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103화.
-텁!
그러자 이서영은 미후왕을 죽일 듯 노려보며 검에 손을 올렸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런 그녀를 제지하고는 태연하게 물었다.
“저희의 어디가 지원군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지 여쭙고 싶군요.”
“하! 그걸 말이라고 하나? 타국은 최소 일천의 군사를 파견해주었다. 우리 마교의 용맹한 무인들이 이뤄낼 대업을 돕고자 말이지. 헌데 너희들은···. 도가 지나쳤다.”
“즉, 수가 문제다?”
“그걸 몰라서 묻나?”
나를 노려보는 미후왕의 눈은 당장이라도 불꽃이 일어날 것처럼 이글거렸다.
허나, 나는 그런 그에게 대놓고 조소를 날리며 말했다.
“내가 알기론, 프랑스 역시 단 한 명의 헌터를 지원군으로 약속했을 텐데 아닌가?”
“...네놈은 정녕, 이 다섯으로 그 총리와 동급의 취급을 받길 원하는 건가?”
“솔직히 프랑스 총리급은 아니지. 하지만 이건 약속하지. 나는 장 웨이, 당신을 포함한 마교 일각 200여 명의 무인들을 단신으로 제압할 능력이 있다.”
마천신교를 구성하는 여덟 개의 ‘뿔’ 중 가장 강인한 무인들로만 구성된 집단이 바로 ‘일각’이다.
지난번 한국에 파견되었던 마교의 ‘흑검대’가 바로 그 여덟 집단 중 칠각에 해당하는 이들이었고 말이다.
일각.
그들의 전투력은 한국 내 흔한 헌터군 열 개 대대와 동급이라 평가받는다.
흔히 비교하길 전세계 A급 헌터 랭킹에서도 상위 5%에 드는 실력자들과 맞먹는다 전해지는 것이 바로 일각, ‘마창대’였다.
바로 그런 집단을 향해 나는 대놓고 무식한 도발을 날려버린 것이다.
“푸핫! 무어라? 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
이에 마교의 공식 서열 4위. 미후왕은 입을 크게 비틀며 웃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뒤로 크게 꺾어가며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미후왕.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러자 나를 둘러싼 마교의 헌터들은 일제히 그를 따라 웃었다.
온 사방천지에서 우릴 노려보며 비웃음을 터트리자, 내 군복 끝자락을 쥐고 있던 남궁연이 불안한 듯 손에 힘을 주었고 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그런 남궁연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러자, 미후왕은 다시 입을 열었다.
“네놈의 허무맹랑한 용기는 높게 사마. 허나, 큰형 되시는 우리 대중국에 대한 배은망덕한 그 무례, 필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참···.
배은망덕이라느니, 큰형되시는 국가라느니,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었던 ‘구 무림맹’을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열었다면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구 무림맹’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배은망덕이라니,
그 말은 한국이 마교에게 뭘 받은 적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 아니던가.
허나, 중국은 근 10년, ‘구 무림맹’과 ‘마교’의 전쟁으로 정신이 없어 주변국에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뭘 해준 적은 없었다.
있다면 국내 1위의 용병대 ‘황해’의 창립에 큰 후원을 했던 것 정도?
그런데 그것 또한 부패 이전의 ‘구 무림맹’이 했던 거지 ‘마교’에서 뭔가를 하진 않았다.
즉, 이들은 배은망덕이니 형, 동생을 논할 자격이 애초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런 태도라니···.”
기가 찬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를 위한 말인 것 같았다.
“하! 언제까지 그놈이 그 세치혀를 나불거릴 수 있는지 보자! 그렇지 않아도 장로분들과 각국 대표들은 나와 네놈의 비무를 보아야겠다고 의견을 모으셨던 차였다.”
-휘리리릭!
갑자기 자신의 창을 크게 회전시키며 자세를 바로잡는 미후왕.
놈은 자신의 몸과 팔 사이에 창대를 끼우고는 장을 내게 내밀어 특이한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러니 이 기회에, 이 하늘 같은 선배님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건방진 후배에게 가르침을 주마.”
뭘 저렇게 거추장스럽게 말하는지.
결국, 저 태화궁의 지휘관들과 마천신교의 장로들은 비무를 보고 우리 한국의 지원군을 받아들일지 내쫓을지 정하기로 했다는 것 아닌가.
참, 겉멋만 잔뜩 든 오만한 인간의 표상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미후왕이라니.
흔히 ‘손오공’ 혹은 ‘제천대성’이라 불리는 그 힘을 진정으로 사용하는 헌터는 따로 있는데 말이다.
“가르침···. 은 모르겠고, 이번 기회에 나도 한 마디만 해두자.”
