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51화 (51/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51화.

본래라면, 나는 흑검대와 일본측 헌터들이 41층. 즉, 본격적으로 휴거교의 짙은 저주가 깔린 구역에 들어갈 때까지 몸을 숨길 심산이었다.

애초에 이번 정상회담을 ‘내기’로 끌고 온 근본적인 계기 자체가 세계에 휴거교의 위험성을 대놓고 입증하기 위함이었으니까.

다만, 최고위 탐색 스킬 ‘천망天網’을 발동하던 중 감지한, 지하 1층의 싸늘한 시체 하나가 나의 계획을 완전히 바꾸었다.

-파지지직!

푸른 뇌광이 나의 손에서부터 꽃피워진다.

아무리 진정하려고 마음을 다잡아도, 내 이성의 한계는 뇌왕의 방송으로 뇌왕의 죄를 까발리는 그 순간까지였다.

이터널 패인의 새카만 검날은 호를 그었다.

-텅!

동시에 저주를 한껏 머금은 붉은 스파크가 비산하고,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일본 측 A급 헌터의 갑주와 이터널 패인이 부딪혀 불꽃을 튀겼다.

“이, 이 자식이!”

A급 헌터라는 직함이 폼은 아닌지, 나의 최속 베기에도 반응해 목소리를 높이는 헌터.

허나, 그와 함께 나를 에워싸고 있던 뇌왕과 또 다른 헌터 한 명은, 아직도 멍하니 방송용 드론에 부착된 홀로그램 채팅창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대일도 아니고, 일대일의 상황.

내게 있어 거리낄 것은 없었다.

“흡!”

강한 기합.

나는 검을 비스듬하게 쥐었고,

심장은 오랜만에 시동이 걸린 엔진처럼 거대한 박동을 일으켰다.

-피이이이이이!

들려오는 거대한 독수리의 울부짖음.

동시에 푸르스름한 마력에 휩싸인 이터널 패인은 베테랑 헌터라 불리던 놈과 합을 주고받았다.

-텅!

-탱! 착! 핑!

내 마력의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는지, 곧바로 자신의 참마도를 꺼내 들고 이터널 패인을 받아내는 일본 헌터.

다만, 한번 쇠와 쇠가 맞부딪칠 때마다 더 막대한 중압감이 놈의 몸을 억압했다.

“무, 무슨···!”

놈은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늦었다.

-피이이이이이이!

다시 한번 솟아오르는 높은 고음.

이윽고, 5000Wh의 생체전기를 쏟아부은 막대한 ‘자기력’은 갑작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읏! 으그그그그극!”

놈의 비명과 함께 이터널 패인과 닿았던 투구, 견갑, 흉갑, 각반이 엄청난 힘으로 서로 달라붙는다.

자연히 그 갑주를 입고 있던 헌터의 몸은 찌그러졌고, 명색의 A급 헌터이니 죽지는 않겠다만, 놈은 나와의 열 합 만에 완전히 전투불능이 되었다.

레벨이 높고, 마나 등급의 격차가 있다고 내 전기를 무시할 수 있으리란 것은 큰 착각이다.

전격이 전격으로 통하지 못한다 해도, 강철 갑주를 뒤집어쓰고 있는 놈을 제압할 방도는 많으니까 말이다.

“이런 미친 새끼가···.”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것인지 뇌왕, 타테미츠 코타로는 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휙!

나는 이터널 패인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냉랭한 표정 그대로 놈에게 말했다.

“네놈은 끝났다.”

“끝이라니···. 그럴 리가.”

-핏! 펑!

뇌왕이 손끝을 가볍게 흔들자, 그의 뒤에 떠 있던 방송용 드론은 아예 터져버렸다.

“넌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는 음성을 변조하고 영상을 조작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채팅창을 한참 동안 보며 떠올린 대책이라는 게 고작 그것인가.

모두 가짜라고, 거짓이라고···.

자신은 끝까지 정당하다고 주장할 셈인가.

“티끌만 한 죄악감도, 반성도 없는 건가.”

“반성···? 너 지금 반성이라고 했어? 흐흐, 하하하핫! 난 널 죽일 거다. 그리고 네놈의 그 얼굴 반반한 년들을 납치하고 고문해서! 그년들이 지입으로 말하게 하는 거야!”

한국과 중국은 감히 일본의 선량한 헌터들을 공격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증인과 나 그리고 죽은 너와 흑검대의 영상 기록 중···. 누굴 더 신뢰할까. 응?”

녀석은 나의 자기력에 얽혀 지금도 신음을 토해내는 자신의 동료는 쳐다도 보지 않고···. 아주 자신만만하게 그런 말을 꺼냈다.

정말이지, 이 녀석은···.

나를 화나게 하는 재주가 있는 놈이다.

“그게 네가 생각한 결론인가.”

내가 푸른 스파크를 튀기는 눈으로 정확히 놈을 응시하며 그리 묻자 놈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결론 같은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얼른 네놈의 그 동료 계집들이나 빨리 불러모아. 귀찮게 두 번 일하긴 싫으니까.”

