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68화.
비가 내렸다.
혈검이 허공에 새겨넣은 사선을 타고 휘몰아치는 천지를 가르는 오러.
아주 먼 과거, 반인반신을 죽음에 몰아넣은 자의 ‘죄’가 새겨진 혈검은 붉디붉은 비와 함께 눈물을 흘리듯, 눈부신 적광을 발했다.
빗줄기는 신살창을 쥔 ‘성역의 전사’를 통째로 녹여버릴 기세로 회전하며 불타올랐고,
“크으으으으으윽!”
엄연한 흡혈귀로 거듭난 뒤, 단 한 번도 인간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던 장로의 입에서는 격통으로 가득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공에 맺힌 꽃이,
서른 자루로 불어났던 혈창이 춤을 춘다.
하지만, 무수히 많다 여겼던 ‘서른’ 자루는 이 지하세계에 내리는 비를 모두 막을 수는 없기에,
박유진은 피부가 녹아내리는 상태로 이를 악물고 도약했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진짜 ‘혈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의 기세.
이젠 뱀이 아닌 용으로, 하늘로 승천하기 위해 도약하는 신살창의 주인.
그녀의 창에서 쉼 없이 뿜어져 나오는 오러는 마치 붉은 눈보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보라.
그리고 그 눈을 적시는 비.
‘성역’은,
테라포밍의 종자인 ‘피를 먹는 포도나무’는,
용처럼 비상하는 ‘성역의 전사’에게 끝없이 마나를 보강했지만,
“하지만 난···.”
창끝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이건우는 문득, 입을 열어 고한다.
“그 폭우 속에서 지켜야 할 이들을 찾았다.”
그들은 오롯이 이건우를 위해 죽었다.
그들의 유가족은 쉼 없이 눈물을 흘렸고···.
떠올리는 것은 비명.
가족을 잃고 남겨진 아이의 비명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도, 말없이 돌아서야만 했던 무능하고 한심했던 자신.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그 끔찍한 기억이 검에 감긴다.
비명검(悲銘劍) 제2형.
망우(忘雨).
“그저 도망친 너와 다르게 말이야.”
이건우의 검이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그것은 과거, 데스나이트 케일른에게 휘둘렀던 이건우의 오리지널 검술.
비상하는 용이 ‘세계’에 조력으로 그 짙은 붉은 색의 오러를 무한히 토해내며 달려들지만,
혈검을 고쳐 쥔 이건우는 회피하지도, 흘려내지도 않고 맞부딪혔다.
상황은 반전되어 처음으로 돌아갔다.
내리치는 이건우의 혈검.
솟아오르는 박유진의 혈창.
휘몰아치는 비는 이건우의 검에 휘감긴다.
흩날리는 눈은 박유진의 창끝에서 꽃이 된다.
창끝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혹한은 태풍처럼 회전하는 비를 단번에 얼려내고,
상승하는 혈창, ‘롱기누스’는 맞부딪힌 이건우의 혈검 ‘본디오 빌라도’의 기세마저 모조리 꿰뚫고, 그의 어깨에 박혔다.
하지만,
“말했잖나. 하늘을 여는 장로······.”
이건우의 눈과 입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직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고.”
어깨에 혈창이 꽂히고도,
그 혈창으로부터 혹한의 마력에 노출되어 전신의 반이 얼어붙은 상태로도,
뇌를 마비시킬 만큼의 격통으로 얼룩진 혈속성의 오러에 그래도 노출된 그 상황에도,
이건우는 도리어 전신에 힘을 더해 내리는 비명검에 폭발적인 기세를 더 했다.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는 비는 겨울을 가른다.
사선으로, 창을 내지른 박유진의 상체를 찢어발기는 ‘본디오 빌라도’.
이윽고, 아로새겨진 그 혈검의 궤적을 따라 생살을 녹이고 뼈를 으깨는 비가 끝도 없이 내렸다.
-쏴아아아아!
비가 내렸다.
오직 박유진이라는 한 흡혈귀, 한 인간, 세상을 원망하며 일생을 살아온 한 고아를 향해,
불쌍하고 안타까운 그 영혼을 향해,
“겨울은 끝났다. 박유진.”
봄비가 내린다.
“이젠 봄이야.”
***
리치, 베르디르는 사망했다.
