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48화.
“흑태자의 명을 따라, 이미 중동 연합은 지중해를 가로질러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 전역에 숨어든 상태입니다.”
이 자리의 헌터들을 모두 내버려두고, 홀로 숭고하고 비장하게 전장으로 향할 것만 같았던 이건우.
허나, 그는 돌연 이 자리의 모두를 놀라게 할만한 충격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주, 중동연합이 벌써 말입니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여, 역시 몸소 재앙을 막아내신 뇌제님의 친우. 흑태자님이시란 말입니까.”
지원군은 재앙의 잉태가 공표된 하룻밤 사이, 부랴부랴 이 유럽을 향해 달려오고 있던 것이 아니라 암암리에 ‘죽음 군단’의 허리를 끊고자 움직이고 있었다는 S급의 정보.
이에 유럽의 생존자들은 하나 같이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으며 동시에 절망적인 패전보만을 듣던 이들의 눈동자에는 어렴풋한 희망마저 깃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허나, 이건우는 그런 소식마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듯이 퍽 진지한 얼굴로 믿을 수 없는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지난번 ‘도전’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대마법사 올리비아 스트라우스는 이번 재앙을 막아내는 데 꼭 공적을 올리겠다며 ‘스트라우스’ 휘하의 모든 헌터들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고...”
“신 무림맹의 통치자, 검성 라오 위는 이번 일을 좌시할 수 없다며 직접 나서겠다고 입장을 밝히셨습니다.”
스트라우스 일가의 참전 그리고 전설적인 헌터 검성의 참전 소식.
이는 자금력과 양으로 승부하는 중동 연합의 발 빠른 대응 소식보다도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스, 스트라우스가 통째로...?”
“검성이라면, 세계 헌터랭킹 전 2위에 빛나는 그분이시라면...!”
작은 희망을 품다 못해 이제는 도리어 승리를 확신하기 시작하는 헌터들.
이건우의 말 한마디에 그들의 혈색은 우스울 정도로 팍팍, 뒤바뀌고 있었다.
허나, 그런 희망과 전쟁에 관한 사기가 증진되는 현장 속에서 다부진 몸의 한 남자는 아주 작게, 음침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다.
캬캭!
그 웃음의 주인은 다름 아닌 주느비에브 리샤흐.
그녀는 이건우의 검에 조각조각 난 ‘혼’을 움직여 살아있는 인간의 의식을 강제로 빼앗고 그 육신을 차지해 있던 상태였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 군단’의 핵심 인물 앞에서 현재 이건우는 저토록 중요한 정보들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던 것이다.
‘흑태자의 중동 연합. 스트라우스에 검성까지. 캬캬캭!’
확실히 모르고 있었더라면 치명적일 수 있었던 극비의 정보들이다.
허나, 이건우는 현재 주느비에브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신나게 한국군과 일본군에 대한 정보들까지 풀기 시작했고.
이에 주느비에브는 유럽의 생존자 무리에서 보고 듣는 정보들을 지금도 ‘흑색 마탑’에 태연히 앉아 있는 ‘여비 육신’의 입을 통해 전달하고 있는 상태였다.
적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무엇을 노리고 어떤 인력들이 동원될 것인지 모두 말이다.
다른 시기에도 크게 다르진 않겠다만 전시에 ‘정보’란 평소의 배 이상으로 강대한 힘이 된다.
그렇기에 주느비에브 리샤흐라는 사령술사를 부마탑주로 둔 ‘죽음 군단’은 애당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밖에 없고 ‘빙의’에 관해 꿈에도 알지 못하는 저 무지몽매한 자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째서 자신들이 그토록 암담하게 패배하는지도 모르고 죽어가겠지.’
이윽고 그들의 시체와 절망은 다시금 ‘죽음 군단’의 힘이 되는 것이다.
‘이건우가 강하다고, 세계 전체가 죽음 군단을 적으로 돌렸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다.’
‘죽음 군단’은 승리할 것이다.
세계를 상대로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이다.
허나, 그렇게 몇 분째 자화자찬을 반복하던 사령술사 주느비에브의 귀에 듣고도 믿지 못할 괴상한 단어가 스쳤다.
“러시아는, 악마 소환을 통해 저희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희망과 승리에 대한 갈망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생존자들의 얼굴이 일순간에 돌처럼 굳었다.
