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87화.
본래 계획은 이러했다.
네덜란드의 도시 잔세스칸스.
앤젤라 엘런이라는 그 작고 여린 소녀가 현실과 꿈에 대한 인지를 역전시켜가면서까지 안주하고자 했던 ‘꿈’은 분명, 평화로운 꽃과 풍차의 도시였으리라.
죽지 않은 주민들,
불타지 않은 농작물과 가축.
가족이 살아 있고 이웃이 남아 있는 그 영원불변의 ‘꿈’속에 앤젤라 엘런은 살고 있으리라 여겼다.
깨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삶은 하루아침에 붕괴하고 자신은 갑작스럽게 악마 취급.
앤젤라 엘런은 그저 착실히 살고 있었을 뿐인데, 세상은 그녀 자신의 목숨을 제외한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 모든 부조리함을 주도한 것은 물론 치졸한 성자와 성기사들이었지만, 앤젤라는 잔혹한 현실을 인지하고 꿈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었다.
‘말도 안 돼!’
회의 당시, 남궁연은 나의 주장을 극구 반대했다.
아무리 앤젤라의 ‘꿈’이 단순한 환상일지라도,
그 환상을 자각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할지라도···.
평화로운 잔세스칸스를, ‘내가’ 불태우는 일은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성기사들의 악행을 건우가 되풀이해. 그래서 저 아이가 깨어나고, 흑룡인지 불사왕인지의 계략도 막을 수 있게 됐어. 근데, 그런데 있잖아. 건우야···.’
‘그랬다간, 앤젤라에게 저는 철천지원수처럼 여겨지게 되겠죠.’
거의 울 것처럼 말하던 남궁연에게, 나는 담담한 어조로 그녀가 마저 하지 못한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러니까! 그건 아니잖아···! 그 아이를 살리겠다고 죽을 둥 살 둥 노력한 사람이 누군데, 구태여 건우가 원망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그러자 곧바로 언성을 높이며 억울하다는 어조로 말하는 남궁연.
끝까지 나를 생각해주는 그녀에게 감사하는 한편 나는 아무런 주저 없이 말했다.
‘필요한 일입니다.’
단순히 제정신을 차리는 것으로는 안 된다.
앤젤라 엘런이 현실을 자각한 후에도, 미친 듯이 ‘백염(白炎)’ 수행에 몰두해줄 그 계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건우야···. 그건 아니잖아.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져도, 건우 네가 너무 억울하고, 슬픈 일이 되는 거잖아···!’
남궁연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처럼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허나, 나는 내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원수가 되는 것도, 그 작은 아이만의 악마가 되는 것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
‘흑룡’의 태동이 곧 ‘전세계 합동 레이드’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모르겠는가.
‘흑룡’의 위협은, 그리고 그 흑룡의 사체로부터 탄생할 ‘본 드래곤’의 공포는 다른 것을 따지고 있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허나, 아직까진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해도 의미가 없는 일이기에, 나는 그저 고집불통의 지휘관이 되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분명 그럴 심산으로 나는 앤젤라 엘런의 ‘꿈’으로 뛰어들었는데···.
“이건 대체···.”
눈앞의 펼쳐진 광경은 나의 예측과 너무나도 달랐다.
불과 피 그리고 비명.
눈앞의 광경을 세 단어로 정의하자면 딱 그렇게 되리라.
“거, 건우야 이건 대체···.”
함께 침대에 누울 때까지만 해도, 끝까지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남궁연도 펼쳐진 광경에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신성력은, 앤젤라의 정신 붕괴를 막기 위해서, 안락하고 평화로운 환상을 보여주고 있던 것이 아니었나···?!’
거대한 당혹감이 훅하고 뱃속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내 심장을 무겁게 누르는 기분이다.
이게 어찌된 걸까.
이 광경이 앤젤라 엘런의 정신 붕괴를 막기 위한 ‘꿈’이라고?
