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14화.
“그대는 회귀자인가? 보잘것없는 전격 방출계 헌터···. 이건우여.”
그건 의문의 목소리였다.
어조와 억양에 고저는 없었고 아직도 우뚝 선 거신병의 어깨 위에 올라선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지만, 놀랍게도 ‘불사왕’은 나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는 것이었다.
회귀.
나의 운명을 바꾸고,
대한민국의 지금을 변화시키고,
이젠 세계의 명운을 뒤바꿔 놓으려 했던 나의 근본적인 비밀.
놀랍게도 불사왕은 ‘회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
격한 당혹감에 내가 무어라 대답을 내어놓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불사왕’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대답을 내어놓지 못하더냐. 당혹스럽더냐, 경악스럽더냐, 두렵더냐, 말이 나오질 않더냐.”
들려오는 단어만을 놓고 본다면 멈춰선 나를 불사왕은 조롱하는 듯했지만,
정작 그런 말을 내뱉는 그의 얼굴이 돌 가면처럼 단단히 굳어 있으니, 그 모습은 참으로 덧없이 소름 끼치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큰 운명을 타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자들은 그대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다.”
“불사왕···!”
“허나, 그 어떤 큰 운명을 타고난 자도, 이 세계가 본디 흘러가야 할 그 거대한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래···. 운명을 정면으로 거스른 그대와 같은 자들을 제외하곤 말이지.”
표정의 변화는 없다.
물론 아직도 ‘불사왕’의 목소리는 차가운 기계의 것처럼 무미건조했다.
그러나, 저 드높은 거신병의 어깨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늘어놓는 ‘불사왕’을 보고 있자면, 어째서인지 그가 격하게 흥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나는 혈검을 움켜쥔 손에 힘을 더 주며 나지막이 고했다.
“네놈······. 대체 뭘 알고 있는 거냐.”
“그대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모든 것. 아직 운명을 시험받고 있는 그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모든 것.”
짧은 문답이었지만, 나는 대화가 전혀 맞물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마치 수천 가지의 미래를 엿보고 아직도 살아있는 세계인의 진짜 보호자, 1대 성녀 ‘다나 메이어’와 대화를 나눌 때 느꼈던 바로 그 감각이었다.
“말이 안 통하는군···!”
“그럴 수밖에, 그대는 아직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대는 아직 운명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채이니.”
시험, 운명.
받아들일 수 없는, 상상하는 그 이상의···.
무엇을 논하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식의 대답만을 늘어놓는 불사왕.
그제야, 나는 이 세계의 비밀에 대해 논할 때 1대 성녀 다나 메이어가 내게 남겼던 말 한마디가 떠올릴 수 있었다.
-아카식 레코드Ⅲ
지난 ‘테라포잉’의 잔해로부터, 새로운 히든피스를 거머쥐기 위해 찾았던 그 열쇠.
대체 세상의 진실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다나 메이어도, 불사왕도 저런 반응을 늘어놓는다는 말인가.
돌연, 숱한 의문과 범접할 수 없는 공포가 몸을 짓누르는 감각이 내 전신에 엄습했다.
‘...!?’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 가질수록, 정말로 놈의 말대로 육신과 정신에 부하가 가해지는 그런 느낌이 내 몸을 휘감은 것이다.
이에 내가 눈을 부릅뜨고 멈춰서 있자 저 높은 곳에서부터 불사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몸이 굳겠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세상은 어두워지고, 의식은 멀어져가며, 육신은 단단해져 갈 것이다. 역시 짐의 예상대로 들어맞는구나. 그대는, ‘이어져 온 꿈’의 꼭두각시였어.”
“개··· 소리···!”
“짐이 논하는 말들의 의미가 궁금하더냐. 짐이 알고 있는 것을 네놈도 알고 싶더냐!”
갑작스레 처음으로 목소리를 키우며 강한 의지를 표명하는 ‘불사왕’.
이에 내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줄곧 무표정뿐이었던 ‘불사왕’의 안면에 미소가 걸려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짐의 물음에 답하라. ‘이어져 온 꿈’의 꼭두각시여! 그대는 어찌 이 멸망하는 세계를 구원할 짐에게 대항하는 게냐.”