철혈검희 이서영은 ‘오러의 비’에 둘러싸여 넝마가 된 녀석을 어떻게든 생포하려 했지만,
‘라이프 포스 베슬’이라는 생명의 함을 통해, 끝도 없이 부활하는 녀석을 정지시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했다.
노을의 전도사, 김총준은 생포했다.
나의 등장과 동시에, ‘비’에 젖어 무력화된 녀석을 백귀야행 이초희는 ‘결계의 요괴’를 현현해 허수 감옥에 가둬버렸다.
마지막으로 흡혈귀로 각성한 박유진은 나의 손에 죽었다.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어, 양부모에게서도 버려지고, 흡혈귀가 되어, 지독하게 오랜 시간 검제 이서영을 위협했던 신살창의 주인은, 내 손에 죽었다.
그녀는 죽을 당시, 단순한 인간이 아닌 흡혈귀로 각성한 상태였기에, 나는 데스나이트 케일른을 잡았을 때와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얻었으리라.
이곳은 게이트가 아닌지라 친절한 안내 메시지는 없었지만, 나는 내 몸에 차오르는 충만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테라포밍의 종자는 다행히도,
-쪼르르륵.
‘파괴 불가 오브젝트’로 거듭나기 1시간 30분 전,
그러니까 실제 시간으로 고작 30분을 앞두고···. 내가 모든 영약의 재료들을 들이부어 만든 ‘맹독’에 닿아 녹아내렸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종자, ‘피를 먹는 포도나무’는 알 수 없는 ‘물질’에 닿아 사라집니다.
*테라포밍 저지에 성공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성역’은 핵을 잃고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종자’에 맹독을 들이붓고 있는 내 옆에서, 다친 팔을 움켜쥐고 있던 이초희가 중얼거렸다.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이초희의 팔은 척 보기에도 ‘괴사’ 상태에 빠진 것인지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녀는 도리어 감각이 아예 사라져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게 후련하다는 태도였다.
아련한 중얼거림과 함게 단절된 세계, ‘성역’은 차근차근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러다 문득, 녹아내린 ‘종자의 흔적’을 뒤적거리던 내게 이초희는 다소 쓸쓸한 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또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또···. 살아남았고”
듣자 하니,
그건 내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벽에다 대고 말하는 넋두리.
혹은 이 먼지가 되어 사라져가는 ‘성역’과 함께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용맹한 군인들을 위한 레퀴엠.
“나는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먼지가 되어 가는 성역을 올려다보며 조곤조곤 중얼거리는 한 마디.
이윽고 나는, 드디어 손끝에 닿은 ‘그것’을 빠르게 뒷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줄곧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던 부협회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딱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툭, 내뱉은 그녀의 말에 내가 꽤 진지한 목소리로 응하니, 이초희는 그제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내려 나를 바라보았다.
“뭔데?”
묻는 그녀는 내게 답을 원하는 듯했다.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그 답을 말이다.
허나,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은 친절한 답도 상냥한 위로도 아니었다.
“이초희, 당신이 살아남으니, 그들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겁니다.”
“...내가 살아서, 헛되지 않게 된 거라고···?”
의문스럽게 되묻는 그녀에게 나는 확신 어린 어조로 답했다.
“그들은, 당신을 살리기 위해 죽었습니다. 당당한 죽음이었죠. 그리고 부협회장님은 결국 살아남아 이 ‘테라포밍 진압’이라는 대업에 큰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해주려는 말은 잔인하지만, 섬뜩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책임’에 대한 것이었다.
“부협회장님. 살아있는 당신이 바로 그 죽음들의 의미입니다. 살아남은 자신을 개탄하지 마세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해주세요. 그게 살아남은 자들의 책임입니다.”
죽음의 의미는, 그 죽음을 통해 살아남은 이가 증명해야 한다.
내가 동료들의 죽음을 통해 살아남아 끝내 이렇게 살아가고 있듯, 나와 닮은꼴인 그녀 역시 그런 삶을 살아야겠지.
힘들 것이다.
많이 울고, 절망하기도 할 것이다.
허나, 나는 믿는다.
흑태자 칼레드에게 말했듯. 그녀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죽음의 의미···. 의미 있는 죽음···.”
내가 한 말 중에서도, 특히 그 단어에 꽂혔는지 계속해서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이초희.
