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80화 (80/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80화.

「나의 아버지이시여.」

한 구절,

아니 제대로 된 하나의 구절도 아니었다.

단순히 마음을 담아, 짧게 읊조렸을 뿐인 작은 기도.

허나, 그 기도 하나에 마탄과 유탄과 위협적인 마석탄마저 모두 ‘길’을 잃었다.

총을 맞는다는 그 ‘운명’ 자체를 뒤틀어버리는 힘.

「부디 눈먼 자들의 폭거로부터 날 구하시옵고」

카르막 베르무트를 바티칸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로 만든 그 근본적인 원인이자 이유, 바로 ‘운명 개찬의 권능’이었다.

그 어떤 힘의 영향도 일절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총탄과 유탄의 폭발은 신비로울 만큼 성자를 피해 허공으로 흩어졌다.

「부디 나의 철퇴가 죄인들을 벌하게 하소서」

이윽고, 지금껏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던 성자는 손을 높게 치들었다.

-치이이이익!

그러자 그의 손에서부터 나무가 돋아나듯 피어나는 한 자루의 검.

비단 신성력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보일 정도로 거대하고 눈 부신 빛의 무리.

“저것이 성검, 아스칼론···.”

이준학 준장은 한눈에 그 검의 정체를 파악해냈다.

‘운명 개찬의 권능’이란 최강의 방패.

그리고 무엇이든 빛으로 화하여 반으로 가른다는 최강의 검.

무려 드래곤의 목을 가른 성 게오르기우스의 신화가 휘감긴 검은 번뜩이는 ‘천벌’을 눈앞에 현현 시켰다.

최강의 방패와 검은 모순되지 않는 형태로 성자의 양손에 쥐어졌다.

이윽고 그 막대한 힘과 이준학 준장의 ‘암행’이 정면충돌을 일으키기 직전······.

“그만, 모두. 총을 내린다.”

이준학 준장은 팔을 들어 올리더니, 돌연 사격 중지를 외쳤다.

이에 마르쿠스는 또 무언가 이준학 준장의 두뇌 플레이가 시작될 것을 직감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지금껏 이렇게, 돌연 상황과 맞지 않는 지시를 내릴 때마다 마르쿠스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기이한 성공을 일으키곤 했으니 말이다.

헌데,

“고생했다. 다들 마탄집을 분리 총기를 점검한다.”

이준학 준장은 아예, 무장을 해제할 것을 권했다.

“무, 무슨···.”

이는 마르쿠스의 이해를 완전히 벗어난 상황이었기에 그는 잠시 의심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읊조리다가도, 눈앞의 그는 이준학 준장이기에,

무려 21일간 성녀의 신변을 보호해주고, 자신의 컨디션마저 회복시켜준 그였기에 마르쿠스는 입을 닫고 천천히 성녀를 보다 안쪽으로 안아 들었다.

침묵,

뭔지 모를 침묵이 흘렀다.

대체 이게 뭘까.

뭘 하는 거지?

의아한 의문이 몇 번이고 마르쿠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윽고, 먼저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였다.

“캬하하핫?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핳! 아, 정말 미치겠습니다. 너무 웃기지 않습니까! 마르쿠스! 젊은 전사장 마르쿠스여! 하하하하하하하!”

돌연, 뭔지 모를 소리를 지껄이며 광인처럼 웃기 시작하는 성자.

이에 마르쿠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자, 그는 도리어 더 즐겁다는 듯 한 차례 더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눈가를 쓱쓱 문지르며 말했다.

“마르쿠스. 당신, 뭔가 착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착각이라니···.”

“모른다면 이젠, 내가 친히 알려드리죠. 전사장이여, 내 입으로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난 사실 닷새 전까지만 해도 아직 울란우데에서 삽질이나 하고 있었답니다.”

울란우데?

삽질?

이미 20일 전에 스쳐 지나왔던 지역의 이름을 왜 떠들고 있는 걸까.

이에 마르쿠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성자는 더 신나서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절 찾아오더군요? 당신의 행방을 알고 있다. 자기네들은 그 정보를 팔고 있다고 말입니다···.”

“정보를 팔아···?”

“예. 그럼요. 아주 비싼 값이었습니다. 다만, 그들의 정보는 신비하리만큼 정확했고, 나는 그들에게 돈을 지불해 당신에 대한 정보를 샀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된 줄 압니까?”

뒤틀린 미소와 함께 그런 말을 지껄이는 성자.

그제야 마르쿠스의 머릿속에는 말도 안 된다, 여겨왔던 의문이, 이해할 수 없는 가설이 세워졌다.

마르쿠스는 자신에게 등을 내보이고 있는 이준학을 바라보며 그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이준학 준장···. 이준학 준장!”