“아, 악마 소환... 말입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주느비에브의 당혹스러운 마음을 대변하듯 말까지 더듬으며 이건우에게 의아한 목소리를 내는 자는 흑색 마탑의 수석 조교수 다비드 호베흐였다.
허나, 그만큼 방금 이건우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믿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예. 이는 극비 중에서도 극비 사항입니다만, 과거 시베리아의 악몽을 겪은 바 있던 러시아는... 악마조차 거부할 수 없는 마법식을 개발해 오늘날, 악마를 조종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예?”
“아, 악마를 조조조, 조종 말입니까?”
듣고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악마를 조종하는 기술’의 존재는 주느비에브 역시 꿈에도 몰랐던 사실이기에 두 눈을 크게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예. 제가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냥 절망에 빠진 유럽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한 거짓말이라 치부하기에 이건우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정말로 악마를 조종하는 마법식을...?’
허나, 흑마법의 선두에 서 있던 흑색마탑에서조차 악마와 관련된 연구는 모두 포기한 실정이었을 텐데...
‘그걸 러시아에서 했다고?’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말에 주느비에브는 처음으로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건우가 이 자리에서 거짓을 논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만이 드는 것이다.
‘그럼 정말로... 악마를...?!’
주느비에브는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한기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사실이라면... ’죽음 군단‘의 가장 강대한 검. 데스나이트 로드가 이끄는 ’기사단‘을 그쪽으로 보내야겠지.’
그런데 정말로 소름이 돋는 사실은, 주느비에브가 ‘악마’와 전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가정하고도 의연하게 대응책을 강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허나, 그런 주느비에브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이건우는 또다시 이상한 소리를 꺼냈다.
“그리고 에이바를 필두로 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헌터들은 그간 극비에 부친 체 개발해왔던 기술. 마공학 에테르 블레이드를 이번 대재앙전에 보급할 것을 약조해주었습니다.”
순간, 다시 일대의 모든 사람의 얼굴은 벙쪘다.
“에... 에테르 블레이드라면...”
“그냥 휘두르면 강철판도 종이처럼 가른다는 그.....”
“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그, 그런 걸 개발중이었단 말씀이십니까?”
역시나 주느비에브와 똑같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헌터들.
그러나 이건우는 이번에도 정말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정확히 1만 5천 자루를 완성해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일만 오오오오, 오천 자루?!”
”그게 사실입니까?”
“이 녀석이! 어디 뇌제님 앞에서 언성을 높여!”
“하,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검을 다루는 헌터가 쥔다면 사실상 그 마력 등급을 두 등급은 올려서 보아야 한다는 사기적인 성능의 무구. 에테르 블레이드.
그것을 1만 5천 자루나 보급할 수 있다면 빌어먹을 ‘죽음 군단’을 상대로도 충분히 해볼 수 있다는 것이 헌터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리고 신나게 극비 정보를 빼돌리는 중이었던 주느비에브는...
‘그럴 리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정부에까지 침투한 스파이는 단 한 번도 그런 정보를 알려온 적이 없었는데?!’
자신을 응시하는 이건우의 시선을 피하는 것도 잊고 두 눈을 부릅뜨고서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풍이 심하단 생각이 든다.
그간 ‘불사왕’께서는 봉사를 빌미로 각국에 하수인을 잠입시켜 주기적으로 정보를 보고받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악마를 조종한다느니, 보급형 에테르 블레이드가 완성되어 있었다느니 하는 일이 정녕 가당키나 할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문제는 이건우가 이 자리에서까지 굳이 거짓을 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이건우는 무슨 인도네시아에서 로봇 병기를 개발했다느니, 차원을 제멋대로 도약하는 마공학 기술을 개발해 재앙이 잉태된 장소와 세계 전체를 연결하겠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이어갔지만,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르겠어.’
하나, 하나가 모두 전황을 뒤엎을 S급 정보.
허나, 그중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도통 알 도리가 없으니 주느비에브는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은 심경이었다.
***
불사왕이 이끄는 ‘죽음 군단’과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으로 손꼽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손가락을 한번 튕기는 것만으로 태연하게 흙 밑에서 일어서는 ‘언데드’의 공포?
아니면 방금 전까지 나와 등을 맞대고 싸우던 전우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적’으로 돌변할지 모른다는 ‘빙의’의 공포?
다른 이들이 무엇을 논하건, 실제로 그 ‘죽음 군단’과 몇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전쟁을 벌여온 나와는 다를 것을 확신한다.
불사왕의 ‘죽음 군단’이 가진 공포는 다른 네크로맨서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무한한 부활?