이 살육의 공간이 앤젤라 엘런에게 있어 평온함이라고?
아닐 것이다.
“꺄아아아아아악!”
“왜, 왜 이러십니까요! 성기사 나으리!”
“저희는 죄가 없습니다!”
“사, 살려주십시오!”
뭔가 잘못된 것이다.
“악마라니요! 저희 마을에는 그런 불결한 것은 없습니다.”
“저희는 아닙니다! 저희는 아니에요!”
“제발! 제발 분노를 거둬주십시오···.”
“아아아아악!”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앤젤라!!”
“앤젤라를 찾아!”
“마을 사람들이 더 죽는 걸 지켜만 볼 셈이야?”
“앤젤라를 잡아!”
“성자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찾아!”
무엇이, 앤젤라 엘런으로 하여금 이러한 지옥을 ‘꿈’꾸게 만든 것일까.
“성자님의 말씀이 틀렸을 리 없어.”
“우린 속은 거야. 그, 그래! 우린 속았을 뿐이라고!”
“더러운 것! 그 가족들도 똑같아! 더러운 술수로 우릴 속인 게 분명해!”
“죽여야 해!!”
“그 가족도 모두 다 죽여!”
“모두 십자가에 매달자”
“불태워야 해!”
광기가,
날카롭게 벼려진 농기구의 날을 타고 나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거, 건우야! 저, 저기!”
나는 서둘러 빠진 퍼즐 조각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아주 급한 목소리의 남궁연은 내 소매를 꾹꾹 잡아당기며 경악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에 따라 시선을 들어 올리자, 그곳에는 이 ‘꿈’의 주체, 앤젤라 엘런이 있었다.
머리카락은 옅은 금색.
눈동자는 흔하디흔한 유럽인의 눈동자, 색이 바랜 녹색이었지만, 그 모습은 그 아이는 앤젤라 엘런이 분명했다.
아이는 자신보다 더 작은 아이를 등에 업고, 사색이 된 얼굴로 도망치고 있었다.
밤이 된 하늘.
손에 횃불을 들고, 낫과 작살을 틀어쥐고 다가오는 잔세스칸스의 주민들.
그들은 모두, 성기사의 협박에 굴복하여 엘렌 가족을 찾고 있다.
“건우야···. 어떻게 할 거야. 저, 저러다 앤젤라가 다치겠어!”
그리고 남궁연은 미간에 힘을 주고 생각에 잠긴 내게 선택을 독촉했다.
무엇이 답일까.
모르겠다.
어쩌다 앤젤라의 꿈이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부터 알아야겠지.
그렇다면 방관할 텐가.
‘꿈’의 주체인 앤젤라의 죽음이, 이 ‘세계’에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는지 그저 지켜보고자 방관할 텐가.
이론상으로는 맞지 않는가.
이 ‘꿈’에서의 참극은, 분명 앤젤라 엘런이 현실을 자각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테니까.
자신의 손을 더럽힐 이유가 없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이 상황은 보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 되는 건가.
그래도 되는 걸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건우야!”
“꺄아아악!”
옆의 남궁연은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고, 멀찍이 앞서 도주하던 앤젤라는 새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찾았다!”
“앤젤라를 죽여!”
“산으로 간다!”
도망치는 아이와 뒤를 쫓는 광기.
아이에게 야산의 비탈길은 힘겹다.
이미 몇 번이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인지 아이의 무릎은 이미 다 까졌고, 핏방울이 맺혀 있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계속 다리에 힘을 주는 것은, 등에 업고 있는, 앤젤라와 똑같은 생김새의 아기···.
아마 자신의 동생을 위함이었으리라.
“하···.”
속이 매스꺼웠다.
아무리 환상이라도 저 무고한 아이가 날붙이에 꿰뚫려 죽어가는 꼴을 지켜본다 상당하니 구토가 쏠리는 기분이었다.
파직-!
손끝에서 날카로운 스파크가 튀겼다.
“그래···.”
