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56화.
“‘이어져 온 꿈’이여...”
침묵이 있다.
몬스터의 출현을 알리며, ‘게이트’의 등장과 그 던전의 파괴 조건을 알리던, 그 시스템 메시지가 융해되어 녹아내리었으며 끝내 붕괴하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우리들의 눈앞에 놓인 것은 ‘미지’였고, 인류는 대대로 ‘미지’를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숨소리가 들린다.
그리하여 거칠어진 심장박동과 손끝에 땀방울이 맺히고, 이윽고 ‘미지’에 닿은 광인(狂人)은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대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던... 그 덜떨어진 머저리가 마침내 이곳까지 도달했다.”
‘불사왕’의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하늘이다.
그게 아니라면 융해되고 으스러진 ‘메시지’를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무효화시키는 신물과 ‘아카식 레코드 2번’이 어떻게 이런 일을 일으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허나, 나의 의문이 비대하게 부풀어가는 와중에도 ‘불사왕’은 입을 움직였다.
독한 술에 만취한, 감격에 겨운 얼굴로.
“48번 회차에서 그대는 말하였지. 짐은... ‘네크로맨서’라는 운명을 타고난 짐으로서는 결코, 나 자신이 바라마지 않는 ‘이상’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놈은 그렇게 말을 끊고서 아직도 기괴하게 끄집어 올리고 있던 입꼬리를 돌연, 파르르 떨었다.
그러다 돌연, 게워낸다!
“허나, 허나! 허나! 허나!! 허나아!!! 짐은 닿았다! 꿈이여! 그대의 조력 없이, 그대의 인도 없이! 짐의 힘만으로! 짐을 위한, 짐에 의한, 짐의 이상에 닿은 것이다!”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낼 수 없는 단어와 의지가 뒤엉킨다.
닿았다니, 도대체 무엇에 말인가.
허나, 입으로 이야기를 한다기보단 오랫동안 썩어 문드러진 무언가를 게워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던 놈은...
두서없이, 더더욱 기괴하고 해괴망측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두려워하라! 전신을 비틀며 몸서리치라! 그리고 경배하라. 경외하라! 짐은 이 세계에 내려진 부조리함을 거두어가겠다. 순리와 이치를 벗어던지고 그대를 끝내 죽이는... ‘짐’이 바로 ‘종말’이다.”
-딸깍!
허공에 꽂아 넣은 ‘아카식 레코드 2번’.
이내 웃으며 동시에 눈에서 눈물을 흘리던 불사왕이 반쯤 돌아가 있던 그 열쇠를 완전히 돌렸고, 이 세계에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금제II – 이 세계에 신적 존재가 ‘직접 개입’하는 것을 금한다.
-‘금제 2번’을 삭제할 경우, 이 세계에는 새로운 재앙이 탄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금제 2번’을 삭제할 경우, 동시다발적 재앙의 현현이 가능해집니다!
-세계는 위험에 처합니다.
‘새로운 재앙의 탄생... 그리고 재앙의 동시다발적인 현현?!’
두 눈이 부릅떠진다.
눈앞의 메시지는 그만큼이나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정보를 논하고 있었기에.
허나, 그보다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단 하나의 단어였다.
‘그리고...... 금제라고?!
금제.
그건 쉽게 접할 일이 없던 말이었기에 생소했고 또한 독특했다.
허나, 저기 지금껏 단 한 번도 목도한 적이 없던 형체를 취하고 있는 ’메시지‘를 통해 그 단어를 접하니... 떠오른 것이다.
분명, 기억의 저편. 아니, 그 기저에 깔려 있던 누군가의 목소리.
그건, 다름 아닌 이준학 준장의 목소리였다...!
‘재앙은 어째서 동시에 현현하지 않는가.’
그러한 의문은 이미 전생부터 있어왔다.
어째서 ‘시스템 메시지’는 재앙은 잉태가 되는 그 순간, 세계 곳곳에 그 사실을 알리는가.
