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73화 (에필로그1) (173/175)

에필로그, 뇌제가 돌아왔다.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Epilogue.

한때, 뜨겁게 타올랐던 그 회색 잿더미 위로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많은 눈에 도시 전체가 파묻힌 것만 같은 전경이었다.

그 속에서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도 자연이 깎아낸 산맥과 드넓은 숲도 그 형체를 잃고 평등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지평선 그 너머까지 이어지는 잿빛 평야와 그 위에 수 놓여 거울처럼 태양광을 난반사 시키는 흰 서리뿐.

이처럼 경이로운 광경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필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드넓은 평야를 우리 인류는 약 넉 달 전까지만 해도 그리 불렀으니까.

‘미국’이라고 말이다.

-저벅.

내딛는 걸음에 맞춰 회색 잿가루가 날린다.

아주 약간에 바람에도 사방 천지에 흩날리는 터라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고 오지 않은 자는 숨을 쉴 수도 없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오롯이 재.

‘종말의 화룡’이자 ‘드래곤 로드’의 호칭을 사용하던 그 마지막 재앙의 흔적뿐이었기 때문에.

-저벅.

캐나다의 올드 몬트리올에서 시작된 그 불길은 끝내 남미 최남단에 위치한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마저 뒤덮었다.

그럼에도 두 성녀로부터 발로한 기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화룡’은 결국, 일을 모두 끝마치고서 퍽 여유로운 휴식마저 취하고 돌아온 ‘뇌제’를 마주했고.

-단 한 번의 검이었습니다.......!

그 전투를 멀리서나마 목격한 대한민국의 공군 장교의 생생한 인터뷰는 다시금 살아남은 인류를 뜨겁게 만들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불꽃과 날갯짓 한 번으로 헤일을 일으키는 그 종말의 화룡을...! 뇌제께서는! 단 한 번의 검으로 양단해버리셨습니다!

뇌제는 다른 재앙들마저 제멋대로 되살려내 권속으로 부리던 그 압도적인 ‘전율’을 끝내 꺾어낸 존재다.

그 다섯 재앙의 정수를 온전히 한몸에 담아낸 뇌제는 대체 얼마나 더 강해진 것인가.

인류 전체에 만연해 있던 바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장교는 인터뷰를 통해 제시했던 것이다.

Lv. 110.

시스템 메시지를 토대로 표기되는 그 모든 수치들의 단위 수에서부터 ‘억’ 소리가 나오는...

그 ‘일검절용’의 신화를 통해 뇌제는 세계의 그 어떠한 인류도 부정할 수 없는 전설이 되었다.

하물며 그가 어찌나 치열하고 처절한 격전을 통해 그 레벨을 이룩한 것인지 9할의 인류는 직접 목도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언어를 통해 전해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뇌제가 바로,

대성녀와 드래곤 슬레이어 그리고 과거 푸른 마탑의 수장이었던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뒤를 잇는 이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되었음을 말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승리를 거둔 직후,

전세계의 9할을 눈앞에 둔 그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우레와 같은 함성.

그 압도적인 소리와 함께 올곧게 바로 선 두 성녀와 한 헌터는 모든 전쟁의 종식을 선언했다.

-저벅.

게이트라는 혼란을 틈타 부정한 방법으로 전세계 2할의 부를 독점하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흑왕.

그리고 ‘흑왕파’의 핵심 세력들은 모두 숙청을 면하지 못했다.

그들이 독점하고 있던 부는 모두 버려지고 황폐해졌던 중동의 외곽지와 존재 자체가 말소된 아메리카 대륙의 복원에 사용되기로 하였다.

그로부터 이틀 후, 칼루스 궁전 지하. 그 가장 밑바닥에서 발견된 두 구의 사체.

뇌제의 진정한 가치를 이른 시기에 알아본 흑태자 칼레드와 그의 모친은 발견되어 적법한 절차에 맞춰 장례를 치러주었다.

뒤늦게 뇌제의 그림자가 되길 자처했던 ‘검성의 제자들’ 중 검왕 류자키를 제외한 모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파되었고.

시종일관 뇌제의 곁을 지키던 ‘번개 중대’의 창단 맴버들 중 절반이 죽고 말았다는 소식 또한 그 시류에 맞춰 세계 전역에 알려진다.

-저벅, 저벅.

그렇게,

승리에 대한 뜨거운 환희도 잠시.

세계는 다시금 실종자와 부상자 그리고 용맹하게 새벽의 이슬이 되어 스러져간 이들의 넋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약 열흘의 시간 동안 전세계에서 눈물이 마르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과거’를 확실히 톺아본 뒤에야 사람들은 하나, 둘 ‘지금’을 돌보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끝내 ‘미래’를 꿈꾼다.

