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04화.
“모일 이들은 모두 모였으니, 정식으로 흑룡 토벌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겠다.”
나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잠깐의 기다림도 없이 회의를 진행하는 ‘천마’.
이내 옥좌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그의 몸이 그대로 붕 떠오르고, 신비로운 인(印)을 맺고 있던 그의 양손에 빛이 반짝였다.
그러자 이 태화궁의 내부 전경은 변한다.
평범한 궁의 형상이 무너지고 드러나는 광경은 다름 아닌 중국의 남서부.
바로, 흑룡 ‘아뮤르타스’의 둥지였다.
흔히 말하길 레어.
한번 수면에 빠지면 수년을 깨어나지 않는 용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성’이었다.
하물며 ‘천마’가 만들어낸 전경은 그냥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
“언제봐도 참 놀랍군···. 여기서 레어까지의 거리가 얼마인데, 손짓만으로 그 형상을 불러들이다니.”
그때, 천마가 일으킨 ‘도술’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흑태자, 칼레드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력을 어떻게 활용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가.
숙련된 마도사조차 천마의 ‘도술’은 분석할 수는 없었다.
그런 신비로운 일을 현실에 현현시키는 것이야말로 3개의 <업적>을 가진 지상 최강의 헌터, ‘천마’의 힘이었다.
“발언하라.”
짧은 읊조림.
천마의 목소리는 나에게 직접 인사를 건넬 때와 같이 태평했다.
“후···. 오전의 사전 회의에 이어서 발언하자면······.”
이에 가장 먼저 운을 뗀 것은 나와도 퍽 인연이 깊은 중동의 대표자, 흑태자 칼레드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디언은 총 세 종류. 흑룡 스스로 창조한 마법 생물, ‘블랙 골램’과 흑룡의 출현과 동시에 나타났다 기록된 미노타우로스 군단···. 그리고 새롭게 확인된 종이 바로 데저트 트롤이었다.”
가디언,
그건 눈앞에 보이는 저 ‘레어’와 마찬가지로 용이 무방비해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마련해둔 몬스터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보통은 한 용에 한 종류의 가디언이 붙는다.
물론 각기 다른 성격, 속성, 형태를 가진 용의 특성상 가디언의 수도 종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보통은 수백에서 수천 정도의 몬스터를 가디언으로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다만, 흑룡 아뮤르타스는 달랐다.
그 괴물은 무려, 소의 상체에 인간의 하체를 가진 신화 속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들의 우두머리, ‘킹 미노타우로스’를 자신의 사역마로 부리며 그 수를 셀 엄두조차 나질 않는 미노타우로스들을 움직였다.
거기에 모든 마법적 데미지를 무효화에 가까운 수준으로 없애버리는 ‘흑룡의 마력’.
그 마력으로 탄생한 마법 생물, ‘블랙 골렘’은 정말 약점이 없는 몬스터로 악명이 자자했었다.
물론, 이미 10년 넘게 저 ‘흑룡’이 잠만 자는 사이 대책은 마련되었지만 말이다.
“사전 회의에서 우리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었지···.”
흑태자는 마치 노래하는 가수처럼 회의장의 중앙으로 걸어 나와 자연스레 나와 한국군을 제외한 이들끼리 진행했던 앞선 사전 회의를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그의 성격상 이런 귀찮은 일에 발 벗고 나설 리가 없을 텐데······.
아마도 새롭게 회의장에 참가한 나를 위한 배려인 듯하다.
-찡긋.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은근한 태도로 나를 향해 윙크하는 흑태자.
‘네놈의 예측이 맞다. 이몸에게 감사하거라.’
분명 들릴 리가 없지만, 나는 순간 흑태자의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그가 솔선수범 이렇게 움직이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렇게 대놓고 내 편의를 봐주었으니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무튼, 사전 회의의 결과는 담백했다.
확인된 세 종류의 가디언.
미노타우로스, 블랙 골렘, 데저트 트롤.
‘프랑스’와 ‘한국’을 제외한 열 개국은 큰 군대를 움직여야 하는 특성상 이미 수일이나 먼저 중국 땅을 밟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수일 동안 이 태화궁에서 시간을 보내던 각국의 리더들은 이미 각 가디언을 담당할 선봉대와 후발대 그리고 비상대기 인력을 선별해둔 상태였던 것이다.
다만, 차곡차곡 쌓아 올리듯 진행된 회의를 갈아 엎어버리는 의견이 등장하니···.
“이제 와서, 뭘 그리 답답하게 하나씩 짚어주고 있는 겁니까. 흑태자. 오전에 있었던 여섯 번째 사전 회의에서, 우린 이미 ‘파울라스 총리’를 기다리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지 않았습니까.”
