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73화 (73/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73화.

한때, 중국의 ‘검성’과 그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희대의 검사, ‘검제’.

그는 자신이 젊은 시절 세계를 방랑하며 모아둔 검을 자신의 제자에게 하나, 둘 건네주는 것으로 유명한 자였다.

특히 검제의 또 다른 이명이 ‘웨폰마스터’였을 정도로, 그는 모든 종류의 검을 다 다룰 줄 아는 자였는데···.

그의 검을 이어받은 제자들은 각각.

단검사,

세검사,

중검사,

장검사,

그리고 이건우가 이미 초장에 꺾어버린 한 손 직검사···. 검귀.

그리고 검왕이라 불리는, 류자키까지.

이렇게 딱 여섯이었다.

그리고 지금.

“꺄, 꺄아악!”

세검의 ‘비타나’를 이어받은 무라모토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로써 쓰러진 검사는 다섯 명째.

그런데 훈련장의 분위기는 끓어오르기는커녕,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어째 가면 갈수록···.”

“싱겁게 끝나잖아?”

심지어 무려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레벨을 ‘31’이라 거짓으로 보고하고 이윤을 챙기던 여검사. 무라모토까지 쓰러지며, 묘한 의심의 시선들 따위가 검왕에게 쏠려왔다.

“31레벨이···.”

“저럴 리가 없을 텐데?”

처음에는 기자들도,

검귀의 다음 순번자였던 단검사가 쓰러질 때만 해도, 에이 이건우 헌터가 워낙 강하니 그런 거겠지 하며 알아서 이유를 찾아주었었다.

하지만 척 봐도 이건우보다 훨씬 오버 스팩이라 세간에 알려져 있던, 여검사마저 허무하게 낙뢰에 감전되어 엎어지니···.

기자들은 이젠 아예. 검왕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들끼리 그런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다음, 아니, 이젠 네놈뿐인가. 류자키.”

“네놈···. 실제 이력이나 레벨을 숨기고 있던 게냐.”

“누가 할 소릴.”

또다시 미소를 지으며 다음을 외치던 이건우에게 으르렁거리는 검왕.

게다가 이건우는 무려 다섯 명이나 되는 검사를 상대하고도, 전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우리들이 약한 것이 아니다.‘

검귀를 시작으로 쓰러져 있는 이 다섯 검사는 모두, 특정한 조건만 맞춰진다면 죽은 뇌왕, 코타로를 쓰러뜨릴 수 있는 A급 상위의 실력자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A급 다섯을 상대하고도 여유롭기 그지없는 저 녀석은······.’

말 그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S급 헌터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모습이었다.

‘S급······. 저 녀석의 마력등급은 분명, 저번 테라포밍을 저지한 후에도 일반적인 A급이었을 텐데···?!’

대체 저 강인함과 여유는 뭐란 말인가···.

망할 뇌왕놈의 실수를 덮으려다, 이젠 거꾸로 검제의 제자들이 숨겨왔던 ‘진짜 레벨’에 대한 의구심만 커질 지경이었다.

지금껏 숱한 정치적인 공작에도 이 ‘진짜 레벨’을 숨긴 승부는 자주 이용됐기에, 이는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될 극비사항.

그러니, 적어도 ‘Lv. 33’의 검왕만은 레벨의 허위 보고라는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Lv. 23’의 이건우를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째 처음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허나, 그래도 검왕에게는 자신이 있었다.

“좋다. 네가 친히 이몸의 가르침을 원한다면, 그에 응하는 게 검사의 도리겠지.”

“말은···. 그래놓고 쟤들처럼 땅바닥에 나뒹굴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이건우는 상당히 도발적인 어조로 그리 말했지만, 검왕은 어느새 당황하던 표정을 얼굴에서 싹 지우고는 말했다.

“아니, 너는 이몸보다 약하다.”

류자키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터벅, 터벅 거침없이 이건우에게 다가와 확언하듯 한 번 더 말했다.

“너는 이몸을 절대 이길 수 없어.”

그건, 무려 다섯 번이나 이건우의 싸움을 그저 지켜보고 얻은 검왕, 류자키의 확신이었다.

‘검제’의 제자 중에서도 단연 으뜸.

그것도 다름 아닌, 지금의 ‘검제’가 검제라 칭송받게 된 근본적인 원인, ‘쌍검’을 이어받은 검왕이기에 그는 이렇게 대놓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마나 등급은 S급에 달하지 못하지만, 실질적인 전투능력만큼은 S급에 필적하는 존재를 세간에선 ‘특급 헌터’라 불린다.

그리고 검왕은 다른 제자들보다 한 차원 높은 존재로, 바로 그 ‘특급 헌터’라 불리는 자였다.

‘놈의 검과 전격을 다루는 솜씨는 확실히 뇌왕과 비교하는 게 민망해질 만큼 강인하고 정교하다. 허나···!’

-스릉!

-스릉!

허리춤에서 뽑아 드는 두 자루의 검.

그것을 손에 쥔 검왕은 이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꽤나 쓸만한 헌터라고 해서, ‘검제’의 가르침을 받은 적통의 제자, 나 검왕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오만이다.”

