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62화.
그게 무엇이건 생명을 녹여버리는 맹독.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그 맹독을 테라포밍의 핵이 있는 타르타로스 지하 50층까지 들고 나르냐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서 만큼은 각 부대, 각 지휘관의 의견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갈려 처음으로 회의장은 이런저런 목소리로 아수라장 된다.
다만, 이제 전쟁을 테라포밍의 ‘2단계’가 코앞으로 다가온 현재, 이 같은 탁상공론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였기에 눈치 빠른 이초희는 순식간에 이야기를 진행 시켜 버렸다.
“그래서···? 첫 번째는 일단 그렇다 치고, 두 번째는 안건은 뭔데···.”
아직도 당당히 펼쳐놓은 이건우의 검지와 중지를 보며 묻는 이초희.
이에 이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두 번째로 저희가 급하게 움직이면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저희의 적이 저 타르타로스의 밑바닥에 있는 휴거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적이, 휴거교만이 아니라고···?”
놀란 눈을 뜨고 앵무새처럼 이건우의 말을 되풀이하는 강진용 소령.
이에 이건우는 아주 확고한 확신을 가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피이이이잉!!
새카만 하늘을 밝은 빛으로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빛줄기가 곡사로 날아든다.
-콰과과광!
이내 타르타로스의 입구는 형형색색의 마력 폭풍에 휘말려 바스러지지만, 적록색의 ‘피를 먹는 포도나무’의 줄기는 계속해서 자신의 세력권을 넓히기 위해 지상으로 뻗어 나왔다.
자정부터 이어진 지루한 포격전은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계의 군세’와 전면전을 벌일 일이 없는 베르디르조차 간담이 서늘해지게 만드는 흉흉한 적빛의 테라포밍 메시지.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종자, ‘피를 먹는 포도나무’는 테라포밍 2단계를 달성합니다.
*이계의 군세가 범람하기 시작합니다!
*테라포밍 ‘3단계’ 달성까지 남은 시간: 4시간 19분.
ㅡㅡㅡㅡㅡㅡㅡㅡ
타르타로스 내부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기척과 광기로 가득 찬 것은, 이미 한 시간도 더 지난 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예상외의 대군을 규합해냈음에도 전혀 진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저 ‘테라포밍 진압대’.
진압대의 진격과 동시에 그들의 뒤를 노릴 계획이었던 마탑의 노구에게, 이 같은 무한 포격전은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일이었다.
테라포밍은 단계가 상승하기 전에 막는 것이 상식.
물론 이대로 시간만 주야장천 흘러가도 결국 이계와의 결속을 이룬 휴거교가 무한의 군대를 대동해 승리를 거두고, 베르디르는 무사히 불사왕께 죄를 용서받게 되리라.
모든 일이 순탄하다.
저들이 저렇게 규합한 것은 물론 예상외의 사태지만, 테라포밍이 무사히 2단계에 도달하며 상황은 지극히 유리하게만 굴러가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왜,
노구의 심장은 이리도 불안하다는 듯 격한 떨림을 보내오는 것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질 것쯤, 저 진압대가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진격하지 않는가.
상식으로도, 비상식으로도 이해가 가질 않는 상황.
그렇다고 저들이 그만 자포자기를 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판단하기엔,
-피이이이잉!
지금도 계속해서 타르타로스의 입구를 불 싸지르는 무자비한 대마력 포격이 이어지고 있단 말이다.
‘...뭘까. 대체 네놈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무사태평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느냔 말이다!’
이해가 가질 않는다.
허나, 또 그렇다고 베르디르가 공포를 느낄 이유도 없다.
그는 무려 열 개나 되는 ‘거대 복합 마법진’들을 땅밑에 그려둔 상태였으니 말이다.
사백의 헌터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세 개를 준비했던 마법진이다.
