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08화.
나의 도발에, 시퍼런 아이스 밴시, 레이첼의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새파랗던 안면이 혈색이 좋아졌다고 착각할 만큼 붉게 물들고, 레이첼은 참았던 숨과 함께 엄청난 굉음을 토해냈다.
“역시 네놈이렷다···! 왕의 장대한 계획을 엉망으로 만든 녀석이이이이!”
듣는 것만으로 오한이 치밀어 오르고, 온몸이 경직시키는 언데드 밴시의 오리지널 스킬. ‘밴시의 비명’.
이에 상대적으로 담력이 약한 남궁연은 눈에 띄게 몸을 떨며 굳었고, 흑태자 역시 놀란 눈을 떴다.
-텁!
이윽고, ‘비명’을 신호탄 삼아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오는 데스나이트 하나.
다만, 탐색전이나 벌이고자 단 한 명의 데스나이트만을 보낸건 명백한 실수였다.
높은 얼음 궁궐에서 추락하며, 정확히 나를 향해 휘둘러지는 거대한 데스나이트의 대검.
이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두 명의 검사였다.
-스릉!
-스르릉!
언제나 내 옆을 지키던 철혈검희 이서영.
그리고 엘프의 세뇌에서 벗어난 검왕 류자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눈부신 오러를 번뜩이며 검을 뽑았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의 빠른 발검(拔劒).
-콰득! 드드득!
맞부딪힌 대검과 류자키의 장검이 기괴한 소음을 내뿜었다.
“쿠우우오오!”
힘겨루기에 돌입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근력을 가진 데스나이트는 힘으로 류자키를 짓누르려 들었다.
다만,
“짖지 마라. 썩은 내가 진동하니까.”
만개하는 개나리 꽃잎.
새하얀 백룡도의 검광이 데스나이트의 손목을 관통했다.
-투욱!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데스나이트의 대검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놈의 울퉁불퉁한 갑주와 썩어 문드러진 손목째로 말이다.
“쿠어억···!?”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발성 기관이 뭉개진 데스나이트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고, 놈의 목에는 새하얀 검신을 가진 백룡도가 닿았다.
“입 다물고, 움직이지 말라고.”
일순간에 데스나이트를 제압해낸 두 검사.
이서영은 녀석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검에 힘을 주었고, 사람의 말을 잃었을 뿐 이성이 남아 있는 데스나이트는 그녀의 말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이윽고 나는 멈춰선 그대로 고개를 들어 얼음 궁궐 입구에 선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교육이 더 필요한가.”
-콰득!
나의 여유로운 태도에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이 간단한 도발에 열이 뻗친 것인지.
레이첼은 이를 악물며 기괴한 소리를 내더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또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꿰에에에에에에엑!
거대한 울림과 함께 허공에서 맺히는 사람 머리만한 눈꽃 결정.
다만, 그 크기와 강도는 일반 상식을 가볍게 웃돈다.
마치 칼날로 이루어진 바퀴와도 같이 눈꽃은 레이첼이 내지른 바람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그 구조는 무척이나 날카로워 보였고 그 수는 무시무시하게 많았다.
“죽어어어어!”
고함과 함께 퍼져나오는 혹한의 폭풍.
이내 칼날과도 같은 수십의 눈꽃 칼날은 그 폭풍을 동반해 쇄도했다.
-챙! 채재쟁!
얼핏 눈사태와도 같은 새하얀 전경이 펼쳐진다. 허나 문제가 있다면 들려오는 소리가 섬뜩한 칼날이 뒤엉킨 날붙이의 굉음이었다는 것이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사지가 분쇄될 기세였다.
혹 물리적인 타격을 어떻게 버텨내더라도 전신을 일순간에 얼려버릴 혹한이 기다린다.
마력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탈출구가 없는 ‘절대영도’ 레이첼의 비기.
허나, 그 화려한 외관에 시선을 빼앗김과 동시에 이젠 본때를 보여주겟다는 듯 고위 리치들과 나머지 여섯의 데스나이트 역시 땅을 박찬다.
눈꽃 칼날의 폭주와 그 배후에서 막대한 에너지 덩어리를 형성하는 리치들.
이윽고 집채만 한 대검을 휘두르는 데스나이트들이 삽시간에 눈앞으로 달려드는 순간,
“하아···.”
나는 다만, 한숨을 길게 내쉴 뿐이었다.
-파직!
찰나,
번개가 튄다.
허공으로 쏘아 올려 둔, 완벽한 제어를통해 가장 이상적인 균형을 이룬 뇌옥(雷玉).
