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53화 (153/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53화.

나의 기억 속, 그가 말한다.

-기억하십시오. 젊은 동방의 헌터. 빛은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을 겁니다.

참으로 명예롭게, 어린 아이들과 노인 그리고 약자들을 위해 불구덩이에 뛰어들던 위인. 또한, 사실상 다나 메이어와 동년배인 터라 죽을 날이 머지않았던 자.

교황 베르토 호르미다스.

그는 교인들을 특히나 사랑하기로 유명한 자였고, 특히나 젊은 날의 숱한 희생을 거쳐 현재는 몸이 망가진 안타까운 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그간의 노력을 증명받듯, 타고나지 않았음에도 신의 선택을 의미하는 ‘성흔’을 받는다.

본디 일흔하나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려 했던 그에게 ‘성흔’은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게 해준 기적이었다.

그 덕에 그는 그렇지 않아도 신실한 자였거늘,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자로 거듭났다.

그의 손에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기사, 전사와 같은 빛의 사용자가 되었고 그는 세계의 구원자 대성녀와 함께 오늘날의 바티칸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 나의 앞에서 울부짖는다.

“모든 것을 쥐고 태어난 네놈 같은 S급의 씨발 헌터새끼들은 꿈에도 모를 거다! 나 같은 빈손의 아무것도 없이 태어난 인간들이 얼마나 좆같은 생을 살아가는지 말이야!”

감히 기억 속의 ‘교황’과 같은 사람이리라고는 상상조차 되질 않을, 욕지거리를 퍼부으면서 말이다.

다만, 그의 욕지거리에는 힘이 있었다.

가장 밟은 빛을 품은 성흔의 보유자가 휘두르는 ‘죽음 마력’은 그 자체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힘이 있던 것이다.

-후웅!

날아든다.

마치 빛줄기와 같이 선명한 직선을 아로새기며 ‘새카만 것’이 날아든다.

나는 한 손에 쥔 ‘여의’에 마력을 들이부으면서도 빈손으로 검을 뽑아 이를 비틀었다.

-챙!

그것은 분명 형체가 없는 어둠이었으나, 맞부딪힘과 동시에 쇠가 울리는 소음이 터져 나왔다.

“뇌제!”

“뇌제님!”

일순간에 돌변한 교황의 겉모습에 무인들은 들이닥치는 성기사들을 상대하면서도 하나, 둘씩 나를 돕고자 발을 구르고 있었는데, 나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

“성기사들에게 집중하세요. 교황은 제가 맡습니다.”

의아하다는 눈과 일말의 주저 없이 끄덕이는 고개가 무질서하게 교차한다.

지금도 성기사들은 하나, 하나 마탑의 정상에서부터 추락하고 있다.

허나, 빛의 보호를 받는 그들이, 그런 추락으로 목숨을 잃을 일은 없기에. 오백의 무인들은 점점 더 늘어나는 적을 상대해야 할 처지에 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 자칫 건드렸다간 이 지상의 모두를 날려버릴 ‘폭탄’. 교황까지 참전했다간 어렵게 생겨난 전선이 다시금 어그러질 것이 분명했다.

냉정하게 이 프랑스는 적진 한복판이다.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언데드가 밀려들지 모를 형국. 그러니 차라리 교황을 나 홀로 감당하는 편이 거시적인 시각에서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물론, 나는 파괴불가 오브젝트를 깨부수기 위해 ‘여의’에 마력을 들이붓느라 몸이 고정된 상태지만 말이다.

그때, 눈앞에서 두 쌍에 날개로 ‘잿빛’을 응집시키던 교황이 입꼬리를 씩 말이 올리며 웃었다.

“하하하하하! 맡는다 했느냐! 이 몸을, 이 ‘진리’에 닿은 베르토를 네놈이 혼자서 말이더냐! 해볼 태면 해보아라! 네놈의 그 오만과 자만과 역겨운 자신감마저 이 베르토 호르미다스가 모조리 짓눌러 주겠다!”

어느새 눈두덩이만이 아닌 얼굴 전체가 마치 ‘검제’의 흑점처럼 검게 물든 교황.