허나, 지금의 그에게는 그때의 세 배 이상의 마법진이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고, 이는 이론상 일천삼백여 명의 헌터를 일망타진할 수 있을 만큼의 마법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구는 자신 혼자서는 저 ‘진압대’의 이초희, 최중철, 이서영, 이건우 모두를 상대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이론상으로는 이미 자신은 저들을 압살하고 서울을 정복할 수준의 준비를 마쳤으나, 세상일은 언제나 담백한 ‘이론’과는 거리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그것이 긴 생을 살아온 베르디르의 노련함이었다.
그리고, 그러니 더더욱 베르디르는 저 진압대의 진군을 기다려야 했다.
저들이 알아서 타르타로스로 진격하기만 하면, 앞은 개벽의 장로, 뒤는 무한의 언데드 부대라는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저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학살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언제까지냐. 대체 언제까지 계속 이렇게 나를 기다리게 할 셈이냐!’
때를 기다리는 늑대처럼 베르디르는 홀로 그늘 아래 몸을 숨기고 가만히 그런 생각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피유우우웅!
갑작스러운 빛줄기와 긴 소음은, 정작 베르디르의 등 뒤에서 솟아올랐다.
“뭣이?!”
정말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발생한 이변.
이에 베르디르는 경악하며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새카만 야전 특수복을 입고 있는···. 약 쉰 명가량의 ‘757부대원’들이 있었다.
넓게 퍼진 복합적인 지형지물을 오르내리며 오직 베르디르 한 명만을 반원의 형태로 둘러싸고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이 같은 광경에 경악하는 베르디르가 반사적으로 말을 읊조리자 이를 들은 한 남자가 야간투시경을 벗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기척 제거, 쥐뿔도 없는 나를 특수부대 소령의 위치까지 올려준 레어 스킬이지.”
너무도 당당한 강진용 소령의 대답.
이에 경직된 얼굴로 멈춰선 베르디르는 빠르게 눈을 굴려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엄청난 소음을 내뿜는 살인 병기는 다가왔다.
-두두두두두!
하늘로 쏘아진 빛을 따라, 달려오는 여섯 대의 헬기.
이윽고 지상의 부대원들처럼 삽시간에 진형을 형성한 헬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헬기에 부착된 기관총을 베르디르에게 겨누었다.
“얌전히 투항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테러리스트.”
사격준비를 의미하는 손바닥을 들어 올리면서도 최후의 기회를 논하는 강진용 소령.
동시에 그의 귀에 꽂힌 이어잭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뭐, 그 테러리스트가 투항할 리는 없지만 말입니다.]
그건, 베르디르가 너무 늦게 탈옥을 확인했던 헌터, 이건우의 목소리였다.
“역시, 그렇게 된 것이었나.”
영문을 알 수 없던 베르디르의 발각과 진격하지 않는 테라포밍 진압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언제나 기괴한 아이디어로 적대세력을 괴롭히며 승리를 갈취했다는 ‘이건우’의 존재 하나로 베르디르는 납득했다.
“그래. 모든 건···. 이건우 네놈이 벌인 일이었나···.”
애초에 휴거교의 ‘계시’를 몇 번이고 뒤엎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남다른 각오를 해야 했던 것이다.
이건우는 참 신비롭게도 상식에서 벗어난 휴거교와 ‘불사왕’의 종복들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해내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
허나, 베르디르는 거침없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마나를 끌어올릴 뿐이었다.
동시에 그의 짙은 마력에 반응한 열 개의 ‘거대 복합 마법진’은 검붉은 죽음의 마력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쏴!”
명백한 무력행사를 시도하는 베르디르를 향해 강진용 소령은 주저없이 공격명령을 내렸다.
셀 수 없이 쇄도하는 마탄의 비.
-타다다다다다!
-투두두두두!
총구가 가열되어 장비의 기능 고장이 일어날 만큼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헬기의 게틀링 포와 마탄 소총의 빛줄기.
이윽고 베르디르가 납탄의 범벅이 되어, 사지가 터지고 몸이 분쇄돼 사방에 흩어진 바로 그 순간,
기이하게도 ‘거대 복합 마법진’은 그 검붉은 빛을 더 환하게 뿜어대기 시작하고, 조각조각 난 베르디르의 육체 위로 어떠한 형상이 부유하기 시작했다.
