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71화 (171/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71화.

기억의 편린 속에서, ‘기억하는 자’는 말한다.

-줄곧 그대를 지켜보며, 지금의 순간을 애타게 기다려오셨던 분이 계신다네.

그건,

총 106회.

시간으로 따지면 8천하고도 2백 년에 달하는 시간을 살아온 살아있는 망령.

비극을 떠안고 태어난 존재.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모든 삶을 목도한 직후의 일이었다.

‘기억하는 자’가 처음으로 존칭을 붙여가며 불러낸 존재...

그건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존재.

그녀는 다름 아닌.

-반갑습니다.

은빛 머리카락과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진...

-저는 1375회차. 즉, 모든 세계 중에서 최초로 ‘구원’을 이룩해낸 세계의 대성녀. 다나 메이어라고 합니다.

지금의 불사왕을 존재하게 한 근원.

의 세계에서 사명을 다하고 생을 끝마친 바로 그 다나 메이어였다.

***

후읍─────────────

긴 숨이 찢어진 폐를 피로 물들인다.

으스러진 심장은 더이상 피를 움직이지 못했고 그건 이미 자신이 ‘생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더없이 확실한 증거였으나...

하아─────────────

내쉬는 숨에 맞춰 나는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육신은 분명 빛과 혈류 앞에 산산조각이 났었다.

그건, ‘죽음 수확자’들의 왕인 자신조차 부정할 수 없는 ‘소멸’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나는 재앙도, 불사왕도 아닌 그냥 ‘나’로서...

<재앙, ‘전율하는 사성’은 신위를 불태워 관리자의 권능을 발현합니다.>

내가 가진,

지금껏 그 모든 회귀를 거치며 드디어 손에 넣은 그 ‘모든 것’.

‘신위’를 불태우며 일어선다.

<고쳐 쓰여진 금제-2. ‘홀로 이치를 거스르는 세계’는 ‘관리자’의 의지대로 ‘운행’됩니다.>

‘이치’도, ‘순리’도 스스로를 불사르는 ‘전율’을 따른다.

‘홀로 이치를 거스르는 세계’는 그만큼,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런 항변을 내놓을 수 없을 만큼의 ‘부조리한 힘’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런 재앙을, 그런 ‘전율’을 마주하는 자의 눈에서는 아직도 선명한 번개가 번뜩이고 있다.

그 어떤 고난이,

그 어떤 난관이 자신을 가로막을지라도 넘어서겠다는 곧은 심지가, 신념이 느껴지는 눈이었다.

그렇기에,

뇌제가 바로 지금 나의 눈앞에 있기에.

‘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추하고, 더럽고, 증오스러우며, 존재 자체로 혐오의 온상이 되어야만 했던 ‘죽음 수확자’의 운명.

이 모든 걸, 완전히 불살라버리겠다는 결심을 말이다...!

“뇌제여. 가장 더럽고 추한 악이 그대의 앞에 있다. 나는 지금껏 백번이 넘는 회귀를 체험하고도 ‘악’이며, 앞으로 수천 번의 생을 반복할 수 있다 할지라도 ‘악’일지니.”

그리 말하며,

전신을 막대한 회색광으로 물들인다.

접근하는 그 모든 ‘이능’을 말소시키면서도, 정말 부조리하게도 지하에 스며 흙과 만나자 기괴한 형상을 취하는 ‘잿빛’.

-쿠르릉!

-쩌억!

-쿵!

이윽고 좀 전의 ‘잿빛 스켈레톤’과 같이 굉음을 터트리며 지하에서 고개를 들어 올리는 건...

“나는 비록 ‘신’도 결국, ‘재앙’이 되지도 못했으며 찬란한 ‘빛’도, 칠흑 같은 ‘어둠’에도 닿지 못한 어쭙잖은 존재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전신을 잿빛으로 물들인...

태고의 흡혈귀.

사신 레골루스.

야수왕 제라드.

악마왕 베르제뷔트.

이미 이 세계에서 완전히 소멸했던 재앙들의 형체였다.

“나는 가장 찬란했던 ‘절대선’의 그림자. 빛이 닿지 않는 모든 세계의 군림하고 또한 그 기저에 깔린 악을 관장하는 자! 내가 바로 ‘절대악’이다!”

그러자 일순,

-쿠르르릉!

