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19화.
‘은하수’가 하늘에서부터 지상에 내려앉던 순간으로부터,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전세계 합동 레이드’에 참가했던 대다수의 헌터들은 숱한 의문을 표했다.
흑룡, 아뮤르타스의 레어는 어째서 그 형체를 잃었던 것이며,
왜, 쉼 없이 쏟아져 나오던 그 흑룡의 가디언들을 간신히 쓰러뜨리고 도달한 ‘레어였던 곳’은 텅 비어 있었던 것이냐는 게 그들의 주된 의문이었다.
대다수의 헌터들은 이 사건을 의문의 ‘흑룡 토벌전’이라 칭했으나, 정작 어째서인지 제 발로 레어를 뛰쳐나간 흑룡을 직접 맞상대했다고 보이는 헌터들은 이 사건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 이름이란 바로, ‘은하수의 범람’.
그들은 모두 의문을 표하는 각국의 정상들에게 시원스러운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겉으로는, 아직도 세계인의 ‘선구자’인 불사왕을 헌터들이 막아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당사자’라 불릴만한 이들은 사전에 제대로 입을 맞춰 뒀기에 사건의 진상은 새어나가지 않았다.
다만,
-그러니까.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도 못 하고, 왜 말을 안 해주는지조차도 말하지 않을 거다. 이거죠?
이에 미국의 대표 ‘제이슨 스트라우스’의 부길드장은 성을 내며 본국의 정보 탐색계 헌터들을 불렀다.
그녀를 따라 다른 국가의 대표들 역시 항의와 함께 ‘정보관’을 불렀다.
대체 왜 있었던 일을 말해주지 않는 것인지,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만···.
지형이 뒤바뀐 산맥과 폐허가 된 베이징시에 남은 ‘마나의 흔적’을 전문가들이 뒤져보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이라도 파악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후 사정을 설명해주지 않을 거라면, 타국의 정보관이 멋대로 입국해 행하는 조사를 막지 말라.’
그게 ‘제이슨 스트라우스’ 부단장의 주장이었다.
중국의 임시 대표직을 맡게 된 미후왕, ‘장 웨이’는 고민 끝에 그 주장에 동의했다.
그렇게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실로 어마어마한 파문을 일으킨다.
격렬한 전투가 있었음이 한눈에 보이는 장소는 두 곳이었다.
하나는 베이징시의 자금성 일대.
또 다른 하나는 이름 없는 산맥의 중턱.
그중에서도 각국의 ‘정보관’들은 폐허가 된 도시보다는 아예 지형 자체가 격변한 산맥에 더 집중했고, 그곳을 탐색하며 아주 놀라운 사실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자금성 일대에서는 중국계 헌터들의 무공, 법진, 진법의 흔적과 ‘천마’의 마력 흔적 그리고 ‘검성’의 오러가 다량 검출되었습니다. 물론, 흑룡의 검은 안개가 가장 많이 검출되었고 말입니다.
먼저 자금성 일대에 대해 보고가 있었다.
이에 ‘전세계 합동 레이드’의 결과만을 오매불망하던 기자들이 득달같이 모여들어 거대한 기자회견장처럼 변한 회의장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사건이 종료된 순간, 방랑 협객 ‘검성’은 이미 사건의 주역들 사이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었고, 비각성 민간인들조차 ‘검성’의 등장에 환호를 보내고 있었으니까.
기자들로선 새로울 것은 없는 보고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다음은 지형 자체가 뒤바뀐 산맥입니다만······.
말을 주저하는 ‘정보관’.
이에 ‘제이슨 스트라우스’의 부길드장은 괜찮으니 말을 이어가라며 그들을 독려해주었는데··· 이어지는 보고는 듣고도 참 믿기 힘든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질 않았습니다.
뭐?!
이에 경악하며 목소리를 높인 부단장. 허나,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면서도 정보관은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거대한 헤일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모든 마력 흔적이 깨끗이 씻겨져 내려간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이질적인 기운을··· 저희 정보관들은 ‘신력’ 이외에는 모릅니다.
신력.
그것은 정말 갑작스럽게 등장한 키워드였다.
이번 ‘흑룡 토벌’에 돌연 나타났다는 수수께끼의 2대 성녀와 그 소녀를 따르는 성전사단. 그렇다면 그들이 흑룡, 아뮤르타스를 죽였다는 걸까.
부길드장은 그리 질문했으나, ‘정보관’은 주저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티칸의 신성력은 마력 흔적을 불태우듯 정화합니다. 실제로 흑룡의 사체는 압도적인 백염(白炎)으로 정화된 상태였고요. 다만, 산맥에서 발견된 ‘신력’은 물처럼 흐르는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물처럼 흐르는 신력.
