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78화 (78/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78화.

전생, 젊은 전사장 마르쿠스와 희대의 재능을 타고난 메리, 그리고 나는 ‘불사왕’에 대항하는 팀이기 이전에 ‘적’으로서 처음 만난 사이였다.

성자의 손에 무참히 살해된 상태로 발견된 첫 번째 성녀 후보자, ‘앤젤라 엘런’.

그 아이의 사망··· 그리고 한 세기 동안 살아 숨 쉬던, 전 세계의 은인이자 1대 성녀인 ‘다나 메이어’의 자연사 후, 바티칸은 겉으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격변을 맞이했다.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가 자신 휘하의 ‘성기사’들을 이끌고, 교황파의 핵심 인물이자 구심점, ‘교황’을 급습한 것이다.

총 일곱이나 되는 많은 성전사대를 휘하에 두고 있던 ‘교황’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야습과 내부에서부터 튀어나온 칼날을 막을 재주는 ‘교황’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구심점을 잃은 교황파는 ‘두 성전사대’의 배반과 함께 완전히 힘을 잃었다.

허나, 정작 ‘바티칸의 참극’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

이날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다나 메이어의 영원한 숙적···.

‘나이의 한계를 극복한’ 불사왕은 본색을 드러내어, 나약해진 바티칸을 통째로 불태우고, 곧바로 서유럽 전역을 뒤엎었다.

1대 성녀, 다나 메이어의 자연사.

그리고 한국의 육군 대장 조영수의 자연사.

그리고 중국에 둥지를 튼, ‘흑룡’의 전 세계 합동 레이드···.

이 ‘세 가지’ 조건이 바로 ‘불사왕’이 본색을 숨기고 살아가는 원인이었던 것이다.

유럽 전역은 불바다가 된다.

아니, 불보다는 피와 시체와 마령의 바다라고 하는 게 더 좋을까.

어쨌든 그렇게 살아남은, 흩어진 성전사들은 ‘모이면 모일수록’ 강한 그들의 특성상, 본래의 힘을 잃고 더 약해졌고···.

그 와중에, 웬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게 내정을 간섭당하는 작은 반도에서 그들은 만난 것이다.

빛을 다루는 힘을 타고난, 두 번째 성녀 후보자···.

그녀는 다름 아닌 ‘대항군’에서 홍진웅과 함께 파트너로 활동하던, 남궁연이었다.

아무리 빛을 다루는 힘을 타고 났을지라도, 성전사들은 그녀의 레벨이 ‘30’을 넘기기 전까지는 그녀만의 재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다.

허나, ‘대항군’에 들어와, 보석검을 활용한 전투로 숙련된 그녀는 성전사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남궁연 대위 탈환 작전’.

그 작전에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사장 마르쿠스와 백염의 메리를 만났었다.

***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남궁연’은 청명옥(靑明玉)에 부여된 엑스트라 퀘스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엑스트라 퀘스트라고?!”

입을 찢어질 듯 크게 벌리며, 화들짝 놀라는 남궁연.

나는 그녀가 ‘수신’에게 있어서도 ‘성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쾌재를 내지르고는 비교적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퀘스트 수락 메시지랑 또 뭐가 보이시죠?”

당황해하는 남궁연을 진정시키고 그리 묻자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그녀.

이윽고 그녀는 ‘뭔가’를 보고 몸을 움찔 떨더니, 갑자기 얼굴에 붉은 열꽃을 피우며 어색한 목소리로 답했다.

“응? 아아, 1번 수신의 성녀, 그으으···. 이것저것 적혀 있는데······.”

“조금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천천히 말해주세요.”

“조, 조금이라니! 나, 난 항상 꿈에서 그 보석을 들고 있던 어린 꼬마애랑 놀았었는데···. 그게 건우 손에 있고, 게다가 엑스트라 퀘스트라니 이게 뭐가 뭔지······.”

꼬마애라니,

벌써 ‘수신’의 실물과 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단 말인가···!

이에 놀란 나는 그녀를 다시 한번 진정시켰고···.

어차피 그녀를 ‘성녀’로 만들겠다는 내 계획을 위해서는, 차라리 모든 사실을 알려주는 게 낫다 싶어 이참에 ‘수신’과 ‘청명옥’에 얽힌 나의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느긋하게, 때로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나의 긴 이야기를 경청해주었고···.

놀라운 이야기가 너무나 연속적으로 들려왔기 때문일까.

