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54화 (54/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54화.

“...쉽게 말해 미래시 같은 것을 말하는 겐가?”

이준학 준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사람처럼 확인을 구하듯 물었다.

“이러한 주제를 이야기하면 이건우 상병은 항상 말끝을 흐리지만, 그와 함께 작전을 뛰어본 군인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밖은 타르타로스니 정상회담이니 시끄럽지만, 폐광과도 같은 지하 터널 속은 두 남자의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미래를 보는 새로운 S급 헌터라···. 그런 낭만적인 헌터가 실존한다면 좋겠다만, 아무래도 그러한 능력 사용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겠지.”

그들의 대화 주제는 어찌하여 이건우는 이 ‘암행’과 이준학에 대해 알고 있었는가였다.

“자의가 아닌 간헐적 미래시일 수도 있고, 예지몽의 형태이지만, 이따금 헛꿈으로 끝나는 일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거겠지.”

“...디테일하시군요.”

“본래 우리 ‘암행’은 이 게임처럼 변해버린 세계의 알고리즘과 진실을 탐구하는 연구단체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네.”

이준학 준장은 그리 말하며 합금으로 이루어진 군용 잔에 새카만 커피를 따라 김용운 중령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정보를 다 말씀해주셔도 되는 겁니까.”

“하! 군 명부에서도 완전히 이름을 지운 이들로만 구성된 우리 ‘암행’을 찾아온 건 자네잖나. 뭘 이제와서 그런 시답지 않은 걸 따지나.”

“그건···. 그렇군요.”

-달그락.

김용운 중령에게 주었던 커피를 자신의 잔에도 따른 이준학 준장.

그는 잠시 커피를 마시며 꽤나 긴 침묵의 시간을 가지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와 7여단 쪽에서 먼저 접촉을 시도할 줄은 몰랐네만, 사실 이건우. 그는 이미 예전부터 우리 ‘암행’의 관찰대상이었다네.”

이준학 준장이 내뱉은 말에도 당황하지 않는 김용운 중령.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 대상이 이건우라면 그럴 만도 하다는 뉘앙스였다.

“일부러 숨길 수 없는 활약들만 공개했는데도, 인터넷에서는 음모론이니 뭐니 하는 의견이 쏟아지는 수준이니 말입니다.”

“대중은 원래, 영웅을 원하면서도 의심한다네. 그리고 강한 의심은 자신의 일상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으로부터 비롯되지. 그 모든 현상은 이 사회의 불안정성을 나타내는 지표야.”

언제나 비단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의 그 저변을 파악하는 이준학 준장.

그는 짧은 대화에서부터 이미 모든 현상을 넓고, 크게 바라보는 성향이 돋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시면 이 사람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건 금방 느끼실 겁니다. 분명히요.

이에 김용운 중령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건우의 짧은 첨언이 있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니, 김용운 중령은 직접 이 거한을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말만 몇 마디 섞어보니 곧바로 감이 왔다.

‘확실히, 보통 사람이 아니군···.’

중령을 달고 있는 김용운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기밀 특수부대 ‘암행’.

그런 수상쩍은 집단에게 이젠 7여단의 존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그 물건’을 넘기겠다니···.

사실, 김용운은 시간이 이토록 촉박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건우의 이번 판단만큼은 한사코 반대하려 했었다.

허나 직접 만나본 결과, ‘암행’과 이준학 준장은 최소한 ‘이 물건’을 어처구니없게 소실하지는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때마침, 김용운 중령이 마지막 고민을 끝내던 그 순간, 그를 기다려주던 이준학 준장은 말문을 열었다.

“그래. 그래서 이젠 말해줄 생각이 들었나? 대체 이건우는 우리에게 뭘 부탁하기 위해 자네를 이곳으로 보낸 건지 말이야.”

“저의 소견으로서도 참으로 갑작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이에 마주 앉은 김용운 중령은 자신의 옆에 내려놓았던 더플백을 열고 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툭.

이윽고 두 사람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올려지는 투박한 무언가.

누군가 의도적으로 흑철을 덧씌워 본래의 형태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음에도, 이준학 준장은 일말의 주저 없이 ‘그 물건’의 진짜 이름을 읊었다.

