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15화 (115/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15화.

이대로 가다간, 밤하늘의 색을 망각할 것만 같다.

-타다다다당!

던전 은으로 눈부신 광채를 휘감고 뻗어 나가는 병장기들.

김나연 중위의 염동력은 이미 땅에 내려앉은 순은의 총탄을 다시금 하늘로 끌어 올렸고, 이내 비처럼 쏟아 내리게 한다.

홍진웅 중위는 다름 아닌, 남궁연의 ‘섬광’을 메모라이징하여 이 일대에 언데드의 능력치를 대폭 낮추는 빛을 만들어냈고, 두 팀을 총괄 지휘한다.

마그마의 홍준식 하사는 은빛 기운이 서린 불꽃을 내뿜고,

창사 김병준 병장은 선두에,

1군단의 공병대 출신 임진 하사는 차분히 팀원들이 딛고 설 수 있는 안전지대를 넓혔다.

처음 모였을 때만 해도 대체 무슨 기준으로 인원을 선별한 것인지. 번개 중대원들 사이에도 의문의 목소리가 나올 만큼 엉망진창이었던 이들이다.

허나, 계속된 노력과 훈련의 연속으로 우리 번개 중대원들은 전혀 일맥상통하지 않은 병장기와 스킬들을 알맞게 조합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애당초 이들을 직접 선발한 나조차 놀랄 만큼 놀라웠다.

-착!

-촤아아악!

은빛 병장기를 휘두르는 신체 강화계 헌터들이 무서운 공세로 길을 만들면,

-후우우우웅!

염동력과 자기력 같은 캐스팅 시간이 없는 마력계 헌터들이 그 대지를 점거하고,

-타다다다당!

자리를 잡은 화력계 대원들은 총탄에서 불을 뿜거나, 손에서 각양각색의 마법을 펼치며 일대의 언데드들을 쓸어 담았다.

이는 ‘섬광’을 유지하며 지휘 체계를 잡은 홍진웅의 영향도 물론 있겠다만, 이미 수백, 수천번 이 같은 언데드 전만을 준비해왔던 대원들의 노력이 그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그러나 ‘오직 언데드만’을 위해 준비한 두 겹, 세 겹의 상성 체계를 갖추어낸 번개중 대를 상대로도 불사왕의 군단은 엄청난 기세를 토해냈다.

-스릉!

-스르릉!

검왕 류자키와 검희 이서영이 각기 큼지막한 거신병을 맡고, 지상의 부대원들이 미칠듯한 화력으로 눈앞에 언데드들을 쓸어버리지만···.

“흠!”

불사왕의 짧은 숨소리와 함께 무너진 군단은 삽시간에 원상태로 돌아온다.

언데드와 싸운다는 건,

‘네크로맨서’와 싸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마어마한 노력과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의 마력 고갈이 무한히 반복되지만,

이미 이모님이 특수 제작해주신 마나 포션의 절반을 소비했지만,

불사 군단은 다시금 흙으로 이윽고 괴성을 내지르며 일어서는 괴물로 돌아온다.

그 앞에, 생자는 무력하다.

언데드는 마력만 있다면 그 수가 셀 수 없을 만큼 부활을 반복하고 결코, 죽지 않는 데 반해 생자의 체력은 한계가 있다.

이에 ‘불사왕’은 그저 보고 있다.

차츰차츰, 하나, 둘···. 절망의 패색으로 얼굴을 물들이는 번개 중대의 대원들을 찾는 것처럼 그 가증스러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나자빠져 있다.

아파트보다 높은 크기의 거신병.

그 어깨 위에서 놈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극상성의 힘을 가지고도 그를 압도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놈은 착각을 하고 있다.

고작 100명도 채 되질 않는 번개 중대의 대원들.

저 산맥 너머에는 우리를 지원해주는 흑태자의 전자 부대가 있고 하늘에는 757헬기부대의 비장의 수, ‘검은 헬기’가 있지만, 그걸 다 합쳐도 우리의 수는 일천이 되지 못한다.

그래.

