴짜를 맞았다.

대연엘리베이터 시설 관련 업무 간담회 결과 보고서

일자 – 2019년 5월 9일

장소 – 사내 제2소회의실

안건

-필래백화점 하남점 내 승강기 설치에 관한 세부 조정

-장기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 논의.

-전국 필래백화점 지점 내 시설에 대한,,,,,,,,,,,,,,,,ㄴ미엄널ㅇㅎ아ㅣ;ㅍ퍼ㅈ고허ㅟㅏᅟᅥᆼ;ㅁ

그림을 망친 화가가 도화지를 구기듯 대찬은 주먹으로 자판을 뭉갰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지막 글자에 가 있는 커서는 대찬을 재촉하듯 규칙적으로 깜빡거렸다.

그 깜빡거림에 정신이 더 혼미해졌다.

진득한 코피가 흘렀다.

대찬은 급히 티슈로 틀어막았다.

금세 티슈가 코피에 푹 젖었다.

포화 상태가 된 티슈에서 핏물이 뚝뚝 흘렀다.

“죽겠다.”

대찬은 띵해지는 이마를 짚었다.

잠을 쫓으려고 커피를 마셨다.

알코올에 시달린 몸에 카페인을 부었다.

숨이 가쁘고 맥박이 불규칙했다.

속이 쓰렸다.

바람을 쐬려고 옥상으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이고 훅 빨아들이니 매캐한 연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뇌혈관이 조여 왔다.

대찬은 다 피우지 못하고 담배를 버렸다.

“죽겠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귀에는 찡- 하는 이명이 들렸다.

눈이 자꾸 감겼다.

간신히 보고서를 완성했다.

유백기 차장에게 가져가 들이밀자 몇 줄 읽지도 않고 불호령이 떨어진다.

“야, 이 새끼야.”

이럴 줄 알았다.

보고서가 싫은 게 아니다.

저 새끼는 그냥 내가 싫은 거다.

“이걸 보고서라고 올려? 네가 신입 사원이야? 이따위 보고서를 지금 읽으라고 올린 거야!”

“죄송합니다.”

“다시 해!”

유백기 차장은 보고서를 대찬의 면전에 집어던졌다.

파라락, A4 용지들이 살찐 비둘기처럼 날았다.

널브러진 종이들을 주워 대찬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죽겠다.”

일머리라고는 죽어도 없는 신입 사원이 주춤주춤 다가오는 게 뒤통수로 느껴진다.

그는 쭈뼛거리다가 대찬에게 말했다.

“조 대리님, 저 복사기…….”

뒷말은 하지 않아도 알았다.

또 종이가 먹혔겠지.

벌써 일곱 번째다.

“알았어. 내가 지금 갈…….”

대찬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한 번에 일어나지 못했다.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대, 대리님!”

신입 사원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린다.

정면으로 대찬을 보는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뭐야, 왜 그래.”

“저… 코피…….”

“코피?”

대찬은 무의식적으로 슥, 인중을 닦았다.

검지와 중지에 검고 끈적끈적한 피가 보였다.

대찬은 픽 웃었다.

“죽겠다.”

“제, 제가 휴지 가져올게요……!”

휴지가 아니라 의무실로 데려가야지.

휴지는 바로 내 앞에 있잖아.

저렇게 일머리가 없다.

순간 심장이 세게 조였다.

머리가 띵했다.

“헉!”

눈알이 튀어나올 듯 뻐근했다.

사막처럼 마른 입술에 걸쭉한 코피가 흘렀다.

몸이 휘청거렸다.

“뭐야? 저거 왜 저래?”

유백기 차장이 허리에 손을 얹고 눈살을 찌푸렸다.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저 표정은 지랄한다, 딱 그렇게 말하고 있다.

대찬의 몸이 벌목당하는 나무처럼 무너졌다.

유백기 차장의 얼굴이 기울어져 보인다.

“개새끼, 유백기 개새끼…….”

대찬은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개새끼, 너 때문에 내가 이러다…….”

오장육부가 뒤집혔다.

“이러다 죽겠다…….”

쿵.

대찬은 그대로 쓰러졌다.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검고 끈적끈적한 코피가 바닥 타일의 무늬를 따라 흥건하게 고였다.