“뒤집힌 십자가의 성배, ‘타락의 성물’이로군. 지난 성요한 게이트의 데스나이트가 가용했던 대 성전사용 무기.”

“...현장에 있던 이들보다 더 자세한 정보를 확보하고 계셨군요.”

“암행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네.”

“그런 것입니까···. 크흠! 빠르게 말을 이어가자면, 이건우 상병은 말했습니다. 이 타락의 성물을 ‘암행’에서 가지고 바티칸으로 향해달라고 말입니다.”

바티칸,

타락의 성물.

은밀하게 바티칸으로 돌아간 성전사들.

그리고 ‘암행’이라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은밀 기동부대의 필요성까지.

그 모든 정보를 차분히 머릿속에서 규합한 이준학 준장은 단번에 그 비상한 머리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냈다.

“성녀인가. 그것도 지금의 대성녀님이 아닌, 목숨을 위협받는 성녀님의 후계자를 찾은 모양이로군.”

“...?!”

타락의 성물을 보고 놀라면, 차근차근 사정을 설명하려고 했던 김용운 중령.

그러나 이준학 준장에게 있어 그런 과정은 필요조차 없어 보였다.

“타락의 성물로 성자와 팔라딘들을 무력화하고, 후계자의 보호를 위해 은밀하게 한국으로 데리고 와 달라. 맞나.”

이미 확신을 가지고 묻는 이준학 준장과 그런 그를 보며 도저히 입을 다물질 못하는 김용운 중령.

왜냐하면, 그의 말은 모두 정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닌 게 아니었어······. 이분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지금껏 비범한 자를 수도 없이 보아왔던 김용운 중령, 그렇기에 새로운 신예의 등장에는 이제 더 무뎌질 곳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늘.

이준학 준장은 그 너머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말하자면 이건우와 동급의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남자였다.

적잖게 놀란 김용운 중령이었지만, 이준학 준장은 그를 아예 더 경악하게 만들려는 것인지 회심의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로군.”

김용운 중령은 잠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

‘정상회담’은 비교적 순탄했다.

만담에 너무나 몰입해버린 나와 이초희가 지각하는 일이 생기긴 했다만, 의외로 ‘정상회담’의 다른 참가자들은 그리 거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젠 교화와 교육의 대상에서, 어엿한 헌터로 취급을 받기 시작한 나.

휴거교의 매운맛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계획은 실패했으나,

유일하게 살아남은 일본측 ‘A급 헌터’와의 전투가 뇌왕 방송의 전파를 타고 널리 보여진 덕분에, 최소한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헌터라는 인식은 사라진 모양이었다.

더욱이 이번 탈옥 강행으로 단순 마나 측정의 결과가 ‘A+급’이라는 것이 알려진 휴거교도, 개벽의 장로를 제압하고,

타르타로스 내부에서 어떤 활약을 거듭했는지를 흑검대의 생존자들이 열렬히 말해준 덕분에,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 ‘황금 게이트’의 보상을 한국으로부터 정당하게 갈취하기 위해 모인 이 ‘정상회담’은 역으로 한국에 유리한 국제 무역을 맺는 것으로 끝이 났다.

물론 그 명분은 지난번 자기들이 내걸었던, ‘새로운 S급 헌터인 이건우의 안전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였고 말이다.

정당하게 삥뜯으러 온 이들에게 도리어 정당하게 삥을 뜯어버린 것이다.

나쁘지 않은 결론이었다.

게다가 내 손에는 내기에 참여했던 열두 국가에서 내걸었던 상품들도 덤으로 들어오기까지 했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밤.

회담의 참가자들은 모두 협회에서 주최한 저녁 만찬에 모였다.

이젠 내게 관심이 떨어진 각국의 정상들은 모두 파울라스 총리의 주변에 모였고, 흡사 왕의 자태에 감탄하는 가신들의 모임처럼 만찬의 모양새가 변했다.

‘참···. 속이 훤히 보이는 사람들이네’

물론 나야, 줄 것만 주고 알아서 떠나준 현재가 더 편했기에, 쌍수를 들고 환영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있더구나. 천것.”

그때, 홀로 만찬회에서 떨어져나와 테라스에 서 있던 내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흑태자님.”

“그래. 이몸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가슴을 펴며 그리 말하는 흑태자 칼레드.

