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06화.
‘정의의 편’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불의를 그냥 지나칠 수 없고, 부조리한 세계를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건다.
‘불사왕’과 그의 종복인 ‘저스티스 가디언즈’는 수십 년씩이나 자신들에게 그런 이미지를 덧씌워왔다.
모든 건,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이번 흑룡 레이드는 시작일 뿐이다.
‘정의’로서 절대적인 위치를 확보한 그들은 전생에도 온갖 더러운 배신을 일삼으면서도 그 이미지 하나로 의심을 피했다.
그렇게 죽이고, 죽이고, 죽여.
헌터 랭킹에 이름을 올린 모두가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불사왕은 서유럽을 집어삼키고, 저스티스 가디언즈는 동유럽을 불구덩에 빠뜨린다.
그렇게 본색을 드러낸 그들을 막을 자는, 이미 세상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질 않았으니까.
허나, 너무 큰 그림을 그리는 도화지는 항상 쉽게 찢어지는 법.
그들의 본색을 세상 그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나는···.
“진군하라!”
S급 헌터 레이첼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저 말을 토해내도록 유도해냈다.
레이첼의 대대적인 선언,
그러자 그녀를 필두로 한 ‘저스티스 가디언즈’. 이윽고, 유럽 연합의 모든 헌터들이 진군을 개시했다.
북부의 미노타우로스를 척결하기 위해 대군이 움직일 때도 충분히 멋진 광경이라 생각했는데, 멋들어진 기계화 슈트를 착용한 유럽 연합의 대군이 움직이자 더 장관이었다.
-철컥! 철컥!
등 뒤에 부착된 엔진이 불을 뿜으며, 웬만한 전차부대보다 더 빠른 속도로 6천 이상의 유럽 연합군은 나아간다.
물론, 맨 앞에 서 있는 레이첼의 얼굴은 죽상이었지만···.
지가 죽상이건 말건 어쩔 텐가.
지금 이곳에서 진군하지 않았다간, 세기의 헌터이자 최강의 무림인인 천마의 눈 밖에 날 텐데.
‘천마’는 ‘불사왕’이 그 누구보다 신경쓰는 경계대상 1호다.
3가지 <업적>으로 자기 자신을 단련한 ‘천마’는 ‘불사왕’과 마찬가지로 상식 밖의 존재이니 말이다.
뒤통수를 치며 세계 각국의 헌터를 몰살시키려 한다, 그런 말을 떠들긴 많이도 떠들었지만,
사실 이 ‘흑룡 레이드’에서 불사왕이 품은 진짜 목표는 다름 아닌 ‘천마’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 ‘천마’를 함정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다름 아닌 ‘레이첼’.
바로, 벌써 지평선의 경계까지 나아가고 있는 그녀였다.
“하···! 네놈은 이몸을 몇 번이나 더 놀라게 해야 만족할 셈이냐.”
그렇게 유럽 연합군의 진군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내게, 나와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단 흑태자 칼레드는 말을 걸어왔다.
“흑태자님은 처음에 있는 데로 화를 내셨으면서 말이죠.”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대인이 그런 사소한 일에 얽매이는 것은 좋지 않다.”
“훗, 그렇습니까.”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칼레드에게 작은 미소로 화답했고, 그는 고개를 연신 위아래로 끄덕이다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할 계획이더냐. 유럽 연합군이라 해도 결국 1만에 미치지 못한다. 후방을 지원할 테냐? 혹은 측방? 최소한 우리 역시 이대로 태화궁에 남아 있을 수는 없겠지.”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과 함께 내 의견을 기다리는 흑태자.
지난번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가 대화를 주도하려는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의 그는 전적으로 내 의견을 따르겠다는 분위기였다.
그간 내가 해온 일들을 하나, 둘 조사하며 과거 이상의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일까.
뭐,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만, 어차피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요. 저희는 저 선봉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따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따로 처리해야 할 일이라···?”
의아한 표정의 흑태자.
