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67화.
그녀의 삶은 언제나 겨울이었다.
겨울에 태어나,
설원에 버려지고,
혹한에 찢긴 살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녀에게 고통은 아직도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
엄동설한은 어느새 그녀의 죽음을 축복하는 꽃가루와 같았고, 노면에 엎어진 여리고 어린 것을 동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리어, 눈 덮인 그녀를 밟고 넘어진 한 남자는 화풀이를 하듯 그녀에게 침을 뱉었다.
더럽고,
추하고,
끔찍한 욕설이 그녀의 귓가를 때렸지만, 그녀는 아직 어렸기에 그게 무슨 의미인질 몰랐다.
그저 따스한.
본능적으로 눈사람이 된 자신을 녹여줄 온기를 찾아 땅을 기었다.
눈물은 이미 얼어 부스러졌고,
피는 이미 식어 딱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살고 싶었다.
「너의 피는 너무도 차고 아름답구나.」
그렇게 박유진은 차디찬 겨울, 흡혈귀를 만나 구원을 알았다.
***
핏줄기로 채워진 것만 같은 깊은 적안.
그녀가 손에 쥔 진홍의 창은 ‘본디오 빌라도’와 같은 흉흉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이윽고 가부좌를 틀고 허공에 떠 있던 그녀가 입을 여는 바로 그 순간, 혈창에서 엄청난 양의 오러가 폭발적으로 솟구쳐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삶은 차디찬 겨울이었다.」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살을 에는 혹한.
그 붉은 눈발은 이 정글과도 같은 최하층을 눈 덮인 설원으로 바꿔버릴 기세였다.
사방의 벽을 뒤덮은 ‘포도나무’에서 뻗어 나오는 기괴한 손.
다행히, 그것은 남궁연이 이 악물고 유지 중인 ‘섬광’에 가로막힌 듯했지만, 저 적안의 괴물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비켜라! 괴물.”
최중철은 두 발로 선 개벽의 장로를 향해 그리 외쳤지만, 여인은 그저 고요히 자신의 입을 읊조릴 뿐이었다.
「혹한에 찢어진 살에서 피는 흘렀고, 엄동설한의 세계에서 오직 그 피만은 따스했으니」
“경고했을 텐데!”
-크르릉!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검은 야수.
그 새카만 발톱은 백옥같이 흰 장로의 빗장뼈를 분쇄할 듯 빠르게 휘둘러졌지만,
-챙!
붉은빛의 혈창은 이를 막으며 묵직한 오러를 방출했다.
「이 세계는 피로 화하기 합당하도다」
이윽고 완성된 기나긴 문장.
그녀의 기도가 끝이 나자 ‘혈창’ 롱기누스에서 터져 나오던 오러가 균일한 형태로 허공에 맺혔다.
형태를 갖추고, 일순간에 엄습하는 여섯 자루의 혈창.
마치 장로의 의지를 따르듯, 여섯 혈창은 끝없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러나, 날카로운 야수의 감각은 빛을 발하고 여단장을 뒤따라 온 병사들 역시 총구에서 불을 번뜩였다.
불꽃이, 낙뢰가, 돌풍이, 무형의 에너지가 50층의 사방천지를 향해 휘갈겨졌다.
오직 테라포밍의 종자를 지키기 위해, 위와는 비교도 안 될 수준으로 이계의 군세를 토해내는 ‘포도나무’.
이를 안간힘을 써서라도 막아내려는 병사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혈창을 틀어쥔 저 괴물과 여단장의 싸움에 괜한 변수가 끼어드는 일을 막아내는 것뿐이었다.
-챙!
-푸욱!
그러한 와중에도 고속의 공방을 주고받는 야수와 여인.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 싸움이 초 단위로 일어나 비틀리고 뒤엉켰다.
허나, 허공에 튀는 불꽃이 더 화려하게 수 놓이면 수 놓일수록, 생채기가 늘어나는 건 오직 여단장 최중철뿐이었다.
“훕! 후읍!”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틀어 창을 회피하고 그대로 달려드는 최중철.
야수화된 신체의 역관절은 그 불가능한 동작을 가능케 했고, 분명 그러한 상식의 틀을 깨는 기습은 ‘개벽의 장로’에게 회심의 한 방을 먹이기에 충분해 보였다.
-푹!
생살을 찢으며 파고드는 검은 손톱.
허나,
‘얕다!’
반으로 격감한 능력치와 세배로 강해진 장로의 육체 강도가 승패를 뒤엎었다.
-휘이익!
바람을 찢으며 날아드는 혈창.
최중철은 빠르게 다른 팔을 들어 이를 막았지만, 잇따라 엄습하는 핏빛의 오러는 그의 한 팔을 통째로 구워버렸다.
