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92화 (92/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92화.

“나···. 나는······.”

떨리는 목소리.

일렁이는 눈망울.

소녀는 자신의 목에 무언가 턱 걸린 사람처럼 말을 멈추었다가도···.

그저 가만히,

그런 자신을 묵묵히 바라보는 나를 잔뜩 겁먹은 눈으로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선 안 될 사람이 아니었나요······. 나는 악마를 위해 태어난 괴물이잖아요···!”

흐느끼면서도 분명하게,

엉엉 울면서도 자신의 가슴을 쾅, 쾅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이는 앤젤라.

“나는···. 나는! 잔세스칸스를 불태웠어요! 나 때문에 이웃들은 우리 엄마 아빠에게 돌을 던졌고! 내 동생은! 쓰러진 나를 지켜주려다가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었다고요!”

아이는 둑이 부서진 댐처럼 크나큰 감정, 거대한 감정을, 밀려드는 급류처럼 쏟아내기 시작한다.

“나는 괴물이에요. 나는 죽어 마땅한···. 그런 운명을 타고난 괴물이잖아요···!”

“아니다.”

“아니라면 왜죠! 왜 다들 저만 괴롭히는 건가요. 왜 제가 가는 곳은 어디든,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계속계속 일어나는 거냐고요!”

어깨가 떨려올 만큼 서럽게, 앤젤라 엘런은 어느새 엉엉 울며 울부짖고 있었다.

“난, 태어나면 안 되는 사람이잖아요. 내가 저주받은 인간이라서! 다들 나한테 그러는 거잖아요!”

강한 확신이었다.

그런 자학적인 납득이 없인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던 어린 소녀의, 극단적이고도 광신적인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은, 자기 자신은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사람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건 자책이었다.

이유를 돌리면 쉬웠을 것이다.

부당하고 부조리한 폭력으로, 자신을 억압하고 겁박한 성자, 나아가 세상을 욕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잘못된 것은 내가 아니라 세상이라고, 그리 생각했다면 쉬웠을 것이다.

허나, 이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건 어떤 이유가 있건, 자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 곱디고운 심성이, 강인한 정신력이 되레 이 작은 소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하물며 그 벼랑 끝에서조차 등을 떠밀어 스스로를 죽이게 했다.

다시 말하지만, 확신이었다.

그 외의 이유는 존재할 가능성조차 없다는 듯한 확신.

그러나 그런 말을 지금, 내 눈앞에서 울부짖고 있는 앤젤라 엘런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째서인지 이 소녀가 아주 절실하고 간곡하게 원하고 있는 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그것은 부정.

나쁜 것은 네가 아니라고, 너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지금 앤젤라 엘런이라는 11살짜리의 작은 소녀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말한다.

“너에게는 죄가 없다. 넌 저주받지 않았어.”

소녀가 가지고 있던 확신보다도 더 짙고 강한 믿음을 담아서.

“넌 태어나선 안 될 괴물 같은 게 아니다. 넌 악마 숭배자도, 성녀도 아니잖아.”

단순한 부정을 넘어, 내가 성녀라는 소녀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까지 입에 담아 부정하자 앤젤라 엘런은 한참을 히끅거리며 흐느끼고 있다가도 놀란 눈을 떴다.

이에 나는 그 동그란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향해, 작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넌 앤젤라 엘런, 잔세스칸스 엘런가의 장녀이자 어여쁜 두 동생을 둔 심성 고운 11살짜리 소녀. 그냥 앤젤라 엘런일 뿐이잖아.”

‘거대한 운명’을 타고난다는 건, 혹자에게 있어선 크나큰 축복일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의외로 원치 않았던 축복을 잔인한 저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적지가 않다.

몸속에 백 마리의 요괴를 품고 각성한 백귀야행의 이초희도 그랬고,

뭣도 아닌 전격 방출계 헌터로 각성해, 오직 나만이 ‘제어력’이란 것을 가졌다는 이유로 동료들의 시체 위에 살아남았던 내가 그랬다.

큰 운명은, 거대한 해일과도 같아서, 원하든 원치 않든 휘말릴 수밖에 없다.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운명’의 일방적인 폭력.

내가 고심 끝에 내뱉었던 한마디는,

‘앤젤라 엘런’이, 이 작디 작은 소녀가 그런 ‘가혹한 운명’으로부터 도망쳐도 좋다는 의미의 말이었다.

