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32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본좌는... 동의하겠다. 단, 본좌의 뒤를 따라왔을 뿐인 저 교인들의 미래마저 본좌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니. 교인들에게도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라. 그게 본좌가 노예 계약을 맺는 유일한 조건이니라.
우선, 천마는 짧은 고민 후 노예 계약을 받아들였고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를 따르고자 고향까지 등진 5백여 명의 마교인들은 단 하나의 예외 없이 천마의 선택을 따랐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번개 중대’의 통제를 받는 마교인 5백여 명과 세계 랭킹 2위의 절대자, ‘천마’는 이쪽 세력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나의 예상은 한 가지 더 적중하게 되는데...
-파아아아아!
-크르르릉!
천마는, 정말이지 완벽에 가까울 만큼 내 ‘전력’을 제대로 맞부딪힐 수 있는 최고의 훈련 상대였던 것이다.
“흐읍!”
짧은 호흡.
휘몰아치는 기.
천마의 권은 입을 쩍하고 벌린 호랑이의 형상을 쏟아내고.
-콰지지지직!
내리는 비.
신력을 타고 흐르며 일말의 손실 없이,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시퍼런 낙뢰.
번개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는 잔상.
이윽고, 그 잔상마저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호랑이의 형상이 교차한다.
“후우우우. 하아아아.”
차분히 숨을 고르는 나.
“후읍! 하!”
거센 기합과 함께 사파의 마공과 정파의 무공을 뒤섞어 막대한 흐름을 일궈내는 천마.
이윽고, 그 악마의 때와 같이 그리고 그 불사왕의 때와 같이, 세계를 흑백과 총천연색으로 번갈아 물들이는 ‘틈’을 넘나드는 전투가 벌어진다.
총 50시간 동안 진행되는 ‘도전’.
초기에 기자들은 보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리게 해놓고서 어떻게 1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만에 모든 ‘도전’이 끝이 날 수 있냐며 욕지거리까지 내뱉기도 했다.
허나, 남은 ‘도전’의 시간 동안 천마와 훈련을 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여주자...
“이, 이게 인간끼리의 전투라고...?”
“눈에 보이지도 않아...”
“마공학 카메라로 슬로우 모션을 돌려야 간신히 잔상이 찍힌다고!”
“이게 그런 문제냐!”
“번개에 폭풍... 폭발까지 일어나잖아. 정말 주먹과 검으로 싸우는 거 맞아?!”
그들의 불만은 마술처럼 사라졌다.
그뿐인가.
무려 두 번이나 내게 쓰디쓴 패배를 맛보고도 정신을 못 차리던 대마법사 올리비아는 나와 천마의 싸움을 똑바로 목도하고서야 그 치기 어린 표정을 벗어던졌다.
나와 같은 반인반룡의 육신을 가진 올리비아의 눈에는 보일 것이다.
나와 천마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마력이 어떻게, 얼마나 움직이는지가 세세하게 말이다.
놀란 눈이었던 이제야 갓 성인이 된 올리비아 스트라우스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녀의 입은 서서히 벌어지고 놀란 듯 혹은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이 나와 천마가 행하는 ‘훈련’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이어졌다.
당장은 소녀라 칭해도 어색함이 없을 아이에 불과하지만, 역시 그녀는 올리비아 스트라우스였다.
전란의 시대.
가장 찬란한 마법사 병단을 이끌던 그 천재 대마법사 올리비아 스트라우스 말이다.
나는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전생의 그녀에게서 들은 여러 가지 팁들을 전수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이러한 조력은 그녀에 한한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일어날 범지구적이고 동시다발적이며 비윤리적인 침략, 전쟁, 테러에 대항하기 위해선 올리비아를 비롯한 신비, 염제, 무왕의 성장은 필수불가결하다.
‘가능하다면 협상의 도구나 금전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던 정보들이지만...’
이젠 진짜 종막이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시기다.
