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37화.
콰-!
돌연 새벽을 무너뜨린 그것은 형언하기도 힘들 만큼 거대한 ‘검’ 한 자루였다.
아아아아-!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았다는 표현이 이보다 적합한 순간이 있을까.
아아아아아아앙-!
그 압도적인 충격에 자연히 폭풍은 일어났고, 장장 1분이 넘도록 인간의 오감을 그대로 앗아가는 흙먼지와 굉음과 바람은 밀어닥치는 것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인간, 흡혈귀, 몬스터의 구분 없이 그저 이미 일어난 아비규환에 대해 넋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던 그 순간......
역시 천일에 달하는 시간 동안 합을 맞췄기 때문일까.
-스릉!
새하얀 검광을 번뜩이는 ‘백룡도’만은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검성류(劍星流)-발(拔), 제3형.
진(眞), 무형나비.
무시무시한 발(拔)의 기세를 부드럽게 풀어내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드는 쾌속검.
이윽고, 그 검이 파고드는 곳은...
“꺄아아아아아아악!”
다름 아닌 ‘네 번째 혈족’의 목이었다.
예측을 불허하는 날카로운 기습.
경을 치는 고통과 함께 ‘네 번째 혈족’은 괴성을 내지르며 이미 절반이상 목을 파고든 ‘백룡도’에 저항했다.
“어찌이이이이!”
자연히 비명인지 격노의 함성인지 모를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샛노랗게 빛나는 이서영의 두 눈은 아직도 그 눈부신 안광을 번뜩이고 있을 뿐이었다.
“어찌이이 어머니의 권능이 함께하는 이 게이트에서... 우리 혈족에게 도전한단 말이더냐!”
‘네 번째 혈족’은 곧장 짙은 혈속성 오러를 머금은 적광의 날개 두 쌍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 속도는 가히, 풍부한 힘과 음속의 속도로 주먹을 휘두르던 ‘다섯 번째 혈족’에 버금갔으며 그와 동시에 땅과 하늘에서는 시커먼 안개와도 같은 벌레 때가 끔찍한 저주를 머금고 달려들었지만,
“게이트라고?”
이서영은 누런 안광을 번뜩이며 인간의 오감을 초월한 ‘틈’에 발을 디뎠고 이내, 차분히 검을 내질렀다.
“그딴 게 어디 있는데.”
-촤아아악!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그어지는 검격.
그 밀도 짙은 오러는, 오직 이서영을 향해서 용솟음치고 날아들던 저주의 벌레 때를 한 호흡에 휩쓸었고, 그 날카로운 검광은 다시금 이미 절반이 갈라져 있던 ‘네 번째 혈족’의 목을 향해 또다시 날아들었다.
그그그그그극!
터져 나오는 쇠가 쇠를 가르는 듯한 굉음.
이윽고 처음으로 이서영의 ‘백룡도’는 ‘네 번째 혈족’의 목에 수평선을 아로새겼다.
‘이럴... 리가?!’
이에 ‘네 번째 혈족’은 추락하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어머니가 창조하신 게이트에서... 몇 배로 경화된 나의 몸을?!’
‘네 번째 혈족’은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반사적으로 추락하는 자신의 머리를 잡아들었으나,
-촤아악!
샛노란 검광은 이를 용서치 않겠다는 듯 엄청난 속도로 머리를 추격했다.
이에 ‘응어리진 저주’를 끌어올려 최소한 검의 궤도를 비틀려고 드는 혈족.
다만, 무시무시한 검격에 휘감긴 흩날리는 오러는 그러한 얕은 술수 따위를 모조리 몰아내며 날아들고 있었다.
‘죽는다...!?’
또한, 옅지만 분명하게 그 검에 맺힌 시퍼런 신력.
이를 확인한 ‘네 번째 혈족’은 코앞에 닥친 ‘진짜 죽음’에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푸우욱!
그렇게 터져 나오는 무식한 파육음.
허나, 누렇게 번뜩이던 이서영의 검을 받아낸 것은 흉측할 정도로 비대하게 그 크기를 키운 ‘다섯 번째 혈족’의 오른팔이었다.
“누니이이임!”
외침과 함께 완전히 찢어진 오른팔에서 치솟는 피분수.
“쯧!”
이에 이서영은 진심으로 개탄스럽단 듯이 강하게 혀를 찼다.
“흐아아악!”
“아아악!”
직후,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혈족들은 날개를 펄럭이며 엄청난 속도로 이서영을 향해 질주했다.