얼핏 그것은, 3m의 크기를 자랑하는 거구의 스켈레톤인 것 같았다.
그러나 있어야 할 곳에 다리뼈는 돋아나지 않았고, 허공에 부유한 그 거대한 뼈의 머리 위로 갈색의 긴 로브가 씌워진다.
어둠에 가려진 두개골과 그 음영 사이로 발광하는 짙고 깊은 적광의 눈.
이윽고 그것이 뼈로 된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고, 그 손에는 해골로 이루어진 거대한 낫이 나타난다.
죽음이 무덤에서 일어났다.
그 경이로운 광경을 목전에 두고 있던 김진용 소령은 눈앞, 압도적인 위세를 뽐내는 그 괴물의 정식 개체명을 입에 담았다.
“...리치”
모든 망령과 사령과 마령과 시체와 썩어 문드러진 살점의 주인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고위 언데드 리치.
그게 바로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던 베르디르의 본 모습이었다.
-Gaaaaaaaaaaaa!!!
소리가 아닌, 파장과 울림으로 거대한 함성을 내지르는 리치 베르디르.
하지만 참 신비롭게도 ‘757헬기부대’는 압도적인 리치의 위세를 코앞에 두고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도리어 주저 없이 리치의 불음에 응하여 마법진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수많은 시체와 살점과 마령에게 사격을 개시하는 특수부대원들.
이에, 리치 베르디르는 탄생과 동시에 폭사해버리는 자신의 권속들을 지키고자 거대한 낫을 휘두르며 강진용 소령에게 날아드는데···!
바로 그 순간, 상공에 떠 있던 헬기로부터 한 줄기의 빛이 수직으로 낙하했다.
“...야.”
낙하산이 없는 강하를 진행하면서도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입을 여는 존재.
이윽고 그녀에게서 짙은 개나리빛 오러가 만개하고 고속으로 하강하던 철혈검희는 노랗게 물든 눈으로 리치 베르디르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안 놓친다. 납치범 새끼야.”
-스릉.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뻗어 나오는 백룡도.
만개한 개나리꽃은 이 산맥 전역에 거칠게 흩날리고, 드디어 이서영의 ‘검’은 사냥감에 닿았다.
-Gaaaaaaaaaaaa!!!
폭발적인 죽음의 마력과 노란 오러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뒤엉켰다.
***
닿는 것만으로 인간이 실감할 수 있는 극악의 공포와 절규를 불러일으키는 죽음의 마력은 높게 솟아오른 소용돌이가 되어 곧게 뻗어오는 검의 궤적을 비틀었다.
-휘익!
하지만, 검이 빗나갔을지라도 그 검신을 타고 흐르는 개나리빛 오러가 거센 섬광을 번뜩인다.
터져 나오는 공압이 어지럽게 뒤틀리고, 공간 그 자체를 울렁이게 만든 순수한 ‘에너지’는 끝내 리치의 몸에 닿았다.
-Gaaaaaa!
-드드득!
굵직한 무언가가 으스러지는 굉음.
리치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을 뒤틀지만, 그 찰나에 낙법으로 땅을 구른 이서영은 즉시 재도약한다.
한껏 웅크린 몸.
그녀의 상체보다 더 크고 긴 백룡도는 어느새 검집에 꽂혀있다.
그것을 움켜쥐는 손.
내쉬는 호흡은 하늘을 향하고,
검집의 끝까지 뿌리박힌 새하얀 검은 폭발적인 기세와 함께 다시금 세상을 비추었다.
발검(拔劒) 제5형.
아로새겨진 꽃.
그어진 선은, 하늘부터 땅으로 내리꽂히는 수직의 참격.
갑작스러운 기습으로부터 이어진 전심전력의 연격 앞에 리치 베르디르는 결국, 형체를 잃고 추락했다.
-쿠웅!
3m짜리 거구가 땅에 추락하자 거대한 모래바람이 일어 세상의 모든 시야를 암전시켰지만, 허공에서 떨어지는 이서영만은 보았다.