바로, 유럽 연합을 대표하는 무장 집단,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고위 간부인 레이첼의 의견이었다.
대놓고 트집 잡는 어조에 흑태자는 일순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입을 열었다.
“파울라스 총리에게 모든 가디언을 맡기고 3만 5천의 헌터 군단이 통째로 레어에 들어가자······. 네놈은 정녕 그게 가능키나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냐?”
역시나 각국의 정상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성격을 조금도 굽히지 않는 흑태자.
허나, 다소 공격적인 흑태자의 목소리에도 레이첼은 굴하지 않고 답했다.
“가능하고말고요 ‘파울라스 총리’에게는 12만 5천 7백의 불사 군단이 있죠. 더욱이 그가 사역하는 스카이 타이탄과 거신병들을 소환한다면 우린 병력 손실 하나 없이 흑룡 레이드를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즉, 이런 것이다.
각기 다른 가디언들의 특성에 따라 적재적소의 병력 배치도 이미 끝내두었고, ‘전세계 합동 레이드’의 진행에 큰 틀 역시 정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돌연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주장으로 이 흑룡 레이드 공략대는 그저 ‘불사왕’을 기다려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파울라스 총리 한 명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만?”
“전 세계를 선도하는 총리만이 가능한 일이입니다. 혹 흑태자는, 흑룡과 만나기도 전에 몇천 아니, 몇만에 달하는 사상자가 나오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시는 겝니까?”
물론 겉으로 보이는 말은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발언이 옳다.
어떻게 모인 A급, 준특급, 특급, S급 헌터들로 구성된 3만 5천의 군세가, 고스란히 흑룡의 앞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레이드 성공률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릴 테니 말이다.
그 때문인지 회의장 내부의 대다수는 레이첼의 말에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허나, ‘불사왕’의 정체를 알고 있는 흑태자는 불안할 것이다.
어딜 어떻게 보아도, ‘불사왕’이 자신의 권속들을 소비하며 가디언을 막아줄 이유가 없으니까···.
단 한 명에게 외부 전체를 맡긴다는 건, 그의 배반 하나로 3만 5천의 군세가 고립된다는 소리와 같은 말이었다.
‘그래서였군···.’
흑태자가 어울리지 않게 솔선수범하여 나에게 회의의 현주소를 명확히 알려주고자 노력한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이 흑룡 공략대는 전멸이다.’
흑태자는 여유로운 눈초리로 내게 윙크까지 하면서도, 속마음은 퍽 급박했던 모양이었다.
현황을 제대로 이해한 나는 흑태자가 볼 수 있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입씨름을 벌이고 있던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영국 대표 레이첼은 그런 나를 보고는 눈에 불을 켜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 좋습니다. 새로 회의에 참여한 악마 토벌자의 의견도 들어는 봐야겠지요.”
자, 하고 손바닥을 들어 나를 가리키자 회의장 내부의 이목이 내게 쏠렸다.
“악마의 단톡 토벌자이자, 한국의 대표를 자처하신 헌터 이건우. 말해보세요. 설마 당신도 ‘파울라스 총리’의 능력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저희에게 찬동하시는 겁니까.”
말을 저따위로 하면···.
내가 흑태자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 자체로 ‘파울라스 총리’의 힘을 의심한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참, 어쭙잖은 프레이밍이었다.
허나, 이 회의가 전생과 아주 똑같이 흘러가고 있음을 확인한 나는, 굳이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의견에 반기를 들 필요가 없었다.
“존경하는 파울라스 총리. 저는 언제나 세계인의 선도자이신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님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뭣이?!”
“...에?”
당돌한 나의 대답에 놀라는 표정이 되는 두 사람.
당연히 내가 자신의 편에 설 거라 예상하던 흑태자는 놀라는 것이 이해가 간다만, 정작 내게 그런 같잖은 질문을 건넨 ‘레이첼’은 뭘 그리 대놓고 놀라는 건지.
아무래도 사실상 ‘불사왕’의 신하나 다름없는 ‘저스티스 가디언즈’들도 이젠 어느 정도 내가 그들의 ‘적’임을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쐐기를 박듯 양손을 넓게 펼치며 과장되게 말했다.
“파울라스 총리의 도착은 내일이라고 하셨지요. 당연히 기다림이 옳습니다. 이 세계에서 오직 ‘그분’만이 이 흑룡 레이드를 성공으로 이끌어주실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당연히 자신에게 동조하리라 예견하던 흑태자.
당연히 자신에게 반대하리라 예상하던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레이첼.
서로 다른 의견의 축을 이루던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떠오른다.
그 후로도, 나는 사사건건 파울라스를 찬양하는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했고 거꾸로 흑태자처럼 공략대에서 ‘불사왕’의 입지를 최소화하려는 의견을 전면 부정했다.
