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90화 (90/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90화.

“필요한 일이었으니까요.”

담담히,

지극히 무덤덤하게 정말 인간의 마음을 잊은 기계처럼 답하는 앤젤라 엘런.

거기까지 들은 시점에, 나는 마지막으로 지난 12일간, 떠올려 온 자신의 추측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을 확인하고자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지···. 넌, 얼마나 많은 미래를 보았지?”

“제가 각성과 동시에 보게 되었던 미래는 총 4백하고도 72가지의 미래였습니다.”

무려, 472가지의 미래.

그런 수많은 미래를 엿본 뒤, 그녀는 어째서 이런 차가운 기계와도 같은 인격이 되었는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튀어나왔다.

“그 모든 미래 중, ‘현실 세계’의 인류가 살아남는 미래는?”

“하나. ‘우리’가 살아남는 세계는, 오직 하나 뿐입니다.”

기계처럼 차분하게 묻는 말에 답하는 앤젤라 엘런.

허나, 그런 작은 소녀를 마주한 나는 참담한 표정으로 탄식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그렇다면 지금의 너는···.”

앤젤라 엘런은 주저 없이, 이번에도 차디찬 답을 내놓았다.

“살아남은 미래의 인격입니다.”

역시 그랬나···.

나는 그런 말을 작게 중얼거리며, 허탈하다는 듯 허공을 응시했다.

미래를 보는 자.

사실, 미래 예지라는 스킬을 가진 헌터는 의외로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1세기 동안 무려 그 수만 스물둘.

물론, 상대적인 수치로만 보면 한없이 적은 수치이지만,

그 권능과 영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녀와 동급’의 권능을 행사할 수 있는 헌터가 세상에 여럿 존재한다는 것은, 먼 과거 구세대 헌터들 사이, 매우 놀라운 소식이었다.

허나, 문제는 머지않아 발생했다.

미래를 보는, 혹은 예지몽을 꾸는, 또는 추상적으로라도 앞날을 읽어내는 스킬을 가졌던 헌터들은 ‘단 하나’의 예외 없이, 제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그로 인해 밝혀진 정보는 놀랍게도,

‘미래’를 조금이라도 엿보는 스킬의 보유자라면 누구라도, 언제나, 새로운 미래를 엿볼 때마다 ‘그 미래에서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생생하게 목도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즉,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그것도 각기 다른 새로운 미래에서의 죽음을 더없이 생생하게, 더없이 확실하게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보통의 인간에게는 고작 ‘하룻밤’에 불과한 시간일지라도, 그들에게는 몇 달 아니 수년, 자칫 잘못 발을 들였다면 수십 년의 미래를 체험하고 오게 되는 것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고작 하루 이틀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

인간의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다.

허나, ‘미래 예지’라는 스킬은 본래부터 구조적으로 각성자를 정신을 말소시키는, 아주 효과적인 자살폭탄 버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 그 누구보다, ‘바티칸의 성녀’는 더 길고, 더 생생하고, 더 분명한 미래를 체험하게 된다.

선례인 1대 성녀 다나 메이어는 특별한 인간이었다.

그녀는 무려 천 가지 이상의 미래를 접했음에도 전혀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많은 이들은 그저 ‘신성력’이 정신을 보호해준다는 추측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고, 모두가 2대 성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추론했다.

허나,

만약에 말이다.

정말 만에 하나라도, 1대 성녀 다나 메이어가 유독 특별한 인간이었을 뿐,

본디 ‘신성력’에 그 어디에도 정신을 보호해주는 힘 따위가 없다고 한다면···?

다나 메이어와 달리 앤젤라 엘런에게는, 수십을 넘어 수백 가지의 미래를 보고, 제정신을 유지할 능력이 없었다고 한다면···.

결과,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지우고, ‘감정’을 으스러뜨리고, 그저 미래에서 본 것을 현재에서 읊어줄 뿐인 기계가 되는 것 말고는 정신을 유지할 수단이 없었다고 한다면?

단순한 가정일 뿐이었다.

다나 메이어를 보며, 전생에 보고 들은 것들을 거칠게 기워 붙여, 나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몇 개의 가설을 덧붙여 만든 그냥 그런 ‘가정’ 말이다.

“그게 네가 모든 미래를 보고 택한 방식인 건가.”

“앤젤라 엘런의 정신은 이미 스물세 번의 자살과 함께 말소되었습니다. 고로, 저는 선택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습니다.”

허나, 그 가정은···.

“그렇다면 지금의 너는, 뭐지?”

“현재의 저는 그저,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최선의 미래’를 향하는 길을 제시할 뿐인 존재. 그저 그뿐인 생명체입니다.”

