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98화.
극단적으로 말해 ‘악마’는 중국 남서부 일대를 인간이 살 수 없는 불모지로 만든 ‘흑룡’ 아뮤라타스와 동급의 괴물이었다.
살아 숨 쉬는 재앙, 천외경의 마수라고도 불리는 흑룡과 마찬가지로 악마는 본래라면 ‘전세계 합동 레이드’를 소집해 마땅한 존재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허나, 이건우는 승리했다.
넘을 수 없는 벽이자, 이 땅에 존재하는 이상 나날이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드는 순수악을 ‘단독’으로.
이 경이로운 소식은, 대한민국에 종언을 고하고자 JCV방송국 헬기를 멋대로 강탈해 중계까지 했던 휴거교도의 만행 덕에 도리어 엄청난 속도로 세계 각국에 퍼져나가게 되었다.
화면 속에 담긴 한 줌의 거짓도 섞이지 않은 경이의 실현.
하늘을 가르는 황금의 바다.
그 와중에도 ‘신력’의 응집으로 만들어진 이 웅대한 대양(大洋)은 적과 아군을 구분했었다는 신비로운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거대한 바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그곳에는 모습을 숨기고 있던 휴거교의 ‘전도사’들이 고압 전류에 휘말린 사람처럼 숨이 끊어져 있던 것과 달리,
‘일반인’들은 그저 옷이 젖은 정도의 타격을 받았을 뿐이라는 증언이 사태 종식 후, 잇따라 터져 나온 것이다.
‘전세계 합동 레이드’를 소집해야 할 대상을 단독으로 토벌하고,
적과 아군을 알아서 구분해 타격을 주고,
자연재해를 넘어 천지지변 급의 위력을 가진 힘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
-자, 형님들. 화면 보이십니까? 이 부분을 보면 카메라가 갑자기 지지직거린단 말이죠?
당연히 영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속출했고, 일각에서는 숱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한 헌터에 대한 우상화 작업도 정도껏 해야지요!
-한국은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노골적으로 개인의 신격화에 힘을 쓰고 있다!
개인방송, 공영방송, 라디오, 신문.
어디 하나 따로 구분할 것 없이 수많은 언론매체에서는 이건우에 관한 부정적 의견을 표했다.
허나, 과거와 달리 이건우를 의심하는 언론사의 수만큼 이젠 그를 믿는 수 역시 많았다.
【속보!】 중국의 신정부, 마천신교의 우두머리 ‘천마’가 직접 공식 석상에서 S급 헌터 이건우의 대업을 칭송하다!
【속보!】 사우디아라비아의 ‘흑태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건우의 업적을 의심한 적이 없다고 발언!
【속보!】 미국의 초거대 복합 길드 ‘제이슨 스트라우스’의 부단장, 인터뷰에서 이건우를 언급. ‘함께 하고 싶다.’는 스카우트 제의.
이건우를 긍정하는 여론의 축은 대부분 실제로 이건우를 직접 본 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허나, 의심의 목소리를 높이며 이건우와 한국 정부를 비방하던 이들은 하나의 예외없이, 한 번도 이건우와 직접적인 만남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끝내 숱한 매스컴과 이리저리 방방 뛰기 마련인 인터넷의 여론마저도 이건우의 대업을 칭송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단 한 번도 공식 석상에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 이건우.
이젠 세계 각국에서도 그러한 ‘일반인의 이해를 아득히 상회하는’ 이건우의 소식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윽고, 인터넷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은 ‘바다로 하늘을 가르는’ 그 영상의 ‘진위여부’를 면밀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그 혼돈의 도가니를 만들어낸 장본인인 이건우는 그런 소식과는 거리가 먼, 합동 장례식장에 참석한 상태였다.
***
“일동···! 차렷!”
‘진행과 관리’를 도맡아준 홍진웅 중위의 절도 있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에 무덤을 앞에 둔 군인들은 묵묵히 총구를 내리고 군모를 눌러썼다.