이런 한심한 짓거리는 결코 내 방식이 아니었다.
-파지지지지직!
결심이 선 나는 곧바로 팔을 허공에 내뻗었고, 거친 낙뢰는 멀찍이 떨어진 아이, 앤젤라의 바로 등 뒤까지 다가갔던 이들을 일제히 감전시켰다.
“그그그그그그극!”
“으으으으귺!”
농기구를 들고 있던 자들,
그리고 그들과 거리가 가까웠던 자들 모두가 터벅, 터벅, 바닥에 쓰러졌다.
가만히 멈춰 있을 것만 같던 내가 움직이자, 혼자서라도 앤젤라를 구하기 위해 뛰쳐나갈 자세였던 남궁연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꿈’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너무 독불장군 같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남궁연은 내가 자신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줬다 여겼는지 꽤나 감동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하, 우선 어쩌다 꿈이 이렇게 되었는지를 당사자에게 묻고, 이후 행동 방침은 유동적으로 정하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남궁연의 기대에 응하게 된 것 같았지만, 아직도 난 정녕 필요하다면 앤젤라 엘런의 악마가 될 마음이 남아 있었다.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는 전적으로 앤젤라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다.
어찌 됐건 나의 목표는···.
2대 성녀를 이 ‘꿈’으로부터 깨워 현실로 데리고 오는 것이니까.
그러한 결심을 마음속에 품고, 서둘러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지이이잉!
새하얀 빛.
내가 거대한 낙뢰를 떨어뜨린 지 단 3분도 지나지 않았거늘.
아주 거대하고 굵직한 빛줄기는 나와 함께 달려가고 있던 남궁연을 향해 날아들었다.
“읏?!”
갑작스러운 습격에 놀라면서도, 동시에 맑은 물처럼 푸르른 기운을 넓게 발산하는 남궁연.
‘성녀’로 거듭나며 자연스레 터득했다는 ‘물빛 결계’가 분명해 보였다.
-파지지직!
허나, ‘물빛 결계’와 흰 빛줄기가 닿기 직전, 나는 몸속의 생체전기를 크게 끌어올려 쏘아진 빛의 근원을 향해 방출했다.
굽이치는 파도와 같이 질주하는 전격.
-쿠르르릉!
허공을 찢는 굉음이 울려 퍼지고, 새하얀 빛이 나타난 곳에서는 익숙한 인형이 나타났다.
“흐흐흐. 뭡니까. 당신들은. 교황이 보낸 히트맨인 겁니까? 하지만, 아무리 능력 있는 히트맨이라도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습니다.”
특유의 오만한 눈빛.
이 같은 피와 비명과 불의 현장에서도 결코, 당황하지 않는 저 태평함.
터벅, 터벅,
우리의 눈앞까지 다가온 자는 다름 아닌···.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
이 잔세스칸스 참극의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 성자였다.
그제야, 나는 이 ‘꿈’이 단순한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뭔가 잘못된 것이다.
마르쿠스는 말했다.
이 참극의 현장에 성자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는 마르쿠스 본인도 모른다고.
마찬가지로 앤젤라 엘런 역시 성자의 존재 여부 따위를 신경 쓸 정신은 없었으니···.
이게 만약 앤젤라 엘런의 독자적인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꿈’이었다면, 성자라는 인물이 존재할 리가 없는 것이다.
“하! 역시 얼굴이 너무 알려져서 곤란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성자. 그런데···. 초면에 위대한 성자를 낮춰 부르다니. 당신은 히트맨이 아닌 미치광이인 겁니까!”
더군다나 눈앞의 성자는, 꽤 재현된 완성도가 높다.
류팅 공항에서도 성자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모습만을 반쯤 뜬 눈으로 지켜봤던 앤젤라에게 이런 성자를 구성하기란 불가능.
즉, 이 ‘꿈’은 앤젤라의 꿈이 아니다.
그러면 앞뒤가 맞는다.