그는 큼지막하게 커진 송곳니를 한껏 드러내며 입을 벌렸고 동시에 네 쌍의 날개가 만들어낸 둥그런 ‘잿빛 덩어리’가 날아들었다.

“...흠!”

동시에, 나는 한 손으로 쥐고 있던 수왕검에 막대한 ‘신력’을 휘감아 올렸다.

-채앵!

거대하다 못해 웅대한 울림이 터진다.

다만, 반으로 쩍하고 갈라진 ‘잿빛’은 리치들이 다루는 죽음 마력과 새하얀 신성력을 동시에 발현하며 폭발한다.

-샤아아아아아!

-푸르륵! 푸르르르르륵!?

터져 나오는 부패와 신성력은 서로가 서로를 좀 먹듯 거친 소용돌이의 기류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 서 있던 나의 몸에는 끔찍한 작열통과 육신이 썩어 문드러지는 고통이 치솟는다.

-치익! 치지지직!

부패에 노출된 나의 군복이 녹아 그 안의 신화급 무장 ‘아이기스’가 새하얀 번개를 터트리며 힘으로 부패와 신성력을 모두 몰아낸다.

허나, 그 아수라장 속으로 굳이 비집고 들어오는 거대한 팔 하나가 있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흙을 퍼먹었다! 죽지 않고자 나무 껍데기를 삶아 먹고, 삼일 밤낮을 복통에 앓았지! 그러면서도 나는 싸웠고 그 썩을 다나 메이어와 함께 세상을 구했단 말이다!”

흉측한 놈의 팔이 틀어쥐는 것은 나의 손목이다.

이내 신성력과 제우스의 낙뢰 그리고 부패가 만들어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온 놈의 머리는... 이미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런 나를 죽게 놔둘 셈이냐! 나는 빌었다. 다시 한번 ‘성흔’을 내려달라고! 다시!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군림할 시간을 달라고!”

나타나는 것은 악마의 머리.

염소의 머리에 거대한 뿔을 달고 박쥐 날개 두 쌍을 펼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교황’이었던 그것의 ‘전신’에는 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불사왕이 종용하던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면 수명을 얻을 수 있다고?”

-콰득!

날아든다.

세 배, 네 배는 두꺼워진 놈의 손톱이 나의 머리를 향해서.

-챙!

다만, 신성력과 부패라는 아비규환을 반으로 베어낸 나의 수왕검은 그 손톱마저도 쳐냈다.

동시에 전과는 비교를 불허할 만큼의 푸른 물결을 끌어올린다.

-촤아악!

내가 내뻗은 검은 놈의 팔을 절단한다.

그러자 놈의 팔에서 또다시 시커먼 부패가 치솟는다.

그 부패를 다시 짙은 신력으로 베어 가르면 이번에는 나의 머리 위에서 신성력은 내린다.

“불사왕? 아무것도 모르는 헛소리! 놈도 나의 원대한 계획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놈의 종용에 넘어간 것이 아니다! 내가 그 하등한 네크로맨서를 이용한 게지!”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빛이 내 전신을 끓게 만드는 작열통을 선사했다.

이젠 다리마저 역관절을 가진 숫양의 형태로 뒤바뀐 교황은 웃고 있었다.

다만, 그것도 찰나에 불과했다.

상대가 아무리 신성력과 죽음 마력을 동시에 담아 휘두르는 괴물일지라도...

나는 이미 서로가 서로를 불태우는 ‘전격’과 ‘혈속성 오러’와 ‘신력’을 모두 조화롭게 휘두르던 헌터였으니까.

-휘익!

귀를 찢는 날카로운 굉음이 솟구친다.

동시에 내 전신을 물들이던 신성력이 갈라진다.

반으로 쩍하고 갈라진 빛에 중심에는 시뻘건 혈류가 용솟음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혈공으로 제어해 놈에게 비바람처럼 흩뿌렸다.

“역이용인가...”

그러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지난 생에도, ‘불사왕’을 자신이 이용했다 착각하는 자들은 많았기에. 새삼 그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치이이이익!