“히끅···!”

뒤늦게, 앤젤라 엘런의 눈가에는 눈물이 흘렀다.

“흐아앙! 흐애애애앵···!”

지금까진 묵혀뒀던 감정을 단숨에 방류하며 그 반동으로 흘러나온 눈물이었다면, 지금 이 소녀의 눈물은 ‘안심’의 눈물이 분명했다.

이 세계를 위해 ‘기능’하지 않아도 된다.

수백 년 단위의 ‘미래’를 엿보며 줄곧 바라왔던 궁극적인 소망.

그 소망에 닿자, 소녀는 울었다.

2대 성녀로서도, 신의 대리인으로서도 아닌, 그냥 11살짜리의 어린 소녀로서 앤젤라 엘런은 목놓아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자.

이 꿈의 세계는 빛을 뿜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색’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눈앞에 다채롭게 반짝이는 진짜 색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뭇잎은 녹색으로,

달빛에는 시원한 푸르름이,

이 계곡을 타고 흐르는 강물은 졸졸졸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무미건조함에 찌들어 있던 앤젤라 엘런의 ‘세계’는 찬란하고 다채로운 총천연색을 되찾았다.

꿈은,

그 사람의 무의식을 아주 잘 보여주는 창이라고 했던가.

무채색의 세계가 총천연색의 빛을 되찾는다.

그러니 이러한 변화는 분명, 내가 바라마지 않던 해피엔딩과도 일맥상통하는 방향의 변화일 것이 분명했다.

피식,

나는 작게 웃었고 그 직후, 아무런 말도 없이 엉엉, 서럽게 울부짖는 앤젤라 엘런에게 다가갔다.

나는 소녀를 품에 안아 감쌌고, 새삼 이 아이가 정말 작고 빼빼 마른 아이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행이야.”

문득 나의 입에서는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앤젤라 엘런을 2대 성녀로서만 바라보던 나.

그런 내가 이 아이를 잔혹하게 혹사시키지 않고 다른 길을 모색해보자고 다짐하게 된 것 자체가 내게는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띵!

그렇게 얼마나 앤젤라 엘런을 품에 안고 있었을까.

나의 귀에는 청명한 메시지의 알림음이 들려왔고, 눈앞에는 나비의 형태를 한 ‘빛무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바티칸의 ‘주신’이 부여한 신성 퀘스트, ‘새로운 나 만들기’를 완벽하게 저지했습니다!

*당신은 깨어날 수 없는 ‘꿈’에 갇힌 2대 성녀, 앤젤라 엘런을 구원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1대 성녀가 부리던 ‘나비’ 형태의 빛에 휩싸여 있는 퀘스트 클리어 메시지부터,

본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엑스트라 퀘스트 ‘수신의 길’이 클리어되었다는 메시지.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엑스트라 퀘스트 - <수신의 길>

*진행도 (500/500)

*각성자, 이건우 엑스트라 퀘스트 - <수신의 길>을 클리어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지막으로 드디어 내가 ‘사도’가 되었다는 메시지의 선언까지.

<당신은 ‘수신의 사도’입니다.>

차례로, 내 눈앞에 나타난 이 세 가지의 메시지들은······.

-뚝, 뚝뚝, 파아아아!

이내 따스한 온기의 물을 마치 비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

말하자면 내 키보다 조금 위, 높은 곳에서 땅으로 내리는 물이니 그것은 비라고 불러야 하려나.

하지만, 그 비는 따스했다.

마치 지금 이 광경을 따스하게, 어떠한 존재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내리는 비는 따스했고, 저 하늘의 달빛은 더없이 찬란한 광명을 내리며 이 꿈의 세계를 비추었다.

이윽고 점차 흐려지는 세계.

이 꿈의 세계는 물과 빛에 휩싸여 일렁였고, 나는 자연스럽게 드디어, 내가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 되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꿈은 끝났다.

***

홍진웅은 자신의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금세 비릿한 피 냄새가 그의 콧등을 스치고 지나갔으나 그는 고통이라는 원초적 감각보다도 더 거대한 ‘불안’을 실감하고 있었다.

40시간이다.

무려 하루하고도 한나절이 더 흘렀지만, 상황은 악화하였다면 악화하였지 결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았다.