나는 그런 그녀를 천천히 옆에서 지켜보다, 줄곧 태연하면서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울음을 그쳐주세요.”
“어···?”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이초희.
그녀는 뭔가 있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는 내게서 한 걸음 거리를 벌렸다.
그런 퍽 우스운 반응을 보여주는 이초희를 향해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흐느끼지 않고,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고 울지 않는 게 아닙니다.”
“그, 그게···.”
이초희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역린이 들춰진 사람처럼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말을 더듬었고,
나는 그런 재미있는 반응에 더 큰 미소를 지으며, 예전부터 그녀에게 꼭 해주고 싶던 말을 입에 담았다.
“차라리 그럴 땐 시원하게 우는 게 어떨까요? 생각보다 ‘눈물’에는 묵은 감정을 씻어내리는 힘이 있으니까요.”
“...정말?”
“그럼요. 당신과 닮은 내가 하는 말입니다. 믿어보세요.”
마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해질 만큼, 20대 중반의 외모 그대로 두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초희.
누가 그 백귀야행이,
협회를 이끄는 부협회장이 저런 무구한 아이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으리라 믿겠는가.
아마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해도, 아마 대부분은 믿지 못하겠지.
“응, 알았어.”
그저 한번 시원하게 울어보라 했을 뿐인데, 뭔가 굳은 결의를 다지는 것처럼 주먹을 움켜쥐고 답하는 이초희.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다시 한번 씩 웃었고, 드디어 재앙의 기적으로 현현했던 ‘성역’은 그 형태를 모두 잃고 먼지로 화하기 시작했다.
의식이 흐려져가는 사이, 나는 뒷주머니에 넣은 ‘그것’을 다시 한번 어루만졌다.
‘전이’를 당하는 것과 동시에 눈앞에 부유하는 메시지.
그것은,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잊혀진 유산의 열쇠, ‘아카식 레코드ⅲ’을 획득합니다.
*‘세 번째 유산’의 위치는 ‘12구역’입니다.
*부디,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황금 게이트’ 만큼이나 세상을 요동치게 할, 엄청난 비밀을 내포한 메시지였다.
***
유일하게 한국에 남기로 했던 프랑스 총리와 그의 수하인 ‘저스티스 가디언즈’는 공식적으로 이건우에게 사과를 표했다.
마포대교 습격 사태 직후, 그들이 발표했던 성명···.
새로운 S급 헌터 이건우를 완벽하게 보호하겠다는 약조가 급작스러운 ‘납치’ 사태로 어처구니없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계를 선도하며 세계인의 이정표라 불리는 ‘프랑스 총리’가 직접 거 하는 이곳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세계의 ‘리더’를 자칭하는 그들이 사죄의 표시와 함께 막대한 보상을 약조하는 것은 아마,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으리라.
성역으로부터 튕겨져 나온 ‘전이’ 직후,
반파된 ‘테라포밍 진압대’는 타르타로스 산맥 일대를 가득 채운 아군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진작 지원병력을 약조했던 용병대, ‘만검’과 ‘황해’도 있었고, 이건우의 보호를 약조했던 프랑스의 세력도 있었으며,
가평군 일대의 상비군과 철혈검희의 다소 거친 ‘요청’으로 소규모의 병력들을 급하게 파견했던 부대들의, 본대들 또한 모여 있었다.
거기에 기자들, 인근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이 한술 거드는 아비규환 속에서,
총결정권자로서 ‘테라포밍 진압대’를 이끌던 여단장 최중철은 직접 자신의 입으로 사태의 종언을 고했다.
“테라포밍 진압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그러자 몰려든 기자들은 끝도 없이 질문을 던져댔지만, 그런 것에 응하기엔 이번 ‘테라포밍 진압대’의 생존자 5백여 명은, 너무나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실려 가는 사람들.
특히 한쪽 팔이 아예 괴사 상태에 빠져 있던 이초희는 ‘신의’가 있는 병원으로 급하게 실려 가게 되었다.
이윽고 이초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어느 병실에 입원한 상태였다.
입에는 산소마스크.
옆에는 꽤나 중장비로 보이는 의료기기들이 잇따라 줄 세워져 있었고 꽤나 굵직한 튜브관 따위가 그 기계에서 이초희의 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후우. 후우우.