나는 그런 그에게 쪽지 하나를 품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이 문양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크게 입을 벌린 도롱뇽.
거기에 거대한 날개, 많은 뿔이 그려진 문양이었다.
“이건···.”
예상외의 등장이라는 듯 흑태자는 놀라고,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용마교라는 놈들이죠. 이들 역시 이번 레이드에서 ‘불사왕’과 손을 잡은 빌런 집단이거든요······. 부탁드린 물건은 다 가져오셨죠?”
“그래. 그런 거였나. 외부 유통을 철저하게 막고, 유럽 연합에서만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독일계 기계화 슈트···.”
“예. 그겁니다.”
“네놈이 어째서 그런 묘한 물건을 암암리에 입수해 달라 했는지 몰랐는데, 이젠 이해가 조금 되는구나.”
그런 말을 하는 흑태자는 이미 눈앞의 코미티가 기대되어 미치겠다는 관객의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흑태자에게 피식 웃어 보이며 출국 직전 이준학 준장에게 직접 건네받은 ‘암행’의 호출기에 손을 얹었다.
“흑태자님이 무엇을 기대하셨건, 그거보다 조금 더 재미있는 일이 시작될 겁니다.”
***
진군을 거듭한다.
베이징으로부터 흑룡의 레어까지의 거리는 엄청나다.
허나, 세계에서 마공학으로 정점에 선 독일은 이번 흑룡 레이드를 위해, 자신들의 기술력의 정수인 ‘기계화 슈트’를 모든 유럽 연합의 헌터에게 보급해주었다.
-위이이잉!
그저 마력을 조금 담아 땅을 박차는 것만으로도 등 뒤의 엔진이 불을 점화하고 그 추진력은 헌터들의 몸을 삽시간에 앞으로 향하게 한다.
엄청난 기술력으로 무장한 최첨단 기계화 부대.
그렇게 6천이 넘는 유럽 연합군은 동이 채 트기도 전에 남서부 인근이 도달할 수 있었다.
흑룡의 영향으로 생명이 자라나지 않는 불모지, 남서부.
허나, 그곳은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었지 게이트를 나와 갈 곳을 잃은 ‘몬스터’에게는 살아가기에 그보다 더 알맞은 환경은 없었다.
그렇게 세계 각지에서 모인 몬스터.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가 선발대인 유럽 연합군를 마중해준다.
그 종류는 고블린에 오크, 놀에 하피 등 셀 수 없이 많았고, 그렇게 어지럽게 뒤엉킨 몬스터들은 매분 매초, 예상 밖의 전술을 구사하며 유럽 연합군을 파고들었다.
-타다다다당!
“똑바로 하라고! 영국놈들!”
“닥치고 앞이나 제대로 막아! 무능한 독일 놈들이!”
“뭐 이 새끼야? 니들이 입은 슈트가 얼마짜린 줄 알아?!”
“아이고, 그래! 슈트 하나는 잘 만들었네. 슈트 하나는!”
허나, 6천 이상의 유럽 연합군은 그 압도적인 몬스터의 공세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흑룡 레이드’에 선발된 것 자체가 그 능력을 검증받은 헌터라는 의미였고, 숱한 경력과 강한 마법 거기에 최상급 마공학 슈트까지 있으니 일반 몬스터들은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한 것이다.
서로에게 욕지거리를 날리면서도 여유롭게 밀려드는 야생 몬스터들을 뚫고 ‘길’을 만드는 유렵의 연합군.
이를 멀찍이서 바라보던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차 해치를 닫고 내부로 들어왔다.
허나, 여유롭고 태평한 밖과 달리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핵심 맴버들로만 구성된 내부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레이첼!”
“왕께서는 너의 경거망동을 결코 두고 보지 않으실 거다!”
레이첼이 전차 내부 간이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기도 전에 죽상으로 소리를 지르는 다른 헌터들.
