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94화.
「고옵시주 여하사 를죄 리우」
호기심에서 즐거움으로,
안면에 드러나는 표정을 일순간에 탈바꿈한 악마는, 돌연 모습을 감추었다.
허나, 분명하고 또렷하게 들려오는 무언가 뒤틀린 기도문.
“대체 뭔가 했더니···.”
-스릉!
그때, 돌연 두 눈을 감고 검을 손에 쥐는 ‘만검’의 용병대장.
“정진권?”
이에 이초희는 자신의 묵빛 오러를 넓게 퍼트려 사라진 ‘악마’의 위치를 탐색하며 의문 섞인 목소리로 묻는데···.
천검일로 정진권은 돌연, 고개를 휙 돌려 눈을 감은 그대로 정확히 이초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 이봐!?”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검은산군 조성우의 얼굴에 경악으로 물들고, 그의 검이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이초희가 눈을 크게 뜨며 지켜보던 그 찰나···!
-캉!
폭풍보다도 더 강대한 풍압이 일순간에 이초희의 등 뒤에서 터져 나왔다.
다시 보니 그것은 사람만 한 크기의 주먹.
그리고 정진권의 검은 그 보이지 않는 주먹을 정확히 막아내고 있었다.
자신이 넓게 펼친 묵빛 오러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 뚫고 나타난 주먹에 이초희가 놀라는 한편.
두 눈을 꾹 감고 있던 정진권만은 입을 열었다.
“온다!”
짧은 읊조림.
-후우우웅!
작은 경고,
허나, 이초희와 정진권의 머리 위에 나타나는 주먹은 마치 운석과도 같은 기세로 낙하하고 있었다.
“하!”
이에 빠르게 반응하는 건 공간을 접어 달리는 헌터, ‘검은 산군’ 조성우였다.
그는 들고 있던 부채 형태의 완드를 손목 스냅으로 크게 흔들었고, 날아들던 새카만 주먹과 이초희 사이에 공간이 뒤틀린다.
-그, 그그극!?!
-콰아아앙!
뒤틀린 공간을 타고 흐르는 주먹.
조성우의 힘으로 주먹은 이초희에게 닿지 않았으나, 땅에 내리꽂힌 주먹은 그 자체로 지각을 붕괴시키는 거대한 울림이 일으켰다.
기괴한 풍압이,
마치 핵폭탄이 폭발한 것과도 같은 기세로 터져나온다.
이에 세 헌터의 몸은 그대로 날아가 버릴 것 같았으나···.
「이같 것 준 여하사 를자 은지 죄 게에리우 가리우」
S급이자 세계 정상급의 실력은 가진 세 헌터의 눈에는 이채가 서렸다!
“그 개소리 좀 멈춰어어···!”
시작은,
이미 눈앞의 악마에게 몇 번이나 얻어터지며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이초희의 오러였다.
‘거대한 입’의 형상을 갖춘 그녀의 묵빛 오러가 더 크게 입을 벌린다.
기습적으로 허공에서 생겨난 ‘입’은 뭔지 모를 주문을 계속해서 외던 악마의 안면에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넣었다.
-카가강! 카강!
그것을 과연 피부라 불러도 좋은가 의심이 들 만큼, 묵빛 오러로 형상을 갖춘 거대한 이빨의 요괴와 악마의 안면에서는 거친 불꽃이 튀겼다.
-크르르르릉!
이에 맹수의 으르렁거림을 목구멍 밑에서부터 터트리는 ‘악마’는 한쪽 팔을 들어 자신의 얼굴에 달라붙은 요괴를 떼려 했다.
허나,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만검’의 용병단장은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의 검을 양손으로 고쳐잡아 쭉, 밀어 올렸다.
-드드드드득! 촤악!
‘검’은,
수식으로 치솟아 오르는 막대한 양의 예리한 오러는,
드디어 악마의 비늘을 꿰뚫어냈다.
처음으로, 저 ‘악마’의 비늘을 뚫고 유효타를 먹인 것이었다.