그 행동의 목적이라 한다면, 당연하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 벌이.
바로, ‘네 번째 혈족’이 육신을 수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이를 눈치챈 이서영은 인상을 팍 구기며 우선 날아드는 두 혈족에게 눈부신 개나리빛의 오러를 크게 방출했다.
“누님! 저주를...! 끔찍한 악몽의 저주르으을!”
허나, 그와 동시에 목놓아 부르짓는 다섯 번째 혈족.
이번만큼은 이서영 역시 그 ‘응어리진 저주’에 대항할 수단이 없어 사색이 되었는데...
“누님?!”
후방으로 크게 도약했던 ‘네 번째 혈족’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윽고, 일대의 모든 시선이 한곳에 모였던 바로 그 순간.....
“캬아아아아악!”
처절하다 못해 비참하게까지 들릴 법한 비명은 후방이 아닌 저 상공에서 들려왔다.
“뭣?!”
“무슨?!”
“저... 저건......!”
아무런 굉음도 없었다.
또한, 아무런 빛도 없었다.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지독한 비명과 누군가의 그림자 하나뿐.
“뇌제......!”
‘다섯 번째 혈족’은 그의 이름을 읊으면서 동시에 얼굴을 절망으로 물들였다.
그건, 돌연 하늘에서 떨어진 저 거검(巨劍)이 흡혈종만을 축복하는 ‘게이트’를 말 그대로 깨부수어 버렸기 때문은 아니었고,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힘에 묶여 말 그대로 사지가 분쇄되고 있는 자신의 남매, ‘네 번째 혈족’을 목도했기 때문도 아니었으며
심지어는 그제야 저 거검이 다름 아닌 뇌제와 링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조차 아니었다.
‘다섯 번째 혈족’의 얼굴이 창백한 절망으로 물든 진짜 이유는......
-쿠웅!
두 눈을 시퍼렇게 물들인 이건우가 집어던진 화물트럭만 한 크기의 ‘머리’ 때문이었다.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크레이터를 형성하는 그것.
절반은 검고, 절반은 붉은 그 머리는......
“도, 도살자 이이이... 익시스.”
바로 ‘두 번째 혈족’.
도살자 익시스의 머리였기 때문이다.
-텃.
가벼운 발걸음으로 드디어 땅에 발을 딛는 뇌제 이건우.
허나, 그 짧고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파문은 퍼져 나왔고.
-파직!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 지난 후, 그의 ‘전격’은 무시무시한 빛을 터트렸다.
“고생하셨습니다. 대령님.”
으스러져가는 ‘다섯 번째 혈족’의 귀에 들려온 이건우의 목소리는 ‘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도 없을 만큼 평온했다.
‘그... 그런가. 애당초 우린, 놈의 적수가 될 수조차.......’
그렇게 이건우의 등장과 동시에 넷이나 혈족은 자신이 정말로 죽는단 생각조차 떠올리기 전에 숯덩이가 되어 사라졌다.
***
언제나 전쟁의 판도를 뒤바꾸는 건 수천의 군인이 아니라 한계를 초월한 한 헌터였다.
-콰직! 콰지지직!
동이 트는 새벽을 대낮의 대지로 뒤바꿔버리는 시퍼런 낙뢰.
이미 일본땅을 밟고 서 있는 군인들에게 있어서 한 치의 물러섬도, 잠깐의 쉼도 허락지 않았던 그 무시무시한 ‘몬스터 카니발’은 단 한 사람의 등장으로 막을 내렸다.
“에... A급 헌터만 오십 명 이상에 검은 헬기 열 대를 대동해도 막기 벅찼던 괴수 퍼레이드를......”
“드, 듣기는 많이도 들었지만, 실제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젠 내부 무전을 통해 이런 잡담을 나누어도 될 만큼 여유를 되찾은 757헬기부대의 대원들.
그들은 모두 베타랑급의 경력을 가진 자들로 그중에서도 다시 A급 이상의 마력 등급을 가진 이들만을 추려냈음에도 막기 벅찬 상대였다.
“저, 저희는 진짜 최정예만 대동한 건데 말입니다...”
“야. 다른 부대는 안 그런 줄 아냐?”
7여단에서 선출된 헌터들은 특히나 ‘휴거교’를 이다지도 많이 상대해봤던 흑마법의 전문가들이었으며 그리고 화력을 담당할 인원들로는 무려 준특급 이상의 헌터들을 스무 명이나 대동했다.
