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46화.
느릿한 걸음걸이에서 끝없은 오만과 여유가 느껴진다.
-터벅.
그가 걷는 그 길은 분명, ‘빛의 신’에게 가장 가까운 신성의 땅. 바티칸의 대성당이었다.
허나, 가장 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비춰지는 곳,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빛이 모여드는 곳을 걷는 자는 신성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자. 불사왕이었다.
-터벅, 터벅.
그는 대성당의 중앙 통로를 걷는다.
성직자들이, 성기사가, 성전사들이 걷던 바로 그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막대한 빛은 내리고 수많은 신성력의 사용자들은 그에게 덤벼들 것만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가 걷는 그 길에 장식처럼 흩뿌려진 흉측한 인체 조각들. 살아남은 자들조차 시체 조각에 파묻혀 희망을 잃고 절망을 수용한 그런 얼굴이었다.
-끼이이이익!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두 개체의 거신병들이 대성당의 거대한 문을 열어젖히면...!
-퀘에에에에에엑!
-콰아아아악!
““왕이시여...!””
헤아릴 수 없는 수의 고위 언데드와 프랑스의 ‘흑색 마탑’을 상징하는 푸른 로브의 학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대군의 앞에 선 불사왕은 천천히 그 일대를 쭉 훑어보고는 입을 연다.
“‘조율’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지금도 다나 메이어의 심장을 쥐어짜 흡입한 신성력에 붕괴와 재생을 반복하고 있던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육신.
“내가 돌아오는 그 날. 세계는 새카만 불꽃으로 타오르고, 위대한 죽음과 그 하수인들은 ‘영원’을 거머쥐게 될지니! 나는 최흉을 먹어치우는 최악이... 이 세계를 온전케 할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리니!”
허나, 불사왕은 그런 자신의 상태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냉랭하고 차가운 눈으로 하늘을 응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하여 세계는 ‘완전’을 맞이할 것이다...!”
그의 눈은 분명, 하늘 너머의 그 무언가를 보는 눈이었다.
***
-피이이이잉!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늘에 수 놓인다.
시각은 아침이다.
밝은 볕이 들어 세상은 밝고, 하늘은 푸르게 물들어야만 하는 시간...
-콰아아아아앙!
-콰과과광!
바로 그 이른 아침에 곡사로 쏘아진 포격은 ‘무한’을 향해 퍼부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폭발과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새카만 연기가 하늘을 검게 물들인다.
허나, 그럼에도
-쾌애애애애애애액!
‘죽지 않는 것’들의 괴성은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후웅!
새카만 구름을 걷으며 발을 내뻗는 거인.
아주 많은 것들을 기워 붙인 듯한 생김새의 시체 거인을 시작으로, 괴성을 내지르는 구울과 좀비 이윽고, 날개가 달린 괴물과 괴조들은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화력 하나만큼은 세계에서 알아주던 유럽 연합의 독립군이었다.
“포, 포격을 퍼부어! 더!”
“마력을 보충해 어서!”
하지만, 말 그대로의 ‘무한히’ 쏟아져 나오는 죽음 군단의 앞에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푸르게 반짝여야 할 하늘에, 보랏빛 피부를 가진 괴조들이 날아오른다.
검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있어야 할 도로에는 걷는 것이 곧 파괴행위로 이어지는 시체 거인의 발톱자국이...
밀림의 나무처럼 울창한 빌딩의 숲에서 죽어도 죽지 않는 구울과 좀비는 괴성을 지내 지르며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런 광경이 이미 8시간째였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쏟아부은 포격의 끝은 결국 다시 일어서는 시체와 그 시체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폭발’ 시키는 흑마법사들로 인해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그러한 전장의 조금 뒤, 육안으로도 전장을 확인할 수 있을 법한 아슬아슬한 자리에서 누군가의 보고가 들려오고 있었다.
