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63화 (63/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63화.

치직!

[쏴!]

마치 언데드에게 밀려나 진형이 흐트러진 것 자체가 연기였다는 것처럼 밀려드는 공세.

헬기 개틀링 포와 마탄 소총 그리고 대전차탄의 갑작스러운 기습에는, 아무리 리치의 형상을 하고 있던 베르디르라 할지라도 제대로 된 방비를 갖출 수가 없었다.

-턱!

그때, 섬뜩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오른팔의 뼈.

그제야 리치 베르디르는 이 갑작스러운 기습의 중심 표적이 최고의 흑마법을 결집시키고 있는 그의 오른팔이었음을 눈치챘다.

-안···!

허나, 늦었다.

비명과도 같은 거대한 울림을 일으키며 다급함을 표하려 했던 베르디르.

-콰아아아앙!

그가 캐스팅하던 최고위 마법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결국 마나 역류를 일으키며 그곳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세상을 자색 빛으로 물들이는 거대한 마력 불꽃의 소용돌이.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뼈’로 된 육신을 만들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부활하는 것은 오직 ‘라이프포스베슬’에 모든 생명력을 집약시켜둔 리치만의 권능이었다.

-Gaaaaaa!!!

고작 5초의 시간도 경과하지 않고 또다시 죽음에서 돌아온 리치.

보통은 이 같은 부조리함에 절망하거나 절규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이번엔 그 핵도 모조리 베어주마.”

기이하기도 어느새 베르디르의 눈앞으로 날아오른 철혈검희 이서영과 땅을 딛고 서 있는 757헬기부대의 눈에는 ‘절망’이란 것이 보이질 않았다.

-서걱!

-탕!

눈으로 쫓을 수 없는 검격과 날카로운 틈을 파고드는 대전차탄의 스나이퍼.

베르디르는 부활과 죽음을 몇 번이고 더 반복한 뒤에야,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광견 이서영이···. 팀워크를 맞춘다고?’

이미 10년도 더 된 과거.

이서영이 아직 철혈검희라 불리우기도 전인 어린 10대 시절, 이서영은 결코 팀워크를 맞출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물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군인으로 그 세월을 살아온 철혈검희 이서영이 변할 수는 있겠지.

허나, 아무리 그래도 서유럽에서도 유명한, 국외를 주무대로 삼는 757특수부대와 이서영의 손발이 저리도 잘 맞는 것은 이상했다.

마치 등 뒤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거대 복합 마법진’으로부터 ‘무덤 괴수’가 생성될 때마다 몸을 휙 하고 틀어 그 학살하는 이초희.

그리고 딱 그 타이밍에 맞춰, 허공을 가르는 헬기와 산맥 이곳저곳에 은신한 스나이퍼들은 베르디르에게 납탄 세례를 퍼부었다.

이건 그저, 오랜 시간 함께 팀워크를 맞춰왔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마치 이 현장의 모든 이들이 자신의 시각, 청각, 촉각과 후각을 모두 공유하는 것만 같은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

‘이건 말이 안 돼···.’

그러한 독백을 홀로 떠올리던 베르디르는 뒤늦게, 좀 전에 우연히 들었던 이건우의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그 가능성을 스스로 떠올렸음에도 쉽게 믿을 수 없는 가설.

이에 베르디르는 서둘러 공격을 위해 마력을 움직이기보다는, 아까처럼 자신의 마나 형질을 넓게 퍼트려보았는데···!

치직!

-대대장님은 후방 4시 방향 무덤 괴수 셋!

-스나이핑 팀은 리치가 다시 움직일 때까지 우선 대기!

-강진용 소령님. 헬기부대의 개틀링 포를 절반만 리치에게 두고 나머지는 시내로 향하는 언데드에게!

밑도 끝도 없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휘하고 있다는 건가···! 이 현장의 모든, 예순이 넘는 헌터들을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에 경악하는 베르디르.

허나, 현재에도 ‘지시’를 쏟아내는 이건우의 현 상황은 그러한 베르디르의 상상을 더 상회하고 있었다.