‘전율하는 사성’이 ‘공간’을 비틀어 불러들인 이계(異界)는 마치 신기루와 같이 사라졌고, 남은 헌터들은 자신의 스킬과 마력을 전쟁을 위한 무구가 아닌, 인류를 위한 도구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벅.

세계는 그렇게 나아간다.

지금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잿더미만이 가득한 아메리카도.

언젠가, 미국의 복원을 꿈꾸는 올리비아 스트라우스와 닿아 꽃을 피울 것이며, 다른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벅, 저벅.

영원히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던 태양이 여명을 빛내며 고개를 들 듯.

불그스름한 황혼과 새카만 밤을 이겨낸 인류는 전보다 탄탄하게 다져진 다리와 굳건한 팔로 이룩해낼 것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과 오늘보다 조금 더 전진하는 내일을.

이제 공든 탑을 무너뜨릴 ‘적’은 없으니.

분명 가능하겠지.

-저벅, 저벅... 텁!

그런 믿음과 깊은 인류애를 가슴에 품고 있는 장본인.

뇌제는 자신의 발치에 무언가 걸리는 것을 느끼고는 그제야 머리에 칭칭 감고 있던 천을 들추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푸른 안광은 번뜩였고 아주 잠시 부릅뜬 눈빛에 청녹색 광채를 가진 아카식 레코드 1번. ‘공간’은 응한다.

-드드드드드드드!

청녹색 광휘와 함께 떨리는 대지.

서리와 재로 굳어 있던 땅은 일순간에 솟아올라 허공에 뜬 산이 된다.

이윽고, 그 밑.

산 하나는 될법한 양의 흙과 잿더미를 걷어낸 그 아래에 존재하는 건.

“드디어 찾았군.”

다름 아닌 아카식 레코드라는 열쇠를 사용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

아카식 레코드의 유적이었다.

***

내가 ‘당했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공교롭게도 이미 모든 일이 끝난 뒤였다.

나는 이미 스스로가 ‘절대악’이길 굳게 다짐했던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를 ‘용서’한 후였고.

-......그대가, 곧 정의다.

이미 그의 입을 통해 나 자신이 ‘절대선’임을 입증받은 뒤였다.

내가 어찌하여 평생의 숙적이라 여겨왔던 ‘불사왕’을 용서하고 하물며 그의 유지를 잇기까지 하였는가.

그 계기를 돌이켜보면 퍽 소름이 돋는다.

불사왕의 재앙화.

그 재앙화를 예견했다는 듯 나타난 금안(金眼)의 이준학 준장.

마찬가지로 금안(金眼)을 번뜩이며 내게 1452회의 세계를 모두 보여준 ‘기억하는 자’.

마지막으로...

그 ‘기억하는 자’의 뒤에서 온전한 정신과 안정된 혼령의 형태로 나타난 자.

바로, 프리드리히 파울라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최초로 구원받은 세계의 대성녀. ‘다나 메이어’.

나에게 있어 ‘불사왕’은 어디까지나 복수의 대상이었다.

시뻘건 원망과 아무리 타올라도 활활 그 열기를 더해갈 뿐이었던 원한의 대상이었단 말이다.

허나, 나는 초대 회귀자 노을의 생을 통해...

아니, 2대 회귀자 ‘제이슨 스트라우스’.

3대 회귀자 스스로 절망한 ‘레이먼드’.

4대 회귀자 잊혀진 바티칸의 검, ‘레오’.

5대 중원의 별, 검성 ‘라오 위’.

6대 악마사냥꾼 ‘블라디미르’ 등등...

수많은 회귀자들의 일대기들을 통해 알게 된다.

회귀자로서 겪어야만 하는 그 끔찍한 고독과 그 고독을 이해해주는 ‘이해자’의 가치를.

만일 그런 선행 과정이 없었더라면 나는 끝까지 ‘불사왕’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에게서 나 자신의 편린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용서보다는 칼날을.

공감과 설득보다는 그저 힘으로 놈을 짓누르려 들었겠지.

그렇게, 육신도... 끝내 그의 영혼마저도. 성검 아스칼론의 ‘심판’으로 무참히 도륙을 내는 것으로 복수를 끝맺으려 했을 것이다.

‘다나 메이어’는 아마 바로 그러한 ‘파멸’로부터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를 구원하기 위해 움직였던 것이리라.

자신을 사랑했기에 세계를 등진 자를, 그녀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지켜내기 위해 평화의 안식을 등졌던 것이다.

