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35화 (135/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35화.

두 번째 혈족.

악마의 피와 어머니의 영예로운 품에서 태어난 ‘도살자 익시스’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주제도 모르고, 감히 재앙의 좌에 앉은 어머니에게 대적하는 한 인간을 말이다.

때문에 도살자는 자신의 어미를 향해 당차게 그 인간을 직접 벌하겠노라 말했고.

-어디 한번 원하는 대로 해보거라.

그건, 그 맹세에 대한 ‘진조’의 응답이었다.

심드렁한 표정과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는 듯이 옥좌에 누워 자신의 손만을 응시하는 어머니의 모습.

익시스는 오직 어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뇌제 이건우’를 압살하기 위한 자신의 장대한 계획을 줄줄 늘어놓았지만...

-짐이 원하는 대로 하라 말하지 않았더냐. 허나, 기억하거라 너희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에게로 오게 될 게야.

재앙, ‘태고의 흡혈귀’는 눈동자조차 굴리지 않고 그렇게 단언했다.

어머니의 말은 곧 진리다.

‘재앙의 좌’에 앉은 어머니는 수십을 넘어 수백의 세기를 ‘기억’하는 초월적인 존재시니까.

어머니가 길이라 하면 산은 길이 되고, 어머니가 바다라 하면 세계는 물에 잠기는 것이다.

허나, ‘도살자 익시스’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단언에 수긍할 수가 없었다.

전격을 다루는 헌터이자 ‘계시’를 빗겨내는 자. 뇌제 이건우.

그야. 그는 흡혈귀에게 치명적인 ‘신력’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정작 흡혈귀만의 고유한 힘인 ‘혈속성’마저도 아주 조금은 다룰 줄 아는 자다.

‘영원불멸’한 흡혈귀의 생을 정말로 끝장낼 수 있는 그런 위험한 ‘적’인 것은 사실이었단 말이다.

다만, 도살자 익시스는 다름 아닌, 그런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창조된 자손이 아니던가.

‘도살장’에 끌려온 그 순간, 혈속성을 제외한 모든 힘은 기능하지 않는다.

이는 다른 신이니, 초월자이니 하는 것들의 간섭으로부터 ‘도살장’은 완벽히 격리된 공간이라는 소리였다.

그걸 위한 ‘도살자 익시스’이고, 오직 그걸 위한 ‘도살장’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이 익시스를 창조하신 어머니가 직접, 자신의 입으로 그런 자식의 존재의미를 부정하시는가.

‘어찌, 그대의 두 번째 혈족인 저의 비참한 패배를 점지하실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맞닥뜨린 이건우는...!

혈마류(血魔流)-혈공(血功)

출(出)

순혈 흡혈귀보다도 더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대지를 박차고 날아와 ‘찰나의 틈’에서 익시스의 목을 베어 가르는 ‘괴물’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촤아아악!

선명하게 그어지는 혈검의 궤적.

다만, 도살자 익시스의 머리는 굵고 크기에 완전히 목이 떨어지진 않았다.

허나...!

-파지지지직!

분명, 혈속성의 마력 이외에는 구현될 수 없는 이 모든 흡혈종들을 위한 ‘도살장’에서...

-파아아아아아!

그는 흡혈귀가 다루는 혈속성과는 또 다른 선 분홍빛의 벼락과 비를 내리며, 본래 자신이 싸우던 그대로의 전투방식을 펼쳐내고 있었다.

“어찌... 어찌! 대체 어떻게...!”

끝없는 의문은 본래, 이 ‘도살장’에 끌려온 자의 입에서 터져 나와야 하는 것들이었다.

“어떻게 이곳에서...! 본래 네 녀석의 힘을......!”

일순간에도 번개와 함께 사방에서 날뛰며, 자신을 보필하고자 함께 ‘도살장’으로 들어온 ‘네 명의 혈족’까지 단칼에 베어버리는 이건우.

“이곳은... 이곳은 나의 땅이다! 나의 세계란 말이다!”

참지 못한 ‘도살자 익시스’는 악에 받힌 목소리를 토내해며 다시금 손에 쥔 무수히 많은 식칼에 ‘태산’의 혈속성 마력을 실어 내던지지만,

“스승님이 말했었지. 태어나면서부터 숨을 쉬듯 혈속성을 다루는 네놈들은 그 근원에 대해 이해하지도, 알고 있지도 못할 거라고.”

사방을 빛의 속도로 질주하던 이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다름 아닌 ’도살자 익시스‘의 등 뒤였다.

직후, 익시스는 경악하며 몸을 격렬하게 뒤틀어 이건우에게 또다시 수많은 도검을 내지르지만, 그는 그저 평온한 얼굴 그대로 다시금 양손을 명치께에 모을 뿐이었다.

혈마류(血魔流)-혈공(血功)

흡(吸)

허나, 고작 그뿐인 작은 행동만으로도 도살자가 격노로 끌어올린 ‘태산’의 혈속성 마력들은 또다시 놈의 의지대로 멋대로 소용돌이치는 것이다.