한줄기의 번개와 함께 ‘뇌제’는 이미 사라졌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동시에,

모든 흡혈종의 ‘신’은 잿빛의 육신에서 두 눈두덩이를 붉게 빛내며 ‘전율’의 등 뒤에 나타나 번개검을 휘두르는 뇌제를 막아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KAAAAAAAAAAAAAAAAAAAA!」

사신과 묵시록의 4기사들이,

「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절대신의 권좌를 탐하던 야수 신앙의 ‘신’이,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계를 혈혈단신으로 정벌한 모든 곤충과 오물의 왕인 베르제뷔트는,

달려든다.

오직, 시리도록 푸른 뇌광을 번뜩이는 ‘뇌제’만을 향하여.

이윽고, 그 모든 신화경을 기괴를 일으켜낸 장본인.

‘나’는 말하는 것이었다.

“오라! 모든 ‘악’이, 모든 ‘재앙’들의 정수가 바로 이곳에 있다! 뇌제여! 내가 바로 대성녀의 그림자인 절대악이다. 나를 꺾는 자가 곧 ‘정의’이며, 나의 목을 취하는 자가 곧 ‘선’이 될지니!”

그리고 또다시 푸른 뇌광으로 전신을 빛내는 뇌제... 이건우는 웃고 있다.

***

박동하는 나의 심장 리듬에 맞춰 정면을 응시하면, 보이는 그 모든 광경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붉게, 희게, 푸르게, 검게.

휘두르는 검이,

회전하는 망치가,

솟아오른 창이,

‘제어력’으로 움켜쥔, 각기 다른 무구들이 향하는 세계는 말 그대로 제각각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밑에서 위로,

땅에서 하늘로 올려 벤 검격에서 번개가 친다.

위에서 아래로,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하는 창에서 붉은 혈류의 불꽃이 타오르고!

-착!

나의 손에서 피어나는 성검의 빛은 다만 흩날리는 꽃잎이 되어, 서슬 퍼런 쇳소리를 터트리며 세계를 수평으로 양단했다.

일순간에 교차하는 서른 하고도 여덟 번의 공방.

이에, 메마른 비명을 토해내는 건...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KAAAAAAAAA!!」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름 아닌 잿빛으로 물든, 과거 신이었던 존재들.

다른 세계를 침략하지 않고서는 본래 자신들이 거주하던 세계를 지킬 수 없었던, 멸망한 세계의 침략자.

즉, 프리드리히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잿빛’의 재앙들이었다.

다만, 1분도 채 되질 않던 그 잠깐 사이,

-딸깍!

스스로가 ‘절대악’이길 다짐한 자는 다시금 허공에 열쇠를 꽂아 넣었고 그 의지에 따라 세계는 ‘비틀리고 뒤엉킨’ 그 실체를 드러낸다.

<고쳐 쓰여진 금제-1. ‘비틀리고 뒤엉킨 세계’는 ‘관리자’의 의지대로 ‘운행’됩니다.>

하늘과 땅.

바다와 대륙.

숲과 마을.

동물과 사람.

그야말로 ‘전세계’가 뒤엉킨다.

“이, 이게 무슨?!” “여긴 어디야. 이게 뭐야!” “나는 방금까지 집에 있었을...?” “꺄아아아아악!? 괴, 괴물이!!” “뭐냐, 이건 대체 뭐야!!” “사령부! 사령부 응답하라!” “이, 이변이 발생! 여긴..?!” “하늘에서 계속해서 몬스터가! 어...?” “지휘관님! 통제실 외벽이 갑자기 사라지고는 이상한 풍경이!!” “꺄아아아악!” “너, 너희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지켜라! 내가 누군 줄 알아?!” “우와! 엄마 천장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 “이, 이게 뭐야! 살려줘!!!” “따, 딸아이가 사라졌어요!” “땅이! 갈라진다아아!”

아비규환, 아수라장.

그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공간의 경계가 으스러지고 세계가 뒤엉킨 이 현장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낼 순 없으리라.

‘공간’의 개념이 무너졌다.

또한, 마땅히 존재해야 할 ‘이치’와 ‘순리’마저 거스른다.

조금 전 성검에 반으로 갈라진 잿빛의 베르제뷔트가 일어서고, 신력의 비에 형체를 잃은 핏덩어리... 흡혈귀의 신마저 돌아온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신’을 되살려내는 자.

