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69화 (169/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69화.

별빛이 아름다운 그런 밤이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풀 내음과 아찔하게 깎인 절벽 아래 전경을 그저 느끼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행복’을 실감할 수 있는...

바로 그런 밤이었단 말이다.

“......프리.”

-뚝. 뚝.

애절한 목소리였다.

또한, 그를 짓누른 여인의 눈에서 글썽이는 눈물이 폭포수와 같이 아래로 ‘그’의 뺨을 적시고 있다.

여인, 다나 메이어의 눈물이 메마른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뺨을 타고 흐른다.

-파스락, 파스스스스!

가장 순도 높은 ‘성수’와 닿은 언데드의 육신은 옅은 연기를 피워올리며 녹아내린다.

부들부들.

이젠 저항할 기색조차 남지 않은 남자.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왼쪽 가슴에 꽂힌 성스러운 광휘의 단검, ‘여명’.

그 단검을 쥔, 다나 메이어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몸에 올라타 체중을 실어 ‘언데드’인 그의 저주받은 심장을 직접 불태우고 있으면서도...

대성녀는 울먹이는 어조로 외치는 것이었다.

“...왜 그랬나요. 어째서 그런 결단을... 왜 우리를 믿지 않는 건가요. 바티칸은... 아니, 하다못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곁에 서려 했는데...!”

그 말에 휘감긴 감정은 치를 떠는 배신감도 저주하는 원망도 아니다.

순수하고 맑은,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통해 보이는 감정. 그것은 덧없이 맑고 순수하기 그지없는... 지독한 ‘애정’이었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너는 나를 위해 울어주는 거냐...... 다나.”

“......프리?”

격한 슬픔으로 얼룩져 있던 여인의 얼굴에 큰 당혹감이 깃든다.

두 눈을 동그랗게, 너무 놀라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까지 터져 나오는 비명을 삼키는 대성녀.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서, ‘악’은 태연자약하게 말하였다.

“나는... 바티칸을 불태웠다. 유럽 전역을 죽은 자들의 방주로 만들었고 현존하는 그 모든 세계를 비틀었다. 나는 ‘악’이다. 또한 나는 ‘종말’이며, 짐은... 불사왕인 게다.”

“프리... 설마, ‘기억’이 있는 거예요? 설마...... 저와 함께 했던 시절을, 모두...?!”

“...쿠륵?!”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가슴께에 깊이 박힌 ‘여명’의 여파로 피를 토하는 벽안의 남자.

“프리...! 프리!! 이제 제발 그만해요. 기억하고 있다면... 아직 ‘이어져 온 꿈’이 당신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면! 사신 숭배 따위는 이제 그만둬요!”

-뚝.

-뚝뚝. 투두두둑.

말을 잃고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불사왕.

그리고 그 잔악무도한 악을 무찌른 영웅, 대성녀는 계속해서 눈물을 터트리며 애원한다.

“그리고... 다시 나와 함께해요. 다음 생에서라도......!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요! 제발...! 프리!”

제발, 다시 예전의 그 순박하고 용기있던 청년,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로 돌아와 달라고 말이다.

허나, 이젠 제대로 숨을 쉬기도 힘든 것인지 쒜액, 쒜액 안타까운 숨소리를 내고 있으면서도...

불사왕은 하염없이 우는 대성녀에게 고개를 가로 졌고는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도대체 그 속을 알 수가 없는 그 의중에 다나 메이어가 긴장한 얼굴로 몸을 굳히자.

들어 올려진 불사왕의 손이 향하는 곳은 자신의 심장을 파고든 단검, ‘여명’도,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빛의 화신 대성녀의 급소도 아니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대성녀의 뺨.

-파스스스!

닿는 즉시 제 손가락이 녹아내리고 있음에도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는 고요한 눈으로 흐르는 다나 메이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막혀 있던 말문을 간신히 비틀어 열고는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한치의 숨김도, 거짓도 일절 뒤섞이지 않은 순백의 진심을.

“다나... 역시 그대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렇기에, 나는 몇 번의 좌절이 있더라도, 몇 번의 절망이 있을지라도... 기필코, 그대를 구해내리다.”

그건,

아카식 레코드의 유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의 세계.

즉, 대성녀 다나 메이어에게 ‘편집된 기억’만을 보여주었던 장본인.

바티칸의 ‘반신’이 의도적으로 숨긴 세계의 기억이었다.

***

나는 한 가지를 착각하고 있었다.

야수, 드래곤, 흡혈귀, 언데드, 악마.

여러 대륙를 파괴하며, 그러면서도 갱생의 여지 없이 또다시 다른 세계를 침략하는... 나는 그 5대 재앙과 ‘불사왕’을 ‘같은’ 악이라 치부하고 있다.

파괴를 위한 파괴.

살육을 위한 살육.

어떠한 대의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타협점을 가지는 것도 아닌... 그저 이 미친 세계를 파괴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기동하는 괴물.

그 5대 재앙과 불사왕을 완전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다름 아닌 나의 착각이었다.

허나,

지난밤 ‘기억하는 자’가 보여주었던 그 세계들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다.

