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76화.
“그래서, 이야기를 다시 돌리자면, 건우. 최근에 여단장님의 제안으로 중대를 창설할 계획이라면서?”
후릅.
앙증맞은 앞치마를 두른, 이서영이 머리를 식히겠다며 부엌에서 차를 가지고 오고, 그 찻잔을 다 비울 즘이 되자 이초희는 다시금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협회장님이 오시기 전까지, 대대장님과 나누던 대화가 바로 그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오호, 내 예상보다 이미 창설에 대한 의지가 넘쳤었구나?”
“의무는 없이, 권리만을 마음껏 행사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걷어차는 건 바보들이나 할 행동이니까요.”
나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역시 시간이 약이라고, 그래도 차분히 시간을 가지자, 살벌했던 분위기가 흔층 누그러진 두 사람을 보며 나는 긴장을 풀었다.
“그래서? 어떤 인력을 들여올지, 어떤 형태의 부대를 갖출지는 정해뒀니?”
“예. 인원 선별은 다 끝냈고, 기본 구성과 행정관을 맡아줄 사람과도 대화를 끝내뒀습니다. 여단장님 덕에 일사천리였죠.”
“그래? 만약 일이 막혔었다면 내가 도와줄 생각이었는데, 조금 아쉽게 됐네.”
“부협회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한쪽만 너무 편애하고 그럼 안되는 거니까요.”
나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말하듯 이초희의 말에 그리 덧붙였는데, 그녀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싫은데?”
“예?”
“나 사실 엄청 편애하는 성격이야. 지금도 우리 건우가 말만 하면, 협회의 재무관이랑 요원들도 원하는 만큼 빼줄 생각도 있는데?”
“예, 에···?”
이초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놀란 표정의 나를 또다시 그 특유의 고혹적인 미소로 바라보며 말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렴. 내가 원래 얼마나 편애가 심하고, 푼수같이 간이고 쓸게고 다 꺼내주는 여자인지 제대로 보여줄게.”
“...그런 말을 보통 자기 입으로 하나요···?”
나는 자연스레 떠오르는 의문을 그대로 입에 담아 물었고, 또 한 번 의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응. 그게 너라면, 나는 상관없어···.”
이초희는 가히 고백이라 착각할 법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이에 내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도끼 눈을 뜬 이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저희’가 만들 중대는 ‘저희’ 힘으로도 충분히 꾸릴 수 있으니까요.”
고의성이 다분히 느껴질 만큼 ‘저희’라는 단어에 힘을 팍팍 주는 이서영.
이초희는 이에 살짝 미간에 주름이 잡혔지만, 나는 전과 같은 냉랭한 분위기가 되는 것을 경계해 얼른 말했다.
“예. 정말 괜찮으니까요. 이번 이야기는 여기서 끝. 얼른 끝내는 걸로 하죠.”
다행히 이초희는 내 결정에는 더 따지고 들지 않았다.
허나, 어째서인지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했다.
이서영은 입꼬리를 올리고, 이초희는 분하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이다.
“대신, 꼭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땐 주저 없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내게 도움을 주고자 바쁜 몸을 이끌고 온 사람을 그리 보낼 순 없어 나는 그리 덧붙이며 이초희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이번에는 또 두 사람의 표정이 반대로 변했다.
“그래. 언제든지
내 손을 맞잡고 웃는 백귀야행.
이게 아니라는 듯 난처한 표정의 철혈검희.
뭔진 모르겠지만, 평소에는 그토록 침착하기 그지 없는 이들이 이렇게나 표정을 휙휙 바꾸다니···.
앞으로 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건 되도록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
이틀 뒤,
길었던 ‘합동 장례식 기간’과 겹치지 않게 하고자 최대한 미뤄왔던 훈장 수여식이 열렸다.
협회와 수도방위사령부의 핵심 인사들을 주축으로, 어중간한 공원 하나 정도는 가볍게 채워버릴 만큼 많은 인원이 한곳에 모였다.