어찌하여 ‘재앙’이라는 존재들은 늘 시기의 차이를 두고 현현을 시도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리고 그 주제는 언제나 세상의 규칙을 뒤바꾼 저 ‘메시지’. 시스템은 과연 인류의 적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재앙들이 지들끼리 전쟁을 벌이는 걸 막기 위해서겠지. 모르겠어? 저 ‘시스템 메시지’라는 놈은 더 확실하게 우리 인류를 절멸시키려고 하는 거라고!
혹자는 그리 말하며 ‘시스템’을 적으로 간주했고,
-아니지, 그래도 재앙이 한 번에 하나씩만 잉태되니까. 인류가 지끔것 막아낼 수 있 던 거 아냐. 생각해봐. 세상에 둘 아니 셋이나 되는 재앙이 동시에 잉태된다니... 그걸 막아낼 수 있는 헌터가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또 혹자는 그리 말하며 재앙의 동시 현현을 암암리에 막아주고 있는 ‘시스템’을 인류의 방패라 주장하기도 했다.
돌연 세계를 망가뜨린 ‘게이트’의 정체.
그리고 인간의 눈앞에 나타난 이 게임 같은 ‘시스템 메시지’의 정체.
그 논제는 시스템의 힘으로 각성한 헌터들에게 있어 곧잘 입에 담게 되는 화제였다.
그 기억 속, 그런 대화가 곧잘 오가던 곳이 어디였나.
그건 당연히 불곰 같은 체구의 소유자이며 동시에 스스로를 늘 ‘학자’라 소개하는 괴짜 군인, ‘이준학’ 준장을 총수로 둔 ‘대항군’이었고.
우린 필시, 그 주제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연구와 사색 혹은 추측을 해보았어야 함이 마땅했다.
그래. 그래야 마땅한 일이었다.
우리 대항군은 만인, 만생, 만물을 의심하고 탐구하는 자, ‘이준학’ 준장을 따르는 자들이었으니.
허나, ‘금제’라는 단어 하나가 나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그 원인이 되는 목소리는 늘 그럴 때 들려오곤 했다.
-그건 이 세계의 근간에 자리한 ‘금제’가 있기 때문이라네...
불쑥, 우리 ‘대항군’의 단원들이 ‘시스템 메시지’에 관하여 대화를 나눌 때면, 늘 갑작스레 나타나 그런 말을 툭 내놓던 이준학 준장.
더욱이 그는 자신의 등장에 경악하며 차렷 자세를 취하는 단원들을 향해 서글서글한 미소와 정감 있는 목소리로 늘 이렇게 말하였다.
-그 주제에 관해서는 ‘다음에’ 깊게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고, 자네들 다음 임무 숙지는 다 해뒀겠지?
총수라는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 정감 있는 어조로, 늘, 언제나 그렇게...
그는 말을 돌렸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 ‘학자’, 그 이준학 준장이 말이다.
그 후로는 전생이 끝나는 그 날까지,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나누어본 적이 없던 그 단어... ‘금제’.
그리고 그 ‘금제’라는 단어는 돌고 돌아, 지금 나의 앞에 나타났다.
그렇다는 건...
‘이준학 준장은... 이미 전생에서부터 저 금제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커져만 가는 의문과 동시에, 나는 미칠 듯이 경종을 울려대는 ‘위험 감지’를 무시하고...
“하아아아아아!”
이미 발을 구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현재 눈앞에는 선명하게 펼쳐진 확실한 단 한 가지의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가.
재앙의 동시 잉태 그리고 새로운 재앙의 탄생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분명했다.
“멈춰라!”
거대한 외침이, 찰나를 가르며 터져 나온다.
-그르르르륵!
땅을 긁는 검은 곧 불꽃을 휘감고, 흑백으로 얼룩진 ‘틈’ 속에서도 불사왕의 입은 고고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화르르륵!
시뻘건 혈류가 타오르는 불꽃처럼 화하며 일순간에 코앞에 도달한 불사왕을 송두리째 휘감는다.
허나,
-타앙!
마찬가지로 ‘틈’을 걷는 무인.
숙청왕의 녹슨 도끼날이 나의 검을 막아섰다!
“불사와아앙!!”
한 호흡의 절반, 그리고 그 반 호흡의 다시 절반.
반의반 호흡으로 타오르는 검은 일순간에 본디오 빌라도를 휘감고 있던 불꽃을 자색의 뇌광으로 뒤바꾸며 숙청왕을 덮친다.