이내 무언가 끓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악마가 된 ‘교황’의 팔 한 짝은 녹아내렸다.

그 팔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혈속성 오러가 붉게 빛난다.

다만, 자신의 팔 하나가 뚝, 떨어졌음에도 교황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오직 하나였다.

“놓아라.”

놈은 내가 쥔 ‘여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진리에 닿은 나를, 무시하려는 게냐아아아!”

큰 고함과 함께 놈이 내딛는 그 발걸음 하나, 하나에 빛과 죽음이 뒤엉켜 치솟았다.

새카만 하수구의 폐기물들과 한 점의 불결함 없이 청량한 빛이 서로 뒤엉켜 비명을 토해내듯 날뛰었다.

-퀘에에에엑!

-샤아아아아!

그 반발력만으로, 지상에 발을 딛고 싸우던 무인과 성직자들의 이목은 집중되는 것이었다.

이윽고, 이미 악마가 된 교황은 내게 주저 없이 큼지막한 손을 내지르며 말한다.

“네놈! 마력의 8할을 그딴 막대기에 쏟아부으면서 완전해진 나를 상대하겠다는 것이냐! 나를 무시하는 거냐! 나를... 언제까지 거추장스러운 ‘대성녀’의 병풍으로 여길 셈이냐!”

동시에 있을 수 없는 빛과 죽음이 놈의 거대한 고함과 함께 쇄도하지만...!

“하아...”

나는 어느새 3M로 불어난 놈을 코앞에 두고도 작게 한숨을 내쉬며 검을 검집으로 되돌리며 읊조렸다.

“아직도 모르겠나... 난 마력의 8할을 ‘여의’에 쏟아부으며 너를 상대하고 있는 게 아니다. 교황.”

-착!

터져 나오는 건 경각에 달한 쇠와 쇠의 울림이다.

자세는 엉망진창이다.

‘여의’를 쥔 팔은 아직도 ‘재앙의 알’을 겨냥한 그대로였고,

그저 검을 검집에 넣었었다 뽑아 드는 ‘발검’이라 칭하기에도 민망한 그냥 수평의 베기.

다만, 다 짧은 검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네놈은 2할이면 충분하기 때문이지”

-콰지이이이이이익!

번개와,

-쐐애애애애액!

혈류와,

-파아아아아아아!

신력의 거센 울림이었다.

놈의 전신을 베어가르는 자색 번개와 붉은 신력과 푸르른 혈류.

서로가 서로를 미친 듯이 물어뜯는 ‘에너지’들이 교차하고 그 반발력과 조화의 미묘한 간극에서 무엇이라 정의내릴 수 없는 거대한 ‘선’이 그어진다.

“이럴 수...!”

이윽고 그 ‘선’ 앞에, 악마의 형상을 한 가장 신실한 자는 정확히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었다.

“...가아아아아아!”

놈의 비명은 내리는 폭우처럼 끝이 없었다.

***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가 내린다.

그곳은 거대한 전투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할 수많은 흔적만이 남은 자리.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내려둔 비가 적시는 건, 새하얗게 얼어붙은 공허의 철창이다.

그리고 그 차가운 철창 속에서 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저 머나먼 하늘을 응시하는 남자가 있다.

남자의 긴 머리에 신력의 비가 맺혀 뚝, 뚝 떨어진다.

수신의 사도가 가지는 두 번째 권능, ‘어비스 프리즌’에 갇힌 자.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얼굴에는 미동이 없었다.

그저 어둑한 하늘 아래서 몇 번이고 빛을 번뜩이는 흑색 마탑의 방향을 응시하고 있을 뿐.

허나, 그럼에도 그의 머리 위에서부터 맺히고 나비는 나아간다.

마치 은하수와 같이, 나비들이 만들어낸 길이 반짝인다.

“교황과 교단이 흘린 피는 땅에 스민다.”

이내 ‘불사왕’은 손에 쥐고 있던 돌 하나를 툭 하고 흙바닥에 떨어뜨리며 말했다.