불사왕은...

이미 의 세계에서, 끈질긴 대성녀의 애정과 설득을 통해 마음을 고쳐먹고 스물아홉 번의 회귀 만에 실제로 이 세계를 구원해냈었다는 사실을...!

앞선 여덟 명이나 되는 회귀자들은 그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던 ‘구원받은 세계’.

경악스럽게도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라는 사상 최강의 헌터는 성공했었다.

구원을, 무한한 전쟁과 1세기가 넘는 사투 끝에 세계는 이미 한차례, 그 ‘구원받은 세계’에 도달했다.

그 세계에서, 마력은 전쟁의 무기가 아닌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각성과 비각성, 또한 등급으로 헌터에게 값을 매기는 행위를 관두고 오래도록 지속될 ‘평화’라는 것을 향유하고 있었다.

-꺄르륵!

공원에는 아이들이 뛰논다.

밝은 햇살은 아이가 아이로 존재할 수 있는 세계를 비추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 수많은 얼굴들이 지나간다.

흡혈종의 지배를 벗어난 일본.

그 중심에서 평화로운 ‘가정’을 이룬 검제는 웃고 있다.

휴거교의 여파에서 벗어난 한국.

그 나라에 거주하는 헌터 협회 부회장 이초희는 놀랍게도 협회장의 아들과 결혼해 아이를 넷이나 낳았다.

가난을 벗어나 내란이 끝난 중국에는 이서영에게 검을 가르치지 않아도 된 검성이 웃고 있다.

다른 국가들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던,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와 다나 메이어가 갖은 고행과 역경을 딛고 이룩해낸 ‘평화의 20년’...

그 평화의 20년이 있기보다 훨씬 더 이른 시점에 구원을 이룩한 세계는 참으로 부정할 수 없는 ‘행복’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딱, 한 사람...

“다나... 다나! 다나아아아! 어째서, 어째서 네가..... 왜 네가 죽어야만 하는 거냐!! 다나아아아아!!!”

‘사신’의 꾐에 넘어갔던 과거의 자신을 붙들어준, 끝내 올바름이란,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알려준 사랑...

다나 메이어를 잃는,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프리... 고마워.”

끝까지 대성녀는 숭고했다.

자신의 사명...

세계의 구원을 직접 지켜볼 수 있게 해주어서, 그 누구도 불가능했을 ‘구원’을 그녀와 함께 이룩해주었음에...

대성녀는 자신의 생사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그저 그 사실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주께서는...! 아니 신은! 어째서 너를 구원해주지 않으시는 거야! 이 세계는 다나... 네가 있었기에 간신히 구원받은 세계잖아!”

“그건... 내 사명이 끝났기 때문이야.”

“사명! 사명이라고?! 남들은 편하게 발 뻗고 자는 동안 너는 밤을 새워가며 일했어. 다나. 너는 쉬지 않고 희생했고 그렇기에 이 세계가 존재할 수 있던 거잖아! 그런데... 사명을 다했다고? 그러니 이제 죽어도 상관 없다고?!”

그것이...!

그게 정녕, 바티칸의 주신이 택한 방식이란 말인가!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는 하염없이 격노를 토해냈고 또한 눈물을 흘렸다.

먼 훗날, 세계가 마흔 번도 더 넘게 반복된 후 ‘9-79’번의 세계에서 그의 가슴에 ‘여명’을 꽂아 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대성녀가 그러했던 것과 같이...

‘9-30’의 세계는, 모두가 행복한 세계였다.

한 개인에게는 과할 만큼의 은총을 하사받아 필시, 사명을 다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던 대성녀, 다나 메이어와...

그런 그녀에게서 구원을 받고, 사랑을 배웠던 청년.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만을 제외한다면 정말로 ‘모두’가 행복한 그런 세계였단 말이다.

프리드리히가 이룩한 궁극의 죽음 마력마저도, 빛의 대성녀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이윽고 홀로 남은 ‘네크로맨서’는...

“......과한 총애. 그리고 ‘이치’에 맞게 그 대가를 목숨으로 거두어가는 빛의 신. 그리고... ‘금제’.”

세계의 구원자였기에 가능했던 압도적인 시간과 인력과 노력을 들인 ‘연구’.

그 끝에서, 네크로맨서는 결국, 도달하고 마는 것이었다.

“...‘이치’, ‘공간’, ‘시간’, ‘무의식’.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이 조잡하기 그지 없는 시스템을 존속시키는 네 개의 기둥...!”

이 세계의 구조와 그 구조를 만들어낸 두 ‘반신’의 존재.

그리고...

“그래. 그런 거였어.”

마지막으로, 그 ‘금제’를 해제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아이템’.

“아카식 레코드.”

바로 그 순간부터, ‘네크로맨서’는 맹세한다.

“......내가 바로 ‘종말’이다.”

드넓은 세계, 수많은 인류를 서슴없이 등지고, 오롯이 한 ‘여인’만의 구원이 되리라고.

***

그 모든 것을 알기에, 나는 그리 말했다.

녀석은, ‘악’이 아니라고.