‘번개 중대’와 ‘성전사단’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위기의 순간마다 전장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하던 ‘암행’과 ‘이준학 준장’ 역시 분명 큰 역할을 다해주었다.
그렇게 간신히, 아슬아슬한 상태로 유지되던 전장.
“그런데 그걸......”
“뇌제는 혼자서?”
아직도 하늘에 수놓인 적광의 게이트들은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을 뱉어내고 있다.
단,
-파지지지지직!
천지개벽의 기적이라 해도 믿을 법한, 무시무시한 크기의 번개가 홀로 고고히 그 모든 적들을 분쇄하고 있던 것이다.
심지어 동서남북의 사방위를 지키던 부대들이 여유롭게 한곳에 모여들며 잡담마저 나눌 수 있을 만큼 압도적으로!
“한계를 넘어선 헌터는 한 국가의 군대를 전부 대동하고 나서야 간신히 그 무게추가 평형을 이룬다고들 하지.”
그때, 한참동안 잡담을 나누던 그 무전을 통해 757부대의 현장 지휘관, 강진용 소령이 입을 열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강진용 소령은 그런 반응에 피식 웃고는 지금도 홀로 하늘에 고고히 서서, 저 수천의 괴수들을 몰살하고 있는 남자를 응시하고는 덧붙였다.
“너희는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일로 확신했다. 무게추의 평형은 무슨... 대한민국의 모든 군인들을 전부 대동해도 뇌제와 비등할 수는 없을 거다.”
혹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혹자는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콧김을 휙 내쉬는 소리가 무전을 타고 흘러나왔다.
허나, 확실한 것은 그 누구도 저 광경을 눈에 담고서 ’그렇지 않다‘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뿐일 거다. 평화가 무너진 세계에 다시금 ’평화‘를 안겨줄 헌터는. 그리고... 그 ‘언데드의 왕’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헌터는 말이야.”
***
‘역할의 재분배라고...?’
네 갈래로 나뉘어 있던 부대들이 집결함과 동시에 출발하기까지 반 시간.
이서영은 갑작스럽게 ‘작전’을 변경하겠다는 나의 말에 놀란 눈으로 그렇게 반문했다.
그야, 나는 이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에는 이렇게, 저 작전에 실패했을 때는 다시 차선책으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유동적으로 작전을 운용하긴 하지만, 이미 시작된 작전을 갈아엎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허나, 실상 그녀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티탄의 검.’
그 하늘 거인의 검에 한계를 돌파하는 양의 마력을 무한히 주입해 빌딩 한 채 아니, 항공모함급으로 크기를 키우면...
‘파괴불가 오브젝트’의 특성을 가지는 ‘게이트’ 혹은 ‘테라포밍’의 산물 따위를 말 그대로 분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걸 말이다.
이것이 바로 혈마 혹은 제천대성이라 불리던 그의 무기 ‘여의’와 ‘티탄의 검’이 공통으로 가지는 하는 특수한 힘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힘’을 아직 다 잉태되지 않은 재앙, ‘태고의 흡혈귀’를 강제로 깨우는데 사용할 요량이었다.
-콰지지지직!
그러나, 딱 한 가지 예상외의 사태가 작전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어째서셨습니까. 왜 약조를 지키지 않으셨던 겁니까.”
나는 검지를 들었다 내리는 것만으로 쏟아져나오는 수천의 괴수들을 불태우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리 말했다.
이미 다시금 진군을 개시한 ‘한국군’은 먼지와 황폐한 도심만이 남은 교토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서서히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하늘에 열려 있던 수십의 게이트가 닫히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제야. 나타난 자는 답했다.
“약조라...... 네놈은 이 노구와의 약조를 지키지 않았으면서, 어찌 이 노구와 제자들에게는 진심 어린 협조를 바란다는 말이더냐.”
허리춤에 두 자루의 검을 묶고, 낡디 낡은 사무라이의 옷을 입고 나타난 백발의 남자.
그런 그를 향해 나는 웃으며, 전혀 웃기지 않는 소리를 내뱉었다.
“어르신이 약조를 지켜주셨더라면... 저는 이미 금각사에 붙잡혀 있는 타천의 ‘미구엘’을 소멸시켜 재앙의 현현을 늦추었을 겁니다. 또한, 이나리 신사에 둥지를 튼 ‘재앙의 알’을 베기 위해 달리고 있었겠지요.”
그러자 그는 눈살을 찌푸렸고,
“이 노구를... 탓하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시건방진 꼬마야.”