거기까지 이야기가 전개된 순간, ‘정보관’들을 부른 각국의 정상들은 물론이고 회의장에 모인 모든 기자들은 경악하는 얼굴을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어떤 이가 ‘악마’를 단독 토벌하는 영상을 통해, 그런 신비로운 ‘신력’을 다룰 수 있는 ‘한 헌터’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들은 증거과 흔적들은 모두 추상적이라, 명확한 것이 없었다.
다만, 한가지.
딱 한 가지 그 자리의 모두가 주저 없이 확실할 수 있었던 사실은······.
그곳에 ‘S급 헌터 이건우’가 있었고 또한 그 영상에서와 같은 활약을 선보였을 거라는 것이었다.
정보관들마저 아연실색하게 만들고, 각국의 정상들이 모두 헉, 하는 얼굴로 굳자 그 자리에 모여 있던 기자들의 손을 빨라졌다.
이윽고, 기사글들은 그 수를 헤아릴 엄두조차 나지 않알 만큼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속보】 한번의 전투로 지형을 바꾸는 대한민국의 S급 헌터. ‘이건우’
【속보】 세계 최강을 논할 수 있는, 새로운 헌터의 등장!
【속보】 영국 타임즈의 기획팀장, 지난번 악마 토벌 영상은 사실 아주 조금의 과장도 없는 사실 그대로의 영상이었음을 공식적으로 수긍!
【속보】 이건우는 새로운 신화를 써 내려갈 헌터임이 틀림없다!
세계의 모든 언론사들은 다시금 ‘이건우’의 이름으로 신문의 1면을 채웠고, 온갖 방송사들은 첫 소식에 ‘이건우’와 천외경의 마수 ‘흑룡’의 전투 소식을 방영했다.
이윽고, 그런 기사글들과 방송들이 댐에서 방류된 물줄기처럼 미친 듯이 쏟아져나온 지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 세계 헌터 랭킹을 심사하는 ‘국제 헌터 연맹’은 돌연 놀라운 소식을 발표했다.
【속보】 ‘국제 헌터 연맹’은 전 뇌왕에게서 그 수식언을 찬탈한 S급 헌터 이건우의 호칭을 공식적으로, ‘뇌제’로 격상키로 했다.
그의 별칭은 ‘왕’이 아닌 ‘황제’의 것으로 격상되었고 동시에 공개된 새로운 ‘세계 헌터 랭킹’에서···.
[세계 헌터 랭킹]
1위, ‘선구자’ 프리드리피 파울라스.
2위, ‘천마’ 무명.
3위, ‘뇌제’ 이건우.
4위······.
이건우의 이름은 무려 3위에 올라있었다.
‘세계 헌터 랭킹’은 그저 허울 좋은 순위 매기기 놀이가 아니다.
비록 그 뒷배경은 ‘불사왕’의 ‘처형 명단’일지라도···.
그곳에 이름을 올랐다는 건, 그 자체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고 처음 보는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이 생겼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계 3위.
대한민국이 아무리 다수의 S급 헌터를 보유했던 헌터 강국일지라도, 그간 5위 이내에 이름을 올린 헌터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허나, 이건우는 그 경이로운 대업을 이루어 낸 것이었다. 그것도 처음으로 ‘세계 헌터 랭킹’에 이름을 올림과 동시에···!
그렇게 이건우는 세계 최초로 20대 초반의 나이로 세계 헌터 랭킹, 그 세 손가락에 드는 쾌거를 달성했다.
‘뇌제’, 이건우.
이번 ‘전세계 합동 레이드’를 통해 그 이름은 세계 전역으로 아주 깊고 진하게 각인되었다.
이젠 세계의 그 누구도, 이건우라는 헌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하루아침에 엄청난 입지를 다졌다.
이젠 그 누구도, 이건우의 대업에 음모론이나 의심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는 명실공히 한 세계 3대 헌터가 된 것이었다.
***
꿈을 꾸었다.
-건우야···! 건우야···. 건우야아······!
그 기나긴 꿈속에서 남궁연은 이미 차갑게 식은 ‘나’를 부둥켜안고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그녀 또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죽음을 맞이했다.
세 번째로 반복되던 꿈을 그저 응시하던 나는 그제야 ‘이 꿈’이 남궁연이 꾸었던 ‘예지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노력했다.
마치 전생에 모든 것을 잃었던 내가 그러했듯 마력 고갈로 정신을 잃거나 아침에 먹은 것을 그대로 게워낼 정도로 사력을 다해 자신의 권능을 갈고 닦았던 것이다.
그렇게 네 번째, 다섯, 여섯, 일곱.
그녀가 꾸었던 ‘예지몽’을 모두 들여다본 나는 마지막으로 현실에서 있었던 그녀와 나의 입맞춤을 다시금 보며, 꿈에서 깨어났다.
“아···.”
