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42화.
세계는 다시금 적광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윽고, 본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처럼 한 점에 응집하는 세계.
그렇게 한 점으로 집중된 세계는 재앙이 되었다.
<재앙, ‘태고의 흡혈귀’는 소유하고 있던 아홉 운명 중, 두 개의 운명을 소실했습니다.>
“무, 무슨?!”
허나, 절망과 비탄이 들끓어야 마땅한 재앙의 부활에 경악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는 다름 아닌 재앙, ‘진조’ 자신이었다.
-쐐애애애애애액!
다만, 그러한 와중에도 소름 돋는 힘의 집결은 느껴진다.
그건,
개벽의 장로에게 주어졌던 ‘창’이었으며
본래는 재앙의 첫 자손, 피의 여왕 바토리의 ‘무구’였고 그보다 더 이전에는, 재앙 ‘태고의 흡혈귀’가 직접 사용하기도 했던 무기.
혈창이자 신살창(神殺槍)인, ‘롱기누스’였다.
한 점에 쏠린 아지랑이는 타오른다.
이윽고 응축되고 농축된 혈속성의 오러를 뚝, 뚝 흩뿌리며 날아드는 창의 궤적.
“크애애애액!!”
이에 진조가 별을 부수는 비명을 내지르며 양팔을 쭉 내밀며 그 어마어마한 혈속성 오러를 머금은 창을 막아내면... 이건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검제의 삶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저 하늘 위에서 재앙의 옆으로, 무광무음의 번개를 타고 온 뇌제는 말한다.
“그의 검은 네놈의 모든 것을 들추었고...”
-텁!
이내 그가 움켜쥐는 것은 다름 아닌 재앙의 어깨.
오직 혈창을 막아내기 위해 양손을 모은 재앙은 곧바로 접혀있던 날개를 펼치며 이건우를 도륙 내려 했으나.
“나는, 네놈을 죽일 방도를 찾아냈으니...!”
또 한 번, 이해를 깨부수고 상식을 뒤엎는 굉음은 재앙이 구축해낸 ‘혈옥(血獄)’을 가득 채웠다.
-추르르르륵!
비명 한 번 질러볼 여유조차 없이, 재앙의 눈, 코, 입, 귀 이윽고 전신에 존재하는 구멍이라는 모든 구멍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양의 피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꼬륵!? 끄륵?!”
-띵!
이윽고, 또다시 나타나는 재앙의 사망을 확인하는 메시지.
검제는 비록 그 압도적인 여파로 인해 앞으로 고꾸라져 쓰러진 상태였으나, 이제 와서 그런 고통 따위는 그의 눈을 감게 하지 못했다.
‘대체... 대체 어떻게... 그 재앙을...?!’
봉변을 당하는 재앙, ‘태고의 흡혈귀’와 똑같은 의문을 떠올리며 경악하는 검제.
그것과 동시에 세계는 적광으로 물들고, 본래는 절망의 도가니와도 같이 여겨져야 할 ‘부활’ 다시금 일어났으나.
<재앙, ‘태고의 흡혈귀’는 소유하고 있던 아홉 운명 중, 세 개의 운명을 소실했습니다.>
온전한 형태를 되찾은 재앙은, 아직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아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벙쪄있을 뿐이었다.
***
붉게 물든 세계가 응집된다.
한 점으로 모인 세계는 형태를 갖추고, 지천을 뒤엎는 혈류가 어떻게 진조의 팔다리를 몸통을 그리고 머리를 구축하는지를 ‘본’ 순간,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 되먹지도 않은 제자야. 잘 듣거라.
그가 곧게 편 손가락은 세 개.
붉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기연이자 스승, ‘혈마’는 매우 진지한 어조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잊지 말라는 듯, 몇 번이고 반복하며 말하던 것이었다.
-보거라. 세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계산하거라. 박동하는 피의 양을 그리고 움직이는 속도를, 그 무게를, 그 질량을. 이윽고, 준비되었다면 행하는 게다.
역산하라.
무아지경의 경지에 오른 검사가 아무런 생각을 가지지 않고 휘두르는 검에도 피는 박동한다.
또한, 태어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아해가 검을 휘두름에도 피는 박동하는 것이다.
그 흐름을, 나노 미터 단위로 읽고 관찰하여 파악한다.