놈이 숨을 쉬듯 소환하는 수천의 언데드와 부패를 토해내는 수만의 사체들 이윽고 열 개체의 거신병을···. 우린, 일천도 되지 않는 수로 막아내고 있는 것이란 말이다.

이미, 4시간 이상씩이나.

대등하다.

소환물이 곧 자신의 모든 것인 ‘네크로맨서’의 군단과 우리가 대등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건, 그 자체로 이미 우리의 작전이 성공을 향하고 있음에 대한 증명이었다.

그리고 남는 것은···.

“어딜 보고 있는 거냐···!”

-파지지지지직!

벌써 스무번도 넘게 시퍼런 번개를 타고 하늘로 솟아오른 나의 검이다.

“불사왕!”

‘수왕검’에 푸른 빛이 깃든다.

내뻗는다.

흐르던 신력이, 흩뿌려지던 그 푸르른 신력이 급격하게 소용돌이친다.

눈앞에 현현하는 것은 거대한 파도.

굽이치는 파도는 불사왕이 가장 경계하던 힘, 파마(破魔)의 기운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고···.

다시금 내가 취하는 그 형(形)은 죽은 장훈의 검술 동작이었다.

수검(水劍), 제3형

굽이치는 파도.

솟구쳐 오르는 급류와 그 물의 성질을 타고 미친 듯이 날뛰는 나의 푸른 번개.

‘혈속성의 오러’와 ‘전격 마력’이 부조화를 이루며 폭발을 일으키던 것과 달리,

‘수신의 신력’과 나의 ‘번개’는 같은 빛을 번쩍이며 더욱 날카롭게, 더더욱 빠르게 뻗어 나가는 묵직한 검격···!

이내 뒤틀린 아공간에 손을 넣던 불사왕이 나를 응시했고···.

-챙!

나의 검을 받아내는 그의 손에는 거대한 사신의 낫, 데스사이드가 들려 있었다.

-끼이이이익!

밀도 짙은 죽음 마력이 수신의 신력과 맞부딪혀 굉음을 내뿜는다.

허나, 밀리지 않는다.

그 사실 하나가 아직도 나를 웃게한다.

“나를 봐라. 불사왕. 네놈의 손에 무기를 쥐게 하고, 네놈의 목을 위협하는 나를 봐라!”

“꼭두각시 주제에···.”

“그래. 그 꼭두각시에게 네놈은 죽음을 맞이하는 거다. 불사왕!”

고속의 검은 물길을 타고 흐른다.

쾌속의 낫은 반전 마력을 뒤엎는다.

상극의 성질은 서로를 밀어낸다.

허나, 그럼에도 나와 놈의 손에 들린 날붙이는 거침없이 서로를 향해 내질러진다!

***

흑룡, ‘아뮤르타스’의 베이징 도착으로부터 32시간이 경과했다.

지상에 내려앉은 아뮤르타스는 그저 ‘질주’하는 것으로 시가지를 분쇄했다.

성녀에게 구원을 받은 미후왕이자 일각주, ‘장 웨이’는 그 모습을 보며, 10층짜리 강철로 건축된 아파트가 150km의 속도로 달려드는 것 같다고 말을 했었다.

전사장 마르쿠스는 이미 수백 번, 성녀에게 안전한 곳에서 숨어있길 간청했다.

막내 성전사 메리는 가장 먼저 성녀, 앤젤라 엘런의 의견에 찬동해 무너진 잔해를 뒤져 생존자를 구조했다.

‘검성’은 그저 한숨을 쉬었고,

‘성녀’는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도 쉬지 않고 인명구조를 이어나갔다.

그것이 비록 배신을 꿈꾸던 악인일지라도, 모든 것을 알고도 입을 다물던 방관자일지라도, 앤젤라 엘런은 구했다.

손이 부르텄다.

새하얗고 여리던 소녀의 손은 이미 흙먼지에 뒤덮여 검댕이라도 칠한 듯 검게 물들었지만, 소녀는 손을 쉬지 않았다..

소녀는 결코 멈추지 않은 것이다.

“괜찮으세요?”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세요.”