깨어나고 보니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새벽이었다.
그러나 확실히 기억이 나는 건, 모든 일이 끝난 뒤 돌연 내게 입을 맞추던 남궁연의 그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과···.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그녀가 동시에 기력을 다하고 쓰러졌었다는 사실이었다.
“후우······.”
얼굴이 심히 화끈거려 나는 자신에게 손부채 질을 했다.
장훈의 죽음 후 그의 기억을 엿보았듯.
이번에도 내가 남궁연의 기억과 감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수신의 사도이기 때문이었던 걸까···.
의문은 있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야 이 드넓은 병실에는 나 혼자뿐인데, 누가 무슨 대답을 해주겠는가.
어째서인지 더이상 잠이 오질 않아 그대로 뜬눈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이른 아침부터 날 찾아온 꼬마 손님과 눈이 마주치며 나는 내가 잠든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아저씨!”
앤젤라는 내가 기절한 후에도 매일 같이 나의 병실을 찾아와 아침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그 횟수가 무려 여덟 번이라고 한다.
이는 다시 말해 나는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침대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소리였다.
다만, 수신의 신력이 나를 보호했기에 육체에는 문제가 없었고, 거기에 2대 성녀 앤젤라가 거의 매일 두 손을 맞잡고 ‘축복의 기도’까지 해준 덕분에 그나마도 빨리 깨어났던 것이었다.
“성녀 언니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셨어요.”
2대 성녀가 성녀라는 단어를 쓰니 조금 묘했지만, 그녀가 말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남궁연이 분명했다.
그녀는 나 이상으로 큰 정신력을 소모했던 터라 앤젤라가 추측하길 아마, 앞으로도 한달은 족히 더 누워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냥 제멋대로의 추측이지만요···. 성녀 언니가 ‘미래 예지’로 체험한 시간은 아마 모두 합쳐서 10년 정도 될 거예요.”
“10년···.”
홀로,
반복되는 세계에서 보낸 시간이 무려 10년.
남궁연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건, 그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마모되어가던 정신을 회복하기 위함이라고 성녀로서 선배인 소녀는 말했다.
“그런가···.”
갑작스럽게 입술 박치기를 했던 참이라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반은 안도의 한숨이 나머지 반은 심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어지는 ‘앤젤라 뉴스’의 화제는 다름 아닌 나의 이름이었다.
드디어 내가 정식으로 ‘뇌제’라는 수식언을 부여받았다는 소식이었다.
혹자는 부르는 명칭이 조금 바뀐 것이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느냐 묻겠지만······.
사실 불사왕과 천마의 출현 전, 아직 1, 2세대의 헌터들이 세계 헌터 랭킹을 장악하던 시기에는 왕(王), 제(帝), 성(星)이라는 호칭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허락 없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몬스터가 출현한 상황이라면 그 어떤 국가의 군대도 ‘왕, 제, 성’의 수식언을 달고 있는 자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게이트 공략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 때 치외법권을 적용받는 것은 물론이고, 수식언이 있는 헌터는 즉석에서 타국의 헌터를 재판할 권리마저 주어졌다.
뭐, 이 평화의 시대에 들어서는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조금씩 흐지부지되고 있지만 말이다.
“저 밖에, 아직도 아저씨를 취재하고 싶다고 몰려든 기자들이 많이 있어요.”
“그건 참···. 귀찮은 일이구나.”
“그쵸? 헤헤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요 일주일간 저도 밖을 돌아다니질 못했고요.”
해가 뜨고 보니, 내가 누워있던 시설이 병원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냥 한 빌딩에 병원과 숙소를 비롯한 모든 시설이 갖춰진 복합적 호텔이었다.
이번 ‘흑룡 레이드’를 계기로 극성이 된 기자들에게서, 제대로 안정을 취할 때까지 보호하고자 나와 남궁연 그리고 성녀 앤젤라와 같은 이들을 이곳에 모아둔 듯했다.
그런 걸 보면 중국의 대처는 퍽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대 성녀, 앤젤라는 이번 ‘구마경’의 기도로 중국은 물론 전세계 헌터들에게 기적을 선보이며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알리는 데 성공했으나···.
동시에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성자’에게도 스스로 자신의 행방을 알려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보호’는 필수 불가결하면서도 당연한 판단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선택적 함묵증’이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은 들었었는데, 나는 그간 앤젤라가 이토록 말을 잘하게 되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이는 분명, 매일 밤 앤젤라 엘런과 함께 침대에서 잠을 자던, 일종의 ‘엄마’ 역할을 도맡아주고 있는 남궁연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녀에겐 정말로, 많은 빚을 졌다.
“아, 그런데요. 아저씨···.”
내가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사색에 잠겨있던 그때, 앤젤라는 갑작스레 나를 불렀다.