매스컴에서 매번 흑태자가 내게 호의적인 의견을 비추어주었기 때문일까.
다들 내가 최소한 흑태자의 의견을 부정하진 않으리라 예상했던 모양이었는지 묘한 표정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 거리낌이 없이 미친 소리를 반복했다.
“파울라스 총리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 의심 섞인 의견을 표방하는 건 그 자체로 중범죄이지요.”
“..?”
“..?”
본래라면 이렇게 쉼 없이 떠들기 전에 입막음을 당했겠지만, 마천신교의 공식 서열 4위를 압도해버린 나를 함부로 꾸짖을 수 있는 자는 없으니 말이다.
나는 적과 아군 모두가 내게 의문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 것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되고 있군.’
이로써 나는 ‘적’과 ‘아군’ 모두에게 혼란을 주는 데 성공했다.
물론 사소한 의구심과 의심 정도에 그칠 작은 ‘혼란’일 뿐이지만, 이로써 나는 바로 오늘 밤 일어날 ‘그 일’에 쉽게 의심을 사지 않을 위치를 확보했다.
어차피 여기서 백날 떠들어도, 이 모든 탁상공론은 현실화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내가 그럴 수 없게 이미 손을 다 써 두었으니까.
‘후후후.’
나는 속으로 끅끅대며 웃었다.
***
전생.
나는 이 ‘전세계 합동 레이드’에 참가하지 못했었다.
당연한 일이다.
당시의 나는 누가 뭐래도 아무 별 볼 일 없는 D급의 ‘전격 방출계 헌터’였을 뿐이니까.
그런 나를 대신해 이 중국 땅을 밟았던 건 다름 아닌, 그 뿌리를 중국에 둔 1등 용병대 ‘황해’와 백귀야행을 필두로 한 협회의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S급 헌터를 둘이나 대동했음에도 관례에 따라 천명의 머릿수를 꽉 채웠고, ‘천마’에게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시작된 회의의 내용은 금일 무려 5시간 동안 지속하던 그 무의미한 탁상공론과 무엇하나 다르지 않았다.
각각 수호자를 상대할 부대를 정해두었으나, ‘파울라스 총리’가 흑룡의 가디언들을 전부 전담해버리겠다는 의견이 먹힌 것이다.
게다가 전생에는, 중동의 대표로 온 자가 흑태자 칼레드가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내일’ 오겠다는 불사왕은 오지 않는다.
회의가 끝난 당일을 포함해도 흑룡의 태동까지는 닷새밖에 남지 않은 촉박한 상황이었음에도 불사왕은 나타나질 않는 것이다.
그렇게 나흘, 사흘을 앞두도록 나타나지 않는 파울라스 총리.
테러리스트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게 그 이유였지만, 그 모든 것이 자작극이었음은 금방 밝혀진다.
물론, 어그러진 흑룡 레이드가 모두 끝난 훗날에 말이다.
오지 않는 총리.
그럼에도 이곳에 모인 엄청난 수의 헌터들이 순순히 그를 기다렸던 건, 그가 세계인을 선도하는 1등의 헌터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였기 때문이었다.
그 신뢰가, 그 무한한 믿음이, 도리어 독이 되었다.
바로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불사왕’은 그 귀찮은 신뢰를 몇십 년간 꾸준히 쌓아왔던 것임을 전생의 우리는 너무 늦게 알았다.
그렇게 이틀, 하루,
이윽고 흑룡의 완전무결한 부활이 예정된 당일, 파울라스 총리는 당도한다.
그리고 놈은 급박한 심리와 불안감을 이용해, 아무런 의심 없이 흑룡의 레어로 각국의 군대를 다 몰아넣고······.
나머지는 흑태자 칼레드의 예측대로다.
최소 A급 이상의 헌터들로만 구성된 대군 그렇게 전멸했다.
그중에는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부협회장이었던 이초희가 있었고, 황해의 용병대장 ‘조성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휴거교’의 영향으로 엉망이 되었던 한국에, 핵심축이었던 S급 헌터가 둘이나 죽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휴거교’는 민간인 학살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며, 테라포밍을 시작했으며 대한민국을 완전히 좀 먹기 시작했다······.
-흑룡의 힘은···. 저희의 상상을 아득히 웃돌고 있었습니다. 수만 명의 헌터들이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수천의 헌터들이 저의 권속이 되면서까지 죽음에서 일어나 싸웠습니다. 결국, 저희는 승리했습니다···!
연이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살짝 흐르는 불사왕의 눈물 한 방울.
이윽고 그의 뒤에서 거대한, 세상에 드리워지는 태양 빛을 모두 가려버릴 만큼의 아주 거대한 ‘본 드래곤’이 고개를 들어 올리고···.