“무서우셨죠. 이제 괜찮아요. 정말 괜찮으니까요.”

세상의 모든 것이 파괴와 살육의 죄악을 범할지라도 오롯이 자신만은 ‘구하겠다’는 신념으로 소녀는 움직인 것이다.

「이 보잘것없는 소녀가···. 성 미카엘 대천사께 기도를 드리나이다.」

그렇게 구한 이들은 일어섰다.

일어서 다시금 무기를 잡았다.

무기를 잡은 그들은 폐허가 된 베이징을 보았다.

「천상 군대의 영광스러운 지휘자이신 성 미카엘 대천사여」

그들의 고향은,

그들의 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와중에도 멀쩡한 것은, 오직 천마의 본거지 자금성뿐이었다.

중국계 헌터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 자금성 밑바닥에 거대한 ‘흡정마공진’이 깔려있음을···.

「권세와 폭력과의 싸움에서 저희를 보호하시며」

전장을 벗어난 그들의 눈에는 보였다.

‘천마’는 헌터들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흑룡이 내뿜는 무시무시한 브레스도, 그 어마어마한 강철같은 박치기도, 모두 자금성을 향하고 있을 때만 전력을 다해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처, 천마···.”

“우린······. 무엇을 위해······.”

허망함···.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구원을 받은 헌터들의 사이로 펴진다.

결국 ‘모든 중국인을 위한’ 세계를 만들겠다던 천마마저 자신의 비원, ‘젊음’을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 일어섰었다.

그건 어째서였나.

싸우기 위해,

‘나’라는 개인이 이 세계에서 덧없는 이슬처럼 지더라도, 이 세상이 ‘모든 중국인을 위한’ 세계가 되리라는 믿음으로······.

그들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기적으로 얻은 두 번째 생마저도 버릴 각오를 다졌었다.

허나, 그들의 우상이었던 ‘천마’는 몇 년의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흡정마공진’을 다른 헌터들의 생명보다 우선시하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헌터들은 보았다.

한 소녀를 보았다.

「이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 아래 있는 악신들과의 싸움에서 저희를 보호하소서.」

소녀는 지금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이 난무하는 전장에 스스럼 없이 무릎을 꿇고, 아직도 어딘가에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고, 사탄의 압제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빼내신 인간을 도우러 오소서.」

헌터들은 보았다.

그 덧없이 순수한 광휘가 뒤따르는 진짜 선인을.

「하느님께서는 구해 내신 영혼들을 천상 기쁨으로 인도하기 위해 저희를 당신께 맡기셨나이다.」

이윽고 끝이 임박한 기도는 발한다.

지금껏 소녀에게 구원받은 이들에게만 보였던 새하얀 수천, 수만 마리의 흰 새의 무리를···!

-퍼드드드득!

빛이 솟아오른다.

날개를 움직이며 깃을 흩뿌리며 이 어둑한 세계를 태양처럼 밝히고자 앤젤라 엘런의 신성력은 그 자태를 드러내었다.

마치 빛으로 된 기둥이 지상으로부터 하늘에 닿는 그런 형상이었다.

넘실거리는 생명력.

차고 넘쳐흐르는 신성력.

이윽고 그 모든 신성한 에너지가 집약되어 모일 때···.

「성 미카엘 대천사시여 어리고 여린 저희를 구원하소서!」

헌터들은 진짜 구원이 바로 자신들의 앞에 있었음을 알았다.

새하얗게 솟아오른 빛.

그 눈부신 광경에 매료되어 고통을 잊는 헌터들.

허나 바로 그 순간,

-쿠우우웅!

엄청난 먼지구름을 일으키는 충돌음이 일순간에 터져 나왔다.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했더니···!”

이내 거센 돌풍으로 흙구름이 걷히면, 그곳에는 다름 아닌 ‘천마’가 서 있었다.

32시간.

아무리 우선(愚仙)과 함께했을지라도, 무려 흑룡과의 정면 대결을 벌이던 그다.

