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58화 (158/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58화.

전생에도 그런 소문은 있었다.

‘육군 대장’ 조영수.

‘협회장’ 강 천.

두 어르신은 늘 한 자리에 함께 나타나는 일이 없었고 마력의 속성이 너무나 비슷하며 말투, 행동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 또한 닮았다.

군이 나아가야 할 방침과 협회의 행동방침은 자잘하게 마찰을 빚을 지라도 큰 부딪힘이 없이 같았고.

군의 부족함을 협회가, 협회의 부족함을 군이 서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보강하곤 했다.

서로, 한마디의 사전 협의 없이 이루어진 작전에서조차 말이다.

그런 ‘비상사태’에 고루 알맞게 등장하는 일이 늘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조영수’와 ‘강 천’ 어르신이 둘만의 통신회선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물론 두 사람이 동일인물인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었으나 그 역시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전생의,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조영수 대장... 그리고 협회장 강 천...”

나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거론되자 병상에 힘없이 기대어 앉아있는 것만 같았던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육신은 비록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노쇠하여 힘없이 늘어져 있었으나, 그의 눈빛으로부터 번뜩이는 ‘금빛’은 그의 혼이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육군대장’ 그리고 ‘협회장’

동시에 역임하고 있는 그 직함들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현재의 대한민국 전체에 큰 영향력을 가진 존재인지는 곧장 알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아니, 눈앞의 그가 정녕 대한민국의 양대산맥을 지탱하던 두 인물의 ‘본체’라면...

타국과 비교해 훨씬 더 이른 시기에 문화를 복구하고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 이 대한민국은, 사실상 눈앞의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그런 그가 신비로운 금안(金眼)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어져 온 꿈의 선택을 받은 각성자, 뇌제.”

불사왕도 숱한 재앙들도 그리고 무언가를 알고 있으나 자신에게는 발언권이 없다던 검성 그리고 혈마가 줄곧 언급하던 그 회귀에 관한 단어를 입에 담으며 말이다.

“내가 발굴해낸 인제가 다시금 찾아낸 강인한 영혼의 소유자... 자네와 이렇게 세계의 진실을 논할 순간이 찾아오다니, 나로서는 꽤 감회가 남다르다네.”

“당신이었습니까. 멸망하는 일본 그리고 끝없는 내전의 중국 사이에서도 이 자원도 뭣도 없는 대한민국을 헌터 강국으로 키워낸 자가...”

나의 언급에 조영수는 작게 미소를 짓더니 답했다.

“하하하. 과대평가는 고맙네만, 나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인간이 아니라네. 내가 행한 일은 그저, 이 한국에서 태어난 희대의 ‘빌런’들의 운명을 조금 바꿔놓았을 뿐이니.”

“한국의 빌런...?”

“자네도 잘 알 걸세. 과거에는 빌런명이었던... 백귀야행, 검은 산군 그리고 천검일로라 불리는 헌터들을.”

그의 입에서 나온 호칭들.

그 말에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그가 언급한 세 사람은 다름 아닌 황해, 만검 그리고 이 헌터 협회장의 양자과 약혼까지 했던 여인... 전쟁고아 출신의 세 S급 헌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부협회장 이초희, 만검의 정진권 그리고 황해의 조성우가... 빌런이었다...?”

“무얼 놀라는가. 이 세계는 이미 천 번이 넘도록 반복되었고, 그런 세계가 있었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거늘.”

육군대장이자 협회의 협회장, ‘조영수’이자 ‘강 천’인 눈앞의 남자는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그런 말을 하였으나, 나로서는 퍽 당혹스러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왜나하면...

“이 세계는... 정확히 일흔 번째 반복되던 세계가 아니었습니까.”

그의 ‘입’은 과거 내가 아카식 레코드의 유적에서 만났던 ‘다나 메이어’의 말과는 아예 다른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의 앞서 아홉 명의 회귀자가 존재했고, 그들은 각각 열 번을 넘기지 못한 회귀를 끝으로 사라져갔다.

