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68화 (168/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68화.

「인정하마.」

씹어 뱉듯,

재앙은 말한다.

「짐은, 그대가 감히 ‘완성’된 내게 대적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짓누르는 거검.

타오르는 혈검.

방류하는 수검.

번뜩이는 월광찬천검...

‘이능’을 잃어도 여전히 날카로운, 다섯 자루의 검격 그 중앙에 선 재앙은 돋아난 ‘네 번째’ 팔로 ‘그것’을 꺼내 들며 말하고 있다.

「필시 그대는 한낱 인간의 육신으로 짐이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미래에 도달해내겠지.」

그것은 얼핏 허심탄회한 한탄과도 같았다.

「이윽고 뇌제여. 그대에게는 자격이 있다. 짐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평화와 안식. 그리고 미소와 꽃들이 당연하다시피 흩날리는 그런 세계를...」

독백.

제멋대로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느릿한 독백을 토해내는 재앙.

허나, 그런 전율하는 사성을 맞이하는 뇌제는 악에 받친 얼굴로 외친다.

“그렇다면 포기해라! 손을 놔, 네놈의 그 막대한 신위를 이 세계를 위해 환원해. 소멸해라. 이 세계를 위해 자결해라! 프리드리히!”

허나, 재앙은 일절 고민도 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 그럴 순 없다. 아무리 그대가 짐보다도 더 나은 미래를 이룩해낼 자라 할지라도... 짐이 걷는 이 길이 세계의 오류와 거짓으로 빚어낸 우자(愚者)의 길이라 할지라도!」

짐은...

그런 말과 함께 크게 숨을 들이켜는 재앙.

그는 얼핏 애절함마저 느껴질 법한 눈빛으로 눈앞의 뇌제를 응시하다 눈을 감았고, 다시 뜬다.

그렇게 새롭게 열린 ‘잿빛 눈동자’는 무언가를 결심한 자의 신념이 돋보이고 있었다.

「네가 구원할 그 세계에 ‘그녀’는 없기에, 짐은...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딸깍!

허공에 꽂아 넣은 아카식 레코드 1번이 돌아간다.

<재앙, ‘전율하는 사성’은 신위를 불태워 관리자의 권능을 발현합니다.>

<고쳐 쓰여진 금제-1. ‘비틀리고 뒤엉킨 세계’는 ‘관리자’의 의지대로 ‘운행’됩니다.>

일순간에 흐릿해지는 세계.

이곳은 지하 미궁이나, 뇌제와 전율의 발밑에서는 시퍼런 하늘이 보인다.

이윽고, 기둥에는 바다가,

천장에는 텅빈 뉴욕의 마천루가,

지하 대공동에는 서울시 한복판이 삽시간에 비치고 사라지길 반복하다가...

-턱...!

끝내, 멈춰선다.

그렇게 재앙과 뇌제의 눈앞에 나타난 광경은 다름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의 칼루스 궁전, 알현실이었다.

***

‘압도적’이라는 단어를 현실에서 표현한다면 바로 이런 광경이 되는 걸까.

전투를 개시한 지 이미 반시간에 달했으나, 경악스럽게도 용왕 아르게스는 단 한 번도 두 발을 땅에서 때지 않았다.

“가라! 백귀!”

“라바 레인!”

“찌그러져라!”

“하아아압!”

무투계에 이은 S급과 특급 마법계 헌터들의 폭격과도 다름이 없는 폭발의 연쇄가 쏟아져 내린다.

무투가들의 기백에 이미 흔들리던 칼루스 궁전은 지속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수준의 마력 폭풍에 아예 날아가는 지경이었다.

하늘이 드러난다.

곳곳에 남은 기둥들과 앙상한 건축물의 잔향만이 이곳이 다름 아닌 칼루스 궁전의 알현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고 그 외에 모든 것들은 이미 완전히 말소된 상태였단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흠.」

재앙은 콧방귀를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럴 수가...”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면!!”

“적어도... 적어도 작은 생채기 하나라도 있어야 할 것 아냐!?”

날카로운 검격과 치명적 급소를 파고드는 정권.

더욱이 폭풍처럼 회전하는 용암의 세례와 백마리의 요괴가 들이미는 이빨은 분명, 지금껏 현존한 적 없던 새로운 경지가 분명했다.

다만, 그런 새로운 지평을 이룩한 무지막지한 협공마저도 통용되지 않았다.

「벌써 끝난 게냐.」

지금도, 용왕 아르게스는 나른한 얼굴이다.