이에 ‘악마’는 수비보다는 공격을 택한 것인지, 상처에도 아랑곳 않고 높게 들어 올린 양손을 단번에 땅으로 낙하시키며 S급 헌터들을 일순간에 뭉개버리려 했지만,
“어딜!”
실눈을 살짝 뜨고 있던 조성우는 또 한 번 공간을 뒤틀었다.
이내 악마의 묵직한 한방이 향하는 곳은 맨땅.
그런데, 진지한 얼굴로 눈빛을 빛내는 S급 헌터들은 그 충돌에서 일어나는 폭풍에 몸을 맡기며 하늘로 붕 떠올라 각기 다른 마력을 폭발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된다···.”
이를 한참 먼 곳에서 지켜보던 피난민의 입에서 돌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이길 수 있어!”
“살 수 있다고!”
“가라!”
입을 모아 외치는 것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보루인 세 S급 헌터들의 승리.
그리고 이러한 외침들에 보답하듯,
묵빛으로,
칠흑으로,
회백색으로 번뜩이는 세 가지의 오러와 마력은 단번에 악마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아작!
-촤아악!
-후우웅!
큰 진동과 거대한 검기 그리고 묵빛으로 현현된 요괴들의 이빨과 발톱이 드러난 악마의 맨살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릉!
악마는 또 한 번 거친 으르렁거림을 터트렸지만, 한번 기세를 잡은 S급 헌터 세 사람은 숨을 쉬는 것 조차 잊고 연속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공간 그 자체를 뒤틀어 움직임을 억압하고,
묵빛 오러로 현현된 요괴들은 무식한 돌진과 자폭을 일삼는다.
이윽고, 생겨나는 빈틈 하나, 하나에 검을 꽂아 넣는 ‘천검일로’.
오직 그의 검만은, 지금껏 무적과도 같았던 악마의 비늘을 깨부수고 그 속의 살을 찢어발겨 새카만 피가 터져 나오게 만드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23연격. 참살(慘殺).”
-착!
이내 정진권의 검이 검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악마의 목과 몸 사이에 거대한 지평선이 그어졌다.
-툭, 때구르르르.
직후, 악마의 목은 썩은 사과처럼 허망하게 땅에 떨어져 굴렀다.
“와아아아아!”
“와아아!”
“이겼어! 우리가 사, 살았다고!”
인근에 남아 있던 군인 혹은 민간인은 자신의 의지로 거동할 수 없는 처지에 있던 자들.
있던 희망마저 내려놓고, 오직 죽을 순간만을 기다리던 그들에겐 눈앞에서 벌어진 엄청난 전투와 목이 떨어진 악마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경이였다.
“역시 S급 헌터!”
“대한민국의 대표!”
“S급! S급!”
이미 포기했던 생환의 가능성이 돌아오자 ‘전도사’의 시선을 피해 숨어 있던 이들마저 하나, 둘 거리로 걸어 나와 화면 속의 서 있는 세 사람을 향한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찰나,
숱한 안심과 방심이 5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사방으로 퍼진 바로 그 순간···!
땅에 떨어졌던 악마의 머리가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뭣?!”
“지, 집중!”
“이런!”
곧장 세 S급 헌터는 공세를 취했지만, 눈을 뜬 악마의 머리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입을 움직였다.
「고옵시주을식양할용일게에리우늘오다이지어루이도서에땅이같것진어루이서에늘하이뜻며오시하임가라나며오시으받을김여히룩거이름이여지버아리우신계에늘하」
이윽고, 떨어졌던 악마의 머리에서부터, 새카만 일렁임은 하늘로 치솟았고,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서열, 423위의 악마. ‘그레모리’가 ‘마경(魔境)’을 선포했습니다!
*반경 250m이내 각성자들은 ‘그레모리’의 허가 없이 마경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경 내 악마 종은 모든 능력치가 500% 증가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몇 번을 보아도 믿을 수 없는 문구가 그들으 눈앞에 떠올랐다.
“오···. 오백······.”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는 수치.
그 수치가 너무나도 컸기에 세 S급 헌터는 아무런 실감을 느끼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악마’의 경우는 달랐다.