“크윽?!”
급박한 에너지의 변화에 엄청난 반발력이 빗발쳤고 이에 대항하지 못한 숙청왕이 자신의 도끼를 놓치며 튕겨 나간다.
그리고 나면, 나는 곧게 내뻗었던 검을 비틀어 다시 사선으로 들어올린다.
눈앞의 ‘차원’이 기괴하게 비틀린다.
동시에 ‘차원의 악마’ 안드레말리우스의 ‘눈’ 열두 개가 나를 응시한다.
비틀린 차원은 나의 검을 강하게 고정한다.
찰나에 날아든 나를 이곳에 붙들어, 불사왕이 저 메시지의 ‘확인’을 토해낼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이다.
모든 이능을 말소시키는 ‘회색’을 손에 쥔 불사왕은 이 ‘틈’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 아주 느릿하게 입을 벌리며 ‘삭제한다’라는 말의 한 음절 음절을 내뱉고 있다.
이윽고, 세 번째 마수마저 나를 덮친다.
부릅뜬 시선을 불사왕에게로 옮겼다가 다시 눈앞을 응시하는 그 찰나에서도, 아주 잠깐에 불과한 시간 속, 솟아오르는 새카만 불꽃의 헤일.
‘흑, 염!?’
그건 ‘흑태자 칼레드’의 아비이자 실질적인 중동 연합의 지배자. ‘흑왕’의 불꽃이었다.
‘틈’ 속에서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헤일의 온도는 극악무도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고, 벌써 두 번째 검을 휘감은 에너지의 격변을 시도한다.
이번에는 자색 번개도, 비산하는 혈류도 아닌 푸르른 수신의 신력이 검 끝에 맺힌다.
-샤, 아, 아, 악!
검은 불과 물빛의 신력이 닿아 폭풍과도 같은 바람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그 폭풍을 뚫고자 걸음을 내디디면, 이 ‘틈’ 속에서 무식하게 끌어올린 힘의 반동이 격통이 되어 내 머리를 덮친다.
“..끅!?”
극악무도한 고통이다.
뇌가 불타오르고, 척수가 끊어지는 듯한 격통이 나를 덮친다.
허나, 그럼에도 나는 한 걸음을 더 내디디며 불사왕에게 향한다.
솟구쳐오른 검을 또다시 비틀어 날이 아래를 향하게 한다.
이윽고, ‘시간의 압력’을 받아 수십 톤의 강철보다도 더 무거워진 검을 강제로 끌어내린다!
다만, 그와 동시에 숙청왕의 손도끼가 이쪽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피하면, 검에 힘을 싣지 못할 것이다.
피하지 않는다면, 저 시뻘건 손도끼는 나의 목을 반으로 가를 것이다.
이윽고 ‘삭제한다.’라는 짧은 한마디에서 ‘한’이라는 단어를 읊조리는 불사왕이 보인다.
더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아아아아악!”
나는 미칠듯한 격통에도, 날아드는 손도끼에도, 각오를 다지며 ‘본디오 빌라도’를 쥔 손에 힘을 준다.
이내 ‘시간의 압력’ 속에 묶여 허공에서 굳어버린 듯했던 검은 드디어 찬란한 유성처럼 빛을 번뜩이며 아래로 추락한다.
-촤, 아, 악!
끊어지는 소음이 귀를 찢는다.
허나, 혈검은 정확히 ‘열쇠’를 손에 쥔 불사왕의 상체를 반으로 가른다.
-휘리, 리리릭!
동시에 날아들던 숙청왕의 도끼는 나의 코앞까지 당도하고...!
세계는 드디어 총천연색으로 물드는 것이었다.
-채쟁!
-채재재재쟁!
-화르르륵!
-싸아아아아아!
‘틈’에서 벌어진 괴현상들이 시간의 흐름이 되돌아온 세계에서 동시에 굉음을 방출했다.
이윽고, 나는 날아드는 충격에 대비하며 바닥난 마력마저 재차 끌어올렸으나, 엄청난 어지럼증이 시야를 흐린다...!
-푸우욱!