“북유럽... 스웨덴, 노르웨이, 남유럽... 이탈리아, 포루투갈, 스페인. 생존자 합류를 완료했습니다!”
“서유럽은...”
“언데드의 범람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서유럽의 생존자는...... 없습니다.”
밤새 진행된 탐사 작업을 보고하는 자도, 그 보고를 듣는 유럽 연합 독립군의 사령관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정녕, 파울라스 총리께서, 아니... 프리드리히 파울라스가 이 끔찍한 참극을 벌였단 말인가.”
“죽음 군단의 동선 그리고, 프랑스 총리를 숭배하던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구성원들이 동시에 내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젠,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메리카 대륙 전역을 위협하던 용족.
그리고 그 용족을 최초로 토벌한 위대한 드래곤 슬레이어. ‘제이슨 스트라우스’.
미국에 ‘제이슨 스트라우스’가 있다면, 유럽에는 ‘프리드리히 파울라스’가 있다.
유럽의 전 국민들은 그 ‘선구자’를 찬양했고, 그가 가리키는 길이 곧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모든 유럽인들의 희망이었고, 버팀목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유럽은 부흥했고, 그가 있기에 사람들은 하루를 아무런 걱정없이 살아왔던 것인데...
그런 그가 정녕...
“파울라스 총리께 무슨 이변이 생겨서... 그래! 흐, 흑색 마탑의 변질자들이 총리님을 위협하고 언데드를 폭주시켜서...!”
끝까지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신을 떨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령관.
“정신 차리십시오. 사령관!”
그는 분명,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군인이었으나, 유일하게 ‘생존’에 성공한 동유럽의 생존자들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그를 거침없이 일갈했다.
“하... 하지만! 파울라스 총리는...!”
“이젠 시간이 없습니다. 사령관은 들리지 않으십니까.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멀쩡히 두 발로 서서 헛소리나 내뱉고 있는 순간에도! 군인들이!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단 말입니다!”
끝내 참지 못한 한 남자가 입을 크게 벌리고 사령관에게 윽박지르자 침묵이 찾아왔다.
이윽고 시선이 모이는 그곳에는, 언제나 명예롭게 걸치고 있던 푸른 로브를 스스로 찢은 자.
그나마 이 동유럽에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가장 먼저 생존자들을 규합한 자...
흑색 마탑의 수석 조교수. 다비드 호베흐가 서 있었다.
가장 먼저 ‘파울라스 총리’의 배반을 예견한 그 조교수는 자신이 아끼는 흑색 마탑의 장학생 열댓명을 대동해 눈앞의 사령관을 찾아왔고...
그 결과, 고작 하룻밤 만에 절멸할 예정이었던 유럽 전역에서 동유럽이라는 안전구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허나, 그런 ‘안전구역’이라는 명칭이 어색해질 정도로, 죽음은 빠르게 다가왔다.
“결정하셔야 합니다. 사령관! 이미 7할이 사라진 유럽 독립군은... 파울라스 총리의 가장 신실한 추종자가 아니라 가장 뛰어난 지휘관이자 전쟁 영웅인 당신, 사령관을 믿고 있으니까요.”
이내, 다비드 호베흐는 몰아붙이듯 흰머리가 무성한 사령관을 노려보며 말했고, 베테랑 군인이자 경험 있는 사령관인 그는 기세에 눌려 식은땀을 흘렸다.
“정녕...... 정녕... 이 유럽을 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호, 호베흐 조교수... 정녕 그것 말고는 답이 없는 겐가.”
제발, 제발 아니라고 말해달라는 듯이 사령관은 그답지 않게 애절한 어조로 말을 하였고, 이에 다비드 호베흐는 말했다.
“뇌제는 알고 있었습니다.”
“......뇌, 제..?”
갑작스럽게 언급되는 한국의 헌터.
새로운 세계 랭커이자 등장과 함께 중국의 흑룡과 일본의 재앙을 몰아낸 세기의 각성자.