“일전에는 감사했습니다.”

나는 당돌한 그에게 지난번, 정상회담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힌트를 주었던 일에 대해 곧바로 감사를 표했다.

“흥! 되었다. 이몸은 네놈이 입에 넣어준 음식을 씹을 줄은 아는지 정도를 테스트해보았을 뿐이니.”

“그렇다면 저는 흑태자님의 테스트에 합격한 셈이겠군요.”

“하! 네놈은 이제야, 입에 넣어준 고기는 씹을 줄 아는 번견임을 증명했을 뿐이니 너무 자만에 빠지지는 말거라.”

“새겨듣겠습니다.”

내가 예의 바른 동작을 취하며 적당히 맞장구를 치자, 그는 흥! 하는 콧바람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말을 이어보자꾸나. 천것. 네놈은 바티칸의 내정에 간섭할 셈인 것이냐.”

역시, 라고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다만.

흑태자 칼레드는 이미 내가 계시를 받았다든지, 성전사들이 움직이고 있다든지 하는 뒷사정들을 모조리 알고 있는 눈치였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왕의 차남으로 태어났음에도 그 국가 운영 예산 급의 자본을 세 배, 네 배로 부풀려, 정당하게 ‘태자’의 자리를 거머쥔 남자.

투자의 괴물, 칼레드 다운 정보력이었다.

“무의미한, 부조리한 죽음을 막아보려는 약소한 노력일 뿐입니다.”

“하! 약소? 성전사들을 턱짓으로 부리는 놈이 할 말은 아닌 듯하구나.”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저도 원해서 엮이게 된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하하! 이런 능구렁이 같은 녀석. 어떻게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구나.”

“칭찬 감사드립니다.”

흑태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내게 말을 걸어온 걸까.

나는 하하 호호 떠들며 웃는 흑태자 칼레드와의 만담을 이어가면서도, 그의 목적을 판별해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때, 정말 즐겁다는 듯 웃기 바쁘던 흑태자는 갑작스럽게 눈을 바로 뜨며 아무런 전조도 없이 입을 열었다.

“성자에게 넘길 게냐. 교황에게 넘길 게냐.”

그가 말하는, 누구에게 넘길 것이냐는 말의 주체는 아마 ‘성녀의 후계자’를 말하는 거겠지.

확실히, 그 불사왕이 엉덩이를 움직일 만큼의 주제답다.

그 매사에 장난스러운 흑태자마저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게 만들다니 말이다.

“처음부터 그게 궁금하셨던 겁니까.”

“장사치에게 있어 유용한 정보란 천금보다 더 값진 법이지. 그 신이라는 작자도 참으로 무심하구나. 모태신앙에 신실한 신도이기까지 한 이몸이 아니고 네놈 같이 정보의 가치를 모르는 천것에게 계시를 내리다니.”

그 말투만 봐도 이미 신실한 신자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뭐 본인이 그렇다는데 굳이 따지고들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국제정세를 현재의 나보다 더 디테일하게 파악하고 있을 흑태자조차, 당장 성자파와 교황파의 우열을 가려내지는 못하고 있는 건가.

역시 전생에도 그러했듯, 바티칸의 미래는 ‘후계자’의 족적과 자취에 따라 휙휙 변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듯했다.

“저는 본인의 의견을 존중해주려고 합니다.”

“하! 역시 네놈도 한 명의 인간. 역시나 무지한 권력자를 내세워 바티칸을 원하는 대로 주무를 셈인가.”

내 대답을 어떻게 들으면 저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걸까.

흑태자는 마치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인지 딴소리했고, 나는 나를 쳐다도 보고 있지 않던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시선을 끌고는 더 확고하게 말했다.

“아니요. 겉만 번지르르한 소리를 지껄이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본인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은 것이니까요.”

이번에는 확실하게 마주 본 흑태자와 나의 눈동자.

흑태자는 담담히 나를 바라보다가 한참 동안이나 내 얼굴에 변화가 없으니, 조금씩 표정을 바꾸기 시작했다.

“진심인 게냐? 진심으로 그 무지한 것의 무가치한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저에게 무가치한 의견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흑태자님.”

“...그것이 네놈의 신념인 게냐.”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요. 그냥···. 인간의 자율성과 자아주체성을 믿는 것뿐입니다.”

