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51화.
백만의 생체전기를 쥔 손이 이글거린다.
별빛 한 줌 들지 않는 칠흑의 밤하늘과 그 어둠을 유영하는 새하얀 백골의 드래곤이 있었다.
-불사와아아아아앙!
어둑한 밤을 환한 대낮으로 바꾸는 수천의 갈래 번개가 쏘아 올려진다.
동시에 나는 목소리가 다 갈라질 만큼 악에 받쳐 외쳤지만,
-후웅!
-후우웅!
그런 나를 냉랭하게 응시하는 불사왕의 눈동자. 점점 더 위로, 하늘 위로 멀어져갈 뿐이었다.
악몽을 꾸었다.
회귀를 통해 생활관에서, 신병으로서 눈을 떴던 시절부터 줄곧. 그 악몽을 꾸었다.
당시의 나는 무려 재앙을 상대로도 부족함이 없던 인류의 창이었기에, 나는 불사왕을 쫓고 또 쫓았으나...
놈은 나를 발견할 때마다 드높은 창공에 올라 무심하게 꿈틀거리는 언데드를 비처럼 쏟아 내릴 뿐이었다.
모든 건, ‘하늘’이 놈의 것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생체전기량’이 몇백만에 달하면 뭐 어쩌란 말인가.
‘제어력’이 부족했던 나는 오늘날처럼 번개를 밟고 하늘을 달리는 기행을 벌이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놈은 그런 나를 비웃었고, 나는 목에서 피가 쏟아질 때까지 격노를 토해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재앙의 손에 죽는 그 날까지, 놈과 전투다운 전투 한번 행해볼 수가 없었다.
모든 건, ‘창공’이 놈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바로 지금, 그 ‘대전제’는 완전히 거꾸로 뒤집혔다.
***
-타다다다다다!
-휘유우우웅!
-쾅! 콰아앙!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
에테르를 품은 기관총과 포탄이 불을 뿜는다.
전장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위치스의 마법이 수직으로 내리꽂히고, 비룡의 ‘테메테르’ 역시 값비싼 ‘바티칸’의 성수를 가득 머금은 수류탄을 계속해서 내던지는 것이었다.
이윽고 지상은,
정면을 틀어막은 세 개의 군단이 거대한 테트라포트의 장막처럼 절벽을 쌓아 올리곤 헤일을 직접 막아선다.
-퀘애애애애애애애애액!
뼈와 살점, 괴성과 절규로 이루어진 아주 거대하고 전부 각양각색의 형태를 가진 ‘언데드의 헤일’을.
데스나이트는 서슬퍼런 대검을 드높게 들어 올렸고,
전위가 생긴 리치 군단은 ‘별’의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마법을,
키메라 드래곤은 날개를 잃고도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고 있다.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주느비에브와 사령군단은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언데드는 그 뒤를 따르니.
바야흐로 때는, 죽은 자들의 시간이었다.
허나,
-촤아아아악!
드높은 천상에서 안전을 ‘확보’한 2대 성녀 앤젤라 엘런의 기도로 빛은 드리운다.
어느새 다시 태양이 저물고, 어둠과 죽음과 비명이 가득해야 할 세상에...
「하늘에 계신 주의 온정과 심려를 이 소녀가 보고, 또 들으매.」
‘성역’의 빛은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윽고, 행하여지는 일은 지난날의 재현이었다.
검을 든 기병대와 검사.
스테프를 든 마법병들과 그림자의 무인들.
네발로 매섭게 달려드는 키메라 드래곤과 이제막 전장에 합류한 세계 랭커, 에이바 리가 마주한다.
재현되는 세계의 미래는 분명 어제와 같을지니... 그 정해진 미래를 비틀어내기 위해 불사왕은 수백의 거골(巨骨)과 열의 티탄을 소환해낸 것이리라.
다만, 두 비공정의 사이, 하늘을 거니는 ‘위치스’와 창공을 뛰노는 ‘테메테르’의 군단 너머에서 비가 내린다.
때로는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또 때로는 폭발하는 화산과 같이, 반인반룡의 심장을 가진 대마법사, 올리비아 스트라우스의 최고위 융합마법은 시뻘건 비처럼 마그마가 내린다.
“라바 스톰(Lava Storm)!”
그 표적은 너무나도 거대하여 태산과도 같은 크기를 자랑하는 거인 중의 거인, 열 개체의 ‘키메라 티탄’이었다.