필살의 기백을 담아 모든 것을 들이붓던 첫 한방에 미소를 짓던 것과는 상반되게 말이다.

「과인이 묻지 않더냐. 벌써 끝인 게냐고」

태연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묻는 말.

그 한 낱말, 한 낱말이 세계의 정점을 논하는 자리에서 빠짐없이 거론되는 현장의 모든 헌터들을 얼어붙게 했다.

그러자, 갑작스레 인상을 찌푸리며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안구’가 아닌, ‘용안’을 번뜩이는 재앙.

「과인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는 건... 필시, 이미 자신이 죽을 것을 알기에 범하는 무례겠지.」

파충류 특유의 눈동자가 움직인다.

그저 ‘응시되는 것’만으로 최상위급 헌터들은 순간, 포식자를 눈앞에 둔 피식자로 전락하는 것이었다.

「옳다. 이 아르게스가 답해주마. 너, 너너, 너너너너, 너와 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

돌연, 재앙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더니 엄청난 속도로 총 아홉명의 헌터들을 지목했다.

마지막으로 지목당한 홍진웅은 헛숨을 들이켜며 단숨에 식은땀을 흥건히 흘리는데... 이어지는 재앙의 언행은 홍진웅의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그대들에게 걸맞은 것은 ‘생’이다. 과인은 그대들에게 과인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쉴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겠노라.」

생...?

머리 회전이 빠른 홍진웅조차 저게 대체 무슨 말인가에 관해 떠올리려던 찰나, 들려온다.

─화륵...!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륵!

그것이 과연 ‘불꽃’이 내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도 없을 만큼 압도적인 굉음이 말이다.

이윽고, 좌에서 우로 크게 선을 긋는 재앙.

그런데 경악스럽게도 허공에 그어지는 그 시뻘건 ‘선’은... 다름 아닌 재앙의 지목을 받지 못한 헌터들의 목에 똑같이 그어지는 것이었다!

이에 두 눈과 입을 크게 벌린 홍진웅은 외쳤다.

“모두! 챙겨온 보옥들에 모든 마력을 집중하세요!”

사우디아라비아의 은닉된 아이템들은 하나 같이 ‘열’의 저항력을 드높여주는 효능을 가진다.

다만, 제아무리 신화급, 전설급의 아이템들이라 할지라도.

「무의미다.」

제로 거리에서 타오르는 종말의 화룡, 레드 드래곤의 비술을 막아낼 순 없었다.

-쩌적!

1초라는 시간조차 걸리지 않고 깨지고 금이 가며 제 형질을 잃어버리는 보구들.

이윽고,

“아아아아아아악!”

“모, 목이....”

“크아아악!?”

총원 스물하나의 칼루스 왕궁 강습단은, 한순간에 열둘의 특급 헌터들을 잃었다.

미친...?!

예측을 뛰어넘는다는 개념을 완전히 벗어나, 그 이상의 괴이를 펼쳐내는 재앙의 모습.

제아무리 뛰어난 통솔력과 비상한 머리로 모든 명령권을 넘겨받은 홍진웅이라도 이 정도로 엄청난 압박감에는 사고가 멈춘다.

그래.

‘압도적’.

눈앞의 재앙이라는 존재는 정말, 그 어떤 상상마저도 아득히 초월하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건우는, 항상 이런 압력을 견디고 있었단 말이야...?!’

격차가 너무 크다.

‘이쪽은 세계 랭크에 들어가는 거의 대부분의 헌터들을 대동했다...!’

그럼에도 홀로 고고한 종말의 화룡은 눈썹 한번 까딱이지 않고 생존한 아홉 헌터를 응시하고 있다.

「자 그럼, 자격있는 그대들이여. 이번에는 과언에게 어떤......」

이변은, 바로 그 순간 시작되었다.

「이런, 드디어 ‘때’가 되었나.」

그런 의문의 말을 내뱉고서 돌연 칼루스 궁전 알현실의 마지막으로 남은 기둥을 응시하는 재앙.

헌데, 경악스러운 이변은 바로 그 순간 펼쳐졌다.

특별할 것 없이 그냥 순도 높은 마강석으로 건축된 기둥.

그 너머에서...

“거, 건우...?!”

“그리고 저, 저건...! 신형 재앙, 전율하는 사성이잖아!!”

현재, 캐나다 올드 몬트리홀에 있어야 할 두 존재가 보이는 것이었다.