추측할 수 있는 원인은 두 가지.
하나는, 기절해 있던 앤젤라에게 성기사들이 거침없이 퍼부었다는 ‘저주’의 효력.
다른 하나는, 이 긴 시간 동안 아직도 나타날 생각이 없는 ‘불사왕과 그 종복들’ 중 하나가 어떠한 손을 썼다.
“조금만 곱씹어봐도 비약이 심한 추측이라는 건 나도 알지, 그래도······.”
“이봐! 내 말 안 들립니까? 동양의 히트맨. 좋은 말로 할 때 꺼지시란 말입니다. 이곳은 당신의 무대가 아닙니다!”
-촤악!
나는 백염이 활활 타오르는 기다란 빛 채찍을 꺼내 드는 성자를 보며 피식 미소짓고는 말했다.
“나로서는 솔직히 이편이 더 마음에 드는군.”
그저 단순히 눈앞의 ‘악’을 처단하기만 하면 된다.
단순해서 좋지 않은가.
결심이 선 나는 한껏 위협적인 언행을 선보이는 성자에게 대놓고 조소를 날리며 허리춤으로 손을 옮겼다.
-치이이이익!
거대한 스파크, 굵직한 뇌광을 내뿜는 허공.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허리춤에서 붉고 흉흉한 오러를 질척하게 내뿜는 한 자루의 검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혈검?!”
이에 눈을 크게 뜨고 당황하는 성자.
나와 구면인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다.
즉, 눈앞의 성자는 분명한 가짜.
진짜마저도 압도했던 내가.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진 성자에게 굽히고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다.
“그, 그렇다면 네가, 한국의···?!”
“알 거 없다.”
놈이 ‘본디오 빌라도’를 알아보며 복잡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자빠진 그 순간,
나는 짧은 말과 함께 전신의 힘을 한점에 모아, 검을 뽑았다.
발검(拔劒) 제1형.
황무지의 꽃.
핏빛 오러의 오러는 이 거짓된 세상에 진짜 수평선을 새겨넣었다.
***
거무죽죽한 새벽이었다.
왠지 모르게 홍진웅의 엄지에 저림이 나아지질 않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직감’이 경종을 울리는 깊은 밤.
끝내 홍진웅은 번개 중대의 개인 침실에서 나와 당직 근무자와 대화라도 나눌 심산으로 행정반을 찾았다.
그런데···.
-위이이이이이잉!
부대 전체에 울리는 거대한 사이렌 소리.
그와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수의 핫라인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신호음을 내뿜기 시작했다.
“뭣?!”
역시, 엄지가 저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벌컥!
“무슨 일이야!”
당장 홍진웅이 행정반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이미 핫라인 수화기를 귀에 대고 사색이 되어있던 간부와 방송기기의 전원을 올리던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병사, 본디 1군단 소속이었던 정보 수집계 헌터 박 병장은 홍진웅의 급작스러운 등장에 잠시 놀라 눈을 크게 떴다가도, 금세 이성을 되찾고는 말했다.
“홍 중위님! 스, 습격입니다!”
“뭐?!”
“휴거교도 대량 출현입니다! 그 수는 놈들로 치면 몇 안 되는 수백이지만! 보고에 따르면 목격된 모든 휴거교도들은 ‘전도사’ 급 이상의 신도만 입는다는 성복을 입고 있다었고 합니다!”
흡혈귀에게서, 존재할 수 없는 ‘권능’을 얻는다는 휴거교도.
그런 ‘전도사’급 괴물들이 수백이라면···!
이건 ‘거대 게이트’가 둘이나 동시에 나타나는 것 이상의 대재앙이 될 것이 분명했다.
“위치는! 놈들의 행방과 목격지점은 어디지?”
이를 악물면서도 홍진웅은 침착하게 물었다.
‘전도사’급이 수백이라니.
놈들이 어딜 향하건, 그곳은 지옥이 될 것이다.
설마 했던 ‘총력전’.