유일하게 ‘15회’라는 경이로운 회귀를 달성해낸 자는 오직 프리드리히 파울라스 즉, 불사왕뿐인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분명 그리 들었고, 대성녀 다나 메이어 역시 거짓없이 이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그’는 여전히 작은 미소와 함께 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말해주십시오. 대체 당신은 뭐고, 불사왕은 뭐란 말입니까. 놈은 어째서 ‘이어져 온 꿈’을 죽이겠다고 선언했으며... 재앙이라는 것들은 어째서 죽음의 문턱에서 ‘허무’라는 것을 두려워한단 말입니까.”

“...”

“대답해주십시오. 그걸 위해 당신은 나를 이 자리에 부른 것 아닙니까!”

나는 대답을... 이 세계의 진실을 재촉했으나 그는 한동안 침묵을 일관할 뿐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있고 또 잠시 후,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서 입을 열었다.

“이 세계는 정확히 일천사백오십이 번 반복되었다. 그동안 아홉 명의 회귀자들이 세상에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들이 세상을 되감은 횟수는 그대가 알고 있는 수의 배 이상은 될 게다.”

“...아카식 레코드의 유적 속에서 대성녀 다나 메이어는 말했습니다. 이 세계가 일흔번째 세계라고.”

“그건 간단하다. 그녀는, 그녀의 정신이 붕괴하지 않을 수 있는 최대한의 ‘기억’을 부여받았고 그것을 충실히 믿었을 따름이야.”

“그렇다면...”

“그래. 그녀의 기억은 그저 바티칸 신의 배려를 통해 편집된 기억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난...... 이 세계의 최초의 ‘길잡이’인 나는, 이 세상에서 일어났던 모든 회귀를 기억한다. 그저 그뿐인 일인 게다...”

‘길잡이’.

분명, 유적에서 다나 메이어를 만났을 당시 들어본 적이 있던 단어였다.

그녀는 자신을 전대 회귀자들의 길잡이라 칭했고, 그런 자신 역시도 앞선 길잡이들에게 숙명을 받은 존재라 말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나타난 남자.

육군대장이자 협회의 협회장인 이 남자는 스스로를 ‘최초의 길잡이’라 칭했다.

“자네의 생각이 옳다. 내가 바로 모든 세계를 ‘기억하는 자’. 이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를 ‘스킬’의 발현으로 인해 ‘이어져 온 꿈’의 선택받고 말았던... 썩을 운명의 소유자지.”

그렇게 자조적인 어투로 말을 마친 그는 고요히 그리고 호탕한 얼굴로 웃었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 발언에 내가 입을 닫고 가만히 멈춰있자, 스스로를 ‘기억하는 자’라 힘있게 자칭하던 최초의 길잡이는 돌연, 황금빛 눈동자를 부릅떴다.

그리고는 일순간에, 아예 다른 인격을 가지게 된 존재처럼 근엄하게 입을 연다.

“첫 번째 회귀자로부터 시작된 ‘이어져 온 꿈’이 이어지고 이어져, 마침내 다시 내게로 돌아왔으니... 그대가 걸어온 족적이 곧 증명이며, 그대가 구원해낸 모든 이들이 곧 그대를 신뢰할 수 있는 증거이니라.”

-후우웅!

갑작스레 전신에서 황금빛 오라를 내뿜으며 그 목소리에 깊이를 더해가던 ‘기억하는 자’.

이내 그는 그 황금빛 오라를 통해 ‘나의 생’을 거울처럼 비추었고 다시 잠깐의 침묵을 가진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대는 이 ‘기억하는 자’에게 대답을 구할 자격을 증명하였다. 그러니 물으라. 무엇이 궁금하여 나를 찾았더냐.”

드디어, 때가 되었다,

금제, 허무, 이어져 온 꿈, 영원의 감옥.

나의 뇌리에 깊게 새겨진 ‘초월적’ 존재들만의 용어가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친다.

“...게이트, 몬드터, 신, 각성자, 재앙... 묻고 싶은 것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가장 먼저 이것부터 알아야겠습니다.”

“...”

“신이라는 존재도, 재앙도... 모두 쉽사리 거스르지 못하는 이 세계의 규칙. 이 게임과도 같은 ‘시스템 메시지’의 정체는 무었입니까.”

메시지는 ‘최초의 게이트’가 열리기도 이전에, 그 출현을 예견하며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었다.

즉, 사실상 이 세계에 법칙을 뒤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이능’의 출발점은 신도, 몬스터도, 게이트도, 각성도 아닌...