-GAAAAAAAAAAAAAAAAAAA!?
‘성역’의 빛에 그 육체강도가 낮아졌음에도 흑태자의 전차부대의 포격마저 거뜬히 견뎌내던 기워 붙여진 티탄의 육신이 그제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악으로부터,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옵소서. 주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지상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폭력과 폭격.
으스러져 가는 육신과 저 하늘 위에서 다시금 붉음을 번뜩이는 ‘올리비아 스트라우스’의 형상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티탄’들은 대지를 송두리째 붕괴시킬 정도로 강하게 땅을 박차 하늘로 날아올랐다.
동시다발적인 충격이 무려 일곱 번.
연속적인 지진은 지상의 모든 것을 뒤흔들어놓았지만 ‘티탄’이 응시하는 곳은 오직 정면이었다.
-GAAAAAAAAAAAA!!!
고작 외침만으로 공중의 병사들을 모두 굳게 만드는 괴수. 신화 속의 신들조차 겁을 냈다는 바로 그 괴수, 티탄.
그 흉측한 벽안이 응시하는 건 오직 그 티탄의 육신에 충격을 주는 이 전장의 유일한 마법사. ‘올리비아 스트라우스’였고.
‘별을 부수는 거인’의 복제품들은 일순, 지각을 뒤트는 주먹과 대기를 뒤흔드는 발차기로 그 주제넘은 마법사를 응징하려 들었다.
허나,
“뇌제가 말하더군.”
새카만 장갑을 손에 착용한 한 남자, 올리비아 스트라우스이 전속 집사, 스티븐 클라크는 칠흑같이 번뜩이는 자신의 오러를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하늘을 지배한다는 건 곧, 전장을 제멋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소리라고 말이야.”
이윽고, 오러의 현현과 함께 거대한 할버드의 형태로 뒤바뀐 장감을 ‘무왕’은 양손으로 틀어쥐었고, 이내 몸을 크게 틀어 날아드는 티탄의 주먹들을 마주했다.
-콰아아앙!
-우지끈!
“처음에는 대체 무슨 소린가 했는데... 이젠, 좀 알 것도 같더군.”
엇비슷한 충격에 밀려나는 건, 당연히 무왕 스티븐의 쪽이었다.
허나, 돌연 맞부딪힌 충격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던 그 기세를 잃은 거인들은...
당연히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떨어져라. 괴물들아.”
그야말로 일방적인 폭력의 현장이었다.
한국군이 구축해낸 장벽은 조금도 밀려날 기미가 없고, 하늘에서는 다시금 성수와 마력 포격과 마그마의 비가 빗발친다.
가만히 있어도 ‘죽은 자’들의 걸음은 지상이 아닌 지하로 향하고 있는, 그런 광경이었다.
이윽고, 무왕 스티븐은 응시한다.
‘이 모든 걸... 이미 먼 과거에서부터 설계해왔다는 건가...?!’
1초에도 수백 번. 다시 소수점에 이르는 찰나의 순간에서조차 열댓 번의 수 싸움과 무구의 부딪힘을 일으키고 있는 ‘푸른 번개의 주인’을.
-콰이이이이이이익!
가장 지독한 언데드 무리가 소용돌이치는 적진의 한복판에서 다름 아닌, 지평선을 가득 메운 이 모든 언데드들의 주인, ‘불사왕’과 전투를 벌이는 ‘뇌제’, 이건우를 말이다.
-쿠르릉!
-콰지지지직!
그가 쏘아 올린 번개가 불사왕의 머리를 관통한다.
동시에, 그가 내뻗은 검이 불사왕의 목을 가른다.
동시에, 죽음에 닿은 불사왕은 이건우의 등 뒤를 거닐던 좀비의 육신에서 부활하고!
동시에, 사신의 낫은 회전한다.
찰나에 일어나는 동시다발적 변화.
허나, 저 두 ‘초월’급의 헌터들은 그 찰나마저도 부족하다는 듯이 더더욱 박차를 가했다.
‘뇌제...’
가속한다.
낫과 검.
죽음 마력과 붉은 오러.
지천을 뒤엎는 부패와 부정을 몰아내는 신력의 번개가 지금보다 더, 더 빠르게! 계속해서 가속하고 또 가속하고 있다.