‘휴거교’는 근 반년간, 지속적으로 자신들과 상극에 위치에 있는 성전사, 흑마도들을 맞이하며 놈들이 준비해온 ‘기괴한’ 계획들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10년,
종교와의 전쟁 이후, 무려 10년간 지하에서 살아왔던 그들이 돌아왔음에도 아무런 성과를 거둬내지 못하자 놈들은 작정한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흩어져서 10년간의 준비가 모두 흐지부지될 바에 차라리 전국 각지에 퍼져 있던 ‘권능’의 보유자들을 모아 일을 벌이자고 말이다···!
‘언젠가는 터질 폭탄이었다.’
홍진웅은 갑작스러운 ‘휴거교’의 기습에 놀람과 동시에 그간 자신이 해왔던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을 도리어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그게···.”
홍진웅은 당황하여 마이크를 잡고 말을 더듬는 박 병장의 어깨를 잡고, 자연스럽게 마이크 전원을 올리고는 말했다.
“다시 침착하게 우선, 상황을 보고하도록.”
“에, 예! 알겠습니다. 습격자들은 현재, ‘한국 헌터 협회 본부’로 사용되는 그레이 타워를 습격 중입니다!”
“협회 본부를?”
“예. 그렇습니다!”
홍진웅은 충격적인 소식에 눈을 크게 뜨는 한편, 속으로는 침착하게 이 방송을 듣고 있을 번개 중대원들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질문을 떠올렸다.
“상황은?”
“부협회장님과 협회장님의 부재로 본부는 반쯤 점거당한 상태라고 합니다. 인질의 수는 어림잡아 300명입니다!”
“그런데 수도방위사령부에서는 왜 출동하지 않는지 보고받은 정보가 있나?”
“현재 본부를 직접 습격하는 ‘전도사’들의 수는 약 일흔, 아무래도 첫 목격자의 증언이었던 수백과 차이가 커, 우선 수비를 견고히 하고 출동할 거라 했었습니다!”
목격 정보는 수백,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인원은 일흔 가량.
즉, 휴거교도가 갑작스레 시작한 ‘총력전’조차 양동작전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뭐가 됐건 자기 보호가 더 우선이란 말이군. 하여간, 그 겁쟁이 늙은이들은···.’
참담한 음색을 속으로 삼키며, 홍진웅은 당장 이 번개 중대의 지휘관 대리로서 해야 할 판단을 내렸다.
“김장훈 소위에게 긴급 복귀 명령을 내리고, 그 외 모든 병력은 훈련대로 중대 방어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 그럼 지원 요청은 무시하는 겁니까?!”
홍진웅의 경악스러운 발언에 박 병장이 놀라 묻자, 홍진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출동하는 건, 나와 현재 내게 명령권이 있는 ‘검제의 제자들’이 전부다. 나머지 부대 인원들은 모두 적확한 인원 분배를 통해 중대를 보호할 수 있도록.”
수도방위사령부와 달리, 현재 번개 중대는 국내 전담팀과 전사장 마르쿠스 그리고 현재로서는 그나마 네임드라 부를 수 있는 ‘수검류’의 김장훈 소위가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애당초 번개 중대의 위치는 공식적으로 비공개 상태였고, 여차하면 757헬기부대나 ‘암행’에 연락을 취하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다.
혹자는 이 같은 인원 배분을 두고 협회의 위기에 너무 안일한 대처를 하는 것 아니냐 묻겠지만, 이곳에는 현재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2대 성녀’가 있다.
‘하필 앤젤라 엘런이 국내로 들어온 직후, 이런 습격이 시작된다고?’
어딜 어떻게 보아도, ‘휴거교’의 목적이 따로 있다고 판단해도 좋을 상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뒤가 구리다.’
홍진웅은 당장 무구를 챙기며, 이건우의 부재를 대비해 스스로 강구해두었던 플랜 A, 플랜 B를 되새김질해보기 시작했다.
필요한 세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