그러나, 보는 눈이 없는 이곳에선 레이첼 역시 곧장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씨발! 그럼 나보고 뭐 어쩌라고! 그럼 그 상황에 유럽 연합은 천마가 뭐라 씨부렁거리던 진군하지 않겠다고 뻐길걸 그랬나?!”
“그래도 진군을 해선 안 됐지! 어떻게든 말을 돌려서!”
“돌려서 뭐! 이 답답한 구울 거렁뱅이들아. 머리에 뜨거운 피가 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법도 잊었냐? 그렇게 신뢰를 다 잃고, 어떻게 천마를 함정으로 유도할 건데!”
진군을 늦추는 것만큼이나 중요했던 그들의 임무가 바로 ‘천마’의 유도이다.
민초의 죽음을 극도로 꺼리는 그 성품을 역이용해, 불사왕께서 이 땅을 밟으시기도 전에 모든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맴버가 합심해 그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 두는 것.
그것이 ‘저스티스 가디언즈’가 맡은 제1의 목표였다.
그렇게 밖의 병사들이 어떻게 싸우건,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며 시비나 걸기 바쁘던 전차 내부의 인원들.
-탕!
허나, 주저 없이 쏘아 올린 한 발의 총성이 그들 모두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이미 시작된 ‘진군’에 토를 다는 것은 그 정도로 하시고, 이 일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논해야 하오.”
그는 ‘독일’의 대표로서 이곳에 자리한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일원, 볼프 루이스였다.
‘불사왕’의 손에 언데드화가 되고도 제대로 이성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맴버 중 하나.
그는 그나마 다혈질인 레이첼 보다 믿음직한 자였기에 저스티스 가디언즈는 일동, 흥분을 가라앉혔다.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이에 레이첼이 격노를 속으로 삼키며 묻자, 볼프 루이스는 품에서 어떤 물건을 꺼냈다.
그건 게이트가 출몰하기 구시대에서나 쓰였다는 일본계 기업의 핸드폰.
“직접 그들에게 따지거나 묻는 수밖에···.”
허나, 먼 과거처럼 통화를 걸기 위한 도구는 아니었다.
저 핸드폰은 일본 땅을 점거한 엘프들의 손에 의해, 독특한 ‘혈속성’의 주파수를 송수신하게 된 ‘성역의 초대장’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하아···.”
그것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흘리는 레이첼.
의식을 통째로 날려 ‘성역’이라는 신비로운 공간으로 향하게 만드는 물건.
그 물건 자체는 그녀로서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지만, 그 너머에서 만날 ‘광신도’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인상이 찡그려지는 것이었다.
“그래. 알았어.”
-삑!
번호를 입력할 것도 없이 통화버튼을 꾹 누르고, 그것을 귀에 가져다 대는 레이첼.
그러자 삽시간에 그녀의 의식은 허공에 붕 떠올라 어디론 가로 날아갔고 이내 눈을 뜨자, 눈앞의 모든 풍경이 격변해 있었다.
거대하다 못해 압도적인 크기의 성당 구조물.
그리고 그 성당에는 엄청난 수의 ‘엘프’들이 앉아 있었다.
창백하다 못해 몸속의 혈관이 다 보이는 피부 그리고 피처럼 붉은 눈동자.
그들은 다름 아닌, 현 일본 정부를 송두리째 노예화하고 그들을 이용하며 침략을 진행하는 엘프들의 상위 개체, ‘블러드 엘프’가 분명했다.
-약속의 시각까지는 아직 멀었을 텐데?
그때, 앉아 있던 엘프 중 정중앙에 앉아 있던 놈이 입을 움직이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태평하다 못해 세상만사에 초연한 어조로 말이다.
그리고 그 같은 반응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레이첼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잡소리는 됐고! 이 씨발 새끼들아! 니들이 뭔데 일을 망쳐! 앙?!”
-그대가 무엇에 이리도 격노하는지, 우리 역시 잘 안다. 허나, 우리 흡혈종의 권속들은 결코 이번 일과 관련이 없음을 주장하지.