「과인의 육신에 네놈의 조각을 심어두었을 때부터, ‘공간’과 ‘이치’를 손에 쥔 네놈이 이런 짓을 벌이리란 건 충분히 예측하고 있던 바다.」

이윽고, 종말의 화룡이, 회색의 전율이 서로를 응시하는 바로 그 순간,

<재앙, ‘전율하는 사성’은 신위를 불태워 관리자의 권능을 발현합니다.>

<고쳐 쓰여진 금제-1. ‘비틀리고 뒤엉킨 세계’는 ‘관리자’의 의지대로 ‘운행’됩니다.>

번뜩이는 메시지와 함께 세계는 변했다.

***

번뜩이는 빛을 피하고자 팔을 들어 올렸던 홍진웅은 팔을 치우려다 일순,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과 함께 숨을 집어삼킨다.

이윽고 밀려드는 건, 엄청난 양의 한기.

당장이라도 인간을, 건축물을, 이 세계를 녹여버릴 법했던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방류하는 댐처럼 밀려들며 이 칼루스 궁전 자체를 얼어붙게 하는 차디찬 무언가.

떨려오는 팔이, 경직된 다리가 말한다.

당장,

이 자리를 이탈하라고.

이곳에 더 남아 있다간, 분명 죽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후우... 흡!”

허나, 그러한 원초적 본능의 경고마저도 무시해낸 홍진웅은 보게 된다.

회색 안구와 재를 뒤집어쓴 듯한 머리칼을 가진 괴물.

“전율하는 사성...!”

과거 불사왕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우던 그 재앙의 등장을.

이어서, 홍진웅은 흐려져 가는 마강석 너머의 푸른 번개와 시뻘건 화염의 잔상 또한 목도했다.

즉, 뒤바뀐 것이다.

정확히 재앙, 전율하는 사성과 재앙, 드래곤 로드의 위치만이 느닷없이 정말 갑작스럽게...!

어림잡아도 ‘10,000Km’ 이상의 거리를 제멋대로 도약한 두 재앙.

이윽고, 이젠 아홉 밖에는 남지 않은 칼루스 궁전 강습대의 눈앞에서 회색 안광의 재앙은 입을 여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놈에게 인정을 받은 자들은 하나 같이 뇌제와 연이 깊은 자들이로군. 그것참...」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함이 느껴지는 기괴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일이 참 재미있어지겠군.」

동시에,

홀로 선 재앙의 등 뒤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안광이 번뜩인다.

흑골도, 백골도 아닌 어중간한 광택의 스켈레톤.

허나, 어째서인지... 어마어마한 양의 ‘신위’가 느껴지는 잿빛의 스켈레톤들.

그들은 이 칼루스 궁전의 틈을 비집고 지하에서 솟아올랐으며...

그 수는.

「먹어치워라.」

한눈에 보아도 최소 세자릿수 이상이라는 것은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

「놈의 손에 ‘공간’가 ‘이치’가 넘어간 순간부터, 그대는 대비했어야 했다.」

또 다른 이변의 현장.

올드 몬트리홀의 지하 미궁 속에서는 육성이 아닌 정신적인 외침이 울려 퍼진다.

「과인은 알고 있다. 제멋대로 이 육신에 자신의 조각을 끼워 넣은 ‘전율’의 도를 넘는 행동 덕에,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지.」

한 인간.

아니, 누군가를 닮은 듯한 적발 적안을 빛내며, 인간의 형태로 폴리모프한 드래곤 로드, 아르게스는 말하고 있다.

「놈은... ‘전율’은 그대가 아끼는 모든 것을 짓밟으려 하고 있다. 아이를, 성녀를, 친구를, 전우를, 나라를, 대륙을. 언젠가는 이 세계 전체마저도. 그대가 바라마지 않던 모든 미래를 그 흔적조차 남김없이 말소시키려 하고 있지.」

‘전율하는 사성’의 계략과 그 음험한 꿍꿍이를 하나, 하나 낱낱이 말이다.

「과인과 놈이 뒤바뀌는 순간, 그대의 패배는 확정되었다. 오직 불꽃에 대항하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던 그대의 전우들은 그리고 ‘전세계 연합’이니 뭐니 하는 어중이떠중이들도 전부 그대는 잃을 것이다.」

또한 과인도 마찬가지다.

종말의 화룡은 그리 말하며 씁쓸하다는 듯 또 얼핏 속 시원하다는 듯이 상반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며 말한다.

