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61화 (61/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61화.

후발대가 온다고 무엇이 바뀔까.

7여단의 여단장 최중철을 비롯한 역전의 용사들이 여럿, 이곳에 당도할지라도 그땐 이미 ‘2단계 테라포밍’이 고작 30분도 남아있지 않은 시점이 될 것이다.

30분?

이초희의 무력으로도 뚫지 못한 철옹성을 그것도 지하 천 미터에 자리해, 무작정 물량공세를 쏟아부을 수도 없는 저 타르타로스를 공략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불가능하다고···!’

정말 만에 하나라도, 특공대를 파견해 저 지하의 괴물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할지라도, 끝내 전쟁을 의미하는 테라포밍 2단계에 도달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결과, 특공대는 미친 듯이 쏟아져나오는 마물에게 파묻혀 잔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제 우린 테라포밍을 막을 수가 없다.

큰 피해를 감수해 최악을 간신히 면하더라도, 그 끝에서 우릴 기다리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은 굳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아는, 공유된 현실인 듯했다.

‘전쟁의 화마가 다시금 이 땅을 휘감는다. 어떻게 되찾은 평화의 시대이거늘, 한국은 이제 지옥이 될 거다···.’

그러한 절망,

그 같은 고통,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섬뜩한 미래.

오직 ‘절망’만이 이 일대의 공기를 무겁게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저 기이한 구형 자동차 한 대가 등장하기 직전까진···!

“이곳은 통행금지입니다!”

“위험합니다. 어서 돌아가시죠!”

-빠앙!

거침없이 경적을 울리며 소령의 코앞까지 다가온 차량.

당연히 마탄을 장전한 군인들은 그 차량을 에워싸고 큰 목소리로 경고를 날렸는데, 참 기이하게도 운전석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었다.

근 반년간,

한국에서 이초희만큼이나 매스컴에 얼굴을 많이 내비친 남자이자, 현시점 그 누구보다 세계인의 주목을 받던 군인···.

“이건우!?”

소령은 목소리가 기괴하게 꺾일 만큼 크게 그를 불렀고, 당연히 소령의 목소리를 듣고 대피소를 뛰쳐나온 이초희는 놀란 토끼 눈을 뜨고 이건우를 바라보았다.

이내 자신의 정장 앞섬을 강하게 움켜쥐며 뭔지 모를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이건우에게 터벅, 터벅 걸어가는 이초희.

그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하고 엄숙해 보여, 그 자리의 모든 군인들은 그녀가 정말 뜬금없이 나타난 이건우를 사정 청취하고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 따지고 들려는 것이라 예측했는데···.

“다······.”

이초희는 돌연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도 입을 꾹 닫고, 몸을 작게 떨더니 곧장 이건우에게 다가가 다치지 않은 팔로 그를 꼭 끌어안았다.

마치 소중한 것을 놓지 않으려는 어린 소녀처럼 말이다.

““응?””

그 돌발 행동에 당황해 목소리를 높이는 건, 비단 이 모습을 지켜보던 757부대의 군인들만이 아니었다.

눈물을 흘리는 그녀가 소중한 듯 꼭 쥐고 있는 이건우마저 이 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터져 나온 의문.

그런데, 그 돌발 행동을 저지른 장본인인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흐느낌을 이어가다 끝내 훌쩍이며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고, 이건우는 말 없이 그녀가 진정하길 기다려주눈 듯했다.

***

내 품을 파고든 이초희가 눈물을 흘리고, 주위의 군인들이 모두 경악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가평 일대에 대피령이 내려지고, 비각성 군부대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내 예상보다 군이 빠르게 반응했다는 예상은 했었다.

다만, 다른 군부대도 아니고 보통 해외를 주 활동무대로 삼는 ‘757헬기부대’와 이초희가 타르타로스의 정면을 지키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초희가 왜 여기서 나와?’

어째서인지 울음을 터트려버린 부협회장을 달래주면서도, 나는 팔에 ‘격통의 저주’를 덕지덕지 묻히고 있는 이초희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격통의 저주’를 다룰 수 있는 건, 오직 ‘혈’속성의 무구 혹은, 더럽고 추한 흡혈귀뿐이다.

어째서 이초희가 벌써 공항이 아닌 이곳에 있고, 도대체 어떻게 ‘757헬기부대’가 그녀를 보필하고 있던 것인지는 감이 잡히질 않지만, 나는 지금의 이초희를 보며 딱 한 가지 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전생에는 신살창이자 혈창, 롱기누스의 주인이 되어 이서영의 목숨을 위협했던 휴거교의 비밀 병기···.

