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11화.
“예. 연약한 무언가. 그 정체는 바로···. 드래곤의 알이었습니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아, 하며 입을 벌리는 마르쿠스. 거기에 검성은 자신의 예측이 정확히 맞았는지 미소와 함께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그 괴짜 학자를 머저리라고 불렀습니다.”
왜 굳이 쓸데없는 정보를 위해 시간과 체력과 힘을 낭비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 학자분이 있으셨기에 지금의 저는 상식을 뒤엎는 이런 작전을 고안해낼 수 있었죠.”
그리고 그 상식을 뒤엎는 발상은 다시금,
용의 피를 노리는 블러드 엘프,
용의 사체를 노리는 불사왕과 언데드,
용을 숭배하며 아무 생각 없이 그 자취를 따라갈 용마교,
이윽고 용맹하게 세기의 레이드에 자원한 모든 이들을 배반하려 했던 천마,
그 모든 배신자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파직!
나는 어깨에 이고 있던 광역 통신 기기에 손을 얹고, 흑룡 공략대가 공통으로 사용하던 광역 주파수를 엉망진창으로 어그러뜨렸다.
이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전격 방출계 헌터’만이 할 수 있는 장기. 일시적 교신 차단이었다.
다만, 차단을 시행하는 자가 레벨 45의 내가 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는 것이다.
“지금부터 20시간 동안 통신망을 완전히 차단하겠습니다.”
-파지지지직!
번쩍이는 섬광,
허나, 그 전격은 이내 파동의 형태로 뒤바뀌어 통신 기기에서 송수신하는 모든 전자파를 타고 흘러 광역 주파수 자체를 엉망진창으로 꼬아버렸다.
“이로써 천마는 흩어진 공략대를 베이징으로 소집할 수 없습니다.”
이윽고 밤하늘이라는 위장으로 모습을 숨긴 흑룡의 행방을 아는 자는 이제 베이징에 있을 중국계 헌터들과 천마,
이미 그쪽으로 보내둔 ‘저스티스 가디언즈’,
용을 따르는 용마교의 광신도들,
마지막으로 나의 손에 불타 먼지가 된 저 ‘머리’의 주인, 엘더 그라다와 블러드 엘프들뿐이다.
“저는 무고한 헌터들을 희생시킬 생각 없습니다. 저는, 저 흑룡을 이용하려 들었던 모든 빌런들에게 흑룡으로 응수할 뿐이니까요.”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배신자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치는 사람이 되겠다고.
흑용은 날아간다.
모든 배신의 시나리오를 갈아엎으면서 말이다.
***
-‘흡정마공진’의 핵은 서유기라는 설화를 바탕으로 구현된 ‘금과 은의 호리병’이다.
-천마는 자금성의 땅밑을 파내어 은밀하게 만든 지하 공동을 이용해 ‘흡정마공진’이라는 법진을 준비했다.
-이윽고, 놈은 ‘흑룡 레이드’가 끝난 뒤, 살아남은 모든 헌터들을 자금성으로 데려와 그걸 발동시킬 계획이었다.
이건우에게서 ‘판도라의 인벤토리’라는 아이템을 받고 한창 회복을 핑계 삼아 베이징의 자금성으로 돌아가던 중, 아이스 밴시 레이첼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쯧! 하여간 음침하고 추잡한 중국 새끼들! 내 그럴 줄 알았어.”
“이건우가 말하기 전까진 상상도 못 하고 있지 않았소.”
“아, 쓸데없이 시비 걸지 말고 새끼야. 들어봐.”
레이첼이 눈에 띄게 흥분한 어조로 목소리를 높이기에, 볼프 루이스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이 탑승해 있는 흑태자 전용, 특수 마공학의 ‘쾌속 전차’.
그 빠른 전차는 한나절만에 산시와 허베이를 통과해 그들을 베이징 인근까지 이동시켰다.
허나, 이동 초기에만 해도 조용하던 레이첼의 얼굴은 가면 갈수록 붉으락푸르락 혈색을 바꾸며 눈에 띄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 개새끼들은 정말로 후발대로 따라붙는 척만 하고 군대를 그대로 베이징에 주둔해뒀잖아?!”
그 원인은 베이징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늘어나는 중국계 헌터들의 숫자 때문이었다.
“애초에 전세계 합동 레이드로 세계 각지의 유망한 헌터들을 죽이려 했던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는 거지.”
이건우는 말했다.
‘천마’는 흑룡이 부활하는 순간 그곳에 나타나긴 하나 곧 크게 다친 척, 전선에서 물러날 계획이었을 거라고.
그러면 자연히 ‘흑룡’과 맞붙을 능력이 있는 자가 사라져, 형성된 전선은 밀려나고 그 여파로 수많은 헌터들은 죽어 나갔으리라.
언제나 측방과 후방을 담당하겠다고 재차 강조하던 중국계의 헌터들만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게 머릿수를 줄이고,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만을 따로 불러 제물로 삼을 심산이었다······. 심지어 그 목적이 뭐야. 다시금 중국이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서···? 이런 개새끼들이 있나!”