그 바닷물과도 같은 광택의 뇌옥에 내 손끝에서부터 발로한 번개가 닿자,
-쿠르르릉!
시야에 닿는 모든 세계가 점멸했다.
혹한이 리치들의 죽음 마법이, 데스나이트의 발돋움이 뭐 어쨌단 말인가.
전류는··· 번개는, 언제나 찰나를 흐른다.
일순간에서도 다시 짧은 ‘틈’.
뇌옥은 바로 그 ‘틈’을 걷는 자들과 대등한 전투를 벌이기 위해 전생의 내가 고안해낸, 나만의 전투방식이었다.
뇌옥은 응축되고 거기서 또다시 농축된 순수한 전격을 품은 채 신호를 받아 날아간다.
허공에 맺혀 있던 열두 개의 뇌옥.
왜 내가 사전에 열두 개를 준비해 뒀겠는가.
일곱의 데스나이트와 넷의 고위 리치.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아이스 밴시, 레이첼까지 열둘.
절정의 무인들이나 보는 ‘틈’을 타고 쏜살같이 나아간 시퍼런 뇌옥은 목표했던 ‘적’에게 접근한 순간, 순수한 전격으로만 이루어진 폭발을 일으켰다.
-콰지지지지지지직!
-치이이이익!
‘제어력’으로 구축한 원형의 공간에 갇혀 날뛰는 사나운 번개.
시퍼런 뇌광은 날뛰고, 그 제어력의 구에 갇힌 빌런은 일순간에서도 다시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 속에서, 마흔 번이 넘는 낙뢰를 맞는 것이다.
전격 방출계 헌터의 고질적인 문제.
통제 불능의 전격 마력을 일말의 낭비 없이 활용하기 위한 나만의 기술이 바로 뇌옥이었다.
그런 폭발이 쉼 없이, 끝없이 휘몰아치고나면 이윽고, ‘1초’는 흐른다.
-턱, 터더덕.
-터덕!
‘순간’.
마력을 모으던, 대검을 들고 달려들던 고위 언데드들은 우수수 바닥으로 추락했다.
“컥···. 커걱···!”
“쿠엑, 에에엑!”
비명은 그제야 터져 나왔다.
바닥에 엎어진 언데드들은 자신이 어째서 추락한 것인지 이해조차 못 했다는 표정으로, 아직도 육신에서 날뛰는 뇌옥의 여파에 전신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시 묻지.”
이에 그들에게 다가간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직도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놈 있나.”
지난번 ‘악마, 그레모리’의 토벌 보상.
대체 얼마나 엄청난 보상을 내놓을 심산이기에 사흘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집계 중’인가 했었는데···.
나는 한국에서 출국하기 직전에야, 상상 그 이상의 보상을 수령할 수 있었다.
그 보상의 실체는 경험치였다.
허무하다고 하면 허무하고, 좋게 받아들인다면 이보다 더 좋은 보상이 없다 여겨지는 ‘경험치’.
그건 분명 담백하기 그지없는 보상이었지만, 불사왕과의 만남을 앞둔 그 시점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 없는 함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본래 20대 초반의 헌터가 30레벨을 달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까무러치고도 남을 일이다.
철혈검희 이서영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며 1세기를 살아왔던 데스나이트, 케일른이 40레벨 후반이었던 것을 기억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허나, 악마 토벌을 통해 받게 된 경험치의 양은 또다시 나의 예상을 아득히 웃돌았다.
결과, 그 누구에게도, 하물며 같은 한국의 지원군에게도 알리지 않은 나의 레벨은···.
무려 45레벨이었다.
2년에 한 번 레벨업을 달성해도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 ‘Lv. 40’의 라인에서 다시금 다섯 번의 레벨업을 더 이룩했다는 소리.
그야말로 최상의 스팩업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수신의 사도’로 재각성으로 이미 한 차례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던 ‘생체전기량’과 ‘제어력’.
그런데, 단번에 13레벨의 상승을 이룩해낸 지금, 나는 마치 살아있는 드래곤과도 같이 뇌옥(雷玉)을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Lv. 45.
[생체전기량]: 210000Wh ▶ 580000Wh
[제어력]: 4050Wh ▶ 9700Wh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50레벨에 도달한 자들을 인류는 헌터의 범주를 벗어난 ‘절대자’라 칭해왔다.
1대 성녀 다나 메이어가 그러했고, 프리드리히 파울라스가 그러했으며, 다름 아닌 ‘천마’가 그랬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절대자’의 경지를 눈앞에 둔 위치까지 강인해졌다.