「놈은 과인을 통해... 그대의 체력을 깎고, 놈은 전우들의 사체를 희롱하며 그대의 정신을 산산조각내려 하고 있다. 끝내, 모든 것을 잃은 그대는 깨닫겠지.」

푸른 안광이, 화룡에게 닿는다.

허나, 그 파지직거리는 굵직한 뇌광에도 아랑곳 않고 용들의 왕은 태연히 읊조린다.

「이 세계를 구원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 간악한 ‘이어져 온 꿈’의 의도대로 ‘회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야.」

그렇게 무력하게, 뇌제가 다시금 여느 ‘선대 회귀자’들과 같은 길을 걷게 만드는 것.

「그것이, 놈의 진의다. 그리고 두 개나 되는 열쇠가 놈에게 넘어간 현재. 그대는 놈을 이길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그대는 회귀하고 또한 절망하겠지. 여느... 회귀자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재앙은 서슬 퍼런 안광의 뇌제를 정면에 두고도 태연히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지껄였다.

허나, 정작 그 절망적인 소식에도, 극악무도한 미래를 이젠 피할 수 없다는 현실에도,

뇌제의 눈빛에는 흔들림이라는 것이 없었다.

이에 뒤늦게 드래곤 로드가 의문을 품는 순간, 뇌제는 거침없이 입을 연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뭐라?」

“종말의 화룡, 아르게스. 네놈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꽈직!

뇌제의 담담한 확신에 이마께에 십자핏줄을 곤두세우는 재앙, 아르게스.

「지금... 감히 과인을 가르치려 드는 게냐?!」

부릅뜬 아르게스의 눈이 파충류 특유의 용안으로 변한다.

동시에 손과 발 이윽고 등에서도 ‘인간의 형상’을 찢고 튀어나오는 거룡의 편린이 엿보이는데...

그런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뇌제는 말을 잇는다.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현실을 알려주려는 거다. 아르게스. 네놈의 말은 거의 대부분 맞았다.”

「거의, 대부분...?」

“그래. 거의 대부분. 네놈의 말대로 ‘프리드리히’는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절망하게 만들려 하고 있지. 내가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인류 전체를 소멸시켜버리면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렇지만, 딱 한 곳, 네가 착각하는 지점이 있다.”

대체 무엇을...?!

그런 의문을 아르게스가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이건우는 돌연 자신의 품속에서 무언가 새카만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 그건...?!」

검집도, 검신도 새카만 흑검.

허나, 이건우가 그것을 강하게 쥐고 전격의 마력을 강제로 부여하자 이내 ‘검신’은 신비로운 빛을 반짝이는 것이었다.

「대악마, 아슈타로테의 차원검!」

놀란 화룡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외치자. 뇌제는 피식, 조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였다.

“이젠 알겠나. 내가 어째서 성검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악마왕을 제1의 표적으로 삼았던 것인지를...!”

차원검의 검신은 이내 뭉툭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손에 쥔 뇌제는 허공에 그것을 휘둘러 ‘공간’을 베어 갈랐다.

이윽고 그 너머의 보이는 풍경은...!

-Kuoooooooooooooo!

-KAAARAAAKAAARAAA!

-퀘에에에에에엑!

경이로운 에너지를 풍겨대는, 잿빛 스켈레톤 수백 마리에 맞서면서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칼루스 궁전 강습대의 모습이었다.

이윽고, 건우는 그 갈라진 차원의 틈으로 걸음을 옮겼고. 적발 적안의 재앙, 아르게스는 버럭 불꽃을 토해내며 외쳤다.

「도망치려는 게냐! 과인은 그대와의 생사결을 펼칠 이때만을 기다려왔거늘! 과인을 두고 도망치려는 게야?!」

엄청난 속도로 닫혀가는 차원의 틈에, 손까지 집어넣으며 격노를 표출하는 종말의 화룡.

-촤악!

허나, 그 순간 번뜩이는 새하얀 섬광은 반쯤 ‘용체화’한 재앙의 손목마저도 일순간에 베어 갈랐고.

닫혀가는 차원의 틈 너머에서 이건우는 화룡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쉽게도, ‘이때’를 기다려왔던 건, 너도. 사성도 아닌... ‘나’였다는 거지. 멍청한 도마뱀 자식아.”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포효와 함께 엄청난 홍염이 아르게스의 전신에서 흘러넘친다.

