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81화.
이준학 준장이 처음으로, 이건우와의 직접연락을 주고받았던 것은 ‘번개 중대’의 창설이 공표된 그 다음 날의 일이었다.
이준학은 ‘암행’ 내부에서도 유일하게 연약한 성녀와 전사장 마르쿠스와 직접 접촉한 인물이었기에 그 두 사람에게는 길고 여유로운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때문에 두 사람은 숙달된 군인처럼, 사사로운 말을 일절 배제하고 현황과 타개책에 대해서만 잠시 논할 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건우는 이준학 준장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럼 이준학 준장님. 이건 어떻습니까.]
담백한 정보 공유의 도중, 갑작스럽게 그리 운을 뗀 이건우는 말했다.
[현재 성녀와 전사장의 위치는 끝까지 감추되. 그들의 행선지에 대한 정보를 성자에게 파는 겁니다.]
판다···.
판다고? 지금껏 지키고 숨겨온 성녀와 전사장의 위치를?
“무, 무어라? 자네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당연히 이준학 준장은 그 충격적이고도 기괴한 의견에 대해 곧바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건우의 주장에 이준학 준장은 혀를 내둘렀다.
[저는 배신을 논하는 게 아닙니다. 준장님. 그저 있는 그대로의 환경과 정보의 우위를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활용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정보의 우위.
처한 환경과 상태.
보통 그런 것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은 그 말을 듣고 있는 그, 바로 이준학 준장의 방식이었다.
“배신이 아닌 활용···. 일방적인 정보를 역이용한, 함정?”
[역시 바로 이해해주시는군요. 바로 그겁니다.]
“중요한 건, 성녀의 위치를 성자가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닌 게로군.”
[그렇습니다. 이번 일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단 한 번이라도 성자를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는 그 사실이죠.]
“더군다나···. 적잖은 군자금마저 확보할 수 있겠지.”
제대로 된 설명 한마디 없이 이건우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낸 이준학 준장도 준장이지만, 이건우의 창의적이고 과감한 발상은 정말 이준학 준장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다.
“자네는···. 천재인가?”
1차원적인 상황의 타개책이 아닌, 그 너머의 활용을 이렇게나 빠르게 떠올리다니···. 이 순간 부로 이준학 준장에게 이건우란 정말로 신비로운 존재가 되었다.
[좋은 스승님께 많이 배웠을 뿐입니다.]
“자네 같은 인재를 키워낸 사람이 있다니, 필시 그 스승이란 사람도 대단한 인물이겠지”
[그걸 준장님의 입으로 말씀하시면 조금 이상해집니다만···. 뭐.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날짜와 시간 그리고 위치를 정하도록하죠.]
“좋다네···.”
이윽고, 작금의 현실은 도래했다.
두 사람이 말로만 떠들던 ‘계획’은 실제로 시행되었고, 번개는··· 하늘을 수직으로 갈랐다.
-파지지직!
압도적인 굉음이 귀를 찢을 듯 울려퍼진다.
이준학 준장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기이한 ‘자색 번개’가 번뜩인다.
‘주인을 죽이는 검’이라 악명이 높던 ‘혈검’을 쥔 이건우.
그는 상공으로부터 낙뢰와 함께 내려와 지금 이준학 준장의 앞에 섰다.
그와 성자는 서로를 응시했다.
무너지다 못해 으깨진 류팅 공항의 천장.
그 위에서부터, 긴급 상황을 인지한 알파 분대의 성기사들이 익마를 끌고 공항의 내부로 밀려들어 왔다.
알파, 감마, 델타 분대 그리고 성자.
‘암행’의 대원들과 마르쿠스 그리고 이건우가 서로를 마주 보는 그 잠깐의 침묵.
이윽고 그 갑작스러운 침묵을 깨부수는 자는, 다름 아닌 이건우였다.
“오랜만이다. 이 망할 망나니 새끼야.”
***
“오랜만? 나는 당신을 만난 것이 처음이거늘, 어찌 당신은 내게 그런 헛소리를 내뱉는 겁니까.”