-피이이잉!

하늘에는 폭격이 수 놓이고,

마력 덩어리는 말 그대로 미사일을 방불케 하는 기세로 날아가지만,

-쿠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포효와 함께, 그것들은 모두 허공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헌터 협회의 본부를······.”

비참하고 비루하게도, 되찾지 못했다.

그 원인을 꼽자면 단연 눈앞의 거인.

휴거교의 시뻘건 저주의 마법진으로부터 일어선 아주 거대한 형상의 고깃덩어리 괴물.

확인된 것만 총 78명.

그만큼의 ‘전도사급’ 신도들이 인질로 시간을 끌고 소환한 희대의 마물.

“...‘악마’에게 빼앗길 줄이야!”

본부 탈환 작전은 얼핏, 금방 성공할 것 같았다.

저 하늘 위에서 지금도 허공을 유영하고 있는 백귀야행 이초희와 그녀의 심복 대요괴 ‘알데이란’이 이목을 사로잡고,

그 틈에 협회의 요원, 홍진웅을 비롯한 ‘검제의 제자들’, 선발 지원군, 이윽고 수도방위사령부의 특임대가 힘을 합쳐 본부 내부에 잡혀있던 인질을 모두 구해낸 것이다.

정말 한 사람도 빠짐없는 구출이었다.

거기에 ‘인천’에 주둔지를 둔, 대한민국의 1등 용병대, ‘황해’의 등장으로 작전 시작 단 8시간 만에 휴거교의 총력전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 믿었다.

허나, 그 자체가 함정이었다.

인질 구조를 우선해 ‘전도사’들을 유인하느라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 못했던 고등급의 헌터들.

거기에 구석구석 숨겨둔 인질을 모두 구해내겠다는 신념으로 ‘진입팀’이 욕심을 내며 지체된 시간.

바로 그 자체가 휴거교의 노림수였다는 걸 눈치챘을 땐,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협회 본부 건물, 그레이 타워로부터 반지름만 어림잡아도 10m에 달할 만큼 거대한 피의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이윽고 지각을 붕괴시키며 일어서는 건, 지난번 마포대교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프랑스 총리의 권속, 스카이 타이탄을 방불케 할 만큼 거대한···.

새카만 비늘로 온몸을 뒤덮은 거인이었다.

「경배하라.」

「경배하라.」

「경배하라.」

울려 퍼지는 전도사들의 목소리.

이윽고 거인은, 신에 대한 조롱을 읊듯.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멘아 다이나옵사있 히원영 께지버아」

무슨 말인지는 모른다.

「이광영 와세권 와라나」

허나, 확실한 것은 그 ‘악마’가 그것을 한 소절, 한 소절 읊을 때마다···.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서열, 423위의 악마. ‘그레모리’가 ‘마경(魔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각성자들은 지금 당장 반경 300m 밖으로 도피, 혹은 그레모리의 마경 선포를 저지해야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홍진웅이 살면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던 기괴한 메시지 목도하게 되었다.

“마, ‘마경(魔境)’이라니!”

“저게 무슨 소리야?!”

“자, 잠깐! 지금 메시지가 저걸 ‘악마’라고 부른 거야?”

“아, 악마 소환이라고?!!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일순간에 경악이, 성공적인 작전을 완수하고 복귀한 이들의 얼굴을 지배한다.

허나, 그러든 말든 메시지가 공인한 ‘악마’는 입을 열었다.

「서소옵시하구 서에악 만다」

-치직!

하늘이 갈라지는 듯했다.

아니 갈라진다기보단, 허공에 균열이 일고, 그 균열이 하늘에서부터 땅으로 뻗어 내려오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어, 어이! 홍진웅 중위! 휴, 휴거교 전담의 스페셜 리스트는 자, 자네잖나! 어떻게 해야 할지! 얼른 대책을 강구해!”

그러자, 눈에 띄게 당황한 수도방위사령부의 김대근 대령이 홍진웅의 어깨를 잡고 뒤흔들며 그를 독촉했다.

아비규환.

언제나 예측 불허인 휴거교의 변칙구에 된통 당한 것도 어지러운 상황이었는데, ‘악마 소환’은 또한 예상치 못한 비수였다.

악마, 희생, 분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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