그저, 그곳에 ‘거’하는 것만으로도 새카만 마력 폭풍이 일어나는 압도적 존재감.
이내, 정진권이 눈을 감았다 뜨는 그 찰나, 날아든 주먹은 그의 코앞에 당도해 있었다.
“정진권!”
-콰직!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음.
그리고 이미 하늘 너머,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진 한 명의 S급 헌터.
1대1이라는 조건만을 놓고 보면 단연 최강.
대한민국에서 최강의 일격을 가진 S급 헌터는 그렇게 나가떨어졌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허나, ‘악마’는 목이 떨어졌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예 없었던 일처럼, 다시금 본래의 50M의 거인인 형상을 되찾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놀이에 잔뜩 신난 어린아이와도 같이, 입가에 순수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다시 묻지」
씩,
귀까지 벌어질 듯 열리는 거대한 입.
그 압도적인 형상과 기괴한 기운은 이번에야말로 이초희의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게 만들기 적합했다.
「어찌 필멸자가 불멸자에게 대적하려 드느냐.」
그제야 이초희는 깨닫는다.
S급 헌터들의 등장을 눈으로 보면서도 가만히 기다리던 것도,
군대의 후퇴를 멍하니 서서 그냥 지켜보았던 것도,
모두···.
이 악마에겐 이 참상 자체가 단순한 ‘장난’에 불과했을 뿐이었기에 그런 기행을 보였다는 것을.
***
전원 퇴각을 명령하고, 홀로 인근의 오토바이를 주워 타 번개 부대로 내달리던 홍진웅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묘한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촤라라라락!
눈앞에 들이닥치는 것은 인간의 살점으로 이루어진 고깃덩어리.
선 분홍빛의 팔은, 일순간에 홍진웅의 머리를 잡아채려는 듯 날아왔다.
-끼익!
이에 몸을 눕혀 오토바이를 기울인 홍진웅.
허나, 그를 포위하는 그림자는 측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면에서도 휴거교의 신도복을 입고 있는 남녀가 서 있었다.
이를 포착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홍진웅은 한껏 기울인 오토바이를 가속하며 그곳에서 뛰어내렸고 땅을 구르면서 권총 한 자루를 꺼내 오토바이의 엔진을 쏴 맞혔다.
-탕, 탕! 콰앙!
아크로바틱한 기행과 함께 시뻘건 불길을 토해내며 폭발하는 오토바이.
허나, 홍진웅은 지체 없이 오토바이의 폭발 현장으로 몸을 날렸다.
뜨거운 화염이 숨을 들이쉬는 홍진웅의 목구멍까지 구워버릴 기세였다.
그러나, 그는 비록 반푼이에 불과할지라도 ‘수신의 신자’ 퀘스트를 클리어한 사람이었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시퍼런 물방울 같은 것이 허공에 나타나 홍진웅의 옷을 적혔고, 그의 상처는 빠르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젠장!”
‘악마’가 나타난 현장이 생중계되고 있다는 건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길에 보아서 알고 있었다.
그곳에 당도한 비공정과 그 ‘황해’의 최종병기로부터 쇄도하는 수백 명의 용병대원 역시 보았다.
허나, 기이하게도 홍진웅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한 사람의 S급 헌터, 이건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뭔가 근거가 있는 논리적인 추론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이 같은 ‘마음’은 분명 자신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출될 수 없는 것.
즉, 이 ‘마음’은 분명, 자신이 ‘수신의 신자’가 된 것과 관련이 있으리라 홍진웅은 생각했다.
알고 있다.
그의 비상한 머리는 이미 그 모든 것들을 다 이해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수신은 이 모든 상황을 가장 넓게 보고 있을 자···. 그런 수신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에게 줄곧 불안한 마음이 들게 만들고 있다는 건······.’
분명, 번개 중대에 있을 ‘수신과 관련된 인물들’에게 어떠한 위협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분명했다.
뒤늦게, 자신이 명령권을 받았던 ‘검제의 제자들’에게 민간인 구호 명령을 내리고 자신만 돌아왔던 것이 후회되었다.