개벽의 장로, 박유진은 아무래도 완전한 각성을 마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만큼, 잠깐의 텀을 가지고 ‘757부대’의 베테랑 지휘관, 강진용 소령에게 침착하게 현재 상황에 대해 듣는 나, 그런데···.

“대역을 꿰뚫어 봤단 말씀입니까? 소대장님이?”

“2대대장님이 칼 들고 협박해서 수도권 인근의 전 부대에 출동명령이 떨어지고···.”

“일곱이나 되는 외교관들을 다 버리고, 부협회장님이 인천에서 서울까지 날아왔다······?”

도대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베르디르의 연기를 간파해?

칼 들고 협박해서 강제로 출동시켜?

한국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외교 문제를 다 내팽개치고 날아와?

그리고 그게 다 나 하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

그간의 활약과 공적으로 이젠 내가 한국의 중요인물이 되었다는 것쯤은 당연히 자각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비약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특히 이번 일로 크게 날뛰었다는 ‘세 사람’만큼은 확실히 나라는 인간 자체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당연히 나는 곧장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지만,

후발대가 합류와 동시에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 두 사람의 눈을 마주 보았을 땐 그 ‘착각’이 단순한 착각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온몸에 힘이 쭉 풀린 사람처럼 휠체어에 힘없이 축 늘어지는 남궁연과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촉촉해진 눈으로 내게 다가와, 말없이 내 가슴팍을 툭, 툭 두드리는 이서영···.

허나, 진실이 무엇이건 내가 그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였다.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보다 한발 늦게 메리와 최중철 소장이 텐트로 걸어들어왔을 때, 나는 이번 ‘테라포밍’을 확실하게 막아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

장소는 회의장.

사실 그냥 흙바닥에 단순히 내부 인원들이 모습을 숨길 수 있게 천막을 치고, 중앙에 테이블을 놓은 뒤 그 위에 지도를 펼쳐놓았을 뿐이지만···.

긴급하게 마련된 장소의 초라함에 불만을 품는 이는 현장에 한 사람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천막의 틈새로 하늘을 보면, 흉흉한 피 글씨로 그려진 ‘테라포밍’의 경고 메시지가 빛을 발하고 있다.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종자, ‘피를 먹는 포도나무’는 테라포밍 1단계를 달성합니다.

*테라포밍 ‘2단계’ 달성까지 남은 시간: 27분.

ㅡㅡㅡㅡㅡㅡㅡㅡ

하물며 ‘전쟁’을 의미하는 2단계 도달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7분.

사태는 경각을 다툰다.

테라포밍이 최종 형태인 4단계에 도달하면 ‘종자’는 이계와 이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일종의 ‘닫을 수 없는 게이트’가 된다.

‘테라포밍’은 이 시대 헌터 역사에서도 그렇게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침략 현상은 아니었지만···. 단 하나의 ‘종자’라도 최종 형태를 갖추게 되면 필시, 끔찍한 전쟁이 동반되었다.

실제로 이 시대에는 긴 전쟁을 이어가다 끝내 이계의 존재인 ‘엘프’와 평화 협정을 맺은 일본이 있고, 국토 전체를 잃고 정식으로 망명을 선포한 필리핀 정부가 있다.

그만큼의 위협.

압도적인 위기를 코앞에 두고 있기에,

이 회의장에 모인 모든 이들은 그 계기가 무엇이든 이렇게 ‘테라포밍’을 진압할 병력이 규합되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단순한 ‘우연’일지라도, 이 많은 인원이 결집하게 된 가장 주요한 원인이자 장본인인 이건우는 참으로 기이하게도 웬 이상한 말을 꺼내고 있었다.

“우린···. 테라포밍이 더 진행되길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이곳에 모인 757헬기부대와 7여단 소속의 세 개 대대 지휘관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표하지 않게 훈련된 협회의 요원들마저 차마 두 눈을 부릅뜰 만큼의 충격발언이었다.

그때, ‘757헬기부대’의 강진용 소령은 다소 침착한 태도로 운을 띄웠다.

“대기명령이라···. 이같이 난해한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물어봐도 되겠나. 이건우 상병.”

얼토당토않음을 넘어, 그게 무슨 소리냐고 윽박질러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상태에서 들려온 정중한 질문.

이 같은 상황에, 상식에 반하는 주장을 펼친 상병에게 소령이 말을 거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어투였다.

허나, 강진용 소령의 말투가 달라진 대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건 조금 전, 이 조촐한 회의장 완성되기도 전에 이건우가 모두의 앞에서 뜬금없이 내뱉은 거짓말 하나.