“...주장. 주장해!? 아이고 씨발아 주장하면 끝이야? 네놈들이 미노타우로스들을 레어 밖으로 이동시키는 바람에 3만 5천의 헌터 군단에 전부 움직여버렸는데 관련이 없음을 주장 하셔요? 응?!”
겉으로는 눈앞의 이건우를 향해 한없이 의심의 시선을 던지던 레이첼이었지만, 솔직히 그녀로서도 이번 일은 도대체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본래 그 불같은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눈앞에 보이는 모든 대상에게 의심의 시선을 던지기로 했었다.
-별수 없다. 정말로 우리 고결한 ‘엘프’들과는 무관계한 일이니.
“이 씨발아 그런다고 진군한 군대가 다시 모이냐? 대책을 내놔야지 개새끼들아!”
-그대들이 고안한 계획이었다. 우린 그대들이 조력을 바랐기에 전사들을 투입했을 뿐. 그 외의 일은 우리 엘프들의 소관이 아니다.
-촤라라라라라라락!
블러드 엘프가 무표정하게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 그들의 머리 위에서 무수히 많은 얼음 덩어리들이 생겨났다.
그 정체는 엄청난 크기의 고드름.
바로 수속성 마법의 대가, ‘절대영도’의 레이첼이 만든 날카로운 얼음 창이었다.
레이첼은 더 물러날 곳도 없다는 듯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이건 어딜 봐도 니들 흡혈박쥐들이 자랑하던 ‘권능’의 형상인데, 니들은 뭐가 그렇게 당당해. 당장 전부 죽고 싶어?”
-감히 이 ‘성역’에서 흡혈종의 은총을 받은 우릴 협박하느냐?
“성역이라고 해봤자 능력치가 2배, 3배 상승하는 게 고작일 텐데···. 니들이야 말로 헌터 랭킹 12위인 나를 너무 물로 보는 거 아니냐?”
이건우가 수놓은 불신의 씨앗.
그 형체도 뭣도 없던 씨앗은 현재 분명한 모습을 가지고, 서로 다른 목표를 위해 뭉쳐 있던 ‘빌런집단’에게 기능하기 시작했다.
‘블러드 엘프’와 ‘레이첼’은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서로를 향해 날붙이를 휘두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휴거교와 유럽 연합, 그 둘을 제외한 또 하나의 빌런 동맹이 기다렸다는 듯 ‘성역’에 그 모습들 드러냈다.
“저스티스 가디언즈 네 이노오오옴!”
하늘에서 뚝 떨어지며 비명과도 같은 함성을 토해내는 자.
붉은 핏줄기를 사방에 흩뿌리며 튀어나온 그자는 머리에 파충류형 몬스터의 외피를 투구처럼 뒤집어쓴 기괴한 행색의 남자였다.
그리고 그 괴인의 투구에는 익숙한 문양 하나가 그려져 있었는데······.
입을 벌린 도롱뇽,
거대한 두 날개와 수많은 뿔.
“용마교의 교주···?”
그 정체를 단번에 알아본 레이첼은 두 눈을 부릅뜨며 중얼댔지만, 그에 반해 용마교 교주는 눈에 뵈는 것이 없는지 소리를 빽 지르며 레이첼에게 달려들었다.
“감히··· 감히···. 더럽고 추한 언데드 무리 주제에 우리 용마교를 배신해에에에에!”
“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이 미친놈은 또 뭔 소리야!”
이에 레이첼은 갑자기 튀어나와 ‘배신’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용마교주에게 집채만 한 얼음 덩어리를 날렸다.
닿자마자 얼어붙는 한기에 전신이 새하얗게 물들면서도 쉼 없이 입을 놀리는 용마교주.
“우릴 배신해!?”
“역시 더러운 언데드와 손을 잡는 게 아니었다!”
“신성한 용을 배반한 그 죗값을 이 교주의 손으로 치르게 해주겠다!”
