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69화 (69/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69화.

부협회장 이초희가 의식을 회복한 건, ‘테라포밍 진압대’가 작전을 성공시키고 성역으로부터 튕겨 나온 지, 정확히 열흘 뒤의 일이었다.

그간, 여단장 최중철은 협회의 간부와 함께 이번 ‘테라포밍’ 사태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불려 다니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이곳저곳들 돌아다니느라 부대 복귀를 늦출 수 있었다.

이렇게 호텔에서 자고 기자회견장을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국방부의 시간은 흐른다.

이제와서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만,

뭐 그래도 이병이던 내가 특진으로 상병을 달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진짜 복무 개월 수로도 상병이 되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이번 진압대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부산의 5군단과 ‘휴거교’ 탐색을 이어가던 홍진웅 병장은 안타깝게도 국가 비상사태를 이유로 전역이 연기되었다고 한다······.

뭐, 애초부터 본인도 전역 후 다시 장교로 임관할 의향이 있었으니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겠다만, 그래도 ‘전역 연기’라니 심히 좋지 않은 울림이었다.

“이건우 상병, 자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자네에게 중대 창설 권한을 주려고 하네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틀간 몸 상태를 회복하고, 기자회견장에 나가던 첫날 여단장 최중철은 문득 내게 그런 말을 건네왔다.

“굳이 7여단에 소속될 필요도 없다네. 자네가 필요하다면 중대 관리에 필요한 인력을 내가 파견해줄 것이고, 내부 구성원 또한 자네의 마음대로 구성해도 좋네.”

“대신, 알고 있는 바를 모두 털어놔라, 혹은 정기보고를 충실히 이행하라. 그런 것입니까.”

당연히 너무나도 말이 안 되는 제안이었기에 나는 반쯤 장난 섞인 어조로 그리 말하며 곧바로 그 제안을 거절하려 했지만,

“아니, 필요 없네. 이건우 상병. 자네는 그저 자네가 하고 싶은 바를 행하면 되네. 군인의 의무는 강요치 않겠네.”

사실,

일개 병사급 인물에게 독립 중대 창설 권한을 내어주겠다는 건···. 까놓고,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최중철 소장의 이름을 걸고 부대를 창설한 뒤, 이후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 누가 아느냐는 말이다.

허나, 그런 말을 하는 최중철 소장의 눈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진심이십니까?”

너무 믿기지 않아 내가 묻자, 여단장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안을 수락할 것인가를 재차 물어왔다.

의무는 없이 ‘권리’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

그렇게 되면 사실상 내가 창설하게 될 그 중대는 군의 보급품과 무기고를 마음껏 사용하는 ‘자율용병대’가 되는 것이다.

...

솔직히 이렇게 파격적인 혜택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면 나는 진지하게 듣지도 않고 쳐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쟁영웅 최중철.

함부로 실언을 내뱉거나, 허언을 입에 담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받아들여 손해 볼 것이 없는 이런 제안을 거절할 내가 아니었다.

다만,

“승낙 이전에 한 가지만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런 파격적인 혜택을 주시기로 하신 그 계기가 정확히 무엇입니까.”

내가 그리 묻자, 잠시 최중철 소장은 잠시 가만히 나를 응시했고 이내 생각을 다 갈무리했는지 입을 열었다.

“내 스승님에 대해 알고 있나.”

“예. 김영환 중장님···. 여단장님과 같은 세계에 몇 없는, ‘야수화’ 스킬의 보유자시자, 독수리의 눈으로 그 누구보다 전장을 잘 통솔하시던 희대의 명군.”

“하. 자네는 역시 견문이 넓군. 1세대 헌터셨던 스승님마저도 알고 있다니···.”

전설의 헌터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풀자 기분이 좋은 듯 슬쩍 미소짓는 최중철 소장.

헌데, 그저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연 그에게서 나온 말은 심히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뭐, 말하자면 그거라네. 난 자네가 ‘전장의 지휘자’라는 스승님의 별호를 이어받을 자라 여기고 있다는 게지.”

‘전장의 지휘자’.

마치 관현악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전장의 군인들을 통솔하고 매번 승리로 이끈다 해서 붙여진 별호.