‘시스템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러자 ‘기억하는 자’는 피식, 석상처럼 굳어 있던 입을 크게 비틀어 웃는다. 이윽고 그는 말했다.

“역시, 꿈의 선택을 받은 마지막 회귀자... 좋은 질문이로다.”

“...잠깐, 마지막? 그건 대체 무슨 말...!”

나는 의뭉스러운 말과 함께 금빛의 오러를 넓게 흩뿌리는 ‘기억하는 자’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으나, 금빛의 안광을 더더욱 반짝이던 그는 이 출구도, 입구도 없는 병실을 빛으로 가득 채웠고...

눈앞에 비추어지던 모든 ‘전경’은 격변했다.

***

<로딩.......>

금빛으로 물든 세계에서 나에겐 퍽 친숙한 메시지가 떠오른다.

로딩이라니 무엇을?

그런 의문을 품을 시점, 흐릿해진 눈을 감았다 뜨자 일대의 풍경은 변한다.

높은 건물이 사방에 늘어서 있다.

이른 아침에 서류가방을 들고 대낮의 마천루를 거닐며 돌아다니는 양복의 사람들.

나는 주위를 좀 더 둘러보고 나서야 지역명을 찾을 수 있었고, 이곳이 헌터사 교과서에도 나와 있듯 ‘태초의 게이트’의 출현구역.

‘맨하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참으로 느닷없이 푸른 하늘은 갈라졌다.

“저... 저게 뭐야?”

“드론 같은 거로 쇼하는 아냐?”

“출근 시간에 저게 뭐야. 어디 방송국이야 민원이라도 넣어야겠어.”

‘맨하튼’의 시민들은 그런 괴현상을 목도하고도 태연한 반응이었다.

마치 저것을 그저 형태뿐인 헛것으로 취급하듯이...

허나, 갈라진 하늘에서 내려오는 건, 다름 아닌 ‘용’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헌터 사회 속에서는, 그 날갯짓 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려오는 게 정상적이라 여겨지던 악몽의 몬스터 종, 바로 그 ‘용’ 말이다.

‘뭐 하는 거지?’

그런데 눈앞의 사람들은 도리어 내가 아는 것과는 조금 형태가 다른 스마트폰을 여유롭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휘이~ 재미있네?”

“멋지네. 누가보면 진짜인 줄 알겠어.”

“유튜브에 올리자”

“사진 찍어 사진!”

그 태평함은 퍽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그래... 그 흉측한 것들이 하늘을 뒤덮을 만큼 쏟아져 나오고 이내 괴성과 함께 브레스를 쏟아내기 전까진 말이다...!

-GAAAAAAAAAAAA!

-Guuuuuuuu!

비명이 빗발친다.

눈앞의 사람들은 마치 ‘죽음’을 자신과 동떨어진 개념처럼 여기고 있던 것인지 지하철이 선로를 이탈하고 시뻘건 화염에 불타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혼돈에 휩싸였다.

거기까지 보고서 나는 눈치챘다.

‘역시... 이 광경은 과거를 보여주는 건가.’

무어라 정의내리기 힘든 비명, 절규, 죽음 따위가 무질서하게 빗발치길 수 분...

‘슬슬 나타나겠지.’

내가 어릴 적 학교에서 읽었던 헌터사 교과서에 따르면 분명, 정확히 비극이 시작된지 7분 뒤... 전설적인 각성의 시초. ‘제이슨 스트라우스’는 등장했다.

그는 ‘드래곤 슬레이어’이기 이전에 동시다발적 1세대 각성자 중 한명인 남자였기에...

바로 지금, 그를 처음으로 수초 간격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각성자가 등장해야 함이 마땅했다.

허나,

“살려줘! 괴, 괴물이!”

“뜨, 뜨거워! 으아아아악!”

수 분, 수십 분... 이윽고, 1시간이라는 시간이 흐르도록 드래곤 슬레이어 ‘제이슨 스트라우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뭐지? 아니, 그러고보니...!’

그제야 스스로가 무심하게 지나쳐 버렸던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나는 깨닫는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세계에서는 최초의 게이트를 경고해주는 메시지가 없었어...!’