이 차가운 심장을 가진 앤젤라 엘런과 더 대화를 나눌 때마다, 정말 소름이 돋을 만큼 가정이 맞아 떨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앤젤라 엘런이라는 소녀의 꿈에 직접 뛰어들기 전이었다면,

나는 눈앞의 존재, ‘최선의 미래’로 향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2대 성녀’를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애초에 내가 ‘악역’을 자처하면서까지 앤젤라 엘런을 각성시키려 했던 이유 자체가 성녀로서 확실히 ‘기능’하는 앤젤라 엘런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즉, 내 면전에서 고요히 침묵을 일관하며, 나를 그저 관망하고 있는 앤젤라는, 내가 바라마지 않던 완성형의 ‘2대 성녀’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때 내가 취해야 할 반응이란 뭘까.

행복함?

혼자서도 굳건히 각성해준 앤젤라에 대한 고마움?

눈앞의 앤젤라 엘런은 네비게이터다.

전생을 아는 나보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훤히 꿰뚫고 있는 마법의 수정구 같은 존재.

이 소녀가 말하는 대로 그저 행동하기만 하면, 지금부터 앞날의 문제는 모두 해결되는 것이다.

뼈를 깎는 노력도, 두통을 일으키는 고민도 모두 내려놓고, 나는 나 자신 하나에 비로소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건 좋은 일이었다.

그건 충분히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었으며,

수천수만의 각성자들이 각자 알맞은 ‘기능’을 정확히 이행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 분명했다.

허나,

그런데 말이다.

무언가 하나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앤젤라 엘런.”

이미 최선의 미래로 향하는 네비게이터가 된 소녀가, 또 한 번 세계를 구원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그로인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딱 한 사람.

감정을 잃고, 마음을 망각해버린 앤젤라 엘런을 제외한 모두가 말이다.

“그렇다면 넌···.”

목젖까지 차오른 감정이 언제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만을 찾아 헤매는 나의 이성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성적으로, 난 눈앞의 앤젤라 엘런을 ‘이용’해야 함이 맞았다.

그것은 분명 더 좋은 미래로 향할 지름길이었으며, 그 미래는 분명 절대다수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미래일 테니까.

허나, 이성을 강하게 짓누르는 감정은, 끝내 나의 입을 멋대로 움직이고야 말았다.

“그 살아남은 미래에서, 너는 행복한가.”

이건, 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왜 굳이 편한 길을 놔두고, 보다 고되고, 더욱 아픈 가시밭길을 선택하느냔 말이다.

“행···복?”

백발의 앤젤라는 나의 질문에 그런 말을 읊조렸다.

마치 그런 단어는 생전 처음 들어본다는 것처럼, 의아한 듯,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면서···.

그러나 그 담백한 반응이, 애처롭고 서럽게 눈물을 펑펑 흘리는 아이보다 구슬퍼 보이는 까닭은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망할···.”

나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바라야 할 감정에 의문을 표하는 소녀를 보며,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그 말의 명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조금의 부연설명을 덧붙여주신다면···.”

뒤늦게, 내게 ‘행복’이란 것에 대해 첨언을 요구하는 백발의 앤젤라 엘런.

“됐다.”

하지만 나는 그 어린 소녀의 말을 끊으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다른 건 다 잊어도 좋다. 앤젤라 엘런. 허나, 딱 한 가지만은 기억해라···.”

돌연, 나는 몸을 숙이고 눈높이를 맞춰 어리고 여린 성녀를 지그시 응시했고, 나는 아직도, 그저 무표정할 뿐인 소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나는, 너를 구한다. 능률이니, 효율이니, 합리성이니, 효과적이니,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은 이제 상관없다.”

“...그건,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비효율적인···.”

“알아. 나도 안다고···. 이건 머저리 같은 판단이지, 이건 바보 같은 행동일 거야. 그리고 인류 절멸의 미래를 막겠다는 나 자신의 갈망과도 전혀 이어지지 않는 머저리 중의 머저리의 결단이겠지.”

숨을 들이쉰다.

흥분한 심장이 쿵쿵 가슴을 때리고, 나는 한차례 차분히 숨을 내쉰 뒤에야 다시금 말을 이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말이다. 꼬맹아.”

내가 응시하는 것은 앤젤라 엘런의 눈동자.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반짝이지만, 아직 생기라는 것이 깃들어 있질 않았다.

“너는 최대한 다수의 인간이 살아남는 세계를 최선의 미래라 말했지만, 나에게 그런 미래는 결코 최선의 미래가 아니다.”

“그러면···?”

아주 조금, 내가 지금의 앤젤라 엘런으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입을 열자 드디어 ‘의문’이란 것을 품기 시작하는 소녀의 눈.