그 안에는 기자, 정치인과 같은 발언력이 있는 비각성자들도 퍽 여럿 있었고, 방송국 카메라는 그 수가 셀 수 없을 만큼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그렇게 길게 이어진 길로 차근차근 걸어들어오는 이들은 다름 아닌, 이번 테라포밍 사태의 주역들.
7여단장 최중철부터, 이미 다양한 방면에서 계속 매스컴에 얼굴을 비추고 있는 부협회장 이초희.
그리고,
누구보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아니, 세계 각국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는 시대의 주역, 이건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뇌왕! 뇌왕!””
““이건우! 이건우””
영웅이라기보단 스타가 나타난 것처럼,
널찍한 체육관의 입구에서부터 단상까지 향하는 길을 이건우가 걷는 동안, 그의 이름과 별칭은 노래하는 시민들.
그러한 칭송을 크게 외치는 이들 사이에는, 비단 하위 등급의 각성자들도 적지 않았다.
아마 ‘D급에서 S급으로’라는 제목으로 이건우의 일대기를 풀어낸 책이 발매되면서 그의 유명세는 배로 불어난 듯했다.
이윽고 이건우는 단상에 서고,
수많은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무공훈장 중에서도 단연 가장 높은 등급.
‘태극 무공훈장’을 가슴에 달게 되었다.
“...이로써, 이건우 상병은 병사로서의 신분을 탈피하고,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적들을 탐색하고 선제공격하는 특수부대. 번개 중대의 지휘관이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건우와 손을 맞잡고 팔을 높게 들어 올리는 자는 다름 아닌, 현 대한민국의 국방을 책임지는 최고 통수권자, ‘육군 참모총장’, 조영수였다.
“이런 자리에서라도, 직접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네. 이건우 상병. 아니, 이젠 이건우 소령이라 불러야 함이 맞겠지.”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대한민국의 최초이자 최후, 전세계 궁사들의 시조이신 화랑, 조영수 대장님.”
이젠, 아흔을 넘기신 연로한 나이로 인해 1선에 직접 서시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통찰력과 사려 깊은 판단력은 그를 아직도 ‘육군 창모총장’이라는 자리에 앉아있게 했다.
그는 ‘육군 대장’이라는 위대한 직급에 걸맞게···.
협회의 힘이 강한 수도권,
7여단과 인근의 헌터군이 사수하는 강원,
용병대가 쏠려 있는 무역 중심지 인천,
그리고 부산의 5군단이 지키는 경상남도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전 국토의 통솔과 사수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그는 지금껏 큰 실패나 실수리 불릴 만한 우를 범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눈앞의 조영수 대장이야말로 사람을 보는 눈 만큼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혜안(慧眼)의 보유자다.
‘암행’을 조직하고, 훗날 대항군을 일으켜 세우는 이준학 준장을 알아보고 등용한 것이 바로 이 조영수 대장이니 말이다.
전생과 현생, 그의 운명이 같다면, 그에게 남은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그의 자연사는······.
‘불사왕이 본색을 드러내는 계기 중 하나지.’
그렇게 내가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그의 주름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중철이에게 듣던 대로 자네는, 영환이를 닮았군.”
중철이···.
이건우는 순간적으로 그 친근한 어조로 인해 눈앞의 육군 대장이 누굴 말하는 것인지 눈치채지 못 할 뻔했다.
중철이란, ‘여단장 최중철’을 그리고 그가 말하는 영환이란, 전장의 지휘자라 불리던 고 ‘김영환 중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말이다.
“과찬이십니다.”
이에 이건우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그리 답했지만, 아흔이라는 나이에도 총명한 청년의 눈빛을 가진 육군 대장 조영수는 이건우를 강하게 응시하며 말했다.
“아니, 과찬 같은 게 아니야 이건우 소령. 자네는 언젠가, 먼저 간 영환이를 넘어, 그리고 나를 넘어, 더 위로···. 그 이상의 위인이 될 것이 분명하네.”