이것저것 따지는 것보다는 아예 시원하게 속성 강좌처럼 때려 박아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게, 한발 늦게 도전장에 나타난 랭커들과 기자들 이윽고 마교인들의 향후 활용방안을 모두 구상한 끝에.
“고생하셨습니다. 천마.”
나는 2시간 12분간의 긴 ‘전투’ 끝에, 천마와의 첫 훈련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도전’이 그 막을 내리고 닷새 후.
네 명의 랭커들은 각자 본국으로 귀국하기 위한 비행기에 올라 한국을 떠났다.
또한 마교의 잔존세력은 정식으로 뇌제 이건우와 그의 독립 부대인 ‘번개 중대’의 휘하에 들어갔음이 대대적으로 공표되었으며.
그 공표 후 아이템을 활용한 ‘노예 계약’이라는 키워드의 검색어는 무려 사흘 내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국제법 위반이라느니, 적절한 조치였다느니.
다양한 논쟁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고 이윽고 찾아온 닷새 뒤의 새벽.
뇌제의 등장과 함께 뜨겁게 달아올랐던 만큼, 거대한 고요가 대한민국을 침묵하게 만들던 새벽의 부산항.
-추르륵.
짙은 구름에 별과 달의 빛이 가려 새카만 파도만 미약한 소음을 형성하던 바로 그 야심한 시각.
-추륵! 추르르륵?!
빛 한 줌 없음에도 그 ‘붉음’만은 확연히 구분해낼 수 있을 법한 적광의 괴생물체가 깊은 심해로부터 얕은 해안까지 듣기 거북한 소음을 일으키며 부표처럼 떠올랐다.
갑작스레 붕 떠오른 거대한 크기의 ‘붉은 막’.
-촤르륵!
이윽고 그 속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튀어나와 막을 수평으로 찢으니. 그 속에서는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긴 귀를 가진 이종족, ‘블러드 엘프’ 수십 명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추르륵?
-추륵!
-추르르륵!?
첫 번째 ‘붉은 막’을 따라 깊은 해저에서부터 하나, 둘 솟아오르는 그 기괴한 기포들.
이내 그것들이 잇따라 위아래로 갈라지며 열리자 그 속에도 역시 수십의 ‘블러드 엘프’들이 적색 안광을 빛내며 나타난다.
“어머니의 은총이 미개한 너희를 감싸니. 하등한 인류는 너희를 보고도 보지 못하고, 너희의 소리를 듣고도 듣지 못하리라.”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높디높은 상공에서부터 뒷짐을 진 자세로 근엄하게 하강하는 한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블러드 엘프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붉고 끈적끈적한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미개한 성역의 종들은 들어라. 어머니의 잉태가 머지않았느니라. 너희에게 내려진 무광무취무음의 은총이 빛을 발하니... 이 간악한 반도의 나라는 혼란하리라.”
그 존재가 팔을 높게 들어 올리자.
‘성역의 종’이라 불린 블러드 엘프들의 눈동자는 격한 감정적 흥분을 나타내듯 전보다 더 밝은 적광을 번뜩이기 시작했다.
멋대로 부산항 인근 해안에 상륙하는 수백의 블러드 엘프들.
허나, 그들은 결코 보통의 블러드 엘프가 아닌지. 그들이 등에 이고 있던 활에 화살을 먹이고 활시위를 당기자.
-후우우우우웅!
등 뒤의 바다가 격하게 뒤흔들릴 만큼 엄청난 양의 혈속성 오러가 그 화살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한발, 한발이 미사일을 떠올리게 할 만큼 묵직하다.
그 초고농도로 밀집되고 농축된 혈속성 오러의 광택만을 보아도 저 백발이 넘는 화살들이 만들어낼 ‘지옥’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윽고 그 존재, 재앙보다 한발 앞서 이 세계에 현현한 ‘진조의 혈족’은 성전을 준비하는 비장한 장수와도 같이 목청껏 외쳤다.
