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84화.
757헬기부대의 마공학 헬기들은 어둑한 밤하늘을 가르며 질주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라고도 여겨지는 황혼의 시기가 끝이 나고 달의 서늘한 빛이 드리워질 때쯤, 서해를 가로지른 헬기는 우리 번개 중대의 부대시설에 도착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소령님”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건, 사각형의 안경을 매만지던 홍진웅 중위였다.
그는 이번 작전에서 나와 ‘암행’의 무전을 함께 들으며 이곳 번개 중대의 ‘광역 무전망’에서 바티칸으로 향한 일행의 통솔을 맡아주었다.
“바티칸···.”
“팀 볼트와 팀 헤르츠는 각각 교황파의 수호지구와 밀항을 통해 각각 귀환을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한차례 휴거교의 테러가 있었으나, 7여단과 소령님의 번견들의 활약으로 19시간 만에 진압되었습니다.”
피로에 찌든 내가 입을 열자마자 그런 내 의중을 눈치채고 현황을 보고해주는 홍진웅.
하여간, 전생에도 이런 업무 처리 능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만큼 그는 나의 기대 이상으로 일을 해주고 있었다.
또한, 방금 홍진웅 중위가 언급한 ‘번견’이란 나와 노예 계약을 맺었던 류자키와 검제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어디서 사고 치지 말고 홍진웅 중위의 말을 잘 듣고 있으라고 말해두었을 뿐인데, 홍 중위는 그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홍 상병님.”
이에 내가 장난스럽게 그의 어깨를 콕콕 찌르자 그는 잠시 피식 미소를 짓더니 다시 안경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상병이 아니라, 중위입니다.”
막내 성전사 메리는 이번 바티칸 습격 작전의 핵심 인물이었기에 현재는 바티칸으로 향했고,
국내의 큰 골칫거리는 점차, ‘휴거교’라는 뭔지 모를 수수께끼의 집단의 행동방식을 군에서 파악하며 곧잘 대응하기 시작했다.
큰 문젯거리는 없다.
가장 큰 난제였던 성녀의 생환이 이렇게 성공을 거두었으니 최소 앞으로 한 달 동안은 큰 소란 없이 지낼 수 있으리라.
이에 한숨 돌리며 나는 다른 화젯거리를 꺼냈다.
“남궁연 소위는···.”
“성녀님은 가장 크게 개화하신 치유의 권능을 수행하시고자, 지난 휴거교 테러 사태 현장으로 달려가 고도의 치유 스킬을 시험해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녀님도 계급상 대위십니다.”
남궁연에 대해서는 어느새 존칭까지 붙여가며 말하기 시작한 홍진웅.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궁연 대위를 통해 ‘수신의 신자’가 될 엑스트라 퀘스트를 부여받은 번개 중대원은 모두, 그녀를 특별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수신의 성녀’로 거듭난 지 이틀간, 고열의 열병을 앓고 깨어난 바 있었고···. 그렇게 눈을 뜬 남궁연은 어딘가 변해 있었다.
특유의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생겨났다고 봐야 하나.
아무튼, 중대원들로서는 뜬금없이 ‘신력’에 눈뜬 대위가 ‘엑스트라 퀘스트’를 떡하니 내주는데 신비롭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그렇게 중대 내에서 특유의 위치를 확립한 남궁연.
허나, 그녀는 성녀로서의 ‘재각성’ 이후에도 결코 몸을 쉬지 않았다.
더 많은 이들의 회복을 돕고,
또 그들에게 ‘수신교’를 권유하고···.
어째 그 모양새가 좀 이상해지긴 했다만, 그래도 눈앞에서 기적을 보여준 당사자가 종교를 권유하는데 믿지 않고 배길까.
그녀의 활약으로 날이 갈수록 ‘신자’의 숫자는 불어나고 있다.
듣기로, 신자의 수 증가는 곧, 성녀의 권능 확대로 이어진다고 하니 이는 분명한 우리 전력의 증강일 것이다.
“다행이네요. ‘신자’가 된 중대원 중에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사람이 있나요?”
남궁연에게 엑스트라 퀘스트를 받아 ‘수신교’의 신자로 거듭한 중대원은 당장은 그리 많지 않다.
당장 번개 중대의 사람들도 모두 퀘스트를 받았을 뿐, 아직은 ‘클리어’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딱 세 사람은 퀘스트를 받자마자 클리어하는 신비로운 광경을 보여주었는데,
그게 바로 눈앞의 홍진웅 중위.
그리고 성녀 남궁연이 무지하게 노려보던 대상, 철혈검희 이서영 그리고 과거 나의 맞선임이었던 김장훈 소위였다.
“음, 아직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신자가 되었다고해서 뭔가 크게 변하진 않았고 이서영 대령님도 능력치가 좀 증가했을 뿐 아직까진 큰 변호가 없다고 합니다. 다만,”
“다만?”
“장훈이 그놈은 조금 특별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물을 창조하는’ 스킬의 보유자였던 김장훈.