더 빠르고 더 강인한 백골의 병사들?
그런 여느 네크로맨서들과 같은 요소들은 모두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공포.
진정한 악몽은, ‘죽음 군단’이라 불리는 그 다섯 개의 군단이 마치 하나의 생물체처럼 유기적으로 ‘연계’함이 있던 것이다.
“후우우우.”
소리도 없이, 밝은 빛도 없이.
전격 속성의 마력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내어 행한 흔적도 없는 고속 이동.
나는 ‘빙의’로 내게서 정보를 캐내려 하던 주느비에브를 혼란에 빠뜨리고는 고작 물 한 잔을 마시고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사라져 ‘무광무음’의 번개를 타고 이곳까지 날아왔다.
갑작스러운 부재에 다비드를 비롯한 유럽의 생존자들은 퍽 놀라겠지만, 아마 그 상태에서 더 경을 치는 것은 당연히 그 간악한 사령술사 주느비에브일 것이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틈.
일순간에 무광무음의 번개를 통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중간 지점에 안착한 나는 곧바로 양손을 단전 앞에 모아 온 정신을 집중했다.
-후우우. 하아아.
그러자 마력은 내가 발현해내는 형태에 맞춰 고속으로 회전했고 이내 펼쳐지는 것은 전격 방출계 헌터들이 습득할 수 있는 최상급의 탐색 스킬. ‘천망’이었다.
마땅히 마력을 회복할 시간도 갖지 않은 채 행한 두 번째 천망.
허나, 이젠 600만에 달하는 마력량을 가지게 된 나에게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천망’은 초마다 대량의 마력을 뽑아가는 스킬이지만, 이를 펼쳐내는 나의 얼굴은 한없이 편안할 뿐이었다.
곧, 엄청난 크기의 지도는 머릿속에 새겨진다.
이미 반경 5km를 훌쩍 넘어 30, 50, 100, 200km... 막대한 정보가 강제로 머릿속에 아로새겨지는 것이다.
-주륵.
과열된 정보량으로 인해 코에서는 핏방울 하나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흠.”
총 3분에 달하는 시간이 흐르고 나는 주저 없이 ‘천망’을 종료하며 눈을 떴다.
쓱, 코피를 닦아내고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무려 반경 300km에 달하는 지형을 일순간에 훑어낸 만큼 나의 마력은 200만이라는 압도적 수치가 증발해버린 상태였다.
무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 나의 마력 총량의 3분의 1.
<갑작스러운 마력 소모에 ‘블랙 드래곤 하트’가 반응합니다!>
<체력을 1% 소모해 ‘마나 호흡’을 발동합니다.>
허나, 당연하게도 대책은 이미 마련해둔 사태였다.
현재의 나는 그저 숨을 깊게 쉬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양의 마력을 회복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내가 어째서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이곳까지 날아와 반경 300Km를 쭉 훑었는가.
그건, ‘파악’을 위해서였다.
사령술사 주느비에브가 자신의 혼을 찢으면서까지 이쪽의 현황을 파악하려 했듯, 나 역시 불사왕의 ‘죽음 군단’이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파악하려 했다는 것이다.
헌데, 풉.
“우습군.”
도합 300km에 달하는 지형의 정보를 읽어낸 나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사령술사도, 역시 악마의 조종과 만 자루가 넘는 에테르 블레이드는 두려웠다는 건가.”
왜냐하면, ‘죽음 군단’의 핵심. 트럼프 카드에 비유하자면 ‘에이스’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중심 세력. 데스나이트 로드가 이끄는 ‘죽음 기사단’이...
‘저렇게 착실하게 이탈리아로 향하다니...’
주느비에브의 앞에서, 지원군의 대부분은 지중해를 통해 이탈리아로 향한다고 했던 그 말을 녀석은 퍽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허나, 아쉽지만 그 어떤 국가도 이탈리아로 향하는 국가는 없다.
또한, 나는 이어서 찾는다.
300km에 달하는 지형 전체를 빠르게 샅샅이 뒤져가며 그 ‘실체’를 혹은 그것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 그 동선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자 참으로 우습게도 나머지 잭, 퀸, 킹에 해당하는 ‘몬스터’들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놓고 폭소를 터트리고 싶을 만큼 정직하게 내가 언급했던 ‘가짜 지원군’의 동선. 영국, 이탈리아, 덴마크, 스페인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었다.
“훗.”