동시에, 일순간에 초고층 빌딩보다도 더 큰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재앙은 이미 닫힌 차원 따위에 미련조차 갖지 않고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그곳이 지상에서 몇백 미터나 떨어져 있던 미궁이라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불타는 날개의 거룡은 단숨에 하늘로 날아올랐고,

깨닫고 만다.

-쿵!

돌연, 재앙의 전진을 가로막는 황금빛 무형의 결계.

그리고 그의 눈앞에 도출되는 의문의 메시지.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빛의 성녀, ‘앤젤라 엘런’의 기도가 하늘에 닿습니다.

*‘대천사 미카엘’은 성녀의 부름에 답하여 결계를 형성합니다.

*‘결계-속죄’는 조건을 달성하지 않은 존재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속죄의 조건: 아메리카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간 두 종의 몬스터를 처단하라.>

-‘야수’ 0/140012

-‘언데드’ 0/460132

「지... 지금! 감히! 과인에게!! 네놈들의 뒤처리 따위를 맡길 셈인게냐아아아아아아!」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불길을 내뿜으며 역겨운 뇌제의 함정에 또다시 분노를 토해내는 화룡.

감히 재앙에게,

감히 용들의 인도자에게 이 같은 무례를 범하다니...!

「전부 불태워주마. 하나도 남김없이 잿더미로 만들어주마!」

당연히, 재앙 아르게스는 ‘신위’를 불태워서라도 이 망할 결계를 깨뜨리고 당장 사우디아비아로 날아가려 했다.

다만, 바로 그 순간.

<빛의 성녀, ‘앤젤라 엘런’의 기도가...>

<수신의 성녀, ‘남궁연’의 기도가...>

<빛의 성녀, ‘앤젤라 엘런’의 기도가...>

<수신의 성녀, ‘남궁연’의 기도가...>

<빛의 성녀, ‘앤젤라 엘런’의 기도가...>

<수신의 성녀, ‘남궁연’의 기도가...>

<빛의 성녀, ‘앤젤라 엘런’의 기도가...>

<수신의 성녀, ‘남궁연’의 기도가...>

재앙의 눈앞에 나타나는 어마어마한 양의 메시지......

「이게... 무슨?!」

재앙, 그 앞에 나타난 결계는 무려, 아홉 겹이나 되었다.

하나도, 둘도 아니고 하물며 다섯도 일곱도 아니고 아홉이라니...!?!

이 정도의 결계를 전부 강제로 찢느라 체력을 낭비했다간 아르게스는 곧바로 10,000km 이상의 거리를 날아갈 수 없을 만큼 지칠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아홉씩이나 되는 결계들은 이 무슨 장난질인지... 하나도 빠짐없이 ‘통과 조건’이 같은 상황이었다.

어딜 어떻게 보아도, ‘차라리 속죄의 조건을 달성해버리는 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광경이 아닐 수가 없던 것이다.

「이, 이이...! 죽여버리겠다! 반드시 찢어 죽여버리겠다! 뇌제에에!」

***

드디어,

전율하는 사성은 자신의 비장의 수인, ‘아카식 레코드’를 사용했다.

또한,

드디어 나는 줄곧 방해였던 재앙, 종말의 화룡을 함정에 빠뜨렸다.

이윽고, ‘기억하는 자’가 보여준 형상을 통해, 아슈타로테의 ‘차원검’이 마기로 기동하지 않는 한, 늘 랜덤 좌표로 사용자를 보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홍진웅을 통해 공교롭게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보관중이던 ‘파원검의 파편’을 준비했고.

같은 성질에 크게 반응하는 ‘악마의 검’을...

인간은 결코 사용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그 악마의 무구를 활용해 ‘공간’을 베고 차원을 통과해냈다.

이윽고, 마주한다.

「...!?!」

“?!”

“!?!”

“거, 건우... 야?”

이 순간, 설마 내가 이렇게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인지 두 손을 멈추고 입과 눈을 떡하고 벌리고 있는 나의 동료들과...

“뭘 놀라고 자빠졌나.”

이번만큼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뜨고, 처음으로 얼굴 가득 경악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전율하는 사성’을.

“말했잖아. 이번에는 도망치게 놔두지 않겠다고.”

완벽하게 허를 찌른 한 방.

이것으로 완전한 평형을 이루고 있던 힘의 무게추는 도리어 동료들과 합류한 나에게로 기울었다.

“프리드리히. 잊지 않았겠지? 나는 너를 심판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심판의 시간이다!”

전율의 비수, 함정, 심판의 시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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