“후우.”

같은 사람의 언어를 쓰고 있는데, 너무도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나는 허탈함에 숨이 토해진다.

같은 헌터가, 아니 헌터이기 이전에 같은 인간인데 어떻게 이토록 대화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단 말인가.

-스릉.

나는 다시금 검을 강하게 쥐었고, 뇌왕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타무로, 너는 그년들이 기습하지 않을지 경계해. 나는 이 새끼를 통구이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내가 제대로 된 공격 태세를 취했음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동료에게 명령이나 내리고 자빠진 뇌왕 코타로.

나는 그런 뇌왕을 향해 일직선의 곧은 전격을 링크했다.

-핏!

짧은 소음, 하지만 이어지는 전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파지지지지지직!

***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이건우가 연결한 전극을 타고 엄습하는 푸른 뇌광.

보통의 헌터였다면 필사적으로 방어를 위해 마력을 운용했을 무지막지한 전격이었지만, 뇌왕은 도리어 입을 크게 벌렸다.

“하!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이게 전력이냐!”

레벨은 비록 15에 불과할지라도 지금껏 레벨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선보였던 이건우의 전격.

그러나 그런 그조차도 이미 20년 넘게 현역 헌터 생활을 이어가는 뇌왕을 위협할 수는 없어 보였다.

“같은 계열의 헌터끼리 붙으면 레벨이 높은 쪽이 낮은 쪽을 압살하는 건 상식이잖아!”

도리어 뇌왕이 전신에 모은 마력을 끌어올리자, 누런빛의 전격은 사방으로 튀기더니 무지막지한 소음을 터트리며 쏟아져나왔다.

-쿠우웅! 쿠르릉!

누런 전격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서서히 밀려나는 건우의 푸른 뇌광.

역시 다른 건 몰라도, 그 ‘힘’만큼은 진짜인 뇌왕의 위엄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한국의 헌터는 그런 기초교육도 받지 않는 거냐?! 어딜 감히 같은 전격 방출계 헌터가 그 정점에 선 나에게 덤벼!”

뇌왕 코타로가 지금껏, 이건우의 비범한 모습을 직접 보고도 아주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같은 계열을 가진 헌터들의 전투는 레벨 격차가 모든 것을 정한다.

그것은 이 헌터 사회에 있어 너무도 상식적인 말이었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와도 같았다.

바로, 오늘의 이 순간이 있기 전까진 말이다.

“15레벨의 순수화력은 딱 이 정도인가.”

승리를 확신하고 허허실실 웃으며 공포로 물들었을 이건우의 얼굴이나 확인하려고 했던 뇌왕.

허나, 들려오는 이건우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누런 뇌광이 그의 코끝에 닿기 직전인 상태였음에도···.

“어이, 어이···. 뭘 여유로운 척하고 자빠진 거야!”

이에 역으로 놀란 뇌왕 코타로가 누런 전격의 화력을 올렸지만, 정말 기이하게도 뇌왕의 전격은 이건우에게 닿지 않았다.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나, 뇌왕이란 이름이 울겠군.”

“뭐?! 이 새끼가 적당히 봐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는 거냐!”

-파직! 파지지지직!

-파아아아아아아아아!

이건우의 차분한 목소리에 뭔지 모를 섬뜩함을 느낀 뇌왕.

그는 곧바로 전격의 출력을 배로 올렸고 심지어 고레벨 전격 방출계 헌터들에게 있어 주특기나 다름이 없는 ‘라이트닝 볼트’를 허공에 응집시켜 이건우를 향해 사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전격들은 이건우의 몸에 닿지 못했다.

그것도 그냥 전격과 전격의 차이로 밀려나는 형태가 아니라 뇌왕의 상식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절대적인 ‘힘’으로 인해 허공에 멈춰선 전격들.

“허, 허공에 전격을 멈춰 세운다고···?!”

그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염동력’으로도 불가능한 묘기였다.

전격은 빠르고, 강하며 심지어 매 순간 요동치는 성질을 띠고 있으니까.

다만, 그걸 가능케 하는 아주 특별한 힘이, 한 시절 뇌제라 불리우던 남자에게는 존재했다.

“나는 모든 전격을 ‘제어’한다.”

[제어력]: 722Wh

누런 뇌광도, 푸른 뇌광도 모두 흐름을 잃고 허공에 떠오른다.

몇천, 몇만의 와트시가 뭔가.

전생에는 몇십만, 몇백만의 전격마저도 100분의 1의 제어력으로 아득바득 제어해냈던 이건우다.

그런 그에게,

전생에 마주했던, ‘전쟁을 겪은 뇌왕’도 아니고 현재의 뇌왕이 방출하는 전격은 모래사장에서 소꿉장난을 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마, 마마, 이건 말도 안 돼!”

타인의 전격마저 ‘제어’하는 힘이라니.

이건 뇌왕 코타로의 상식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종류의 힘이었다.

“아니, 말이 된다.”

허공에서 비산하는 수많은 전격을 양손으로 지휘하며 서서히 몸이 떠오르는 이건우.