“국가의 유공자들을 위하여 경례!”
““충! 성!””
칼같이 일순간에 올라오는 거수경례.
바로 그 현장에서 이건우는 장교용 우의를 뒤집어쓰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식순이 맞춰 진행되던 삼일장.
허나, 이건우는 한 사람의 무덤을 눈앞에 두고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신화급의 무구, 본디오 빌라도와 함께 전설급의 무장인 ‘수왕검’이 묶여 있었다.
“벌써 사흘째라고 그러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이건우 소령님.”
그때, 묵묵히 그저 무덤을 응시하고 있던 이건우의 옆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천천히 건우가 고개를 돌리자,
두 눈이 팅팅 부어 벌겋게 되었고 화장도 눈물에 쓸려 내려가 반쯤 지워진 상태의 한 여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도 드시는 게 어떠십니까.”
이건우와는 초면인 여인.
허나, 건우는 그녀가 누구인지 너무나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죽은 김장훈의 긴 기억, 그 말미를 가장 따스하게 품어주었던 존재.
“김수정 중사인가.”
“지금은 군인이 아니지만요···. 아직 복직 절차가 남아서 그냥 민간인일 뿐입니다.”
“...복직하는 건가.”
예상외의 소식에 건우가 그리 묻자, 김수정은 자신의 복부를 정겹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곧 태어날 아이를 먹여 살릴 능력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요.”
허심탄회한 말투로 그리 말하면서도 끝내 씁쓸한 얼굴을 지우지 못하는 김수정 중사.
이에 건우는 잠시 그녀를 무표정하게 응시하다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 묶여 있던 ‘수왕검’의 고정을 풀었다.
“복직하려면 필요하겠지···.”
이내 건우가 내민 ‘수왕검’을 양손으로 받아든 김수정 중사.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그 시퍼런 검을 바라보다 또다시 눈시울을 붉게 붉혔다.
한참 동안, 말없이 그것을 응시한다.
그러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도리어 수왕검을 건우에게 내밀었다.
“그거 아시나요. 소령님? 이 검은 제가 장훈이에게 선물한 검이었어요. 원래는 제가 5년 동안이나 사용했던 검이었죠···.”
“...”
“부디···. 소령님이 이 검을 받아주세요. 저에게 검은······. 이제 너무 무겁네요.”
주륵,
비가 내렸다.
여름의 텁텁한 장마는 끝날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배려로 장교용 우의를 입고 있던 김수정 중사의 얼굴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훈이는요···. 항상 소령님을 존경했어요. 항상 소령님에 관한 얘기를 자기 자랑하듯이 늘어놨다니까요? 제가 웬 남자한테까지 질투심을 느낄 만큼······. 무지, 무지 많이 그랬어요···.”
“...그랬나.”
“네, 그러니까. 이 검은, 부디···. 소령님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김수정 중사는 끝내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그런 그녀를 도와주고자 마른 수건을 들고 다가오던 정진권도,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던 장례식의 총괄인 홍진웅도,
그리고 그런 그녀를 마주 보고 있는 이건우도 도무지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터덕.
이건우는 천천히 그 ‘수왕검’을 받아쥐었다.
그리고 김수정 중사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손에 쥔 ‘수왕검’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파아아아아.
누군가의 눈물을 대신하듯,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타닥, 타닥!
장례식장 중앙에 깔려있던 화톳불에서는 장작이 튀는 소음이 울린다.
현장에서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
그로부터 하루가 더 지났을 무렵···.
하염없이,
미동도 없이,
이번 생에 처음으로 잃게 된 ‘동료’의 무덤 앞에 서 있던 나는 문득···.
-퐁!
내 허리춤에 매달리는 어떤 감각에 눈을 떴다.
반짝이는 은발의 소녀를 보였다.
쑥, 고개를 들어 올리는 아이.
그 눈은 영롱한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지만, 소녀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다.
“앤젤라···.”