마스크에 가로막힌 입에서 숨을 쉴 때마다 퍽 초조한 느낌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다 죽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정작 괴사 상태에 이르렀던 팔이 다시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아파진 것을 보면···.
‘팔의 감각이 돌아왔어···.’
상태가 호전된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허나, 정작 의식을 회복한 이초희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은 얼마나 흐른 걸까.
기자회견은 잡았을까.
빠르게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또, 언론에서 알 권리니 뭐니 떠들 텐데···.
‘테라포밍’이라는 워딩은 너무 자극적이니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지 않도록 적당히 말을 돌려야 할 것이고,
정예요원들은 얼마나 죽었나.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이번에는 몇 명이나 더 많은 이들을 뽑아야 할까.
이번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숭고한 희생을 자처한 이들의 장례식도 준비해야 하는데······.
의식이 회복되는 것과 동시에 ‘일’에 대해 떠올리던 이초희.
하지만 문득 느껴지는 위화감이 그녀의 ‘일 중독’ 머리를 멈춰 세웠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어느샌가 ‘프랑스 총리’가 공식적으로 이건우에게 사과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누가 옆에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 그 외의 무슨 대화가 오갔던 것인지는 기억나질 않았다.
아마 자신은 퍽 오랜 시간을 의식불명 상태로 지내고 있던 모양이었다···.
드물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 이어진다.
현황을 모르니 ‘일’에 대해 떠올리려 해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이초희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아무 생각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문득 이초희의 머릿속에서 어떤 인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흐느끼지 않고,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고 울지 않는 게 아닙니다.
그는,
이건우는 어떻게 알았을까.
이초희는 약혼자를 잃은 후 지금껏, 단 한 번도 들킨 적이 없었다.
급박한 상황에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눈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사태가 종식된 이후에 눈물을 참는 것을 꿰뚫어 보다니.
이건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건우···.
그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 걸까.
그는 40년 넘게 생을 살아온 부협회장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숱한 이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고독함’에 공감을 표하고 있었다.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이초희는 이미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서류’로 다 훑어본 상황이었지만, 그런 종이 쪼가리는 결코 이건우의 본모습을 설명해주지 못했다.
수수께끼,
정말 특이한 남자다.
특히 이초희의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맨 처음 그녀를 충격에 빠뜨렸던 한마디였다.
-그러니, 이제 그만 울음을 그쳐주세요.
그 한마디는 어째서인지 그녀가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의 목소리와 겹쳐 들렸다.
-울지마···.
그의 유언이, 이초희의 삶을 격변시킨 그의 죽음이 가슴을 강하게 죄어왔고···.
“흑···. 흐윽···.”
그녀의 눈에서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미안해.’
이내 마음으로 되뇌는 것은, 끝없는 사죄였다.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못 미더운 사람이라 미안해, 한심한 사람이라 미안해, 희생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서둘러 결단을 내리지 못해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이미 죽은 약혼자로부터 시작된 사죄는, 그녀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따라 강처럼 흐르고 흘러 바로 이번 ‘테리포밍 진압대’에 대한 사죄로까지 다가왔다.
이내 이초희는 울고 울다, 언젠가 그 모든 영웅들의 유가족을 직접 찾아갈 것을 다짐했다.
혹여나 원망 섞인 한마디를 듣게 될까 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고,
구슬픈 울음소리를 듣고 듣다··· 끝내 이초희 자신마저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하게 될까 봐.
찾아가질 못했던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다름아닌 이초희를 위해 숭고하게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의 유가족에게 그간 이초희는 직접 사죄를 건네질 못했다.
허나, 이젠 그 걸음과 걸음을 자신의 발로 자신의 손으로 해내고자 다짐한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그들의 손을 움켜쥐고,
그들을 직접 위로하고,
영웅들의 공로를 자신의 입으로 칭송하며 노래하는 그런 협회장이 되고 싶다고···.
자신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눈물은 흐른다.
울고 울다 눈이 퉁퉁 부어 매만지니 손이 흥건히 젖을 정도다.
다만, 그녀가 우는 동안에도 떠오른 태양은 창틈 너머에서 그녀를 비추었다.
힘차게 반짝이는 그 광명은, 그 따스한 빛은 마치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이초희는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그 기나긴 울음으로부터,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대환단, 끝없는 성장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