***

‘다 전장 동시 통솔’.

헌터군 수도방위사령부에는 ‘전격 방출계 헌터’들의 고유 능력을 이용해 지휘관의 목소리를 그가 원하는 대상에게만 전파하는 아주 특수한 통신팀이 존재한다.

‘전격 방출계 헌터’는 피부로 주파수를 흡수해 정보를 송수신하는 그들만의 능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급조된 ‘테라포밍 진압대’에 전격 방출계 헌터라고는 이건우를 포함해 여섯뿐.

고작 여섯으로는 일천이 넘는 병력을 고루 통제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이곳에 모인 ‘팀’은 757헬기부대를 시작으로, 강원도의 2여단, 24연대, 1군단 등.

그 종류도 다양하고, 병력의 규모도 뒤죽박죽이다.

부대들은 각각 자신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전장을 스스로 고르고, 맡은 역할을 목숨을 걸고 수행한다.

그것이 그나마 가장 나은 방법이라 여긴 7여단장 최중철은 현 테라포밍 진압대의 행동방침을 그리 정하려 했으나, 오직 한 사람만이 그 결정에 반대했다.

-전장은 제가 통솔하겠습니다.

그는 이건우였다.

이윽고 그가 여단장에게 직접 제안한 것이 바로 이 ‘다 전장 동시 통솔’.

심지어 다른 전격 방출계 헌터 다섯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닌, 그저 그 모든 정보의 규합과 분석 그리고 해결책 제시를 혼자서 해내겠다 말한 것이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것은 비단 여단장만의 주장이 아니었다.

오직 이건우를 제외한 지휘소의 모두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며 입을 모은 것이다.

단일 된 지휘체계?

말은 좋다.

하지만, 한 명의 인간이 어떻게 여섯, 일곱 명의 목소리를 동시에 듣고 각자에게 알맞은 지시를 적재적소에 내려주냔 말이다.

그것은 몸 전체가 전기로 이루어진 헌터라 할지라도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허나, 오직 그러한 무리가 불가능한 이유와 위험한 이유만을 논하던 주변 이들에게 이건우는 말했다.

-할 수 있습니다.

위험하다느니, 불가능하다느니 그런 것은 다 필요 없다는 듯, 당당하고 당돌하게 내뱉은 한마디.

그런데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쉼 없이 NO를 외치던 이들이 되레 무안해질 정도로 말이다.

여단장 최중철은 이건우를 믿는다.

감정적인 이유가 크고 작게 덧붙여진 여성진들과 달리, 최중철은 오직 이건우를 지금껏 그가 이룩한 업적과 공적만으로 판단하기에 가장 이성적인 이유로 그를 믿는다.

지금껏 그가 행해왔던 일에, 단 한 번의 실패라도 존재했다면 짧은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할 수 있다’는 그의 말.

허나, 이건우는 지금껏 수많은 기적을 일으켜왔고, 최중철은 여단장으로서도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리하여 눈 앞에 펼쳐진 것이 바로 지금의 광경이었다.

치직!

수시로 스파크를 번뜩이는 여섯 개의 무전 장비.

그 장비들을 둥그렇게 늘어놓고 중심에 선 이건우는 쉼 없이 ‘지시’를 이어가고 있다.

“스나이핑 부대는 잠시 대피진지로 이동!”

“강진용 소령님은 오른쪽 방진으로 몰려드는 마령부대를 상대해주세요!”

“헬기! 재정비가 끝나는 데로 7시 방향 초토화!”

눈을 질끈 감고 미간을 좁힌 상태로 각기 다른 정보를 통합해 이에 따라 알맞은 지시를 내리는 이건우.

자세하게는 당장 이서영과 강진용 소령부터, 넓게는 스나이퍼부대와 헬기부대를 제어하고 있다.

직접 전장에 서본 자는 안다.

자신의 목을 물어뜯고자 난리를 피우는 몬스터를 눈앞에 두면, 헌터의 시야는 아주 좁아진다는 것을.