“뭐냐. 이제 와서 사정을 봐달라 사정사정해도 변하는 건···.”
끝까지 입가에 오만한 조소를 머금고 나를 도발하던 미후왕. 나는 그런 놈에게 단전에 힘을 꽉 주며 두 눈을 부릅뜨고는 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유를 불문하고 나와 내 동료에게 날붙이를 들이미는 녀석은···.”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오브-성혈’이 활성화됩니다.
*‘오브’의 활성도는 46%입니다.
*각성자, 이건우의 모든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증대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나의 몸으로부터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시뻘건 혈속성의 마력.
이내 허리춤에 검에 손을 얹자 그 혈속성 마력에 반응하는 ‘붉디붉은 오러’가 꽃잎으로 변한다.
-파직!
-파지지지직!
미칠 듯이 튀는 스파크와 흩날리는 혈화.
이윽고 완전히 뽑아 든 ‘본디오 빌라도’는 흉흉한 붉은 오러를 방출했고 나는 푸르게 번쩍이는 동공으로 정확히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피처럼 붉은색의 오러.
미후왕이란 이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장 웨이는 눈앞에서 터져 나오는 이건우의 피 같은 오러에 눈살을 찌푸렸다.
혈속성,
이는 다루기도 힘들고 사용하는 이도 극히 드물지만, 몸에 피가 흐르는 이상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속성의 마력이었다.
그리고 그 마력을 다루던 한 ‘배신자’가 과거 마천신교에도 있었다.
천마를 제외한다면 그 이상의 지존을 찾을 수 없으리라 여겨지던, ‘혈마’···.
“네놈의 그 더러운 검과 오러를 보고 있으면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는구나.”
스르륵,
꽃 형태의 오러와 뇌격을 끌어올린 이건우, 미후왕은 회색 오러를 끌어올려 이에 대항했다.
둘을 중심으로 주변인들이 거리를 두며 자연스럽게 원형의 그라운드가 형성되었고, 충분한 안전거리가 생겨나는 순간···.
기습적으로 몸을 내던지는 건 미후왕이었다.
-우우웅!
크게 뒤로 당겼던 창이 탄성 있는 스프링처럼 튕겨 나가고, 미후왕은 자신의 전신을 앞으로 기울여 가속했다.
찰나에 일어난 한점 돌파.
최속의 찌르기가 혈속성 오러를 번뜩이던 이건우의 미간을 향했다.
허나, 점은 같은 찰나의 순간에 선이 된다.
-챙!
창의 진행경로를 막아선 것은 가벼운 검형이었다.
이건우는 딱히 놀라지도,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고 그저 무표정한 눈으로 미후왕을 바라보며 검을 휘두른 것이다.
그런데 그 내공이 어찌나 무거웠는지, 창 머리가 단번에 돌아간 미후왕의 손이 지끈거렸다.
‘이 무게는 뭐지?!’
미후왕은 상상 이상의 무게에 놀라는 한편, 입가에 머금은 미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돌아간 창날 그대로 크게 몸을 회전해 연격을 가했다.
-챙!
명색의 ‘중원제일창’이 이토록 허무하게 공세를 빼앗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휘두르고, 팔을 당겨 찌른다.
이어질 수 없는 곳에서부터 출발한 연격이지만, 미후왕 특유의 속도와 공간을 일렁이게 할 만큼의 쾌속 찌르기는 불가능한 동작을 가능캐했다.
-챙!
-채재쟁!
-투둑! 콱!
허나, 들려오는 것은 비명도 버거워하는 숨소리도 아닌 날붙이와 날붙이의 충돌음. 기습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껏, 파육음은 단 한 번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
총 스물두 번의 찌르기와 열다섯 번의 휘두르기가 있었다.
동시에, 붉고 푸른 오러와 회색의 오러 역시 쉼 없이 서로의 빈틈을 파고들고자 보이지 않는 전투를 벌였다.
“하아, 하아아···.”
그러나 연속적인 격돌의 결과, 차오른 숨을 고르는 건 이건우가 아닌 미후왕이었다.
“과연···. 악마를 단톡 토벌했다는 소리가 새빨간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까마득한 후배가 이 정도로 나의 공세에 버텨낼 줄이야.”
미후왕은 작게 숨을 고르면서도 애써 태연한 어조로 목소리를 높여 그런 말을 흘렸다.
그리고는 이건우의 반응을 살폈는데, 기이하게도 건우는 마력을 끌어올리던 그 순간부터 지금껏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저 냉랭한 눈으로 미후왕을 응시하고 있을 뿐.