허나, 그런 후회도 잠깐. 홍진웅은 고개를 저었다.
그 아수라장에서 고층 빌딩을 수직으로 올라 고립된 민간인을 구할 능력자 따위, ‘검제의 제자들’ 뿐인 것이 맞았기 때문이다.
‘생명을 구한 것을 후회하지 말자.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자!’
이내 결의를 마친 홍진웅은 다리에 마력을 모아 땅을 박찬다.
벌써 저 멀리 ‘번개 중대’가 은밀하게 주둔하는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홍진웅은 ‘번개 중대’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더욱 그 수가 불어나는 ‘전도사’들을 보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내 ‘번개 중대’에 그가 도착했을 때, 보이는 광경은 오직 시체의 산.
부대 입구에서부터 쌓여 있는 고깃덩어리들은 분명, ‘전도사’급의 휴거교도가 분명해 보였다.
‘뭐지?!’
그런데 그 수가, 홍진웅이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잖아!’
산을 이루고 있다는 것에 일말의 거짓이 섞여 있지 않았을 만큼 ‘전도사’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심지어 그 정도가, 협회 본부라는 거대한 무장집단을 습격하던 것과 비견될 만큼 말이다.
“설마···. 처음부터 놈들이 노리고 있던 건······?!”
협회가 아닌, 번개 중대였단 말인가?
떠올리면서도 비약이 심한 추측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바티칸을 비롯해 프랑스의 헌터들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2대 성녀’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건, 극비에 부쳐졌던 사안.
그런데도 휴거교의 협회 본부를 향한 공격이 시작된 시점을 고려해보면, 성녀의 입국 시기로부터 대략 30시간이 흐른 시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휴거교가 성녀의 국내에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배신자, 스파이?
순간적으로 홍진웅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며, 이런저런 가설과 가능성에 대한 맥락을 짚기 시작했다.
-터벅.
하지만 돌연 들려오는 소리.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멈추고 숨소리를 낮췄다.
쿵, 쿵 시끄럽게 울리는 심장 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가만히 기다리길 수 초.
갑작스러운 발걸음 소리는 홍진웅의 눈앞에서 멈췄고, 이에 그가 눈을 크게 뜨며 권총을 바로잡던 바로 그 순간···.
-털썩!
눈앞에 그 사람 그림자는 무기력하게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내 보이는 얼굴은, 익숙한 불곰 같은 생김새의 남자.
“마, 마르쿠스!”
눈앞에서 쓰러진 이는 다름 아닌, 전사장 마르쿠스였다.
그는 갑작스러운 홍진웅의 목소리에 눈을 부릅뜨는 한편, 입에서 피를 한 움큼 게워내고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쿨럭···! 지하, 지하다! 지하로 가라, 얼른!”
홍진웅은 반사적으로 마르쿠스에게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물어보려 했지만, 전사장은 도리어 그런 홍진웅을 매섭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마, 마흔 명의 전도사가 기습···. 나는 홀로 지상에 남아 그들을 상대했···. 크흑! 지, 지원군의 도착으로 저, 전도사는 어찌어찌 막았다!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어! 우웁!”
그는 일순간에 홍진웅의 의중을 파악했는지 역류하는 피를 토해내면서까지 현황을 빠르게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지, 진짜는 따로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 십니까 마르쿠스!”
이에 홍진웅이 급하게 그를 독촉하자, 그는 신성력으로 번뜩이는 백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휴, 휴거교에 귀화했다는···. 그 비, 빌런! 아, 알프레드 아들러가···! 피안개로 변해 지하 버, 벙커로 들어가 버렸다···!”
알프레드 아들러!
이에 눈을 동그랗게 뜬 홍진웅은 그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몸을 일으켰다.
진정하고 다시 보니, 밖은 이미 고요했다.
밖은,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타고난 ‘신성력’으로 생을 연명하고 있는 전사장 마르쿠스를 비롯해···.