“가장 어둡고 고요한 밤. 감히 어머니에게 대항하려한 간악하고 치졸한 이 나라를 멸하리라! 성역의 종들이여! 흡혈종에게 대항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미개한 너희들의 손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동시에 쏘아 올려진 백발 이상의 미사일과도 같았다.
아무리 부산이 대도시라 할지라도 그 막대한 수의 미사일 폭격 앞에 무너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쏘아라!”
흡혈귀의 손에 비정한 사격명령은 끝내 내려졌고...
-팽!
-패배배뱅!
-쐐애애애애액!
막대한 오러를 품은 화살들은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앞에 펼쳐질 지옥도.
이젠 그 누구도 이미 시작된 전쟁의 서막을 막을 순 없다.
“나의 어머니시여.”
이에 크게 경탄하듯 양손을 모으고 곧장 고결한 기도의 자세를 취하는 흡혈귀.
“그대의 열두 번째 혈족이 소임을 다하나이다···!”
그 흡혈귀는 마치 뜨거운 눈물을 흘리려는 사람처럼, 눈시울 자체를 붉히며 하늘로 솟아오른 핏빛의 폭력을 응시했고......
“언제까지 네놈들의 음침하고 치졸한 야습에 당해주리라 생각하는 거냐.”
아무런 전조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는 다름 아닌 열두 번째 혈족이라 자신을 칭한 그 흡혈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무엇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고개를 돌리는 흡혈귀.
허나,
-착!
들려오는 경쾌한 소음은 이미 뽑아 휘둘러진 검이 다시금 검집으로 돌아가는 착검음이었다.
검성류(劍星流)-발(拔), 제1형.
진(眞), 황무지의 꽃.
이내 흡혈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상하가 반전된, 뒤집힌 세계였다.
아니 뒤집힌 것은 세계가 아니다.
““컥!!””
““카악?!””
완벽하게 동일한 순간, 터져 나온 단말마.
이내 앞으로 약 1시간동안 혈속성 화살 폭격을 이어갈 예정이었던 백 명이 넘는 ‘블러드 엘프’들의 목이 후두둑 습한 해변가의 모래 위에 떨어졌다.
-텁.
유일하게, 육체적 손실을 겪어도 죽지 않는 ‘진조의 혈족’만은 떨어지던 자신의 머리를, 분리된 자신의 손으로 잡았고.
일순이라고 논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찰나, 모든 선봉대를 일격에 쓸어버린 남자의 얼굴이 드디어 ‘열두 번째 혈족’의 눈에 보였다.
“새카만 머리에 시퍼렇게 번뜩이는 눈동자, 네가 바로 뇌제... 어머니의 대적자인가.”
허나, 흡혈귀의 부름에도 시퍼런 눈동자는 혐오가 뒤엉킨 눈으로 그저 ‘열두 번째 혈족’을 응시할 뿐이었다.
“답하라. 들리지 않는 게냐! 미개한 하등종족 주제에! 감히! 만생의 시조인 우리 혈족을 내려다본단 말이더냐!”
발악적으로 외치는 흡혈귀.
다만, 그럼에도 뇌제는 그저 차갑게 그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벙어리가 되었느냐. 그래 말문이 막히겠지! 저 하늘을 보라 뇌제! 지옥이다. 저 지옥의 물결이 땅에 닿을 때! 네놈과 네놈의 나라는 불타오를 거란 말이다!”
흐흐흐,
하하하하하!
이미 목이 잘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자유롭게 말하고 웃음마저 터트리는 흡혈귀의 머리.
그 오만방자함과 끔찍한 수준의 간악함은 가히 그 어떠한 악인조차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건우는 미간을 좁히며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하늘? 저 하늘 어디에 지옥이 있지.”
“하하하하! 어찌 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느냐! 저기, 바로 저곳에...... 어?”
이건우를 코앞에 두고도 몸을 휙 돌리며 혈속성의 폭격이 날아가던 하늘을 가리키는 흡혈귀.