허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오직 성자만이 낄낄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 여섯 번이나 놓친 당신을 찾았겠습니까. 뜬금없이 한국군인 그들이 왜 당신을 목숨 걸고 지켜줬겠습니까······. 어떻게 내가, 당신보다 앞서서 이 공항에 있을 수 있었을까요!”

“이준학 준자아아앙!”

마르쿠스는 악에 받쳐 외쳤다.

이준학 준장이 성녀와 자신을 팔아넘겼다고?

고작 돈 때문에?

돈을 얻기 위해 그렇게 사력을 다했다고?

이 정도 되는 인물이?

“그 모든 게, 그 모든 것이 전부 연기였단 말이오!?”

-절그럭 절그럭!

마르쿠스의 통탄한 외침이 무색해지도록, 항공 입구에서는 엄청난 수의 성기사들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분명, 이준학 준장과 ‘암행’이 처리했다고 했던 성기사들의 델타, 감마 분대가 분명했다.

-히이이잉!

이윽고 하늘 위를 뒤덮는 엄청난 수의 날개와 말의 투레질.

그건, 하늘을 나는 군마.

성자파의 성기사들 중에서도 특히나 정예인 알파 분대만이 탑승하는 익마(翼馬)의 소리가 분명했다···!

“재미있지 않았습니까? 도망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주고, 그 희망이 임계점에 달한 시점에 절망을 준다······. 마르쿠스 거기 한국군의 미학은, 정말 나와 닮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흐흐흐,

성자는 중간에 말을 끊었으나, 그 오만한 표정과 음침한 미소에서 이미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당신은 세상을 모릅니다. 세상은 본래 이런 곳이거든요. 배신이 난무하고, 서로를 이용하며, 이득과 이윤을 챙긴다. 난 한국군을 나쁘다고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

“오히려 잘못된 것은 언제나 오만하고, 움직일 줄을 모르는, 한심한 바티칸의 늙은이들이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당신은 모릅니다. 이게 현실이란 것을 말이죠.”

흐흐.

흐흐흐.

흐흐흐흐흐!

위를 알파 분대가,

출입구는 델타와 감마 분대가 틀어막았다.

성자의 손에는 아직도 성검, 아스칼론과 운명 개찬의 권능이 빛을 발하고 있고···.

당장 자신과 성녀를 둘러싸고 있는 한국군마저 아군이 아니었다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뭘 어떻게 하면, 마르쿠스는 이 깊고 깊은 늪에서 탈출할 수가 있는 걸까.

독한 술에 취한 것처럼 머리가 핑핑 돈다.

품에는 아직도 쌔액 쌔액 애처로운 소리를 내는 성녀가 기절해 있고, 그런 성녀를 무사히 보호하며 이 난공불락의 성체를 빠져나간다는 건···

가능성을 논할 필요도 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이상한 소리가 마르쿠스의 귓가를 스쳤다.

“521··· 522···.”

뭐지?

뜬금없는 숫자의 나열에 놀란 얼굴로 주변을 훑어보는 마르쿠스.

그런데 그 소리의 근원은 다름 아닌, 이준학 준장의 입이었다.

그는 참으로 기이하게도,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는 현재에도 지금껏, 줄곧···.

성자와 그의 손에 들린 성검을 바라보며 의미 불명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529··· 530··· 531.”

“자, 그럼···. 이번에는 한국군, 당신들이 손을 좀 써주겠습니까? 마르쿠스를 죽이고, 성녀의 사지를 절단해 내 앞에 대령하세요. 그럼, 감히 내게 거래를 제안한 당신들의 무례를 용서하겠습니다.”

한참을 웃고 있던 성자는 돌연 손에 쥐고 있던 성검을 빛으로 만들어 현현을 취소하더니 그런 말을 꺼냈다.

이어지는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마르쿠스에게 헛구역질을 일으킬 만큼의 역겨운 헛소리였으나, 이상한 것은 이번에도 이준학 준장이었다.

“정말로 자네의 말대로였군. 성자가 성검의 현현을 취소하고 아공간으로 돌려보낸 것은 543초. 정확히 9분 3초였다네.”

이준학 준장은 돌연 이상한 말을 허공에 내뱉었고, 그 후로는 기이하게도 한국군에게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그가 가만히 서 있자, 성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보세요. 한국군.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겁니까? 성검은 또 무슨 소립니까. 얼른 저 두 사람을 처리하기나 하라니까요?!”

시치미를 떼는 사람처럼 부자연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런 말을 내뱉는 성자.

마르쿠스는 이번에도 뭐가 뭔지 모를 상황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치직!

허공에서 내리꽂히는 묵직한 무전 소리.