홍진웅과도 안면이 있는 757헬기부대 대원들의 시체가 이곳저곳에 굴러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마르쿠스는 전투 초기에는 혼자였어도 빠르게 현장에 당도한 757헬기부대의 조력을 받아 어찌어찌 마흔 명에 달하는 ‘전도사’를 막아낸 것이다.
그가 ‘전사장’급의 성전사가 아니었다면···.
또한, 그의 ‘신성력’이 휴거교와 상극을 달리는 신성한 에너지가 아니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대업.
그러나 안, 지하 벙커 내부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한번 잠금장치가 작동한 지하 벙커의 출입구는 내부에서 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열 수 없게 설계되어있다.
‘그런데 그 안으로 피안개로 변한 알프레드 아들러가 들어갔다는 건···!’
‘꿈’에 빠져 무방비 상태가 되어 있는 건우.
두 성녀 역시 건우와 그리 다르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더군다나 번개 중대의 주력 병력 대부분은 지난 작전 때 ‘바티칸’으로 향해 공석.
자연스레 소거법으로 지워지는 인원들.
이윽고 남은 부대원 중에서 알프레드 아들러급의 빌런에게 대항할 수 있을 법한 전투원은···.
‘장훈이 하나뿐이잖아!’
절망적인 전황에 더불어 최악의 미래가, 홍진웅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치이이이익!
흰 번뜩임이 눈을 간질인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다소 낯설지만, 그는 그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곧장 기억해낼 수 있었다.
지하 벙커.
30시간.
함께 두 성녀와 건우를 옮기던 번개 중대의 국내 전담팀의 사체가 눈앞에 있다.
이내 시선을 들어 올리자,
새하얀 피부에 적색 안광을 가진 흡혈귀.
돌연 지하 벙커의 입구를 뚫고 들어온, 피안개의 협혈귀가 손톱을 세우고 아직도 누워있는 건우의 목을 향해 손을 들이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새하얀 빛이,
흡혈귀의 간악한 손톱으로부터 건우와 성녀의 육체를 지켜주고 있다.
아까부터 귀를 따갑게 하는 거친 고음은 바로, 건우의 몸에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시퍼런 뇌격의 굉음이었던 것이다.
“하.”
어째서인지 몸이 가벼웠던 그···. 김장훈 소위는 옆에 나뒹굴던 자신의 애검. ‘수왕검’을 손에 쥐었다.
어쩌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확실한 것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
이미 30시간 동안 자신은 저 흡혈귀를 막아내고자 안간힘을 다했고···.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가슴께가 휑하다.
고개를 조금 숙이니 구멍이 있다.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가슴에 뚫린 동그랗고 거대한 구멍.
심장이 뛰질 않는다.
그래.
분명 자신의 몸은 이미 한참도 더 전에 으스러지고, 뒤틀려, 부서졌었다.
그럼에도 억지로 기워 붙여진 육신으로 이렇게 살아있는 이유는···.
“아직 내게,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겠지···.”
“헉!”
장훈이 무의식중에 목소리를 내자, 힘겹게 건우의 목을 향해 손을 뻗고 있던 흡혈귀, 알프레드 아들러의 입에서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 너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네놈은 죽었잖아! 이미 일곱 번이나! 내 손으로 죽였을 텐데!”
지는 언데드를 소환하며, 죽어도 부활하는 몸을 가진 주제에 장훈의 생존에는 저리도 기겁하다니.
장훈은 멍한 머리로 놈을 보고 있다가도 입은 한껏 뒤틀리며 조소를 머금었다.
“말했잖아···.”
“이런 미친! 왕께 육체를 하사받지도, 재앙께 권능을 하사받지도, 바티칸의 성자와 동급의 신성력을 가지지도 않은 네가! 어떻게!”
이젠 지긋지긋하다는 듯 절규하는 알프레드 아들러.
이를 반쯤 감긴 눈으로 보고 있던 장훈은 아주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건, 아직 나에게···.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그가 쥔, 반쪽짜리 검에서 물이 맺힌다.
새파란 물이 허공을 적시고···.
사방이 꽉꽉 막힌 지하 벙커에는 비가 내린다.
악마, 희생, 분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