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79화.
빛.
얼핏 신성하고, 자애로울 것만도 같은 옅은 금빛 섬광은 검지를 곧게 뻗은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빛이 향하는 방향의 끝에는 작은 소녀가 있었다.
쐐액 쐐액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 인상을 찌푸리고, 폐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애처롭게 생을 연명하고 있을 뿐인 작은 소녀가.
“신성한 방패여!”
마르쿠스의 큰 외침에 형태를 갖추는 신성력.
물에 물감이 퍼지듯 그의 손목에서부터 형태를 갖추고 번져가는 방패가 빛을 비틀어낸 건, 그냥 우연이었다.
어떠한 공격적인 행위가 튀어나올 것이라 예상한 것이 아니라.
그냥 성자의 미소가, 그의 낮은 웃음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위화감과 공포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본능적인 행동.
-텅!
허나, 본능에서 발로한 우연의 결과물은 거대한 공성추와도 같은 성자의 ‘빛’을 막아냈다.
“꺄아아아악!”
“뭐야, 무슨 일이야!”
귀를 찡하게 만들 만큼 압도적인 쇠와 쇠의 충격음.
그것은 단순 신성력과 빛이 형태를 갖추어 맞부딪혔다고 볼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울림을 일으켰다.
류팅 공항 전역에 걸쳐 일순간에 퍼져나가는 혼돈.
사람들은 삽시간에 출구를 향해 내달렸지만, 그 혼돈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이 있었다.
“카르막···. 베르무트으으!”
높게 치든 손에 망치가 쥐어진다.
거대한 빛의 망치는 찰나의 틈도 없이 성자에게로 내리꽂힌다.
-지지지지직!
허나, 찬란한 빛의 막이 마르쿠스의 신성한 망치를 막아냈다.
그저 뒷짐을 지고 가만히 서서 안간힘을 다해 망치를 내리치는 마르쿠스를 음침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성자.
“젊은 전사장이여. 경배하십쇼. 이 내가 당도했습니다.”
“하늘의 계신 나의 아버지여. 부디 죄 없는 성녀님을, 성녀님을 굽어살펴 주십시오!”
두 목소리가 교차하자.
성자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형성되어 있던 찬란한 빛의 막이 커진다.
그에 맞춰 격하게 요동치는 마르쿠스의 망치.
-텅!
맞부딪힌 빛과 빛 사이, 대장장이가 철을 담금질하는 것과 같은 웅대한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진다.
-텅! 터엉!
“불쌍하고, 불경한 전사장. 네가 기도를 올리는 그분께서 지금 내게 권능을 주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께 권능을 하사해주신 건, 죄 없는 이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는 걸 정녕 모르는 겁니까!”
“알고 말고, 나는 지금도 죄 없는 어린 양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니.”
“앤젤라 엘런의 마을을 불태우고! 아이의 눈앞에서 가족들을 참살한 네가 봉사를 논하는 것이냐!”
분노로 일그러진 마르쿠스의 얼굴.
그가 손에 쥔, 빛의 망치가 그 형태를 더한다.
더 크게, 더 단단하게, 더 무겁게.
신성력으로 형성할 수 있는 최대의 강도로 내리치는 망치.
그 무게는 무려 1t.
코끼리의 짓누르기, 불곰의 앞발과도 같은 위력이었다.
이 류팅 공항의 중심부 공터 일대를 전부 짓눌러 버릴 만큼의 거대 망치는 곧바로 성자의 머리를 향했다.
거대한 바람이,
압도적인 광휘가 시선과 후각과 청각을 사로잡아 뒤트는 바로 그 순간······.
성자는 말했다.
“화난 척 언성을 높이며 주의를 끌고, 우선 공항의 민간인이 대피할 시간을 번다···.”
성자의 목소리와 함께 불어오는 신성력의 바람.
그로 인해 흙먼지로 가려져 있던 시야가 드러나고 마르쿠스는 경악했다.
“뭣!”
그가 놀란 것은, 성자가 자신의 거대한 빛의 망치를 검지 하나로 받아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경악하는 진짜 이유는···.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던 류팅 공항의 민간인들이 모두, 카르막 베르무트의 ‘사슬’에 묶여 허공에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습니까. 전사장. 당신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성녀보다,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 민간인이 도피할 시간을 벌겠다니 한심합니다. 어리석습니다.”