“번개는 번뜩이고 수많은 마력 또한 빗발친다.”

또다시 ‘불사왕’은 손에서 두 개의 돌맹이를 흙바닥에 떨어뜨린다.

“전쟁으로 피운 불씨는 그 모든 것을 장작 삼아 불꽃을 키운다.”

-툭!

날카로운 검의 형상과 닮은 여러 돌멩이들도.

-툭!

마치 하늘을 거니는 ‘날개’의 형상을 닮은 수많은 돌멩이도.

-투둑, 투두두둑!

모두 흙바닥에 닿아 나뒹굴고 있을 때...

“이윽고, 대지를 집어삼킬 그 불길마저 먹어치울 ‘죽음’은 땅을 뚫고 솟아오른다.”

불사왕의 짧은 읊조림에 따라 돌연 ‘어비스 프리즌’의 내부임에도 새하얀 백골의 손아귀가 땅밑에서부터 솟아올라 모든 돌멩이를 꽉 움켜쥔다.

“이로써 ‘죽음’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손에 쥔 적이 없던 힘을 손에 넣으리니......”

푸른 눈동자가 번뜩인다.

이내 불사왕의 눈동자가 포착한 것은 산 너머, 하늘 위로 무한히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원기둥이었다.

아니, ‘태고의 흡혈귀’를 도륙 내던 그 광경을 지켜보던 불사왕은 알고 있었다.

저것이 바로 어느 날 갑자기 뇌제가 들고 나타난 비수. 제천대성의 애병. ‘여의’였음을.

“비로소, ‘나’는 완성되리라.”

-씩

‘어비스 프리즌’에 갇히는 그 순간부터 그 어떤 표정 변화도 보이질 않던 불사왕은 불쑥 행복에 겨워 미치겠다는 듯한 기괴한 미소를 짓는다.

***

빛의 신에게 다가가던 그 경지가 높았던 만큼, 보통의 신자들보다 훨씬 더 밑으로, 가장 저열한 밑바닥까지 닿은 악마, 베르토 호르미다스는 외쳤다.

“나다. 지금의 바티칸을 만든 건 나야! 다나 메이어도, 성자라고 우쭐대는 그 애새끼도 아니라고! 내가, 내가 일구었다. 내가 만든 신성 바티칸이다!”

버럭, 버럭. 입에서 거무죽죽한 핏줄기 따위를 게워내면서도.

일검에 하체와 상체가 갈라진 ‘교황’은 흉측하게도 그 형태 그대로 팔과 다리로 땅을 기어오면서까지 대항했다.

서울 한복판에 나타났던 악마가 그러했듯, 악마종에게 ‘죽음’이란 우리와는 다른 개념으로 통용되는 것이다.

-츄르륵!?

놈은 육신의 붕괴와 수복을 반복하면서도 끈질기게 나를 향해 내달렸다.

마치 심장에 들러 붙어있는 저것, 정체 모를 언데드를 빨리 베어달라는 듯.

“흠.”

다만 나는 그것을 베지 않는다.

이곳에서 이 교황을 폭발시켜 이 일대의 모든 걸 날려버리는 것이 불사왕의 계략임을 알기에 나의 검은 놈을 단숨에 죽이지 않았다.

“나야말로 가장 신실한 자다. 바티칸의 정점에서 영생을 누리고, 만생을 굽어살펴야 할 자는 이 썩어빠진 세계에 오직 나뿐이란 말이다아아아!”

나 역시 그 말에는 일부 공감하는 바였다.

교황만큼이나 신실한 자는, 그리고 교황만큼이나 선한 자는 이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존재였으니까.

허나, 나는 놈이 갈고리처럼 내뻗는 손을 일검에 절단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틀렸다. 인간은 죽는다. 죽는 것도, 늙는 것도 인간이라는 생물의 덧없는 아름다움이다.”

“네놈이 뭘 안다고 떠드는 거냐! 이 세상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머저리들이,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고서 하는 말이냐!”