비단같이 반짝이던 흰 머리칼은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 더러워졌고, 아무리 고고한 표정을 짓고 있다곤 하나, 그는 저 멀리에서 이곳까지 날아오는 것 하나만으로 거친 숨을 연신 내쉬고 있었다.

“처··· 천마···.”

이에, 헌터들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경외감과 공포에 말을 더듬는데, 죽다 살아난 수백 명을 마주한 천마는 참으로 충격적인 말을 아무런 고민도 없이 내뱉었다.

“잘했다. 나의 교인들이여. 저 생명력의 보고와도 같은 아이를 얼른 자금성으로 옮기거라···!”

생천 처음 천마에게 칭찬이라 부릴 법한 말을 들어본 헌터들.

그들은 일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 흥분에 젖은 얼굴이 되었었지만, 마지막에 튀어나온 한마디에 얼굴을 굳혔다.

“자, 자금성으로 옮기라니요···. 천마께선 설마···!”

“무엇을 되묻느냐! 그 아이의 정기는 실로 엄청나구나! 그러니 그 아이만 ‘흡정마공진’에 넣는다면 우리 마교는 다시금 일어서 저 극악무도한 용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지 않더냐!”

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만큼의 신성력과 엄청난 수의 생존자 무리.

이를 그 눈으로 똑독히 보고, 이곳에 이들이 모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지를 추측하지 못한다면 그는 천마가 아니리라.

그는 알고 있다.

저 소녀가, 이들의 목숨을 구해준 장본인임을 말이다.

즉,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장, 너희의 목숨을 구한 소녀를 너희의 손으로 배신하라···!

무기를 들고 일어섰던 헌터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앤젤라 엘런을 돕던 한 남자는 창을 들었다.

그렇게 한창 기적을 꽃피우고 있는 앤젤라 엘런에게 다가가던 그···. 미후왕 장 웨이는 휙하고 몸을 돌려, 정면의 천마를 향해 창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천마님.”

“...무어라?”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일각주 장 웨이의 반발에 두 눈을 부릅뜨는 천마.

허나, 그 공포스러운 눈빛 앞에서 장 웨이는 무덤덤하게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나는 당신을 존경했고, 우리 중국인들을 사랑했소. 마교에 주워져 마교인으로 자랐고, 이 세상에는 중국인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족속뿐일 거란 그 가르침을 누구보다 열렬히 믿었소.”

“...”

“하지만, 저 소녀를 보시오. 천마님! 저 소녀는 서구의 아이이며 교회의 천사요. 소녀는 충성을 강요하지도 않소.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았소.”

장 웨이의 살 떨리는 일장 연설에, 무기를 내렸던 헌터들은 다시금 하나, 둘. 무기를 들어올리기 시작한다.

“소녀···. 아니, 성녀님께서는 내가 생의 은혜를 어떻게 하면 다 갚을 수 있는가를 묻자, 도리어 내 안부를 한 번 더 물어보셨다오.”

-성녀님. 제가 어찌하면 이 은혜를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아프지 않으신가요?

-예···?

-아저씨가 아픔이 다 나았다면 저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짧은 문답이었다.

대화라기보다는 넋두리에 가깝고, 어쩌면 찬향가에 더 가까운 중얼거림이었다.

허나, 그 짧은 이야기에 무기를 틀어쥔 중국계 헌터들은 하나, 둘 눈에서 눈물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와 같은 일이 자신에게도 있었다는 것처럼···.

“나는 당신의 첫 번째 뿔이오. 모든 마창대의 장이지. 하지만, 아무리 당신이 아무리 나의 주인이신 천마이실 지라도···!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세상을 꿈꾸시는 성녀님을 지키겠소···!”

다시금 싸울 몸을 얻고, 무기를 들었으나 그 창끝이 향해야 할 방향을 잃었던 이들은 그렇게 ‘천마’를 향해 무기를 들어 올렸다.

“어디 사냥개들이···. 제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내느냐!”

그러자 줄곧 무표정했던 입을 크게 벌리며 거대한 일갈을 날리는 천마!

그저 뱃심을 담아 크게 외친 것뿐이었음에도 인근의 나무가 흔들리고, 거대한 바람이 불어올 정도였다.