“그렇다면 베르무트, 당신은 바티칸의 사정 따위로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는 꼴을 그저 지켜보겠다는 겁니까!”
이번에야말로 마르쿠스는 옆자리의 성녀를 안아 들며 분노해 소리쳤다.
반면 성자는 따분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래서, 당신들 구교가 안되는 겁니다.”
“...뭣이?!”
“신성한 ‘대의’보다 그렇게 사사로운 것들을 우선하니, 이 세상이 이렇게 언데드가, 범죄자가···. 죄가 만연한 세계가 된 것 아닙니까.”
같은 ‘바티칸’으로 묶여 있지만,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는 항상 자신만의 믿음과 교리를 교단에서부터 분리하려 했다.
성자파를 중심으로 불리게 된 새로운 명칭이 바로 구교와 신교.
“우리 신교는 무엇보다 신성한 대의를 우선합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죽음들은,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받겠지요.”
마르쿠스도 들어 알고는 있었다.
신교라 자신들을 일컫는 저 성자파의 무리가 상상 이상으로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허나, 직접 그의 입으로 들어보니······.
“상상 이상이로군요. 카르막 베르무트.”
“뭐가 말입니까?”
“당신의 그 극단적이고 말도 안 되는 사상이 말입니다!”
“사상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나의 뜻은 곧 주의 의지이니.”
양손을 잡는다.
눈앞에 마르쿠스가 또다시 묵직한 크기의 망치를 손에 쥐지만, 성자는 그런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양 무릎을 정갈하게 꿇고 눈을 감고 말했다.
“전사장, 당신이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 악마의 여식을 이리 내놓으시면 됩니다.”
기도의 자세로 고요하게 왼 성자의 말.
허나, 기절하여 축 늘어져 있는 성녀를 품에 안고 있던 마르쿠스는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혹시 그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카르막 베르무트.”
“뭡니까?”
“지랄도 정도껏 해야지! 지나치면 개가 짖는 소리로 들린다는 말을 말입니다!”
단번에 악을 내지르는 마르쿠스.
그는 한쪽 팔로 성녀를 안아 든 채, 다리에 ‘신성력’을 쏟아부어 크게 도약해냈다.
-후웅!
동시에 휘둘러지는 거대한 망치.
‘성자’에게 신성력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1t의 무게도 1g이 되어버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무의미하군요.”
성자조차 조소를 보내며 그의 발악을 비웃지만···.
“남을 함부로 재단하는 일은,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네.”
진짜는, 성자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이에 움찔하며 뒤를 돌면서도 웃는 성자.
그는 자신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언제나 지켜주는, 막대한 ‘신성력’의 보호막을 믿고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자의 등 뒤에서 나타난 거구, 이준학 준장의 주먹에 쥐어져 있는 것은···.
인간의 목을 가를 단검도, 뼈를 깨부술 둔기도 아니었다.
그가 쥔 것은 주먹 크기의 ‘잔’.
바로, ‘타락한 십자가의 성배’였다.
-퍼억!
묵직한 주먹은, 마치 성자 고유의 ‘보호막’을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그대로 통과해 그의 안면에 꽂혔다.
무언가 둔탁한 것이 부서지는 소음과 함께 땅을 구르는 성자.
그러자, 그의 등에서 솟아 나왔던 기다란 금빛의 사슬들은 어지럽게 뒤엉켰지만, 그 사슬에 붙잡혀 있던 민간인들은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휘이이잉!!
류팅 공항의 천장에서부터 로프를 연결해 자유 낙하 하는 수십 명의 군인이 민간인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쨍그랑!
이어서 정문을 틀어막던 수수께끼의 빛무리 역시 깨부수고, 한국 헌터군의 전투복을 갖춰 입은 부대원들은 하나, 둘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철컥!
“준장님. 말씀해주셨던 데로 이 류팅 공항 인근에 매복해 있던 성기사들을 처리했습니다.”
“고생했네. 김 대위, 윤 중위, 박 소령.”
호명된 세 사람은 곧바로 격식 있게 자세를 갖추어 공항 중심부에 누워 있는 ‘성자’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이윽고 그들의 위로 천천히 내려오는 것은 낙하산처럼 넓게 펼친 ‘신성력’으로 혼자서 스무명이 넘는 민간인들을 구호한 전사장 마르쿠스.