나는 이 같은 변화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나서야 입꼬리를 조금 올리며 손을 뻗었다.

“나는 네가 목놓아 울 수 있는 세계를 원한다.”

슬프면 토라지고,

울고 싶으면 운다.

그랬다가도 배가 고파져 새벽녘에 몰래 방에서 나와 냉장고에서 음식을 찾아 먹고,

그 모습을 들켜 부끄러워하고,

시답지 않은 일에 울고, 웃고,

효율적이지도, 능률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더라도, 그것이 세상 전부인 양 울고 떼쓸 수 있는 세계.

아이가 아이로 있을 수 있는, 그런 세계.

-텁.

나는 양발로 땅을 딛고 서 있음에도 그 키가 내 허리춤 밖에는 오질 않는 앤젤라 엘런의 백발을 쓰다듬었다. 나는 말했다.

“꼬맹이가 꼬맹이답게 울고 웃을 수 있는 세계를, 나는 그런 미래를 원한다.”

“그런 미래는 없······.”

“없겠지. 나도 안다. 그런데 말이다. 애초에 지금 네가 살아남은 현재 역시, 1472가지씩이나 되는 미래를 엿본 다나 메이어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미래였다.”

의문, 의문, 의문.

복잡한 컴퓨터 코딩이 뒤엉켜 오류를 일으킨 것처럼 그저 작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수많은 말들을 입안에서 굴리는 앤젤라 엘런.

나는 그런 소녀를 보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1대 성녀, 다나 메이어는 나를 줄곧, ‘운명을 뒤엎는 자’라고 불렀다.”

그것도, 단순한 호칭이라 생각했거늘.

그 한 세기를 넘게 살아온 능구렁이의 말 하나, 하나에는 큰 뜻이 담겨 있었음을 이젠 알 수 있다.

“즉, 그 성녀님은 원했던 거야.”

가만히 놔두었더라도,

내가 바라던 모습 그대로의 앤젤라 엘런을 마주하게 되었을 내 앞에, 굳이 다나 메이어는 모습을 드러냈고 퀘스트를 주었다.

유도한 것이다.

앤젤라 엘런의 ‘이성’이 지금보다 더 많은 ‘감정’을 가진 자신을 깨부수기 전에, 티끌이라도 감정이란 것이 남아 있는···.

앤젤라 엘런과 내가 이렇게 마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윽고 이 모든 사실이 가리키는 다나 메이어의 의도는 단 하나로 귀결된다···.

그 ‘의도’를 나는 이제 이해하고 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순수한 ‘구원의 갈망’이었다는 것을.

“내가 널, 구원해주길 말이야.”

그제야, 적어도 두 박자는 뒤늦게···.

앤젤라 엘런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

황량한 밤이었다.

겨울의 밤바람 자체가 묵빛으로 반짝인다 해도 믿을 만큼, 별빛 한 줌 지상을 내려다보지 않는 차디찬 밤.

잔세스칸스로 향하는 높은 산맥의 지름길.

이름 없는 계곡으로 수많은 사람의 그림자가 진군하고 있다.

-절그럭, 절그럭.

은은하게 빛나는 ‘신성 갑주’로 전신을 무장하고, 풀 플레이트를 입고 있음에도 말이 달리는 것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던 존재들.

그들은 다름 아닌 잔세스칸스의 참극을 일으키는 장본인들.

성기사와 성자였다.

“웬 놈이냐!”

맨 앞에서 질주하던 성기사 하나가 목소리를 크게 높이며 악을 질렀고, 그에 맞춰 성기사들은 능숙하게 대형을 갖추며 돌연 눈앞에 나타난 괴한에게 적대적인 의사를 표방했다.

밝은 빛에 둘러싸인 성기사들과 달리, 그저 검은 그림자에 녹아든 것 자연스럽게 우뚝 서 있는 한 사람.

“마지막으로 묻겠다. 웬 놈이냐.”

경고는 이것으로 끝이라는 듯,

두 번째 질문과 함께 성기사들은 모두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허나, 그 성기사들의 진군을 막아선 자는 한마디의 말도 없이, 흉흉한 오러가 풀풀 풍겨 나오는 붉은 검을 손에 쥘 뿐이었다.

-파지지지직!

허공으로 비산하는 시퍼런 스파크.

이내 붉은 오러와 푸른 전격은 단숨에 합을 이루었고 눈앞의 그림자, 이건우는 시퍼런 두 눈동자를 빛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부터 이 앞은, 통행금지다. 만일 이 길을 지나가고 싶다면, 네놈들은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아이가 아이로 있을 수 있는 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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