허나, 정작 그가 눈을 굴려 하늘을 보았을 때 그곳에는 너무나도 괴이한 광경만이 펼쳐져 있었다.
-파직! 파지지지직!
시뻘건 화살의 수가 백 이상.
그것이 날아간 순간은 가히 일순이라 칭해도 좋으리라.
헌데, 중력의 영향을 받아 이미 땅에 내리꽂히고도 남았을 그 혈옥의 폭풍은...
-파이이이이익!
단 한 발의 화살도 예외 없이 시퍼런 번개에 휘감겨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허공에 멈춰있었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이에 흡혈귀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광경에 아래턱을 덜덜 떨며 느릿느릿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으나, 이건우의 묵직하고 차가운 음성은 그 입을 틀어막으며 들려왔다.
“일본에서 재앙이 잉태된다. 그럼 보통은 그 열도의 모든 항구와 해변을 막아 철두철미한 방어체계를 구축하려하는 게 정상이지.”
“뭐... 뭣이?”
“하지만 나는 안다. 음침하고 음습하며 오만하기까지 한 네놈들은 결코 자신들의 비참한 패배는 고려하지 않고... 도리어 이 한국 땅을 전쟁터로 만드려고 들것이란 것을.”
그것이 오만한 흡혈귀들이 자신들의 시조를 맞이하는 방식이니까...
이건우는 그런 뒷말을 굳이 내뱉지 않았고, 어느새 자신의 목과 몸통을 이어붙인 미친 재생력의 흡혈귀를 그저 응시했다.
“하! 그래서? 고작 선봉대 하나를 막아낸 것이 뭐 어쨌다는 거냐! 뇌제여! 뇌제여! 아아! 가엽고 딱한 하등종족이여! 우린 너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너희의 상상을 우리 혈족은 뛰어넘는단 말이다!”
하하하하하하!
다시금 미치광이의 웃음을 터트리는 흡혈귀.
-딱!
이어서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이 세계 그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착각할법한 거대한 울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보여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상상 그 이상이다.
-촤르륵!
-추륵?! 추르르르륵!
-푸르르륵!
그것은 해안에 상륙했던 ‘블러드 엘프’들이 몸을 담았던 그 ‘붉은 막’이었다.
단, 그 크기와 규모는 조금 전과 감히 비교를 불허할 만큼 크고 많았다.
-팟! 팟!
-파팟! 파파파팟!
이내 그 거대한 막은 스스로 터졌고, 그 내부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기습을 예견했다면 숨길 것은 없겠지. 보라 뇌제여. 비루하고 딱한 어머니의 대적자여!”
빛 한 줌 없는 새카만 수평선을 가득 채우는 서른 척의 일본 군함들이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 군함 하나, 하나에 눈두덩이 시뻘겋게 물들인 군인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는 사실이었다.
완벽한 세뇌.
완전한 지배를 받아 이젠 인간이 아닌 흡혈귀의 인형이 되어버린 일본군.
그것이 그들의 정체였다.
“수평선이다! 이젠 네눈에도 보이느냐! 뇌제! 저 머나먼 수평선의 너머까지 서른 척이 넘는 군함은 준비되어 있다! 그뿐인 줄 아느냐! 인천, 해남, 포항, 울진, 그리고 강원의 삼척에 속초까지!”
백 이상의 정예 블러드 엘프를 서슴없이 ‘고작’ 선봉대라 칭할 만큼, 흡혈귀가 논하는 규모는 이미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전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미 이 반도 전체가 사정권에 들어와 있다. 열도의 노예들이, 성역의 종들이 그리고 나의 형제자매들이! 이 국가를 전복시키기 위해 이미 움직이고 있단 말이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침략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허나, 한국이 ‘뇌제’의 등장이니 ‘도전’이니 거추장스럽게 떠들고 있던 동안 일본과 엘프들과 흡혈귀들은 ‘해저’에서 침략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즉, 이미 승리를 거머쥐고서 시작한 전쟁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내 말을 듣지 못한 거냐. 흡혈귀.”