그 압도적인 열기가, 말도 안 되는 기세가 거구의 익시스의 육체마저도 베어 가른다.

그저 모으는 힘의 파급력만으로 그 지경이었다.

이내, 이건우가 한껏 끄집어 모은 그 힘을 신화급 무장에 담아 한 호흡에 흩뿌려내면...!

혈마류(血魔流)-혈공(血功)

출(出)

“크아아아아아악!”

‘도살자 익시스’의, 15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의 피와 원한으로 빚어 만들어낸 거대한 그 육신은 갈라진다.

이윽고, 아직도 고통에 절규하는 익시스의 눈앞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핏줄기’를 밟고 허공에 선 이건우는 고고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혈속성’의 그 근원을 모르고 그저 본능적으로 움직일 줄만 알던 너희는 날 이길 수 없는 거다. 혈속성 이외의 힘은 성립할 수 없는 이 ‘도살장’에서는 더더욱.”

이건우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뒤로 쭉 빼고 있던 검을, 허릿심을 담아 단숨에 휘두르는 그 순간 도살자 익시스의 눈앞에는 혐오스러울 만큼 붉으면서도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바다가 솟아올랐다.

자신은 분명 ‘진조’의 두 번째 혈족이다.

주술과 간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주교’ 놈보다도 강하고,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우월한 첫 번째 혈족에 가장 근접한 ‘두 번째’란 말이다.

그럼에도 이건우가 너무나도 평온하게 휘두른 일검은 그런 ‘도살자 익시스’를, 아니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혈족들마저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압도해내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뇌제의 힘을, 마치 석양이 비추는 바다와도 같은 이 대양(大洋)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단 말인가...!?’

붉디붉은 혈속성의 바다.

바다는 산을 덮쳤고 또한 게걸스럽게 그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늘 모든 ‘적’을 고문하고 괴롭히길 즐기던 ‘두 번째 혈족, 익시스’는 그렇게 이건우를 마주한 지 단 20여 분 만에 ‘도살장’이라는 자신의 세계와 함께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

[진군을 이어가시다 보면 놈들은 군대도, 주술도 아닌 ‘게이트’로 길을 막을 겁니다.]

“이 정도면 작전이 아니라... 미래 예지라고 해도 되겠어.”

이서영은 이제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는가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건우가 사전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려주었던 ‘작전’의 내용대로 게이트는 나타났고,

<‘흡혈종’을 제외한 모든 생물이 거대 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디버프-혼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얼토당토않은 입장 조건 역시 이렇게 툭 나타난 것이다.

반투명한 게이트의 외벽 너머에는 이미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른 ‘제단’이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제단’의 위 지금도 뭔지 모를 기도 따위를 올리고 있는 자의 형상마저도.

“저 새끼는...”

직접 본 적은 없었으나 CCTV를 비롯한 기기의 화면을 통해 질리도록 눈에 익혀두었던 얼굴.

바로, 휴거교 주교의 얼굴이었다.

‘숙적’의 존재를 확인한 이서영은 다소 흥분한 어조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렸으나, 침착하게 안경에 튀긴 피를 닦던 홍진웅 중위는 냉정한 어조로 그녀에게 말을 걸 뿐이었다.

“이어서 작전을 이행하겠습니다.”

“...그래.”

홍진웅의 언급과 같이, 작전은 변함없이 순항 중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비루한 대치 상황 자체가 이건우의 ‘미래 예지’급 작전의 일부일 뿐이었으며 한국군은 바로 이 상황을 위해 이미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교토가 ‘재앙의 잉태’가 시작되는 장소라면, 도쿄는 흡혈귀들이 사육하는 살아 있는 인간들과 그 피조물들이 ‘저장’되는 장소입니다.]

도쿄와 교토의 거리는 멀다.

날개 달린 무언가가 아니고서야 ‘단기 결전’을 결심하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군대의 진군보다 더 빨리 이 교토에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놈들이 한국과의 전쟁을 위해 도쿄에 ‘저장’해 두었다는 괴물들은 일반적으로 이 전쟁이 다 끝난 뒤가 되어서야 이곳에 도달할 거라는 소리였다.

허나,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쩌적!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적’은 다름 아닌 ‘휴거교’의 뿌리라는 것을.

-쩍! 쩌어억!

갑작스럽게 갈라지는 창공.

이윽고 그 찢어진 하늘에서는 시뻘건 광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럽게 오랜만인데, 진짜 하나도 안 반갑네...”

후우.

마치 속을 게워내듯 이서영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고 이어서 친숙하면서도 역겨운 ‘오르골’ 소리는 들려온다.

-띵! 띠딩!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주교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혈족의 기적, ‘게이트’가 현현됩니다.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흡혈종’뿐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일순, 하늘은 점멸한다.

하늘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수의 붉은 게이트가 그 찢어진 균열에서부터 쏟아져 내린 것이다.

이내 지천이 모두 시뻘건 화마에 둘러싸인 것처럼 세상은 그저 붉게 물들었고.

-쿠에에엑?!

-쿠애애애애애애!

믿을 수 없는 수의 괴성은 곧 들려왔다.