척 봐도 큰 격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던 성자가 ‘말’을 꺼냈다.
하지만, 전생을 기억하며 동시에 줄곧 이 공항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알고 있다.
성자는 결코, 격노를 느끼면서도 한가롭게 ‘말’이나 꺼내는 신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야.”
“야···. 라니, 당신, 내가 누군 줄은 알고······.”
“쓸데없는 헛소리로 아스칼론을 재소환할 시간을 끌 생각이라면 차라리 그냥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거다. 성자.”
나의 지적에 성자는 씩 웃었다.
“하.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아스칼론은 제가 원하면 언제든······.”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짓말.
그 능구렁이 같은 혀가 증명한다.
놈이 얼마나 평소부터 ‘거짓’을 입에 달고 사는 존재인지를 말이다···!
이에 나는 더 들어줄 것도 없단 심정으로 놈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성유물급 무구. 아스칼론은 한번 역 소환되면, 다시 소환하기 위한 텀이 최소 1시간은 걸린다. 아닌가?”
거짓이라 말하기에 내가 내뱉은 ‘정보’에는 틈이 없었다.
너무도 당당하게,
너무나도 정확하게 바티칸의 ‘극비 정보’를 입에 담은 나.
바티칸 내부에서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문 정보를 조금의 오차도 없이 내뱉자 성자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당신 같은 자가, 그걸 어떻게······.”
놀란 눈으로 중얼거리는 성자,
이에 나는 태연한 어조로 답해주었다.
“들었어.”
“대체 어떤 미치광이가 교단의 극비 정보를 당신 같은 놈에게···!”
“글쎄. 누굴까?”
어차피 성자의 ‘힘’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즉, 성자 본인이 털어놓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그 용의자가 셋으로 좁혀진다는 말이었다.
이윽고 내가 떨어댄 너스레에, 성자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교황! 그 노망난 늙은이가 감히, 주의 선택을 받은 나를 능멸해!?”
역시, 조금만 자극해주면 이렇게 폭발할 줄 알았다.
성자는 1대 성녀인 다나 메이어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반면, 타고난 것 없이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교황의 좌에 앉은 그를 ‘선택받지 못한 자’라고 여기는 인간이니까.
“죽여버리겠습니다! 당장 바티칸으로 돌아가서! 쓸모없는 헛소리나 지껄이며 성자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그 죄인을···!”
“개소리도 그 정도면 도가 지나치다. 성자.”
“하! 새로운 뇌왕이여! 당신,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 말하며 양손을 모아 기도의 자세를 취하는 성자.
나는 그가 무슨 짓을 벌일지 알고 있음에도 눈썹만 꿈틀대며 가만히 이를 지켜보았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이윽고 놈이 외는 것은 최고로 짧은 형태의 주기도문.
그러자 놈의 손에 모인 빛은 이 일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성기사들 그리고 상공을 뒤덮고 있던 날개 군마의 알파 분대를 밝게 비추었다.
-샤아아아아아!
빛의 분광만으로 날카로운 소음마저 들려올 만큼, 진하고 굵직한 빛.
이에 그 빛을 접한 성기사들은 모두 머리 위에 금빛 고리가 생겨났다.
그 이름도 유명한 ‘천상의 축복’.
이 세상에서 단 3명.
성자와 성녀와 교황만이 욀 수 있는, 대상자의 능력치를 조건 없이 모두 2배로 증대시키는 최고위 버프 스킬이었다.
“알파, 감마, 델타! 이제 됐습니다. 그냥 쓸어버리세요! 한 놈도 남김없이 도륙을 내는 겁니다!”
성자의 말과 동시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세 명의 기사.
머리에 금빛 고리가 생겨난 그들은 웬만한 B+급의 헌터조차 눈으로 쫓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속도를 자랑했고, 성자의 명이 떨어진 지금···.
그들의 세 검은 일순간에 모두, 어린 성녀 앤젤라 엘런을 향해 쇄도했다.
다만, 중요한 점은,
Lv. 32의 헌터로 거듭난 내겐 그 모든 것들이 똑똑히 보인다는 것이었다.
