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60화.
피로 얼룩진 부대 마크를 깨끗한 새것으로 바꿀 틈도 없이 계속해서 사건·사고에 휘말리던 남자.
이건우.
철혈검희 이서영의 확언과 어째서인지 이건우에 관한 일이라면 귀신처럼 잘 아는 남궁연의 확신으로 최중철 소장은 이 부대 마크를 일종의 SOS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전군, 타르타로스를 향해 진격!”
최중철 소장의 선언 그리고 부협회장 이초희의 긍정으로 관악산 일대를 포위했던 ‘이건우 탐색대’는 그대로 진격을 개시했다.
-카아아아아아!
청각을 마비시킬 것 같은 굉음을 뿜어내며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창공을 질주하는 이초희의 요괴 ‘알데이란’.
그리고 그런 그녀를 따르듯, 특수 특수전 전문의 헬기 부대 역시 속도를 올려 날아간다.
목표는 가평.
최첨단 마공학 설비로 설계된 국내 최고의 수직 감옥, 타르타로스였다.
그리고 오로지 전신의 모든 마력을 ‘은신’에 쏟아붓는 것으로, 간신히 백귀야행에게도, 성전사에게도 자신의 기척을 숨길 수 있었던 한 마탑의 노구.
베르디르는 그제야 지하 5m 지점에서 땅을 헤엄쳐 올라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푸하아아!”
마력을 가히 송두리째 불태워가며 간신히 건진 자신의 목숨.
허나, 그가 자신의 안전을 되찾자마자 머릿속에 든 생각은··· 비교적 허탈했다.
“좆됬네.”
설마 일이 이렇게나 커질 줄이야······.
땅굴 밑에서도 몇 번이고 생각했던 사실이지만,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건우를 납치하는 짓 따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가만히 뒀어도, 하룻밤의 시간을 다 보낸 뒤에야 비로소 테라포밍의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을 부대를 이건 오히려 베르디르가 솔선수범 사전에 결속시켜준 꼴이었다.
“이걸···. 뭐 어째.”
백귀야행에 여단장까지 등장한 마당에 베르디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의뢰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하고···.”
차라리 불사왕께 사죄를 드리고 용서를 빌어 하루빨리 한국 땅을 뜨는 편이 낫겠다.
베르디르는 주먹을 움켜쥐며 그런 결단을 내렸다.
그때, 결단을 내린 베르디르의 등 뒤에서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캬캬캬캬캭! 이봐 노땅! 어디서 뭘 하나 했더니···. 사고 치고 있었던 거야?”
보랏빛의 머리카락과 마치 시체같이 새파란 낯빛 거기에 퇴폐적인 느낌을 풀풀 풍기며 피어싱 따위를 안면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여자.
“마녀···.”
그녀는 겉보기에는 막 서른에 달한 사람의 외향이지만, 그 속은 베르디르조차 나이를 추측하기 힘들 만큼 썩어 문드러진 괴물이었다.
사령학에서 만큼은 위대한 ‘불사왕’조차 한 수 접어주고 들어간다는···.
흑색 마탑의 부마탑주이자, 세계에서 하나뿐인 ‘마녀’의 호칭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자. 주느비에브 리샤흐 수석교수였다.
“캬캬캬캬캭! 이보세요. 이봐요. 할아버지!
내가 한국에 오기 전에 누누이 당부했을 텐데? 왕께서는 이번 여정에서 최대한 조용히 일을 마무리하고자 하신다고.”
“...”
“빌런들이 제멋대로 날뛴 거야 뭐 그 꼬마가 머리를 잘 굴린 결과이니 그렇다 치겠는데···. 너는 그러면 안 되지. 이 한심한 작자야.”
입이 백 개라도 베르디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침묵하자 보랏빛 머리카락을 산발로 만든 ‘마녀’ 주느비에브 리샤흐는 돌연 점잖은 어휘로 입을 열었다.
“왕의 전언이다. 베르디르.”
-감히 사적 이익을 위해 멋대로 일을 벌인바, 이 불경의 값을 네놈의 목으로 치름이 마땅하다만···. 그러한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 아니하다면, 가서 싸우라. 싸워 휴거교의 계획에 이바지하라.
베르디르의 귀에는 어째서인지, 실제 불사왕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손을 떨다 돌연 눈을 부릅뜨더니 마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마녀여···. 이 노구는 어디까지 힘을 개방해도 되는 겁니까···.”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다 동원해. 실패해서 죽는다고, 네 영혼이 무사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말고. 캬, 캬캬캭!”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령학의 수석교수인 주느비에브 리샤흐의 입에서 그런 경고가 나오자 아무 행동도, 말도 할 수 없는 베르디르는 그저 손에 땀을 쥐며 강하게 주먹을 움켜쥘 뿐이었다.