중국 정부와 각국의 문파가 동의한 흑룡 레이드.
그들은 정파이건, 사파이건, 흑도이건, 백도이건, 차별도 구분도 없이 모여 하나 된 목표를 가지고 움직였다.
세계 각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던 그들이 모인 목적을 자연히 숭고한 ‘흑룡의 토벌’이라 예측했지만, 그들의 속내는 이렇듯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각성자의 출현 후, 너무 많은 지도자가 출몰하며 내전으로 바람 잘 날이 없던 중국이다.
비교적 최근 ‘마천신교’가 천마의 압도적인 힘을 통해 그 정상의 좌를 얻어냈으나, 그런데도 중국 내부에서 암암리에 움직이는 혁명의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천마’는 불사왕의 아주 특수한 제안을 받고, 기발한 발상 하나를 떠올린다.
다시금 ‘모든 중국인을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를···. 중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국가들을 ‘적’으로 간주해버린 것이다.
덤으로 지쳐 쓰러진 S급 헌터들을 제물로 삼으면 자신의 ‘젊음’은 충분히 획득하고도 남을 테니 천마에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적을 만들어, 내부의 결속을 다진다.
천마는 자신의 권좌를 존속시키기 위해 가장 쉬운 길을 택했고, 그 길은 너무나도 분명한 인류 절멸의 길이었기에 이건우의 적이 되었다.
이러한 내막을 모두 알게 된 레이첼은 경을 쳤다.
“이런 개새끼들이 있나. 씹어 죽여도 모자를 쓰레기 같은 놈들! 그렇잖아. 진짜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말 좀 해봐 이 병신아.”
“방금은 들어보라 하지 않았소. 하아···.”
“이 새끼가 또 시비네.”
“시비가 아니라 그냥 한숨을 쉰 거요.”
“그게 그거지 새끼야.”
이건우에게 된통 당하고 모여 앉았을 때까지만 해도 쉽게 입을 열지도 못했던 레이첼이다.
고위 리치, 볼프 루이스는 그녀가 이토록 흥분한 까닭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아무튼 천마는 천하의 개새끼다 이거야. 다들 알겠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중국계 헌터들에 대한 혐오를 양산하는 레이첼.
볼프 루이스의 눈에 현재 그녀는 매우 초조해 보였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6천씩이나 되는 유럽 연합군을 일순간에 동사시킨 장본인은 바로 그녀이니까.
그 상황에 혹여나 ‘천마 살해’라는 비원조차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그녀는 십중팔구 ‘불사왕’께 버려질 것이다.
그건 ‘저스티스 가디언즈’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
왕에게 버려진 자는 흑색 마탑의 부마탑주, ‘마녀’의 실험체로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된다.
그것도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러니, 레이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실수를 만회할 ‘천마 살해’의 비원을 달성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참 1차원적인 행동이다.
생전부터 지금까지 ‘비상한 두뇌’로 살아왔던 볼프 루이스에게는 그 속내가 뻔히 보여 도리어 인상이 찌푸려질 지경이었다.
허나, 불사왕의 손에 거둬지며 영원한 충성을 맹세함과 동시에 ‘이성’을 통제당한 고위 언데드들에게는 그런 1차원적인 혐오의 양산이 정말 잘 먹혀들었다.
“쿠어어어어!”
“퀘에에엑!”
레이첼의 짧은 선동에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구성원들은 하나 같이 격한 반응을 보인다.
그들이 내지르는 괴성에 흑태자의 그림자라고도 불리는 ‘쾌속 전차’의 운전수는 전신을 움찔 떨었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언데드들은 언데드의 외침을 내질렀다.
“하아···.”
볼프 루이스는 새삼, 이런 머저리들과 이런 머저리들을 존경한다며 팬클럽을 자처하는 비각성자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원을 이루고 나면,
불사왕께서 지배하는 ‘완벽한 세계’가 건국되고 나면, 그래도 ‘이성’을 통제당하지 않은 이들이 많아지겠지.
볼프 루이스는 오직 그런 훗날을 위해 입을 꾹 다물고 그들과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그는 문득 레이첼의 손에 들려있는 아이템, ‘판도라의 인벤토리’를 응시했고 물었다.
“그보다···. 레이첼. 그대는 이건우가 주었다는 그 아이템이 수상하단 생각은 들지 않소? 내가 보기엔 이건우 역시 중국의 헌터들과 크게 다르지 않소. 생자는 믿을 것이 못 되니.”
볼프 루이스의 정당한 의문에 레이첼은 또 시작이냐는 듯한 눈매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번만큼은 볼프 루이스 역시 지지 않고 말했다.
“절대 천마의 앞에 도달할 때까지 열지 말라. 혹은 ‘흡정마공진’의 핵인 ‘금과 은의 호리병’을 눈앞에 둔 상태가 아니면 열지 말라.”
“그게 왜.”
“대체 무슨 아이템이 들어 있길래 우리에게도 정체를 숨긴단 말이오. 현재로선 결국, 한배를 탄 것인데 숨기는 것이 있다니. 수상쩍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소만.”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고민하는 볼프 루이스.