-챙!
필살을 확신한 듯, 크게 내리친 바스타드 소드와 두 자루의 한손 직검.
그러나 세 성기사의 힘이 한점에 모인 그 타격을 ‘본디오 빌라도’는 막아냈다.
“아니!”
“읏?!”
자신의 검이 막힐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지 성기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나는 담담히 숨을 고를 뿐이었다.
“후우우. 하아아.”
숨소리에 맞춰 심장이 뛴다.
심장 박동에 맞춰 ‘피’가 돈다.
이윽고 나의 ‘피’에 맞춰, 본디오 빌라도는 검붉은 꽃을 피웠다.
-화아아악!
마치 불꽃이 피어오르듯,
일순간에 만개하는 타오르는 적염(赤炎).
피처럼 붉은 오러는 삽시간에 성기사들의 검을 타고올라 그들의 신체를 불태웠다.
“으아아아악!”
“부, 불이!”
설마, ‘천상의 축복’을 받은 자신들이 격통을 느끼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지, 성기사들은 한 명의 예외 없이 경악한 얼굴로 비명을 내질렀다.
“성녀를 사수하라! 포메이션은 C!”
이윽고 반박자 늦게 반응한 이준학 준장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암행’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성녀를, 그 성녀를 품아 안고 그저 보호의 기적을 외는 마르쿠스를 감쌌다.
-패앵!
-핑!
동시에, 그런 이준학 준장을 향해 샛노란 광휘에 휩싸인 화살 여러 발이 날아들지만,
-파지지지직!
이번에는 내가 푸른 뇌광을 사방으로 방출하며 그것들을 모두 휩쓸어버렸다.
-철컥!
-타다다다당!
불을 뿜는 소총.
달려드는 성기사.
활을 재장전하는 궁사들과, ‘천상의 축복’을 받아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이는 성기사들이 땅을 박찼다.
“아아아아아!”
“와아아아!”
질주와 함께 함성이 울렸다.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울리는 전투의 함성은, 듣는 이를 주춤하게 만드는 사자후와 같은 위압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나, 하나가 A급 괴수에 필적하는 괴물.
전투라기보단 일방적인 폭력의 현장이 되기까지 단 1초.
나는 씩 웃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전격 지대.”
-파지지지지직!
-쿠르르르릉!
나를 중심으로,
내가 ‘적’이라 인지한 모든 존재를 향해 회오리치는 번개가 쏟아져나온다!
그 액티브 스킬에 담긴 생체전기량은 무려 40000Wh.
내 육체에 최대 생체전기량이 11만으로 불어났기에 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일격이었다.
“끄으으으으윽!”
“으으으으윽!”
“아아아아아아!”
허나, 그럼에도,
푸른 낙뢰와 번개가 춤을 추는 그 ‘전격 지대’에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음에도, 성기사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함성을, 승리를 위한 포효를 내지르는 야수와도 같은 성기사들.
하지만,
“아직, 안 끝났다.”
나의 ‘쇼’는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착!
무서운 기세로 검집을 파고드는 혈검.
몸을 낮추고,
숨을 고른다.
심장이 뛴다.
발을 내디딘다.
자세는 낮고,
간격은 좁지만 길고,
거리는 멀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회오리치는 전격의 폭풍을 따라, 그저 내뻗는 단 하나의 참격.
발검(拔劒) 제2형.
태풍의 눈.
내뻗는 검에 휘감기는 거대한 폭풍과 낙뢰.
이윽고 혈검의 고유한 오러가 참격을 따라 그 참격이 휘젖는 전격의 소용돌이를 따라 흐르면, 이 류팅 공항 전역을 녹여버릴 기세로 번뜩이던 푸른 번개가 자색으로 물든다!
-촤아악!
혈검, 본디오 빌라도와 직접 접한 성기사들은 짧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이어서···.
“크으윽!?”
“으으으으윽!”
“아악!”
“사, 살려···! 으아아악!”