그 에너지의 흐름을 가장 근본적인 단위인 티끌보다도 더 작은 ‘마나’의 단위로 파악해낸다면 문제는 없다고, 그 유쾌하기 그지없는 스승은 확신했다.
-역산하여 제압하고, 적이 힘을 도리어 이쪽에서 이용하는 게다.
보고, 역산하고, 역이용하라.
‘피’는 모든 생물의 근원이기에, 혈도를 타고 흐르는 그 모든 흐름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혈공의 사용자들은 언제나 그래왔다.
-사실, 혈속성은 약하다. 맞닿아 봤자 실제로는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하고 그냥 ‘고통’을 느끼게 할뿐인 힘에 강인함이 어디 있겠느냐.
그러나, 상대의 움직임을 마력을 운용하는 통로인 ‘혈도’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그 힘을 적극 활용한 결과가 바로 ‘혈공(血功)’이었던 것이다.
-단, 혈공은 다르다.
흡(吸), 출(出), 역류(逆流).
그렇기에 이건우가 터득하고 사용하던 혈공은 모두 흐름의 묘리를 따랐다.
-근원적 흐름을 바꾸는 혈공의 힘은, 적의 힘을 내 것처럼 사용할 수 있는 그 힘은! 맞닥뜨린 ‘적’이 강대하고 강인할수록, 혈공의 사용자는 더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게야!
그리고, 지금 이건우의 눈앞에 있는 ‘적’은 다름 아닌, ‘신’, 다름 아닌 ‘재앙’, 다름 아닌 ‘진조’였다.
“그대여어어어어어어어!”
-파직!
이건우는 그저 본다.
세계가 그녀를 구축하던 그 순간을 토대로 박동하는 심장과 그 심장을 시작으로 전신에 퍼져 나오는 막대한 피들을.
그러면,
눈앞으로 날아든 진조의 흉흉한 손톱을!
-텁!
이건우는 물리력보다 먼저 날아드는 ‘진조의 혈속성 오러’를 역이용하여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대여! 어찌 그대가...! 짐을!!”
그러자 아직도 진실을 깨닫지 못한 재앙은 괴성과 함께 더더욱 많은 양의 혈속성의 마력과 오러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른다.
그저 사방으로 비산할 뿐인 붉은 기운들은 ‘이 세계’ 자체를 요동치게 했지만...!
“죽어라.”
재앙이 방출하는 그 막대한 양의 혈류는 나의 ‘간섭’에 따라 쏟아져 나오던 그 압도적인 속도와 경이로운 기백을 그대로, 역행했다.
-츄르르르르르르르륵!
‘틈’에 버금가는 엄청난 속도로 지천을 적시던 그 막대한 힘은 자연히 그대로 진조의 육신에 들이 부어진다.
그러면,
“쿠르르릅?! 끄륵?!”
자연히 진조의 육신은 다시금 붕괴하는 것이다.
“그... 그대....여어어... 쿠르릅?!”
세계는 다시금 적광으로 물든다.
벌써 네 번째 운명을 소실한 다섯 번째의 ‘진조’가 나타나면...!
그 일순간에 이건우는 귀신같이 부릅뜬 눈으로 그 은발의 머리를 향해 손을 내뻗는 것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반사적으로 세계를 찢는 비명을 토해내는 진조.
허나, 그마저도 모든 것을 ‘역산’해낸 이건우의 간섭에 의해 도리어 진조의 목을 치는 단두대로 그 형태를 탈바꿈한다.
뻗어 나오는 힘이, 방출해대는 오러가 고스란히 자신의 목을 가르는 이건우의 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랬...나......”
진조는 무려 ‘다섯 번째 운명’을 잃어가면서 드디어 ‘적’인 이건우가 아닌, ‘자신’의 힘에 집중했고 그제야 확신을 얻었다.
붉게 그리고 소용돌이치며, 나타난 여섯 번째 재앙.
또다시 이건우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혈검, ‘본디오 빌라도’를 크게 들어 올리며 엄습하고 있었다.
-텁.
허나, 그 신화급의 혈검을 받아내는 것은 좀 전과 다른 힘. 혈속성의 오러나 마력이 일말 섞이지 않은 그냥, 재앙의 양팔이었다.
-촤아악!