사령관이 이에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뜨자 다비드 호베흐는 결심이 선 얼굴로 입을 열었다.
“뇌제는 이미 1년도 더 전에, 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국에 방문했던 저에게 도리어 엄청난 예언을 해주었었습니다.”
-총리의 돌변에 항상 준비하고, 항상 대비하고, 항상 많은 생존자를 결집할 방법을 탐구하셔야 합니다.
“마치 지나가듯이, 그냥 농담이라는 듯이 했던 말이었습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뇌제 이건우는 말도 안 되는 명성을 날리며 그때마다 자신의 예언을 증명했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하나, 둘. 그게 무엇이건 맞아떨어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는 황금 게이트에서 신물을 얻었고, 죽을 예정이라던 성녀를 은밀하게 구해냈으며 흑룡을 무찔렀고, 이젠 재앙마저 몰아내는 세기의 헌터가 되었다.
그러한 그의 성공이, 하나의 반증이 된다.
‘총리의 돌변’이라는 결코 일어날 리가 없을 것만 같은 대사건에 대한 반증이 말이다...
“제가 사령관님을... 그리고 그나마 북유럽과 남유럽에 고립되어 있던 생존자들을 불러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뇌제의 예언. 그러니... 이 끔찍한 범람을 막아설 자가 있다면... 오직 그뿐일 겁니다. 사령관”
뇌제를 기다리자는 게 아니다.
뇌제를 찾아가야 한다.
오직 ‘그’만이...
“만일 정말로 흑색 마탑주이자 프랑스의 총리 그리고... 불사왕이라 불리우는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건,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뇌제, 이건우 뿐일 테니까요.”
그는 언제나 미래를 예견하고 또한 막았다.
그의 예견에 사소한 이변은 있어도 결과는 항상 그의 승리였기에.
그런 그가 이미 1년도 더 이전부터 예견해왔던 미래가 바로 지금이라면...
“뇌제에겐 분명, 해결책이 있을 겁니다!”
사령관은 고민했다.
다비드 호베흐는 단호했지만, 이 참극을 일으킨 주범은 ‘흑색 마탑’이었기에 그 마탑의 수석 조교수였던 그는, 지금도 이 동유럽으로 모여드는 생존자들을 움직일 순 없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유럽 연합 독립군의 사령관. 그의 결정이었던 것이다.
“고향...”
유럽은 이미 붕괴하고 있었다.
꿈이라면 제발 누군가 그를 깨워주었으면 하지만, 빌어먹을 이 세계는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죽음...”
방금까지 내 옆에서 싸우던 군인이 총을 든 좀비가 되어 방아쇠를 당긴다.
믿었던 ‘저스티스 가디언즈’는 도리어 유럽에서 이름 있는 ‘길드’들과 ‘용병단’을 급습해 붕괴시켰고, 이젠 정말로 믿을 곳은 사령관 자신이 이끄는 ‘유럽 연합 독립군’ 뿐인 상황이었다.
“사람...”
고민은 복잡하고 길었으나,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짧았다.
“그래. 사람이지.”
그들이 살아왔던 땅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장소가 곧 고향이 아니던가.
‘언데드의 범람’으로부터 정확히 9시간 경과한 시점.
사령관의 눈빛에는 드디어 처음으로 더없이 확고한 결단의 빛이 서렸다.
“후퇴한다! 유럽은 괴멸했다. 우릴 이끌어줄 지도자들은 떠나거나 도리어 우리의 목숨을 수확하려 드는 현재! 우리는 유럽이라는 토지가 아닌, 유럽인이었던 사람을 지킨다!”
혹자는 너무도 빠른 결정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결단과 그 책임은 온전히 사령관의 것이 될 것이기에... 그는 만에 하나라도 이 전쟁이 잘 마무리될지라도, 재앙의 잉태를 두고 도망친 최악의 지휘관으로 남으리라.