‘세계의 진실’이니, ‘이어져 온 꿈의 꼭두각시’니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한참은 모자를 법한 큼직한 이야기에 집중해 정신이 멍해져 가던 중···.
나는 들려온 불사왕의 목소리는 갑작스레 온 정신을 바로잡았다.
“구, 원···?”
그건 믿지 못할 말을, 믿을 수 없는 자의 입으로부터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네놈이, 이 세계를 구원한다고···?”
돌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믿을 수 없는 한마디.
전생에는 끝까지 결코 입을 열지 않았던 불사왕이었기에 알 수 없었던 그의 속내.
허나, 그 주장이 너무나도 모순적이었기에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놈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불사왕은 답한다.
도리어 당당하게, 당찬 포부를 이야기하는 어린아이 같은 미소와 함께!
“그렇다! 이 세계는 어차피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짐은 떠올린 게다. 어차피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미래로 이 세계가 향하고 있다면, 그 멸망한 세계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신인류’를 만들겠다고!”
“신··· 인류라고······?!”
그것은 들어보았던 단어였다.
허나, 전생에 그런 말을 비참하게 토해내던 자는 눈앞의 불사왕이 아닌, 그의 충실한 하수인이었던 데스나이트 케일른과 고위 리치 볼프 루이스였다.
그냥 헛소리라 치부했다.
생자의 삶을 조롱하고, 무차별적으로 죽여 언데드로 만드는 행위는 그 어떤 정당성도 부여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불사왕이 그 말을 내뱉고 있다.
그때 두 고위 언데드가 읊조리던 그 헛소리를 자신의 입으로 말이다···!
이윽고 불사왕은 자신의 팔을 곧게 내뻗으며 내게 말했다.
“나의 손을 잡아라. ‘이어져 온 꿈’의 꼭두각시여···! 나와 함께 하등한 생자의 탈을 벗어 던지고 지고한 불멸자의 나라를 건국하는 거다!”
-불사왕이시라면 분명···. 네놈을 마음에 들어서 하실 거다···! 언데드가 되어라! 언데드되길 택해라!
문득, 기억의 저편에서부터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전생에도, 현생에도 만나 싸운 적이 있던 네임드의 데스나이트, 케일른의 목소리였다.
혼자서 성전사단을 몰살 직전까지 몰고 갔던 데스나이트 케일른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언데드가 되어라!
마치 지긋지긋한 족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를 맛보라는 듯한 그런 뉘앙스로 말이다···.
“그런 거였나···.”
아무리 맞추려 해도 맞아떨어지지 않던 퍼즐이 드디어 온전한 윤곽을 드러낸 듯한 느낌이었다.
멸망하는 세계와 그 세계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언데드.
그게 불사왕이 그토록 자신을 ‘정의의 편’이라 강조하던 근본적인 이유였다니···.
“구원···. 구원······!”
토가 쏠린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인간의 진짜 의도를 ‘이해’하자···.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거대한 함성.
“구원이셨다. 그거냐아아아!”
불사왕은 아직도, 내게 팔을 뻗고 있다.
지금이라도 잡으라는 듯.
자신과 그 뜻을 함께하자는 듯이 말이다.
정신이 멍해지는 말들을 들었을 땐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그른가.
시간을 되돌아와 두 번째 생을 살아가는 나란 존재는 대체 무엇이며, 저 불사왕은 대체 뭘 알고 있는 걸까.
그런 숱한 의문에 휘감겨 앞이 보이지 않았다.
허나, 지금 나는 안다.
다른 것은 다 모르더라도 단 한 가지는 알고 있단 말이다!
“그래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나···.”
단 하나의 진리.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구원을 핑계 삼아! 죄의식을 벗어던지고! 같잖은 헛소리를 지껄이며 무고한 자들을 그렇게 무참히도 학살해댄 것이냔 말이다!”
그 누구도 생자의 노력을 조롱할 순 없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이 미친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는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일 수는 없단 말이다!