사상 최강의 ‘네크로맨서’는 이윽고, 말하는 것이었다.

“신위는 인과를 비트는 힘이다. 그리고 언제나 ‘악’은 규율과 법칙에 사로잡힌 고리타분한 ‘신’보다 더 절대적으로 그 신위를 불태워가며 세계를 위협해왔지!”

차분한 어조는 마치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과도 같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어렴풋한 미소로 잿빛을 번뜩이는, 프리드리히가 논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련이었다.

“이를... 그대는 극복할 수 있겠느냐!? 이 일그러진 세계 전역으로 뻗어 나가는, 그 모든 ‘악’으로부터!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다만, 그 외침과 동시에 일어나는 일은 전혀 가볍지 않다.

괴성을 토해내는 야수왕.

그 입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건, 전부가 ‘신화’를 가진 야수들이었으며,

악마왕의 그림자에서는 수많은 대악마들이,

진조의 피에서 태어나는 건 다름 아닌 12혈족과 휴거교의 주교와 목사들이다.

그것들 전부가 일순, 향하는 방향은 모두 다르다.

다만, 그것들이 향하는 그 끝에는 수천 개가 넘는 ‘일그러진 공간’이 있었고.

자칫 이대로 수초가 지난다면, 이곳에 모여 있던 재앙들과 준재앙급 괴수들이 전세계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 버릴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치익!

다만, 이미 이 같은 아수라도(阿修羅道)를 예견하고 있던 내게는 일말의 주저도 없었으니...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직!

단순한 마력의 형질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 이 세계에 막대한 질량과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힘.

세상에서 오직 나에게만 존재하는 그 힘.

‘제어력’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Lv. 102를 달성한 현재.

그 수치는...

[제어력]: 186000000Wh

일억팔천육백만이었다.

흐르는 번개가,

타오르는 혈류가,

폭풍우 치는 신력이,

번뜩이는 빛이,

그 모든 에너지들이... ‘제어력’의 통제를 받아 조화를 이루어 반투명한 막을 형성해낸다.

악마에게는 빛을,

12혈족에게는 비를,

야수들에게는 불꽃 같은 피를,

마지막으로 지금도 무한히 양산되어 대지를 부수는 언데드에게는 가장 찬란한 번개를 떨어뜨려 앞길을 막았다.

전혀 다른 형질의 각기 다른 에너지들을 조화롭게도, 부조화스럽게도 운용할 수 있는 기형적 헌터...

오직 나만이 가능한 기적.

그 기적 앞에, 만마(萬魔)가 멈춰선다.

이윽고 그 모든 ‘악’이 응시하는 대상은, 이 ‘닫힌 세계’를 만들어낸 장본인, 다름 아닌 나였다.

지금부터 나는 ‘세계’를 극복한다.

***

그저 한번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깨닫는다.

얼핏 바닷물을 닮은, 단백석의 빛깔을 뽐내는 저 ‘반투명한 막’ 내부...

그곳에 거하는 괴물들 하나, 하나가 모두 현존 인류에겐 버거운 괴수들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자가 있다.

새카만 모래 폭풍과 시뻘건 피가 흩날리는 저 작은 세계 속에서 고고히 빛을 번뜩이는 살아 숨 쉬는 번개.

뇌제가 바로 그곳에 있다.

쿵─────────────!

한 번의 번뜩임이 세계를 움직인다.

콰앙─────────────!

전세계의 하늘을 장악한 이계(異界)로부터 살아남고자 쉘터에, 지하 벙커에 숨어들었던 민간인들도,

숙청왕을 필두로 내세운 사우디아라비아의 중동 연합과 ‘전세계 연합’이 벌이던 그 전쟁터 한복판에 있던 자들도,

그리고 코앞에서 뇌제와 재앙의 전투를 응시하던 이들마저도,

깨닫는다.

쿠아아앙─────────────────────────────────!

저것이, 인류가 감당할 수 있는 레벨의 재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 순간,

-텁! 촤악!

“크윽?!”

두 재앙에게 양팔을 붙잡히고, 야수왕에게 등을 보인 뇌제의 어깨에 거대한 송곳니가 박힌다.

“저런!”

“미친!”

“아, 안 돼!”

“제발!”

새빨간 혈흔이 그의 육신을 타고 흐른다.