허나, 그럼에도 사령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올곧게 있던 다비드 호베흐를 믿기로 한 것이다.
“밀려드는 죽음을 막아내라! 막아내며, 민간인과 비각성자들을 우선하여 구조한다!”
그건 공식적인 유럽의 괴멸. 그리고 사실상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한 과감한 결정이었다.
허나, 그런 숭고한 맹세가 되뇌어지던 순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기에...
-크리리리리리리릭!
믿을 수 없는, 아니. 보고도 믿기 싫은 일은 바로 그들의 발밑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굉음과 함께 돌연 지반을 붕괴시키며 우뚝 솟아오르는 바위.
이게 대체 무엇인지 깊은 의문이 터져 나오던 순간, 그 얼핏 바위와도 같은 생김세였던 그것은 그 흉측한 아가리를 쩍하고 벌렸고...!
-퀘에에에에에에에엑!
-쿠아아아아악!
-배... 고파! 배! 고파아아아아!
사족보행 하는 인간과 벌레, 인간과 동물이 뒤섞인듯한 ‘키메라 언데드’들은 일순간에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이런, 미친!”
누군가, 거친 욕지거리와 함께 마력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확 찌푸려지는 흉측한 생김새.
대체 어떻게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이런 잔혹한 일을 자행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혐오가 쏟아져나온 것이었다.
“다비드 호베흐으으!”
그때, 일순간에 아비규환이 된 회의장에서 짙은 푸른색의 마력이 넘실거린다.
그 마력을 발현해낸 자는 수속성 마법의 대가이자 유럽 연합 독립군의 수장자리를 맡고 있던 그 사령관이었고, 그는 하얗게 센 머리가 거꾸로 치솟을 만큼 큰 마력을 일순간에 쏟아내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우리 독립군이 막겠다! 부디 자네가! 생존자들을 이끌어주게!”
-파아아아아!
그런 외침과 함께, 대지는 숨을 쉴 수 있는 바다에 잠식된다.
일순간에 해저처럼 변화한 상황에서도, ‘죽지 못한 자들’은 날뛰지만, 물이 잠긴 세계는 사령관에게 있어 그 어떤 공간보다도 절대적인 힘을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흐으으으으으읍!”
비록 ‘저스티스 가디언즈’라는 명예로운 단체에는 들지 못했으나, 그래도 유럽 연합군을 이끌 만큼의 뛰어난 군인이자 높은 등급의 헌터였던 그.
그는 눈동자에서 짙은 푸른빛을 번뜩였고, 그가 뿜어낸 ‘물줄기’는 땅을 뚫고 나왔던 입 달린 바위 형태의 키메라를 비롯해 이 일대의 모든 간악한 것들을 끄집어 올렸다.
“아아아!”
이윽고 한 점으로 뭉치는 물.
-똑!
그 속에 담긴 언데드들마저 마치 블랙홀처럼 한 점으로 응축시키던 사령관의 마력은 이내, 정말로 단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되어 대지에 내리는 것이었다.
“떠날 이들은 떠나라!”
이내, 결심에 선 사령관은 푸른빛의 눈동자를 번뜩이며 초월적인 마력을 폭풍우처럼 내리게 만들며 외쳤다.
“죽는 순간마저 군인이길 강요하진 않으마! 떠날 자는 당장 꺼져라! 그리고 싸울 자는 지금 당장 총구를 들어라!”
스으윽,
스으으으윽!
한 방울도 없던 땅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
이내 단숨에 전장의 중심으로 날아든 사령관은 사방에 흩뿌려져 있던 마력을 물의 형태로 발현하며 주먹을 틀어쥐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전장은 변한다.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부르고,
죽여도 죽여도 무한히 일어서던 시체들을 압축하여 분쇄시키는 사령관의 스킬.
“하아아아아아압!”