자연히 그녀의 손가락은 후두둑 떨어져 내렸고 팔은 절반이 쩍하고 갈라져 육안으로도 그 속의 뼈를 볼 수 있을 만큼 너덜너덜한 지경이 되었지만,
“역시... 그랬던 게냐!”
이건우의 힘을 가장 무식한 방식으로 받아낸 지금만큼은 그녀의 목숨을 위협하는 그 압도적인 에너지가 들이닥치지 않았다.
“짐의 힘으로 짐을 죽이고 있었던 게야! 짐이 내뻗는 칼날의 방향을 뒤바꾸어 짐을 찌른다. 그게 바로, 텅 빈 껍데기나 다름이 없는 그대가 짐을 압도했던 이유였구나. 그대여!”
검제의 표정이 돌연 굳어지는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터업!
갑작스럽게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시뻘건 창 한 자루.
그것을 쥔 진조는 표정을 확 바꾸며 자세를 취했다.
-콰, 아, 아, 악!
끊어지는 세계.
찰나와 찰나의 순간이 보여지며 그저 창을 들고 서 있는 것 같았던 진조는 이미 눈앞의 뇌제를 향해 수십 번의 창날을 내지른 후였다.
-챙!
-채쟁! 채재재재쟁!
혈속성의 힘을 역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진조는 자신의 순수한 무위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무인으로서의 정점, ‘틈’을 활용함에서는 그 어떤 이의 추종조차 불허하던 검제의 눈에도 똑바로 보이질 않는 창이었다.
‘저, 저건...?!’
허나, 진조가 검제의 예측을 뛰어넘은 창사였다는 사실보다 더 그를 놀라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두 눈두덩이를 시퍼렇게 물들이고 ‘틈’을 파고드는 창을 모두 막아내는 이건우의 존재였다.
그의 검에서는 아직도 붉디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오브-성혈’과 혈검, 혈창의 공명으로 이룩하는 능력치 700%의 증가.
아마 이건우는 그 힘을 통해 진조의 초월적인 무위에 대항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짐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방식이더구나. 그대여.”
창을 내지르면서도 여유롭게 말을 꺼내고 돌연, 허공에서 손가락을 까닥이는 진조.
-촤아아아아아악!
그러자, 이번에는 이건우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그 막대한 양의 혈속성 오러들이 무질서하게 사방으로 빗발치기 시작했다.
“큽?!”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방울, 방울의 오러.
그건 그 자체로 흩날리는 용암처럼 무시무시하게 사방을 초토화했고, 자연히 그 힘에 가장 근접해 있던 이건우의 전신에는 끔찍한 화상 자국 따위가 새겨졌다.
“흐흐흐! 그래. 정말 즐겁구나! 나의 그대여!”
무려 네 번이나 목숨을 잃은 일은 물론 가벼운 일이 아니다.
허나, 찰나와 찰나의 순간을 반복하며 죽고 죽기를 반복했을 뿐임에도, ‘진조’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이건우가 행했던 ‘역이용’을 자신이 행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게냐!”
-후우우우웅!
통제권이 넘어간 이건우의 막대한 혈속성 오러들은 ‘진조’의 손에서 전보다 더 자유롭게 허공을 유영하였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더더욱 재미있지 않겠더냐! 흐흐흐! 흐하하핫!”
그때마다 일본의 대지 곳곳을 잠식하고 있던 ‘피’를 흡수하며 빠르게 열기를 더해갔다.
그렇게 응축된 이건우와 일본과 진조의 것이 뒤엉킨 흉측한 적광.
밝은 빛 한 줌 없이, 그저 붉은 적광을 내리쬘 뿐인 또 하나의 태양은, 그렇게 허공에 붙잡히듯 떠올라 있던 이건우의 머리 위에서 고정되었다.
이윽고, 진조는 다시금 황홀하다는 듯 뺨을 붉히며 말하는 것이다.
“즐거운 유희였다. 나의 그대여. 그럼 이번에는 그대가 죽고 다시금 짐에게 찾아올 차례로구나.”
자신의 죽음도, 검제의 삶도, 좀전의 그 격노도 모든 것이 그저 따분하기 그지없는 생을 꾸며주는 그냥 유희에 불과했다는 듯 웃는다.
진조는 그 모든 일들을 통틀어 ‘즐거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콰득!