“네놈들은 아이를 찢어 죽였다. 노인을 능멸했고 용맹한 헌터들을 암살했고, 그들의 주검을 비웃었고! 그들의 무덤에 침을 뱉었으며 비참하게, 아무런 이유 없이 살아 숨 쉬는 모든 이들을 죽였다!”
그는 죽였다.
용맹하게 싸우던 헌터를 죽였다.
그 헌터들의 무덤 앞에서 울부짖던 아이를 죽였다.
그 아이의 죽음에 분개하는 무고한 이들을 학살했으며, 그 학살에 항의하는 학자와 정치인과 헌터를···.
이윽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과 소녀를 이윽고 갓난아이를 죽였다.
죽였다.
죽였다.
그들은 죽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악귀나찰마저도 울고 갈 극악무도한 ‘악’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았다.
놈이 말하는 ‘불멸자의 나라’를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저기 저 ‘불사왕’보다도 잘 알고 있다.
생생히 기억한다.
그 지옥을···.
“그 어떤 대의명분도 통하지 않는다. 그딴 걸로는 네놈들의 죄는 씻을 수 없어! 네놈은 그저 미치광이 학살자일 뿐이다! 네놈은 말도 안 되는 이상에 취해 돌아버린 머저리에 불과하다고!”
학살은 그 어떤 이유가 있어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학살은 그 어떤 노력을 들여도 참회할 수 없는 최악의 죄악이다.
-콰지지지지지직!
나의 격한 감정을 대신 표출하듯, 어둑한 세상은 연신 푸른 낙뢰로 번뜩이고 있었다.
“네놈의 죄를 정당화하려 들지 마라! 역겨운 도굴꾼 자식아! 속이 뒤집히니까!”
이윽고, 나의 명명백백한 거절의 의사에, 불사왕은 처음으로 드러냈던 감정, ‘미소’를 얼굴에서 지우고는 천천히 팔을 내리기 시작했다.
허나, 직후.
놈은 내렸던 손끝을 시작으로 퍼져나오는 새카만 안개!
이윽고 놈이 단숨에 그 거대한 그림자를 들어 올리자···!
-드드드드드드드드!
검은 밤의 산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지축이 흔들리고 지각이 붕괴하는 듯한 압도적인 규모의 괴현상!
이에 내가 눈을 부릅뜨며 번뜩이는 푸른 낙뢰로 반짝이는 이 일대를 쭉 훑어보니 이미 나의 낙뢰가 내리 꽃인 주변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서 솟아오르는 뼈와 사체와 거신병들이 보였다.
-달그락! 달그락!
-퀘에에에엑!
-Gaaaaaaaaaaaaaaaa!!
각기 다른 소리를 울부짖는 불사의 군단.
생전의 기억을 망각하고, ‘불사왕’의 의지에 그저 따르는 노예로 전락한 몬스터와 인간···. 이윽고 과거 헌터였던 언데드들이 보인다.
일순간에 지형을 바꾸고 일대를 점거한 이 불사 군단의 왕, 불사왕은 말했다.
“보라. 어린 꼭두각시여. 짐에게 대항하겠다는 건, 이런 것이다.”
혼자이나 군단이다.
그가 숨을 쉬면 수천의 사체가 일어서고, 그가 손가락을 움직이면 수만의 백골이 울부짖는다.
이윽고 나는 그 생생한 악몽을, 완전한 지옥을 눈앞에 두고서···.
-콰득!
아까보다 더 강하게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이다. 짐을 도와라. 짐의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란 말이다! ‘이어져 온 꿈’의 꼭두각시!”
들려오는 목소리는 참으로 역겨웠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이를 악물고, 부릅뜬 눈 그대로 놈을 노려보며 더욱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도···. 네놈에게 죽어가던 동료들이 울고 있다. 이봐. 들리지 않는 거냐···! 아니면 그 역겨운 귀를 틀어막고 들리지 않는 척을 하는 거냐.”
“...”
“그래. 들리지 않는다면 들려주마···! 네놈의 귓구멍에 검을 쑤셔 박아, 쌓이고 쌓인 원한의 곡소리를 듣게 해주마!”
빠른 동작의 착검.
이어 연속 동작으로 터져 나오는 건, 미칠 듯이 활활 타오르는 붉은 오러의 집약체였다.