‘당신은 대체...?’
***
사방이 적이다.
이건 비유가 아니다.
정말로 사방이 적이다.
‘성역’의 빛은 분명 이 어둑한 프랑스의 밤하늘을 밝게 밝혔으나, 내 눈앞에 선 죽음의 주인은 말 그대로 매시, 매분, 매초 죽음을 흩뿌리고 있었다.
세계 vs 개인
그 말도 안 되는 전제를 성립시킨 자가 바로 내 눈앞에 있다.
진녹색의 부패를 소용돌이치게 하며 내 호흡을 막고,
흑갈색의 죽음 마력으로 나의 눈을 가리고,
끝도 없이 덜그럭거리는 죽은 자의 조소가 나의 귀를 틀어막는다.
-달그락!
그건, 산자를 향한 조롱이었다.
-덜그락! 달그락!
-달그락!
그건 명명백백한 모욕이었고 또한 필생을 비웃는 모독이었다.
잘못된 신을 섬기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에도 자신은 끝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 하나로 끝내 조롱과 모욕과 모멸을 멈추지 않는 무식하고 무지한 자의... 하찮은, 아집!
-달그라그럭덜그락달그락!!달그락달달그락!!!달달그덜다다닥그락!달그락!덜그락달달그라달그락락덜그락달그락!!!
“그래. 재앙을 쓰러뜨려, 다른 재앙을 뛰어넘을 힘을 손에 넣었더냐...”
하늘과 땅에 포격과 폭력이 내린다.
빛은 또한 부정과 부패를 씻어내리려는 듯 밝은 광휘를 쏟아내지만, 부활한 불사왕의 육신으로부터 무차별적으로 쏟아져나오는 진녹과 흑갈색의 부정은 그 강대한 ‘기적’마저 흐트러뜨리지 못했다.
“그런데 아직도, 네놈이 한낱 ‘이어져 온 꿈’의 꼭두각시임을 모르겠더냐?”
놈의 눈짓 한 번에 위, 아래, 후방, 전방에서 동시에 날카로운 뼈 창이 돋아난다.
얼핏 창조의 기적을 방불케 하는 전능한 공세이나 지금도 청각을 마비시키는 이 끝없는 ‘달그락’ 소리는 그 ‘전능’의 기저에 누군가의 목숨이 깔려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숨 가쁘게 전격을 빚어 그 모든 것을 불태우는 전격 지대를 넓힌다.
“왕이여! 왕이시여어어!”
동시에 불사왕의 데스사이드는 회전하며 나의 후방을, 다시 머리 위의 상공에서는 반투명한 ‘혼’의 형태로 나타난 사령군단 주느비에브 리샤흐가 침을 흘리며 달려든다.
다만,
혈마류(血魔流)-혈공(血功)
흡출(吸出)
지체없이 나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은 덧없이 붉었고, 자연스럽게 손에서 놓은 혈검, ‘본디오 빌라도’는 빠른 유속의 핏빛의 오러를 타고 올라 마치 ‘검제’의 ‘이기어검’과 같이 스스로 기동한다.
동시에, 나는 들이쉬는 숨에 쥐었다.
거친 회전과 함께 내 사각을 파고들던 불사왕의 데스사이드를.
이윽고, 내쉬는 숨에 데스사이드의 흉측한 칼날로 주느비에브의 머리를 관통하며 그대로 출(出), 막대한 혈속성의 오러를 불사왕을 향해 방출했다.
-화아아악!
물처럼 흐르는 핏줄기는 마치 타오르는 불처럼 이글거린다.
-푸욱!?
이어서 그 거친 흐름을 타고 ‘혈검’이 불사왕의 머리를 관통하면...!
“포기해라. 그리고 절규해라! ‘이어져 온 꿈’은 저주이니라. 그 저주를 이 세계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것만이 이 불사왕의 사명이니...!”
당연하길 넘어 아득한 허무가 느껴질 정도로, 놈의 목소리는 나의 등 뒤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단, 단전 앞에 양손을 모으고 핏줄마저 곤두세우며 일으킨 나의 ‘혈공’은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화륵! 화르르르륵!
부릅뜬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나간다.
시야의 곳곳이 일순간에 붉게 물들고 말았으나, 들이쉬는 숨에 핏줄기를 당기고 내쉬는 숨에 길을 여는 이 혈속성의 ‘흐름’ 속에서 혈검(血劍)과 혈창(血槍)은 춤을 추었다.