***
주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시는 존재, 휴거교의 ‘주교’가 개벽의 장로에게 보여준 미래는 다음과 같았다.
이건우라는 변수가 제외된 세계.
그 세상에서 ‘테라포밍’은 박유진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2단계’까지는 알아서 완성되었다.
지상으로부터 1000m.
마치 태백의 광산과도 같은 깊이를 자랑하는 타르타로스 전체를 적록색의 줄기가 뒤덮는다.
이윽고 본격적인 이계와의 결속을 이룬 ‘포도나무’는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블러드 엘프를 이 세계에 쏟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오로지 전투만을 위해 양성한 집채만 한 뿔 달린 코끼리와 살아 움직이는 나무 정령은 군단을 이루고, 무질서하게 풀어놓은 ‘맹독’의 요정, 페어리는 이 세계를 순식간에 혼돈으로 몰아넣는다.
그렇게 갖춰진 군세,
그제야 부랴부랴 군대를 수집하는 한국의 병사들.
허나, 한국의 병사들은 수만의 군세와 함께하는 휴거교의 진군을 막지 못하고, 경기도의 절반 그리고 서울전역은 포도나무로 뒤덮인다.
그게 미래다.
더럽고 추한 인간들이 득세하고, 영웅들이 일구어 놓은 노른자 땅에서 영웅 행세를 하는 이들이 판을 치는 이 더러운 국가의 올바른 미래란 말이다.
‘계시’란 애초부터 막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저 일어나는 것, 순리되로 흘러가는 것. 그게 ‘계시’란 말이다.
“그런데···.”
분명히 그러할 진데···.
대체 뭘까, 좀 전부터 느껴지는 이 압도적인 기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허공을 날며, 전신에 흐르는 전능감과 권능을 갈무리하던 개벽의 장로, 박유진.
그녀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동공과 홍채 그리고 눈알의 구분 없이 붉게 물든 눈이 보인다.
그리고 그 ‘적안’으로 지하 50층의 타르타로스에서 저 구름 위의 창공을 관망하자, 보인다.
짙은 묵빛의 마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괴수.
태양을 가릴 만큼의 거대한 날개를 흐느적거리며 구름을 헤엄치듯, 태산 같은 몸을 움직이는 그 거대한 존재.
“뭐······.”
지? 라는 중얼거림이 박유진의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바로 그 찰나,
그 창공을 유영하던 거대한 고래의 형상은 타르타로스의 바로 위에 도달했고···.
일말의 주저 없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앙!
붕괴하는 지하세계.
허나, 그 거대한 고래는 일순간에 세계를 부수고, 으깨어, 소멸시켰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더, 더 몸을 역동적으로 뒤흔들며 지하 1000m 전역을 붕괴시키려 드는 ‘알데이란’의 외침.
-카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은 일면 천마의 사자후와 비견될 정도의 압도적인 포효였다.
그 거대한 공압에 최첨단 마공학 설비로 가득한 ‘타르타로스’가 그냥 석제건물인 것처럼 무너져내린다.
백 톤에 달하는 불도저.
하늘의 전투기마저 압축해 으스러뜨린다는 ‘알데이란’의 힘은 그 자체로 살인 병기가 되어 타르타로스를 형체도 없이 날려버렸다.
약 4초.
평범한 이에게 있어선 이제야 이변을 눈치채고 발걸음을 뗄만한 그 잠깐의 시간, 적록색 줄기로 거의 다 휘감겨 가던 타르타로스의 절반은 형체도 없이 소멸했다.
사라진 지하 25층까지의 타르타로스.
“자, 장로! 장로!”
그때 나름의 비범함을 갖추고 있던 휴거교의 전도사. 김총준이 위층에서부터 뛰어 내려와 박유진을 급히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져서···!”
‘운석’이라니.
전능한 권능으로 세상을 굽어볼 수 있게 된 박유진과 달리 일반인과 같은 눈을 가진 전도사에게는 충분히 그리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박유진의 ‘적안’을 마주 본 노을의 전도사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말과 행동을 멈추었다.
“저것은 운석이 아니다. 그저 백귀야행의 수족일 뿐.”
스스로 읊조리면서도 꽤나 초월적인 발언을 내뱉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박유진.