-화르르르륵!
피어오르는 불길과 솟아오르는 핏빛 용천수···!
피로 얼룩진 검이 향하는 길은 오직, 올곧은 직선이다.
“안타깝군.”
불사왕의 작은 탄식과 함께 움직이는 세계.
아니, 이 산맥을 뒤엎고 이 야산을 뒤덮은 백골과 썩어 문드러진 사체들의 향연이 요동치는 파도처럼 나의 검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다.
-화르르륵!
-콰지지지지직!
굽이치는 번개와 뻗어 나가는 핏빛 불줄기들.
막대한 반발력으로 폭발과도 같은 에너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나아간다.
올곧은 직선으로, 놈과 나의 최단거리로.
내딛는 걸음은 번개를 타고 더더욱 가속하고, 내지르는 검은 다시금 만개하는 꽃잎을 흩날리며 앞으로 맹렬히 돌진하는 것이다!
-Gaaaaaaaaaaaaaaaa!!
돌연, 하늘은 어두워진다.
그 긴 외침과 함께 내게 쇄도하는 것은 거대하길 넘어 웅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팔과 다리였다.
마치 저 높은 밤하늘이 무너져 내 머리 위로 내려앉는 것만 같은 광경이, 이젠 하나도 셋도 아니고 열 개체로 불어난 ‘거신병’들에 의해 일어난다.
다만,
“꺼져어어어!”
나는 몸을 크게 틀어 어마어마한 반동 그대로 그 열 개체의 팔다리를 모조리 베어낸다.
이윽고, 열리는 지평선.
반으로 갈라진 하늘은 이미 넘어왔다.
폭발적으로 솟아오른 몸과 드디어 다시 마주하는 역겨운 불사왕의 얼굴.
놈은 다시금 안면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가득 채우고는 무언가를 손에 들어 올리고 있었다.
새빨간 광택의 물건.
날아오른 나는 그대로 불사왕의 목을 향해 전신을 틀어가며 검을 내질렀지만, 그 메시지는 정말로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났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프리드리피 파울라스는 ‘흡혈종’의 보옥, ‘월혈석(月血石)’의 권능을 발현시켰습니다!
*‘권능-피를 먹는 달빛’의 효과로, 반경 1km 이내의 모든 ‘혈속성’의 마력과 오러는 ‘월혈석’으로 흡수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그 메시지를 모두 읽기도 전에, 맞부딪힌 나의 검과 놈의 목.
-챙!
그런데 터져 나오는 소음은 결코 인간의 목과 신화급 무구의 충돌이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둔탁한 굉음이었다.
그 일격에 실린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놈의 목에서는 불꽃이 튀겼다.
허나, 파고들지 못했다.
절대 녹슬지 않는 신화급의 무구의 날이 한 인간의 목을 파고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텁!
“크읍?!”
이에 경악하며 내가 한눈을 파는 사이 거대한 손아귀가 날아들어 내 목을 움켜쥐었다.
불사왕이 내 목을 틀어쥔 것이었다.
“그대가 ‘혈속성’에 이다지도 의지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드득! 으드득!
곧장 나는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려 육체 강화에 쏟아붓지만, 불사왕의 손은 그 끝부분에서부터 내 목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격통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그래서 대비했다. 꼭두각시여. 당연한 것 아닌가.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한다. 그대는 짐과 전투다운 전투를 벌여보기도 전에 죽는구나. 무구 따위의 힘에만 의존한 자신의 안일함. 죽어서도 후회하거라.”
-드드득!
조금 전,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손을 잡으라느니 떠들어댈 때는 언제고, 놈은 다시금 초연하고 여유로운 절대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나의 발악 따위는 모두, 자신의 손아귀 위에서 일어난 사소한 장난에 불과했다는 듯이.
“크···. 흐, 흐흐···!”
그러나 나는 간신히 새어 나오는 그 미약하고 미세한 숨으로, 미소를 지어 웃음소리를 냈다.
“···웃는다고?”
그제야, 불사왕의 미간이 조금 좁혀지며 놈의 얼굴에는 자그마한 의문이 떠올랐다.
-파지직! 파직···! 파아아아.