“크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는 고통이 뇌를 뒤흔들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격한 고통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여단장의 눈에 들어오는 무시무시한 광경.
수많은 저주가 떡칠이 된 이 지하 50층에서, 그 많은 저주를 몰아내기 위해 몸을 떨면서까지 ‘섬광’을 쥐어짜던 남궁연의 목에 서슬 퍼런 낫이 드리워진다.
그 거대한 낫은, 다름 아닌 천장에 붙어 모습을 숨기고 있던 3M 크기의 거대한 해골···.
‘...저건?!’
이서영과 교전을 펼치던 그 리치의 것이 분명했다.
“소, 소위! 도망쳐!”
자신 역시 치열하게 0.1초를 다투는 상황임에도 격한 목소리로 그리 외치는 여단장 최중철.
남궁연의 얼굴에 의아함이, 경악이. 이윽고 공포가 슬로우모션으로 새겨지며, 스쳐 지나간다.
늦었다.
그 누구도, 어지럽게 뒤엉킨 이 협소한 공간에서 남궁연의 목을 지킬 수는 없었고,
하물며 여단장 역시 자신에게 날아드는 저 흉흉한 혈창을 막아낼 수도 없었다.
패배.
그것도 앞선 1차 강습대와는 비교도 되질 않는 처참한 패배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여단장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크게 떠지던 바로 그 순간,
-쿠우우우우웅!
정체를 알 수 없는 홍색 파도가 지하 50층 전체에 들이닥쳤다!
공간 그 자체를 뒤엎는 압도적인 기세와 폭발적인 속도로 날아드는 두 가닥의 빛줄기.
그것은 도저히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던 49층의 대지를 아예 소멸시키며 낙하했고, 등장한 두 그림자는 각각 혈창과 죽음의 낫을 예리하고 절도있는 검광으로 튕겨냈다.
-채쟁!
-챙!
튀기는 불꽃.
익숙한 목소리는 바로 그 순간 들려왔다.
“개벽의 장로, 그리고 리치 베르디르···.”
부릅뜬 눈,
부대 마크가 붙어있어야 할 전투복 어깨가 비어있고,
굳게 움켜쥔 ‘혈검’은 적광의 스파크로 요동치고 있으며,
푸른 눈동자를 자줏빛으로 물들여 번뜩이고 있던 한 남자.
낙뢰와 같이 나타난 이건우가 입을 열었다.
“네놈들은, 여기서 죽는다.”
숱한 호걸들이 계속해서 이어왔던 ‘성화’의 마지막 주자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
혈검을 고쳐 잡는다.
여섯 자루로 불어난 혈창은, 같은 ‘신살’의 기운을 감지하고는 돌연 주인의 등 뒤로 돌아갔다.
이건우의 뇌안과 박유진의 적안이 교차한다.
혈검과 혈창의 주인은 직감한다.
둘 중 하나는 필시, 이곳에서 죽을 것을···.
허나, 이런 곳에서 죽는 건 이건우의 운명이 아니었다.
「무고한 양의 신음에 미소짓는 자여.」
장로 박유진은 전투에 앞서, 다시금 간악한 기도를 외기 시작했지만, 이건우는 도리어 그것을 신호탄 삼아 일순간에 질주했다.
-휘이익!
바람이 크게 요동친다.
내리치는 낙뢰검.
묵직한 오러를 실어 중검(重劍)의 묘리를 더한 그 검은, 마치 붕괴하는 빌딩처럼 세상을 짓누른다.
시작부터 내지른 필살의 검기.
그러나 같은 ‘신살’의 무구를 장로는 창의 묘리인 흘려내기로 역이용해 이건우의 목에 창날을 내지른다.
이를 찰나의 간격으로 피하며 이건우 역시 형을 갖춘 찌르기를 꽂아 넣는다.
일순간의 교차하는 세 번의 공방.
직후, 줄어든 간격을 창사에게 유리하게 벌리고자 후퇴하는 개벽의 장로.
그러나 이건우는 거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추격과 동시에 치솟는 격류.
장로는 검날을 눌러 제압을 시도한다.
이건우는 오러를 방출해 짓누르는 창을 뒤엎고,
박유진은 허공으로 떠오르던 창을 회수하며, ‘기도’로 현현한 혈창을 이건우의 머리를 향해 사출했다.
-쐐애애액!
내리꽂히는 창.
허나, 이를 확인한 이건우는 폭발적인 기세로 상승의 기류를 만들었다.
상승의 기류는 그 환영의 창을 휘감아 파훼.