심장은 요동치고, 시야는 좁아져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적을 아무리 쓰러뜨려도 계속해서 밀려드는 새로운 ‘적’.

그 끔찍한 절망과 길을 잃은 듯한 막연한 상황 속,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짚어주는 ‘무전’은 한 줄기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방향성을 잃지 않는 부대는 끝까지 침착할 수 있고, 안전해진다.

그렇기에 ‘단일 지휘체계’는 효과적인 것이다.

모두가 따로따로 행동하는 듯하지만, 결과를 보면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행진하는 결과를 낳으니 말이다.

하물며, 현재의 전장은 비단 철혈검희 이서영과 리치가 교전을 이어가는 타르타로스 산맥 전투뿐만이 아니었다.

“검사대는 방패를 들어 후방! 요원측은 화공을 앞세워 전방!”

수수께끼의 납치범을 찾았다는 ‘신호탄’을 필두로 은밀하게 타르타로스 내부로 진입한 병사들.

전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지만, 이건우의 강력한 주장으로 7여단 2대대의 자랑 철혈검사대와 협회의 정예요원들이 첫 진압대로 출전하게 되었다.

물론 이에 대한 반응으로 철혈검사대는 물론 단독작전에 익숙한 정예요원들마저 적극 반대했으나, 그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지하 6층, 블러드 엘프 다수 발견!”

“검사대는 마공학 방패를 들고 다시 전방으로 돌격! 요원측은 대규모 전격과 빙결 마법을 캐스팅!”

물리력과 오러에 강한 검사대.

주로 밀도 있고 빠른 속사 마법으로 승부하는 요원들은 서로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이는 다시 말해,

현재 이건우가 ‘교신’ 중인 전장의 수는 무려 둘.

그 양측의 전장 모두 여든 명에 가까운 인력이 투입되었으니, 이건우는 현재 백육십 인의 병력을 통솔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심지어 단순히 말 한마디만 툭 던지고 끝내는 것이 아닌,

“베르디르가 도주! 대대장님 스나이퍼부대 그리고 헬기부대가 추격!”

“지하 8층 이계의 나무정령 출현! 검사대와 요원측은 다시 위치를 스위칭!”

“강진용 소령님의 스킬로 무덤 괴수를 우회!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대기 부대는 시청기준 북서방향 산맥에서 내려오는 언데드를 사냥!”

아주 디테일하고 빠릿빠릿한 행동강령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 인간이 백육십 명분의 정보량을 처리하고 있다고···?’

말로는 가능하지만, 현실로 해내기란 불가능하다 여겨왔던 신비.

그것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현재 신화급 무구의 패널티로 마력조차 충전할 수 없는 이건우의 손끝에서 현실화되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 최중철에게 저러한 기행을 선보일 수 있느냐 묻는다면, 아무리 그라도 고민 없이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만큼, 이건우의 저러한 기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이 떡 벌어지게 할 만큼 대단했고···.

그 결과는 가히 이 지휘소에 모인 모든 이들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여···. 여단장님.”

숨 가쁘게 통신을 이어가는 이건우를 배려하고자 목소리를 낮추고 최중철을 부르는 24연대의 장교.

이에 여단장 최중철이 눈을 돌리니, 그곳에는 오직 사망자만을 카운트하기 위해 구출된 정보망이 보였다.

이젠 전쟁이 정말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한 상황, 그런데 무려 한 시간 반이 넘는 교전이 있었음에도 그 정보망에 표기된 숫자는 ‘0’이었다.

사망자가 한 명도 없다.

전쟁이 무려 2시간 가까이 현재진행형으로 치러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건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50대 중반에 나이에도,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표정을 짓는 24연대의 장교.

“소문으로만 들어서, 사실은 믿지 않고 있었는데···. 이건우는 정말로 S급 헌터의 자질을 갖춘 헌터였군요.”

그리고 웬만한 일로는 표정의 변화 자체가 없는 1군단의 대령마저 기적을 현실로 행한 이건우를 보면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헛웃음이 나오던 여단장 최중철은 강한 눈빛으로 이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장의 지휘자. 이젠 별세하신 전설이시자 1세대 헌터셨던, 김영환 중장님의 별칭을 이어받을 젊은이가······. 드디어 나타난 모양일세.”

