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59화.
그곳은 관악산의 중턱.
이건우 납치 사태를 가장 먼저 대대적으로 알린 장본인들은 척 보기에도 낯빛을 어둡게 물들이고는 밝지 않은 대화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없었어···. 관악산 지하 공동 어디에도 사람이 다녀간 흔적 자체가 없었다고···.”
무표정하고 무감각한 평소와 달리, 참담한 심경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그런 말을 내뱉은 이서영.
그리고 그런 이서영과 마주 앉은 휠체어의 남궁연은 가슴이 답답하다는 듯 휠체어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며 입을 연다.
“어딘가 숨겨진 공간이 있는 걸지도 몰라요. 제 스킬이라면 그런 장소를 찾아낼 수도 있잖아요! 한 번만···. 한 번만 더 탐색을 해보면 안되는 건가요···?”
“그 성전사 꼬맹이도 못 찾은 걸 네가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나도 알아···. 나도 아니까. 벌써 두 번이나 들어갔다 온 거잖아.”
아직까지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남궁연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분개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또한 이서영은 그런 그녀의 무력감을 이해한다는 듯, 계급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따지고 들던 그녀를 굳이 타박하진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끊어지자 침묵에 휩싸이는 공간.
그곳은 어느 누가 오더라도 선뜻 입을 열기 힘든 무거운 공기가 가득 채워진 상황이었지만, 그런 눈치 따위 일절 보지 않는 이는 둔중한 철제 갑주를 움직이며 두 사람의 중간에 서서 말을 꺼냈다.
“생각보다 건우님이 생존해 있을 확률은 높습니다.”
“...확률? 메리! 확률이라니, 건우가 그 극악무도한 놈들에게 잡혀서 어떤 고문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확률이라니!”
메리의 청아한 목소리에 발끈하는 남궁연의 외침.
하지만 그런 감정적인 외침만으로는 평생을 전장에 서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거듭해온 성전사의 철옹성 같은 이성을 흔들 수는 없었다.
“연,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합니다. 전달받은 정보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건우님을 납치한 자들은 휴거교도가 아닙니다.”
“휴거교도가 아니라고···?”
“예. 지금껏 만난 그 광신도들은 예외 없이, 건우님을 보면 곧바로 흥분해서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 들었습니다. 두 분이 만났다는 ‘대역’의 말을 고려해보면 건우님은 분명 살아있어요.”
살아있다.
그 단어가 철제 투구를 뒤집어쓴 메리의 입에서 나오자 남궁연은 이미 그것만으로 전신에 바짝 들어갔던 힘이 풀린다는 듯, 긴 숨을 내쉬며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납치범은 건우님의 안위를 이용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어요. 이는 다시 말해···.”
“휴거교가 만일 납치의 주범이었다면 애초에 그를 살려뒀을 리가 없다. 그리고 납치범이 이건우를 아직 살려둔 이유는, 휴거교와의···. 혹은 우리들과의 교섭을 위해서겠지.”
신념에 미쳐 목적이 없어도 목숨을 바치는 광신도가 아닌 이상, 모든 행동에는 그에 걸맞은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인 경우 그것은 자본 혹은 귀한 아이템이나 각성자로서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영약 따위가 되리라.
이서영은 메리의 말을 가로채 빠르게 현황에 대한 정의를 내리더니,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애초에 인질이 죽어버리면, 납치범은 위험은 위험대로 감수하고, 이득은 하나도 보질 못하는 머저리가 되는 겁니다.”
납치범이 휴거교에게 어떠한 보상을 약조받고 일을 진행한 거라면, 이건우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위험을 감수한 ‘납치’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할 확률이 올라간다.
상대는 휴거교이니 말이다.
바로 그 상황이야말로 이건우를 납치한 납치범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할 상황인 것이다.
남궁연은 이 같은 메리의 말을 단박에 이해하고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 뜬금없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짚었다.
“그럼, 그 납치범에게서 우리 건우를 가장 안전하게 되찾는 방법은···.”
“저희 쪽이 아닌 납치범의 교섭대상, 휴거교들의 씨를 말려버려야 합니다.”
메리가 주장하는 것은 이른바 소거법이었다.
애초에 휴거교의 의뢰를 받아 이건우를 납치했던 납치범일지라도, 결국 원하는 바는 수백 수천억의 재화 혹은 그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아이템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약조 받은 보상을 건네줄 휴거교가 엉망진창이 되어 보상을 줄 수 없다면?
