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77화.
-똑똑.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문에 노크한 뒤, 움찔거리는 입가를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충성! 소대장님. 실례지만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딱히 모난 곳 없이 매끄럽게 튀어나온 자연스러운 질문.
이에 병실 내부에서는 남궁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네에~ 드, 들어오세요.”
목소리 자체는 차분했지만, 말을 더듬는 것이 괜히 재미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남궁연은 전보다 좀 더 마른 모습으로, 헐렁헐렁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한눈에 병약하고 안타까운 느낌이 풀풀 풍겨와 나의 가슴속에는 그녀에 대한 걱정이 확 샘솟았지만···.
이어서 침대 귀퉁이에 아무렇게나 구겨진 햄버거 포장지를 보고 말았다.
“우, 우와. 건우야. 무슨 일이니. 아, 아니지. 이, 이건우 소령님. 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모습은, 척 봐도 낯부끄러워 미치겠다는 심경이 팍팍 느껴지는 광경.
그래도 딴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말’은 평소와 다름없이 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입꼬리는 움찔거리며 올라갈 뿐이었다.
“소대장님. 정말 오래간만 입, 풉.”
나도 모르게 툭 하고 튀어나온 웃음에 남궁연의 얼굴이 확하고 붉게 물들었다.
“우우, 웃지 마! 아니, 웃지 마세요···!”
“아, 죄송합···. 크크큭.”
“아아아! 그마안! 그만 웃어어! 진짜 너무해! 그럴 거면 왜 나갔다 왔는데에에!”
귀까지 벌겋게 물들인 남궁연은 끝내 양팔을 허공에 붕붕 휘젓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병상 이불을 뒤집어썼다.
“푸읍···!”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모습이 더 귀엽고 재미있어 결국 폭소를 참지 못하고 한차례 크게 웃어버렸다.
“푸하하하핫!”
분하다는 듯 움찔거리는 이불 덩어리.
내가 이번 일로 삐져도 단단히 삐진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까지는 무려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간신히 이불에서 남궁연의 머리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한 나는, 그녀가 한눈을 팔기 전에 얼른 점잖게 인사를 건넸다.
“크흠! 이번에는 제대로···. 하아. 이렇게 단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건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소대장님.”
“으, 응. 그러네. 매번 얼굴은 마주쳤지만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지도 못 했었구···.”
“아무래도 너무 사안이 급박하다보니···. 죄송해요.”
화도 더 풀어줄 겸, 부드러운 대화도 이어갈 겸, 내가 고개를 숙이며 진심어린 사과를 하자, 남궁연은 곧바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응? 아, 아니야! 왜 건우가 사과해! 나쁜 건 휴거교랑 다른 이상한 범죄자들이었는데···!”
“그래도, 예전에 꼭 제 손으로 지켜드리겠다고 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켜드리지도 못했었잖아요.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제가 참, 소대장님에게 신세를 많이 졌구나 싶어서요.”
“아니야. 건우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어! 나는 몇 번이나 건우 덕분에 살아남았는지, 손으로 셀 수도 없는 걸? 그러니까 건우가 사과하는 건 이상해.”
다행히 제대로 대화의 물꼬를 트자, 남궁연은 그리 말하며 알아서 이불을 옆으로 치우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고마워. 나는 오히려 건우에게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어. 고마워, 정말정말로.”
“소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한시름 놓은 기분이네요. 고마워요.”
“헤헤헤. 뭘 이런 걸로~”
그리 말하는 남궁연은 여전히 쑥스러워하는 표정이었지만, 전과 달리 조금 더 밝은 느낌의 미소가 엿보였다.
나와 남궁연은 잠시 그렇게 계급이고 주변의 상황이고 관계없게,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한참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무슨 일 있어? 부대를 창설해야 해서 무지 바쁘다고···. 그래서 병문안을 오지 못하고 있다고 이서영 대령님께 듣긴 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여기로 온 것도, ‘번개 중대’의 핵심 인력을 스카웃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병원에 그럴 사람이 있어?”
“예.”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저 없이 답하자, 남궁연의 얼굴에 작은 그늘이 졌다.
“그, 그러면 얼른 가야겠네···. 굳이 병실까지 찾아와주고, 나 삐지는 것도 달래줘서 고마워 건우야. 바쁠 텐데 얼른 그 사람을 찾아가 봐.”