그는 이 지하 21층 전체를 집어삼킬 만의 힘을 전격을 손에 쥐었고, 휘둘렀다.

-팟!

그것도 압도적인 제어력으로 힘의 낭비가 일절 없는 완전한 뇌격의 형태로 말이다.

일직선으로 곧게, 빛으로 세상을 양단하며 나아가는 뇌격.

“그으으으으으으윽!”

뇌왕은 자신의 뇌광과 이건우의 전격이 뒤엉킨 그 뇌격에 휩싸여 치를 떨었다.

허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탓.

그의 눈앞에 허공으로 떠올랐던 이건우는 사뿐하게 안착한다.

“알고 있다. 네놈도 명색의 전격 방출계 헌터, 전기 내성 따위는 당연히 가지고 있겠지.”

그러니,

이건우가 그런 말을 말끝에 덧붙인 바로 그 순간, 그의 몸에서부터 붉은빛의 오러는 피어올랐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오브-성혈’은 각성자, 이건우의 ‘분노’에 응합니다.

*오브 활성도(12%)에 따라 사용자의 모든 능력치를 증폭시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뇌왕의 눈에 들어오는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

그러나 그런 것에 한눈을 판 바로 그 순간, 이건우의 새카만 검은 그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챙!

그때, 뇌격으로 마비된 뇌왕을 구한 것은 이건우의 동료들을 경계하기 위해 멀어졌던 일본측 헌터였다.

뇌왕과는 가장 오랫동안 합을 맞추었던 헌터이자 살인 동조자, 타무로.

타무로는 당연히 신체강화계 헌터의 명성에 걸맞게 압도적인 근력으로 이건우를 몰아붙이고, 얼른 이 전격 지대를 빠져나갈 심산이었지만,

“...아니?!”

이건우는 모든 마력을 신체 강화에 쏟아붓는 타무로의 힘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경악하는 타무로.

마찬가지로 전신이 마비된 뇌왕, 코타로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떴다.

“마력 방출계 헌터가 신체 강화계 헌터보다 힘이 강하다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

-챙!

그때, 타무로의 트라이던트를 튕겨내며 그 안을 빠르게 파고드는 이건우.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의외로 불가능한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오브-성혈’로 인해 붉게 물든 그의 검은 일전의 최속베기와는 비견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타무로의 몸에 거대한 참격을 새겨넣었다.

-촤아악!

“뭣?!”

그렇지 않아도 휘몰아치는 전격을 마력으로 간신히 버티던 놈은, 갑작스러운 일격에 집중력을 잃었고···.

“으아아아아악!”

폭풍과도 같은 두 빛의 뇌격에 놈은 그대로 집어 삼켜지고 말았다.

압도.

일본이 비록 헌터 강국은 아닐지라도, 그중에서는 나라를 대표할만한 자들을 뽑아 데려온 것일진 데도, Lv. 15에 불과한 이건우는 그들을 모두 압도해버렸다.

“사···. 살려줘. 나, 나는···.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없어. 나는, 나는 안된다고!”

뒤늦게,

늦어도 한참을 늦게 전신이 마비된 상태의 뇌왕, 코타로는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 그래! 반성! 반성할게! 네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들을게! 개처럼 짖으라면 짖고, 누굴 죽이라고 하면 그게 누구든 죽여줄게! 제발, 제발 나를 살려줘!”

그건 뇌왕이라는 거창한 이명에 전혀 걸맞지 않은 태도였다.

그야말로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의 졸렬함과 치졸함의 극을 달리는 모습.

“살고 싶다라···.”

“그, 그래! 뭐, 뭘 원해! 내가 다 줄 게, 돈? 명성? 인기? 다 줄 수 있어, 나는 다 줄 수 있다고!”

발악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코타로를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이건우.

그는 코타로가 알아서 조용해질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자신의 말을 이었다.

“네 손에 무참히 살해당한 네 녀석의 동료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그 녀석들이 살고 싶었건 말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만일 무사태평한 상태로 들었다면 코웃음이라도 칠 기세로 그리 말하는 코타로.

이를 면전에서 바라본 이건우마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릴 지경이었다.

“그래···. 처음으로 네놈의 말이 공감이 가는군.”

이건우가 그런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드디어 허공으로 사라진 두 광택이 뒤엉킨 뇌격.

-철퍽

그러자 뇌왕 코타로는 무엇을 착각한 것인지 고개를 번쩍 들어 이건우에게 감사 인사 따위를 내뱉으려 했다.

“고, 고마···.”

-서걱.

허나, 차디찬 검격은 그 찰나의 틈에 코타로의 목과 몸을 갈라놓았다.

깨끗하게 그어진 수평.

툭, 하고 떨어져 피 분수를 터트리는 뇌왕의 머리.

이윽고, 이건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본래 하려던 말의 마지막 마디를 씹어뱉었다.

“네놈이 살고 싶건 말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겠나.”

착.

검은 검집에 꽂히고, 그 차가운 쇳소리와 함께 머저리들로 인해 일어난 소란은 막을 내렸다.

감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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