이에 미후왕은 주위를 슬쩍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지금까진 미후왕의 일방적인 공세와 이건우가 이를 막아낼 뿐인 형상이 그려지다 보니 주위를 둘러싼 무림인들의 시선에는 퍽 순수한 기대감 따위가 담겨 있었다.
다만, 각 문파의 수장급 그리고 ‘뿔’을 이끄는 각주들의 시선은 영 심상치 않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실상은 공격을 이어가던 미후왕의 손이 격통으로 물들어 있음을 눈치챈 모습이었다.
그리고 각주들이 이러하단 것은 곧, 이 비무를 지켜보고 있을 ‘천마’ 역시 미후왕의 열세를 알고 있으리란 의미였다.
하는 수 없이 미후왕은 침을 퉤 내뱉고는 갑자기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하지만, 기다리는 분들이 많으니 애들 장난은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하지.”
미후왕은 그리 말하며 팔찌에 자신의 회색 오러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양 팔목에 부착된 금색 팔찌가 빛을 뿜었다.
이는 구 무림맹의 주축이자 오대세가의 수장이었던 남궁가의 헌터들이 애용하던 무구로, ‘천근중추공’의 묘리가 아이템의 형태로 응축된 팔찌였다.
-기이이이이!
아주 좁은 구멍에서 거센 바람이 쏠려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소음과 동시에, 미후왕의 인형이 사라진다.
이내 그가 다시 나타나자, 그곳은 이미 이건우를 기준으로 수직에 있는 상공.
추락하는 창은 팔찌로부터 발로한 빛과 함께 그 무게를 10배, 100배로 부풀리기 시작했다.
하강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는 미후왕.
일격에 무한한 무게를 덧씌우는 ‘천근중추공’의 묘리는 그 자체로 이건우를 압살할 기세를 내뿜었다.
“구 무림을 타파하고 새 하늘을 열었다면서, 무구까지 그대로 사용하는 건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군.”
허나, 이건우는 운석과도 같이 낙하하는 미후왕을 보고도 끝까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유일한 반응은 오직, 조금 전에 들려온 무미건조한 읊조림 뿐.
직후, 지금껏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았던 이건우가 발을 굴렀다.
그러자 솟아오르는 것은 엄청난 기세의 폭풍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과는 감히 비견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질량의 에너지.
그 어떤 ‘빛’도, ‘굉음’도 없는···. 전격의 폭풍이었다!
“...뭣?!”
추락하며 더더욱 ‘무게’를 더해갈 뿐이었던 미후왕의 입에서 자연스레 경악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전쟁을 세 번이나 겪으며 볼 거, 안 볼 거 다 보며 살아왔던 미후왕이었지만, 세상 그 어디에도 이렇게 번개를 다루는 ‘전격 방출계 헌터’는 처음이었다.
이윽고 미후왕이 눈을 깜빡거리는 순간, 사라진 이건우의 모습···.
“나에게 가르침을 주겠다고 했었나.”
소리도, 빛도 없는 번개와 함께 사라졌던 이건우의 목소리는 돌연, 추락하던 미후왕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무?!”
이에 미후왕이 간신히 경악하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는 한편, 이건우는 오러로 발성 기관을 움직이는 묘리를 통해 ‘찰나의 틈’에서 말했다.
“아쉽지만, 네놈은 날 가르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무감각한 눈으로 정확히 미후왕을 응시하는 이건우.
그의 ‘검’은 춤을 추듯 허공을 유영했고 미후왕의 목에 두 번, 가슴께를 다섯 번 스치고 지나간다.
마치, 지금 이 순간에도, 일곱 번은 더 네놈을 죽일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말이다.
이윽고, 스치고 스치기만을 반복하던 검날은 갑작스레 막대한 붉은 오러를 내뿜는다.
회색의 오러를 번뜩이던 미후왕의 비기, 유성창. 그러나 그 유성창에 ‘천근중추공’의 묘리를 더한 회심의 일격을 붉은 오러는 뒤덮었다.
추락하던 유성을 송두리째 붉은 오러가 삼켜버린 것이다.
이내 막대한 충돌과 함께 일대를 파괴할 것만 같았던 그의 창이 땅에 닿자······.
-툭, 투두둑.
창은 허무하리만치 가볍게 땅을 굴렀다.
그건, 엄청난 무게를 현현시키던 ‘천근중추공’의 원동력이었던 미후왕의 오러를 이건우의 혈속성 오러가 완전히 집어삼킨 결과였다.
이윽고 유성의 추락을 지켜보며 충격에 여파에 대비하고 있던 몇천에 달하는 중원의 헌터들은 일제히 표정을 굳혔다.
혹자는 벙찐 얼굴로,
또 혹자는 경악한 눈으로, 바라본 충격의 현장.