그렇게 말하는 조영수 대장의 눈에는, 어째서인지 지금의 이건우가 아닌, 훗날의···. 혹은 먼 과거의 뇌제가 비춰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확신하는 것이니, 믿어보게나. 하하하하.”
그렇게, 갑작스러운 만남과 짧은 대화를 끝으로 ‘수여식’의 식순은 7여단의 장교, 장병들 넘어갔고, 이건우는 그 날의 마지막 일정을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당일 밤.
공식적으로 소령 계급을 달게 된 이건우는 협회와 7여단 그리고 수도방위사령부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특수 작전 전담 부대···.
‘번개 중대’의 공식적인 창설을 세상에 발표했다.
***
수여식으로부터 일주일 뒤.
중대 창설이라는 대업도 이젠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느낌이다.
요 일주일간은 정말, 처리해야 할 문제가 많아 골머리를 싸맸지만, 의외로 금방 합류를 결정해준 ‘두 군인’ 덕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럼 나머지는 부탁드리겠습니다.”
“에이, 소령님. 이젠 저희보다 계급도 높으신데 말 편하게 하시죠.”
나의 말에 슬쩍 웃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장훈 소위.
정확히 1년 2개월 전까지만 해도, 단순한 나의 맞선임이었던 바로 그였다.
“저는 이게 편합니다. 김장훈 소위님.”
“부관들에게도 끝까지 존댓말을 놓지 않는 새로운 뇌왕. 또 책의 챕터가 늘어나게 생겼군요.”
김장훈 소위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밝은 미소로 수첩을 들고 뭔가를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가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 유명세를 배로 불려준 그 ‘D급에서 S급으로’라는 책을 집필한 저자가 바로 김장훈이었던 것이다.
“다음부터는 장본인의 허가를 받고 써주십시오.”
“하하하! 알겠습니다. 내친김에 지금 여쭤볼까요. 써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입을 크게 벌리며 호탕하게 웃는 김장훈.
누가 알았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D급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고 세상 모든 것들을 원망하며 살았을 뿐인 그가 이렇게 변할 것을 말이다.
매사에 전보다 훨씬 더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여유의 근원은 아무래도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장검이겠지.
그는 내가 체력 훈련을 끊은 뒤에도 지금껏 성실하게 단련을 거듭했고, 지난 기간 동안 5군단에서 2대대의 철혈검사대의 맴버와 부대끼며 그들의 검을 어깨너머로 터득했다.
그렇게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그의 검술.
나는 그를 이따금 만날 때마다 전생의 내 대항마, 수귀(水鬼) 사사키 타다요시가 휘두르던 검을 참고로 몇 마디의 조언을 해주었고···.
그 결과 그의 검술은 독자적이면서도 강력한 ‘수검류’로 거듭났다.
‘사사키 타다요시처럼 엑스트라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강해진 것이 아닌 터라 어마어마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김장훈 소위는 이번 검술 터득을 계기로 아예 웬만한 A급 헌터보다 강한 힘을 손에 쥐게 되었다.
-위잉!
그때, 최신 마공학 설비로 가득한 기계 문이 열리며 친근한 얼굴이 하나 더 통제실로 들어왔다.
“충성! 홍진훙 중위, 작전을 마치고 방금 복귀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홍진웅 상병.
워낙 실적이 많아 이번 수여식에서 ‘테라포밍 진압대’에 소속되지 않았음에도 중위로 특진한 참군인.
전생이었다면, 나보다 먼저 ‘암행’의 스카웃 될 운명이었던 유능한 지휘관인 그를 내가 먼저 가로채 온 것이다.
지금도 보면, 겨우 계급과 관계가 변했다는 것 하나로, 그는 나를 완벽하게 자기 상사를 대하듯 대해주었다.
“홍진웅 중위님도, 더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아무리 독립 대대에 특수부대의 성향을 띄더라도, 확실한 지휘체계와 군 기강의 확립은 필요한 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역시, 그는 참군인이다.