이젠, 핏빛 오러와 뒤섞여 자색으로 번뜩이는 나의 전격에 휩쌓인 이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고통에 찬 비명을 토했다.
이는 ‘혈속성’이 가진 고유의 힘.
바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한계 이상의 고통을 주는 아주 서슬 퍼런 저주의 결과물이었다.
“저, 저주!”
“빨리 해주해야···! 으아아악!”
“큐···. 큐어!”
성기사 중, 누군가는 곧바로 그 ‘고통’의 근원이 저주란 것을 깨닫고 해주의 기도를 외치지만···.
이 마력 폭풍 속에서, 육체 강화에 쏟아야 할 신성력을 아주 조금이라도 허투루 낭비하는 그 순간이 바로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지금 양손을 모은 기사들을 향해! 사격 개시!”
-타다다다다다당!
그러자, 무의미한 것만 같았던 총탄의 세례가 제대로 먹혀들기 시작했다.
“아아악!”
“크으으윽!?”
“천상의 축복을 받았을 텐데 어째서!”
“파, 팔이!”
“성자님! 성자님···!”
“제발 살려주······.”
이것이 정녕, 바티칸 최고의 창이라 불리는 성기사들이란 말인가.
직접 사격을 행하는 ‘암행’의 대원들의 눈에도 그러한 의문들이 스친다.
허나, 그런 의문 따위, 애초에 가질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신성력’이 이질적이고 절대적인 힘을 자랑하는 에너지일지라도, 그걸 사용하고 활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인간.
결국, 각성자의 ‘집중력’만 흐트러뜨릴 수 있다면, 얼핏 무적과도 같은 신성력도 충분히 공략해낼 수 있다.
“뭐 하는 겁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그때, 거대한 원형의 빛 덩어리를 양손으로 들고 있던 성자가 힘차게 그 빛을 땅에 내리꽂았다.
마치 새싹이 나무가 되고 가지를 치듯, 땅을 흐르며 나아가 폭풍에 휩싸인 성기사들에게로 향하는 빛.
그러자,
확실히 잘려나갔던 팔도, 전격에 불태워져 숱덩이가 되었던 다리도, 일순간에 본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일어선다.
마치 시간을 되감기라도 한 것처럼, 일순간에 재생되어 일어나는 바티칸의 성기사.
이것에 성기사와 성자가 공포의 대상으로 불리는 근본적 이유.
최고위 버프 스킬 ‘천상의 축복’과 더불어 그 어떤 상처를, 육체적 결손을 맛본 이들마저 한순간에 일으켜 세우는···.
최고위급 회복 스킬, ‘광목의 찬가’였다.
초기화.
성자의 간섭 하나로 얼핏 전투는 다시금 나와 ‘암행’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갈 것처럼 변화했다.
이 같은 기적이, 이만큼의 권능이, 바로 저 사이코패스 성자가 교단의 정점이라 불리게 된 근본적인 이유였으며 ‘성기사’들이 무적이라 불리는 원동력이었다.
허나,
-착!
나는 다시금 혈검을 검집에 꽂으며 자세를 잡고는 말했다.
“눈이 있다면 잘 봐라. 성기사들이여.”
무적?
신체 능력이 배로 상승하고, 그 어떤 신체적 결손도 정신적인 데미지도 초기화되어 다시 일어서니 무적이라고?
틀렸다.
그건 어디까지나, 막강한 방어력을 지닌 저 성기사들을 일격에 처리하지 못하는 헌터들에게 한한 이야기일 뿐.
나는 ‘광목의 찬가’를 받았음에도, 일어서지 못하는 열댓 명 가량의 성기사들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너희는 절대 무적이 아니다. 위대한 성자의 권능으로도, 죽은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는 없으니···.”
-화르르륵!
-파지지직!
마나를 끌어 올리고, 혈검의 이글거리는 오러를 내비추고 나는, 입을 열었다.
“나의 검은 너희 모두를 벨 것이다.”
나는 시퍼런 눈동자를 번뜩이며 다시금 일어선 성기사들을 노려보았고, 아주 분명하게···. 그들의 눈에 옅은 공포가 새겨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