‘나는 부협회장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만큼 맥락 없이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그 한 마디의 가치를 알아본 강진용 소령은 눈을 크게 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3번의 전쟁에 파병을 나갔던 ‘757헬기부대’의 강진용 소령마저 일순간 절망할 수밖에 없던 ‘백귀야행 이초희의 패퇴’ 소식.

허나, 이건우는 그 무덤덤한 거짓말 하나로 이초희의 방심과 부상을 꼭 필요한 희생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전장을 앞둔 병사들에게 사기의 고저는 매우 중요하다.

혹자에게 말하면, 뭘 그리 당연한 말을 하느냐는 핀잔을 듣게 될지 모르나 실제 3번이나 전쟁에 참전했고 어렵사리 생환한 강진용 소령은 알고 있었다.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건, 말이 쉽지 실제로 행하기에는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이건우는 그저 강진용 소령에게 사태의 현황을 듣는 것만으로, 분석하고, 판단을 내리고, 실제 그것을 행동에 옮겨 행했다.

‘그 절망을 뒤엎을 수 있는 개인 따위, 존재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늘···.’

이건우는 그것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행해버렸다.

심지어 그런 말을 하면서, 실제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이초희와 757 부대원들에게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내는데, 솔직히 강진용 소령은 그 순간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만큼의 역동적인 센스와 판단력.

또한, 이 정도의 깊이 있는 관록이 20대 초반의 젊은이에게서 나올 수 있다니···.

수상한 소문만 무성해, 사실 이건우를 그리 좋게 보고 있지 않던 강진용 소령은 그 짧고 깊은 헤프닝 한 번으로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입니다···.”

이윽고, 강진용 소령의 질문에 잠깐의 침묵을 가졌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이건우.

그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다 정리한 것인지, 입을 열자마자 시원스럽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희가 저 테라포밍에 보다 침착한 느리게 대응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휴거교의 쪽일 테니까요.”

그것은 지금까지의 상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

당연히 많은 이들의 입에서는 각양각색의 많은 반발이 꿈틀대기 시작했지만,

-툭.

이건우는, 서둘러 중앙 테이블에 청명한 광택의 액체가 가득 들어있는 유리병을 올리는 것으로 다시금 대화의 주도권을 가지고 왔다.

이윽고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리자, 그는 변함없이 말을 이었다.

“이건, 저번 ‘정상회담’에서 내기로 얻은 러시아의 빙설화 세 송이, 영국의 백년초 두 뿌리, 터키의 마나 꽃 오일 한 병, 브라질의 프로폴리스 영약 한 병, 멕시코의 선인장 수액 열 방울을 한곳에 모아 뒤섞은 액체입니다.”

이건우의 디테일한 설명에도 머리 위에 물음표만 만개하는 회의장 내부의 사람들.

허나, 그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전부 보기 드문 약재들이군.”

“그리고 대부분이 마나의 속성이나 형질 자체를 변화시키는 영약의 재료들입니다.”

“그런데···. 그걸 한 대 뒤섞었다는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듣는다네.”

설마, 저 영약 중의 영약을 집어삼키면 뭔가 엄청난 마나등급의 향상을 이룩하고, 그리하여 강대해진 그자가 ‘테라포밍’을 막아내기라도 하겠다는 걸까.

퍽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그 같은 의문이 떠오르고···.

“혹시 그걸 누군가 먹고······.”

때문에 본래의 질문자였던 강진용 소령이 대표자로서, 설마 이건우가 진심으로 그런 기괴한 계획을 세운 것인가를 걱정하며 그리 운을 띄우자.

이건우는 주저 없이 예상을 한참 벗어난 대답을 들려주었다.

“에이, 먹으면 안 됩니다. 이걸 먹으면, 그 생명체가 무엇이든 간에 10초도 되지 않아 사망에 이를 겁니다. 이건, 그런 약물이니 말입니다.”

“즉사···? 그러니까, 자네가 들고 온 그 액체의 정체는···.”

“예. 독입니다. 그것도 세상의 그 누구도, 그 어떤 생명도 극복할 수 없는 맹독 중의 맹독이죠.”

맹독···.

어찌 그 많은 영약의 재료로 만들어냈다는 것이 고작 ‘독’이란 말인가.

혹자는 이건우가 한 병에 담은 수천억 상당의 영약 재료들의 가치를 따지며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그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사람은 이건우의 계획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챈 듯했다.

“그렇다면 이건우 자네는, 그걸로 테라포밍의 ‘핵’을 녹여버릴 계획인 건가.”

비범한 두뇌로 그 자리에서 가장 먼저 이건우의 계획을 눈치챈 최중철 소장이 그리 묻고, 이건우는 일말의 주저 없이 답했다.

“예. 이건, 시간을 우리의 것으로 되찾아올 비장의 무기입니다.”

테라포밍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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