지금까지 눈앞에 나타났던 ‘적’은, 그저 번거로울 뿐이었던 ‘붉은 덩어리’들 뿐이었다.

허나, 지금 저 하늘에서 후두둑, 자신의 생사 따위는 무관계하다는 듯 무분별하고 미친 듯이 쏟아져 내라는 것들은...

지금껏 이서영이 보고, 들었던 ‘휴거교’에서 사육하는 그 모든 피조물들이 분명했다.

“지옥이 있다면, 아마 이런 광경이 매일 같이 펼쳐지는 곳이겠죠.”

묘하게 떨떠름한 얼굴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홍진웅 중위.

이에 이서영은 흠, 하고 비음을 잠깐 흘리고는 도끼눈을 뜨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싹 밀어야지. 이딴 지옥이 더 득세하지 않게.”

작전과 무관계한 잡담은 그게 끝이었다.

이서영은 하늘에서 내리는 흡혈귀의 종들을 조금 더 응시하다 검을 뽑아 높게 드는 것으로 신호를 보냈고.

-시작한다!

홍진웅의 냉정한 지휘와 함께 그 ‘몬스터 카니발’을 코앞에 두고 있던 ‘번개 중대’에서는 돌연 시퍼런 빛줄기가 쏘아 올려졌다.

다만, 그것은 일반적인 포대와 달리 어딘가에 닿아 폭발하거나 적을 분쇄하지 않았고... 그저 시퍼런 돔 형태의 마공학 방호 필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이이잉

알고 있다는 건, 대처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이건우는 이미 한국에서도 수십 번, 휴거교의 계략을 막아낸 전적이 있는 자. 그런 그가 과연, 이런 ‘공간이동의 게이트’를 다 예측하고도 대처를 준비하지 않았겠는가.

지금까진 거추장스럽게 그저 바퀴를 굴릴 뿐이었던 5t 군용 트럭이 빛을 발하고,

-기이이이이잉!

드디어 거대한 엔진 소리를 내뿜으며 ‘마공학 전차’들이 사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몬스터가 장마철의 비처럼 내리는 이 몬스터 카니발의 건너편에서도, 마공학 방호 필드는 빛을 내뿜었고 거의 동시에 그 좌측과 우측에서도 빛이 쏘아 올려졌다.

이윽고, 사방위.

하늘이 찢어지고 몬스터가 내리는 그 기괴한 광경 바로 밑을 기준으로 정확히 동서남북에는 몬스터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마공학 필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즉, 가둔 것이다.

‘침입자’인 한국군을 쓸어버리기 위해 흡혈귀들이 불러들인 이 몬스터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수신의 성녀는 정갈하게 무릎을 꿇으면, 비는 내린다.

-팟, 파아아아아!

신성한 비로 젖어 그 괴물들이 막대한 화력마저도 가볍게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재앙의 축복’이 옅어지면, 그제야 하늘에 떠오른 헬기와 사방에 자리한 전차는 본격적으로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콰앙!

-타다다다다다당!

“저 ‘몬스터 카니발’이 끝날 때까지 계속 쏘는 거다! 잠깐이라도 멈추면, 우리가 죽는다. 알겠나!”

““예!””

이서영의 큰 외침에 곧장 답하는 ‘번개 중대’.

마찬가지로 757헬기부대와 성전사단 이윽고 7여단의 정예 병력들 역시 각자의 자리를 제대로 지켜야 할 것이다.

비록 당장의 카운터 펀치는 제대로 먹혀들었을지라도, 적의 수는 무한에 가깝고 이쪽의 병력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작전은 성공적이나 방심할 수는 없다. 딱 한 번 삐끗해도 이쪽은 십중팔구 전멸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건 비처럼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던 이서영의 냉정한 평가였다.

-스릉!

이윽고 이서영은 고민도 없이 자신의 ‘백룡도’를 뽑아 드는데...... 그건, 이건우가 특히나 강조하던 이 바로 다음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그 오만하고 게으른 놈들은 그제야 나타날 겁니다. 그 ‘혈족’들 말입니다.]

그렇게 그녀가 고요히 ‘검’에 집중한 지 과연 얼마나 지났을까.

이미 붉게 물든 저 하늘 위에는 그보다 더 진하고 끈적해 보이는 피 글씨의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재앙이 잉태되었습니다!

*제13구역 ‘일본’의 각성자들은 재앙의 잉태를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재앙의 현현까지 남은 시간: 39시간 59분.

ㅡㅡㅡㅡㅡㅡㅡㅡ

<이 메시지는 전 세계에 나타납니다.>

<또한, 한번 잉태에 들어간 재앙의 현현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흉흉하기 그지없는 메시지들은 ‘알림’이 아닌 ‘경고’라는 명칭으로 나타났고 이서영은 생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문구를 읽게 되었다.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으십시오.>

“살아남으라......”

승리하라고 하지도, 막아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마치 재앙의 현현과 함께 이미 인류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직 치졸하게 비참하게 살아남는 것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전조 없는 전쟁, 12혈족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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