그러면 납치범은 자연히 협회나 군에 그의 몸값을 요구해서라도 자신의 소기 목적을 달성하려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납치범의 선택지를 강제로 줄여 이쪽에서 원하는 결과를 알아서 택하게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보통의 성전사는 그 엄격한 율법과 냉혹한 계율 상, 무고한 이의 안전보단 죄에 대한 응징을 우선한다.
허나, 현재 메리가 떠올린 발상은 범죄자를 징벌하긴 무슨, 도리어 그가 무슨 요구사항을 내걸어도 상관없으니 우선 이건우의 안전을 확보하자는 의견이 아니던가.
실은 메리가 처음 입을 열었던 그 시점부터 이미, 그다지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그녀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렇게 휴거교를 박살 내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정하고 그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기 시작하는 세 여자.
그런데, 이번에도 남궁연은 가히 본능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점을 짚었다.
“...그런데, 그놈들을 어떻게 찾죠?”
애초에 휴거교는 이쪽에서 원한다고 찾아서 토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번 프랑스의 협력을 받아 서울 내에서 민간인으로 숨어지내던 자들을 몇천 명씩이나 잡아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전국적인 단위로 따지고 들면···.
‘휴거교의 은거지를 찾아 씨를 말려버리겠다.’라는 주장 자체가 참으로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정작 남궁연의 일침에 얼음처럼 굳는 메리와 이서영.
판단은 꽤나 그럴듯했지만, 잘 벼려진 칼날은 정작 벨 대상을 찾을 수가 없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이었다.
“아···.”
“으···.”
좀 전과 달리 선뜻 말을 꺼내질 못하는 두 사람. 자신들도 답답했는지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남궁연은,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며 정작 몸을 쓰기 힘든 환자인 자신이 어떻게든 이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떠올려보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휴거교는 애초부터 변칙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한 집단이 아니었던가.
‘이럴 때···. 건우가 있었더라면···.’
매번 이유는 묻지 말라 말하며, 그 휴거교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언제나 그들보다 세 걸음 앞에서 행동하던 이건우.
그가 있었다면 아마, 잠시 심각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가도 금방 얼굴을 펴고는 다소 뜬금없고, 기괴하지만 효과적이고 명쾌한 답을 내어줬을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건우야···.’
허나, 정작 그가 사라지고 나니, 성전사에 이서영을 옆에 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새삼 남궁연은, 그간 대한민국이 이룩해낸 놀라운 업적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한마디에서 나오는 안심감.
그건 아무 근거 없이 그저 정신적 안정을 주고자 내뱉은 허울 좋은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불가능한 것들을 현실로 이루어낸 이건우이기에 가능한 힘이었다.
헌터병의 의무복무일조차 다 채우지 못한 비루한 처지에도, 이건우는 이미 비단 군의 안전을 넘어 한국의 안녕을 위해 없어선 안 되는 존재가 되어있던 것이다.
그때, 지금껏 분하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이서영이 갑자기 자릴 박차고 일어나 입을 열었다.
“전국의 모든 수색대에 연락한다. 휴거교의 술식을 해체할 수 있는 흑마도들과 프랑스 총리에게도 연락하고, 지금 당장 성전사들도 부른다. 해보지도 않고 안되는 게 어디 있어. 해야지. 안되면 되게 만들어야지!”
상당히 급하고, 다소 비약적인 주장이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같이 매사에 침착한 이서영이 조급해하는 모습이야말로 그녀가 이건우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가능한 한 모든 수를 동원해서라도, 이건우를 구해야 한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세 여자 사이에 공유된 그 의지는 세 사람의 결의를 북돋아 주었다.
이윽고 ‘성녀의 로자리오’를 테이블에 놓고 메리가 거대한 건틀렛으로 목걸이를 깨부수려던 바로 그 순간···.
-쿠우웅!
이 관악산 중턱에 자리한 지휘소에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적습?!”
짧은 혼잣말과 동시에 인간의 반사신경이라고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텐트를 뛰쳐나가는 철혈검희.
그녀는 일순간에 굉음이 일어난 현장에 도착했고, 흙먼지가 뿌옇게 낀 지휘소 인근 공터에 엎어진 ‘뼈와 마나로 이루어진’ 괴수를 목격할 수 있었다.