그에게 있어 검이 첫 번째 인생의 전환점이었다면, 이번 기회에 ‘수신의 신자’로 거듭난 것은 두 번째 전환점이 된 모양이었다.
“특별하다면···?”
“비록 마흔 번의 대련 중 한 번뿐이었지만, 장훈이는 검왕 류자키에게 이겼습니다.”
검왕은 A급 헌터와 S급 헌터의 중간지점인 ‘특급’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준특급’ 헌터다.
그런 그를 마력등급이 B급에 불과한 김장훈 소위가 꺾었다?
“그건···.”
“예. 제가 보기에도, ‘수신의 신자’라는 이 특수한 퀘스트의 결과를 가장 잘 받아들인 건 아무래도 장훈이인 것 같습니다.”
김장훈 일병.
전생에는 나와 함께 D급 헌터라는 생에 절망해 모든 일에 열정을 잃었던 그가 이렇게나 변했다니···.
이는 나에게 퍽 감동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단순히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생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니.
참, 정말 좋은 일이 아닌가.
단순히 가진 마력이 특별해서, 스킬이 특별해서가 아닌 진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이룩한 긍정적인 결과.
이는 단순한 성과를 넘어, 두 번째 생을 살아가는 내겐 더 거대한 것으로 다가왔다.
‘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 않다. 내가 걸어온 그 길은 최소한 전생보다는 좋은 미래로 향하는 길이 맞았던 거야···.’
그리고,
이 긍정적인 변화와 죽어야 했을 생을 살려 돌아온 이 번개 중대에서, 나는 더 큰 재앙을 대비할 것이다.
“침실에 가기 전 마지막 질문입니다만, 흑룡에 대한 소식은 있었습니까.”
지금껏 자신만만 얼굴로 내 옆을 걸으며 현황을 보고하던 홍진웅 중위였으나 이번만큼은 그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아마 좋지 않은 소식이 들어온 거겠지.
“흑룡, 아뮤르타스는······.”
***
밤하늘이었다.
별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아,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칠흑.
-피이이이익!
귀가 찢어지다 못해 뇌가 뒤흔들리는 듯한 거친 폭풍과 굉음이 들리고, 밤하늘에서는 거대한 유성이 비처럼 내렸다.
유성,
하나의 비유.
그것은 ‘종말’이라 칭하면 종말이었고, 유성이라 부르면 유성이었다.
5T트럭이 하늘에서 내린다고 상상하면 편하리라.
그것이 끝도 없이, 지상의 모든 구조물을 분쇄하며 내린다고 상상하면 편하리라.
심지어 그 악몽은 그저 대지와 충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쿠우우웅!
한 차례, 지진을 일으킬 만큼의 막대한 충돌이 있고난 뒤,
-끼릭?! 끼리리릮!?!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는 ‘죽음’.
그것은 아주 거대한 본 오우거.
이번만큼은 비유가 아니었다.
오우거, 트롤, 켄타우로스, 웨어 울프, 하이 오크.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끝이 없는, 셀 수 없는 불사의 군대가 ‘유성’이라 여기고 있던 돌멩이에서 저벅저벅 걸어나온다.
“뇌제! 피하셔야 합니다!”
“불사왕이에요! 당장 피해야 한다고요!”
나의 귀청을 떨어뜨릴 듯, 엄청난 수의 목소리가 ‘나’를 말렸지만, 내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파직-
파아아아아아-
치지지지지지지지직-!
나의 손에서는 백만의 생체전기가 이글거렸고, 새카만 밤하늘은 환한 대낮처럼 변했다.
“파울라스으으으!”
피를 한껏 머금은 나의 외침이 밤하늘에 울려퍼진다.
-콰지직! 우르르릉!
직후, ‘나’를 중심으로 한 번개가 사방을 불태우고 저 높디높은 창공 위에서 새하얗고 거대한 뼈가, 그 ‘본 드래곤’의 등에 올라타 지상을 내려다보던 ‘불사왕’의 눈동자가 보였다.
나는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낙뢰를 쏘아 올렸지만, 흑룡, 아뮤르타스의 사체로부터 태어난 ‘백골의 용’은 여유롭게 더 높이, 높이 올라갔다.
닿을 수가 없다.
닿기만 한다면 해봄직한 전투를 벌일 수 있을 만큼 자신을 갈고닦았거늘.
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가까이서 서로를 노려봤음에도 말이다.
잠깐 사이에, 저 하늘 위의 점이 되어버린 불사왕.
이윽고,
-피이이이익!
불사 군단의 낙하는 무한히 반복될 뿐이었다.
파묻힌다.
새하얀 백골에, 썩어 문드러진 살점에, 그 속에서 게워낸 끔찍한 내장들에 파묻혔다.
나는 그를 쫓을 수 없었다.
어떻게 갈고닦은 힘인데, 어떻게 올린 레벨인데, 전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니···.
대체 이런 부조리한 일이 어디에 있느냔 말이다.