그곳에는 이건우의 손에 뒷덜미를 잡혀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려 있는 미후왕.
그리고 그가 쥐고 있던 창이 바닥을 나뒹구는 처량한 광경만이 펼쳐져 있었다.
미후왕과 호각으로 싸워 자신의 강함을 입증하는 것도,
반격에 성공해 그에게 치명상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
어림잡아도 그 열 배 이상의 난이도에 달할 ‘산 채로 제압’한다는 묘기를 이건우는 실체로 행해버린 것이다.
어딜 어떻게 보아도 티끌만 한 트집조차 잡을 수 없는 완전무결한 이건우의 승리였다.
-투욱!
거기에 회심의 일격을 가하듯, 이건우는 이미 반쯤 정신을 놓은 미후왕을 땅에 툭 떨어뜨리고는 말했다.
“미후왕, 네놈의 ‘유성’은 나름 훌륭했다. 허나, 내가 마주했던 악마, 그레모리의 ‘태양’에는 한참 부족하더군.”
이건우는 ‘본디오 빌라도’를 허리춤에 꽂아 넣고 넓게 확산시켰던 오러와 마력을 단번에 갈무리했다.
마치, 방금 이곳에서 있었던 그 비무가 아예 없었던 일이라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이다.
“혹, 가르침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해라. 이 까마득한 후배님이 하늘 같은 선배에게 가르침을 내려줄 테니.”
태화문 광장에 나뒹구는 은창과 주저앉은 미후왕.
물러나 있던 한국의 지원군 5인을 챙겨 다시금 태화궁으로 걸어가는 이건우.
방금 비무를 벌인, 너무나도 상반되는 두 헌터의 모습에 무인을 자칭하는 중국의 모든 헌터들은 감히 그 누구도···. 이건우의 그 당당한 걸음을 막아설 수가 없었다.
***
자기들은 언제나 쉬쉬하고 있지만, ‘마천신교’라는 현 중원의 집권 세력의 근간은 어디까지나 ‘흑도’다.
즉, 민초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얼마나 많이 시행하건, 얼마나 무인으로서 정의로운 가치관을 따르고 있건 말건, 기본적인 ‘서열’을 나누는 첫 방식은 ‘힘’이라는 것이다.
뭐, 어느 집단이 안 그러겠느냐마는···.
헌터와 헌터가 마주하며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굳이 입과 손을 움직이지 않아도 이미 살아온 역사 자체가 그 힘의 증명인 ‘랭커’들이야 상관없는 이야기겠지만,
나 같이 각성 후 약 1년 반 만에 온갖 기상천외한 업적과 기행을 벌인 사람은 다르다.
내가 제대로 ‘힘’을 증명하지 않았다면, 그 어떤 ‘흑도’들도 나의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말을 해도 트집을 잡고, 무슨 행동을 해도 간섭을 받는다.
전생에도 그랬다.
겪어봤기에 가장 빠르고 간단하게 그런 자질구레한 처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마천신교’의 공식 서열 4위. 미후왕이었다.
그는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않는 헌터와 국가를 증오하다 못해 혐오하는 인간.
그를 도발하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주도면밀한 계획의 첫 결과물은 바로 지금, 내 눈앞에 펼쳐졌다.
“중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마. 한국의 지원군 대표, 이건우 헌터.”
마천신교의 명실공히 한 1인자. 천마.
그에게 ‘직접’ 환대를 받은 것이다.
고작 직접 환영사를 듣기 위해 그리 번거로운 일을 벌였느냐는 핀잔을 들을진 모르지만, 그건 이 노인네의 성격을 모르니 할 수 있는 말이다.
이 백발의 노인네는 자신이 ‘힘’을 인정한 자가 아니면 절대로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으니까.
천마는 자신이 인정하지 않은 자를 쳐다보지 않는다.
천마는 자신이 인정하지 않은 자가 자신의 앞에서 입을 여는 것조차 허하지 않는다.
그의 앞에서 숨소리를 내고 싶다면 스스로가 민초임을 인정하거나, 자신의 ‘힘’을 증명해 내는 수밖에 없다.
이번 ‘전세계 합동 레이드’의 키를 잡은 장본인과 말 한마디 섞을 수 없다는 건 너무 불리하다.
가만히 뒀다간 아주 스무스하게 전생과 마찬가지로 ‘불사왕’의 손에 놀아나게 될 테니 말이다.
“저도 반갑습니다. 천마.”
즉, 천마의 인정을 받아 그와 ‘대화’가 가능해졌다는 것 그 자체가 미래를 바꾸기 위한 첫 번째 ‘키’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키’를 지금, 손에 거머쥐었다.
결실을 맺을 때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