만일 ‘휴거교’가 발악을 하듯, 악마 소환을 행하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자칫 그 악마 그레모리를 토벌해내지 못했더라면······.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저스티스 가디언즈’를 죽이려 했을 것이다.
아주 짧은 틈이라도, 기회만 있다면 그로 인해 어떤 불이익을 당하게 되건 그들을 공격했을 거라는 소리다.
그만큼 ‘저스티스 가디언즈’는 강인한 빌런 집단이니까.
허나, 45레벨에 도달한 현재는 이야기는 달라졌다.
달라도 아주 많이 달라졌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정신이 들게 해주겠다. 자, 말해봐라. 교육이 더 필요한가?”
‘뇌옥’을 다룰 수 있게 된 시점에, 이미 ‘저스티스 가디언즈’와 같은 고위 언데드 열, 스물은 어렵지 않게 척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아···. 아니오! 다, 당신의 말을 듣겠소. 당신이 우리들에게 하려 했다는 제안···! 그걸 듣고 싶소!”
“쿠에에엑!”
“퀘에엑!!”
아이스 밴시 레이첼과 함께, 언데드의 실체를 드러내고도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맴버는 딱 한 명이다.
‘불사왕’이 전생에 이끌던 죽음 군단의 2번대 참모. ‘볼프 루이스’.
그 리치는 허공에 맺힌 마력을 떨어 발성기관을 대신하는 것으로 내게 자신의 의사를 전해왔다.
“크으으으으···!”
오직 마력 저항력이 강한 아이스 밴시, 레이첼만은 아직도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었지만, 좀 전과 같은 얼음 폭풍을 일으킬 여력은 없어 보였다.
“그래. 이제야 좀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된 것 같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엎어진 채로 고개만 들어 올린 언데드들과 마찬가지로 한국과 중동 그리고 ‘암행’의 대원들이 경악하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스티스 가디언즈’역시 그러했겠지만, 나의 일행들 역시 내가 이토록 손쉽게 이들을 제압해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원래 비장의 수는 숨겨야 하는 법 아닌가.
그 재미있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가도, 다시금 표정을 굳히며 ‘자리’를 마련했다.
본격적인 ‘흑룡 레이드’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허나, 나는 지금 이 시점이 이번 ‘전세계 합동 레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국면임을 확신했다.
***
전생의 나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던 적이 있었다.
‘절망적’이라는 말이 그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흑룡 레이드가 막을 내렸다.
‘세계 헌터 랭킹’이라는 이름의 ‘숙청 명단’에 이름을 올린 헌터들은 하나, 둘 새벽의 이슬로 사라져가고, 본색을 드러낸 ‘불사왕’으로 인해 세계가 들썩거리던 바로 그 시점에,
나는 ‘이준학’ 준장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었다.
-어째서 ‘불사왕’이 흑룡, 아뮤르타스의 레이드를 제안했을까.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네.
굳이 길게 언급한 적은 없었지만, 전생에도, 현생에도 벌어지고 있는 이 ‘전세계 합동 레이드’의 제안자는 중국의 신정부, ‘마천신교’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흑룡 레이드를 제안했던 자는 다름 아닌, ‘불사왕’ 프리드리피 파울라스.
그리고 그의 속내는 알다시피, 아뮤르타스의 사체를 권속화해 자신의 ‘본 드래곤’으로 만드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우린 어째서 그 ‘천마’가 소림사의 비술로 다시 흑룡을 잠재울 수 있었음에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그 의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었다네.
처음, ‘전세계 합동 레이드’를 제안한 불사왕.
허나, 이준학 준장은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천마’에게도 어떠한 말 못 할 의도가 있었음을 의심했고, 어떤 놀라운 물건을 찾아냈다고 했다.
당시의 내 대답은 이러했다.
-청렴결백한 ‘마천신교’라 할지라도 그 근간은 흑도 아닙니까. 흑도가 정점에 섰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정부의 굳건함을 과시하려 했던 것 아니었을까요.
적어도 ‘절반은 맞았다’는 대답을 기대하고 했던 말이었으나, 기이하게도 이준학 준장은 고민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완전한 오답이라는 의미였다.
그럼 천마의 의도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 묻자.
전생의 이준학 준장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한참을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이건우 대위. 반로환동에 대해 아는가.
반로환동.
나이가 있는 고수가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이루어, 육신이 어려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이준학 준장은 이어서 말했다.