흰 얼음에 들러붙어 옴짝달싹 못 하면서도 계속해서 입을 나불거리는 용마교주.
헌데,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레이첼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마교는 좋게 말해 거짓이 없고, 나쁘게 말하면 원시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머저리 같은 원시인 집단이다.
그런 놈들이 무언가 노림수를 품고 ‘저스티스 가디언즈’가 자신들을 배반했다고 저리 떠들어 댈 리가 없는 것이다.
이는 즉, 실제로 용마교의 은거지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소리가 된다.
하물며, 보자마자 용마교가 ‘저스티스 가디언즈’에게 분노하게끔 일을 꾸며서······.
‘바로 몇 시간 전, 우리에게는 휴거교를 의심하게 할만한 일이···. 그리고 지금은 용마교가 우리에게 분노할 만한 일이 터졌다고···?!’
거기까지 생각하자 섬뜩한 무언가가 레이첼의 척수를 쭉 훑고 지나갔다.
어딜 어떻게 봐도 너무 형편 좋게, 타이밍 좋게 분열을 조장할 만한 사건이 터진 것 아니던가.
불안함에 레이첼은 현실의 몸을 움직였다.
저 간악한 ‘블러드 엘프’들의 도움 없이는 나갈 수 없는 이 ‘성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막대한 마력을 들이부어 현실의 육체를 강제로 움직인 것이다.
-콰직!
현실에서 눈을 뜬 그녀의 앞에, 새하얗게 얼어붙은 ‘핸드폰’이 보였다.
-후우우우웅!
‘성역의 초대장’을 부수며 강제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이윽고 레이첼은 어지러운 머리를 짚고 주변을 쓱쓱 둘러보는데···. 분명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맴버들로 가득 차 있어야 했을 전차 내부가, 텅 비어 있었다.
“다 어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뉘어 있던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드드드드득!
엄청난 소음과 함께 사방이 강철로 막힌 전차가 구부러지며 그녀의 몸은 큰 부유감에 휩싸였다!
“뭐, 뭐야?!”
-싸아아아아!
S급 헌터 레이첼은, 냉기 형태를 가진 자신의 마력을 반사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기형적으로 움직이던 전차가 정지했고, 레이첼은 이어지는 기현상에 의이한 얼굴로 해치를 열어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데···.
-쿠아아아앙!
-타다다당!
울려 퍼지는 함성.
터져 나오는 총성.
어째서인지 전차 밖의 풍경은 그냥 쳐다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아비규환에 휩싸여 있었다.
6천을 넘기는 유렵 연합군.
허나, 그 연합군의 행렬을 전방과 측면, 후방에서 타격을 가해오는 무언가들.
고개를 돌려 볼 수 있는 모든 방향에서 각기 다른 공세가 날아들고 있었다!
“저, 전방에 미노타우로스 군단이 또 몰려듭니다! 수, 수는 어림잡아도 천 이상!”
“아아아악! 미, 미노타우로스가 너무 많습니다!”
현재 유럽 연합군의 위치는 아직도 레어에 도달하려면 한참이 더 남았다.
허나, 북부에서 그랬다는 것처럼···.
허공에서 툭, 툭, 떨어져 내리는 거대 마수형 몬스터, 미노타우로스.
그런데 마치 비가 내리듯, 그 수가···. 정신이 나갈 만큼 많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레이첼은 이미 머리가 아찔해질 지경이었는데, 유럽 연합군의 후방과 측면마저 ‘용마교’의 문양기를 높게 들어 올린 괴인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다.
“죽어라, 죽어! 더러운 언데드의 배반을, 우리 용은 용서치 않으리라!”
“용에 대한 그 무례와 치졸한 배반! 우리 용마교는 결코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눈과 코를 다 가릴 만큼 큰 파충류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드러난 입에서는 침을 잔뜩 튀겨가며 소리치는 광신도들.
“뭐야···. 이게···?”
단순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상식을 벗어나다 못해 아예 찢어버린 광경.
레이첼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분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