그녀는 쓸쓸하단 심경이 고스란히 배어 나오는 얼굴로 그리 말했고···. 조금씩, 천천히,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점점 더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은, 한없이 먼 존재를 보는 것처럼 공허해 보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지금, 아주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음, 소대장님?”
“으응?”
“우선 다른 것보다 제일 먼저, 축하드릴 것부터 전해드려야겠죠.”
“축, 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는 남궁연.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씩 미소를 짓고는, 앞주머니에 곱게 넣어두었던 작은 함하나를 꺼냈다.
“이번 테라포밍 사태를 비롯해 지난 황금 게이트와 타르타로스 탈옥 사태에서도 줄곧 남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 공로를 치하하는바, 남궁연 소위에게는 을지무공훈장이 수여한다.”
“음?! 응? 후, 훈장? 하지만 티비에서는···.”
“수여식때 소대징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었죠? 그거 제가 공개적으로 공표하지 말라달라고 특별히 부탁드렸었거든요.”
“왜···. 왜?”
-딸깍.
되묻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 없이, 나는 함을 열고 화려하게 수 놓인 훈장을 남궁연의 환자복 가슴께에 가볍게 고정해주었다.
“소대장님에게만큼은 꼭, 제가 직접 드리고 싶었어요. 축하해요.”
“나한테만···. 직접···?”
“예. 직접요. 게다가 이번 훈장 수여를 계기로, 소대장님도 두 계급 특진하셨습니다.”
“트, 특진까지?!”
훈장에 대한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뿐인 남궁연은 이어지는 나의 말에 놀란 토끼눈을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남궁연 소위님. 아니, 이젠 남궁연 대위님이라고 불러드려야겠죠.”
“에에, 내가 대, 대위? 나 정식으로 임관한 지 이제 3년 찬데?”
“노력하는 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포상을···. 여단장님의 전언입니다.”
실제로 병실에 누워만 있던 그녀가 ‘태극’ 무공훈장의 바로 다음 등급인, ‘을지’ 무공훈장을 받게 된 것도 여단장 최중철의 영향이 컸다.
“그, 그렇게 말하면···. 거, 건우도 이젠 소령님이시니까······.”
“아, 말을 높이거나 하는 건 하지 말아주세요. 괜히 어색해지고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싫거든요.”
“나, 나랑 머, 멀어지는 게···. 싫어?”
“그럼요. 저는 소대장님과 이렇게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좋거든요.”
“그, 그래···? 진짜? 헤헤헤헤.”
남궁연은 입꼬리를 씰룩대며 큰 미소를 짓다가, 갑자기 급하게 자신의 헤실헤실해진 얼굴을 양손으로 가렸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처럼 헤실거린 것이 뒤늦게 부끄러워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제부터가 본론입니다만···.”
조금 뒤,
충분히 긴장도, 낯부끄러움도 해소한 얼굴의 남궁연을 바라보며 나는 처음부터 준비해왔던 말을 드디어 입에 담았다.
“남궁연 대위님께서는 현재,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첫째는 7여단 1대대로 돌아가셔서 임시지만 중대장직을 맡는 것···.”
“두,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솔직히 제가 원하는 방향이라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조금 주저됩니다만···. 남궁연 대위님. 저와 함께 ‘번개 중대’로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응? 그럼 이 병원에 있다는 핵심 인력은 설마···.”
여기까지 들었음에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뇌는 남궁연의 중얼거림에 나는 확신을 가지라는 의미로 강한 어조로 말했다.
“당연히 남궁연 대위님을 말한거죠.”
“에, 지, 진짜로···?”
“물론입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다만, 남궁연이 내게 늘 숨김 없이 내비치는 호의를 생각해볼 때, 그녀는 나의 손을 잡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
그러나, 어째서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쉽게 결정을 내리질 않는 남궁연.
음?
설마 그동안 내가 너무 푸대접하는 바람에 호의가 식은 걸까···?
내가 불현듯 떠오른 불안감에 조금 긴장하려던 찰나,
“거, 건우야···.”
“예.”
“아, 아무것도 묻지 말고···. 하, 한 번만 세게 끌어 안아줄 수 있어?”
“...예?”
그녀는 느닷없이 조금 이상한 부탁을 해왔다.
난 곧바로 그녀의 부탁에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려 했지만, 남궁연은 그런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숙인 그 상태로 양팔을 쭉 벌려 내게로 향했다.
“음.”