‘뼈’라는 형체를 모두 잃어 바스러지고도 고고하게 허공에 떠올라있는 보랏빛의 동그란 보석을 말이다.
“찾았다. 라이프포스베슬.”
도저히 지상으로부터 10m 높이에서 추락하는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평탄함.
모든 생명 에너지를 주먹만 한 크기의 마석에 봉인해 영원한 삶을 영위하게 된 리치, 베르디르.
그는 마치 처음부터 라이프포스베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반응하는 이서영의 목소리에 치를 떨었다.
비록 마나로 창조한 몸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리치, 베르디르의 ‘뼈’는 일반적인 강철 이상의 강도를 자랑한다.
그런 그것을 고작 두 합 만에 썰어버린 이서영의 힘이란···.
‘역시, 방심해도 될 적이 아니다.’
‘검성’이 주워 길러낸 살아있는 검.
광견.
그러한 옛 별칭들은 현재의 이서영에게 무리 없이 통용되는 듯했다.
허나, 모든 건 거기까지다.
하늘을 유영하는 리치를 어찌 땅에서 살아가는 검사가 넘보려 하겠는가.
드득, 드드득!
부러질 때보다 더 기괴하게, 으스러질 때보다 더 빠르게, 자색 광채를 내뿜으며 다시금 ‘뼈’의 형태를 갖추 마나 갑주를 생성하는 베르디르.
그는 다시금 허공에서 완전한 형태로 부활해 드디어 흉흉한 검붉은 마력을 내뿜는 도합 열 개의 ‘거대 복합 마법진’을 단번에 활성화했다.
땅은, 아니 이 타르타로스를 둘러싼 기다란 산맥 전체에서 절규와 함께 대지를 딛고 일어서는 수백, 수천의 언데드.
반전 세계의 마령이,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좀비와 구울이, 달그락거리는 스켈레톤 워리어가, 심지어 그 모든 언데드의 복합체인 기워 붙인 무덤 괴수가 일어나 포효한다.
-키아아아악!!
-구어어!
-달그락! 달그락!
땅에서는 지금도 쉰 명이 넘는 특수부대원들이 총구에서 불을 내뿜고 있지만, 다른 언데드는 몰라도, ‘기워 붙인 무덤 괴수’에게 만큼은 마탄이 통용되질 않았다.
“크, 큰일입니다!”
“으아악!”
삽시간에 ‘757헬기부대’의 진열을 붕괴하고, 나약한 생자들의 살점은 망자들의 절규와 함께 비참히 으깨져야 함이 마땅했다.
허나,
-서걱!
방금까지만 해도 이글거리는 눈으로 리치 베르디르를 노려보던 이서영은 돌연, 방향을 바꿔 ‘무덤 괴수’의 목만을 수평으로 가른다.
‘결국, 사냥보다는 구조를 택한 건가···. 나약하고, 어리석군.’
이서영이라는 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리치는, 할 수 있는 일이 무한해진다.
끌어올리는 죽음의 마력.
검붉은 광채는 리치의 손에서 금세 원의 형태를 갖추고 폭발적인 에너지는 응축되고 응축된 상태임에도 사람의 머리 크기로 거대화되어갔다.
‘저 땅을 기는 하등한 것들에게 종말을’
최고위 흑마법, ‘사신의 숨결’.
휘몰아치는 죽음의 마력이 생자의 모든 것을 강제로 박탈하는 마법이 지금, 리치 베르디르의 손에서부터 대지로 낙하하려 했다.
그때,
치직!
[쏴!]
정말 우연히 마력 형질을 넓게 펼친 리치, 베르디르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익숙한 목소리.
그건 너무나도 분명한 이건우의 목소리였다.
그러자, 분명 밀려드는 언데드로 인해 혼돈에 휩싸여 아비규환에 빠져있던 757헬기부대가 절도 있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이윽고 한쪽은 밀려드는 언데드를,
다른 한쪽은 오직 리치, 베르디르를 향해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단 듯 눈부신 빛줄기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텅!
-타앙!
-타다다다다다!
‘뭣이?!’
성역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