대체 이런······ 말도 않······.
“허어억! 허어어억! 허어어억!”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숨에 나는 단번에 몸을 일으켜 세우고 숨을 몰아쉬었다.
“허어어···.”
진정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은 번개 중대 내부의 개인실 침대 위였다.
“꿈, 이었나···.”
쿵, 쿵,
단순한 꿈이었단 것을 떠올렸지만, 그럼에도 심장은 방금까지 피부로 느끼던 공포를 실감하는지 쉽게 진정되질 않았다.
-또르르륵.
개인실 내부 정수기로 물을 한 컵 가득 받아 꿀꺽꿀꺽 들이켰다.
“하아아.”
힘없는 한숨과 함께 피로에 찌든 나는 침대에 다시 걸터앉았고, 새삼 어지럼증을 느껴 머리를 짚었다.
‘흑룡의 부활, 그건 어디까지나 예상했던 바였다.’
흑룡.
드넓은 중국의 서남부 전역을 인간이 살 수 없는 불모지로 만들어버린 원인이자 ‘토벌 불가’ 판정을 받은 천외경의 마수.
일컬어지길, 동양이라면 재앙. 서양이라면 SS급의 몬스터라 불리며 1세기도 더 전에 각성자들의 출현과 함께 나타나 아직까지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재앙’.
그게 바로 흑룡, 이뮤라타스의 정체였다.
‘문제는···.’
전생에는 약 22일간이나 지속된 ‘전 세계 합동 레이드’ 이후. 간신히 쓰러뜨린 흑룡, 아뮤라타스의 사체를 불사왕이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었다.
불사왕이니, 마령의 지배자니 떠들지만, 결국 놈의 헌터 직업은 죽음을 사역하고 자신의 종으로 만드는 네크로맨서다.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전투 후의 네크로맨서는 더 강해진다는 말이다.
그렇게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흑룡은···.
생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백골, ‘본 드래곤’이 되어 창공을 지배한다.
‘본 드래곤이 탄생하는 순간, 창공의 지배권은 완전히 놈에게 넘어간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내가 꾸었던 꿈과 마찬가지로, 내가 놈보다 강한 ‘힘’을 손에 쥐게 되어도 결코 놈에게 닿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흑룡의 사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화해야 한다.’
신성한 불길.
찬란한 정화의 빛.
오직 그것으로 흑룡의 최후를 장식하는 것만이, 불사왕이 ‘본 드래곤’을 획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 불길을, 빛을 일으킬 존재를 나는 구해내지 않았던가.
‘그래···.’
2대 성녀 앤젤라 엘런.
현재는 정신의 붕괴를 피하고자 ‘반수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깨어난 그 소녀는 분명 해낼 수 있으리라.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부디 성녀가 하루라도 빨리 각성하길 바랐다.
***
-딩, 딩.
느릿한 종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편안한 감각에 천천히 눈을 뜨자 분명,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따스하고 노란 하늘이었다.
부드러운 볕은 땅을 알맞은 온도로 달구어주었고, 부드러운 바람은 연둣빛 초원을 쓰다듬는다.
한적한 언덕과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
그리고 그 그늘 속에서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
난 언제 잠들었던 것일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없었지만, 이 풍경이 낯익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이곳에서 푸른 물빛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가진 흰 원피스의 소녀.
수신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이 나무에 뉘어 있던 나를,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녔던 존재는···.
‘수신을 벗이라 칭하던 기독교의 반인반신···.’
그래.
난 이곳에 와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난 데스나이트 케일른과 전투를 벌이느라 확실히 죽었었고, 그 반신은 내게 죽을 기회를 주겠다 했었지.
나를 위해 울어주기도 했고 말이다······.
왜 잊고 있었을까.
애당초 내가 성전사들에게 ‘가짜 계시’를 전달해 2대 성녀 앤젤라를 구하게 만드는 일이 가능했던 이유도 바로 이곳에서 만났던 그 반인반신의 덕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과거와 현재.
잊고 있던 기억을 모두 되새김질하자 나의 눈앞에는 신비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후릅.
백금으로 무늬가 새겨진 고풍스러운 찻잔을 들고 어여쁜 미소와 함께 날 바라보며 그것을 마시고 있는 한 여인.
마치 내가 진정하길 기다리는 것처럼, 그 여인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질문을 건네려다가도,
나는 삽시간에 주변 정보를 취합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과거, 내가 기독교의 반신을 만났던 장소.
어째서인지 앤젤라 엘런과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는 묘령의 여인.
그리고 세상 그 누구보다 ‘꿈’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는 존재.
‘예지몽’을 통해 미래를 점지하는,
신성 바티칸의 대모이자 세계인의 구원자 그리고 1세대의 위대한 헌터이기도 한 여인,
그 정체는 바로 올해로 그 연세가 무려 100세를 넘기신···.
“다나 메이어······.”
1대 성녀.
다나 메이어가 분명했다.
1대 성녀 다나 메이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