그는 자신의 죽음을 결심한 듯 소리를 높였고, 불타 잿가루가 되어서도 다시 일어서던 언데드들은 삽시간에 사라져간다.
“...역시, 폭풍의 헌터.”
그러한 경이로운 광경을 눈앞에 둔 다비드 호베흐는 놀란 얼굴로 사령관의 옛 호칭을 입에 담았고, 그가 어째서 유럽 연합군의 사령관이 될 수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는 등장 자체로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
그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자였기에 그는 사령관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활약으로 연합군의 얼굴에는 화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혹시... 그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 패배와 후퇴뿐인 전장에서 단 한 번이라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진 않을까.
그런 의식들이 빠르게 퍼져나오는 것이었다.
이에 총구는 다시금 위를 향했다.
이에 군인들은 다시금 고갈된 마력을 쥐어짜기 시작했고, 밀리고 밀리기만을 반복하던 전장은 드디어 교착상태에 놓였다.
“하아아아아아압!”
그 와중에도 폭풍의 헌터가 일으킨 비바람은 언데드를 말그대로 ‘소멸’ 시키길 반복하던 차...
“캬캬캬캬캭!”
다비드 호베흐를 단숨에 경직시키는 경박한 웃음소리는 들려왔다.
“이... 소리는...!”
급하게 올려다본 하늘.
그곳에는 좀 전까지만 해도 사령관만이 우뚝 서서 전장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눈을 단 한 번 깜빡이는 그 찰나의 순간... 헝클어진 보랏빛 머리카락은 나타났다.
“캬캬캬캬캬캭! 뭐하니? 응? 뭐해?”
당연하다는 듯 허공을 걸으며, 아주 당연하다는 듯 찰나의 순간에 나타나, 소름 끼치는 눈으로 그 폭풍의 헌터를 내려다보는 자.
흑색 마탑의 부마탑주이자 사령술의 대가.
주느비에브 리샤흐 수석 교수...
“아, 안돼!”
다비드 호베흐는 삽시간에 목소리를 높이며 흑마법을 발현한다.
허나, 땅에서부터 솟아오르던 새카만 안개가 허공에 서 있던 사령관과 부마탑주에게 닿기도 전에...
-푸으으으윽!
소름 끼치는 파육음은 들려오는 것이었다.
“뭐해. 뭐 하느냐고! 왜 내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니. 이 늙어빠진 혼백아.”
“커...헉!”
전쟁의 판도를 뒤엎고 있던 사령관이 일순간에 그 목숨을 잃었다.
“사, 사령관님!”
“사령관님이!”
동시에 정신을 차린 군인들이 단번에 총구를 들어 주느비에브 교수를 조준했고, 다비드가 피워올린 흑마법은 지금이라도 그녀에게서 사령관을 구출하고자 나아가기 시작했으나.
“아. 귀찮게 진짜.”
그 짧고 무성의한 중얼거림 한 번에,
-끼이이이이이이이익!
-끼애애애액!
-꺄아아아아악!
푸르른 하늘을 그대로 뒤덮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령’들이 흡사 폭격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이게 무...! 크아아아악!”
‘광기의 사령’과 닿는 즉시 총을 떨어뜨리고 격통에 비명을 내지르는 군인들.
누군가는 자신의 눈을 벅벅 긁다 피까지 흘렸고 또 누군가는 낑낑거리며 제멋대로 자신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움직이는 ‘자신의 팔’을 붙잡았다.
처음으로 맞이한 평형의 교착상태를, 저 보랏빛 머리의 광인은 수초 만에 다시 지옥도로 만들고 만 것이다.
“무엇에 대항하더냐. 크큭! 무엇과 싸우려 드는 거냐! 캬캬캭! 너흰 모두 왕의 자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나 하면 되는 거야! 왕께선 너희같이 모자란 것들도 ‘살려’주시고자 그러시는 거라니까?”
크큭, 캬캬캭! 캬캬캬캬캬컄!