왼손에는 마검, 슈르샤.

오른손에는 빙검, 샤가나가.

양손에 쥔 검이 빛을 발했다.

그의 자세는 얼핏, 허점투성이의 엉망진창인 모습.

그러나 이건우는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그것이 ‘무결점’이라 불리는 ‘검제’의 진짜 검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이윽고, 진심으로 전투에 임하려는 검왕, 류자키를 마주 보며 이건우는 퍽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이만큼 진심이라면, 그에 걸맞은 예를 갖추기 위해···. 나도 ‘제대로’ 하도록 하지.”

다름 아닌, 이건우 역시 ‘진짜’ 힘을 선보이겠다는 말을 말이다···!

‘제대로?’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그럼 뭐 지금까지는 장난스럽게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그건가?

검왕 류자키는 얼핏 허세처럼 들려오는 이건우의 말에 웃어야 할지, 심각하게 여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허나, 이내 눈앞에 펼쳐지는 ‘변화’에는 비단 검왕 뿐만이 아니라, 훈련장 변두리에 서 있던 기자들마저 하나, 둘 혀를 내두르기 시작했다.

“아니?!”

“저, 저게 뭐야!”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오브-성혈’이 활성화됩니다.

*‘오브’의 활성도는 46%입니다.

*각성자 이건우의 모든 능력치가 대폭 증대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갑작스레 나타나는 메시지.

“헌터가···. 메시지를 띄운 거야?!”

“그것도 자기 의지로?”

기자들은 목소리를 참지 못할 만큼 크게 경악하기 바빴지만, 류자키는 솟아오르는 막대한 존재감에 침을 삼켰다.

-후웅!

눈앞에 태풍을 두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도 거센 비바람이 뒤엉켜 자색의 낙뢰가 초마다 번뜩이는, 거대한 혼돈의 태풍이···!

하물며 그 막대한 양의 ‘오러’는 오직 이건우라는 개인으로부터 발로한 것이었다.

한순간에 뒤집힌 공기.

대기를 뒤덮는 붉은 마력.

허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건우의 푸른 섬광과 갑작스레 피어난 붉은 마력이 뒤엉켜 조화로운 자색의 뇌광을 번뜩일 때···.

이건우는 지금껏 잘만 사용하던 ‘이터널 패인’을 놓고 붉은 안개로 화하더니,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이윽고···.

‘그 검’은 또 한 번 어마어마한 메시지를 출현시켰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신화급 무장, ‘본디오 빌라도’가 ‘오브-성혈’의 마력에 공명합니다.

*공명하는 마력의 힘으로 각성자, 이건우의 모든 능력치는 200% 상승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붉은 마력은 핏빛이 되어, 이건우의 주변을 빠르게 회전했고, 조화를 이룬 자색의 번개가 ‘본디오 빌라도’에 휘감겼다.

-파직! 파지지지직!

그저 뽑아 들고 있는 것만으로, 거대한 태풍을 현현시키는 무지막지한 힘.

그 묵직한 오러와 막대한 마나가 뒤엉킨 자색의 기운은 흡사···.

‘이, 이건···!?’

검왕, 류자키의 오랜 기억 속, 자신의 스승이었던 ‘검제’마저 끝내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 단언했던 절대적인 강자, ‘천마’와 닮아 있었다.

“준비됐나.”

그때 문득, 무겁게 내려앉은 이건우의 목소리가 검왕 류자키에게 닿았다.

어찌나 그 마력이 거대하고 웅대한지, 그저 목소리가 들려온 것만으로 류자키는 발밑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소름이 쫙 돋았다.

이내, 이건우는 본격적인 형(形)을 갖추며 ‘본디오 빌라도’를 쥔 손에 힘을 주는데···!

검왕 류자키는 빠른 결단을 내렸다.

-쿵!

“제가 졌습니다!!”

그는 큰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머리를 땅에 박으며 그리 외쳤다.

“제가 주제를 모르고 설쳐 경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린 점!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돌발적인 행동, 민망한 결말.

그렇지 않아도 이건우의 말도 안 되는 ‘오러와 마력’에 경악하던 기자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더 크게 입을 벌렸다.

그날 밤, 비단 한국을 넘어 세계 각국에 이건우와 검왕의 대결과 그 허무한 결말을 주제로한 기사글이 또 한 번 매스컴을 가득 채우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

-절그럭, 절그럭.

묵직한 발걸음 소리였다.

길고 단단한 마공학 설비를 갖추고, 몬스터가 판을 치는 시베리아의 드넓은 설원마저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내부에, 섬뜩한 갑주 소리는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움찔!

허나, 그럼에도 이 넓은 객실 대부분의 사들은 그 큼직한 소음을 듣지 못하는지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절그럭!

움찔!

갑주의 소음이 들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몸을 떨고 있는 소녀의 옆에서 우락부락한 덩치의 사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앤젤라. 진정해야 합니다. 놈들은 일부러 신성력이 없는 이들에겐 들리지 않는 ‘신성 갑주’의 소음으로 우릴 찾으려 하는 것이니까요.”