또한, 증오와 보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동정해 마땅한 가여운 존재라고... 나는 눈앞의 ‘사성’을 향해 아주 분명히 말했던 것이었다.

“심판이다. 프리드리히! 지금 네놈의 눈앞에 심판이 있다!”

놈의 위선을 안다.

놈이 어떤 심경으로 악행을 태연자약하게 행하고 또한 그 시체들을 밟고 미소를 짓고 있던 것인지를 알고 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대단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해 이 세계를 그 뿌리부터 송두리째 뽑아버리려 한다니...!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지 않는가.

허나, 그럼에도 눈앞의 ‘사성’은 결코, ‘순수악’이 될 수는 없었다.

“너는 ‘악’이 아니다. 아니, 도리어 ‘악’이 되길 희망했던 어쭙잖은 존재에 지나지 않아!”

「어떤 수작질을 벌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검을 휘두르는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의 광휘가 지천을 뒤엎는다.

거대한 검격도, 드높은 파도도 아닌 순백의 아름다움.

그것은 하나의 파동처럼 손에 쥔 ‘아스칼론’으로부터 퍼져 나아갔고, 그 ‘빛의 파동’ 앞에서는 모든 ‘이능’을 말소시키는 능력의 잿빛 스켈레톤들이 무너져 내린다.

“헛?!”

“저 괴물들이... 일격에!”

“뇌, 뇌제... 당신은 도대체......!”

10M에서 100M까지 크기도, 두께도, 그 텅 빈 눈두덩이에서 번뜩이던 안광의 밝기마저 제각각이었던 수백의 스켈레톤이 일격에 무너져 내리자 등 뒤에서 경탄에 젖은 소리가 계속해서 터져 나온다.

허나, 그런 상황들에 한눈을 팔 틈도 없이...

「짐을 쫓아온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뇌제여!」

눈을 돌리자 전율하는 사성이 한 손 가득 잿빛의 에너지 덩어리를 쥐고 날아드는 광경이 보였다.

「전율하라! 짐이야말로 ‘악’, 짐이야말로 ‘불사왕’, 짐이 바로! ‘종말’이다!!」

그 묵직한 에너지는 대체 몇 번이나 응축되고 농축된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짙은 회색광을 사방으로 방출했다.

다만,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완전한 뇌인’으로서의 안구를 번뜩이며 어마어마한 양의 제어력으로 회색광을 막는다.

그럼에도, 회색광은 ‘제어력’을 말소시키며 비산했으나, 그 위력이 크게 줄어든 힘은 끝내 허공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몰라도 한참을 모르고 있군. 프리드리히!”

「무슨!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란 말이냐!」

“간단하다. 진정한 ‘순수악’이라는 것들은 언제나 스스로가 악인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 왜냐고? 진짜 ‘악’이란 족속들은 무한히 스스로를 긍정하며 결코, 타협하는 법이 없는 괴물이니까!”

-부우우웅!?!

회색의 덩어리가 사성의 등 뒤에서 무수히 많이 솟아오른다.

-촤아아아악!!

동시에, 나는 하늘을 가득 채울 만큼의 어마어마한 ‘뇌옥’을 만들어 응한다.

「짐을... 이 전율하는 사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거냐!」

그러자 놈은 격앙된 외침을 토해내며 또다시, 서슬 퍼런 데스사이드와 그 마력만으로 형상을 만들어낸 ‘스카이 타이탄’을 재림시켜 또다시 공세를 취했으나.

그에 맞춰.

-촤악!

네 자루의 검이.

-샤아아아아!

손에 쥔 성검이 울부짖는다.

“아니, ‘부정’ 같은 부드러운 놈을 논하자는 게 아니야! 나는 지금 현실을 말하고 있는 거다. 너는 ‘악’도, ‘선’도 될 수 없는 존재.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그 누구도 구원해낼 수 없는! 한낱! 그런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카아아아아아악!

-그그그그그극!?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빛, 소멸, 폭우.

서로 다른 형질의 에너지들은 그저 맞부딪히는 것만으로도 귀를 찢어발길 만큼의 굉음을 토해냈고,

동시에, ‘혈류’를

동시에. ‘신력’을

동시에, 하늘을 반으로 쪼개어버릴 정도의 압도적인 ‘벼락’을 또다시 방출하는 뇌제.

「그윽...! 그으으으으윽!」

이에 드디어, 그 완전무결한 무적의 존재인 것만 같았던 ‘전율하는 사성’의 입에서 굵은 신음이 터져 나온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확언해주마. 너는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다나 메이어를 구원할 수 없어!”

「네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옴!」

마지막 검격을 휘두름과 동시에, 발악적으로 터져 나오는 재앙의 함성.

그 격앙된 목소리만으로도 놈의 분노가 어찌나 거칠고 거대한 것인지는 피부로 와닿을 지경이었다.

허나,

이 세계는 감정의 고조만으로는 기울어진 저울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 상냥하고 낭만적인 세계가 아니었기에.

-푸우우욱!

성검은, 이번에야말로 불사왕의 심장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스스로 불꽃이 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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