거짓 정보전은 아주 제대로 먹혀들었다.
그리고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니.
나는 준비해두었던 비수 중 하나를 품에서 꺼내 들고는 높게 들어 올렸다.
그건 하나의 큼지막한 유리병.
그 안에 들어있던 것들은 신비롭게도 스스로 밝은 빛을 발하는 크고 작은 종이학이었다.
2대 성녀 앤젤라가 오직 나의 안전과 무사 귀환만을 바라며 접었다는 100마리의 종이학.
정작 앤젤라에게는 낯선 한국에 이러한 문화가 또한 안전상의 이유로 막사 밖으로 나가질 못하게 하니 그냥 접어본 종이학에 불과할지 모르나 그 주체가 성녀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긴 시간과 순수하고 깨끗한 성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종이학. 이건 그 자체로 강대한 신성력을 품은 성물이 된다.‘
-피이이이이!
내 전격 마력이 뒤엉킨 빛의 아지랑이가 대낮의 푸른 하늘을 희게 물들일 만큼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내, 그 새하얀 빛이 2대 성녀의 신성력을 증명하는 흰 새의 형태로 변하면, 하늘의 닿은 빛은 기도가 되고 그 기도는 현재의 ‘사용자’인 나의 의지에 맞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다.
-샤아아아아아!
빛으로 물든 새들의 날갯짓이 구연하는 것은, 지상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치솟는 빛의 기둥이었다. 다만, 그 기둥이 이내 둘로 나뉘며 멀어지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 사령술사.”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많은 ‘빙의체’중의 하나인 육신을 급하게 대동해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 주느비에브 리샤흐에게 말을 걸었다.
“대체... 어떻게 이 몸뚱아리가 나라는 걸 알지!? 네 녀석! 나의... 우리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이제와서 정체를 숨기기보단 내게 약소하게라도 정보를 얻고 싶었던 것인지, 흥분한 사람처럼 격앙된 목소리를 내지르는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
허나, 외향이 어떻건 저 속에 들어있는 것은 그 사령술사 주느비에브였다.
아마 나의 부재를 확인하자마자 모든 ‘빙의체’를 움직여 나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다만, 이미 늦었다.
“쓸데없는 의문은 됐고 대답해봐라. 너라면 알 텐데? 저게 뭔지 말이야.”
대체 언데드인 자신에게 무슨 ‘기적’에 대해 답하라는 것인지.
주느비에브는 나의 말에 인상을 팍 찌푸리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곧 그 표정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저, 저건?!”
단숨에 그냥 놀람을 넘어 경악으로 물드는 주느비에브의 얼굴.
이내 나는 드디어 참지 않고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일본과 한국에도 ‘빙의체’를 마련해둔 너라면 모를 수가 없을 거다.”
-촤아아악!
드디어 완전한 형태를 갖추며 ‘열리는’ 기적.
그건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이어진 문.
“헤븐즈 게이트다.”
유럽을 시작으로 북대서양을, 이윽고 인도양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집어삼키며 ‘세계 절멸’을 시도한 불사왕의 ‘죽음 군단’.
전생에 기어코 일어나고야 만 ‘전선의 다양화’는 항상 군사의 ‘양’에서 밀릴 수가 없는 언데드에게 유리한 양상을 만들었다.
허나,
내가 현재를 비틀어 구해낸 그 작고 여린 성녀가, 이윽고 그 성녀가 이룩한 ‘기적’은 ‘일어날 수밖에 없던’ 미래를 바꿀 것이다.
“뭘 두려워하나.”
나는 당황한 얼굴로 멍하니 이미 열린 헤븐즈 게이트를 응시하는 주느비에브를 보며 툭, 하고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군대는 ‘무한’. 그리고 네놈들은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려도 꿈쩍하지 않는 ‘영원’이 아니었던 건가?”
-서걱.
“엇?”
빙의체의 목이 갈라지는 것도 몰랐다는 듯 의아한 목소리를 내는 주느비에브.
나는 그 떨어지는 작은 머리를 손으로 틀어잡고는 그 끔찍한 사령술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서 썩을 네놈들의 ‘왕’에게 전해라. 우리가 그토록 많은 전투를 벌였던 ‘유럽’으로, 뇌제가 돌아왔다고...!”
-파지지지직!
이제, 새파란 번개는 그 굉음과 빛을 숨기지 않는다.
준비는 끝났으니까.
프랑스, 그리고 재앙과 불사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