동시에 엄습하는 역검은 박유진의 목을 향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유진의 쪽에서 하강의 기세를 터트려 짙은 오러에 휩싸인 ‘본디오 빌라도’를 다시금 짓누르려 했다.
-지이이이이잉!
교착상태에 빠진 두 ‘신살’의 무구가 동일한 속성의 오러를 방출하며 무시무시한 일그러짐을 일으켰다.
사실은 닿아 있지도 않은 창과 검의 틈,
그 좁은 틈에서, 존재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에너지가 응집된다.
‘공간’ 자체가 구부러진다.
그런데 그 순수한 내공의 접전에서 미소를 짓는 건, 이건우가 아닌 개벽의 장로였다.
「따스함의 가치를 모르는 자여, 평화의 달콤함을 잊은 자여, 고통의 교훈을 외면하는 자여, 진실로부터 눈 돌리는 자여.」
기도를 외는 장로.
그 탐욕스러운 적안은 ‘성역’의 조력을 더 받으려는 듯 더 찬란한 빛을 발했고.
-그그극! 그그그그극!
구부러진 세계가, 신음을 토하듯 일그러진 공간에서 균열이 인다.
가면 갈수록 혈창에 짓눌리는 혈검.
뱀처럼 굽이치는 무시무시한 혈창의 오러는 혈검의 오러를 집어삼키며, 끝내 그 손잡이를 타고 기어오른다.
‘본디오 빌라도’를 쥔 이건우의 손이 격렬한 ‘롱기누스’의 오러에 불태워진다.
아무리 서로가 서로의 힘을 상쇄하는 ‘신살’의 무구일지라도, ‘성역’은 성역의 전사를 위해 움직였다.
즉, 이건우와 개벽의 장로가 딛고 서 있는 이 ‘세계’ 자체가 박유진의 승리를 위해 기동하는 것이다.
게임이 되질 않는다.
세계의 조력을 받는 자와 그저 자신의 능력치가 3배로 불어난 자.
압도적인 적광 앞에 결국 이건우의 혈검은 땅에 닿았고, 박유진은 조소와 함께 허공의 창을 사출해 놈의 머리를······.
찰나,
그녀의 척수를 훑는 섬뜩함.
이건우의 눈빛은 결코 짓눌린 패배자의 눈이 아니었다.
“합!”
이내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오는 짧고 굵은 기합, 짓눌린 검은 지축을 뒤엎을 기세로 빠르게 당겨지고···!
필중의 찌르기는 최단거리로 오롯이 박유진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두웅!
그것이 쇠와 쇠의 충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묵직한 파열음이 지하 50층 전역에 종소리처럼 울러 펴졌다.
그 안타까운 간극은 0.4cm쯤일까.
꿰뚫기를 비틀어낸 혈창은 튕겨져 나가고, ‘본디오 빌라도’는 분명 박유진의 방어구를 찢고 피부를 관통했지만,
박유진은 그 경이로운 반응속도로 혈검과 심장의 접촉을 피해냈다.
「고통을 알라, 고통을 느낄 준비가 되지 못했다면, 무지한 그대들은 그저 피로 화하여, 꽃이 되거라.」
직후, 완성되는 기나긴 기도문은 또 한 번 전세를 뒤집었다.
-푹! 푸부북!
생살을 찢는 것 같은 섬뜩한 소리를 뽐내며 흩날리는 적광의 꽃잎들.
허나, 그것들은 일순간에 크고 작은 혈창으로써 세상에 그 모습을 현현 시켰다.
허공에 부유한 혈창의 수는 어림잡아도 스물하고도 아홉 자루 더.
그녀가 불러들인 진짜 ‘롱기누스’까지 더하면, 혈창은 무려 서른 자루나 되었다.
방향과 공간을 굳이 구분할 것 없이 ‘이건우’라는 적을 향해 겨뉘어지는 신살창.
이젠 이 ‘공간’ 자체가 이건우의 적이 되었다.
***
눈을 마주 본 순간부터 둘 중 하나의 죽음을 직감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섬뜩한 일이다.
개벽의 장로 박유진이 지금껏 걸어온, 그 불그스름한 겨울의 비극이 오직 저 자를 한 차원 더 높은 존재로 승화시키기 위해 존재해온 것일지도 모른다니.
박유진은 이제야 복수를 손에 쥐었다.
혈창을 거머쥐고, 세상을 피로 화하여 한차례 깨끗이 씻어내리겠다는 숭고한 갈망을, 이제야 이룰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괴물이 그녀의 생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빼앗아간다니.
허나, 이런 걱정이 모두 괜한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서른 자루의 창은 일순, 이건우라는 단 하나의 표적을 향해 날아들었다.
-챙채채챙!
팔이, 다리가, 손이, 관절이, 심장이, 머리가, 목이.