그는 성녀를 비롯한 민간인들을 땅으로 인도하더니, 이준학을 보며 말했다.
“설마, 플랜 B를 정말로 시행하게 될 줄은 몰랐소···.”
플랜 B란.
갑자기 나타난 습격자에 대한 교란 작전.
만일 그게 ‘신성력’을 다루는 자라면, 그의 허를 찌르기 위해 ‘뒤집힌 십자가의 성배’를 몰래 전달하는 것까지가 이준학 준장이 사전에 일러주었던 작전의 일부였다.
즉,
“...이런 불의의 습격마저도 예상했었다는 말이오. 당신은?”
마르쿠스가 감탄하며 묻자, 이준학 준장은 쓰러진 성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네. 하지만, 나로서도···. 성자 본인이 직접 행차하시는 건, 전혀 예상 밖의 사태였지.”
“그건···.”
마르쿠스 역시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성기사들의 자랑인, 알파 분대보다 성자가 먼저 나타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하기도 한다네.”
“예?”
“성자가 직접 나타났다는 건, 거꾸로 말해 그가 직접 등장하지 않고서는 성녀의 탈출을 막을 다른 수단이 없었다는 말과 같은 말이라네.”
성자는 혼자다.
물론, 류팅 공항 밖에 그는 델타 분대와 감마 분대로 보이는 이들을 대기시켜두긴 했었다만, 그들은 이미 ‘암행’의 손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에 반해, 이쪽에는 ‘암행’의 대원들이, 전사장 마르쿠스가 그리고 그 어떤 ‘신성력’이라도 소멸시키는 아이템, 뒤집힌 십자가의 성배가 있다.
“그렇다는 건···.”
“이건 도리어 기회일 수도 있다는 게지······.”
애초에 성자를 적대하는 세력이 이렇게나 가까이서 성자를 독대할 수 있는 상황은 쉽게 성사되지 않는다.
그는 교단의 머리.
그는 주의 사도.
그를 따르는 신자만 수천이 넘는다.
그러한 와중에 이준학과 마르쿠스는, 성자에게 한 방 먹인 상태로 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이 같은 상황 자체가 지난 반년간의 도피 생활과 이를 치밀하게 이용한 이준학 준장의 계획으로 만들어진 우연과 우연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윤 중위! 알파 분대의 위치는?”
“3분 전, 베이징 상공을 돌파했다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날개 달린 군마를 타고 창공을 질주한다는 알파 분대의 성기사들이라면···. 남은 시간은 대략 20분인가.”
-꿀꺽.
남은 시간은 20분.
아무리 유리해도, 얼핏 여유로운 시간이 남은 것 같아도, 베테랑 군인들은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성자다.
미래를 예지하는 성녀도 아니고, 노력으로 교단의 꼭대기에 올라선 교황도 아니고···.
오롯이 ‘신벌’의 권능을 타고난, 성자란 말이다.
“후후후. 소곤소곤 무슨 대화를 나누나 했더니···.”
그때, 땅에 엎어져 있던 성자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흩어지며, 그 너머에서 양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은 자세로 태연히 서 있는 성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다시 시시한 만담이나 주고받고 있었군요. 대의의 반역자분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줄로만 알았던 성자는 이미 일어서 그들의 대화를 느긋하게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에 몇몇 군인들은 놀라 돌격 소총을 치켜들었으나, 이준학 준장은 그저 음침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는 성자에게 한 걸음 다가갈 뿐이었다.
“잘 들어라. 제군들. 지금 이 시간부로 우리 암행은, S급의 보스몬스터. 카르막 베르무트를 토벌한다!”
“하, 아직도 놀이를 더 이어가자는 거군요? 좋습니다. 기대에 응해드리죠.”
“전원, 사격 개시!”
-타다다다당!
이준학 준장의 신호에 맞춰 능숙하고 노련하게 불꽃을 발하는 ‘암행’의 돌격 소총.
개중에는 공항의 공터 일대를 날려버릴 만한 유탄발사기를 장착한 이들도 있었다.
-타다다당!
-콰앙!
삽시간에 흙구름과 콘크리트 파편이 비산했다.
보통의 헌터들과 달리 국방부 휘하의 특수 마석탄 연구소의 직접적인 물자 공급을 받아 일반적인 사격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위력을 뽐내는 마탄의 세례.
다만, 그 상대는 성자였다.
「나의 아버지이시여.」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