나는 조용히 소녀의 이름을 읊었다.
그러자 앤젤라 엘런은 대답 없이 내 허리춤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흔들었다.
갑작스러운 앤젤라 엘런의 등장에 놀란 나는 멀찍이 느껴지는 친숙한 감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수신의 성녀’로 거듭난 남궁연이 큰 장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필시, 앤젤라 엘런과 함께 쓰고 오기 위해 들고 온 우산이리라.
그러나 어째서 그녀는 앤젤라 엘런을 이 우중충한 장례식장에 데리고 온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참극을 목도하던 앤젤라 엘런이다.
이 축축하고 질척질척한 분위기의 장소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자고 말했던 것은, 분명 남궁연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에 내가 의문 섞인 시선을 던지자, 남궁연은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앤젤라가 꼭 건우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했어.”
그건 조금 놀라운 말이었다.
간신히 ‘감정’의 불씨만은 되살린 상태로 긴 꿈에서 깨어난 소녀는 아직도 ‘선택적 함묵증’을 앓고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앤젤라가 선뜻 자기 의사를 표했다니······.
“꾸···. 꿈을 꿨어요.”
그때, 내 상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앤젤라가 목소리를 냈다.
그건, 그 꿈속에서도 몇 번이나 들었던 앤젤라 엘런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저씨가···. 울고 있었어요······. 근데, 꿈에서 아저씨는 울지 못하고 있었어요···.”
꿈.
울고 있었다면서, 울지 못하고 있었다는 굉장히 모순적인 말.
허나, 나는 이 소녀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대성통곡을 터트리고 싶었던 나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나의 입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오질 않았고,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허나, 실제로 그러했다.
그 답답함이 원인일 것이다.
지금껏 내가 ‘김장훈’의 무덤 앞을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이 말이다.
왜 눈물이 나질 않는가.
어째서 나는 이토록 슬픈가.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현재 나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정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마 그 원인은, 죽은 장훈의 기억과 감정과 의지가 내 머릿속에서 뒤엉켰기 때문이겠지.
‘사도’가 되었기에 일어난,
신자의 ‘생전 기억’을 모두 받아들이게 되는 일.
실체로 체험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없었는데, 그게 현실이 되니 조금 힘들었다.
장훈의 무덤을 바라보는 게 마치 나의 무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당장이라도 장훈이 저 무덤에서 일어나, 내게 허허허 너털웃음을 터트릴 것만 같아서···.
더 힘들다.
무덤은 고요하다.
이 복잡하고 무거운 심경을 이 소녀는 헤아려준 것일까.
그랬기에 날 찾아와, 이렇게 차게 식은 나의 몸에 파릇파릇한 온기를 나누어 주는 것일까.
나는 그 선한 마음이 너무나도 기특해 앤젤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작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고맙구나. 앤젤라.”
그러자, 앤젤라는 조심스럽게 울상인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을 꺼냈다.
“울고··· 싶으면······. 울, 어요···. 아저씨가 그랬, 잖아요···.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원한다고요···.”
입가에 맺히던 작은 미소가 헛웃음이 되어 터져 나온다.
“그건······.”
너 같은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로 있을 수 있는 세계를 말한 것이지. 어른은 그럴 수 없다···.
그런 말을 차분하고 조곤조곤하게 내뱉고자 목에 힘을 주던 바로 그 순간···.
“...그건.”
기이하게도 돌연, 나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뜨거웠다.
그곳에서 내리는 비는 덧없이 뜨겁다.
‘난, 기다리고 있던 거였나.’
바로 이렇게 나의 마음을 헤아려줄 사람이 나타나는 걸 말이다···.
-덥석!
그때, 어느새 다가온 남궁연이 큼지막한 우산도 내려놓고 나와 앤젤라를 함께 끌어안아 주었다.
비는,
긴 장마는 아직도 추적추적한 비를 내려주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젠, 따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한 방울, 두 방울.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자네 덕분일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