““전장의 지휘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온 중얼거림.

그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령관’이었던 이의 별호였다.

그리고 바로 그 ‘사령관’에게 직접 배운 직속의 제자가 ‘흑표’ 최중철.

그는 지금의 이건우를 보며, 스승의 모습을 겹쳐본 것이었다.

“당신의 의지를 계승할 참된 군인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스승님.”

중후하고 얼핏 벅차보이기도 하던 그 중얼거림은 지휘소 내의 모든 이들의 귀에 닿았지만, 함부로 그의 말에 사족을 덧붙이는 이는 없었다.

***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종자, ‘피를 먹는 포도나무’는 테라포밍 2단계를 달성합니다.

*이계의 군세가 범람하기 시작합니다!

*테라포밍 ‘3단계’ 달성까지 남은 시간: 52분.

ㅡㅡㅡㅡㅡㅡㅡㅡ

리치 베르디르와 이서영이 직접 교전을 시작하고, 철혈 검사대와 정예요원들이 타르타로스 지하 10층을 탈환한 지 4시간.

무한히 부활하던 리치 베르디르는 모습을 숨겼고, 그가 멀어지자 ‘거대 복합 마법진’ 역시 기능을 멈췄다.

헤일처럼 밀려들던 ‘테라포밍’의 블러드 엘프와 이계의 나무 정령 역시, 인해전술로 무작정 들이닥치기보단 다른 방법을 택했는지 지하 10층을 내어준 뒤 자취를 감췄다.

치직!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적들이 행동방침을 바꾸고 은신한 만큼 저희도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총 일흔두 명과의 교신을 주고받은 끝에 내린 판단이었다.

“후우.”

긴 한숨을 내쉬며 전격 방출계 헌터들이라면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주파수 공명’을 끊는다.

그제야 와닿는 내 몸의 감각.

심장은 미칠 듯이 크게 뛰고 있었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무슨 목욕이라도 하고 나온 사람 같았다.

‘다 전장 동시 통솔’.

모두가 우려를 표했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전생의 내가 뇌제로서의 재능에 눈뜨기 전에 ‘대항군’의 은밀한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되었던 것도, 중위였던 당시의 내가 이 같은 ‘다중 무전’을 능히 해내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건 모두, 보통의 전격 방출계 헌터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제어력’이라는 고유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긴 했지만···.

뭐, 자기 재능을 뒤늦게 깨닫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지 않은가.

“휴우.”

“고생하셨습니다.”

가빠오는 숨을 재차 고르고 있던 내게 다가와 타올을 건네주는 금발의 아이.

나는 아직도 저 우락부락한 중세식 갑주 아래, 전투복을 덧입은 메리가 어색해만 보였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적응한 듯 초연해 보였다.

“어, 고마워.”

‘다중 무전’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내가 있던 그 허름한 지휘소는 일종의 통신기지처럼 개조되어 있었다.

또한, 내 집중을 위해 자리를 옮겨준 지휘관들.

아무 근거도 없이 ‘할 수 있다’ 주장했던 나의 말을 믿어준 것만으로도 솔직히 감사할 따름이었는데, 실제 결과를 직접 보더니 아예 나를 신뢰해주는 모양이었다.

“흐아!”

그래도 그 배려 덕분에 나는 흙바닥에 대자로 뻗어 쉴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지.

“바닥이 더럽습니다. 건우님.”

언제나 딱딱한 태도를 고수하는 메리는 이같이 군기 빠진 내 모습에 뭐라 주의를 주는 듯했지만, 까놓고 ‘다중 무전’은 상당한 피로를 불러일으킨다.

“이럴 때라도 쉬어야지. 아니면 나 과로로 기절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다행히 끈질기게 잔소리를 할 마음은 없는지 금방 물러나 주는 메리.

-절그락, 절그락.

그때,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와중 들려온 철제 갑주가 부딪치는 소음.