아무래도 지난 ‘다중 무전’을 행하는 나의 모습이 여단장 최중철에게는 특히나 각별하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문제는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그분의 별호를 이어받아 중대를 창설한다고 해도,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럽게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에서는 나에 대한 음모론이 넘쳐나며, 외신들 역시 반은 내 일대기를 믿고 칭송하는 반면, 나머지 반은 아직도 악착같은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갑자기 ‘전설’의 별호를 받고 의무 따위는 없는 중대를 창설해 내 멋대로 행한다?

아마 긍정적인 방향보다는 부정적인 이야기가 판을 칠 것이다.

이 세계는 ‘개인’이 ‘집단’을 이길 수 있는 부조리한 세계.

긍정적인 이미지로 ‘개인’을 감화시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불사왕’이 그만큼의 힘을 가지고도 아직까지 자신의 이미지를 살뜰하게 챙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지.

때문에 나는 여단장을 향해 자연스러운 우려를 표했지만, 최중철 소장은 어째서인지 묘한 미소를 내게 돌려줄 뿐이었다.

“걱정 말게. 자네는 이번 기회에 진짜 영웅으로 세계에 각인될 테니.”

또 무슨 계획을 세웠길래 저리 자신만만한 걸까.

여단장의 대답을 들은 나는 곧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결과는 생각보다 금방, 보다 직관적으로 내게 앞에 다가왔다.

***

-그렇다면, 레벨을 측정할 수 없는 리치로부터 모든 부대원들을 지킬 수 있던 것은 부대원들의 공로와 치밀한 작전이 아닌 오롯이 이건우 상병의 힘이었단 말씀입니까?

다소 격앙된 어조로 꽤나 과장된 질문을 던져오는 기자.

그의 눈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위아래로 쭉 찢어져 있었는데, 그 기자에게 돌아가는 대답은 평이했다.

“그렇습니다. 혈검의 힘을 각성한 이건우 상병이 적재적소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간악한 휴거교의 늪에 빠져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빠짐도 없이 전부 말입니다.”

그리 답하는 이는, 다름 아닌 최중철 소장.

다시 말하지만, 그는 함부로 허언과 실언을 입에 담지 않는다.

그 말은 다시 말해···.

필요하다면 한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하, 하지만! 7여단의 진압대에는 휴거교의 저주를 해주 한다는 남궁연 소위가 있···.

“아무리 소위의 스킬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도 그녀 역시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모든 전장에 영향력을 끼칠 수는 없는 법이죠. 아 그리고, 앞선 질문에는 조금 잘못된 부분이 있군요.”

-어떤···?

“세계일보 기자님이 말씀하신 그 치밀한 작전 역시 모두 이건우 상병의 머리에서 나온 작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예···? 아, 하지만, 그럼 여단장께선···.

“저의 의견은, 이건우 상병의 기발하고 독특하면서도 창의적인 작전에 비교해 너무나도 고리타분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작전을 주도한 건 그리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 역시 모두 이건우 상병이었지요.”

-아··· 예···.

이젠 기자회견 초반, 기가 찰 정도로 공격적인 질문을 이어가던 세계일보의 장 기자마저 혀를 내두른다.

이게 기자회견장인지, 음유시인이 영웅의 일대기를 노래하는 무대인지 헷갈릴 수준이었다.

여단장 최중철과 이초희를 대신해 참석한 협회의 간부가 입을 모아, 이번 사태의 모든 ‘공로’를 아주 노골적으로 내게 몰아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생각인가 했는데,

‘테라포밍’이라는 무식한 워딩에 쏠리는 관심을 역으로 이용해, 내 이름값을 확실히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던 듯했다.

게다가 여단장의 노골적인 밀어주기 덕에 나는 현재···.

‘테라포밍’이 일어날 것을 예측해 부대를 사전에 집결시키고,

가평 일대의 모든 거주민을 솔선수범 대피시킨 사람이 되었으며,

‘납치’를 당한 것은 적의 계략을 역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포장되었고,

위험에 대한 경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군부대와 시 자체를 대신해 혈혈단신으로 몰려나오는 군단급 병력을 혼자서 막아내고 국가를 구한 영웅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거기다 더해 뒤늦게 도착한 협회와 군의 병력을 직접 통솔하며 인명 피해를 줄이고,

상처를 회복한 뒤에는 또다시 죽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혈검’을 쥐고 전장에 뛰어든 사람이 되었다······.

‘대체 누구냐 그 역사적인 영웅호걸은,’

아무리 나라도, 한 사람의 인간인 이상 그 모든 것을 행할 수는 없다.