신체의 모든 부위가 관통된다.
마치 하늘의 족쇄에 휘감긴 거신병처럼, 사지가 꿰뚫리고, 장기가 분쇄되고, 머리를 혈창이 지나간 것이다.
죽음,
필사,
돌이킬 수 없는 필연은 끝내 일어나고 말았다.
이에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바로 그 순간,
이건우의 뇌안은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자줏빛으로 다시금 번뜩이기 시작했다.
예상외의 현상에 눈을 부릅뜨는 한편, 관통됨과 동시에 고개를 축 늘어뜨렸던 이건우가 슬며시 그 머리를 들어 올리자···.
오싹!
박유진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이내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이건우가 내뱉는 단 한마디.
“아직도 모르겠나. 개벽의 장로···.”
뭘?
이라는 말이 입가에 맴돈다.
하지만 단어라는 것이 목의 떨림을 통해 전해지는 것보다 빠르게, 박유진은 ‘적안’을 뜨고 세상을 관망할 수 있는 권능이 있었다.
암전, 이윽고 붉게.
삼라만상을 관통하는 박유진의 시야.
그제야, 박유진은 눈을 부릅떴다.
지하 50층,
무려 이 성역의 핵이자, 테라포밍의 종자가 거하기에 그 어떤 장소보다 격렬하게 ‘이계의 군세’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이곳이···.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놀라는 그녀를 비웃듯,
‘호접지몽의 펜던트’의 권능인 자줏빛으로 몸을 물들이고,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나는 이건우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리며 말했다.
“이제 이곳에 남은 건, 너와 나. 단 둘뿐이다.”
-툭.
-툭툭툭.
-파아아아아아!
하늘,
아니 이건우의 등장과 함께 무너져 내렸던 49층의 지층···.
층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이 아득한 지하에 붉은 비가 내렸다.
아니, 그것은 비가 아니었다.
적광으로 번뜩이며 이 지하 세계를 가득 채울 기세로 내리는 ‘본디오 빌라도’의 오러···.
“이만큼의 오러를···.”
눈앞의 박유진이 아닌, 이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리치 베르디르와 이 지하 최저층의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운용하고 있었다?!
장로의 눈이 커진다.
믿을 수가 없다.
방금까지 이곳은 혈검과 혈창. 즉, 신살의 무구를 쥔 두 사람의 생사를 건 전투의 현장이었을 텐데···!
이는 다시 말해, 이건우는 박유진보다, 이곳에 있던 생존자의 구호에 더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휘말리면 큰일이거든.”
“뭣?!”
문득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이건우, 장로는 곧바로 그런 그에게 의문을 표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닌 ‘현상’이었다.
-파아아아아아아!
-뚝
억수같이 내리던 비가 일순간 허공에 정지했다.
시간이 멈춘 듯.
적광을 번뜩이는 방울방울이 허공에 떠 있고, 이내 이건우는 놀라는 그녀를 향해 지독한 피 비린내가 날 것만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디오 빌라도의 ‘전력’에 동료들이 휘말리면 큰일이라고.”
헤일과도 같은 오러.
지천을 뒤덮는 막대하고 방대한 양의 핏빛 빗줄기.
비처럼 흘러내리던 그것이 이 지하 세계를 장악하는 그 순간···. 수수께끼의 메시지가 박유진의 눈앞에 떠올랐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의 ‘오브-성혈’은 혈검, ‘본디오 빌라도’의 힘에 공명합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씻을 수 없는 ‘죄’를 현현합니다.
*공명하는 마력의 힘으로 각성자, 이건우의 모든 능력치는 200% 상승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공명···?!’
믿기지 않는 문구와 전신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위압감.
허나, 그 위압감을 손에 쥔 이건우는 그저 당혹감에 물든 박유진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고 있을 뿐이었다.
“네 삶이 차디찬 겨울이라면···.”
이윽고 천천히, 형(形)을 갖추는 이건우의 팔.
“나의 삶은······. 지독한 폭우였다.”
이내, 그가 왼발을 반보 내디디며 크게 휘두른 사선의 검격은, 이 지하세계를 가득 채운 오러를 폭발적인 기세로 회전시킨다!
‘세계’가, 성역의 전사, 박유진을 위해 요동친다.
빗줄기에 젖은 이 ‘대기’가, 이건우의 오러에 격렬하게 치솟는다.
피가,
그 피가 흐르는 혈관이,
그 혈관이 퍼져 있는 육신이,
그 육신이 딛고 선 땅이,
그 땅을 품은 하늘이,
그 하늘을 위의 또 다른 세계가,
.
.
.
붉은 비에 흠뻑 젖는다.
한 겨울에 내리는 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