내가 1시간 가까이 나의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그녀는 오히려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예수님은 실존하시는 거였어···? 아니, 아니지. 그럼 내가 꿈속에서 만난 그 귀여운 아이도 사실은 신님이었다는 거잖아?!”

표정만 침착했지,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큰 당혹감을 한껏 내포하고 있었다.

“정확히 이해하셨네요.”

“에에, 에에에?”

듣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의 남궁연.

그런 그녀를 다시 한번 진정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음. 그래서 말인데요. 소대장님. 제 눈에는 보이질 않아서 그런데, 여기 퀘스트 수락 메시지 옆에 또 뭐가 보이시나요?”

“응? 아, 그건.”

그녀는 드디어 비교적 차분히 나의 질문에 답을 주었다.

그녀의 말을 바탕으로 나는 내 수첩에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옮겨적었다.

<1. 수신의 성녀.>

*당신은 힘을 9할 회복한 청명옥(靑明玉)에 ‘사도’를 향한 존경과 ■■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당신은 특수한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진행도 (000/120000)

<2. 수신의 신자>

*당신은 힘을 9할 회복한 청명옥(靑明玉)에 ‘사도’를 향한 존경과 ■■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진행도 (000/1200)

즉, 신자가 될 것이냐. 성녀가 될 것이냐의 양자택일인가.

그런데 성녀의 쪽이 아무리 지고한 존재이고 막대한 권능을 부여받는 대상일지라도, 채워야 하는 신념, 기도 따위가 ‘120000’이나 된다니···.

‘내가 500을 채우겠다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갑자기 이렇게 큰 숫자를 보니 오히려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는 수첩 중에서도 줄곧 신경 쓰이던 단어 ‘■■’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소대장님. 아까부터 말할 타이밍만 나오면 계속 얼버무리시는 이 땡땡은 뭔가요?”

“응? 별거 아니야. 살짝 신뢰? 믿음? 이랑 비슷한, 그냥 그런 거야···!”

대체 왜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지 않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나는 턱을 괴고 앉아 수첩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우선 사도,

그 기이한 공간에서 만났던 초월적인 존재는, ‘수신’이라는 작은 소녀 신에게 신자가 한 명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사도’라는 단어가 굳이 나왔다는 건, 세상 어딘가에 그런 존재가 따로 있거나···.

그녀의 첫 번째 신자가 된, 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 이 퀘스트는 ‘수신’이 아닌, 나 혹은 세상 어디에 있을지 모를 그 사도라는 놈에게 존경과 ■■를 보내면 클리어할 수 있는 걸까.

“흠.”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람을 존경하면 할수록 엑스트라 퀘스트의 달성도가 오른다니, 이런 식의 퀘스트 매커니즘은 처음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전생에 ‘탐구자’의 성향이 강한 이준학 준장 밑에서, 그래도 배울 것은 다 배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역시 남궁연이 계속 얼버무리는 ■■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들어야겠다.

이번 왜 그렇게까지 창피해하면서 숨기려 드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에 걸린 목숨이 단순히 십만, 백만을 넘어선다는 것을 알려주면 그녀도 결국은 말을 해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남궁연이 앉아있던 방향을 돌아보는 바로 그 순간,

-띵!

난데없이 알림 메시지음이 한 번 더 들려왔다.

그런데 그 메시지의 내용이라는 게···.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남궁연’은 엑스트라 퀘스트 ‘수신의 성녀’를 클리어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사도 ‘이건우’와 함께 수신을 숭배하는 ‘성녀’로 거듭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에?”

“음?”

바로, 퀘스트 클리어 메시지였다.

“이, 이게 무슨···?”

이에 내가 놀라는 만큼, 남궁연 또한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항변하듯 내게 말했다.

“아, 아, 그게 건우야. 어? 그···. 1번 퀘스트를 받았는데···. 바, 바로 클리어가 됐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신의 성녀로 거듭나는 그 고행의 과정이 그냥 퀘스트를 수락하는 것으로 끝났다고?!

-띵!

나는 내 이해를 벗어난 일에 매우 놀라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새로운 메시지가 하나 더 나타났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수신의 성녀, ‘남궁연’은 시스템이 상정한 한계를 초월한 ‘속도’로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추가 경험치가 지급됩니다.

...