그만큼의 엄청난 분노가, 지금의 천마에겐 있었다.

동시에 자신이 외친 외침과 함께 ‘음속’으로 날아드는 천마의 권.

다만,

“쯧쯧쯧.”

그 일격필살의 주먹을 막아낼 수 있는 존재가, 그곳에는 있었다.

-채애앵!

묵직한 울림과 함께 터져 나오는 파장.

이내 주먹을 가로막힌 천마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네··· 네놈은···!”

“50년 전에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극악무도한 마교교주의 목을 치고, 새로운 사도(邪道)를 제시하겠다고 떠벌거렸던 그 어린 것이···. 어찌 이리도 타락했단 말이냐.”

혀를 차며, 검을 양손으로 틀어진 노구.

눈밭처럼 희게 센 머리카락와 수염을 흩날리며 나타난 자는 다름 아닌 ‘검성’ 라오 위였다.

-스륵!

-촤아아악!

눈에 보이지 않는 수초.

시간이 흐르지 않는 찰나.

‘검성’의 검은 공간을 이동하는 듯 휘몰아치며 일순간에 11연격을 쏟아내고,

‘천마’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권을 강하게 말아쥐고 그 미친 참격들을 받아냈다.

양쪽 모두 풀컨디션인 상태라면 완전히 비등한 전투를 벌이는 ‘검성’과 ‘천마’.

허나, 현재의 천마는 이미 32시간 흑룡을 막아내느라 녹초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고,

“세월이란 정말 두려운 것이로구나. 그렇게나 정의롭던 청년이, 이렇게 부패했다니. 쯧쯧쯧.”

여유롭게 혀를 차면서도 ‘틈’을 자유자재로 파고드는 ‘검성’의 그 미친 연격을 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촤악!

두 번, 네 번, 여덟 번에, 열일곱 번.

전신에 큼지막한 참격을 여러 차례 맞고서야 드디어 ‘천마’는 눈이 뒤집히며 바닥에 엎어졌다.

-털썩!

이에 반사적으로 장 웨이를 비롯한 마교인들은 몸을 떨며 그에게 향하려 했지만, ‘검성’은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조언했다.

“죽고 싶지 않다면 그냥 놔두거라. 저놈이 다시 깨어난다면 그 주먹이 어디로 향하겠느냐···. 더욱이, 저놈은 저러고도 죽을 리가 없는 놈이니라.”

그러자 수백의 무인들은 전신을 흠칫 떨며 제자리에 멈춰섰다.

이를 곁눈질로 확인한 ‘검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지금은 ‘우선(愚仙)’이 홀로 남아 피를 토하며 막아서고 있는 흑룡, 아뮤르타스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오랜만에 제대로 몸을 풀 시간이로구나.”

그는 지금껏 휘두르던 검을 허리춤에 꽂아 넣고···.

지금껏 단 한 번도 꺼내든 적이 없던 등 뒤의 장검에 손을 얹었다.

“부디, 이 늙은 몸의 솜씨가 젊은이들의 기대만큼 녹슬지 않았어야 할 것인데. 끌끌끌.”

이윽고 그가 잡은 장검, ‘월광찬천검(月光燦天剑)’이 빛을 내뿜자, 밤하늘은 성녀의 새하얀 신성력이 아닌 검푸르게 번뜩이는 광채에 휩싸여 다시금 일렁거렸다.

이내, 검성의 팔다리에 굵직한 핏줄이 곤두서고···!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어마어마한 마찰음과 함께 폭발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검푸른 오라가 기괴한 굉음을 내뿜는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높게 들어 올린 장검에 전력을 싣고 휘두르자······.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저 멀리 보이는 흑룡, 아뮤르타스의 머리가 휙 하고 옆으로 돌아갔다!

이에, 그곳의 모두가, 흑룡을 눈앞에 있던 ‘우선’마저도 몸을 굳혔다.

바야흐로 구천을 떠돌면서도 달을 쥐고 휘두른다고 전해 내려오던 검사들의 별, ‘검성’의 재림이었다.

흑룡과 불사왕 -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