검제는 죽음을 코앞에 둔 이건우와 혐오와 증오의 대상인 진조를 응시하며 이를 악물었다.
‘방법이, 정녕 방법은 없단 말인가!’
이토록 처절하게, 이토록 생을 다해 노렸했거늘.
결국, 진조를 일순간에 죽이던 그 이건우마저 이렇게 손쉽게 진조의 노리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정녕... 정녕 모든 것은 한 줌의 꿈에 불과했던가. 인간은 결국, 재앙을 이겨낼 수가 없는 건가...!’
하도 입을 악물어 으스러진 잇몸에서 피가 흐른다.
그토록 악에 받친 마음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다시금 검을 쥐고 일어서려 하는 검제.
다만, ‘귀신의 흑점’에 파묻힌 전신은 더 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움직이거라. 움직여! 모든 것을 앗아간 적에게 처절한 복수조차 행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이몸의 일생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지 않더냐!’
-타악.
어렵사리 들어 올린 손이 땅을 짚는다.
허공에 묶이듯 떠올라 있던 이건우 역시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행하는 중인지 ‘진조’의 의지를 따르는 혈속성의 에너지들은 요동치고 있었다.
단, 그 모든 필생의 노력들을 비웃듯.
불사의 혼백을 가진 재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다시, 그대를 기다리고 있겠노라.”
-구우우우우우우웅!
움직이는 태양.
내려앉는 세계는 오롯이 이건우의 육신을 찢어발기려는 듯했고, 그 피할 수 없는 ‘죽음’앞에 대항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듯했다.
“말했을 텐데...”
허나, 돌연 들려오는 것은 고요하게 일렁거리는 격노의 목소리였다.
“나에게 ‘다음’ 따위는 없다고!”
-지이이이이잉!
돌연, 길고 곧은 일직선의 빛은 내려앉는 하늘이자 적광의 태양이었던 그것을 관통하며 솟아올랐다.
그것은 푸르른 하늘색.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그리운 푸른 하늘의 광택을 지닌 선이었다.
“스승님은 말씀하시더군.”
-파직!
“왜 그렇게까지 힘을 탐하느냔 질문에 내가 재앙이자 진조... 바로 네놈과 싸우기 위해서라고 답하니 그러셨단 말이다.”
-콰지지지직!
붉은 오러에 속박이 된 것처럼 허공에 묶여있던 이건우.
허나, 하늘색 선을 쏘아 올린 그는 마치 묶여있던 것 자체가 속임수였다는 것처럼 느닷없이 지천을 뒤덮는 엄청난 수의 번개를 번뜩이며 일순간에 속박을 풀고 주먹을 불끈 쥐며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상대가 ‘진조’라면 혈공의 묘리는 금방 간파당할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제2의, 제3의 수를 준비해 두거라... 라고 말이다.”
-쩌적! 쩍!
직후, 이 ‘혈옥’이라는 닫힌 공간에 울려 퍼지는 무언가가 으스러져 내리는 굉음.
그에 따라 진조와 검제 그리고 뇌제 이건우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이면... 그곳에는 진조가 생성한 결계, ‘혈옥’을 나타내는 붉은 하늘이 깨진 유리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스승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제자였단 말이지.”
-쨍! 그랑!
‘게이트’, ‘테라포밍’ 그리고 사실상 파괴불가 오브젝트와 동급의 판정을 가지는 ‘성역’이라는 이름의 결계들.
허나, 이건우가 쏘아 올린 저 하늘빛 선은 마치 한계를 초월한 마력을 흡수한 ‘티탄의 검’과 같이 그 파괴불가 오브젝트인 ‘성역-혈옥’을 말 그대로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저건...?!”
그제야 길고 긴 생을 살아온 재앙은 땅에서부터 하늘에 닿은 저 ‘선’의 정체를 알아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
그러나 그러한 찰나의 순간조차 놓치지 않고 내달리는 이건우는 ‘수왕검’을 뽑았다.
그의 검에 드디어 다시 맺히는 신력 가득한 물방울들.
이윽고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은 이건우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면, 거대한 수레바퀴는 회전하는 것이었다!
수검(水劍), 제1형
물길의 수레바퀴.
하늘에 닿아 적광의 세계를 깨부순 그것.