그 모습을 일그러진 균열을 통해 지켜보는 전세계 9할의 인류는 동시에 탄식을 터트렸으며,

“왜! 왜 막는 건데! 우, 우리도 같이 싸울 수 있는 거잖아아아!”

-쿵! 쿵쿵!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부협회장, 이초희는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뇌제가 스스로 형성해낸 ‘제어력’의 경계를 두드렸다.

그럼에도, 대답은 그 어디에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건데, 왜 항상 혼자 늘 그런 식으로! 이게 아메리카로 혼자 향해야 했던 이유야? 굳이 이렇게, 꼭 너 혼자 짊어져야 할 이유가 있는 거냐고!”

억울한 마음에, 분한 마음에,

이초희는 역정을 낸다.

목이 쉴 만큼 소리도 질렀으며, 침까지 튀겨가며 화를 냈다.

어떻게 해서든 함께하고자 했으나, 끝내 그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한 ‘남겨진 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모두가 굳어 있던 그 한복판에서 그녀만은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러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 우린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런 거냐고!”

그러다가도 벌떡 일어나 뭐라고 해보자며, 검성에게, 반인반용의 대마법사에게 다가가 그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하는 이초희. 다만...

저 ‘닫힌 세계’의 내부를 목도한 모든 인류는 침묵했다.

끔찍한 무력함과 숨통을 조이는 탈력감이 전 인류를 뒤덮었다.

“그럴...... 수가...”

-털썩.

끝내, 아무리 외쳐도 적막만이 감도는 그 현장에서 이초희는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그렇게 올려다본 ‘세계’는 이미 새카만 구름으로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옥’으로 그 모습을 탈바꿈한 후였고,

그 속에서도 번개와 광휘와 피와 비는 휘몰아치고 있었으나, 빼곡하게 들어찬 어둠은 그 모든 반짝임을 잠재우고 있었다.

뇌제의 패배는 곧 인류의 절멸이다.

그러나, 이초희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칼루스 궁전의 잔해와 각진 돌맹이를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쥐며 절망하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우린... 끝까지...!”

마치 인류 대다수를 대표하는 듯했던 그녀의 절규가 멈춰 서자 이 광경을 균열 너머에서 지켜보던 비각성자들의 눈에도 다양한 감정이 뒤엉킨 눈물이 고인다.

“아무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윽.

너무 강하게 쥐어 피가 흐르던, 고개를 내리깔고 무기력한 현실에 그저 눈물을 흘리던 이초희의 투박한 손 위로 자그마한 손이 얹어진 것은.

깜짝 놀란 이초희가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작은 소녀였다.

현존하는 인류 중 그렇게나 특별한 외향을 가진 소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는 없었기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은발과 에메랄드 빛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

2대 성녀 앤젤라 엘런의 등장에 인류는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이윽고, 소녀는 말한다.

“우리에겐 아직 ‘역할’이 남아 있습니다.”

찬란한 보석의 광채를 번뜩이며 숭고하게, 일그러진 세계를 쭉 훑어보고는 고하는 것이었다.

“황혼은 막을 내리고, 가장 어두운 밤은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에 맞춰, 앤젤라의 다른 한 손을 소중히 쥐고 있던 여인, 수신의 성녀 남궁연 역시 말한다.

“가장 차고, 어두운 시간 속에서도 결국 여명은 차오르고 태양은 다시금 우리를 비추어줄 것입니다.”

마치 예정되어 있었던 순간이 바로 ‘지금’ 현실이 되었다는 것처럼 일말의 주저 없이 두 성녀는 함께 노래한다.

「빛이 이곳에 있음에」

「눈물이 이곳에 있음에」

그제야 ‘남겨진 자들’은 자신들에게도 아직 ‘역할’이 남아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내일을 꿈꾸는 소녀가 기도하나이다.」

「미래를 소망하는 비가 꿈을 꿉니다.」

가지런히 양손을 모으고, 흙과 모래와 피와 더러운 살점이 즐비한 이곳에 정갈하게 무릎을 꿇는 두 사람.

이윽고, 그 두 사람을 중심으로 찬란한 빛과 푸르른 비는 중력을 거슬러 거꾸로 솟아오르기 시작하였으며,

-샤아아아아아아아아

-파아아아아아아아아

기적은,

완전히 이 세계와 단절된 것만 같았던 뇌제의 그 ‘닫힌 세계’에 빛과 비의 형태로 내리었다.

스스로 불꽃이 되는 자 -3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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