그렇다면 이 세계는...

내가 그런 의문에 휩싸여 있길 수초, 친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는 나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이 세계는 태초의 세계. 그대가 나고 자란 1452회차의 세계가 아닌... 말 그대로의 태초. 즉, 1회차의 세계다.”

등을 돌리자 묘하게 반투명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다름 아닌 이 세계로 나를 인도한 장본인, ‘기억하는 자’였고 이 1회차의 세계를 무감각하게 응시하던 그가 손을 내뻗자 세계는 마치 ‘2배속’의 버튼이 눌린 영상처럼 다시금 격변하기 시작했다.

“맨하튼을 시작으로 사흘, 나흘의 간격으로 열리던 일백의 게이트.”

이어지는 그의 ‘해설’ 역시 내가 알고 있던 과거와는 달랐다.

세계에 최초로 나타난 게이트의 수는 정확히 열아홉이었거늘.

그는 무려 그 다섯 배 이상의 게이트가 이 ‘세계’에 열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 인간은 싸웠다. 허나, 본래의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가졌던 미국조차 ‘이능’ 없이 ‘용’을 막아내기란 불가능했지.”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가 그런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몇 배속으로 흐르는 세계에서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건... 다름 아닌 흑룡, 아뮤르타스였다.

그리고 그 흑룡이 내뿜는 거대한 브레스에 잿가루조차 남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 도시, 군대가 보인다.

“그렇게 인류의 생존자가 단숨에 100분의 1로 줄어들 무렵이 되고 나서야. 그 오만한 존재들은 나타났다.”

“오만한... 존재들?”

“무얼, 곧 그대의 눈에도 보일 게다. 직접 보고, 판단하라. 그대는 ‘꿈’의 선택을 받은 자이니.”

그런 말과 함께 입을 꾹 닫는 ‘기억하는 자’.

이윽고,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또한번 하늘에 거대한 균열은 일어났고... 그곳에서 흰 날개를 가진 자들은 나타났다.

“...저건!”

금빛으로 번뜩이는 무구와 갑옷을 갖춰 입고 반짝이는 햇살을 닮은 날개를 펼치며 지상으로 내려오는 자들.

그들은 ‘신성 바티칸’의 힘이 극에 달했던 시절, 몇 번이고 나의 세계에서도 직접 나타난 적이 있던 존재들... 바티칸의 신을 떠받드는 천사들이었다.

“미구엘, 미카엘, 라파엘까지...”

한번 현현하는 것만으로도 수천의 성직자들이 지닌 신성력을 소모하게 만들던 그 천사를, ‘휴거교’의 흡혈귀들마저 스무 번이 넘게 신성력을 강탈해 겨우 한번 소환해낸 그 신화적 존재들이...

“끝도 없이...”

이전, ‘용’들이 그러했듯 끝없이 이 세계로 내려오고 있었다.

“‘금제’가 존재하지 않던 세계에서 수없이 많은 이종족과 저들은 싸웠다. 지상의 ‘인간’이 어떻게 되건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쉼 없이 그리고 끝없이 전쟁을 벌였지.”

그 결과는... 굳이 물어볼 것도 없었다. 참상은 다름 아닌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으니까.

천사들은 용도, 흡혈귀도, 악마도, 언데드도 구분 없이 학살했다.

다만, 그 결과 인간을 무참히 해하던 몬스터는 전멸했으나 그 세계에서 살아남은 인간의 수는...

“사지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는 수를 세어본다면... 그 오만한 것들이 말하길 정확히 백만이라 하더군.”

60억의 인간이, 단 1년이라는 시간 만에 1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것으로 오만한 존재들은 세상을 구원했다며 이곳을 떠났지만, 그런 폐허 속에서 어찌 평범한 인간이 살아남겠나. 자연히 그 살아남은 백만의 인류 역시 피폭되어 명을 달리했고 그들은 그제야 본색을 드러내며 나타난 게지.”

“그들...?”

“그래. 그들. 그대도 잘 알 것이다. 먼저 이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용, 흡혈귀, 악마, 언데드의 ‘신’이라 불리던 존재들을.”

“...재앙.”

“그렇다. 오만한 신들은 알지 못했지. 허나, 이미 숱한 세계를 침략하고 함락시킨 ‘침략자’들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게야.”

