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55화.
-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얼굴 곳곳에 깊게 팬 주름이 보인다.
허나, 무려 한 세기에 달하는 시간을 이 시체 썩은 내로 가득한 지하 묘실에서 보내었음에도...
-저와 함께 가요. 프리...... 이제 더는 사신의 농간에 휘둘리며 살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불사왕은, 아니.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라는 헌터는... 다나 메이어라는 여인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는, ‘자의’를 잃어버린 당신께 안식을 선사하겠습니다.
그녀는 끝끝내 ‘신성 주막’으로 프리드리히를 붙잡아 함께 소멸하길 택했다.
그 모습은 참으로 고결했고, 밝고 아름답다.
허나, 이제와서 자신의 심장 그 어딘가에서 박동하는 그 감정이라는 것에 휘둘리기엔...
-자의를 잃었다... 사신의 농간에 이 몸이 놀아나고 있다. 그리 말을 했더냐. 방황하는 성녀여.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라는 헌터는 이미 너무 먼 곳까지 와있었다.
-설, 마... 당신......!
피로 얼룩진 대성녀의 외침이 들려왔다.
허나, ‘불사왕’은 무정히 그녀의 심장을 적출하였고 그 피를 받아마셨다.
그렇게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는 처음으로 이건우가 기억하는 전생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모든 건... 지금껏 존재한 적 없던 미래를 위해......”
위장으로 흘러들어간 다나 메이어의 피가 그의 육신을 융해시킨다.
허나, 녹아내린 장기는 수복되고 또 붕괴한다.
그렇게 수백, 수천, 수만 번의 수복과 붕괴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불사왕의 육신에는 자연스레 ‘신성력’이 스며든다.
이윽고 그 죽음에 닿은 아슬아슬한 경계의 신성력은 ‘회색’으로 빛난다.
***
“죽음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난 지고의 존재... 사신을 죽이기 위한 힘은 동류의 죽음 마력도, 상극의 신성력도 아니었다. 양립할 수 없는 이질적인 두 성질을 모두 가진 힘... ‘회색’이었다.”
-찌거거걱!
영체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추적추적하고 끈적끈적한 소음이 터져 나온다.
동시에,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 사도...! 파울라... 스! 네가 어찌이이이이!
재앙은 처음으로 화형대에 오른 인간처럼 극한의 절규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흑색 마탑은 연구를 거듭했다. 나는 통합 사령 사념체 주느비에브를 만들어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지. 그리고 깨달았다.”
마치 인간의 뱃속에 손을 집어넣고 휘젓는 것처럼, 사신 레골루스의 그림자를 막무가내로 헤집어놓는 불사왕.
이윽고, 놈은 손끝으로 무언가를 찾아낸 듯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영체와 사념체들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진짜 생명이 위협을 받으면, 잠시 자신의 전부를 ‘물질화’시켜 영적인 공격으로부터 회피한다는 사실을... 그래. 바로 이것처럼 말이지.”
-촤아아악!
불사왕의 입이 귀에 걸릴 것처럼 크게 벌어진다.
사신의 그림자가 끈덕지게 붙잡는 무언가를, 끝끝내 불사왕이 무정하게 꺼내 들면...
그것은 ‘회색’을 품은 작은 구슬이었다.
“즐겁지 않나. 뇌제. 짐이! 이 ‘불사왕’이 드디어 ‘죽음’을 손에 쥐었다! 이로써 드디어 짐은... 허울 좋은 이름만이 아닌, 진정한 ‘불사’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뚝,
그림자에서 구슬이 떨어져 나오자마자 정말 한순간에 사그라지는 새카만 사신의 그림자.
더욱이, 그 사신이 직접 ‘소환’했던 지천을 가득 채우고 또한 하늘 위마저 검게 물들이던 ‘언데드’ 무리 또한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덧없이 먼지가 되어 녹아내렸다.
이윽고, 마치 조금전 ‘소멸’한 사신과 같이 ‘회색’의 눈동자를 가지게 된 불사왕의 눈이 향하는 지점은,
“흐읍!”
“하아아!”
“미친 놈...!”
사신의 죽음을 확인함과 동시에 일말의 주저 없이 검을 빼 들고 달려드는, 뇌제, 검성, 검제의 쇄도하는 검광이었다.
-파지이익!!
무광무음의 벼락이,
-끼이이이이이이익!
고음의 굉음을 토해내는 달빛이,
-휘이이이잉!
서슬퍼렇게 번쩍이는 귀신의 검이,
일순. 불사왕의 머리, 심장, 허리를 향해 휘몰아친다!
다만,
약점을 그대로 노출한 자세로 불사왕은 기이하게도 미동도 보이질 않았다.
도리어 기괴하게 일그러진 입꼬리를 더욱 올리며, 전신에서 오직 ‘목’만 움직여 정확히 이건우를 응시한다.
-탕!
-쾅!
-화르륵!
이윽고, 천외경마저 넘어선 세 헌터의 검을 막아내는 건 전혀 다른 방향에서 튀어나온, 서로 다른 무언가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시가 돋친 팔.
마력임에도 물리력을 가지는 흑염(黑炎).