이에 내가 천천히 눈을 뜨자, 두터운 갑주를 다 벗고 다소 타이트한 군복차림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메리의 얼굴이 보였다.

“뭐하니?”

내가 이 의아한 상황에 묻자, 막내 성전사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마른 타올을 들이밀며 말했다.

“땀을 닦아드리겠습니다.”

“괜찮아, 힘들어서 조금만 쉴게.”

“그러니까, 제가 닦아드리겠습니다.”

“그러려면 전투복을 다 벗어야 하잖아. 귀찮고 피곤해.”

은근히 벗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며 말한 한마디.

이러면 남사스러워서라도 그만두겠지 싶어 했단 말이었는데, 무표정한 메리는 그 얼굴 그대로 이상한 말을 했다.

“그럼 제가 벗겨드리겠습니다.”

“...뭐?”

게다가 한번 다짐한 것은 끝까지 해낸다는 성전사의 결의가 이상한 쪽으로 엇나간 것인지, 메리는 그대로 몸을 굽혀 정말로 내 전투복과 호신 장비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뭐하니? 야!”

마치 총기를 분해 조립하듯 무감각하게 내 방어 장비와 전투복 외피를 휙휙, 벗기는 작은 손.

나는 놀라 목소리를 높였지만, 메리는 도리어 말했다.

“현재 마력 불능 상태에 있는 건우님은 섬세한 컨디션 관리로 건강을 지켜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힘들어하시니 제가 도와드릴 뿐입니다만, 뭐가 문제라도?”

고개를 갸웃하며 그리 묻는 메리.

확실히 그녀의 얼굴은 아까부터 계속 무표정이고, 전혀 낯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다.

그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성전사로서의 삶만을 살아왔으니 정말 아무런 감정 없이 숙련된 군인으로서의 면모를 뽐내는 것일 뿐인 걸까.

그렇게 생각했더니 괜히 오버했던 내가 민망해졌다.

“그래. 알았어. 부탁할게.”

줄곧 무표정한 메리를 보며 나는 괜히 멋쩍은 느낌이 들어 몸에 힘을 풀며 말했다.

그 순간, 살짝 메리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것 같았지만, 뭐 내 착각이겠지.

태어날 때부터 엄격한 금욕주의를 학습하는 성전사가 뭐 이상한 생각 따위를 할 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온몸의 긴장을 쭉 풀고 머리를 땅에 붙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천막의 틈으로 내부를 비추는 군용 조명광을 바라보려 했는데···.

그곳에는 아주 무섭게 부릅뜬 눈 하나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해?”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에게도, 메리에게도 퍽 친숙한 사람의 것이었다.

-끼이익.

흙바닥에서 사용하라고 결코 아닌 것 같은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천천히 통신기지를 돌아 출입구로 들어오는 한 여자.

그녀는 베르디르의 변신을 꿰뚫어 보고 현 테라포밍 진압대를 구축할 근본적인 계기를 만들었던 최초의 공로자.

“연···.”

남궁연 소위였다.

“아, 소대장님. 지금 메리가 지친 저를 대신해서······.”

“아, 그렇구나! 건우야. 그래 알았어! 잠시만 있어 봐?”

충분히 오해받기 좋은 상황, 나는 이에 대해 군인정신에 걸맞은 태도로 짧은 상황 설명을 하려 했으나, 남궁연은 묘하게 평소보다 더 상냥한 미소와 함께 내 말을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정확히 메리만을 무섭게 뜬 눈으로 바라보는 남궁연.

그런데 그 눈빛이···. 정말 살벌했다.

“있잖아. 메리···. 지금 뭐 해?”

하지만 상대는 모태성기사.

나는 당연히 분명 나를 대할 때처럼 무표정하게 현황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하여 이 묘하게 살벌한 상황은 끝나리라 예견했는데,

어째서인지 메리는 들켜선 안 될 장면을 들킨 사람처럼 얼굴을 당혹감으로 물들이고는 입만 뻐끔뻐끔하고 있었다.

성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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