그 정체는 바로, ‘혈마’이자 ‘제천대성’이라는 별칭을 가졌던 무인. 바로 ‘혈마’의 애병, ‘여의’였던 것이다.
-가지고 가거라... 필시, 네게 큰 도움이 될 게다.
헌터로 각성함과 동시에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몸에서 떨어뜨린 적이 없던 자신의 ‘여의’를 이건우에게 전해주며...
혈마는 아무런 미련도, 여한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과감한 결단은,
-쩌저저저저저저저적!
티탄의 검을 외부에 두고 온 이건우가 이 닫힌 세계를 무너뜨리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으스러져 내리는 결계의 밖은 아주 밝았다.
어느새 온전히 떠오른 태양은 따스한 빛을 대지에 내리쬐어주고 있었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던 경계가 완전히 소실되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윽고, 진조의 목덜미에 수왕검을 쑤셔박은 이건우는 말했다.
“준비는 되었나. 재앙! 지금 이 순간부로 네놈은... 홀로 세계를 상대하는 거다!”
“세, 세계라...?”
세계 대 개인.
이건우의 말에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뜨는 진조였으나, 그가 언급한 ‘세계’는 곧 완전히 성역이 무너져 내림에 따라 금방 그 모습을 드러냈다.
“7여단! 전원! 사격 준비!”
여단장, 최중철을 비롯해 이 자리에 집결한 모든 대대.
“5군단의 헌터들은 총구를 올려라!”
또한, 부산의 방패 5군단 역시 죽은 장훈의 아내였던 김수정 중사마저 포함한 전군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기다렸느냐. 벗이여! 이 흑태자가! 반 압둘 아자스 알 사우드 칼레드가 약속을 지키러 왔느니라!”
동시에 막대한 존재감을 뽐내며 ‘중동 연합’의 3분의 1을 대동해 나타난 흑태자.
“아저씨!”
막내 성전사 메리의 등에 업힌 2대 성녀 앤젤라 엘런과 그 작은 소녀를 따르는 성전사단.
““건우야!””
수신의 성녀 남궁연.
검성의 제자 검희 이서영.
한국의 헌터 협회의 부협회장 이초희.
번개 중대와 757헬기부대는 본대의 모든 전력이 이곳에 당도해 있었으며 ‘암행’의 이준학 준장 역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기밀 특수부대 ‘암행’의 대원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대동해 나타났다.
이윽고, 헬기들의 위로 그 그림자를 드러내는 거대 ‘비공정’과 인천의 수호자, 대한민국 1위 용병대 ‘황해’의 조성우.
그리고 저 너머에서는 반인반룡의 대마법사. 올리비아 스트라우스와 그녀의 전속 집사인 무왕(武王), 스티븐의 모습마저 보였다.
그리고 당연히, 현대판 세계의 황족이나 다름이 없는 ‘스트라우스’ 일가의 인간이 이곳에 당도해 있다는 것은, 미국 전역을 통합한 세계 1위의 길드. ‘제이슨 스트라우스’의 모든 헌터들 역시 이곳으로 날아들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집결한 ‘세계’의 군단을 등 뒤에 두고, 나는 눈앞에서 나와 힘겨루기를 하는 진조를 향해 고고하게 읊어주는 것이었다.
“이들이 바로, 내가 살아온 두 번째 생의 족적이다. 재앙이여. 모든 것을 죽이고, 모든 것을 취하고 또한 모든 것을 고문할 뿐이었던 네놈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것...!”
-스릉!
-촤악!
“신뢰할 수 있는 동료라는 존재지!”
교차하는 것은 이건우의 일검과 여덟 가닥으로 뻗어 나오는 시뻘건 광택의 날개들.
다만,
-투둑, 툭, 투두두두둑!
맑게 갠 하늘에서도 푸르른 빛의 비는 내리었고,
「이 보잘것없는 소녀가 성 미카엘 대천사께 간원하나이다.」
하늘에 태양광보다도 더 밝은 빛은, 일말의 주저 없이 두 무릎을 땅에 꿇은 소녀. 앤젤라 엘런에게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이젠,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끝낼 시간이다. 재앙!”
-팟! 파지지지지지직!
그리고 맞닿은 제로 거리에서, 거대한 번개는 피어올랐다!
두 번째 생의 족적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