흉측한 파육음은 분명, 나의 코앞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다.
다만, 어째서인지 나에게는 그 어떤 물리적 충격도 일어나지 않았다.
“쿨...럭!?”
이내 흐릿해졌던 시야가 돌아오고. 나의 눈앞, 고작 몇센치미터 거리에 돌연 나타난 한 존재가 보였다.
그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시커먼 ‘흑점’으로 물들인 세계의 그 누구보다 ‘틈’을 잘 활용하는 검사.
검제, 요시히사 켄신이 분명했다.
“거, 검제...!”
믿을 수 없는 일에, 나도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그는 나를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내 생의 그 어떤 순간보다도... 네놈이 마련해준 지난 보름이 가장 행복했다. 이 망할 꼬맹아.”
-푹!
검제는 쓰러졌고, 땅에 엎어진 그의 등 뒤에는 나를 향해 날아들던 숙청왕의 도끼가 박혀 있었다.
그 깊이도, 너무도 깊어 필시 이미 심장이 짓이겨졌을 거란 것을 알 수 있다.
허나, 그런 검제의 희생마저 아랑곳하지 않고 더더욱 절망적인 목소리는 들려오니...
“삭제한다.”
분명, 상체가 반으로 갈라지며 땅으로 추락하던 불사왕의 목소리가 아주 또박또박 들려온 것이다.
-띵!
<세계의 ‘이치’를 관장하는 ‘아카식 레코드 2번’ 열쇠의 힘으로 두 번째 금제는 삭제됩니다.>
<주의!>-------<주의!>
-현 시간부로 신적 존재는 이 세계에 ‘직접 개입’할 권리를 얻습니다.
<주의!>-------<주의!>
“뭐... 뭐라고!?”
처음 보는 형태의 메시지.
처음 목도하는 세계의 변화.
하늘은 갈라져, 깨진 유리조각처럼 지상으로 내리고 있고, 저 새카만 새벽 하늘 너머에서 거대한 그림자들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이윽고,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재앙이 잉태되었습니다!
*제1구역.......
ㅡㅡㅡㅡㅡㅡㅡㅡ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재앙이 잉태되었습니다!
*제3구역.......
ㅡㅡㅡㅡㅡㅡㅡㅡ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재앙이 잉태되었습니다!
*제9구역.......
ㅡㅡㅡㅡㅡㅡㅡㅡ
세 개의 재앙 잉태 메시지는 정확히 동시에 하늘에 수 놓였고, 어쩌면 그보다 더 두려운 메시지 하나가 나의 눈앞에 불쑥,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건, 분명 동시다발적 재앙의 잉태와 함께 ‘금제’로 지정되어 있던 현상...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새로운 재앙이 탄생합니다.
*제6구역 ‘프랑스’의 헌터들은 재앙의 탄생을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재앙, ‘사신 레골루스’의 권능에 더해 ‘빛의 신’의 권능마저 흡수한 자.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는 ‘신격’을 획득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시스템은 새롭게 탄생한 재앙의 명칭을 정합니다.>
<재앙, ‘전율하는 사성(死星)’이 탄생했습니다.>
새로운 재앙의 탄생이었다.
-툭.
쓰러진 검제.
상체가 반으로 갈라졌음에도 끝내 죽지 않고 ‘금제’를 삭제한 불사왕.
그리고 단 ‘1초’에 불과했을 찰나의 순간에 격변한 이 세상을 보며 당혹감을 터트리는 수많은 헌터들.
여느 성흔 보유자들과 비슷한 은발은 온데간데없고, 타고 남은 잿가루를 뒤집어쓴 듯한 ‘회색’ 머리칼과 ‘회색’의 눈동자를 가지게 된 존재가 입을 연다.
「짐을 두려워하라. 짐에게 경배하라. 짐이야말로 이 세계의 ‘이치’를 뒤엎은 ‘전율’이니.」
놈은 입을 움직이고 있었으나, 그건 단순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뇌리에 직접 의지를 때려 박는 것처럼 울리고 메아리치는 단어들.
“허... 허억?!”
“아, 아니야. 나, 나는...!”
“히이익!”
“나는 모, 몰라. 어, 어디서 저, 저런 괴물이...?!”