그런데 또 신비한 사실은, 여단장이 칭송하는 내 공로의 대부분은 어느정도 실제 일어난 일들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런 노골적인 밀어주기의 진위를 의심한 기자들이 2차 기자회견을 다시 열자, 증인이라며 나타난 사람들의 증언들은 모두 여단장의 주장에 근거를 마련해줄 뿐이었다.

-이건우 헌터님은 진짜입니다. 여러분 인터넷의 허무맹랑한 음모론을 믿지 마세요. 뇌왕을 쓰러뜨린 이건우 헌터님은 진짜 S급 헌터입니다!

타르타로스의 관리소장,

-그는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졌네, 그의 직관적인 지시는 실로 놀라웠고, 논리정연한 지휘 솜씨는 나를 비롯해 모든 군인들의 귀감이 되었지.

1군단의 이정훈 대령,

-제가 가장 도움을 많이 받는 건, 부협회장님이지만, 그 부협회장님을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구해준 것은···. 정말로 혈검을 쥔 이건우 상병이었습니다.

24연대의 김우찬 중사,

-전부 진짭니다. 못 믿겠으면 나한테 따로 찾아오시길 바랍니다. 검사로서 진지하게, 뭐가 진짜고 뭐가 거짓말인지 알려줄 테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왠지 섬뜩한 표정으로 그리 말해준 전장의 전우, 철혈검희 이서영까지.

그 후로도 어떻게 해서도 믿기 힘들다는 ‘정치인들’의 발언을 통해 기자회견은 끝내 3차까지 열렸지만···.

한 손에는 묠니르.

허리춤에는 혈검, 본디오 빌라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이번 사태의 숙적인 개벽의 장로가 사용하던 무구, ‘롱기누스’를 쥔 모습을 보여주자···.

어째 기자회견이 열릴 때마다 도리어 여단장 최중철의 ‘밀어주기’가 점점 더 사실로 굳어가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거짓에서 진실로 여론이 뒤바뀌자 기자회견장은 아예 축제 현장이 되었다.

““이건우! 이건우!””

“나, 나도 속으로는 처음부터 이건우 헌터를 믿고 있었다고!”

“신화급 무구가 셋!”

“심지어 저게 모두 한 헌터의 무구라니···!”

“이건우는 전설이다!”

“그럼, 전설의 1세대 헌터, 김영환 중장님의 별호를 이어받으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

게다가 그 밖에도, 얼마 전 있었던 ‘프랑스 총리’의 등장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양손으로 들어 올린 푯말에는 ‘새로운 뇌왕 이건우’라는 문구가 적혀있었고, 또 다른 푯말에는 ‘전장의 지휘자’라는 글귀가 크게 적혀 있었다.

““이건우! 이건우!””

““뇌왕! 뇌왕!””

기자회견장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엄청난 인파의 목소리.

고작 일주일 만에,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격변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를 스스로 돌이켜보던 나는···.

“···괜찮은데?”

솔직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 축제와도 다름없는 분위기를 그냥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

테라포밍의 종자를 내 손으로 녹여버린 위업.

거기에 진정한 흡혈귀로 거듭났던 개벽의 장로, 박유진을 쓰러뜨린 업적.

게다가 테라포밍을 통해 무한히 생성되던 그 수많은 지평선의 ‘흡혈종’을 보이는 족족 싹쓸이한 덕분일까.

이전번 데스나이트 케일른과의 전투 후, Lv. 15를 달성했던 나는, 다시 한번 믿을 수 없는 도약을 이루어냈다.

그 레벨은 무려··· Lv. 23.

6연속 레벨업이라는 미친 업적을 또다시 스스로 갈아치우며 8연속 레벨업이라는 미친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하, 하하.”

하도 놀라 헛웃음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긴 했지만, 사실 내 표정에는 이렇다 할 큰 변화가 없었다.

이런 일도 한두 번 겪어봐야지, 계속 반복되니 오히려 담담하게 된다.

물론 건조했던 건 내 반응뿐이었던 것인지, 세간의 반응은 뜨거웠다.

【속보】 S급 헌터, 이건우! 자신의 기록을 또다시 뒤엎는다! 8연속 레벨업!