작지만 확실하게 와닿은 그 거한의 목소리.

하지만, 눈부시게 반짝이는 은발에 영롱하게 번뜩이는 에메랄드빛 눈을 가진 작은 소녀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해서 몸을 떨 뿐이었다.

고작 열한 살이다.

고사리같이 작은 손은 아직도 1차 산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농장의 장녀라는 것을 증명하듯 거칠었지만, 그래도 작고 여린 소녀에 불과하단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소녀를 자신의 우람한 덩치로 슬쩍 가리려 하는 거한의 이름은, 마르쿠스 베르마코프 코르넬리우스.

바로 바티칸으로 돌아갔던 성전사들의 전사장, 마르쿠스였다.

그의 현재 목표는 이 가녀린 ‘성녀’를 안전히 보호하는 것.

다른 것들은 다 미뤄두고서라도 꼭 이룩해야 할 ‘교단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절그럭.

그들을 저 차디찬 쇳소리는 바로, 자비로운 교황파의 정적, ‘성기사’들의 만행이었다.

팔라딘 혹은 성기사라 불리는 그들은 권력의 중앙집권화를 원하는 바티칸의 젊은 리더,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의 하수인들이었다.

-절그럭.

움찔.

들려오는 걸음 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그들은, 2대 성녀 앤젤라 엘런의 고향인 네덜란드의 풍요로운 풍차마을, 잔세스칸스 전역을 불태웠다.

비유가 아니라, 악의 정화와 정벌을 명분으로 한 마을 전역에 모든 사람을 죽인 것이다.

산채로 붙잡아, 묶고, 불태우는 방식으로···.

-너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신에 대한 모독이리니···.

앤젤라 엘런이란 존재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그들의 ‘신성검’에 피를 흘리며 죽었다.

-죄를 지고 태어난 자신을 원망하라.

-죄를 지고 태어난 자신을 저주하라.

-네가, 네가 나고 자란 마을을 그리고 너의 가족을 죽인 거다.

-저주하라! 악마를 위해 태어난 검은 성녀를!

심지어 그들은, 앤젤라 엘런의 눈앞에서 그녀의 가족들을 도륙냈다.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저주를 면전에 퍼붓고, 옆집 아저씨가, 인근의 홀로 살아가던 할아버지가 직접 자신의 입으로 앤젤라 엘런을 저주하도록 유도하고, 유혹했다.

오직, 앤젤라 엘런이라는 소녀의 ‘정신을 붕괴’시켜 그녀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막대한 신성력을 조금이라도 깎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설마···. 교황파의 원로가 변절자였을 줄이야.’

작은 방심이었다.

같은 교황파, 그것도 오랜 시간 마르쿠스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던 그 노신부가 성자와 내통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작은 방심이, 사소한 하소연 하나가 앤젤라 엘런의 삶을 불태웠다.

저주받을 대상은 앤젤라가 아니었다.

저주를 받고,

비난을 받고,

쓰레기 같은 판단으로 한 소녀의 인생을 망쳐놓은 것은 바로, 젊은 전사장 마르쿠스였다.

그래도 그는 도망쳤다.

언젠가 성녀에게 죄를 고하고, 숙청을 받을지라도, 지금은 그녀를 살리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었으니 말이다.

성전사와 성기사의 전투가 있었다.

한국에 놔두고 온 ‘메리’를 제외한 제7번 성전사대의 모두가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해 흩어졌다.

그렇게 몇 달이다.

이미 몇 달이나 이 지루하고 비루한 추격전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끝이 보이질 않는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기분이다.

저주의 탓일까,

아니면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던 탓일까. 2대 성녀, 앤젤라 엘런은 실어증에 걸리고 말았다.

그렇게 지난 몇 달,

앤젤라의 정신 치료조차 행하지 못한 상태로 처량하게 네덜란드, 프랑스 파리,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거쳐 간신히 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따라잡혔다.

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한 것인지 ‘성기사’들은 끝내 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타 이렇게, 다시금 무고한 앤젤라 엘런의 목숨을 노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느껴지는 적은 다섯, 전투를 행한다면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 다만, 성녀님을 지킬 수 있을까.’

쉽게 고개는 끄덕여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답은 곧 나왔다.

불가능.

‘하지만···.’

이는 피할 수 있는 시련이 아니었다.

‘오직, 내가 해내야 한다. 주여···. 부디 성녀님의 앞날을 밝게, 밝게 비춰주소서···.’

-절그럭.

다가온다.

신성력을 느낄 수 있는 자에게만 들리는 ‘신성 갑주’를 전신에 두른 중무장의 기사가, 다가오는 것이다.

손에 땀을 쥐며, 마르쿠스는 자신의 바로 옆에서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2대 성녀를 끌어안아 더 바짝 자신의 몸에 붙였다.

-절그럭.

이내, 그의 바로 옆까지 당도한 어마어마한 몸집의 사내.

-절그럭.

마르쿠스는 멈춰선 그 사내를 곁눈질하며 숨을 크게 집어삼켰다···!

용서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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