이윽고, 내가 처음 놈에게 날아들던 그 순간부터 허공에 자리해 있던 등 뒤의 시퍼런 낙뢰가 서서히 자취를 감췄는데···.
-피이이이이!
-피이이이!
-피이이이이이이!
번개가 사라지고 세상에 암전되자마자, 무수히 많은 수의 별빛이 밤하늘에서부터 쏟아져 내리고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저건···!”
당장은 저 머나먼 별처럼 보일 정도로 멀리 있던, 그것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본 불사왕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 일순간의 당혹으로 내 목을 쥔 놈의 팔에서 힘이 조금 풀렸고, 나는 주저 없이 허리춤에 묶여 있던 또 다른 검, ‘수왕검’을 잡아 거칠게 뽑았다.
발검(拔劒) 제1형.
황무지의 꽃.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발검의 묘리!
이내 내 목을 움켜쥐고 있던 놈의 팔에도 전과 같은 지평선이 열렸다.
동시에 나는 전신으로 체내의 생체전기를 크게 방출하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고, 이젠 나를 올려다보게 된 불사왕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놈이 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뒀으리란 걸, 내가 몰랐으리라 생각했나. 불사왕···!”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소름 끼치게 많은 유성우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포탄이었다.
그것도 던전에서 채광된 순은으로만 만들어진 ‘파마(破魔)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포탄 말이다.
-콰아아아아앙!
-쿠우우웅!
-우르릉!
밤하늘을 가득 채웠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내리는 포탄의 비.
포탄은 끝이 없는 폭발을 일으켰고, 그 폭발의 여파와 함께 사방에 수신의 신녀, ‘남궁연’의 기도가 한껏 깃든, 순은 포탄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거칠게 흩뿌려진다.
수천의 군세가,
수만의 사체가,
뼈와 근섬유로만 이루어진 기괴한 ‘거신병’마저도 물에 닿은 솜사탕처럼 무너져간다.
-두두두두두두!
이어서 밤하늘을 수놓는 것은, 새카맣게 도색된 헬기부대의 행진이었다.
폭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언데드 하나마저도 용서치 않겠다는 듯 불을 뿜는 헬기의 기관총.
“그리고 설마···. 내가, 네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두지 않았을 거라 기대했던 건 아니겠지···?!”
이내 사격을 마친 그 헬기에서는 번개 문양의 부대 마크를 달고 있는 군인들이 후두둑, 지상으로 하강했다.
순식간에 땅에 내려앉은 나를 중심으로 진형을 갖추는 번개 중대의 대원들.
-팀 볼트, 전투준비 완료!
-팀 헤르츠, 준비 다 됐습니다!
이윽고 팀 볼트를 이끄는 홍진웅과 팀 헤르츠를 이끄는 전생, ‘대항군’의 특수전 전담반의 리더 김나연 중위의 보고가 들려왔고, 나는 높게 들어 올린 ‘수왕검’에 수신의 신력을 휘감았다.
가장 날카로운 이빨이 되리라,
불가능에 도전하는, 가장 치명적인 일격으로 꼭 벼려내고자 했던 나의 번개 중대.
그들은 드디어 준비를 끝마쳤고, 이렇게 나의 양 날개가 되었다.
나는 양옆으로 쭉 늘어선 나의 든든한 부대원들을 쭉 훑어보고는 곧장 목청을 높여 외친다.
“번개 중대! 첫 출전의 목표는 오직 하나뿐이다!”
상대는 일순간에 군단을 일으켜 세우는 세기의 네크로맨서.
허나 이젠 나에게도, 오직 놈을 상대하기 위해, 수백 수천 번의 고된 훈련을 견뎌내고 대 언데드전의 스페셜리스트으로 거듭난 우리, ‘번개 중대’가 있다!
“...저 더러운 언데드들을 쓸어버리자. 가자!”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함성과 함께, 파마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총탄, 검, 언월도, 창, 연금술의 시약 가루. 마궁, 폭탄이 ‘던전 은’만의 반짝이는 은광을 빛낸다!
이윽고 우린 세계 1위의 헌터를 향해 선제공격을 개시했다···!
흑룡과 불사왕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