【속보】 한국이 놀라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이건우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속보】 8연속 레벨업, 이건우는 새로운 신화를 써 내려가는 그 초입에 서 있다!!! 우린 신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느낌표의 수를 늘려가는 기사들.

밑에서 다시 밑까지 내려보니, 느낌표로 아예 도배가 되어있어 보기 흉할 수준이 되어있었다.

-이건우 헌터는···.

-이번 테라포밍 진압대에서 활약한···.

-세계 각국의 유명 방송사들은 모두 이건우 헌터에 대한 보도로 도배가 되어···.

심지어 TV채널을 어디로 돌리건, 이번 ‘테라포밍’에 관한 소식 혹은 나의 이름이 언급되는 뉴스 보도가 들려오니, 이젠 뒤늦게 부담스러울 수준이었다.

“왜 그래?”

그때, 열심히 TV채널을 돌리던 내게 협회 사옥, 소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서영이 질문을 건네왔다.

“아니요. 그냥······. 여기저기서 제 이름이 나오는 게 조금 신기해서요.”

전생에는 이미 언론사고 뭐고 다 휴거교에게 먹혀, 나는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으면 받았지, 이렇게 대놓고 칭송해주는 분위기는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즐겨놓고?”

“아니, 그 날은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랬죠. 그런데 지나고 보니, 좀 민망하네요.”

“원래 그래. 관심이란 게 처음엔 좋은데 나중에는 부담으로 다가오거든.”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공감해주는 철혈검희.

그녀 역시 열세 살부터 전쟁에서 활약한 사람으로서 지나친 관심과 부담을 모두 경험해본 적이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조심해 앞으로 네가 하는 모든 언행을 상상 이상으로 많은 연놈들이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뭐···. S급 헌터라는 걸 발표할 때부터 각오했던 바였는데 말이죠.”

“현실이 되니 조금 다르지?”

“그러네요. 하하하.”

언제부터인가, 관성적으로 내가 지내는 협회 사옥에 들어와 방을 청소해주거나, 이따금 요리를 한 번씩 만들어주고 가는 철혈검희 이서영.

그녀는 철혈검희라는 이명과 달리, 생각보다 생활력이 있는 여자다.

전생에는 굳이 ‘대항군’의 내 개별실까지 늦은 밤에 찾아와 청소를 해주던 터라 부담스러우니 그만하라 말했었는데···.

그녀는 자기가 청소를 좋아해서 하는 것뿐이니 신경 끄라는 식으로 으르렁거렸었다.

그땐 아직 내 직급이 더 낮았기에, 나는 가만히 그녀의 조력을 받았고, 그렇게 가까워지다 우린 막역한 ‘친구’ 사이가 되었었다.

아무튼, 그 전생을 기억하는 나는 굳이 멋대로 들이닥치는 이서영을 막지 않았고, 그녀는 이렇게 시간이 날 때면 내가 지내는 협회 사옥에 찾아오게 된 것이다.

“야.”

“예.”

“···너, 지금은 진짜지?”

베르디르의 변신술에 속았던 경험 때문일까.

이서영은 드물게 조금 긴장한 얼굴로 그리 물어왔고, 나는 즉답했다.

“당연하죠.”

“확인해봐도 돼?”

확인?

대체 무슨···.

의문은 들었지만, 뭐, 그녀가 내게 해가 될 일을 할 리가 없으니,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

그러자 무언가 굳은 결심을 했다는 듯 서서히 다가오는 이서영.

얼굴이 가까워지자 그녀의 얼굴에 열꽃이 불그스름하게 퍼지는 모습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응?’

나는 그런 격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의문을 가지는데,

그녀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그대로 내 정면에 서 있다가, 돌연 소파 옆자리에 딱 붙어 앉아 그 작은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이게, 확인···?”

확인이라 하기에는 다소 이상한 모습에 내가 그런 의문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자, 이서영은 귀까지 빨갛게 물들인 상태로 움찔하고 몸을 떨더니 변명을 늘어놓듯 말했다.

“시, 심장 소리를 들으려고···. 사, 사람마다 고유한 박동이 다르니까. 나는 그걸 느낄 수 있고···. 뭐. 그런 거야.”

“그러면, 아예 왼쪽 가슴 쪽에 귀를 대는 게 더 좋지 않아요?”

“아, 그, 나도, 그건 생각했는데···. 일단 좀 너무 빠른 게 아닐까 싶어, 서엇?!”