그러나 그런데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인간의 당혹감과 놀람 그리고 공포 따위가 스며 있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시련이란 말입니까. 나의 주인이시여.’
인간을 초월한 개벽의 장로는 그저 무심하게 고개를 들고 무너져, 그녀의 머리 위까지 내려앉은 천장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당황한 얼굴로 굳어 있던 노을의 전도사에게 박유진은 고했다.
「기도하라. 전도사여 성전의 때가 밝았으니. 기도하라.」
그녀는 목소리에는 피처럼 찐득한 마력이 묻어나왔고, 그녀를 결코 손윗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노을의 전도사마저 자연스레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퍼져나오는 전도사의 그림자.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림자로부터 신도들이 튀어나오는 족족, 피로 화하여 박유진에게 스민다.
그리고 이를 느낀 박유진은 고고히, 자신의 피로 이루어진 혈창, ‘롱기누스’를 움켜쥘 따름이었다.
그때, 이 일대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볼 수 있는 거대하고, 흉흉한 메시지는 고개를 들이미는데···.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종자, ‘피를 먹는 포도나무’는 테라포밍 1단계를 달성합니다.
*테라포밍 지대, 모든 흡혈 종의 능력치가 +120% 상승합니다.
*테라포밍 ‘2단계’ 달성까지 남은 시간: 2시간 20분.
ㅡㅡㅡㅡㅡㅡㅡㅡ
그것은 드디어 싹을 틔우고, 자리를 잡은 종자, ‘피를 먹는 포도나무’가 이제부터 다시 더 급격하게 성장을 이룩하겠다는 메시지였다.
피어난 싹은 피의 축복을 내린다.
기도하는 전도사에게서 스미는 권능은 봄날의 꽃잎처럼 흩날렸고,
수직으로 상승하는 능력치를 실감하는 ‘장로’는 붉디붉은 혈창을 바로잡는다.
-쿠웅!
이내 두껍게 쌓인 잔해의 틈,
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릴 만큼 흉악한 생김새의 요괴들이 균열 사이로 고개를 들이미는 것이다.
‘계시’와 다른 너무나도 현재.
하물며 박유진의 눈앞에 당도한 것은 세계 랭킹 9위에 달하는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최강자, 백귀야행의 이초희였다.
허나, 그럼에도 미동도 없이 차분하게 창을 움켜쥐는 개벽의 장로는, 그저 담담히 미친 듯이 자신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하는 요괴 군단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가 쥔 창은 흉흉한 붉은 오러를 무서운 기세로 사방에 흩뿌렸고, 박유진이 자세를 갖추자 사방이 검붉은 줄기에 둘러싸인 이 타르타로스는 요동친다.
마치 범람한 세계가 그녀의 승리를 노래하듯 존재하듯 ‘세계의 마나’가 송두리째 창으로 결집하는 것이다.
그렇게 응축되고 또 응축된 마력은 오러도 마나도 아닌 무언가가 되어 형(形)을 따른다.
무겁게 내디딘 발.
뒤로 당긴 팔.
소용돌이치는 ‘피’는 바로 지금, 개벽의 장로의 손을 떠났다.
손을 떠난 핏빛 선.
대기가, 아니 대지가,
아니 도저히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공간’ 자체가 압도적인 공압을 뒤틀며 세계를 비명 지르게 한다!
이윽고 펼쳐지는 것은 신화의 재현.
제 어미에게 버려지고,
눈에 파묻히고,
동정보단 모멸의 시선을 받아가며, 굶주림에 쓰러져 고요히 사라져가던, 어리고 여린 여아의 울부짖음은 창에 스민다.
자신을 버린 제 어미에게 복수를,
무고하고 불우했던 자신을 모멸의 눈으로만 바라보던 이 사회에 복수를,
나아가 이 부조리한 세계에, 복수를···.
혈창은 수십, 수백의 요괴를 찢어발기면서도 박유진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슬픔을 집어삼키며 더더욱 그 기세를 더해가고,
이윽고 그 울부짖음은, 제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분쇄하며 오롯이 하늘마저 찢을 듯 비상한다.
혈창(血槍) 제1형.
비상(飛上).
-쐐애애애애액!
붉은 비명은 그렇게 생에 처음으로 하늘을 갈랐다.
혈혈단신으로 일백의 대괴수에 맞선 ‘성역의 전사’는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세상에 복수할 준비를 마쳤음을 자각했다.
***
“으으윽!”
차가운 얼음주머니가 팔에 닿자, 백귀야행의 이초희는 신음을 토했다.