“응? 왜 그러니 앤젤라?”
내가 부드러운 어조로 되묻자 소녀는 감정이 메말라가던 과거가 정말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수줍은 얼굴로 뺨을 붉히고는 잠시 고개를 내렸다가 내 눈치를 살피듯 흘낏거리며 내 눈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 소녀는 결심이 선 듯 말했다.
“저···. 무지 힘낸 거예요. 성자가 제 행방을 알게 될 거란 것도 다 알고 있었고요. 무섭기도 했어요. 그래도 아저씨랑 성녀 언니가 크게 다치는 미래를 막고 싶어서······. 그래서 힘을 냈어요···!”
내 시선을 피하면서도 횡설수설, 양팔을 허공에 휘저어가며 어렵게 목소리를 쥐어짜는 앤젤라. 나는 이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그래. 정말 용기를 내줘서 고마워 앤젤라. 이번 작전에서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생환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네 덕분이야. 고맙다.”
사실, 진심으로 앤젤라의 참전에는 감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소녀가 전장에서 피워올린 기도, ‘성역-에덴’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족히 20배 이상은 사상자가 늘어났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소녀의 기도에서 발로한 그 찬란한 황금 방패 덕에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다.
그러니 정중하게,
마치 ‘다나 메이어’를 대하듯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아···. 그게 아닌데······.”
그러나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반짝이는 은발에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는 볼멘소리를 내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혹시 내가 뭔가 잘못했니?”
예상외의 반응에 걱정스럽게 되묻자, 소녀는 불만스러운 듯, 동시에 부끄러운 듯 뺨부터 귀까지 빨갛게 열꽃을 피우더니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저···. 히, 힘냈으니까요. 그······. 치, 칭찬해주세요···.”
“...칭찬?”
내가 의문스럽게 되묻자, 소녀는 돌연 고개를 휙 옆으로 돌리더니 두 눈을 질끈 감고 양팔을 크게 펼쳤다.
“아, 안아 달라구요···.”
타인에게 뭔가를 조르는 것이 영 익숙지 않은 소녀였다.
내가 남궁연의 예지몽들을 엿보며 알게 된바, 이 소녀는 수많은 헌터들을 구하면서도 그 어떤 댓가도 요구하지 않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나에게만큼은 사소하지만 정겹고, 귀여운 대가를 바라는 것이다.
이 아이가,
이런 귀여운 소녀가, 자기 자신을 죽이게 만든 더럽고 추한 세계.
그런 썩어 빠진 세계에서도, 아이는 올바른 길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건 정말 장하고, 멋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내가 심히 벅찬 감동에 잠시 그대로 멈춰 있으니, 아이는 되레 내 눈치를 살피며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떼······. 써도 된다고, 아저씨가 써도 된다고 했었으니까······ 그래서······.”
이내 기어들어 가는 소녀의 목소리.
아무래도 내 무덤덤한 표정 때문에 뭔가 큰 착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나는 주저 없이 덜컥 몸을 움직여 침대에 걸터앉았고 그대로 가까워진 소녀의 몸을 양팔로 크게 안아 당겼다.
“잘했어. 정말 잘했구나. 앤젤라.”
누가 이 아이를,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도륙내 버리려 했던 아이라 믿을 수 있을까.
누가 이 아이 만큼이나, 내게 큰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
나는 진한 고마움과 따스한 감사함에 흐뭇한 미소를 얼굴에 걸고, 작고 여린 소녀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소녀의 등을 토닥이고, 그 비단결 같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그제야 소녀는 흡족하다는 듯 후후후, 웃었다.
그렇게, ‘흑룡 토벌’와 ‘불사왕 저지’를 목표로 했던 이번 작전은 이제야 완전한 종식을 선언할 수 있었다.
***
중국으로 출장을 나온 신의, 곽재신의 도움으로 나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 날로부터 무려 사흘이나 더 안정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시간을 달라는 나의 요청에···.
‘어딘가 아직 좋지 않은 통증이 남아 있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나가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 회복 호텔은 아무리 그래도 너무 폐쇄적이니까요.’
그의 대답은 이러했지만, 나는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고, 그 어쩔 수 없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면서도 나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이윽고, 예상대로 3일 차 아침이 밝자···!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내가 오매불망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지는 눈앞에 나타났다.
<‘흑룡, 아뮤르타스’ 토벌의 적정 보상을 집계가 완료되었습니다!>
<‘스카이 타이탄-언데드’ 토벌의 적정 보상 집계가 완료되었습니다!>
내가 기다리던 그것의 정체는 단연, 보상 지급 메시지.
이번 사태로 불사왕은 ‘스카이 타이탄’을 잃고 약해졌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난 강해질 것이다.
지금보다 더, 더 높은 곳까지 오를 것이다.
은하수가 내린 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