와락,

나는 이래저래 말을 빙빙 돌리는 이서영을 단번에 끌어안았고, 그녀는 그녀답지 않게 새된 비명을 질렀다.

“뭐, 뭐, 뭐야. 뭐 하는···. 뭐.”

“아, 심장 소리는 이렇게 하는 게 더 잘 들리지 않을까 싶어서요.”

품에 들어온 이서영의 전신.

이렇게 안고 있으니, 그녀의 작은 체구, 작은 키가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 고사리 같은 손이,

이 오밀조밀한 몸으로 그 많은 이들을 지키다니.

역시나, 이 검사는 대단한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이서영의 몸이 스마트폰처럼 진동하는 것을 느끼고, 뒤늦게 그녀가 혹시라도 화가 난 것이 아닐까 싶어 그 작은 몸을 감싼 팔을 풀려 했는데,

“싫으시다면 얼른···.”

어째서인지, 멀어지려는 내 소매를 그녀의 작은 손은 꽉 움켜쥐었다.

“아.”

그건 퍽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는지 이서영은 스스로 행동하고도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나는 왜인지 그토록 곤란해하는 표정의 이서영을 보자 왠지 모르게 놀려주고 싶어져 일부러 짓궂게 말했다.

“왜 그러세요? 혹시, 좀 더 이대로 있고 싶으시다거나···.”

그렇게 말꼬리를 흘리며, ‘에이 설마 그 철혈검희가 그럴 리가’라는 식의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이서영은 마치, 꼬리를 밟힌 고양이 마냥 몸을 휙 하고 돌려 내 품에서 순식간에 맞은편 소파로 도망을 갔다.

“아, 아니?! 무, 무슨 말도 안, 안 되는···?”

쉼 없이 말을 더듬으며 경계심 그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이서영.

나로서는 오히려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여주니 더 즐거울 뿐이었는데, 그녀는 그걸 모르는지 한참을 더 경계심 강한 고양이 같이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잠시간, 어색하면서도 나로서는 퍽 재미있던 침묵을 깨며, 이서영은 아예 다른 화제를 입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너···. 이번에는 왜 수행 안 해? 저번에도, 그 전에도 레벨업 뒤에는 꼭 훈련장에 틀어박혔었잖아.”

“아아, 그때부터 이미 저를 주의 깊게 지켜보시고 계셨던 거군요?”

“아! 아아 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내 한마디에 다시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역동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그녀. 나는 그런 미소가 절로 나오는 모습에 흐뭇하게 웃으며 그녀의 질문에 성실히 답을 해주었다.

“이번에는, 기다리고 있는 게 있어서요.”

“기다리고 있는 거?”

“예. 만약, 8연속 레벨업으로 생긴 몸의 변화에 제가 적응한다 해도, 그걸 얻으면 다시 적응해야 하거든요···. 일을 두 번 하긴 싫잖아요?”

“다시 적응해야 한다니······. 아직도 성장할 뭐가 남았다는 거야? 영약 같은 거라도 받기로 했어? 아, 이번 프랑스 총리가 약조한 보상이 그건가.”

“아니요. 그건 또 다른 걸 받을 생각이고요. 이건 조금 특별한 거예요.”

특별한?

내가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를 입에 담자 의문을 표하는 이서영.

저렇게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을 보고 있자면 또 한 번 그녀를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샘솟았지만,

-똑똑.

이내 들려오는 노크 소리가 내 짓궂은 행동을 멈춰버렸다.

“이건우님. 흑태자 칼레드님으로부터 배송된 물품이 도착했습니다.”

“아, 예. 금방 갈게요.”

그 내부에 들어있는 물품이 어떤 것인데 ‘택배 배송’이라니···. 과연 흑태자 칼레드라고 해야 하나, 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태연히 행한다.

이윽고 내 손으로 전달되는 큼지막한 택배 상자에는, 흑태자의 가문 다시 말해, 왕실의 인장이 크게 찍혀 있었다.

이 속에 들어있는 물건은 다름 아닌,

‘소림사의 대환단’.

나는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서영을 바로 옆에 두고, 택배 상자를 보며 입맛을 다졌다.

‘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다.’

한층 더 높게,

한 차원 더 멀리 큰 도약을 이룩할 시간이 드디어 내 눈앞에 당도한 것이었다.

대환단, 끝없는 성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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