마공학의 천재라는 특성상 불사왕이 ‘이성’을 거둬가지 않은 그였기에 레이첼을 포함한 언데드들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허나, 입에서 흰 서리를 내뿜던 레이첼은 얼마 안 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하다간 끝이 없어. 어차피 우리가 언데드고, 우릴 죽여도 불사왕께서 손짓 하나로 부활시켜주실 것을 놈도 알고 있었겠지.”
“...”
“그러니까, 생화학 무기나 자폭 폭탄 같은 게 안에 잔뜩 들어 있지 않겠어?”
“죽어도 부활할 것을 알기에 이용하기로 했다···. 최근에 퍼진 영상 속에서는, 독특한 신력마저 갖추고 있던 그가···?”
“이해관계가 일치해서 그랬겠지.”
레이첼은 어떻게 해서든 볼프 루이스의 의심을 일축하려 애썼다.
이에 끝까지 불만이 남아 있던 볼프 루이스였으나, 평소의 그 싹수없는 언행은 어디로 가고 저렇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번 일은 이 정도로 넘어가 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아···. 알겠소. 우선 그를 믿도록 하지.”
어차피, ‘불사왕’이 존재하는 한, 신성에 정화되는 최후가 아니고서야 그들은 언제, 어디서라도 허무하리만큼 쉽게 부활할 수 있다.
급할 것은 없는 것이다.
“끽해봐야. 뭐, 죽기밖에 더하겠어?”
그렇게 태평한 태도를 고수하는 레이첼을 보고 있자니 볼프 루이스는 그제야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건 그렇소. 죽어도 뭐, 별일이야 있겠소······.”
위대한 불사왕만 계신다면, 그것만으로 모든 일이 만사 능통 해결될 것인데···. 그런 말을 더 덧붙이고, 볼프 루이스가 허탈하게 피식 웃으려 하던 그 순간,
거대한 유성 하나가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
흑태자가 탑승하기 위해 만든, 초 고강도의 ‘쾌속 전차’가 으스러진다.
-지이익!?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던 그 찰나의 틈에,
들려오는 소음은 기괴하기 그지없었고, 전차의 윗 문 해치를 잡아 뜯은 거대한 손은 흙먼지를 뚫고 볼프 루이스의 어깨를 쥐었다.
“무슨···!”
경악하며 서둘러 언데드의 반전마력을 끌어올리려는 볼프 루이스.
허나, 사람의 머리보다 거대한 그 ‘큰 손’은 그대로 볼프 루이스의 어깨를 잡아 뜯어버렸다.
-드르르륵!
육체가 갈라지고 뼈가 분쇄하며 터져 나오는 섬뜩한 소음.
이내 치솟는 냉기 돌풍은 으스러진 전차를 가득 채운 매캐한 흙먼지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그제야.
볼프 루이스, 레이첼을 비롯한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눈앞에 갑작스러운 습격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처, 천마···!?”
“이게 무슨 짓이오. 천마!”
동시에 터져 나온 항의와 경악의 목소리.
하지만, 흰 수염을 나풀거리는 천마의 눈은 마귀의 눈처럼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네놈들이렷다.”
영문도 모를 말로 운을 떼는 그 노고수는, 얼굴의 모든 근육을 경직시켜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이내 고함을 내질렀다.
“흑룡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게, 바로 네놈들이렷다!”
“흐, 흑룡?”
“이 노친네가 노망이 났나!”
갑작스러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소식에 목소리를 높이는 ‘저스티스 가디언즈’.
허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런···. 벌써···!?”
세상 모든 일에도 항상 초연하던 천마가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댄다.
느닷없이 나타나, 볼프 루이스의 육신을 잡아 뜯고, 다시금 뜬금없이 하늘을 보며 그런 중얼거림을 흘리는 천마.
레이첼과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일원들은 이에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며 천마를 향해 총공세를 퍼부으려 했지만······.
정작 천마의 손에 잡혀 상체가 흉측하게 찢어진 상태인 볼프 루이스는, 아직도 레이첼의 손에 들려있는 그 아이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는 아공간 아이템. ‘판도라의 인벤토리’.
이건우가 출발 직전에 레이첼에게 건네주었던 바로 그 아이템 말이다···.
-기이이이이이이이이!
그리고 직후, 뜯겨 없어진 ‘쾌속 전차’의 윗 문 해치 너머로 통해 보이는 기괴한 광경.
괴상하게 요동치던 ‘밤하늘’은 문득, 그들의 머리 위에서 멈춰섰다.
“하늘이··· 멈췄다고···?”
눈앞에 벌어지는 한 개인의 이해를 아득히 벗어난 현상.
이내 그 ‘밤하늘’은 칠흑보다 더 어둡고 새카만 눈을 떴다.
오싹!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직후, 세계가 그 거대한 포효 아래 뒤틀리기 시작했다.
흑룡, 아뮤르타스가 베이징에 당도한 것이었다.
흑룡과 불사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