이윽고 이준학 준장과 ‘암행’ 부대원들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무전기에서부터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죠? ‘운명 개찬의 권능’은 성자의 타고난 힘이지만, 성검, 아스칼론은 그렇지 않다니까요. 놈은 그거 오래 소환 못 합니다.]

“뭣?! 뭣이 어째?!”

무전기를 타고 넘어온, 마르쿠스에게도 익숙한 이건우의 목소리.

이에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는 경악하며 처음으로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일격에 땅과 하늘을 반으로 가른다는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 솔직히 한 번쯤은 보고 싶었네만, 참도록 하지.”

허나, 마르쿠스가 놀라건 성자가 눈을 크게 뜨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이준학 준장은 그저 무전기 너머의 이건우와 평화로운 태도로 담소를 나눌 뿐이었다.

이 같은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성자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무슨 짓거리입니까. 한국군! 당신은 우리에게 저 간악한 악의 숭배자와 머저리 같은 성전사를 팔아넘겼을 텐데요!”

성자는 처음으로 살 떨리는 살의를 담아 이준학 준장에게 따지듯이 물었지만, 이준학 준장은 갑자기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모르겠다고? 모르겠다니, 네놈들이 무려 20만 달러라는 거금을 요구해서 우리가···.”

“하하하핫! 성실한 성자님께서 저희 같은 아랫것들에게 넓은 마음으로 기부를 해주시니 받았을 뿐인데 도통 무슨 말씀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나, 대원들.”

끝내 참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주변의 대원들을 쭉 훑어보는 이준학.

그와 반대로 성자의 얼굴은 붉게,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가··· 감히······. 감히! 감히! 주신의 선택을 받은 신의 대리인을 농락한 겁니까!”

성자는 경악을 넘어 격노한 태도로 그런 말을 크게 외치며 손을 들었고,

-스릉!

-스르릉!

-지이이이익!

활과 검과 창을 든 성기사들이 일제히 중앙의 한국군을 겨누기 시작했다.

그때, 주변 일대 전체를 성기사에게 둘러싸인 상황임에도 그저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준학 준장은 말했다.

“카르막 베르무트 모르겠나? 난, 단 한 순간도 저 가여운 아이와 신실한 성전사를 배반한 적이 없다는 것을!”

뒤를 돌아볼 것도 없이 시원스럽게 터져 나온 대적의 표명. 동시에 수많은 ‘암행’의 군인들은 다시금 총을 장전하며 견착의 자세를 취했다.

“그 선택을 당신이 죽는 그 날까지 후회하게 될 겁니다.”

이에 성자는 무서운 눈빛으로 이준학 준장을 응시하며 말했는데, 마찬가지로 새카만 눈동자를 가진 이준학 준장은 답했다.

“아니, 안타깝게도 후회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참회 방법이라 말이네.”

일촉즉발의 상황,

검과 창과 총과 활이,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서로를 노리고 있다.

허나, 냉정히 말해 상황은 전방위적으로 포위를 당한 상태인 ‘암행’과 마르쿠스의 일행이 절대적으로 불리.

헌데,

‘이준학···. 저 자는 어찌 저리도, 당당하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 마르쿠스가 그런 의문을 떠올리는 바로 그 순간,

첫 번째 화살이 당겨진 활시위를 떠나는 바로 그 찰나였다.

-파지지지직!

저 하늘 위의 상공,

밝기만 하던 실내가 암전되었다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낙뢰가 이 류팅 공항에 내리친다.

그 에너지의 파장이 어찌나 강한지, 건장한 성기사들과 ‘암행’의 부대원들의 자세가 흐트러질 정도였고, 덕분에 날아들던 화살은 물론이거나와 반사적으로 쏘아진 총탄마저 허공에 비산한다.

이윽고,

-쿠르르르르릉!

귀를 마비시킬 만큼의 엄청난 천둥소리가 공항과 활주로 그리고 그 너머의 바다를 뒤흔들 만큼 거대하게 울려 퍼졌다.

세상을 반으로 가른 것만 같다.

류팅 공항의 천장을 통째로 으깨며 눈앞으로 떨어지는 붉은 오러와 푸른 번개.

그리고 드디어, 번뜩이는 뇌광의 빛이 줄어드는 그 순간···.

번개를 타고 지상에 안착한 한 사내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카르막 베르무트.”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검은 붉었다.

허나, 그의 눈동자는 시리도록 푸른 빛을 번뜩이고 있었고,

그 두 가지의, 상반된 광택의 오러와 마나가 하나의 흐름을 타고 뒤섞여 조화로운 자색을 번뜩이자,

드디어 고개를 든 남자는 제대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이 망할 망나니 새끼야.”

그는 다름 아닌, 이건우였다.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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