조롱하며, 비틀린 조소를 흘리며 주느비에브 리샤흐 수석 교수는 말했다.
도리어 감사하여 고개 숙여야 할 것들이 어째서 대항하느냐고.
그들을 ‘살려’주려는 왕의 의도를 어째서 모르는 거냐고 말이다.
허나,
-탕!
-탕, 탕! 타당!
뒤틀린 광기에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를 쏘는 군인들이 속출한다.
-퀘에에엑!
이미 주느비에브 리샤흐의 손에 심장이 관통된 사령관은 힘없이 축 늘어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바리케이드가 뚫린 전장에서 엔데드들은 다시금 후방의 생존자들을 ‘섭취’하고자 달려들고 있었다.
“역시, 안되는 건가...”
다비드 호베흐는 자신의 흑마법을 손짓 한 번으로 깨뜨린 수석교수를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끝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사령관을 설득하고, 군대를 대피시키고, 민간인을 구호하고, 생존자를 결집했던 자신의 모든 노력이들을... 저 수석 교수는 모두 장난처럼 깨부수고 으스러뜨렸다.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토록 부조리한 현실이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이젠 정말...
“안되는 건가...”
포기.
그때 그의 눈앞에 죽음이 당도했다.
“다비드 호베흐. 흐흐흐흣!”
헝클어진 보랏빛 머리카락을 뒤흔들며, 수석 교수는 다가온 것이다.
“왕의 자비를 스스로 거부한 머저리!”
다비드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극한의 공포로 몸이 경직된 것이 아니다.
다비드 호베흐라는 뛰어난 흑마법사가 눈치채기도 전에 이미 저 수석교수가 그의 전신을 사령에 묶어 고정시켜버렸기 때문이었다.
“머저리! 머저리! 머저리! 너도 기도하렴! 죽음으로 우릴 ‘살려’주시려는 우리의 왕께! 지금이라도 기도하라니까! 빌어봐. 살려달라고!”
완벽하게 봉쇄된 상황.
그 와중에도 수석교수는 흉측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조롱했고 또한 손을 내뻗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처럼 짙은 보랏빛으로 물든 극독의 손톱.
그녀는 분명 그것을, 아주 천천히 또한 끔찍하게 다비드의 몸에 박아넣을 것이 분명했다.
“제발 너의 죽음을 가지고 놀지 말아 달라고 빌어보라고! 캬캬캬캬!”
너무나도 당연하게 ‘고문’을 예고하며 이내 그녀가 다비드의 목에 손톱을 박아넣으려던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한마디 하지.”
그 어떤 굉음도, 빛도 없었다.
허나, 죽음을 목전에 둔 다비드 호베흐와 그를 무참하게 죽이려던 주느비에브의 중간에 갑작스레 나타난 그 목소리는...
“너도 한번 빌어보는 게 어떻겠나. 사령술사.”
푸른 안광의 절대자.
번개의 주인... 뇌제 이건우가 분명했다.
-서걱!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든 담담한 검격 한번.
허나, 그 무심하기 그지없이 그어진 얇은 사선은...!
군대도,
다비드라는 뛰어난 흑마도의 흑마법도,
심지어 폭풍의 헌터라는 이명을 가진 사령관마저 귀찮은 똥파리 취급하던 그 절대적 강자, 주느비에브 리샤흐 수석 교수의 목을.
“살려달라고 말이야.”
아주 완벽하게 베어 가르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콰과광!
무시무시한 낙뢰의 굉음과 빛은 그제야 뇌제의 뒤를 따르듯 울러 펴진다.
이건우는 말 그대로 ‘빛보다도 빠르게’ 전장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 시각은 ‘언데드의 범람’으로부터 정확히 9시간 16분이 경과한 시점.
그는 세상의 그 어떤 원군보다도 이른 시점에, 홀로 전장에 도달했다.
빙의자를 머저리로 만드는 방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