나는 그저 사라져가는 적광의 게이트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던 고개를 드디어 돌려 그를 분노가 서려 있는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탓하는 것처럼’이 아닙니다... 검제. 실제로 당신의 비협조는 내 동료들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뻔했습니다.”
‘네 번째 혈족’.
그 여성형 흡혈귀만큼은 이서영에게 버거운 상대였다.
단순한 1대1에 특화되어 있던 그녀는 실제로 ‘세 번째 혈족’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힘을 갖춘 상태였지만, ‘네 번째 혈족’은 언제나 같은 혈족을 무리 지어 대동하는 존재였고...
늘 이서영과 같은 강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내놓게 만드는 상황을 조성하는데 특화된 지략가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패가 바로 눈앞의 그 였다.
검제 그리고 내게 더할나위 없이 협조적이던 검제의 제자들과 검왕 류자키.
허나, ‘하늘’에서 확인한바. 그들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끝내 나는 구름 위에서 몰래 준비하던 티탄의 검을 재앙이 아닌 혈족들을 향해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내 안타까운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검제는 그저 부릅뜬 눈으로 도리어 격노할 뿐이었다.
“제멋대로 협조를 바라고, 제멋대로 협력을 강요하는... 네놈도 결국 이 노구의 ‘힘’을 이용하고자 했던 침략자였을 뿐이었던 게야!”
“요시히사 켄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십시오! 이 세계를 위협하고, 당신의 삶을 파괴한 재앙과! 정녕 내가 똑같아 보인다는 말씀입니까!”
분노에 미친 칼잡이.
그의 검은 최강의 조력자였던 한편, 이젠 어디로 튈지 모를 ‘변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그가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그의 표독스러운 모욕에 맞서 소리를 지르는 한편 진심으로 그를 적대하고 싶진 않았다.
이윽고 검제는...
요시히사 켄신이라는 남자는 다양한 감정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듯 눈썹을 부르르 떨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말하라... 부탁이니 제발, 말해달란 말이다. 딸...... 내 딸 레이라는... 어디에 있지?”
불안한 듯 일렁이는 그 눈동자.
허망하게 허공을 쥐고 떨리는 그의 주름 가득한 그 양손은...!
일평생을 국가를 위해 헌신했음에도 한 줌의 보답도 받지 못했으며, 그럼에도 아직도 어깨에 국가의 존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지칠 대로 지치고, 고독에 잠겨가는 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허나, 그 간절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 질문에는 답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지...?”
허망하기 그지없는 어조였다.
그렇게 되묻는 검제의 얼굴에는 어째서인지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질 않았고 자칫 잘못했다간, 나의 한마디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만 같았다.
혹은, 나를 죽이려 들거나...
재앙을 조기 현현 시키겠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현재, ‘검제의 검’은 없어선 안 될 비수다.
수없이 많은 세뇌로 피폐해진 정신.
그 정신이 무너질지, 폭주해 날뛸지를 결정할 나의 한마디.
그는 하프 엘프 ‘레이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기세였다.
그러니, 나도 이젠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레이라는...”
진실을 논할지,
혹은 그의 여생에 마지막 불씨를 지필 거짓을 이야기할지를 말이다.
“이미 10년도 더 전에 당신의 손에 죽은 사람이니까요.”
고민 끝에 나는 선택을 내렸고, 검제는 내가 상상하던 그 이상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감히,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냐아아아!”
분노, 아니 두 눈두덩이를 시뻘겋게 물들일 정도의 격노가 그곳에 있었다.
-스릉!
-스르릉!?
검제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허리춤의 두 검을 뽑아 들고서 반인반룡의 눈으로조차 따라잡지 못할 수준의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레이라를 데리고 와라! 얼른 내 딸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네놈을 죽여버리겠다!”
그 고압적인 외침과 핏발 세운 눈동자.
역시,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건, 어떤 행동을 취하건... 자신의 딸을 직접 만나게 되지 않는 한 이렇게 폭주할 셈이었던 것이다.
그는 전생에도, 이와 같은 행보를 보였었으니까.
단, 전생에 이 폭주를 제 입맛대로 활용한 쪽은 다름 아닌 재앙, ‘태고의 흡혈귀’였지만, 현생은 달랐다.
-챙!
나는 숨 쉬듯 자유롭게 ‘틈’을 훑고 나타나는 검제의 검을 막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기억해 내십시오. 검제. 당신의 검이 향해야 할 곳은... 이쪽이 아닙니다!”
그 검이 본디 향해야 할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검이 바라보아야 할 곳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