뭐지?
당황하는 와중에도 방심하지 않고 이미 백룡도를 빼 들고 오러를 끌어올리는 이서영.
그런데, 오러의 발현으로 그녀의 눈과 귀를 보다 예리해지자 엎어진 그 괴수의 등 뒤로, 무기력하게 매달린 한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공습인가?!”
“헬기 놈들은 뭘 하고 있던 거야!”
“다들 전투준비!”
“여단장님, 우선 대피하셔야 합니다!”
-철컥!
-스릉!
그제야 하나둘 굉음에 반응하며 총구를 들이미는 군인들과 각자의 무기를 쥐며 마나를 불태우는 협회의 정예 요원들···.
일제사격이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비단 수 초.
그런데, 이서영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그 무너져내리기 직전의 ‘뼈 괴수’를 다시금 쭉 훑어보았다.
“...본 와이번?”
한 번이라도 전장을 함께 누빈 동료라면 그게 누구라도 절대로 잊지 않는 이서영의 기억 속, 분명 이 거대한 괴수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소환수였다.
소환수?
반사적으로 떠올린 기억에서 신경 쓰이는 단어를 캐치한 이서영.
그녀는 곧바로 어떠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성전사들이 고립되었던 성요한 게이트 내부, 이미 구조한 성전사들을 지켜주던 흑마도.
이서영은 이내, 성전사들이 전열을 갖추는 동안 잠시 등을 맞댔던, 어린 천재 흑마도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멜 다그나?”
그녀는, 건우의 실종 소식이 퍼지며, 불과 1시간 전에야 추가로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던 흑마도였다.
***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
그건 ‘본 와이번’의 사육자이자 흑색 마탑의 조교수, ‘다비드 호베흐’의 수제자인 멜 다그나가 내린 이건우에 대한 최종평가였다.
당장 돌이켜봐도 그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멜이 상처에 신음하며 쐐액, 쐐액 폐에 구멍 뚫린 것 같은 소리를 낼 때만 해도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 들며 대놓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주던 인간이···.
그녀의 상태가 약간 호전되어 드디어 간신히 자력으로 설 수 있게 되자마자 ‘본 와이번’의 소환을 부탁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향하는 곳이라는 게 당연히 안전구역이리라는 멜의 예상과 달리, 이건우는 그녀를 적지의 한복판인 타르타로스로 이끌었다.
‘미친 건가. 미친 거지? 이건 확실히 미친 거 맞지?’
듣자 하니, 멜이 휴식을 취하는 틈에 그와 그녀가 갇혀 있던 감옥의 지리정보를 파악하고, 상대적으로 타르타로스가 가까워 정보 수집을 위해 갔다고는 하지만···.
어떤 미친 인간이 탈옥 직후에, 어딜 봐도 납치범과 한패인 놈들에게 자기 발로 다가간다는 말인가.
멜 다그나는 이러한 어처구니없음에 당장이라도 이건우에게 쌍욕을 쏟아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정작 ‘타르타로스’에 도착해 목격하게 된 경악스러운 메시지 때문에 그런 욕지거리를 내뱉을 여유 따위는 사라졌다.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이계의 종자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 이벤트 ‘이계의 범람’이 시작됩니다.
*종자, ‘피를 먹는 포도나무’는 테라포밍을 진행합니다.
*테라포밍 ‘1단계’ 달성까지 남은 시간: 4시간 22분.
ㅡㅡㅡㅡㅡㅡㅡㅡ
“테···. 테라포밍?!”
최악의 컨디션으로 보유한 최상위 소환수인 ‘본 와이번’의 소환을 유지하느라, 숨을 쉬는 것도 조심스러운 상태였던 그녀였다.
허나, 눈앞에 떠오른 문구에는 도저히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테라포밍은 위험하다.
일반적인 ‘게이트’와는 그 위험성의 질이 다르다고 표현해도 조금의 부족함이 없는 공포의 대상.
실제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구금되었던 일본이 그 테라포밍을 막지 못한 대표적인 국가였다.
현재 일본의 국토 절반은 인간이 살 수 없는 불모지이니 말이다.
한번 최종 형태를 꽃피운 테라포밍의 매개체는, 무슨 짓을 해도 ‘닫을 수 없는 게이트’의 기능을 하게 된다.
닫을 수 없는 게이트.