‘번개 중대’의 창설부터 지금껏, 외부적인 관계와 행정적 재무적 일처리는 절반 이상이 홍진웅 중위의 손에서 해결되었다.
당장 지금도, 이 늦저녁까지 앞으로도 긴밀한 사이로 지내고자 대화를 튼 ‘757헬기부대’와의 교류를 위해 식사를 하고 온 것일 정도로···.
이번 기회를 통해 사비를 털어 구매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기계적인 소음과 함께 엔진이 움직이고, 나는 헬멧을 뒤집어쓰고 오토바이 위에 앉았다가 뜬금없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전생에는 죽을 때까지 내 선임이었는데 말이지···.’
저렇게 칼 같은 경례를 내게 올리는 모습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홍진웅 중위님. 대신, 제가 여러분에게 존댓말을 하는 건 눈감아 주셔야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아직 다 모이지 않은 텅 빈 부대시설을 나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거는 나.
-위이잉!
엔진이 격렬하게 타오르고, 우리 부대의 핵심이 될 이 장비를 실험도 해볼 겸 인적이 드문 도로로 질주했다.
김장훈과 홍진웅.
그리고 전 내가 소속되어 있던 1소대의 다른 소대원들에게도 스카웃 제의를 보냈다.
그 외에는
‘대항군’의 연금술사인 이모님과 본래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윤지아씨.
그리고 전생에도 연금술사 이모님을 목숨까지 걸며 지켜주던, 의리의 용병대, ‘반월’에게도 보냈다.
그리고 또···. 좀 많다.
다소 치사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나는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훗날 ‘대항군’에서 이름을 날릴 운명이던 병사, 간부, 장교에게 모두 스카웃 제의를 보냈다.
마그마의 홍준식 하사,
염동력의 김나연 중위,
2대대, 철혈검사대의 지금은 전역한 전대 분대장,
1군단의 공병대대의 자랑, 대장간의 ‘남 진’ 병장,
...
뭐, 그 수만 생각해봐도, 서른 여덟.
추가로 아직 확정은 짓지 않았지만, 합류를 망설이고 있는 이들을 포함하면 스무 명가량이 더 있다.
물론 이 정도 수로는 아직 ‘중대’를 논하기에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 맴버들이 맴버들인 만큼, 잘만 풀린다면 나를 제외하고도 당장 ‘757헬기부대’와 맞먹는 괴물 같은 무력집단으로 거듭날 것이다.
게다가, 아직도 나의 중대원 스카우트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고 말이다.
“후.”
이로써 나는 완전히, 나의 독단으로 즉각적인 운용이 가능한 독립 중대를 얻었다.
그렇지 않아도,
협회, 7여단과 1군단, 5군단 그리고 757헬기부대 역시 나의 요청만 있다면 즉각 병력을 출동시키겠다고 약조까지 해준 상황.
사실상, 현재의 내가 운용 가능한 병력의 수는 지난 ‘테라포밍 진압대’보다 더 많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당연히 한 개인에게, 이 정도로 막대한 권력을 몰아주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으냐는 언론의 핀잔은 꽤 있었지만···.
나의 궁극적인 갈망,
‘인류 절멸의 미래’를 막겠다는 의지를 알아주는 이들은 그러한 지적들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군대를, 무력집단을, 거기에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주머니를 턴 돈도 있어 용병대도 이젠 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허나,
그럼에도 부족했다.
지금까지와 달리, 이제부터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은 단순히 수가 많다고, 힘이 세다고 이길 수 있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니 말이다.
바티칸의 성자,
그리고 그를 숭배하는 극단주의적 성기사.
중국의 ‘흑룡’.
그리고 그 용을 숭배하는 미치광이 집단. 용마교.
그리고 그런 여타의 위협들과는 그 사이즈부터가 아예 다른 어나더 레벨의 괴물.
불사왕, 프리드리히 파울라스.
그리고 그를 ‘신’이라 여기는 셀 수 없이 많은 불사의 군세까지···.
나는 이제 엄연히 S급을 자칭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해졌지만, 아직 쓰러뜨려야 할 적은 많았다.