잠깐의 고심 끝에,
병실 침대 끝자락에 걸터앉아 있던 그녀를 나는 품으로 끌어당겨 꽉 안았고···. 그제야 아주 작게, 남궁연이 흐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무, 무서웠어. 다들 나만 두고 멀리, 너무 멀리 가버려서···. 혼자 남겨진 것 같아서······.”
이 고요한 병실.
몸 상태 자체는 많이 호전된 그녀지만, ‘특급 보호 대상’이 된 남궁연은 자신의 마음대로 이 특실을 들락거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로 고립된 기간이 무려 2주.
무공훈장을 받았음에도 그렇다고 말해주는 이는 없고, 그녀가 담당하던 1소대의 소대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크고 작은 성과를 올려 병사의 신분을 탈피해 사라졌다.
이 조용한 장소에서, 당장 돌아갈 곳도 없어진 상태로 그녀는 홀로, 줄곧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마 그것이, 고요하고 기나긴 시간이 그녀의 불안을 자극했던 것 같다.
그것도 내가 생각했던 것, 그 배 이상으로.
“미안해요. 그동안 혼자 둬서.”
너무 늦게 깨달은 그녀의 현실에, 내가 작은 목소리로 사과를 건네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코맹맹이 목소리로 답했다.
“으응···. 아니야. 나 말야. 너무, 너무 무서웠는데···. 건우가 와줬어. 지금 와줬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그리고 나 같이 무능한 사람한테···. 건우처럼 대단한 사람이 창설한 부대에 합류하겠냐고 물어봐 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이윽고, 남궁연은 그동안 어떻게든 참고 참았던 눈물을 다 흘리려는 것처럼 길고 고요한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한동안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었다.
***
“이제 진정했나요?”
“어쩌다 보니 시, 신세를 졌네. 감사합니다······. 조, 좀···. 많이 창피하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 부채질하며, 뒤늦게 내 시선을 피하는 남궁연.
참,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다.
아니, 감정 기복이 크고 잦다고 해야 하나?
뭐, 그래서 더 귀여운 사람 아니겠는가.
피식,
나는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작은 웃음을 흘리며 그녀에게 시원스럽게 말했다.
“에이, 뭐 어때요.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사이에.”
“...앞으로도 계속, 그치? 헤헤헤.”
울음을 다 그친 뒤에도 몸을 멀리 떨어뜨리려 하지 않아 조금 난감했지만, 나는 어렵사리 아이처럼 달라붙는 그녀를 때어놓고 이번 방문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보옥, 보신 적 있으세요?”
내가 그녀의 눈앞으로 가져간 것은, 내가 언제나 몸에서 때어놓지 않는 ‘호접지몽의 펜던트’에 부착해두었던 작은 보옥.
청명옥(靑明玉)이었다.
나는 이 청명옥은 물론이거니와 애초에 ‘호접지몽의 펜던트’ 자체를 옷밖으로 꺼낸 적이 없기에, 보통의 경우라면 이때 고개를 저어야 함이 맞았다.
그러나 남궁연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어?! 이, 이게 왜 건우한테···.”
역시,
나는 자신이 상정하고 있던 예측 중에서도 가장 좋은 반응을 보이는 남궁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혹시 이 보석을 만지거나 소중하게 양손으로 꼭 쥐고 있는, 뭐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으신가요?”
“어, 어떻게 알았어?”
큰 눈을 끔뻑이며 나를 동그란 눈동자로 바라보는 남궁연. 나는 미소와 함께 손에 들고 있던 청명옥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보옥을 쥐면···. 혹시 눈에 어떤 메시지가 보이지 않나요?”
자연스레 내 손바닥을 굴러 남궁연의 손에 떨어지는 동그란 보옥.
그런데, 그것을 받아든 남궁연의 눈은 아니, 나의 눈에도 예상했던 메시지는 나타났다.
-띵!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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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남궁연’은 청명옥(靑明玉)에 부여된 엑스트라 퀘스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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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엑스트라 퀘스트?!”
방금까지의 부끄럼은 다 어디로 갔는지, 남궁연은 목소리가 갈라질 만큼 크게 외쳤고, 나는 주먹을 쥐며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이럴 줄 알았다!’
전생에도,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바티칸의 성전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궁연을 바티칸으로 데리고 갔었거든.
왜냐하면, 남궁연은 이 세계에 단둘밖에 존재하지 않는, ‘2대 성녀’가 될 자질을 가진 사람이니까···!
수신의 성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