ㅡㅡㅡㅡㅡㅡㅡㅡ

그건,

언젠가, 나도 직접 본 적이 있던 ‘시스템’의 추가 경험치 지급 메시지. 그런데 그 밑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다소 특이했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

*‘수신의 성녀’의 사도를 향한 ‘존경’과 ‘사랑’의 수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295120/120000).

*시스템은 크게 경악합니다! ‘있을 수 없는 수치’를 달성해낸 수신의 성녀에게 또다시 추가 경험치가 지급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추가 경험치, 그리고 존경과······사랑?”

맥락상 그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만한 장소는 다름 아닌, 남궁연이 계속 얼버무리던 그 ‘■■’가 분명했다.

그럼 ■■이란 사랑을 말하는 것이었고, 메시지는 나를 ‘사도’라 지칭했다.

이는 다시 말해···.

‘성녀’ 남궁연이 ‘사도’인 나를···.

“꺄아아아악!”

이에 대해 차근차근 이해하고 있던 사이,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궁연에게서 돌연 엄청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게 뭐야! 이, 이런 게 어딨어어어! 이렇게 표기해주는 거였어? 저 숫자는 또 뭐야아아아!”

-훌렁!

그녀는 창피함이 한계에 달했는지 자기 손으로 옆에 치웠던 이불을 다시 뒤집어쓰더니 나에게서 도망치듯 널찍한 침대 구석으로 도피했다.

그리고,

“어··· 음···.”

이번만큼은 나도 괜스레 얼굴이 너무 후끈거려···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

젊은 전사장, 마르쿠스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이준학 준장과 접촉한 지. 금일을 기준으로 정확히 3주.

마르쿠스는 동행 초기, 아무리 ‘이건우’와 같은 한국군의 군인일지라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지만, 정작 그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울란우데의 기차역.

마르쿠스의 본래 계획과 달리 일행은 그곳에서 기차를 떠나보냈다.

이준학 준장의 판단이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던 대로 성기사, 베타분대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는데···!

“잠시 멈추게.”

-펑!

뜬금없는 이준학 준장의 말에 따라 발걸음을 멈추니, 기차역 밖에서부터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아니?!’

정말 갑작스럽게 일어난 폭탄테러.

허나, 이준학 준장은 그 와중에도 성기사들의 시선이 돌아간 틈에 걸음을 서두르며 말했다.

“지금이네.”

혼란을 주고 탈출한다.

지극히 담백하고 단순한 전술이지만, 그만큼 사전작업이 탄탄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효과적인 전술이기도 했다.

시의적절하게 ‘의심받지 않을’ 혼란을 야기하려면 때와 상황 그리고 일행의 진행경로를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는가.

‘조금 전, 횡단 열차에서 뛰어내린 사람도 그렇고,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대원을 소모적으로 활용하다니···.’

눈앞의 위협은 피했으나 괜찮을지 모르나, 앞으로의 여정은 예상보다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마르쿠스는 마음속으로 이 여정이 이준학이라는 군인이 보여준 카리스마에 비교해 그다지 쉽지 않으리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펑!

“가지.”

-쿠아앙!

“지금이네.”

정말 ‘우연한’ 혼란은 이어졌다.

참으로 신비롭게도 그 ‘우연함’ 속에서 인명 피해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우연’은 계속해서 테러, 방화, 교통사고와 같이 그 형태를 바꿔가며 일어났다.

그렇게 3주다.

3주간, 무려 마흔여덟 번의 ‘인명 피해 없는’ 사건·사고가 마르쿠스의 주변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는,

적의 동선,

일행의 동선,

그리고 현재로서는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는 ‘암행’이라는 특수부대 부대원들의 위치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다면 애당초 불가능한 ‘우연’의 연속이었다.

‘이준학···. 당신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나타났던 그 순간부터······. 여기까지 내다보고 있었다는 건가!?’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에렌호트를 우회하는 과정에서 마주친, 엄청난 수의 현상금 사냥꾼들.

그들은 외향을 바꿨음에도, 특수한 스킬로 성녀의 독특한 외향을 꿰뚫어 보았고···.

‘매직 아이템으로 모습을 바꾼, 은발에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진 아이를 죽여라.’

지령에 맞춰 무차별적인 사격을 쏘아댄 것이다.

하지만,

“김 대위!”

총탄이 빗발치고 칼날이 날아들고 있음에도, 눈썹 한번 까딱 않던 이준학 준장의 한마디.

그 말 한마디에,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위에서부터 총탄의 세례가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그 광경을 돌아보지도 않고 이준학은 말했다.

“지금이네.”