그리고 피로 얼룩진 대검이 각각 거친 검격을 막아선다.
-후우우우우우웅!
이윽고 갑작스럽게 일그러진 공간의 틈으로 정체를 드러내는 이들은...
전생에도 이미 몇 번이나 나와 전투를 벌인 이력이 있는 자들.
“중동 연합의 수장, ‘흑왕’ 그리고 ‘숙청왕’, 거기에......”
후웅.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울림과 함께 당당히 불사왕의 오른편에 자리하는 새카만 형체.
그것은 다섯 개의 다리를 가졌고, 여덟 개의 팔과 열두 개의 눈 또한 가진 괴물.
“이번 생에는 ‘악마’와도 계약한 거냐. 불사왕.”
그건 지난 생에도 세계 각국에 악명을 떨치던 ‘차원의 악마’ 안드레말리우스가 분명했다.
드디어 놈은 숨겨둔 자신의 패를 모두 공개했다.
‘숙청왕과 흑왕’은 놈이, 항상 가장 마지막에 꺼내 드는 히든카드였으니 말이다.
“허나, 이번만큼은 네놈의 실수다.”
앞선 전쟁에서는 끝까지 오픈하지 않던 카드를 이렇게 꺼내 들었다는 건, 이제 놈에게 남은 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파지이이이이이이익!
나는 푸른 물결과 시퍼런 뇌광을 품고 새하얗게 번뜩이는 ‘본디오 빌라도’로 놈을 겨뉘며 크게 도약했다.
“넌 마지막 패를 끝까지 숨겨두어야 했어.”
냉랭한 목소리와 함께 높은 하늘에서 사선을 긋는 검.
-츄욱?!
동시에 악마가 일그러뜨린 그 공간마저도 송두리째 짓이길 정도로 밝은 뇌광이 내가 휘두른 검흔을 따라 흐르며 나아가기 시작한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것은 비, 또한 벼락, 마지막으로 핏줄기가 되어 방금 이 자리에 당도한 ‘악’을 향해 흐른다.
넋을 놓고 보았다가는 금세 눈을 실명시킬 만큼의 거대하고 날카로운 ‘뇌검’이 놈들을 통째로 집어삼킨 것이었다!
허나,
“마지막이라...”
-치이이이이이이익!
사방으로 비산하는 번개의 굉음 속에서도 여유롭기 그지없는 불사왕의 중얼거림은 들려왔다.
“그대가 어찌 짐의 ‘현재’를 끝이라 규정한단 말이냐.”
-파아아아아!
“그대는 모른다.”
-화르르르륵!
“짐은 이제야. 출발선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사나운 번개와 흐르는 신력 이윽고, 불타는 혈공을 순서대로 배치해둔 나의 일격을 막아내는 건, 다름 아닌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짙은 ‘잿빛’이었다.
이윽고 벼락과 비와 불꽃의 번뜩이던 광채마저도 한 호흡에 흡입해버리는 그 ‘한점’은 다름 아닌 사신 레골루스의 실체로부터 끄집어내었던 바로 그 회색 구슬이었고.
“저건...”
“마력, 아니 ‘이능’의 현상을 일으키는 모든 에너지를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었다.”
두 검사는 부릅뜬 눈으로, 목전에서 일어난 현상을 면밀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흡수’라기 보다는 ‘무효화’에 가까운 힘입니다.”
냉정히 덧붙인 한마디에 두 노검사는 침음을 흘렸다.
무효화란 1세기에 달하는 헌터사에서도 딱 한 번 존재했던 적이 있던 전설적인 악인의 ‘스킬’이었으니까.
듣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것이다.
“그게 네놈의 노림수인가. 불사왕. ‘사신’의 핵으로부터 탄생한 모든 ‘이능’을 말소시키는 힘... 그걸 손에 넣기 위해 나를, 사신에게로 인도했다?”
세상 모든 ‘이능’을 말소시키는 힘은 확실히 성가신 힘이다.
허나, 이미 인류는 그 힘을 휘두르는 ‘악’을 처단한 이력이 있다.
즉,
“그것만으로는, 네놈의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손을 휙 내뻗으며 일대를 훑었다.
이미 이 땅의 언데드들이 소멸하던 순간부터 오직 마탑의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는 발걸음 소리는 어림잡아도 ‘만’에 달한다.
또한, 시야를 넓히자 하늘 그리고 마탑의 정상마저도 우습다는 듯 더 위의 창공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비룡군 데메테르와 비공정과 ‘스트라우스’의 헌터들이 보인다.
“세계는, 네놈의 그 계략이 무엇이건 힘을 합쳐 저지할 준비가 되어 있다. 네놈의 계략에 팔다리가 잘리고 스스로 무기마저 내려놓은 채 너를 맞이했던 과거와는 아예 다른 세계라고!”
놈의 계략, 생각, 음모가 궁금했다.
허나, 그 모든 것들이 고작 ‘무효화’를 일으키는 신물 얻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젠 주저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너의 모든 것을 절멸시키겠다! 이제 인류는... 패배하지 않아!”
헬기의 엔진음이 들린다.