“참...”

지나칠 정도로 크게 그려진 그림에 소름이 돋는다.

하물며 오직 ‘나’를 위해,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현재가 아닌 ‘역사’에 파고들었다는 사실 역시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한국의 헌터 협회장이며 동시에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기억하는 자’.

그가 등용한 이준학 준장.

그리고, 그 이준학 준장이 등용한... 뇌제.

머릿속으로 퍼즐 조각을 짜 맞춰 가면서도 완성되어가는 그 정밀함에 또다시 놀란다.

-덜컥! 치이이이익!

이윽고 긴 상념의 끝에서 열리기 시작하는 거대한 문.

아카식 레코드 4번. ‘무의식’.

그 열쇠를 사용할 수 있는 유적이 지금,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낡은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띵!

몇 번이고 깜빡이던 빛이 익숙한 소음과 함께 환하게 빛을 낸다.

드러난 지하 대공동은 지난 아카식 레코드 3번. ‘시간의 유적’보다 더 넓었다.

허나, 그 유적에는 텅 빈 공간과 혈마라는 수호자 한 사람만이 덩그러니 서 있던 것과 달리...

이 유적에는 그 수를 다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의 ‘관’들이 줄지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키보다 큰 장검을 품에 안고 있는 한 여인이 있다.

“......결국, 여기까지 왔나.”

그 여인은 반달처럼 뜬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고.

그 여인의 안광은 너무나도 선명한 금빛이었다.

“예. 왔습니다. 에이바.”

그녀의 이름은 에이바 리.

대마법사, 올리비아 스트라우스와 무왕, 스티븐 클라크와 같이 세계 랭킹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던 자.

거짓된 국적과 치밀하게 짜여진 가짜 역사로 칭칭 둘러싸여 있던 말 그대로의 ‘신비’.

세계 랭킹 5위. 신비의 에이바였다.

허나, 나는 그녀가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는 그 금안(金眼)을 통해 지금 저 여인이 단순한 ‘에이바 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니...”

이준학 준장에게서도,

기억하는 자에게서도,

하물며...... 이따금 내게서도 그 빛을 밝히던 찬란한 금빛.

“지금은 에이바가 아니라. 이렇게 불러야 하는 건가...... 나의 주신님을 기꺼이 돌보아주었던 오랜 벗. ‘십자가에 못 박힌 자’.”

그 금빛의 정체는 바로......

바티칸의 반신이자 이 시스템을 고안하고 또다른 반신과 함께 끝내 창조해낸 태초의 ‘설계자’.

‘전지’의 반신이었다.

내가 그 호칭을 당당히 논하자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당황한 것인지 잠시 멈춰 선 채 말이 없었다.

“너무도 많은 ‘세계’를 목도하였기 때문인가. 그게 아니면, 너무도 많은 ‘고민’을 거듭했기 때문인가...”

이윽고 입을 연 그녀의 목소리는 적잖은 당황으로 물들어 있다.

‘전지’한 반신마저도 내가 자신의 정체를 파악해내리라고는 끝내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뭐. 결국, 묻는 자는 나이며 그대는 답하는 자이니. 변할 것은 없지.”

-스윽.

다만,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돌아온 금안의 에이바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동시에, 지금껏 그 어떤 헌터에게서도 발현된 적이 없는 청녹색의 오러가 이 지하 대공동을 가득 채울 듯 빛을 발했다.

그러자, 나의 품속에 있던 네 개의 ‘아카식 레코드’는 부름에 답하듯 빛을 번뜩이며 제멋대로 허공에 날아올랐고.

-철컥!

-절걱!

-터억!

-착!

네 개의 열쇠는 일제히 에이바가 서 있던 거대한 문의 각기 다른 열쇠구멍을 파고든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이윽고, 청녹빛으로 가득 찬 문이 제멋대로 열리니.

이 ‘무의식의 유적’ 너머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딩, 딩.

그건, 언젠가 들었던 그 종소리였다.

소리는 가까웠지만, 결코 귀에 거슬리는 일이 없고. 감았던 눈을 뜨자 이미 세계는 따스한 노란 볕이 드리운 초원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연둣빛 초원을 쓰다듬듯 흐른다.

그렇게 격변한 전경에 그리고 ‘무의식’의 이끌림에 따라 넋을 놓고 있길 수초.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서 드디어 다시 이곳에 닿았구나. 운명을 개척하는 자여.”

그 목소리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나의 옆에서 들려왔다.

이에 내가 고개를 돌리자 과거에는 끝내 빛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았던 그의 얼굴이 보인다.