담담하게 내뱉은 나의 확언.

그러자 흑태자는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다소 의외라는 듯한 놀라움이,

도중에는 답답하다는 듯한 분노가,

이윽고 드디어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한 흑태자의 얼굴은 서서히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무릇 인간이란 올바른 지도자에게 충성할 때 더 없는 안정감을 느끼는 법인 게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그 결과를 책임지며 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법이죠.”

“하하하! 그저 둔재들과 우자(愚者)들의 실패를 보며 그들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게 결과라면,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일 뿐인 겁니다. 다만, 다시 스스로 일어서서, 다시 도전하리라 믿는 거죠.”

“하하하! 하하하하하! 재미있구나. 정말 재미있어.”

나로서는 꽤나 기분이 나쁜 대화였는데, 흑태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아예 입이 귀에 걸렸다.

“네놈과 이몸은 정말로 닮았구나. 천것. 우린 서로가 서로의 등을 비추는 거울이다.”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우리는 같다. 정확히는 같은 곳에서 완벽하게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게지.”

도저히 그 속을 알 수 없는 흑태자.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그를 닮았다는 말이 진심으로 싫었지만, 그 자존감이 하늘을 뚫다 못해 우주에 닿은 흑태자다.

그가 이렇게까지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내게 호감을 느꼈거나, 나를 인정해준 거라고 봐도 좋은 거겠지.

흑태자는 전생, 그리 아름다운 최후를 맞이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제대로 서로를 알기도 전에 ‘불사왕’의 마수에 휘말려 돌연 사망했던 남자.

하지만, 국제정세를 파악하는 능력과 그의 투자 기반이라고도 볼 수 있는 ‘정보 수집’ 능력만큼은 이 시대의 그 누구와도 감히 비견할 수 없다.

그런 그와 친해져 교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건 그 자체로 내 손에 쥔 패가 늘어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재미있는 비유네요.”

그렇기에 나는 썩 내키진 않지만, 갑자기 내게 호감을 보이는 그에게 적당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참으로 갑작스레 기지개를 쭉 켜더니 정말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무심히 내게 다가와 작게 입을 열었다.

“그럼,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네놈에게 작은 서비스를 하나 주도록 하지.”

서비스.

그 마이웨이 흑태자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것이었다.

뭐 새로운 정보를 얻어 나쁠 건 없을 거라는 생각에 흥미롭다는 듯 그를 보고 있자 그는 다시금 조금 전에도 지었던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매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존경해 마지않는다고 말하던 파울라스 총리와 프랑스의 랭커들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게다.”

“?!”

까놓고, 나는 놀랐다.

이 시대에는 아무리 울고 불며 소리를 치고, 설사 난동을 피우며 ‘불사왕’의 정체를 고발해도 정작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흑태자는 이미 이 시대에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역시 ‘정보수집’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페셜리스트인가.

흑태자는 당황하는 내 얼굴을 즐겁다는 듯 바라보다 무심히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나는 도리어 그를 경악케할 말을 꺼내 그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불사왕.”

-텁.

나의 입에서 한 단어가 목청을 떨며 발음되는 바로 그 순간, 걸음을 멈추고 경악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흑태자 칼레드.

“...네놈이 어찌.”

그는 내가 파울라스 총리의 이명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눈썹을 떨 만큼 놀란 모습이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왕자님.”

아직 인류의 절멸까지 11년이 남은 이 시대에, 벌써 불사왕의 정체를 파악할 정도의 정보력이라니.

아울러 흑태자는 개인 군대를 가지고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도 남을 만큼의 자본마저 가진 자.

이 정도로 만능에 가까운 후원자가 눈앞에 있는데···. 이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다.

“저와 한번, 긴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시겠습니까. 반 압둘 아자스 알 사우드 칼레드 왕자님.”

약간 도발적인 언행과 단도직입적인 말투.

다행히 흑태자는 나의 이러한 적극적인 모습에 도리어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내일, 이몸이 본국으로 돌아가 체결해야 할 국제 무역이 열여섯 건 있다만······. 아무래도 네놈과 함께 있는 편이 정확히 네 배쯤 유익할 것도 같구나.”

이윽고 돌아온 것은 거절이 아닌 승낙.

나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소림사의 대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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