-휙! 휘휘휘휙! 촤악!
-스릉! 샤아악!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고 또한 나의 정신마저도 갉아먹던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회전하며, 모두 정면에서 깨부수는 두 개의 무구.
-키이이이이이잉!
맞부딪히며 시뻘건 불꽃을 일으키는 불사왕의 데스사이드와 혈검.
이윽고 혈검은 스스로 부활하던 사령군단, 주느비에브를 또다시 도륙 낸다.
그러자 혈창을 막아내는 것으로도 벅찬 듯 이를 악문 불사왕은 외쳤다.
“단순히 강해지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뇌제! 그대도 끝끝내 알게 되리라. 허나, 끝난 뒤에 알게 된다고 해서... 그 탐욕스러운 ‘허무’가 그대를 이 영원의 감옥에서 놓아줄 것 같으냐.”
허무. 그리고 영원의 감옥.
그 두 단어는 모두 재앙, ‘태고의 흡혈귀’가 죽어가면서 내뱉었던 단어와 같은 것들이었다.
‘이어져 온 꿈’이 현재 내게 들러붙은 ‘회귀’를 상징한다는 것쯤 이제는 잘 안다.
다나 메이어는 이 세계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완성되는 때, ‘이어져 온 꿈’은 끝나고 세상은 이 무한한 반복에서 벗어나리라 예언했다.
놈들이 말하는 ‘감옥’이란, 이미 70번이나 일정 시점에 도달하면 과거로 되감기길 반복해왔다는 이 세계를 가리키는 거겠지.
그런데,
“대체...”
-텁!
-콰아악
나는 시퍼런 전격과 함께 공간을 찢어 불사왕의 목을 틀어쥐고 그대로 놈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꽂고는 말했다.
“그런데... 대체 그 허무라는 건 뭐냔 말이다. 불사왕.”
나의 새파란 ‘전격’은 놈의 손과 발을 아주 단단히 묶었고, 붉디붉은 ‘혈공’은 놈의 육체 내부에서 흐르는 새카만 마력을 차단했다.
...?
동시에 나는 놈의 몸속에서 마치 컴퓨터에 오류라도 난 것처럼 치지직거리는 기괴한 형상을 느껴졌다.
은은한 빛이, 기이하게도 맑은 형상이 불사왕의 몸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마치 봉인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몇 겹의 살덩이에 둘러싸인 채 감춰져 있었는데 내가 그것에 전격을 흘려보내려는 순간, 불사왕은 입을 열었다.
“허무는...”
무겁게 운을 뗀 놈은 흑색 기운이 일렁이는 눈동자로 나를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퍽 기계적인 어조로 말했다.
“아직 ‘2회차’인 네놈으로서는, 아무리 이해하고자 할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끝까지 그 어쭙잖은 신비주의를 지키겠다는 듯, 말 그대로 ‘허무’한 답변을 말이다.
“하...”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고작 저딴 소리를 하려고 그토록 무게를 잡았다는 건가.
이게 정말 미친놈인가 싶다가도 나는 가슴께를 간질이는 묘한 분노를 애써 잠재웠다.
지금 이 순간 놈을 신력을 품은 번개라 불태운다면 놈은 또다시 이 전장의 어딘가, 아니... 자칫 잘못하면 당장 지구 반대편에서 부활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로 도주할지 모를 빌런을 대하는 법은 전생이나, 현생이나 똑같다.
하물며 나는 이 녀석을 가히 완벽에 가깝게 통제할 수단을, 마침 ‘진조’를 토벌함으로써 획득하기도 했었으니까...
나는 빠르게 놈의 목을 틀어쥔 손의 반대 손에서 손끝으로 막대한 신력을 응집시킨다.
중력을 거스르는 물방울이 맺혀 하나, 둘 허공으로 비산하는 신비로운 광경.
다만, 내가 충분한 양이 모였음을 확신하며 주먹을 쥐자, 흩어져 있던 신력의 방울들은 일사불란하게 응집하며 보는 것만으로도 뼈가 시려 오는 공허의 감옥을 만들어냈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수신의 사도, 이건우는 권능을 행사합니다.
*두 번째로 개방한 권능은 혼과 백을 모두 격리하는 감옥, ‘어비스 프리즌’입니다!