소년.

반신은, 내가 ‘기억하는 자’를 통해 보았던 1452회의 세계 속 바로 그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구우우우우우웅!

그저 이곳에 그가 거하는 것만으로도 넘쳐 흐르다 못해 세계를 불태울 듯 뜨거운 광휘를 번뜩이는 ‘금빛’.

이 압도적인 존재감이 증명하고 있다.

다름 아닌 이 소년의 모습이야말로 수많은 전승과 신화 속에서 언급되던 바로 그 ‘십자가에 못 막힌 자’의 무구한 진체(眞體)라는 것을.

“별의 운명을 뒤바꾼 ‘전율’로부터, 이제껏 존재한 적 없는 새로운 운명의 궤적을 개척해낸 자여. 아버지와 나와 성령은 진심으로 그대를 축복하리니...”

마치 기도를 하듯.

가볍게 양손을 모은 소년은 눈을 감았고 그 의지를 따라 이 드넓은 세계는 요동친다.

푸르른 빛이, 무형의 빛이, 녹색 빛이 이곳의 그와 나를 감싸듯 아니, 축복하듯 넘실거린다.

그건, 수천의 오로라가 걸린 하늘에 수백의 은하수가 흐르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이 광경을 그저 낭만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만일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눈앞의 ‘진체(眞體)’를 마주했다면 그는 찰나의 틈도 없이 먼지 조각이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그만큼의 위험.

허나, 동시에 그런 압도적인 ‘신위’의 응집체이기에 이루어 낼 수 있는 거대한 기적.

나는 바로 그것을 찾아 이곳에 도달했던 것이다.

“이젠 밝혀주겠나. 그대는 어찌하여, 진실한 평화를 마주한 세계를 뒤로하고 이렇게, 무대 밖의 존재인 나를 찾아온 것인지를 말이야.”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가진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며 묻는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무게감을 느낀다.

그 눈에 휘감긴 감정은 의문과 믿음 그리고 아주 작은 불안이었다.

이윽고 나는 그런 ‘반신’을 정면에서 응시하며 입을 연다.

“...많은 꿈이 있었다.”

귀신이라 불리던 소년은 단 하룻밤의 달콤한 잠을 꿈꾸었고,

수통이라 비웃음당하던 청년은 자신의 노력이 배반당하지 않는 세계를 꿈꾸었으며,

재앙이라 불리던 남자는 사실,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을 뿐이라는 아주 당연한 꿈을 꾸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나도 많은 꿈이, 너무나도 많은 희망이 짙은 안개 속에서 사라져갔고 수많은 필생은 꿈을 잃었다.”

꿈을 꾸지 않는 것이 당연한 세계가 되었다.

마나라는 이형의 기이가 만연한 세계에서 도리어 사람들은 평범을 꿈꾸었다.

허나, 도를 넘어서는 역경과 끝도 없이 밀어닥치는 고난은 어쩌면 가장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그 꿈들을 포기하게 했다.

“그러나 ‘이 세계’는 이룩하지 않았더냐. 이제껏 존재해왔던 그 어떤 세계보다도 아름다운 ‘자유’와 ‘찬란’한 평화를. 세계는 이제, 다시금 꿈꿀 수 있는 오늘을 맞이한 게지.”

‘반신’은 조금 전보다도 더 깊은 의문의 눈빛으로 이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많은 희생이, 숭고한 유언이 있고 드디어 세계는 꿈을 꿀 자유를 얻었다.

그런 거룩한 구원을 이룩해낸 장본인이, 어째서 자신을 찾아온 것인가.

하물며 무언가 ‘큰 운명’을 뒤바꾸기 위한 밑거름. 네 개의 ‘아카식 레코드’를 모두 모아오기까지 하면서.

“그러한 오늘을 이끌어낸 건, 바로 그대가 아니었더냐. 인류의 창이자 세기의 구원자. 뇌제 이건우여.”

그런데,

어째서 이건우는 저토록 불만족한 얼굴이란 말인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전지’의 반신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반응과 형태에 흥미와 불안을 동시에 느끼며 그리 말하였고.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뇌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나는......”

그는 단 한 번의 회귀로 세계를 구원한 사상 최고의 회귀적응자.

허나,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생과 사의 무게를 생생히 실감하며 ‘회귀’를 도구처럼 여기지 않던 자.

최초로 ‘회귀’를 거부하던 ‘회귀자’였단 말이다.

그런 그가, 지난 석 달간의 긴 사색과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회귀하겠다.”

아무리 ‘전지’한 반신이라 할지라도 두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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