이건우는 광인의 조소에도 더없이 충격적인 발언들 하나, 하나에도 그 차디찬 눈빛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이건우는 씹어 뱉듯 말했다.
“분명, 나는 알고 있다고 말했을 텐데?”
그 짧은 한마디와 함께 갑작스럽게 진동하는 대지.
-고오오오오오!
그것은 무려 서른 척에 달하는 함선들이 해저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던 좀전의 흔들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진동이었다.
마치 진짜 거대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만 같은 떨림에 드디어 흡혈귀는 식은 땀을 손에 쥐며 주위를 훑는데...!
그 순간, 바다가... 그래 눈에 보이는 수평선까지의 망망대양이 돌연 허공으로 붕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인천은 예로부터 ‘황해’가, 강원 일대는 ‘협회’, 경북과 경남은 ‘7여단과 5군단’ 그리고 전라남도 전체를 ‘천마’에게 맡겼다. 아직도 모르겠나?”
언제나 상식을 역이용하고, 상상을 벗어난 행보를 보이던 휴거교처럼, 이 흡혈귀들은 상대의 허를 찌르고 발악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비웃는 것을 즐기는 족속들이다.
그리고 이건우는 그 누구보다도, 그들의 행동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자였다.
“영리하다고 생각했겠지... 허를 찔렀다고. 우리를 조롱하고 능멸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겠지...!”
-스릉!
뽑아 드는 검은 푸르른 광채를 번뜩이는 죽은 동료의 검.
이내 이건우가 수왕검의 손잡이를 꽉 쥐자 하늘보다도 더 맑고 푸르른 신력들은 실제 바닷물과 함께 높게, 더 높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하늘이 아니 사방이 심지어는 이건우와 흡혈귀가 서 있던 해변마저 물이 차오르면 이건우는 나지막이 고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반대다. 너희의 모든 급습을 막아낸 우리가... 일본을 전쟁터로 만들 것이다.”
뽑아든 수왕검과 그 검 끝에 맺히는 막대한 신력과 엄청난 고압 전류.
이윽고 건우가 자세를 취하고 검 끝을 높게 들어올리면...
수검(水劍) 제7형.
천해(天海).
바다는 높디높은 창공보다도 더 높은 곳을 향해 용솟음쳤다.
모든 것을 씻어내리던 바다와 달리, 그저 멀리 그저 더 높이 엄청난 속도로 함선과 함선 그리고 혈속성의 화살들을 뒤엉키게 만들며 그저 솟아오를 뿐이었다.
직후,
-파아아아아아!
이 어둠을 몰아내는 빛은 수평선의 그 너머에서부터 솟아올랐다.
그것은 빛.
덧없이 밟고 따스한 바티칸의 기적이 분명했다.
-치익!
그리고 드디어 건우의 허리에 달려 있던 무전기가 주파수를 잡아내면, 친숙한 목소리는 들려왔다.
-건우야. 성공했어. 앤젤라가 성공했어!
그것은 남궁연의 목소리.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성공이란, 바티칸의 금기로 지정된 ‘차원 도약’의 최고위 기적, ‘헤븐즈 게이트’가 무사히 열렸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건우는 모든 것을 하늘로 용솟음치게 만든 수검의 결과물을 여유롭게 올려다보다가 무전기를 손에 쥐었다.
-치익!
“번개 중대. 우리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썩을 ‘재앙’이 잉태되기도 전에, 망할 흡혈귀들을 쓸어버린다. 전군, 헤븐즈 게이트로 진군하라.”
이번 전쟁의 무대는 한국이 아닌, 일본이 될 것이다.
전생의 그 치욕, 이번 생에는 그대로 되돌려주마.
전조 없는 전쟁, 12혈족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