더군다나 최근, 중국에 둥지를 틀고 긴 잠에 빠진 ‘흑룡’은 태동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첩보가 잦다.
‘흑룡’의 부활과 전세계 연합의 ‘합동 레이드’는, 그 자체로 ‘불사왕’이 본색을 드러내는 시기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즉, 이 정도의 권한을 손에 쥐고도,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휘두르게 되었어도, 아직 내가 바라는 이상에 도달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소리였다.
어떻게 하면,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와 불사왕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허를 찌를 힘을 가질 수 있을까.
테라포밍 이후, 줄곧 나는 그런 고민을 거듭해왔는데···.
답은 의외의 장소에서 튀어나왔다.
그건··· 지난번 테라포밍 후, 마나 고갈로 기절했던 남궁연을 구급차로 안아 옮기다 보았단 푸른 빛.
그건 바로 지난날 나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신적 존재, ‘수신’과 나를 잇는 보옥, 청명옥(靑明玉)의 빛이 분명했다.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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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퀘스트 - <수신의 길>
*진행도 (479/500).
ㅡㅡㅡㅡㅡㅡㅡㅡ
소림사의 대환단,
갑작스러운 검왕의 등장,
거기에 번개 중대 창설이라는 큼직큼직한 일들에 밀려 잠시 뒷전으로 밀려 있었지만···.
신적 존재와 그 권능에 대한 알고리즘을 풀어내는 것은, 현재의 내게 남겨진 큰 과제 중 하나였다.
거기에 진행도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그간 성전사들의 피와 남궁연의 수혈팩을 지금껏 성실히 청명옥에 먹여왔었다.
‘퀘스트의 클리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처음에는 작은 우연인 것만 같았던 한 가지 ‘현상’은 이 엑스트라 퀘스트의 클리어가 목전으로 다가온 현재, 너무나도 분명한 의문이 된 것이다.
‘이 청명옥은 언제나, 남궁연 소위와 있을 때만, 더 큰 반응을 보였다.’
단순한 우연으로 치기엔 지난 1년 2개월간 몇십 몇백 번이나 반복해온 일의 결과가 같았다.
‘먹는 피의 양도, 스스로 빛을 내는 일도, 모두 남궁연 소위라는 단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즉, ‘그녀’와 ‘수신’ 사이에는 뭔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긴밀한 연결점 따위가 있는 거겠지.
‘그게 뭔지···. 전생의 남궁연 소위를 아는 나로서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만···.’
설마 바티칸이 숭배하는 ‘그 신’과 마찬가지로 ‘수신’ 역시 남궁연 소위를 자신의 ‘대행자’ 선택할 줄이야.
역시 그녀는, 전생에도 그렇게 죽어선 안 될 중요 인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번개 중대가 그 괴물들의 허를 찌르는 송곳으로 거듭나기 위해, 나는 전생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힘인, 수신의 성력을 탐구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미지의 힘’에 대한 비밀의 상자를 열어줄 열쇠가 바로···. 나는 남궁연 소위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드르륵!
생각에 빠져 가벼운 노크도 없이 휙 열어젖힌 문.
남궁연 소위는 이번 테라포밍 사태의 주역이었던 만큼, 그 공로를 인정받아 VVIP들이 사용하는 특실에 홀로 입원한 상황이었다.
“...!?”
그렇게 확 열린 문 너머, 내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힘껏 벌린 입에 큼지막한 햄버거를 쑤셔 넣고 있는 남궁연 소위의 모습이었다.
“아.”
그제야, 나는 아무리 독실이었다 할지라도, 내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인지했고···.
“읍부?!”
놀란 눈을 뜨고 입에서 괴상한 소리를 내는 남궁연에게서 눈을 돌려, 아주 자연스럽게 병실을 나와 문을 닫았다.
“콜록! 콜록!”
직후, 엄청난 기침 소리와 무언가 우당탕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문 너머가 완전히 조용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꽤나 길었다.
수신의 성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