심지어 그것이 대한민국의 수도권에 위치하게 되면···.
그려지는 미래는 모두 지옥뿐이었다.
이에 너무 놀란 멜 다그나가 그녀의 뒤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이건우의 옷을 꾹꾹 당기자 그는 놀랍도록 침착한 목소리로 이상한 부탁을 해왔다.
그 내용은···.
‘7여단과 협회에, 진짜 이건우는 타르타로스로 납치되었다.’라는 정보를 전달해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건 7여단과 협회의 사람들을 ‘테라포밍’의 현장으로 유도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겠는데···. 진짜 이건우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멜 다그나는 듣고도 시원하게 이해가 가질 않는 그 정보가 영 불만스러웠지만···.
금일은 많은 외교관이 한국에서 출국하는 날이다.
당장 대동할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반면, 테라포밍은 초기에 진압하지 않으면 거대한 화마처럼 걷잡을 수 없이 위험성이 상승하는 언럭키 이벤트.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적.
그러나 그럼에도, 멜 다그나라는 흑마도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이 절망적인 상황을 타파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테라포밍의 매개체.
연결되려는 이계의 종류···.
사실 결론적으로 말해 순전히 우연이었다.
이건우를 그가 원한 위치에서 떨어뜨리고, ‘본 와이번’의 유지를 위해 아찔해져만 가는 정신을 어떻게든 붙잡으며, 그럼에도 어떻게든 방법을 떠올리려던 찰나···.
관악산 인근에 떠 있던 헬기와 부딪혀 많은 군인이 질서정연하게 모여있는 곳으로 추락한 것은 말이다.
“멜 다그나?”
떨어지는 충격에 잠시 기절했던 멜 다그나를 깨우는 목소리.
그녀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건우가 특히 신경써서 말을 전달해달라 말했던 철혈검희 이서영 본인이었다.
이에 놀라 눈에 힘을 주고, 계속해서 흐릿해져만 가는 주변 시야를 쭉 훑어본 멜 다그나.
그런데 놀랍게도,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이 인근에 모여있는 이들은 하나 같이 대한민국에서 ‘정예’라 불리기 마땅한 사람들 뿐이었다.
‘어떻게 다 모여 있는 거지?’
어떻게 떨어진 것인지.
왜 눈을 뜨자 이 절망적인 상황을 뒤집을 역전의 헌터들이 모여있는 것인지.
정신이 흐려져만 가던 멜 다그나에게 그런 것을 천천히 검토해볼 시간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그녀는 그저, 그 믿음직한 이들을 향해 이젠 몇 번이고 되뇌다 못해 본능적으로 입을 움직이는 수준에 달한 말을 힘없이 읊조릴 뿐이었다.
“지···. 진짜 이건우는 타르타로스에······.”
돌연, 그런 말을 내뱉고는 픽, 하고 쓰러지는 멜 다그나.
기절한 그녀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이 관악산 중턱에 자리를 잡았던 수많은 군인들 역시 이러한 갑작스러운 일에 시간이 멈춘 듯, 얼어붙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누구보다 먼저 멜 다그나에게 다가갔던 검사 이서영은 갑작스레 눈을 크게 뜨며 기절한 멜 다그나에게 다다갔다.
“...이건?”
이서영의 중얼거림은 꽤나 작았지만, 고요가 찾아온 지휘소에서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이는 없었다.
이윽고 멜 다그나의 꽉 움켜쥔 손에서 무언가를 빼 들고 터벅, 터벅, 이 현장의 최종 결정권자인 최중철 소장에게 다가오는 이서영.
최중철 소장은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도 그저 가만히 깊은 눈동자로 이를 응시할 뿐이었고···.
이내 이서영이 내민 것은, 전투복 어깨 부분에서 누군가 고의적으로 도려낸 듯한 7여단의 부대 마크였다.
그것도···. 그냥 부대 마크가 아닌, 이곳저곳에 핏자국이 덕지덕지 묻은 부대 마크.
최중철 소장은, 이러한 얼룩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이건···?”
묘한 기시감에 눈을 크게 뜬 최중철 소장이 그리 묻자, 이서영은 주저 없이 확신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런 피범벅의 부대 마크를 그대로 사용하던 병사는 저는 딱 한 사람 말고는 모릅니다. 이건···. 이건우 상병의 부대 마크입니다···!”
테라포밍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