-흑룡 레이드에서 ‘불사왕’의 배신으로 죽은 ‘천마’의 비밀 서재에는, 기이할 만큼이나 ‘반로환동’에 관한 서적이 많이 있었네.
손때가 수없이 많이 묻어 있는 ‘반로환동’의 서적들.
그만큼 ‘반로환동’에 관심이 많았던 천마는 돌연 다른 것에 손을 댄다.
표면은, 그저 열심히 무공을 탐닉하는 무인의 자세가 엿보이는 서적들로 도배가 되어 있던 ‘천마의 비밀 서재’.
-...허나, 서재를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무공’에 대한 서적들은 온데간데없고 ‘마공’을 연구하는 서적들만이 가득했지. 그것도···. 천마 스스로 엄격히 금했던 타인의 내력을 갈취하는 ‘마공’을 말일세.
본디 마천신교는 ‘마공’에 뿌리를 둔 집단이다.
그런 마천신교에서 그러한 서적이 많다 해서 이상하게 여길 것은 없겠지.
그러나 역사를 뒤엎은 지상최강의 헌터, ‘천마’는, 자신이 마천신교의 정상에 오른 뒤 인간의 본질을 뒤바꾸는 ‘마공’을 모조리 금했다.
그러고는 ‘구 무림맹’에서 사용되던 무공들을 흡수해 육체와 정신에 해롭지 않은 새로운 ‘마공’을 창시했던 것이 지금의 천마다.
그런 천마가 ‘비밀 서재’에서는 비밀리에 ‘마공’을 연구해왔다?
하물며, 타인의 내력을 갈취하는 최악의 마공을?
인류에게 기억된 이미지와 사뭇 다른, 뒷이야기를 듣게되자 자연스레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다만, 그런 당혹감은 오래가지 않았는데···.
-즉, 선량함의 탈을 쓴 천마도, ‘불사왕’과 같은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겁니까? 준장님.
바로 전생의 내 눈앞에는 ‘불사왕’이라는, 살아 숨쉬는 ‘배신의 역사’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죽은 이상,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겠지. 다만, 생전의 천마는 타인의 내력을 빨아들이는 흡정마공(吸精魔功) 끈질기게 연구한 결과···. 이를 거대한 법진으로 행하는 비술을 개발했었다네······!
한정된 공간, 가까운 거리 따위의 제약이 없는···.
법진 내부 모든 생명체의 내력을 빼앗아 자신의 생명력으로 치환하는 무시무시한 마공.
-만일 ‘천마’가 ‘불사왕’의 함정에 빠져 명을 달리하지 않았었다면···? 그 법진을 레이드 후 기진맥진한 헌터들에게 사용했다면···?
‘대체 왜’라는 질문은 나오질 않았다.
‘반로환동’의 탐구가 ‘흡정마공’의 연구로 이어진 것만으로도 그가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전생, 그 시점에서는 이젠 죽어 없던 천마와 불사왕의 손에 멸절당한 마천신교.
질문은 있지만, 명쾌한 해답을 내어줄 자는 없다.
당시에는 ‘천마’가 만들었다는 ‘흡정마공진’을 저항군에서 활용하기 위해 튀어나왔던,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했던 그 짧은 대화가 현재를 바꾼다.
이윽고,
나는 화톳불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불사왕의 종복, ‘저스티스 가디언즈’를 바라보았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꺼낼지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듯한 맹한 표정.
이에 주저 없이 본론을 꺼냈다.
“너희는 천마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지.”
“그, 그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논할 줄 몰랐는지 아이스 밴시 레이첼은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허나, 나는 그런 모습을 느긋하게 기다려줄 마음이 없기에 곧바로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쓸데없이 말 돌릴 것 없다. 다 알고 있으니. 그리고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제안은 너희에게도 절대 나쁜 이야기가 아닐 거야.”
“그, 제안이란······.”
“천마를 죽음. 너희와 불사왕이 이번 흑룡 레이드에서 이루려 하는 그 비원을, 나 역시 원하고 있다는 소리지.”
배신과 배신이 판치는 이 망할 ‘전세계 합동 레이드’에서 단독으로 우월한 위치에 서기 위한 전제조건은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복잡하게 뒤엉킨 이해관계를 모조리 파악하는 정보력.
그리고 이 ‘합동 레이드’에서 나 이상의 정보력을 갖춘 존재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기필코, 이 어지럽게 뒤엉킨 혼돈의 실타래를 풀고 배신자의 배신자가 되고 말 것이다.
배신자의 배신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