마르쿠스는 그 침착함에 도리어 말을 잃었다.

현, 마천신교의 천마가 중앙 정부를 바로세운, ‘베이징’의 경우에서는 더 놀라웠다.

현상금 사냥꾼들과 달리, 끈질기게 은밀한 스탠스를 유지하며 장기간 따라붙었던 마피아 집단, ‘브레들리의 아이들’.

한번 따라붙으면, 목적 달성을 위한 최후의 한순간까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그들을······.

이준학 준장은 무려, 베이징 일대의 현 수호자, ‘마천신교’와 ‘흑검대’에게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려 전투 한번 없이 그들을 몰아내기도 했다.

‘정말···.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실제로 만난 지는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마르쿠스는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준학 준장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만약 사람을 여러 가지 파라미터로 나눌 수 있다면···.

정보력, 판단력, 분석력, 응용력 등등. 모든 능력치가 가히 끝까지 채워져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하루에도 여러 번 쏟아져 나오는 그의 작전은 마르쿠스를 놀라게 했다.

‘...그저 신성력을, 특별한 스킬을 타고 났을 뿐이 아니라, 두뇌파의 천재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었다니···.’

약 반년간의 도피 생활 중, 마르쿠스의 신성력은 한 번도 온전히 회복된 적이 없었거늘.

요 21일간, 그는 신성력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만큼, 마르쿠스가 힘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준학 준장의 전략 전술에는 빈틈이 없었다.

‘다만···.’

문제는 성녀였다.

그 타고난 신성력을 갈무리할 테크닉은 없으나, 그녀의 어마어마한 신성력은 성자파의 성기사들을 불러들인다.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수단이 바로 이준학 준장이 가지고 온, ‘타락의 성물’.

그것으로 성녀 특유의 막대한 신성력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일행은 완전한 은신이 가능해졌다.

허나, 역으로 그로 인해 그녀의 몸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었다.

쌔액, 쌔액.

이젠 두 눈을 뜨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마르쿠스의 등에 업혀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아이.

마르쿠스는 하루라도 빨리 이 중국을 벗어나, 그녀와 타락의 성물을 떨어뜨려 놓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기나긴 도피 생활의 끝을 고하듯, 마르쿠스는 특수한 아이템으로 모습을 바꾸고 위조 여권을 이용해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이곳은 중국 칭다오의 류팅 공항.

이제 1시간 뒤면, 이 지긋지긋한 도피 생활을 끝낼 수가 있게 된다.

“휴우우우.”

끝났다.

장장 반년을 넘긴 ‘성녀 생존’ 임무가 드디어 그 끝이 보인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잠깐의 휴식을 위해 마르쿠스는 류팅 공항의 중심부, 벤치로 향했다.

옆자리에 기절한 성녀를 내려두고, 여러 개의 캐리어로 모습을 가려준다.

이후 자신도 와이셔츠를 조이던 넥타이를 부드럽게 풀어 침착하게 말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후우우.”

그렇게 다시 한번, 짧은 한숨을 돌리려는 바로 그 순간,

“머리를 쓰셨네요?”

그가 앉은 의자의 바로 앞의 의자에서부터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뭣?!”

“타락의 성물로 신성력을 감추겠다는 발상은 정말 기발했습니다···. 덕분에 이 먼 땅까지 제가 직접 발을 옮겨야 했을 정도니, 뭐, 솔직히 칭찬해드리죠.”

목소리가 다르다.

생긴 것도 다르다.

키도, 체구도 모두 다르다.

허나, 마르쿠스는 알 수 있었다.

한껏 여유로운 목소리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저 오만하고, 방자하고, 교만한 말투는······.

“카르막 베르무트···.”

바티칸 성자파의 수장이자 ‘신벌’의 권능을 하사받은 남자.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

“어허, 마르쿠스 경. 당신이 언제부터 저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위치가 되었었죠? 다시 말씀해보시죠. 성자님, 이라고 말입니다.”

흐흐흐.

성자는 음침한 웃음소리를 내며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르쿠스를 바라보았다.

잠시 경악하는 마르쿠스를 즐거운 미소로 마주 보던 성자는 이윽고, 11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성녀, 앤젤라 엘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드디어 찾았다···.”

“신성한 방패여!”

성자가 작은 중얼거림을 흘리는 것과 마르쿠스가 단번에 갈무리했던 ‘신성력’을 내뿜는 건, 아주 잠깐의 차도 없이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