당장이라도 마력 포격을 퍼부으려는 듯 마법을 캐스팅하는 ‘위치스’가 느껴진다.
비룡의 주둥이에서는 옅은 불길이 넘실거리고 있으며,
총 여섯 개국의 ‘만’ 명 이상의 헌터들이 중무장을 한 채 이 마탑의 정상을 향해 뛰어 올라오고 있다.
‘모든 것’이 불사왕을 향해 날붙이를 겨뉜다.
이미 ‘세계’는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라는 헌터를 온전한 ‘적’으로 인지한 것이다.
모든 것을 걸고 벌이는 진짜 ‘마지막’ 전투가 눈앞에 있다.
그럼에도 상황은 이쪽에게 유리하다.
놈의 자랑이자 놈의 핵심인 ‘무한’을 인류 전체가 자아낸 ‘유한’으로 짓누를 준비가 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놈이...
그것을 꺼내 들기 전까진 말이다.
“그런가.”
놈은 목소리는 끝까지 담담했다.
허나, ‘사신’을 자신의 손으로 소멸시키던 순간부터 치솟아 있던 입꼬리는 여전히 호를 그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기괴했고, 그랬기에 정체불명의 불안감이 응당 나를 비롯한 세계연합군 전체에게 번져 나아갈 무렵,
나는 또다시 검을 쥐었고,
검사들은 달빛과 무형의 검을 이미 내지르고 있었으며,
‘차원의 악마’가 움직임에 따라 형형색색의 마력 포격이 은하수처럼 반짝이던 그 찰나의 순간...
놈은 옅은 녹색을 품고 있는 물건 하나를 품에서 꺼내 들었다.
그건, 나로서도 모를 수가 없는 물건으로 이 게임처럼 변해버린 세상에서 유일하게 ‘시스템 메시지’의 법칙을 벗어나게 해주는 열쇠였다.
그 이름은, ‘아카식 레코드II’
“저... 건?!”
찰나의 순간,
이미 혈검과 혈창 그리고 ‘오브-성혈’에 박차를 가하며 세상울 붉게 물들이던 시점. 나는 정확히 그것을 인지해 끊어지는 목소리로 경악을 터트렸고,
불사왕은 주저 없이 그 ‘아카식 레코드 2번’에 사신의 실체로부터 튀어나온 ‘회색 구슬’을 가져갔다.
이윽고, 영롱한 청녹색을 품고 있던 그 수수께끼의 열쇠가 돌연 타고 남은 잿가루와 같은 ‘회색’으로 물들면...!
-딸깍!
열쇠는 허공을 파고들어 어딘가에 맞물리는 소음을 일으켰고, 이내 현장의 모든 이들을 경악케 하는 메시지는 나타난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재앙, ‘사신 레골루스’가 토벌되었습...
*토벌되었...
*토벌되...
*토벌토벌토벌토벌토벌토벌토벌토벌토벌토벌토벌토벌토토토토토토토토토토토토▽!&$●♠#◈...!
ㅡㅡㅡㅡㅡㅡㅡㅡ
‘시스템 메시지’.
인류의 세계에 ‘게이트’라는 이계의 범람이 지옥을 선사함과 동시에 각성이라는 기적을 주었던,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다름 아닌 그 ‘시스템 메시지’가 녹아내리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피이이이이!
-콰아앙!
-쾅! 콰과과광!
이윽고, 오직 불사왕을 향해 내리던 그 모든 마력 포격들이 쉼 없는 연쇄 폭발을 일으키지만, ‘회색’으로 물든 열쇠와 그 열쇠로 열어젖힌 ‘시스템 메시지’는 놀랍게도 그 폭발을 모두 흡수하기에 이르렀다.
그 경악스러운 광경에 결국, 휘두르건 검을 거두고 크게 도약해 ‘적’과의 거리를 이격하는 헌터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미지의 현상’에 눈을 번뜩이는 건 이쪽만이 아닌 듯 했다.
숙청왕과 흑왕. 하물며 영생을 살아왔다 여겨지던 ‘차원의 악마’마저도 두 눈을 크게 뜨고 융해되어 흘러내리는 ‘메시지’를 응시하고 있다.
-띵!
그때 또 다른 메시지 하나가 청명한 소음을 일으키며 나타나지만, 그 내용물은 녹아내린 메시지보다도 더 괴상했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재앙, &◐?%♠$!%●^★[email protected]▩#!◀○§※◈
*오류입니다.
*오류입니다. *오?류입&니다.
*오류, 오류, 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류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ㅡㅡㅡㅡㅡㅡㅡㅡ
불안정한 침묵이 현장을 집어삼킨다.
그 누구도 움직이질 못하고,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시간이 벌써 1분 넘게 지속되던 찰나,
가장 먼저 ‘변화’를 이룩한 것은 다름 아닌 이 괴현상을 일으킨 장본인. ‘불사왕’이었다.
“‘이어져 온 꿈’이여...”
놀랍게도, 놈은 ‘오류’라는 단어만을 고장 난 듯 토해내길 반복하는 그 메시지를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그 ‘시스템 메시지’를....... ‘이어져 온 꿈’이라 칭하면서 말이다...!
전율하는 사성(死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