“대리님, 괜찮으세요? 대리님!”

신입 사원이 발을 동동 구르며 대찬을 불렀다.

다른 세계에서 외치는 듯 아득하게 들렸다.

“뭐야, 왜 저래!”

유백기 차장의 목소리도 들렸다.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대찬을 둘러메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즈음 의식이 차단됐다.

대찬이 다시 눈을 뜬 건 구급차 안이었다.

코와 입이 산소마스크로 덮여 있었다.

대찬이 무거운 눈꺼풀을 뜨자 자신을 둘러싸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얼굴들이 보였다.

“대리님! 정신 좀 드세요?”

“저희 누군지 아시겠어요?”

대찬은 힘겹게 눈만 감았다 떴다.

몸이 급격히 쇠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의식과 감각이 차단되기 시작했다.

대찬을 죽음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눈을 뜨게 된 건 세상과 이별 키스라도 나누라는 신의 배려일까.

그렇다면, 그 뜻대로 아름답게 작별해야지.

대찬은 그렇게 결심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 구석에 유백기 차장이 세상 모든 귀찮음을 짊어진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누구 때문인데.

분노가 치밀었다.

대찬의 피가 급하게 돌았다.

아름다운 작별, 애틋한 이별 키스.

개나 줘 버려!

대찬은 주먹을 꽉 쥐었다.

링거를 맞은 팔의 혈관이 터질 듯이 아파 왔다.

그런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분노가 치밀었다.

피가 급하게 도니 온몸에 기운이 왕성했다.

요리사가 송로버섯 기름을 쓰듯 찔끔찔끔 아껴 쓰던 마지막 기운을, 사춘기 소년의 세찬 오줌발처럼 한 번에 소모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심지만 남은 촛불이 기름을 훅 빨아들여 마지막으로 밝게 타오르는 것과 같았으니, 사자성어로는 회광반조였다.

대찬은 그 기운을 ‘엄마, 사랑해요.’ 같은 사랑의 말 대신 유백기를 향한 증오를 뿜는 데 쓰기로 결심했다.

대찬은 산소마스크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그러자 구급대원들이 당황했다.

“이, 이러시면 안 돼요!”

대찬은 그들과 실랑이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유백기 차장을 향해 외쳤다.

“우리 친애하고 존경하는 유백기 차장님!”

이름이 불린 유백기 차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야…….”

유백기 차장의 얼떨떨한 얼굴에 대찬은 빽 소리를 질렀다.

“유백기 이 개새끼야!”

“야! 너 뭐라고 했어!”

유백기 차장은 대찬의 얼마 남지 않은 생명보다, 당장 면전에 쏟아진 욕설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너 때문에 엿 됐잖아, 이 개새끼야!”

“이, 이놈이 진짜 미쳤나.”

술주정 같은 행패에 유백기 차장은 동요했다.

대찬은 유백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유백기 차장의 번드르르한 이마에 이마를 갖다 댔다.

그의 독한 향수 냄새가 훅 끼쳤다.

대찬은 유백기 차장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목소리에는 독기가 다분했다.

“유백기 네 새끼가 나 죽인 거야. 알아? 맨날 야근에 술 처먹이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고, 뻑하면 조인트 까고, 주말에 불러내서 일 시키고! 너 때문에 죽는 거라고.”

“뒤질 거면 곱게 뒤지지, 이 새끼가…….”

“곱게 뒤지고 싶어도 네놈 새끼가 이따위니까 곱게 못 뒤지는 거야!”

대찬은 유백기 차장을 확 밀쳤다.

유백기 차장의 뒤통수가 앰뷸런스 차창에 쾅 부딪혔다.

“이, 이 새끼가…….”

목소리가 어쩐지 다소 주눅이 들었다.

대찬은 그렇게 대거리를 하는 와중에도 급격히 힘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대찬은 침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숨이 가빴다.

그는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미친 사람처럼 외쳤다.

“유백기는 왕벌노래클럽 오 마담이랑 바람피운다! 금요일마다 회사 앞 오렌지모텔에서 붙어먹는다! 토요일은 풍뎅이노래방 박 마담이다!”

동료 직원들의 눈이 커졌다.

동승한 여직원이 유백기를 짐승 보듯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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