그녀의 최강의 무기이자, 방패인 ‘알데이란’이 혈창에 비명을 내지르며 소멸해버릴 위기에 처하자, 이초희는 과감히 그 대요괴를 역소환했고 그 결과, 핏빛의 오러는 그녀의 팔을 무참히 불태웠다.
그녀를 따라 지상으로 강하해, 가평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이렇게 임시 대피소까지 뚝딱뚝딱 만들어낸 특수전 전문의 헬기 부대.
허나, 그들의 임시 지휘관직을 맡게 된 소령의 표정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 해도 도통 좋아 보이질 않았다.
“부협회장님, 인근 주민들의 대피와 가평 전역에 비상상황 선포 그리고 본대와의 무전망 복구를 마쳤습니다.”
이초희는 군의 직급과는 무관계한 협회의 사람이지만, 현재로서 이 ‘이건우 탐색대’의 부대장은 다름 아닌 그녀였다.
그 때문에 헬기부대의 소령이 이초희에게 현황을 보고하자, 이초희는 안색을 어둡게 물들인 상태에서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그래···. 고생했어. 지자체에 최속 지원 요청 넣고, 어제부터 반응이 없다는 프랑스 총리 쪽에도 한 번만 더 지원 요청 부탁해···.”
빠르고 단호한 일 처리.
일면 그 목소리와 조리 있는 말솜씨만을 보면 눈앞에 있는 것은 평소의 이초희인 것 같지만, 조금만 훑어봐도 그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곧장 알 수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간호장교의 ‘힐’에도 낫지 않는 상처.
그녀는 마치 이건우의 애검이라 알려진 ‘이터널 패인’에 당한 상처처럼, 외관상의 상처가 나았음에도 끝없는 격통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이초희가 패했다.
물론, 앞뒤 볼 것 없이 무작정 수직으로 돌진한 탓에 기습을 허락한 결과였지만, 그래도 그 담백하고도 무서운 사실은 많은 군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했다.
“부협회장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후발대의 예상 도착시각은?”
“앞으로 약 1시간 뒤라고 합니다.”
“...그래?”
그리 말하며 다시금 입을 다무는 이초희.
아니, 어떠한 감정적 이유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기보다, 그녀는 지금도 끓어오르는 격통을 참는 데 안간힘을 쏟는 듯했다.
아무 계획도, 사전 상의도 없이 돌진해 이 같은 결과를 야기한 백귀야행.
하지만 이 자리에 그 누구도 그녀를 책망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우 탐색대’로서 현장의 소식을 접했던 그 일천 명의 사람들은 모두, 창공을 질주하는 이초희가 이미 모든 상황을 종료시켜버릴 것이라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이윽고 임시 지휘관인 소령이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자, 이젠 새카맣게 물든 하늘에는 아직도 흉흉한 붉은 메시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테라포밍 ‘2단계’ 달성까지 남은 시간: 1시간 26분.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시간.
피 흘리는 이초희를 발견해 대피소를 세울 때만 해도 아직 2시간의 시간이 남았었는데···. 벌써 반 시간 넘게 무의미한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져 간다.
항상 당차고 자신만만하던 이초희가 자신의 이마를 짚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그 마음.
이초희는 현 대한민국 안보의 상징이다.
하지만 저 심연과도 같은 타르타로스 밑바닥에는 그 이초희마저 패퇴시킨 괴물이 있다.
어찌해야 하나.
아니, 자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참으로 냉담하고 절망적인 사실이지만, B급의 각성자이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소령에게 할 수 있는 일 따위는 없었다.
‘젠장···. 젠장!’
무력감과 억울함에 주먹을 꽉 쥐어보지만, 역시 그뿐이다.
이 대한민국의 어디에도, 이 ‘절망’을 뒤엎을 수 있는 개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후우우···.”
목구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한심한 한숨밖에 없다.
-빠앙!
그때, 뜬금없이 들려온 일반 차량의 경적.
‘음?!’
놀란 소령은 눈을 부릅뜨고 대피소를 나갔다.
이 타르타로스 일대에는 아무리 임시라 할지라도 군의 이름으로 ‘통행금지’를 표시해 두었을 텐데···.
‘뭐야 저건’
도심의 방향으로부터 헬기부대가 자리를 잡은 텐트를 향해 일직선.
아직 마공학이란 것이 발달하기도 전에나 타던 구형의 가정용 소형차는 정말 느닷없이 나타나 소령의 앞에 섰다.
테라포밍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