그러자, 교황은 자신의 팔에서 빛이 뒤섞인 검정 피가 철철 흐르는 것도 잊은 듯 행동을 멈추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그 부분이, 자신의 역린이라는 듯이 말이다.

“나는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나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국해야 할 의무를 짊어진 교황인게야!”

놈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허나, 저런 악마의 형상으로 ‘하느님의 나라’라는 말을 읊조려봤자 변할 것은 없었다.

“떠나는 이에게는 떠나가는 이의 책무가 있다. 그건, 남겨진 이들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지.”

“나는 살 것이다! 그딴 책무! 살아서, 더 많은 수명을 얻어서! 그 책무를 다하면...!”

놈은 발악하듯 몸을 뒤틀며 또다시 내게 팔을 들이밀지만, 나는 무심한 눈으로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장 죽어가는 성직자들의 목소리도 귀담아듣지 않으면서, 책무 같은 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군.”

당장, 지금도 들린다.

마탑을 타고 오르는 검제와 검희 천마의 손에 지상으로 추락하고, 천마의 그림자라는 무인들의 손에 죽어가는 바티칸 성직자들의 비명소리가...

“주... 주여 저희에게 빛을...!”

“아, 아니야.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가족들의 모, 몸속에 언데드가 기생해서...! 따, 따르지 않으면 주, 죽인다고 했다고!”

불사왕에게 이용당해, 또는 협박당해 이 자리에 불려나온 성직자들의 억울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교황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럼에도 천마를 따르던 무인들에게 자비는 없기에 날붙이는 거침없이 그들의 미간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리고 저들을 이 상황에 몰아넣은 건, 다름 아닌 눈앞의 악마. 교황이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헛소리는 이제 지긋지긋하니 관두지.”

“나, 나는...”

“너는 그냥 살고 싶었을 뿐이다. 한 번의 기적으로 새로운 생을 얻고, 그 영광과 명예에 취해 미련을 버리지 못한... 당신 역시 당신이 혐오하던 머저리 중 하나일 뿐이었군.”

“나... 나는......”

긴 주저와 갈등이 놈의 눈동자에 휘몰아친다.

이윽고, 놈이 결론을 내리지 못해 멈춰있던 사이 드디어 끝은 맺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악!

거대한 벼락이 쉼 없이 내리치는 굉음과 함께, 줄곧 내 한 손에 쥐어져 있던 ‘여의’가 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것이었다.

자색의 광휘가 내 등 뒤에서 빛난다.

그제야, 나를 응시하며 넋을 놓고 있던 교황의 눈에 이채가 서렸고, 나는 망설임 없이 양손으로 힘껏 틀어쥔 수왕검을 휘둘렀다.

“네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 우선 마음에 담아두겠다.”

비를 머금은 푸른 검은 나아갔고,

피를 머금은 혈류가 뒤따른다.

마력만 있다면 정신력이 바닥날 때까지 ‘악마종’이라도 저 지경이 되어 목을 치면 끝내 버틸 수 없을 것이기에.

담담히 나아가는 검은 분명, 드디어 흉측한 빛과 흑마력의 융합체인 교황의 명을 끝낼 것이 분명했다.

-달그락!

바로, 그 순간이었다.

흙바닥에서 돌연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짙은 구릿빛의 뼈다귀 손.

그 앙상한 뼈다귀의 손은 방금 내지른 나의 수왕검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잡아버렸다.

“뭣?!”

그리고 나는 그 구릿빛으로 반짝이는 ‘뼈’를 이미 몇 번이고 본 기억이 있었다.

-터엉!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젠 두개골마저 들어 올린 스켈레톤이 소리쳤다.

-Kaaaaaaaa!

“질병의 기사...?”

그 구릿빛 광택에 녹색으로 번뜩이는 안구.

그건 세상 모든 부패와 질병을 짊어진 사신의 정예 기사.

스켈레톤 4기사 중 하나인, 질병의 기사가 분명했다.

‘재앙의 현현보다 4기사의 소환이 빠르다고?’

그제야, 나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동시에, 누군가의 길고 긴 계략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예측되는 변화는 시작되었다.

길고 긴 계략의 실체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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