주어를 빼놓은 말에 내가 ‘그 사실’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자, ‘기억하는 자’는 곧, ‘그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크헉!

‘태고의 흡혈귀’에게 물린, 천사의 목덜미에서 빛이 흘렀다.

‘사신 레골루스’의 거대한 낫에 강대했던 천사는 허무하리만치 쉽게 날개를 잃었고...

‘악마왕’의 손짓 한 번에 날개를 가지고 있던 군대는 너무나도 쉽게 쓸려나갔다.

그토록 강인했던 ‘신화적 존재’들이 기이하리만큼 나약해진 세계가 내 눈앞에 있다.

이윽고, ‘기억하는 자’는 입을 연다.

“오만한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 세계에 살아 숨 쉬며, 그들을 믿고 숭배하며 또한 기도를 올리는 존재, ‘인간’이 존재했기에 그들 강인한 ‘신성력’을 휘두를 수 있었음을...!”

“...그 말은 저 천사의 군대도 그 위의 전지전능하다는 ‘바티칸의 신’ 역시, 인류의 믿음이 없었다면 그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지 못했을 거라는... 그런 말인가.”

내가 확인하듯 되묻자. ‘기억하는 자’는 돌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찌 그것을 그대가 묻는가. 그대 역시 마찬가지지 않은가. ‘이계의 신격’ 수신에게서 새로운 권능을 부여받기 위해 그대 역시 깊이 있는 믿음과 수많은 신도를 필요로 했지.”

‘기억하는 자’의 말에 나는 허를 찔린 듯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번개중대의 일원들을 ‘수신의 길’로 이끌고, 성녀인 남궁연의 활약을 통해 국내에 상당히 많은 ‘신자’를 확보함으로써 나와 그녀는 두 번째 권능을 손에 넣었었다.

그렇다는 건 다시 말해...

본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능’.

그 기저에 깔린 원동력은 다름 아닌 이 세계의 원주민들. 즉,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소리였다.

‘모든 이능의 원천이, 다름 아닌 그 이능의 힘으로 구원을 받은 인간에게 있었다...?’

그제야 나는 어째서 눈앞의 ‘기억하는 자’가 천사들과 그 정점에 군림하는 신을 ‘오만한 존재’라 칭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무한한 힘을 통해 끔찍한 전쟁을 벌일 뿐... 단 한 번도 살아남은 인류의 생존자들을 돕지 않았으니까.

아니, 돕지 않았다기보다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혹은 도리어 거치적거린다고 여겼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천사 그리고 신이라는 작자들은... 무지막지한 신벌 휘두르며 그저 괴물들을 멸할 뿐, 인류의 생존자가 그 신벌에 휘말리는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

줄곧 빛과 선을 대표하는 듯했던 신적 존재.

구약성경에도 엄연히 표기되어 있듯, 냉혹한 신의 면모를 확실하게 인지한 나는 돌연,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인류는,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신에게 버림받고 또한 그 신은... 비참하고 꼴사납게 재앙에게 패배하여 세계는 멸망했다...... 그건가.”

‘기억하는 자’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모든 것이 끝난 세계는 마치, 테이프가 끊어진 영상처럼 정지해 있었고, 마지막으로 펼쳐진 광경은 이 세계를 침략한 4대 재앙들이 갈라진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 ‘신들의 세계’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끝내 하늘 위로 올라, ‘오만한 존재’들을 학살했으리라. 이 지상에서와같이 말이다...

허나, 모든 것이 끝난 것과도 같던 그 광경 속에서... 나는 끝내 풀리지 않은 의문을 떠올렸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럼, 금제라는 건 뭐고, ‘회귀’라는 현상은 어떻게 일어난 일이란 말인가.

그런 의문을 머리에 담는 바로 그 순간, ‘기억하는 자’는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시작했다.

“분명, 인류는 빛을 잃었고 세계는 완전한 멸망을 경험했지. 살아남은 인류는 극히 적었고, 더 이상 ‘미래’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네. 그래...... 그 ‘소녀’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시간을 되감는 스킬을 ‘각성’해내기 전까지는 말이네.”

“......시간을 되감는, 스킬이라고?”

Time Traveler(시간 여행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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