-쿠아아아아앙!
그것이 큰 포효를 내지른 순간···.
우린 ‘안타까운 희생’과 파울라스 총리의 ‘위대한 승리’를 기억하게 되었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것도 새빨간 거짓말.
허나, 우린 믿었다.
파울라스 총리는 수십년간 인류를 위해 헌신하며 신뢰와 믿음을 쌓은 헌터가 아니던가.
‘믿는다, 믿지 않는다.’라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를 믿지 않고선, 인류는 분명 절멸하리라는 ‘공포’가 우리 현생 인류에게 강제로 그를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허나, 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우린 처음부터 놈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뿐이었다.
‘전생’은 그렇게 흘렀다.
그래, ‘전생’은 말이다.
***
그곳은 베이징시의 새벽 거리.
자금성에선 퍽 거리가 있으며 북부로 이어지는 랴오닝과 베이징의 경계선쯤 되는 한적한 도로 한복판이었다.
그곳에서 전신에 새카만 망토를 둘러 모습을 감추고 서 있는 남자, ‘암행’의 수장인 이준학 준장은 며칠 전 이건우에게 직접 들었던 믿지 못할 ‘미래 예지’를 회상하고 있었다.
‘불사왕이···. A급 이상의 헌터 수만 명을 함정에 빠뜨리고, 자신만 살아남아 흑룡을 권속화, 자신의 좌를 넘볼 수 있는 거의 모든 헌터들을 죽이고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세계인의 신뢰와 믿음을 역으로 이용해 자신의 적수가 될만한 자들을 단번에 제거한다니.
믿기 힘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런 생각을 떠올림과 동시에 이준학 준장의 머리 한켠에는 그 일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 이제 와서 의구심을 품어서 무엇하겠나.’
이미 자신은 이건우의 요청에 따라 ‘흑룡의 레어’에 다녀온 상황이거늘.
준장이 자신의 손으로 생존시킨, ‘바티칸의 성녀’가 꾸었다는 첫 예지몽이다.
굳이 이를 의심해서 진실을 규명하기보단, 성녀 특유의 ‘예지몽’을 믿고 다가온 진정한 싸움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함이 옳을 것이다.
-덜그락.
이준학 준장은 큰 안감이 덧대어져 있는 망토에서 묵직한 무게의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작은 ‘오르골’.
그가 알기로는 분명, 휴거교에서 기괴한 현상들을 일으킬 때마다 ‘촉매’ 따위로 사용되던 물건이었다.
‘이걸로······.’
이준학 준장이 정해진 위치에 그 오르골을 고정하는 순간, 그의 허리춤에 달려 있던 무전기에서 작고 낮은 소음을 내뿜었다.
-치직!
들려오는 건, 그의 믿음직한 후임 장교, 김 대위의 목소리였다.
-준장님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에 러시아와의 국경선까지. 모든 설치가 끝났습니다.
“그래. 시작하자.”
그들이 짧은 교신 후 품에서 꺼낸 것은, 영롱하게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작은 물병이었다.
-뽕!
마개를 열고 ‘휴거교’의 신물에 이를 떨어뜨린다.
이어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현상을 이준학은 ‘학자’로서의 눈으로 아주 면밀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누가 감은 적이 없음에도 알아서 굴러가는 태엽.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으나 분명 무언가를 연주하는 오르골.
이윽고···.
밑에서 위로 물방울이 솟아오른다.
한국에서 보았던 풍경과 같다.
‘피’는 허공에서 거대한 원을 형성하고, 그 공허한 원의 내부를 ‘붉음’이 가득 물들이자, 허공에는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단 하나.
눈앞의 기현상은 ‘피’가 아닌 ‘수신의 성수’로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
-쿠우웅!
이내, 그 만들어진 ‘게이트’로부터 무언가.
아주 거대한 형상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것의 상체는 소와 같다.
머리에 달린 뿔과 붉게 흥분한 눈동자까지, 모든 것이 야수에 가깝다.
다만 그것의 하체는 인간과 같아 두 발로 우뚝 선다.
그것은 신화급의 마수이자 특수 위험종으로 분류된, ‘미노타우로스’가 분명했다.
“참, 보고도 못 믿을 수 없는 일이로군. 설마 ‘휴거교’의 기형적인 기술을··· 이쪽에서 사용하게 될 줄이야······!”
흑룡, 아뮤르타스의 레어를 지키는 가디언, ‘미노타우로스’의 군단은 야심한 새벽 중국 본토에 뚝하고 떨어졌다.
설마 했던 흑룡의 선제공격.
이제 헌터들은 결코, 무작정 ‘기다린다’라는 선택을 내릴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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