*흩뿌려진 신력은 오직 ‘사도’의 의지를 따라 형태를 변화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그것이 마력이건, 오러이건 영혼이건 실제 물질적인 육체이건 관계없이 ‘신력’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두는 감옥.
재앙을 토벌하며 세계 각국에서도 ‘수신교’가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며 얻게 된 나의 두 번째 ‘권능’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 수많은 사도의 권능들 중에서 굳이 이 권능을 꼽은 이유는 간단했다.
“캬... 아악?!”
이제 막, 불사왕과 함께 ‘어비스 프리즌’내부에서 눈을 뜬 보랏빛의 여인. 주느비에브.
“여... 여긴...!”
녀석은 곧바로 이 감옥의 정체를 간파하고는 정신 사나울 정도로 철창을 쥐고 날뛰었으나,
-샤아아아악!
도리어 차디찬 공허의 감옥은 녀석의 양손을 완전히 얼려버릴 뿐이었다.
그래. 이 권능은 메시지에도 적혀 있듯 혼과 백을 모두 가두는 감옥.
나는 바로 저 사령군단의 주느비에브를 머저리로 만들기 위해 이 권능을 택했던 것이다.
“꺄아아악!”
뒤늦게 혹한의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는 주느비에브.
녀석은 화가 난 원숭이처럼 이리저리 날뛰며 성을 냈지만, 그 옆에서 자세를 고쳐 앉은 불사왕은 나의 의도를 벌써 눈치챘다는 듯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허무.
영원의 감옥.
이어져 온 꿈.
이 세계와 회귀 그리고 뭔지 모를 무언가.
나로서는 당연히 그 관계와 정체에 대해서는 궁금하다.
허나, 전투에 몰입하고 이런저런 의문을 신경 쓰느라 정작 눈앞에 있던 것을 놓칠 뻔했었다는 것을 눈치챘기에, 나는 당장의 호기심보다는 해야 할 일에 더욱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해야 할 일이란 당연하지만, 지금도 하늘 위에서 흉흉한 적광을 번뜩이는 저 메시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재앙이 잉태되었습니다!
*제6구역 ‘프랑스’의 각성자들은 재앙의 잉태를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재앙의 현현까지 남은 시간: 14시간 35분.
ㅡㅡㅡㅡㅡㅡㅡㅡ
대체 어떻게 시간이 흐른 것인지.
불사왕의 진녹색 그리고 흑갈색 부패와 마력에 휩싸여 있는 동안, 시간은 저렇게나 많이 흘러가 있었다.
-쿠웅!
이윽고, 저 멀리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싸우던 ‘태산’이 무너져 내리면, 우리 한국군의 지휘관들이 호위도 없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허나 곧, 그건 오만도 방도 아닌, 불사왕의 모든 군단을 깨끗이 제압했기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투 시작으로부터 정확히 7시간 만에 프랑스 국경에 도달했던 우리 군은...
다시, 불사왕과의 접촉으로부터 5시간 반 만에 ‘세기의 절대자’였던 놈의 군단을 제압해냈다.
우린,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것이었다.
.
.
.
라고...... 조금이라도 방심했던 것이 문제였던 걸까.
‘재앙의 알’이 놓여 있는 흑색 마탑의 꼭대기 층에 도달한 나와 세계 연합군.
티탄의 검과 재앙의 조기 부활.
그리고 전세계 화력의 집중.
그렇게 차곡차곡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사태를 마무리 지으려던 나의 눈앞에는...
아무리 믿으려 해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메시지 하나가 떡하니 나타나는 것이었다.
-띵!
시작은 흑색 마탑 일대를 진지화 하던 중 종탑의 꼭대기에서부터 들려온 짧은 알림음이었다.
허나, 주르륵 쏟아져 나오는 메시지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고, 이내 그것이 온전한 형태를 갖추었을 때...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재앙’은 성녀, ‘다나 메이어’의 권능을 흡입합니다.
*재앙은 더욱 빠르게 성장합니다!
*재앙의 현현까지 남은 시간: ‘12:11’··· ‘10:31’···‘9:02’...
ㅡㅡㅡㅡㅡㅡㅡㅡ
나는 나의 눈에 뭔가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다나... 메이어......?!”
어디선가, 음험한 웃음소리는 들려오는 듯했다.
자애와 연민의 교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