이윽고, 그 텔레파시의 힘은 곧장 드러났다.
분명 ‘불사왕’의 외관은 머리색과 눈동자의 빛깔이 변한 것 말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불사왕’ 그대로였거늘.
군인들은 일순간에 ‘불사왕’을 불사왕이라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들의 눈동자에 짙은 두려움이 서린다.
전투에 앞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사기’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다.
“크크크큭!”
이에 ‘차원의 악마’ 안드레말리우스는 조소를 터트렸고, 날아갔던 ‘숙청왕’과 헤일 같은 흑염을 휘두르던 ‘흑왕’은 어느새 불사왕의 좌, 우로 돌아가 있다.
-텁!
그럼에도, 검을 움켜쥔 나는 혼자서라도 불사왕을 응시한다.
분명, 조금 전과 똑같은 외향을 가졌던 것은 맞으나 눈앞의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직전과 비교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교황 베르토 그리고 대성녀 다나 메이어의 막대한 ‘신성’이, 사신 레골루스의 깊은 ‘죽음’이, 놈의 몸에서는 온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던 것이다.
놈은 말 그대로의 죽은 별.
살아있는 별에 죽음을 안겨줄 ‘전율’ 그 자체가 되었다.
-슥...!
불사왕이 팔을 들어 올린다.
직후, 회백색과 검정이 제멋대로 뒤엉킨 에너지 덩어리가 생겨난다.
마치 악마화를 마친 교황 베르토가 모든 날개를 동원하여 그러했던 것처럼...!
동시에,
그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압력이 밀어닥친다.
역시, 놈이 그토록 갈망하던 목적을 이룬 현재... 자신을 방해하려 드는 이 세계의 헌터들을 살려줄 마음이 없던 것이다.
저 ‘회색’이 내 등 뒤의 헌터들을 덮쳤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지’.
이젠 수신의 신력으로도 우위를 점할 수 없는 ‘미지의 죽음’이 눈앞에서 일렁거린다.
이길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저걸 막아내고... 이곳 모두를 지키면서 또한 저 ‘전율’에게서 승리를 거머쥔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 걸까.
긴장이, 고동이, 압력이, 마른 침이, 식은땀이...
정확히 동일한 순간, 나에게 휘몰아친다.
이윽고, 불사왕의 손끝에서부터 그 ‘회색의 응어리’가 이쪽을 향해 쇄도하려던 바로 그 순간,
“멈춰라!”
바로 또다시 믿을 수 없는 목소리는 들려온다.
목소리. 그건 어쩌면 내게 그 누구보다 친숙해야 할 목소리.
허나, 오직 지금 만큼은 낯설게만 느껴지는 그 목소리.
그는 마치 작은 게이트가 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허공을 찢으며 나타났고...
“거래를 하지.”
그는 새카만 전투복으로 전신을 감싼 ‘암행’을 이끄는 자.
숱한 수수께끼를 풀어헤치고 동시에 자신 스스로가 엄청난 수수께끼를 품고 살아가던 자.
“이준학... 준장.”
바로 이준학이었다.
「흠.」
허나, 갑작스러운 이준학 준장의 출현에도 ‘불사왕’은 그저 지고하게 영험한 눈동자로 담담히 그를 응시할 뿐이다.
-툭!
-투두두두둑!
그러자, 이준학 준장은 돌연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마공학 돌격 소총을 땅으로 집어 던졌고, 그를 따라 ‘암행’의 단원들 역시 자신의 총을 버렸다.
마치, 정말로 자신은 ‘거래’를 하러 왔을 뿐이라는 걸 강조하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사왕은 쭉 뻗은 손에서 ‘회색 에너지’를 거두지 않았으나, 당연하다시피 이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이준학 준장은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수십 번의 회차 동안 찾아 헤메이던 첫 번째 열쇠... 아카식 레코드 1번의 행방을 알고 있다.”
“아카식, 레코드라고...?!”
나는 이준학 준장이 그 열쇠에 대해 알고 있음에 눈을 부릅떴고 동시에, ‘재앙’이 되면서부터 굳은 석상처럼 움직임이 없던 ‘불사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전율하는 사성(死星)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